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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사진’은 ‘다큐 작품’이 아닙니다 (꿈결 같은 시절)
"‘어린이 사진’은 ‘다큐 작품’이 아닙니다 (꿈결 같은 시절)" 내용보기
예스24에는 <꿈결 같은 시절>이 없다. 그래도 이 사진책을 알리고 싶어서한영수 님 사진이 실린 다른 책에 이 글을 붙인다...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0‘어린이 사진’은 ‘다큐 작품’이 아닙니다― 꿈결 같은 시절 한영수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펴냄, 2015.4.30. 4만 원  한영수문화재단에서 두 권째 펴낸 한영수 님 사진책 《꿈결 같은 시절》(2015)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책
"‘어린이 사진’은 ‘다큐 작품’이 아닙니다 (꿈결 같은 시절)" 내용보기


예스24에는 <꿈결 같은 시절>이 없다. 그래도 이 사진책을 알리고 싶어서

한영수 님 사진이 실린 다른 책에 이 글을 붙인다.


..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0



‘어린이 사진’은 ‘다큐 작품’이 아닙니다

― 꿈결 같은 시절

 한영수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펴냄, 2015.4.30. 4만 원



  한영수문화재단에서 두 권째 펴낸 한영수 님 사진책 《꿈결 같은 시절》(2015)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사진책 《꿈결 같은 시절》을 보면, 이 사진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강원도 아이나 경기도 아이도 있지만, 아무래도 서울 아이가 가장 많습니다. 서울에서도 물지게를 지고, 서울에서도 널뛰기를 하며, 서울에서도 얼음지치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도와 일도 할 뿐 아니라, 신나게 놀고, 마음껏 온누리를 두 발로 씩씩하게 밟으면서 자랍니다.


  1950∼60년대에 서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던 아이들 모습이 사진책 《꿈결 같은 시절》에서 흐릅니다. 그런데 이 사진책은 1950년대나 1960년대가 아닌 201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옵니다. 2000년대나 1990년대에도 이 사진을 담은 사진책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삶》이라는 사진책이나 《내가 자란 서울》 같은 작은 책에 한영수 님이 찍은 어린이 사진이 더러 나오기는 하지만, 두 책 모두 어린이 사진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삶》이라는 사진책은 말 그대로 ‘삶’을 크게 아우르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내가 자란 서울》은 이 책에 글을 쓴 동화작가 이야기에 맞추어 몇 가지 사진을 보여줄 뿐입니다.


  한영수 님이 어린이를 찍은 사진은 왜 1960년대나 1970년대나 1980년대에 사진책으로 나오지 못했을까요? 왜 이만 한 사진을 눈여겨보거나 알아보거나 살펴보는 손길이 그동안 나타나지 못했을까요? 왜 1990년대나 2000년대에도 이들 사진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는 몸짓은 일어나지 못했을까요?


  가만히 보면 2010년대인 오늘날에도 ‘어린이 사진’을 제대로 들여다보거나 알아보는 비평가는 아주 드물거나 없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어린이를 찍는 사진’을 들여다보거나 알아보는 비평가도 드물지만, ‘어린이가 읽을 사진’을 헤아리거나 생각하는 비평가도 드뭅니다.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를 다루는 사진이 될 때에 비로소 ‘다큐멘터리’라고 여길 뿐, 어린이가 다녀야 하는 학교라든지 어린이가 늘 지내는 집이나 마을 이야기를 다룰 적에 ‘다큐멘터리’가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 비평가는 참으로 드뭅니다.





  《멈춘 학교 달리는 아이들》 같은 사진책이 1992년에 나왔으나, ‘멈춘 학교’에서 고단한 아이들 모습을 살짝 그리는 데에서 그칠 뿐, 아이들이 마음껏 노는 즐거운 꿈까지 알알이 여미지 못했습니다. 1998년에 나온 《분교, 들꽃 피는 마을》은 시골마을 작은학교 어린이를 보여주기는 하되, 시골마을 어린이 삶까지 헤아리면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2009년에 나온 《소꿉》이라는 사진책은 드디어 한국에서도 ‘노는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 될 만했는데, 이 사진책은 ‘아시아 어린이’만 보여줍니다. 이밖에 어린이를 주제로 삼아서 나온 사진책이 여러 권 더 있지만, 동심천사주의에 빠진 틀에서 못 벗어나기 일쑤였습니다. 어린이를 찍는 사진이라고 하면, 먼저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히고, 놀이터나 꽃밭에서 놀거나 서도록 한 다음, 활짝 웃거나 병아리를 들여다보는 몸짓을 하도록 시키고서 찍기 일쑤예요. 시골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알몸으로 냇물이나 바닷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찍기 일쑤이지요. 다들 하나같이 틀에 박힌 ‘어린이 사진’을 찍기만 하면서 ‘어린이가 누리는 삶’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한영수 님이 어린이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에서는 어떤 모습과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한영수 님은 ‘노는 어린이’하고 ‘일하는 어린이’를 나란히 찍습니다. ‘도시 어린이’하고 ‘시골 어린이’를 함께 찍습니다. 극장 앞에 있는 커다란 쇠울타리를 철봉 삼아서 노는 어린이를 찍고, 신문이나 책이나 껌을 파는 어린이를 찍습니다. 고무줄을 하는 어린이를 찍고, 그냥그냥 있는 어린이를 찍습니다. 그리고, 한영수 님이 찍은 어린이 사진에는 ‘어린이가 사는 터’가 잘 드러납니다. 어떤 집인지, 어떤 마을인지, 어떤 골목인지, 어떤 시골인지 하는 이야기가 환하게 드러나지요.


  1950∼60년대에 찍은 사진이니까 ‘일부러 흑백필름으로 골라서 찍은 사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요즈음도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하면 ‘흑백필름 사진’이어야 비로소 다큐사진이 되는 줄 잘못 아는 사진가와 비평가가 아직 제법 있습니다. 왜 흑백사진이어야 다큐사진일까요? 흑백사진은 그저 흑백사진입니다. 칼라사진은 그저 칼라사진입니다. 무엇보다도 ‘다큐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고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다큐사진을 못 찍습니다. ‘다큐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는 사진가는 ‘다큐 작품’을 만들 뿐입니다.





  《꿈결 같은 시절》에 나오는 어린이 모습은 ‘다큐 사진’도 아니고 ‘다큐 작품’도 아닙니다. ‘옛날 추억을 기록한 사진’도 아닙니다. 이 사진책에 흐르는 사진은 모두 한영수 님이 이녁 아이를 낳으면서 즐겁게 누리려는 삶을 그야말로 즐겁게 찍은 사진입니다. 내 아이를 바라보듯이 이웃 아이를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내 아이하고 동무할 이웃 아이를 마주하는 사진입니다. 지구별이라는 테두리까지 헤아리지 않더라도, 전국을 두루 헤아리지 않더라도, 서울 하늘에서만 해도 이렇게 수많은 아이가 수많은 모습으로 수많은 삶을 가슴에 안으면서 살아요.


  어느 날에는 웃고, 어느 날에는 웁니다. 눈물을 흘릴 때가 있지만, 이내 눈물을 씻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놉니다. 맨발에 맨손이어도 흙을 뭉쳐서 소꿉을 짓습니다. 나물에 보리밥이어도 한 그릇 뚝딱 배부르게 먹고는 배가 꺼지도록, 아니 배가 꺼지고 나서도 신나게 뛰어놉니다. 제비랑 함께 놀고 박쥐하고 같이 놀아요. 아침을 제비와 함께 열고, 저녁을 박쥐랑 나란히 마무리하지요.


  한영수 님이 찍은 어린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흑백필름으로 찍은 결이지만 얼굴빛이나 목소리나 몸짓이 모두 잘 살아서 움직입니다. 필름으로는 까망과 하양 두 가지 빛깔로 그리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사진에 아로새긴 이야기는 온통 무지개빛으로 되새길 수 있을 만합니다. 포대기도 두루마기도 홑벌치마도 고무신도 모두 반들반들 예쁜 빛깔이 드러납니다. 판잣집도 흙길도 때 묻은 손도 모두 까무잡잡하면서 살가운 숨결이 배어납니다.





사진작가 한영수의 사진집을 시리즈로 출간한다는 계획은, 남겨진 필름과 밀착인화물을 처음 접한 이래 계속 생각해 온 것이지만, 막상 두 번째 사진집의 주제를 정하는 데에는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한 것이 바로 ‘어린이’ 사진이다 … 이 사진들에 실려 있는 것은 아마도 지금 막 노년에 접어든, 재건의 시대를 거쳐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바로 그 세대들의 어린 시절일 것이다. (책머리에/한선정)



  1950∼60년대에 이 어린이 사진이 책으로 나오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1970∼80년대에라도 ‘어린이’만을 헤아리는 사진을 그러모은 사진책이 한국에서 한 권쯤 제대로 나올 수 있었으면 한국에서 사진문화와 사진예술은 무척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풍경이나 산만 찍은 사진책이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 목소리와 숨소리가 싱그러이 펄떡펄떡 피어나는 사진책이 1990년대나 2000년대라도 나올 수 있었으면, 다큐사진을 찍는다면서 ‘다큐 작품’만 만드는 요즈음 한국 사진가한테 따끔하면서 따사로운 한마디를 들려줄 만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를 찍는 사진은 어렵지 않으면서 어렵습니다. 첫째, 어린이를 마주하는 어른으로서 ‘어린이 마음’이 되면 어린이 사진을 찍기란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둘째, 어린이를 마주하는 어른으로서 ‘어른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들한테 반말만 찍찍 늘어놓고 이리 해라 저리 해라 시키기만 하면서 멋진 구도나 노출이나 풍경을 연출하려고 하면, 어린이 사진을 찍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도록 하면 아이들을 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골목에 자동차가 싱싱 달리지 못하도록 막고, 자가용을 골목에 대지 못하도록 막기만 하면 돼요. 아이들이 골목길을 이쪽저쪽으로 100미터는 넉넉히 마음껏 내달릴 수 있는 터만 있으면 됩니다. 연줄을 잡고 달리면서 연을 하늘로 띄울 만큼 넉넉한 빈터가 있으면 ‘노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기란 매우 쉽지요. 다음으로, 살림을 꾸리면서 아이들한테 잔소리나 꾸지람을 하지 않고 늘 웃고 노래하면서 심부름을 알맞게 시킬 뿐 아니라 아이한테 고마워 할 줄 아는 다소곳한 마음인 어른으로 지내면 ‘일하는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기란 참으로 쉽지요.


  아이들은 밥짓기나 비질이나 빨래도 참 좋아해요. 그러니 늘 소꿉놀이를 합니다. 아이들은 동생을 돌보거나 업기도 참 좋아해요. 그래서 놀이를 하면서 언제나 깍두기를 두어요. 아이들은 새로운 노래를 참 좋아해요. 대중가요나 뽕짝 같은 노래가 아니라, 어버이나 어른이 저희(아이)를 아끼면서 들려주려는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노래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웃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귀여겨듣고는 따라 불러요. 노래하면서 춤추는 아이들이요, 웃으면서 뛰노는 아이들이며, 뛰놀면서 착하고 참다운 넋으로 거듭나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도 지게를 잘 집니다. 아이들도 호미나 낫을 잘 다룹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머잖아 나락도 손수 심고 나무도 손수 베어 집이랑 옷도 손수 짓겠지요. 어버이가 물려주는 깊은 사랑을 가슴으로 담아서 새로운 삶을 지어요. 어린이를 찍는 사진이라고 한다면, 어버이가 아이한테 온 삶을 사랑으로 물려주듯이 찍는 사진입니다. ‘웃으며 노는 모습’을 찍으면 되는 어린이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어른으로서 이 아이들이 ‘나(어른)한테서 물려받을 사랑’을 느끼면서 마음껏 뛰놀거나 기쁘게 심부름하는 하루를 찬찬히 담아낼 때에 아름다운 어린이 사진입니다.


  사진책 《꿈결 같은 시절》은 왜 “꿈결 같은 시절”을 말할까요? 사진에 찍히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 어른을 믿고 따릅니다. 사진을 찍는 어른이 사진에 찍히는 아이들을 믿고 따릅니다. 아이들은 사진가 아저씨를 따라서 놀지 않습니다. 저희 놀고픈 대로 놉니다. 사진가 아저씨는 아이들 놀이에 맞추어 움직이면서 신나게 웃는 낯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일하는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사진가 아저씨도 차분하면서 고요한 몸짓으로 정갈하게 손을 놀려서 사진 한 장 살그마니 찍었을 테지요. 일하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거룩하면서 놀랍고 애틋한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사진가 아저씨 가슴이 찡하게 울렸을 테고, 이 울림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옮겼으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한영수 님이 어린이를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꿈결 같은 시절》은 ‘다큐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어린이 사진’입니다. 어린이가 누리는 삶을 찍은 사진입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사랑하면서 마음껏 뛰놀거나 기쁘게 일하던 하루를 고맙게 마주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작품 만들기’가 아니라 ‘삶짓기’와 ‘사랑짓기’를 하는 몸짓과 마음으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는 어른(사진가)이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티없이 맑은 눈빛’을 찾아서 동남아시아나 남미나 티벳이나 먼먼 지구별 두멧시골 나라로 찾아갈 생각은 좀 내려놓고, 바로 이곳 한국에서 이 나라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터전부터 함께 가다듬고 마련하는 몸짓으로, 이 나라 아이들하고 함께 실컷 웃고 뛰놀려는 사랑으로 사진을 찍는 착한 어른(사진가)이 나타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1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이달의 사락 h*******e 2015.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람들이 살지 않는 우리 자연 (한영수, 우리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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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쟁이 한영수 님 책은 <내가 자란 서울> 한 가지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절판입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책에 이 사진책 느낌글을 걸치지만, 사람들이 이분 사진을 맛보거나 누릴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   ..      사람들이 살지 않는 우리 자연 [찾아 읽는 사진책 111] 한영수, 《우리 강산》(열화당,1986)     구월 살짝 넘긴 이른가을에 벌써 벼베기를
"사람들이 살지 않는 우리 자연 (한영수, 우리 강산)" 내용보기

.. 사진쟁이 한영수 님 책은 <내가 자란 서울> 한 가지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절판입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책에 이 사진책 느낌글을 걸치지만, 사람들이 이분 사진을 맛보거나 누릴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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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살지 않는 우리 자연
 [찾아 읽는 사진책 111] 한영수, 《우리 강산》(열화당,1986)

 


  구월 살짝 넘긴 이른가을에 벌써 벼베기를 마친 논이 있습니다. 아마 가장 먼저 모내기를 한 논이겠지요. 환한 가을햇살 가득 넘치던 어제 하루, 마을마다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길가에 콩포기를 죽 늘어놓고는 경운기로 밟거나 큰돌 얹은 수레를 밀거나 나무방망이를 두들기며 콩을 터느라 부산했습니다. 오늘 새벽부터 밤까지 빗줄기가 이어집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제 하루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나 그토록 부산하게 움직인 까닭을 알 만합니다. 이렇게 오늘 비가 찾아들 줄 몸과 마음으로 느끼신 듯합니다.


  저녁에 빗줄기가 조금 잦아들며 개는가 싶기에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는 설렁설렁 자전거마실을 다녀옵니다. 이웃마을 옆마을 천천히 돌며 가을바람을 쐽니다. 마을마다 길가에 털다 못 턴 콩포기가 꽤 많습니다. 마을 분들은 마저 털어야 할 콩포기를 커다란 비닐로 둘둘 말아 놓았습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이렇게 비닐이 꼭 있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밭에 심을 때에도, 비가 찾아들어 얼른 걷거나 건사할 때에도, 비닐집을 칠 때에도, 온갖 곳에 비닐을 씁니다.


  2005년 무렵이지 싶은데, 중국 연길시 둘레를 다녀온 적 있습니다. 시내에서 벗어나 시골을 자동차로 달리는데, 길가와 먼 멧자락마다 가득한 밭뙈기 드문드문 ‘비닐로 덮은 자리’가 보입니다. 중국 흙일꾼도 흙일 아닌 비닐일을 하는구나, 중국도 이렇게 비닐일로 바뀌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 널따란 중국에서 밭뙈기마다 온통 비닐로 덮어씌운다면 지구별 사람들은 비닐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얼마나 많이 써야 할까요. 중국 흙일꾼이 한 해 동안 쓴 비닐을 태울 때에는 얼마나 많은 매연과 공해가 생길까요.


  밭에 비닐을 씌우고 감자를 거둔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밭에 비닐을 씌우고 고추를 심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감자도 고추도 한국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 하더라도, 밭자락에 비닐을 널따랗게 덮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미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네덜란드도 영국도 덴마크도 폴란드도 그리스도, 흙일꾼은 흙을 만지며 삶을 일구었지, 비닐을 만지며 삶을 일구지 않았어요.


  흙일 아닌 비닐일로 달라지는 오늘날 한국에서는, 시골마다 ‘나뭇가지에 비닐이 꽃처럼 걸려 바스락바스락 춤추는 모습’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골마다 넘치는 비닐은 비바람에 날려 높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리곤 합니다. 어찌저찌 걷지 못합니다.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연을 못 꺼내듯,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은 깃발처럼 휘날립니다.

 


  1933년에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고, 1999년에 숨을 거둔 한영수 님이 빚은 사진책 《우리 江山》(열화당,1986)을 읽습니다. 사진책 《우리 강산》은 책이름 그대로 한겨레 냇물과 멧자락을 보여줍니다. 한겨레가 먼먼 옛날부터 깃들이며 숨결을 이은 냇물과 멧자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한영수 님은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드라마, 그것은 곧 산천수목의 변화가 아니겠느냐.” 하고 사진책 끝에 붙입니다. 임응식 님은 이 사진책을 기리며 “그(한영수)는 우리 나라 광고사진계의 개척자로서 광고사진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확립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서 사업적으로도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성공도 했다.”고 적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광고사진을 환하게 열며 뜻을 이룬 한영수 님이 이 땅 뒷사람한테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고 싶어 이만 한 사진책을 일구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땅이 아름답다면 냇물과 멧자락만 보여주어서 되겠느냐?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야말로 아름답지 않겠느냐?’ 하고 물을는지 모릅니다. 네, 그래요. 멋들어진 골짜기와 바위만 보여준대서는 ‘아름다운 삶’을 다 말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한영수 님은 《우리 강산》을 1986년에 선보였고, 이듬해인 1987년에는 《삶》(신태양사)을 선보여요. 《우리 강산》에는 오직 숲살림만 사진으로 드러낸다면, 《삶》에는 오직 사람살림만 사진으로 드러내요. 한영수 님은 한겨레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강산(자연)’과 ‘삶(사람)’으로 살포시 나누어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커다란 판으로 시원스레 엮은 사진책 《우리 강산》을 가만히 되넘깁니다. 높은 멧자락도, 눈을 함박 뒤집어쓴 겨울나무도, 물방울 힘차게 튀기는 냇물도, 드넓은 하늘과 바다와 들도, 참으로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너무 마땅한 소리일 텐데, 아름다운 한겨레 삶터를 사진책 200쪽이나 300쪽, 또는 500쪽이나 1000쪽에 담아서 보여줄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전라남도나 전라북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헤아려 보셔요. 구례군이나 임실군이나 고흥군이나 영암군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헤아려 보셔요. 나는 전남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전남 고흥 한 곳만 따지더라도, 동강면이나 도화면이나 풍양면이나 봉래면 한 자락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면, 더 깊이 파고들어 도화면에서 지죽리나 신호리나 봉산리나 가화리나 발포리 한 자락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면, 사진책 몇 쪽이 있어야 할까요. 자그마한 군 면 리 한 곳에서조차 사진책 500쪽이나 1000쪽으로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누릴 빛나는 아름다움’을 낱낱이 담기는 몹시 어려우리라 느껴요. 전남 고흥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조그마한 시골자락에서조차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 이야기를 다루려 하더라도 사진책 1000쪽마저 빠듯하구나 싶어요.

 

 


  곧, 사진책 《우리 강산》은 아주 간추린 판입니다. 이 사진책을 밑거름 삼아 이곳저곳에서 ‘내가 누리는 아름다운 강산’을 사진과 사진책으로 선보일 노릇입니다. 사진쟁이 한영수 님 말마따나 ‘가장 거룩하고 놀라운 춤사위’가 펼쳐지는 삶자락이요 자연이며 숲이자 마을이에요.


  시골 흙일꾼 손길이 깃든 밭자락이나 논배미를 보셔요. 시골 흙일꾼이 기나긴 해를 대물림하면서 차근차근 쌓은 돌울타리나 비탈논을 보셔요. 스스로 뿌리내려 오백 해 천 해를 웃도는 나무들을 보셔요. 강원도 태백산이나 설악산에만, 또 울릉섬에만 오래된 숲이 있지는 않아요. 한국땅 골골샅샅 깊은 시골마을마다 크고작은 오래된 숲이 있어요. 너비가 백 미터는 되어야 아름다운 냇물이 아니에요. 너비가 일 미터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냇물이 돼요.


  아름다움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숲에서 느끼지 않아요. 사람들 가슴속에서 꿈과 사랑이 피어날 때에 비로소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요. 봄을 맞이해 찾아드는 ‘봄까지꽃’ 작은 떨기 하나가 바로 아름다움이에요. 흙일꾼이 심건 말건 스스로 씨앗을 퍼뜨리는 유채꽃이나 부추풀이 바로 아름다움이에요. 나팔꽃 씨앗을 받아서 따로 심어야 나팔꽃이 피지 않아요. 접붙이기를 해야 감나무가 된다지만, 감나무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열매는 감나무 스스로 빚어요. 돌울타리를 따라 마삭줄이 줄기를 뻗어 꽃을 피워요. 돌울타리에는 수세미도 호박도 하늘타리도 포도도 참다래도 서로서로 줄기가 얼크러져요. 꽃 아닌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무도 스스로 곳곳에 어린나무를 키워 내요. 우람한 느티나무 밑에서 조그마한 새끼 느티나무가 자라요.


  남미 어느 나라에 있다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폭포가 되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자연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높이가 십 미터는 넘어야 볼 만한 폭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높이가 삼천 미터나 오천 미터는 되어야 거룩하거나 빼어난 멧봉우리일까 궁금해요. 사진책 《우리 강산》은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요. 우리 냇물과 멧자락은 참말 이름 그대로 ‘우리 냇물’이고 ‘우리 멧자락’이에요. 오늘날 한국사람은 송두리째 시골과 숲과 자연을 버리고는 도시로 몰려들지만, 오늘날 한국사람은 스스로 시골과 숲과 자연을 내팽개치고 도시에서 돈벌 자리만 찾지만, 아름다움을 말하거나 보여주는 자리에서는 누구라도 언제나 시골과 숲과 자연을 사진으로 찍어서 말하거나 보여주려 해요. 사진을 찍는 이나 그림을 그리는 이나 글을 쓰는 이나, 아름다움을 말하거나 보여주려 할 때에는 으레 시골로 가요.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할 적에는 늘 숲을 찾아요.


  1933년부터 1999년까지 목숨을 누린 한영수 님은 두툼하고 커다란 사진책 《우리 강산》을 우리들한테 선물로 물려주었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 뒷사람인 이 나라 아이들한테 무엇을 선물로 빚어 물려줄 만할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누리거나 마주하거나 껴안거나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이며, 우리들은 무엇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리며 글로 담으며 살아가는가요. (4345.9.9.해.ㅎㄲㅅㄱ)

 


― 우리 江山 (한영수 사진,열화당 펴냄,1986.4.1./판끊어짐)

 

(최종규 . 2012)

 

이달의 사락 h*******e 2012.09.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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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옛 풍경을 볼 수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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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시절의 사진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흑백사진으로요.. 한강의 얼음을 자르는 모습, 전차가 다니는 모습, 노천에서 짝 안맞는 신발을 파는 신발장수, 예전의 수표교 모습 등...글에는 지금은 유명해진 야인시대의 우미관에 관한 이야기도 잠깐이지만 나옵니다. 그리고 작가가 서울 토박이라 그런지 지금은 헐리고 없는 화신 등 옛 건물의 모습이나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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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시절의 사진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흑백사진으로요.. 한강의 얼음을 자르는 모습, 전차가 다니는 모습, 노천에서 짝 안맞는 신발을 파는 신발장수, 예전의 수표교 모습 등...글에는 지금은 유명해진 야인시대의 우미관에 관한 이야기도 잠깐이지만 나옵니다. 그리고 작가가 서울 토박이라 그런지 지금은 헐리고 없는 화신 등 옛 건물의 모습이나 서울시내의 그당시 개장수, 선술집, 배수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비올대 장화를 신고 진 길을 걸어다니는 모습 등 서울시내의 당시의 풍경들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습니다. 원래 어린이들을 염두에 두고 쓴 듯 다듬잇돌 등의 알기쉬운 말들도 방주를 달아서 친절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서울 토박이들은 옛 생각을 하시면서 지금 세대들은 예전에는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기에 좋은 책인 듯 합니다. 그렇지만 개정판이 나오면서 값이 너무 많이 오른 것은 아쉽네요.
s*******7 2003.12.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 (서울, 모던 타임즈/한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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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는 한스그라픽 사진책이 없는 듯하기에 다른 책에한영수 님 사진책 소개글을 붙인다... 찾아 읽는 사진책 210‘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 서울, 모던 타임즈 한영수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엮음 한스그라픽 펴냄, 2014.6.20. 3만 원  사진가 한영수 님은 1986년에 《우리 강산》(열화당,1986)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고, 이듬해인 1987년에 《삶》(신태양사,1987)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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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는 한스그라픽 사진책이 없는 듯하기에 다른 책에

한영수 님 사진책 소개글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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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10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

― 서울, 모던 타임즈

 한영수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엮음

 한스그라픽 펴냄, 2014.6.20. 3만 원



  사진가 한영수 님은 1986년에 《우리 강산》(열화당,1986)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고, 이듬해인 1987년에 《삶》(신태양사,1987)이라는 사진책을 선보였습니다. 《우리 강산》은 책이름처럼 이 나라 숲과 들과 냇물과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사진책입니다. 《삶》은 책이름대로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저마다 아기자기하면서 수수하게 빚는 삶을 밝히는 사진책입니다.


  두 가지 사진책은 모두 한겨레 삶터와 삶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한겨레 삶터와 삶이되,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진 삶터와 삶 가운데 남녘땅과 남녘사람 이야기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 땅’에서는 남녘 작가도 북녘 작가도 어느 한쪽만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강산”을 말하든 “삶”을 말하든 참말 어느 한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쓰라린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쓰라린 나라와 사람을 따스한 눈길로 마주할 수 있다면, 북녘에서 북녘만 찍든 남녘에서 남녘만 찍든 ‘삶을 누리는 기쁨’과 ‘삶을 가꾸는 보람’과 ‘삶을 나누는 사랑’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어느 모로 보면 가난하거나 구지레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다르게 바라보면 ‘가난한 삶터에서도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구지레한 차림새’라 하더라도 ‘기운차게 일하면서 아이이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살림을 가꾸는 어른(어버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옷이 넉넉하지 않고, 빨래도 자주 할 수 없지만, 맑은 넋으로 밝게 웃는 나요 너이며 우리입니다. 조그마한 집이고, 판자로 다닥다닥 얽은 집이며, 우물이나 냇물을 긷자면 한참 지게질을 해야 하는데, 넉넉한 마음으로 따스하게 노래하는 나요 너이며 우리입니다.


  한영수 님은 ‘가난’을 찍지 않습니다. 한영수 님은 ‘꾀죄죄한 모습’을 찍지 않습니다. 그예 내 모습을 찍고 네 모습을 찍으며 우리 모습을 찍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거나 추억으로 되새길 모습이 아니라,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사람들이 저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씩하게 하루를 짓던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일에 치여서 고단하게 등짐을 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일하다가 지쳐서 아무 데나 지게를 세우고 꾸벅꾸벅 졸 수 있습니다. 학교 모자를 눌러쓰고 양담배를 팔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뜻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는 일본책이나 서양책을 두 손에 쥐고 들고 다니면서 팔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대통령 이름을 따지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생각합니다. 삶을 짓는 사람들은 늘 내 둘레 이웃을 헤아리면서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돈이 있기에 두레를 하지 않아요. 살림이 가멸차기에 품앗이를 하지 않아요.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는 숨결이기에 두레도 하고 품앗이도 합니다.





  1950년대에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하던 여러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나 ‘한겨레’로 여겨서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요? 1980년대를 지나고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사진기를 손에 움켜쥐고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하고 이웃이 되어 어떤 삶을 사진으로 찍는 하루를 누릴까요?


  2014년에 새롭게 나온 한영수 님 사진책 《서울, 모던 타임즈》(한스그라픽,2014)는 오늘 이곳에 선 우리 모습을 되새기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나간 1950∼60년대를 보여주려는 사진이 아닙니다. 가볍게 이 사진책을 바라본다면 ‘지나간 서울 모습’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사진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진기를 쥔 사람’이 ‘오늘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서 이웃을 바라보느냐’ 하는 눈길하고 마음하고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2015년을 사는 우리라고 한다면, ‘2015년 오늘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나(사진가)하고 누가 이웃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하며, 손을 맞잡고 함께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구경하는 눈길’로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어깨동무하는 손길’일 때에 사진을 찍습니다. 구경하는 눈길이라면 예술을 하거나 문화를 하거나 기록을 할 수는 있겠지요. ‘사진찍기·사진읽기’는 언제나 어깨동무하는 손길이자 마음길입니다. 내가 너를 찍든 네가 나를 찍든, 우리가 함께 ‘사진을 한다’고 할 적에는 예술 작품을 빚으려고 하는 몸짓이 아닙니다. 서로 어떤 삶이고 어떤 사랑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똑바로 마주하면서 바라보고 알려고 하는 몸짓일 때에 비로소 ‘사진을 한다’고 말할 만합니다.




  삶을 보기에 삶을 찍고, 삶을 찍기에 다시 삶을 봅니다. 삶을 껴안기에 삶을 읽고, 삶을 읽으면서 새롭게 삶을 껴안습니다.


  1987년에 나온 사진책 《삶》은 2014년에 《서울, 모던 타임즈》라는 새 옷을 입는데, ‘서울’이나 ‘오늘날(모던 타임즈)’이라고 하는 이름이란 바로 사진가 한영수 님이 스스로 어떤 넋이요 숨결인가를 늘 찬찬히 헤아렸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양복쟁이도, 호텔보이도, 등짐꾼도, 길거리 담배장수 아이도, 젖을 물리는 어머니도, 빨래터 어머니도, 한강 모래밭을 양산 쓰고 걷는 아가씨도,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이면서 바로 나이고 우리 어버이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찍는 사진하고, ‘다큐멘터리 기록을 하려는 작가’가 찍는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삶을 사랑하는 수수한 사람이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이웃하고, 다큐멘터리 기록을 하려고 문예기금을 받은 작가가 찾아가는 외딴 마을에서 만나는 시골사람이나 변두리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이웃을 이웃으로서 찍은 사진하고, 먼발치 변두리 사람을 구경하면서 찍은 사진은 참으로 다릅니다.


  서울에서도, 서울 아닌 도시에서도, 이 나라 모든 시골에서도, 우리 삶을 우리가 스스로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 있기를 빕니다. 전문작가 손을 빌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어떤 사진기로든(손전화 사진기이든 디지털 사진기이든) 즐겁게 찍을 수 있기를 빕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서울에서 서울을 찍어도 되고, 대구에서 대구를 찍어도 되며, 대전에서 대전을 찍어도 됩니다. 아니, 저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 마을’하고 ‘내 이웃’하고 ‘내 보금자리’를 찍으면 됩니다. 서울을 찍기에 값있지 않고, 숲이나 시골을 찍기에 뜻있지 않습니다. 사랑 어린 눈길로 바라보면서 따스한 손길로 어깨동무할 적에 비로소 ‘사진이라는 이름을 기쁘게 붙일 이야기꽃’이 피어날 수 있습니다.


  전문가나 예술가가 기록해 주어야 남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서 문득문득 한 장씩 찍을 적에 오래도록 이야깃감이 되는 사진입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붙임글 (한영수문화재단 페이스북에 나온 자료에서 옮김)

 www.facebook.com/hanyoungsoofoundation)


“전쟁 후 나의 관심은 어떤 사람을 그의 주어진 환경에서 포착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 후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사조도 포탄의 연기가 가시지 않은 황폐함을 구석구석 보여주는 보도성이 강한, 리얼리즘의 경향이 만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외국에서 수입되었던 영화로 ‘길’ 이라던가 ‘지붕’ 같은 것이 기억되는데 전후의 삭막함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짙은 휴머니티를 다루었습니다.


  6·25를 겪고난 우리에게도 여러곳에 전쟁의 상처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포탄 껍질로 되어있는 굴뚝이라던가, G.I 의 맥주 깡통을 이어서 만든 지붕, 군복을 염색해 입은 찌들은 얼굴은 나의 초점 대상이었습니다. 사진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진 자체가 현상된 결과이고, 또 그 가시적 효과를 더 강조하기 위해 기술적인 처리를 연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의미가 더 빨리 마음을 울린다는 일입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소녀가 아름다울 수는 없지요. 그러나 앵글의 각도에 따라 그 소녀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남루함 속에서 풍겨 나온다면 그것은 성공한 사진입니다. 자신의 경험, 인상, 꿈에 대한 통로를 영상을 통해 만들어 냅니다. 나는 이것을 개성 표현과 함께 시도해 보려고 어떤 기법이나 혹은 어떤 진귀한 순간이라도 그저 지나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 표현이 둔해서 얘기하는 도중이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표정이 굳어져 원하던 앵글을 놓치고 말지만 시장 바닥이나 청계천 군복 염색하는 곳에서 여념없이 일하는 사람들 속의 무심함을찍는 재미로 사진에 깊숙이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1978년 6월1일 통권 16호에서








이달의 사락 h*******e 2015.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가 커온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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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지난 1990년에 구입했다. 그러고보니 벌써 세월이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 초판이 나온 책을 지금까지 두고두고 읽고 있다. 나도 그러고보니 외가쪽으로는 3대째 서울에 살았다. 결혼과 함께 경기도 신도시에 살지만, 서울에 대한 애정은 더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은 지난 서울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어효선 선생님의 대단한 기억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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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지난 1990년에 구입했다.

그러고보니 벌써 세월이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 초판이 나온 책을 지금까지 두고두고 읽고 있다.

나도 그러고보니 외가쪽으로는 3대째 서울에 살았다.

결혼과 함께 경기도 신도시에 살지만, 서울에 대한 애정은

더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은 지난 서울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어효선 선생님의 대단한 기억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한영수 선생님의 사진들도 이 책의 이해를 한층 돕는다.

서문을 써주신 언론인 겸 문학인이셨던 유경환 선생님께는

대학 때 가르침도 받았는데, 이렇게 다시 뵈니 감회가 새롭다.

[내가 자란 서울]은 서울토박이신 아동문학가 어효선 선생님의

자전적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근세 서울에서 성장한 사람, 외지에서

온 사람 모두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수도 서울 600년을 맞이하여 이만큼 근세기의 서울을 따뜻하고 포근한

시선으로 그린 책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t*******d 2008.0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