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나 책 감상은 나에겐 단순한 취미일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고 나서 재미있었어! 한 마디만 하면 그만이다. 작품들이 있는데 이 작품에 오랫만에 보는 그런 작품이었다. 소년 선데이에서 주간 연재된 총 10권 분량의 코믹스로, 원작은 이사카 고타로의 [마왕] 이라는 소설이다.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몇 권 더 읽어보았는데, 사회적 메세지를 적절한 소재로 활용하여 여기 저기 복선으로 깔고 끝까지 전체 줄기를 잘 보여주지 않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깔아내는 복선이 간혹 길어서 지루한 적도 있었지만(모던 타임즈) (그래스호퍼)에는 굉장히 즐겁다. 결말에선 짜릿함이 느껴졌으니(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오랫만에 괜찮은 작가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이는 성향은 아니지만 끈적하기까지 한 형제애 (마왕, 중력삐에로)를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코믹스 이야기로 돌아와서 마왕 쥬브나일 리믹스는 쥬브나일(청소년을 위한)이란 부제에 맞게 회사원이었던 주인공 안도 형제를 고등학생으로 바꾸고 리믹스라는 단어에 걸맞게 작가의 다른 작품들(그래스호퍼, 모던 타임즈, 사신 치바 등)에 잔뜩 사 보게 만드는 위력까지 지녔다.
잡설이 길었는데, 작품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형 안도편, 2부가 동생 준야편이다. 내용은 당연히 연결된다. 그것도 소년만화에선 까다로워질 수 있는 구성인데 어색함 없이 잘 살렸다. 슈베르트의 가곡인 [마왕]이다. 두려움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아이는 지금의 나다. 라는 대사가 놀라웠다. 안도는 이누카이가 만든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끼고 휩쓸리지 않으려 하지만 사람들의 불만을 읽어내고 안도는 무력한 아이처럼 마왕의 존재를 혼자 깨닫고 외치고 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모두들 이누카이에 대해 열광하고 있을때 휩쓸리지 않고 똑바로 상황을 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상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유난히 어떤 것에 대해서든 깊이 생각하는 버릇 을 가진 주인공 안도가 오로지 [생각한다] 는 것만을 무기삼아 특수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과 싸우는 긴박감이 아슬아슬하고 가슴을 조이게 만들었다. 체는 주인공이 직접 붙였다)자신이 생각하는 대사를 남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하는 능력이다. 이 한가지 능력만으로 직접적으로 무력을 쓰는 각종 인물들과 싸워야 하니 보는 사람이 아슬아슬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소년 만화인 것을 감안할때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능력이었다면 뻔한 전개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이 특이한 능력으로 소년만화를 만들고자 한 순간 정말 특이한 작품이 탄생되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뒷세계의 킬러들 (그래스호퍼)까지 등장해서 위화감없이 잘 섞여 스토리를 진행한 것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또한 이 표현은 소설에서만 등장했던것 같지만 [입에 떠올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뻔한] '파시즘' 이라는 단어에 대해 굉장히 단순하게 잘 표현한 느낌이다. 이 단순하다는 건 절대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명확하다는 뜻에서 쓴 표현이다. 모두 한 방향만 보게 되는 군중의 무서움에 대해 표현할 때 파시즘이란 단어를 이용한다. 과연 살면서 한번도 파시즘을 느껴보거나 비슷한 상황에 휩쓸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 정보가 쉽게 유포되고 왜곡되며 감정이 쉽게 고양되는 인터넷 제반의 세상에선 더욱 더 그렇다.
원작과 동일 또는 그 이상의 것을 그려낸 만화가에 대한 놀라움이다. 원작을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더더욱 그렇겠지만 원작 파괴 또는 상상했던것과 다른 이미지의 캐릭터가 나온 경우 그 작품이 싫어지기 마련이다. 소설이 유명한 편이니 그렇게 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진 않지만 그림 실력은 제쳐두고 (사실 그림에 대해서는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라도 연출이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점은 다들 동의할 것이다. 이게 데뷔작이라니 정말 다시 말하지만 놀라울 따름이다. 불러왔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부분의 연출을 직접 봤을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게다가 이후에 1부에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2부로 내달리더니 끝까지 거침없이 질주하면서 끝났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연출과 격한 감정 표현에 머리가 얼얼해질 지경이다. 비유가 이상하겠지만 쿨하게 무게잡고 허세를 떨면서 어디서 주워 들은 것 같은 그럴듯한 대사를 떠들어 대는(요즘 유행하는 단어인)중2병 소재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간질간질한 때벽을 한번에 허물어 준 듯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시원하게 사우나에서 땀을 뺀 기분이라면 이상하려나? 아니면 좀 많이 아플 정도로 두들겨주는 맛사지를받은 기분?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 맛보면 푹 빠져들게 되는 그런 연출력이다. 메세지에 있어서도 자세히 보면 어디서 애들이 주워듣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내뱉는 그런 대사들인데 이 작품에선 절대 그렇지 않다.
하여간 만약 아직 안 읽어봤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만화책은 가끔 권당 몇 천원이라는 가격이 미안해질 정도로 멋진 뭔가를 나에게 줘서 사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