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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자신이 보지 않은 일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말만 믿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내가 직접 보거나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면 구체적인 확인도 없이 무조건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집단의 거짓말이 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비극에 이르게까지도 한다.
<한비자>에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로 이런 문제를 풍자하고 있다.
삼인성호라!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저자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만, 그 이야기를 세 사람이 똑같이 말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명백하더라도, (夫市之無虎也明矣라도,)
그러나 세 사람이 모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진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然而三人言而成虎라!)
이 말은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옳다고 이야기해도 그 이야기가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르다고 해도 반드시 그것이 그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판단의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이지 다수의 불확실한 편견에 빠져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명심보감에도 이런 말이 있다.
衆人好之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必察焉하며, 반드시 직접 살펴본 후 판단할 것이며,
衆人惡之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必察焉이니라! 반드시 직접 살펴서 판단해야 한다.
정말 혼란하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 도무지 판단이 안서는 세상이다.
이럴 때는 오로지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할 수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三人成虎라!
세 사람이 입을 모으면 없는 호랑이 만드는 것이 너무나 쉬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삼인성호'식의 잣대는 아닌가
스스로 가늠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리번거리고 주춤거리지는 않은가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잣대에 휘둘려지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중심이 바르고 확고하면 어떤 대상,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적이지 않다.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은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으니 비판할 것도 없다.
다만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면, 판단하고 비판할 때 보다 훨씬 더 명료하고 넓게 보게 된다.
경외감으로 바라보아야 할 사람은 비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다.
오로지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판단 기준은 나에게 있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본다는 것의 의미가 성립된다.
본다고 다 보는 것 아니고, 보고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내가 내린 결론이 옳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판단하기에 앞서 지켜보기가 먼저이어야 한다.
세상 탓하기에 앞서 내 안을 살핌이 먼저이어야 한다.
시장 바닥이란 늘 어느 정도의 혼돈과 무질서가 뒤섞여 있지 않은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축대 껍데기엔 어느새 담쟁이 잎 피어나고 있다.
보고 있지만,
저것이 담쟁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내가 담쟁이를 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안다고,
담쟁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담쟁이는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담쟁이를 보는 방법은...
그냥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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