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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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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인 오스틴이 스무 살 때 쓴 소설로,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첫인상’이라는 제목이었다고 한다. 그 제목으로는 출판되지 않고 약 15년 후 지금의 제목인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으로 출판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오랜 고전인 만큼, 위와 같은 정보를 비롯해 줄거리, 등장인물, 사회적인 배경 등에 대해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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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인 오스틴이 스무 살 때 쓴 소설로,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첫인상이라는 제목이었다고 한다. 그 제목으로는 출판되지 않고 약 15년 후 지금의 제목인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으로 출판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오랜 고전인 만큼, 위와 같은 정보를 비롯해 줄거리, 등장인물, 사회적인 배경 등에 대해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서평에서 줄거리는 생략하겠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정도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다.

 

“17~18세기 영국을 무대로 여성의 결혼과 오해와 편견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엇갈림을 그린 연애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그곳, 그 시대의 상황과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배우자의 선택 조건, 기준이 달라진 점도 분명 있지만, 여전히 공통되는 점 또한 있다. 외모지상주의, 동안 열풍 등의 말이 마치 오늘날 일어난 사회적 문제 인듯 생각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아내나 남편의 기준,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외모라는 점이 곳곳에 나타난다. 경제적인 능력이 배우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점 또한 그렇다. 그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없던 시기이므로 남편의 경제 능력이 곧 그 여자의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했을 것이다. 지금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지만 그럼에도 배우자의 경제능력은 단연코 1위일 것이다.

 

어떤 내용의 서평을 쓸 것인가 고민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결혼을 둘러싼 여자와 남자 이야기, 그들의 정밀한 묘사, 심리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서평을 미룬 채 다른 책들을 만나며 일상을 보내다 이 책의 서평을 마주한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글자다.

 

내 행동은 얼마나 비열한 것이었을까!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언니에게 뽐내면서 관대한 언니의 솔직함을 비웃고 공연히 불신과 허영에 만족한 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부끄러운 일이냐! 아니 마땅하지, 마땅한 일이야. 사랑에 흠뻑 빠졌다 해도 그 이상 어리석고 우둔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허영, 바로 그 허영이 과오를 저지르게 했다. 한 사람에 대한 편파적인 호감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멸시에는 화를 내며, 결국 나는 처음 사귈 때부터 편견과 무지를 사모한 셈이고 두 사람의 일에 대해 이미 분별력을 잃고 있었다. 이 순간까지 나는 나 자신을 전연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p206~207)

 

위의 문장은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가 부르짖은 말이다. 첫인상이 성실하고 잘생기고 믿음직스러워 보였기에 그에 대해 그런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라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다.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가 무뚝뚝하고 상냥하지도 않았기에 분명 내면도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했다. 하지만 겉모습과 그들의 내면은 일치하지 않았다. 편견이었다. 또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늘 옳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때론 가족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기도 했다.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첫인상을 통해 편견을 품고 편견에 따라 오만인줄도 모르며 오만한 생각을 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울부짖음이 위의 문장이다. 그녀의 울부짖음 안에서 나는 나를 만나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나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보다 엘리자베스의 저 오만과 편견에 대한 울부짖음이 더 오랫동안 남는다. ‘남았다라는 과거형이 아니다. ‘남는다의 현재형이다.

 

가끔 나는 나의 오만과 편견을 느낀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 자신의 오만에 대해 어쩌면 더 무지했을지도 모른다.


겸손한 척하는 것보다 더 사람을 속이는 것은 없을 거에요.(p52)”

 

겸손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겸손이 아닌 형식적인 말이었다면 그 또한 오만이다. 겉으로 오만한 태도로 거드름을 피우는 것보다 겸손한 얼굴로 겸손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가 어떤 면에서는 더 오만한 자가 아닐까 싶다. 오만 그 자체만이 아닌 거짓이라는 가면까지 썼으니까.

 

청춘의 문장들+>의 김연수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자 불가능한 일이에요. 독서를 통해서 저는 나만을 간신히 이해할 뿐이에요. 책에 저를 맞추든 책을 제게 맞추든, 틈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딱 붙은 상태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독서의 자세입니다.(<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14, p184)”

 

누군가를 이해했다는 믿음 또한 오만함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가 아니라 불가능이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이해했다고 믿으며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오만함을 버리기 위해서 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여울은 그녀의 책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만과 편견은, 자존심과 자격지심은, 사랑에 빠지기 전에나 누릴 수 있는 감정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중략) 자존심을 챙길 여유도, 자격지심을 돌볼 계제도 없다. 오만을 가꾸고 편견을 관리할 시간도 당연히 없다. 사랑은 내게 있는지도 몰랐던 내 날개의 빛깔을 내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천변만화한 빛깔로 매 순간 반짝이는 내 안의 날개를 세상 밖으로 한껏 펼치게 만드는, 오직 나와 너사이에서만 유효한 해방의 기술이기 때문이다.(<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자음과모음, 2012, p153~154)”

 

오만과 편견은 사랑 앞에서 무력해진다. 이성의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사랑이라는 폭풍 속에서 오만도 편견도 모두 숨을 곳을 잃게 된다. 정여울 그녀의 말은 옳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하기 때문에 오만도 편견도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이 책 속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떤 형태의 애정이든 간에 거기에는 허영과 감사의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p25)”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어쩌면 오만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사랑 안에 오만과 더불어 감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당연하지 않기에 나는 오만할 수 없다.

 

엄격한 자기 부정이 없다면 인간은 쉬이 오만해집니다. 또한 절대적 자기 긍정이 없으면 인간은 쉬이 비굴해집니다.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과 자기 긍정이 모두 필요합니다.(아이다 미쓰오의 덕분에>, 리수, 2003, p97)”

 

위의 문장은 아이다 미쓰오의 덕분에라는 책 속의 한 구절이다. 인간은 쉽게 오만해질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자신의 오만을 깨닫지 못한 채 사는 게 어쩌면 더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만에 대한 억제가 지나치면 비굴해진다. 오만함과 비굴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엄격한 자기 부정절대적 자기 긍정이라고 아이다 미쓰오는 말한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나의 오만과 편견을 되돌아보게 된다. 엄마가 아니기에 엄마의 마음도 모르면서 언니와 사춘기 조카가 벌이는 전쟁에서 나도 모르게 나의 잣대로 판단을 내리는 나. 그런 나를 보며 내가 그들을 이해했다는 오만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겸손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얼굴로 나를 화장하지는 않았는지 나에게 묻는다. 오만과 편견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Y*******U 2016.05.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