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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이렇게 책 제목이 의문형이면 읽기 전부터 진지해진다.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서식하게 된 근원부터 해서 종족,이동 경로, 번식,인간과의 관계와 함께 왜 사라졌는지, 그 원인을 필자와 함께 학구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전혀 학구적이지 않았고, 에세이에 가까왔는데,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필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이 더욱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야생동물 작가라고는 하지만 일본인이 어떻게 해서 한국호랑이의 멸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필자 엔도 키미오는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과 비슷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던 차, 우연히 보게 된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 사진이 그를 한국으로 발걸음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목포의 한 초등학교에 남아있다는 한국 호랑이 박제를 찾아, 한국 호랑이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호랑이가 잡혔다는 불갑산으로 찾아간다. 당시 호랑이 사냥 목격자나 전언을 들었던 사람을 찾아나서지만 이렇다할 소득을 얻지 못한다. 필자는 한국인의 반일정서를 알고 있는지라 긴장하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친절하게 대해주는 목포 시민의 모습에 감격해한다. 일제 시대에 시가지가 형성됐던 목포라는 지역적 특징도 더러 언급이 되고 있어, 요즘 파문을 일고 있는 목포의 상황이 연상되기도 했다. 필자는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일본의 조선 지배를 비판하고 미안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위안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반일 감정을 지닌 한국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마지막 호랑이의 자취를 좇아다니는 필자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대체 왜 이 작업을 일개 일본인 야생동물작가가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를 개인적으로 도와줬던 한국 인물은 원병오교수. 조류학자로 익히 알려진 그 교수였다. 우리나라엔 호랑이 연구가가 없나? 엔도 키미오처럼 추적하는 연구가가 없나? 그래서 조류학자의 도움을 받은 것일까.
마지막 호랑이의 흔적을 추적하던 필자는 마침내 한국 호랑이가 멸종하게 된 원인에 도달하게 된다. 조선 총독부 자료에서 확인하게 된 해수구제작전(害獸驅除作戰).해로운 동물을 몰아 제거하는 작전답게 군인, 경찰,헌병과 조선인 포수를 동원해 대대적인 살포 작전에 나섰던 것이다.
한국의 정기를 말살시키기 위해, 일본인이 거주하는데 방해물을 없애려는 의도에서 시행된 것인데, 그렇잖아도 개체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던 한국 호랑이는 더이상 신식연발총, 엽총으로 무장한 포수를 견뎌내지 못하고 멸종에 이르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동물작가로서,한국 호랑이에게 가해진 폭력성, 최후의 한마리까지 제거해버린 일제의 무자비함을 고발하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 호랑이 뿐 아니라 표범, 늑대, 곰처럼 한반도 자연에서 오랫동안 서식해오던 육식 동물들이 해수란 이름으로 남획됐으니, 필자로서는 일본 군국주의의 잔인함과 폭력성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인은 물론이고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으로서 생태계에도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오늘날처럼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호랑이 가죽에 대한 욕심도 호랑이 사냥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상당수의 호랑이 부산물이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은 불문가지였다.
필자는 마지막 한국 호랑이를 추적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드러내는 한편, 호랑이의 보호를 언급하고 있다. 두만강과 맞닿아 있는 연해주의 아무르 호랑이가 한국 호랑이혈통이니 개체수가 줄고 있는 이들을 보존하며 호랑이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1921년에 경주 대덕산에서 사살된 호랑이가 한국에서 확인된 마지막 한국 호랑이었다니. 100년 가까이 호랑이는 발견되지 않고 있고,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호랑이를 잊지 않고 있다.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민화나 그림 속에서 한국 호랑이는 흉폭하기도 하지만 용맹한 모습으로 혹은 친근한 모습으로 여전히 한국인의 정서에서는 살아있다. 멸종되지 않은 것이다.
아무르 호랑이도 그렇지만 혹시 북한에서는 한국 호랑이가 몇마리 쯤 살아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된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멸종이 아니기를. 그러면서 주라기 공원에사처럼 아무르 호랑이에게서 유전자를 추출해서 혹시 한국호랑이를 복원할 수 없을까? 과학에 희망을 걸게도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이런 희망이 무색해졌다. 한국 호랑이의 멸종이 해수구제 작전에 있었다는 조선 총독부 자료를 발견한 것도, 또 한국 호랑이의 마지막 흔적을 더듬어 간 것도, 또 호랑이와 공존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도 모두 일본 작가라는 점에서, 우리는 한국 호랑이를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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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40년(1907년) 1,2월 무렵이었다. 한 마리의 호랑이를 짊어진 조선인들이 목포로와서 살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리에[入江] 운송점 사장이 호랑이를 살 생각으로 교섭과 상담을 해 드디어 구매를 결정했다. 그 기념으로 모두들 기념촬영을 하려고 하자, 경찰이 오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며 기념촬영이 중단되었다. 전화상으로 무슨 일인가 이유를 물어보자
“이 호랑이는 명찰 불갑사로 이름 높은 영광군의 불갑산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농민들이 덫으로 잡은 것이나, 화약 사용의 혐의가 있다. 따라서 잡은 본인들의 자유처분에 맡길 수 없으니 아무쪼록 영광경찰서로 반송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중략> 그래서 수차례 회의를 한 끝에 드디어 경매의 수속을 마쳤다. 개표해 보니 그 여행객은 백 원에 입찰을, 목포부의 모 씨가 200원에 입찰하고 있어서 일단 목포에서 호랑이가 유출되는 것약 200원으로 박제를 의뢰해 지금의 소학교의 일실에 위풍당당하게 놓이게 되었다. 이 호랑이는 포획 이후 여러 시간이 흘러 부패의 우려도 있고 영광으로 보내는 시간이 없어서 소학교로 기증하자는 임기 조치로서 마츠이 서장이 목포에서 처분한 것이었다. 과연 맹호 한 마리이다. 쓰러져서도 좀처럼 극락왕생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목포부사> 쇼와 5년(1930년)판 ‘여담일속’ 중에서-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한국 호랑이에 관한 기록이다. 현재 유일한 한국 호랑이는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박제 형태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문헌이 발견되기 전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졌을 뿐 유일한 한국 호랑이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였다. 구전이다보니 전하는 사람에 따라 포획 시기와 기증 연도 등이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상황과 관련된 한국인은 한국인대로 또 일본인은 일본인대로 각자의 시각에서 기억하다 보니 유일한 한국 호랑이에 대한 통일된 정보가 없다시피 했다.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유일한 한국 호랑이는 박제 형태로 목포유달초등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마지막 한국 호랑이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혔다”
유일한 한국 호랑이와 마지막 한국 호랑이에 관한 정확한 기록과 한국 호랑이 멸종의 진실을 밝힌 책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의 저자는 일본인 엔도 키미오다. 그는 한국 유력지의 오보만을 믿고 무작정 한국을 방문한 뒤 몇 년에 걸쳐 한국 호랑이 관계자와 자료를 뒤져 르포 형식의 이 책을 출간했다. 그가 한국 호랑이를 취재하면서 내린 결론은 현재 한국에는 최소한 남한에는 한국 호랑이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유일한 한국 호랑이가 박제 형태로나마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남아 있다는 것과 마지막 한국 호랑이가 경주 대덕산에서 잡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일한 한국 호랑이와 마지막 한국 호랑이에 관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었다. 엔도 키미오에 의해 한국 호랑이에 관한 역사가 비로소 정리된 것이다.
엔도 키미오는 목포유달초등학교에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한국 호랑이의 정확한 포획 시기를 밝히기 위해 목포와 서울, 일본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했다. 책이 마치 ‘목포 근대사’처럼 보이는 것도 그만큼 당시 포획되어 박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한국 호랑이에 관한 자료가 부실하다는 반증이었다. 엔도 키미오는 닥치는 대로 목포 개항 초기의 자료를 수집했다. 급기야 목포시립도서관(개항 당시 일본 영사관 자리)에서 1930년에 씌여진 <목포부사>라는 책을 찾아내고 그 안에 유일한 한국 호랑이에 관한 자료가 있음을 확인했다. <목포부사>에 따르면 유일한 한국 호랑이가 포획되어 박제 형태로 보존된 시기는 기존에 알려진 1911년이 아니라 1907년이었다. 1907년 영광 불갑사에서 잡혀 히라구치 쇼지로라는 일본이 경매를 통해 산 뒤 박제해서 1908년 당시 일본인 학교였ㄷㄴ 목포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한 것이었다.
엔도 키미오가 밝혀낸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마지막 한국 호랑이의 포획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연해 냈다. 그는 서울대 도서관에서 총독부 발행 국어 독본(일제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대덕산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내고 당시 실제 상황과 많이 다르게 기술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대덕산 호랑이의 공격을 받았다는 김유근 할아버지를 비롯해 생존해 있는 관련자들을 직접 취재한 결과 당시 일제는 총독부 발행 교과서에 실린 대덕산 호랑이 이야기를 통해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 호랑이의 멸종은 일제의 해수구제정책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호랑이는 왜 멸종했을까? 엔도 키미오는 목포유달초등학교에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한국 호랑이와 경주 대덕산에서 잡혔다는 마지막 한국 호랑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들은 증언과 직접 찾아낸 고문서를 통해 일제의 해수구제정책이 한국 호랑이를 멸종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찾아낸 문서는 <조선휘보>와 월간지 『조선』1926년 1월호에 실린 ‘호랑이와 조선’이었다.
일제는 1910~1920년대를 걸쳐 주민이나 가축에게 피해를 주는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의 ‘해수(해로운 짐승)’을 구제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휘보>에 따르면 호랑이로 인해 죽은 사람이 1915년 8명, 1916년에는 4명이었다. 가축 피해는 이보다 많은 각각 565마리, 576마리였다. 특히 늑대 피해로는 1915년에는 113명이 사망했고, 1916년에는 54명이 사망했다. 일제는 피해 신고를 받으면 주민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야생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포획하거나 사살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1915년과 1916년에 걸쳐 24마리의 호랑이를 포획했다. 또 월간지 『조선』1월호 ‘호랑이와 조선’에는 1919년과 1924년 사이에 호랑이가 33마리, 표범이 88마리나 포획된 것으로 실려있다. 이후에도 호랑이 구제 수는 1934년 1마리, 1937년 3마리, 1938년 1마리, 1940년 1마리 등 급격히 호랑이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1933년 이후에는 북한 지역으로 이 당시에 이미 남한 지역에는 호랑이가 멸종됐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1940년대까지도 남한 지역에서 해수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그 때까지도 한국 호랑이가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호랑이 피해가 잦아서 대대적인 호랑이 포획정책이 있어왔다. 일제의 해수구제정책이 아니었더라도 한국 호랑이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호랑이는 우리나라 민담이나 민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맹수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호랑이가 신성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호랑이 멸종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유일한 한국 호랑이와 마지막 한국 호랑이에 관한 진실이 한 일본인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 호랑이의 흔적은 극동 러시아에 있는 아무르 호랑이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한국 호랑이 멸종의 진실을 일본인이 밝혀냈다면 어딘가에 살아있을 한국 호랑이 보호와 보존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 http://yeogangyeoho.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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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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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할머니 무릎에서 듣던 호랑이이야기가 경인년 새해가 되니까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떠오르더군요.
이 책은 몇년전 방영된 EBS '하나뿐인 지구: 야생, 잊혀진 정복자들'의 바탕이 된 책이기도 합니다.
옛부터 한국인의 드 높은 기상을 호랑이에 비유했던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호랑이가 사라지게된 이유가 뭘까?하고 궁금해졌습니다. 게다가 한국인이 이유를 밝히는게 아닌 호랑이 멸종의 진실을 일본인이 밝힌다는 사뭇 궁금증을 유발시키더라고요.
어렵지 않은 문체로 소설체로 끌어가는 엔도선생의 이야기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서글픈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경인년 새해부터 우리 사라진 호랑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호랑이의 기상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기분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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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호랑이, 현재까지 우리의 관심밖에 있던 호랑이..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일제치하의 생생한 단면과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2010년 경인년까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우리호랑이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