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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과 철학을 동시에 추구했던 중세의 오랜 기간 동안 많은 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중 탁월한 방법을 사용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한 사람들이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존재론적 증명은 안셀무스가 『프로스로기온(Proslogion)』이라는 책에서 처음 소개한 것으로 신의 완전함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도출해 내는 방법이다. 안셀무스는 다음과 같이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 심지어 바보도 우리의 관념에서뿐 아니라 실재에 있어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또한 동의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보다 실재하는 것이 더 위대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더 위대한 것은 실재해야 한다. 그의 복잡한 논증을 간략하게 만들면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이 될 것이다.
대전제 : 완전한 존재는 마음속에서뿐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존재해야만 한다. 소전제 : 신은 완전하다. 결론 : 따라서 신은 마음속에서뿐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존재해야만 한다.” (35-36쪽)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셀무스와 다른 방식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신 존재를 증명하였는데 이는 “다섯 가지의 길”이라 불린다. 첫째는, 운동이라는 개념으로 증명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많은 것들은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운동하는 것은 없다. 가령, 축구공을 움직이려면 발로 차야 한다. 그리고 발이 움직이려면 근육의 조절이 필요하다. 근육을 조절하려면 뇌의 명령이 필요하다. 뇌의 명령은 또다른 원인에 기인한다. 이런 식으로 어떤 운동이든 그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데 이 원인을 쫓아가는 작업은 끝없이 계속되지 않는다. 최초의 원인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작용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현대에도 기독교인들이 많이 쓰는 방법인데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유를 만들려면 젖소가 있어야 하고 동상을 만들려면 조각가가 있어야 한다. 이 세계가 있으려면 그것을 만든 존재, 즉 신이 있어야 한다.
셋째 방법은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구분으로 시작한다. 세상에는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이 존재한다. 우연이란 가능성의 세계이고, 필연은 확실함의 세계이다. 그런데 세상은 우연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즉, 가능한 것들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연적인 것들은 필연적인 것들에 기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것들은 다른 필연적인 것들에서 생기거나 혹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필연에서 필연이 발생하는 것은 중간 과정일 뿐이고, 원래 있던 것에서 필연이 생겨나는 과정이 바로 태초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원래부터 있던 것이 바로 신이 된다.
넷째 방법은 완전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어떤 것은 덜 선하고 어떤 것은 더 선하다는 사실을 안다. 마찬가지로 어떤 것은 덜 완전하고 어떤 것은 더 완전하다. 그런데 이 선함과 완전함의 차이는 가장 참되고 가장 고귀하며 최고의 존재를 얼마냐 닮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따라서 완전성의 정도가 가장 높은 완전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 복사할 때 원본이 없으면 복사본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가장 완전한 존재가 없다면 그것을 닮은 덜 완전한 존재들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완전한 존재인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방법은 규칙성이라는 개념에 의존한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 우주에는 규칙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자연이 가지고 있는 규칙성과 균형은 너무도 완벽해서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모든 존재들이 자연적인 목적을 향하도록 지도하면서도 그 각각의 목적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도록 총체적인 계획을 하는 지성적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 최고의 완벽한 지성을 가진 존재가 바로 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