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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톰스 캐빈 - 해리엇 비처 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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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세계명작전집 중의 한 권이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고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당연히 다이제스트본이었으니 그 자세한 정황이라든가 사건의 묘사는 불가능했겠지만, 사람을 짓밟고 억압하는 사회의 비정함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 이후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방문한 적은 없이 조용히 잊혀졌다. 그러다가 30년 만에 다시 만난 <엉클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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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세계명작전집 중의 한 권이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고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당연히 다이제스트본이었으니 그 자세한 정황이라든가 사건의 묘사는 불가능했겠지만, 사람을 짓밟고 억압하는 사회의 비정함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 이후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방문한 적은 없이 조용히 잊혀졌다.

그러다가 30년 만에 다시 만난 <엉클 톰스 캐빈> (2010, 해리엇 비처 스토 지음, 작가정신 펴냄)은 700쪽이 넘는 완역본에다 크리스티앙 하인리히의 수채화 그림이 곁들여져, 책 안에서의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내게 보여주었다.

 

우리의 주인공 톰 아저씨는 질곡 많은 인생에서 당시 노예가 살아냈던 다양한 삶의 행태를 겪는다.

처음 그가 가족과 함께 살며 주인의 신임을 받았던 셸비 집에서의 생활은 '꽃이 만발한 들판 같은 안락과 탐닉'으로 설명된다. 그러다가 셸비의 사업 부진으로 노예상인에게 팔리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과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을 한다. 다행히 팔려가는 배 안에서 에반젤린을 구해준 공으로 세인트클레어 집에 팔린 톰은 '햇빛이 비치는 섬에서 너그러운 사람들이 그의 쇠사슬을 꽃으로 가려주는' (635쪽) 생활을 했으나, 주인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노예들의 지옥인 강 남쪽으로 팔려가 '지상의 마지막 희망의 빛이 밤의 어둠 속에서 꺼지는 것'(636쪽)을 본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거룩한 죽음을 맞는다.

 

이 책에는 톰 외에도 여러 흑인 노예들이 등장하여 당시 노예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부모와 아이가 따로 팔리고, 주인의 욕정의 대상이 되어 낳은 혼혈아 역시 노예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사사로이 노예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재산을 착취하는 것도 합법이었던 세상이라니 흑인 노예라는 벗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가 얼마나 암흑 같았을까. 같은 흑인임에도 다른 흑인을 짓밟는 삼보와 킴보처럼 타락하지 않고 동족을 지키며 믿음을 지켰던 톰 아저씨로 인해, '엉클 톰스 캐빈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자유'의 대명사가 된다.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난 톰 아저씨는 이제 다양한 모습으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동기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 불법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로, 어쩌면 돈 때문에 멀리 한국 농촌에 시집을 온 아시안 아가씨들로, 미국에 불법 입국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남미인들로 말이다.

그들이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대우받는 그날까지 엉클 톰스 캐빈은 그 자리에 영원할 것이다. 

y*****9 2010.01.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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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스러운 노예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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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다. 4년간의 치열한 혈전은 단 몇줄로 요약 되어있었다. 전쟁은 4년이었지만 노예신분으로 살았던 이들에겐 고통의 세월이였을 텐데... 남북전쟁의 간단한 설명이 순간 낯설게 다가온다.   남북전쟁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도 같고, 오래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본 것도 같다. <엉클톰스캐빈>을 읽게 되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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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다.

4년간의 치열한 혈전은 단 몇줄로 요약 되어있었다.

전쟁은 4년이었지만 노예신분으로 살았던 이들에겐 고통의 세월이였을 텐데...

남북전쟁의 간단한 설명이 순간 낯설게 다가온다.

 

남북전쟁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도 같고, 오래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본 것도 같다.

<엉클톰스캐빈>을 읽게 되면 남북전쟁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친구님의 조언에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무려 700페이지라는 분량이 부담스러웠으나,그건 기우에 불과 했다.

사실,책 속에서 궁금했던 점은 '남북전쟁'이 발발한 원인 혹은 전쟁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우선이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후 알게 된 것은 이 책으로 인해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읽어도 충격적인데 1853년 당시에는 얼마나 더 충격적이었을까? 물론 지금의 충격과 당시의 충격은 서로 다른 시각이겠지만 말이다.

책 소개글에 보면 '현실이라 하기엔 너무 극적인 소설이라 하기엔 너무 인간적인'이란 표현이 있는데,이 책을 설명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상할 수 조차 혹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노예들의 힘겨운 삶을 읽어 내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요소들로 인해 그 힘겨움을 극복(?)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당시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이 책이 나온  시대가 19세기라고 전재하면 '종교적'인 색깔의 등장이 그닥 부담스럽지 않을텐데..노예제도문제의 해결 중심에 종교적 심판 혹은 종교적 사고를 원인과 해결의 근간으로 두고 있는 듯 해서 살짝 버거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노예제도의 저주'라는 말을 뼈저리게 공감하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처럼 이야기는 흐르고 있으나 주변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만났고 이야기 들은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그런데,저주스러운 노예제도는 언제즘 완전한 종식을 고하게 될까?

표면적으로는 노예제도는 해방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이들은 대부분 흑인이고,여전히 미국정부는 전쟁을 가난한 나라에 일으키고,내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애썼던 용산참사자들은 도시의 테러리스트로 둔갑을 했으며...

노예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저주스러운 노예제도'의 흔적은 또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21세기를 지배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떨쳐 낼 수 가 없었다.

w*******i 2010.01.14. 신고 공감 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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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톰스 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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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94페이지, 25줄, 30자.책 자체는 튼튼하게 양장으로 제본되어 있고, 종이질도 좋은 편이지만 종이에 비해 좁은 편성과, 표준어/맞춤법에 어긋난 용어의 남발, 주석의 말미에의 배치, 그리고 본문과 동떨어진 삽화들 때문에 편집/제본 점수를 깍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삽화는 본문을 읽는 것을 방해할 수준입니다. 만약 재판을 낸다면 삽화를 몽땅 없애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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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694페이지, 25줄, 30자.

책 자체는 튼튼하게 양장으로 제본되어 있고, 종이질도 좋은 편이지만 종이에 비해 좁은 편성과, 표준어/맞춤법에 어긋난 용어의 남발, 주석의 말미에의 배치, 그리고 본문과 동떨어진 삽화들 때문에 편집/제본 점수를 깍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삽화는 본문을 읽는 것을 방해할 수준입니다. 만약 재판을 낸다면 삽화를 몽땅 없애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작가의 이야기 진행 방법이 관찰자 비슷하기 때문에 한 챕터 내에 다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런 곳에서는 문단을 달리하여 편성하는 것이 독서를 돕는 방향이 될 것입니다. 줄거리는 대부분 아는 것이므로(아닌가요?) 생략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저도 이제까지 완역된 것은 읽어본 기억이 없으므로 그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원래 썼던 그대로 만연체로 이야기가 진행합니다. 그 점에서 어쩌면 발췌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세기 중엽에 쓰여진 책입니다. 당시의 적지 않은 책이 이런 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읽기에 즐거운 것도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이야기 내내 같은 성격을 유지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작가가 필요한 대로 달리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적지않은 대목에서 등장인물들은 대화를 하면서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고, 사상을 설파하기도 합니다. 그 면으로 보면 전체 줄거리보단 세세한 대목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완역본이 더 낫다는 주장이 힘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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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8 2011.04.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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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눈썹이 검은지 갈색인지 묻지 않고 불어준다."
""바람은 눈썹이 검은지 갈색인지 묻지 않고 불어준다."" 내용보기
아셰트 클래식 시리즈로 <엉클 톰스 캐빈>을 만났다.   프랑스 출판그룹 아셰트(Hachette)의 '아셰트 클래식 시리즈'는 클래식 문학의 원전을 완역해 독창적 일러스트를 곁들여 보여주는 시리즈다. <해저 2만리>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 된 이 책을 통해 '아셰트 클래식 시리즈'를 알게 되었는데, 아, 소장가치가 대단하다.   '원전을 완역하고, 작품의 배경이 된 19세기의
""바람은 눈썹이 검은지 갈색인지 묻지 않고 불어준다."" 내용보기

 

아셰트 클래식 시리즈로 <엉클 톰스 캐빈>을 만났다.

 

프랑스 출판그룹 아셰트(Hachette)의 '아셰트 클래식 시리즈'는 클래식 문학의 원전을 완역해 독창적 일러스트를 곁들여 보여주는 시리즈다.

<해저 2만리>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 된 이 책을 통해 '아셰트 클래식 시리즈'를 알게 되었는데, 아, 소장가치가 대단하다.

 

'원전을 완역하고, 작품의 배경이 된 19세기의 노예무역과 노예들의 생활상, 노예제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까지 묘사한 일러스트를 더한 프랑스 최고 출판그룹 아셰트의 역작!'

완역된 원전을 읽는 맛 뿐 아니라,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모습을 생생한 일러스트를 통해 만날 수 있으니,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어렸을 때 어린이 문고로 <엉클톰스캐빈>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었다.

아마 읽고 헷갈리거나, 읽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읽었다고 착각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누가 그자를 내 주인으로 만들었지? 난 그게 알고 싶어!"

 

생각해보니 노예 제도에 관한 책을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노예 제도의 실상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면서, 나도 내내 그들과 같은 의문을 품었다.

누가 그들에게 그들 삶의 주인을 만들어 준 거지?

 

늘 들어왔지.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들 삶의 주인은, 말 그대로 그들의 소유권을 지닌 '주인'이었다. 그들은 결혼도 할 수 없고, 밤낮으로 주인을 위해 일해야 했으며, 주인에 의해 피붙이와 떨어져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으며, 자유를 찾아 나섰다가 '인간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누가, 왜, 그들을 '사람'이 아닌 '검둥이 노예'로 만든 거지?

누가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백인이 흘리는 눈물과 다르다고 말하는 거지?

 

이 책에서도 그 질문에 대한 그들(주인들)의 답변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그들이 노예 제도의 근거로 들고 있는 건, 세상에나, 성경이었다.

성경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성경에 정말 흑인들은 백인들의 종이 되어 고생을 하라는 문장이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책에 인용된 몇 구절에서는 '검은 땅'이니 '저주'니 '종'이니 하는 단어들이 정말 나왔다.(특히 아이티는 구제할 수 없는 저주 받은 땅,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벌어진 아이티 참사 때문에, 아이티라는 단어는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그 옛날 유대인이 예수를 부정해서라고 했던가?

그럼 흑인이 백인의 노예가 되어 그런 참혹함을 겪어야 했던 것도, 예수에게 선을 베풀지 않아서란 말인가?

기독교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내가 경솔하게 뭐라 말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성경이 몹시 읽고 싶어졌다. 성경에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바람은 눈썹이 검은지 갈색인지 묻지 않고 불어준다."

 

아아, 톰 아저씨.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과 일화가 다 실제 이야기에 근거한 거라는데, 그렇다면 그 '톰 아저씨'야 말로 '예수'같은 사람이 아닐까.

자기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어야 하는 근거가 되어주고 있는 성경을 오히려 보물처럼 아끼면서 늘 하늘의 말을 듣기 위해 마음과 귀를 열어 두고, 자신의 믿음대로 실천하는 사람.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선이 아니면 행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오히려 신의 나라로 간다는 생각에 평온하고 평화스러워진 사람.

톰 아저씨의 신앙은, 내 마음도 살짝 움직일 뻔했다.

종교를 가진,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더욱 감동적인 소설일 거 같다.

(그런데 희한하다. 누군가는 성경을 근거로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누군가는 기독교인으로서 노예제도를 반대하니. 설마 그들의 성경은 서로 같지 않단 말인가?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 이런 의문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의 수수께끼다.)

 

 

어찌 되었든,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질문을 던져 준 책이었다.

톰과 에반젤린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모습에는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냥 '그 이야기 알아' '그 책 어렸을 때 읽어본 거 같애' 하고 지나치지 않고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제 밤이 거의 다 지나고 자유의 새벽별이 그들 앞에 밝게 떠올랐다. 자유! 얼마나 감격적인 말인가! 자유는 무엇인가? ……

조지에게 자유는 인간이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재할 권리였다. 품속의 아내를 아내라고 부를 권리였다. 그리고 아내를 무법적인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권리였다. 자식을 보호하고 교육할 권리였다. 자기 가정과 종교를 지키고 개성을 지니는 한편, 타인의 뜻에 굴복하지 않을 권리였다.(593)

 

(나는 미처 '권리'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지극히 당연한 그 '권리'를 갖기 위해, 자유를 찾아 나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나의 이 '권리'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이런 권리를 당연히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j******o 2010.0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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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책 엉클 톰스 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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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네댓 번 밖에 오지 않은 버스를 타야만 읍내에 갈 수 있던 시골에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할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흑인’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느껴 본 적이 없다. 내게 그들은 교육과정 속의 한 인종에 불과했고 백인 주연의 영화 속에 무수히 많은 풀이나 나무처럼 당연하게 늘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뿌리’라는 텔레비전 영화를 보면서 ‘흑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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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네댓 번 밖에 오지 않은 버스를 타야만 읍내에 갈 수 있던 시골에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할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흑인’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느껴 본 적이 없다. 내게 그들은 교육과정 속의 한 인종에 불과했고 백인 주연의 영화 속에 무수히 많은 풀이나 나무처럼 당연하게 늘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뿌리’라는 텔레비전 영화를 보면서 ‘흑인’도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 던져진 백인들의 올가미에 걸려 낯선 땅에 끌려와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서 팔려 노예로 사는 살던 흑인들이 오늘의 자유를 찾고 오늘의 삶을 살 수 있기까지의 삶의 기록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2002년 대한민국 전역이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때 EBS 방송에서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다시 방영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보았던 것이 주인공 킨타쿤테가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와 노예 생활을 시작해서 그가 자유를 찾기까지였던 데 비하여 이번엔 킨타쿤테가 잡혀 오던 때부터 킨타쿤데의 첫 자손들이 자유인으로 정착하기까지를 다루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느꼈던 감동은 거의 2주 동안 방영 되던 것을 매 회 녹화버튼을 눌러가며 시청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감동을 같이 느끼고 싶은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자녀가 보기에는 좀 부적절한 장면도 있었던 지라 망설이면서도 설명을 하면서 함께 보았던 적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두호씨가 만화로 그린 <뿌리1,2>-산하 출판사-를 만났었고 아이들에게 보여 줄 책을 고르면서 나와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여 주려했다. 아이들에게 주기 위하여 먼저 읽기 시작했고 그중에 <엉클 톰스 캐빈>도 있었다.

노예 상인 해리스와 셀비가 노예를 거래 할 때 대화 속에서 노예 상인의 눈에 노예는 거래의 대상일뿐 사람이 아니다. 거래를 할 때는 상품의 외적인 상태를 보지 감정과 같은 내적인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노예를 사고파는 행위는 이쪽에 있던 물건을 필요에 저쪽으로 옮기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노예상인 해리스를 통한 일반적인 노예에 대한 시각을 보여주면서도 셀비 집안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남부지방의 모든 사람들이 노예들을 물건 취급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중동부의 켄터키주는 노예제를 용인하는 주다. 셀비 집안은 노예를 부리지만 노예들을 비교적 잘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집안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충직한 노예 톰과 엘리자의 어린 아들 해리를 노예상인에게 판다. 어린 아들이 팔렸다는 것을 알게 된 엘리자는 아들과 함께 도망을 감행하고 톰은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떠나 노예 상인을 따라 간다. 이야기의 큰 축은 도망치는 노예 엘리자와 시대와 상황에 순응하며 팔려가는 톰의 모습을 통하여 미국 사회의 노예제 전반을 보여 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노예제도가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노예를 사고, 노예를 부리고는 사람들,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흑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

도주 노예 단속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눈앞에 어려움에 빠진 노예들이 나타나자 그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기 모순적 행태를 보여고 있다.

그런 가운데 톰의 두 번째 주인집 에반젤린이 톰을 대하는 방식은 눈여겨 볼만하다.

완역본이란 말에 현혹 되어 겁 없이 집어든 아셰트 클래식 시리즈2 <엉클 톰스 캐빈>은 많은 생각에 페이지를 굉장히 천천히 넘기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노예제를 반대하고 한 편에서는 노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찬반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가운데 1850년 남부 노예주에서 북부 자유주로 탈출에 성공한 노예라 할지라도 도와주어서는 아니 되며, 발견 시 다시 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도주 노예 단속법’이 발표 된다. 아직까지 노예제는 현존하고 도주 노예는 발생하고 도주 노예를 돕는 사람들과 도주 노예를 잡는 인간 사냥업이 성행하고 있는 1853년 <엉클 톰스 캐빈>은 발표가 된다. 당시 사회 현실에 비춰봤을 때 작품은 메가톤급 핵폭탄이었을 것이다.

해리스를 따라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톰의 여정 속 삽화를 보면서 나는 줄리어스 레스터의 <자유의 길>과 필라 폭스의 <춤추는 노예들>이 생각났다. <자유의 길>에는 아프리카에서 집힌 흑인들이 노예선에 짐짝 실리듯 실리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노동의 의무만 주어져 있는 노예 생활의 비참함, 감정은 깡그리 무시당한 채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게 해 주는 작품이다. <춤추는 노예들>에 보면 노예 무역선에서 주기적으로 노예들에게 춤을 추게 하는데 노예들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좀 더 상품성 있는 노예를 만들기 위해 운동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엉클 톰스 캐빈>은 똑 떨어진 작품이 아니라<뿌리>, <자유의 길>,<춤추는 노예들>의 연장선이었고 눈으로, 스토리를 따라 읽는 책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책이었다.

c********k 2010.0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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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톰스 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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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났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예들은 인종때문에 노예가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정확하게 어떻게 흑인노예제가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농장을 경영하면서, 싼 노동력을 찾고,아프리카 흑인들을 끌고 와 노예로 삼았다고 본 기억은 난다.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나 혹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노예제도는 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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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났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예들은 인종때문에 노예가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정확하게 어떻게 흑인노예제가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농장을 경영하면서, 싼 노동력을 찾고,아프리카 흑인들을 끌고 와 노예로

삼았다고 본 기억은 난다.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나 혹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노예제도는 예전 봉건시대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제도이고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제도이기때문에 그들도 인간이고 다를바 없다는 생각으로 무덤덤하게

봐왔지만, 엉클 톰스 캐빈을 읽으면서 기독교와 융합된 노예제도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배경때문이라서,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상황때문인지

몰라도 기독교에 대한 얘기가 50%,노예제의 잔인함,제도의 불합리함이 50%

정도 차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독교정신이 많이 나온다.

망나니같은 톱스도 기독교를 통해 숙녀가 되는 것처럼 인간적이고 다른 흑인

의 배경엔 기독교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약간 지금 시대의 내가 봤을때

거부감이었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은 책 말머리에 작가의 말에서도

나왔듯이 기독교전파가 목적이 아니긴하지만.

톰의 순교를 통해 얻은 자유와 조지의 교육과 새 나라를 통한 자유..

종교가 언제 탄생되었는지는 알수없지만, 제도는 인간이 만든것이고

종교의 정신을 말하는 자도 인간이고, 종교의말씀을 기록한자도 인간이고,

기록과 설파를 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종교의 본래 순수한 정신을 떠나서, 인간이 만든 제도를 합리화하는데

종교를 인간들이 결국 바꿔온것이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책에서는 노예에게 친절한 백인들은 기독교인이고 악독한 농장주는

비기독교인이긴하지만..

꼭 이 시기의 미국뿐이 아니라 지금을 생각해봐도 교육과 문화, 종교가

사람들의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있고,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새 그냥 노예들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힘들어서 시대의 모순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게 약간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이 책에서는 당시의 시대를 알수있는 많은 삽화들이 들어있고

코멘트들이 달려있는데, 모든 삽화를 자세히 들여다볼순 없었지만, 그 시대

노예들을 다루는 모습엔 절로 인상이 찌뿌려졌다.

지나간 제도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선 모습을 바꿔 노예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편적인 시선으로 좀 바꿔서 봐도 좋을것같다.

 

b*******2 2010.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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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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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나 "노예'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다. 조선시대에는 노비 제도가 존재했고 노비 제도는 세습이였다. 어떻게해도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굴레에 매여서 이 세상을 원망하던 사람이 한둘이였을까. 모든 것에 앞서간다는 미국 역시 노예제도가 존재했다. 물건에서 사람으로 주체가 바뀌었을 뿐, 사고 파는 시장원리는 똑같은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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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나 "노예'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다. 조선시대에는 노비 제도가 존재했고 노비 제도는 세습이였다. 어떻게해도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굴레에 매여서 이 세상을 원망하던 사람이 한둘이였을까. 모든 것에 앞서간다는 미국 역시 노예제도가 존재했다. 물건에서 사람으로 주체가 바뀌었을 뿐, 사고 파는 시장원리는 똑같은 노예 제도. 그 속에서 처절하게 짓밟힌건 단지 우리와 피부색이 다를뿐인 흑인들이였다.

 

얼마 전 '대지여 꿈을 노래하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남북 전쟁이 끝난 직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비로소 흑인들은 자유를 되찾지만 그것은 제도로만 그런 것일뿐,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자유로운 것은 아니였다. 그래서 주인공은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나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대지에서 희망을 찾아 비로소 삶을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되지만 '엉클 톰스 캐빈'에 나오는 수많은 노예들은 해피엔딩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 보장 받아야 할 노동시간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하루종일 혹사당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게다가 도망갔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더 비참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였다.

 

맺는말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사건들은 거의 다 실화이며 노예제도의 실상을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어떤 큰 굴곡없이 평이하게 흘러가는 듯한 이 소설은, 사실은 한 장 한 장 노예들의 눈물과 한숨을 그리면서 결코 평탄하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한 줄 한 줄에서 어느덧 내 자신의 모든 것을 이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1800년대의 노예제도는 끔찍하고 숨막히는 것이였다.

 

이 책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지만 대체로 두 가지 시선으로 나뉘어진다. 노예론을 옹호하지만 끔찍한 상황에 처한 노예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노예론 폐지에 열일 올리는 사람이지만 흑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성경에 근거해서 노예론을 찬성하는 자가 있는가하면, 성경에 근거해서 노예들을 구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노예제도가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리라.

 

톰 아저씨의 깊은 신앙을 바라보며 노예들의 생활에 가슴치던 나는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다 함께 평등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말하는 것이였으리라.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편의대로 멋대로 해석해서 노예들을 옭아맸다. 노예제도라 폐지되고 한참이나 지난 지금, 과연 노예제도가 현대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렸을때 가볍게 읽던 책이 아닌 완역판인 '엉클 톰스 캐빈'을 읽을 수 있었서 다행이였다. 그 당시 고통받던 노예들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머리에서 이해만 할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끌어안아 다시 한 번 내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끔찍한 제도가 부활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p******0 2010.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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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엉클 톰스 캐빈'은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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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제도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도 인간을 사유 재산으로 본다는 게 충격적이긴 하다. 어떻게 인간 고유의 가치를 사유화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노예를 다룬 이야기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니다. 학교에서야 그냥 지식으로 들어 넘기고 실제로 노예를 다룬 이야기는 영화 <뿌리>를 접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서구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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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제도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도 인간을 사유 재산으로 본다는 게 충격적이긴 하다. 어떻게 인간 고유의 가치를 사유화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노예를 다룬 이야기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니다. 학교에서야 그냥 지식으로 들어 넘기고 실제로 노예를 다룬 이야기는 영화 <뿌리>를 접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서구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엔 오랫동안 '노비제도'가 있었다. 어린 시절 <뿌리>를 보면서 과연 서양의 노예제도와 우리나라의 노비제도가 무엇이 다를까? 인간을 사유화하기는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나쁘기로는 서양의 그것이 나쁜 것일까? 우리나라 노비제도가 더 나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모르긴 해도 서양의 노예제도가 조금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서양은 적어도 자기 동족을 노예로 삼지는 않지 않으니까.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양반과 천민이 구분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천민중 대다수는 그렇게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랄하기로는 서양과 우리나라 중 어디가 더 악랄할까? 그때 내 옆에 누워 자던 언니는 그야 당연 서양이 더 악랄하지라고 대답했다. 그건 아마도 언니의 비논리적이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 막연한 애국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어찌 누가 감히 가늠해 볼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시대를 몸소 겪어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억압 받고, 착취 당한 것은상처 그 자체이므로 정도의 차이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나의 의문은 정말 우문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는가 보다. 아주 오래 전, <파워 오브 원>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영화라 기억엔 거의 없지만, 백인 소년 영웅 만들기? 뭐 그런 것쯤으로 기억이 되는 것 같다. 처음엔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인간 승리의 영화는 다 감동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백인 소년 하나가 승리함으로 인해서 주위의 흑인들이 더불어 복을 누린다는 그런 식의 설정이 다시 생각해 보니 꽤 못마땅했다. 그것을 알고는 당시 이 영화를 보고 열광했던 사람들에 대해 나는 냉소하다 못해 조소를 날리곤 했다. '영화를 볼 줄 모르시는구만. 쯧쯧.'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바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결국 이 책이 노예해방에 도화선이 됐다곤 하지만, 그래서 결국 그것을 이루어냈지만 하지만 백인들에 의해 노예제도가 만들어졌으며, 백인에 의해 그것이 폐지가 된 것이 아닌가? 나름 클러어한 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왜 흑인에 의한 해방은 없느냐는 것이다. 자기 자신들의 치욕의 역사가 아닌가? 그렇다면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국의 역사는 아니 흑인의 역사는 다시 씌어졌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흑인의 역사는 지금도 베일이 가리워져 있다는 게 좀 아쉽다. 

 

이 책이 성경을 토대로 씌어졌듯이, 성경에 의해 노예제도가 만들어지고 성경에 의해 노예제도가 폐지가 됐다는 것은 확실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을 두고 '몽학선생(?)'이란 말을 가끔 하곤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한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다. 성경, 그 거룩한 책을 두고 누구는 인간의 탐욕을 정당화 하지만, 누구는 거기서 진리를 발견하고, 사랑과 평등을 발견하지 않는가? 결국 성경으로 인해 알곡과 쭉정이가 가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 책은 참 착하게 씌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당시의 시대상황은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평이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신앙인이라면 가져야 할 도덕적 가치나 연민의 태도 등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사실 난 톰의 삶에 대한 태도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노예가 됐다고 다 불행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는 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라고 했을 때도 톰만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사실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귀속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보면 불명예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톰은 비록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거기서도 인간의 사랑과 정의를 꽃피웠다. 그런 삶의 태도가 비난 받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하겠는가? 바로 톰은 실제인물이며 저자로 하여금 영감을 줬다고 하지 않는가? 기억할 일이다. 나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어떤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며 어떻게 세상을 변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노예해방은 백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어느 작은 흑인 노예로 부터 시작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된지는 이제 200년이 흘렀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해방은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선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노예는 폐지됐을지 몰라도 인간의 착취와 억압은 지구 어디선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인종차별에서도 자유하지 못하다. 200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 또 나와 줄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그 내용은 달리하지만 그 형태는 반복된다. 그래서 우린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진정한 인간해방의 노력은 여전히 펜 끝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인간의 정신을 갈고 다듬는 노력은 계속되어져야 할 것이다.          

       

  

m****9 2010.0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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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기억을 새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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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지막에 톰 아저씨와 조지가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약간은 과장된 평가와 함께 뇌리 속에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실체는 없었다. 오히려 노예와 관련된 것이라면 쿤타 킨테로 대변되는 <뿌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읽지 않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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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지막에 톰 아저씨와 조지가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약간은 과장된 평가와 함께 뇌리 속에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실체는 없었다. 오히려 노예와 관련된 것이라면 쿤타 킨테로 대변되는 <뿌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읽지 않은 소설보다 어릴 때 본 미국 드라마의 이미지가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 기억하는 쿤타 킨테는 톰 아저씨와 다른 유형의 노예다. 톰 아저씨가 좋은 주인 밑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면 쿤타 킨테는 자유를 찾아 늘 탈출을 꿈꾼다. 물론 톰도 자유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자유는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선량한 주인 세인트클레어가 딸과의 약속 때문에 그를 해방노예로 만들려고 한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약속이 불의의 사고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여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이것은 소극적인 대응일 뿐이다. 그를 노예로 생각하고 하나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이것을 용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쿤타 킨테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자유를 위해 수많은 탈출을 시도한다. 어쩌면 이 소설 속 조지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조지는 탁월한 능력으로 공장에서 기계를 만들고 고용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그러자 이를 질투한 주인이 그를 학대한다. 이 때문에 탈출을 시도한다. 이 부분은 이 둘이 다른 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지워진 굴레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조지와 그의 아내 엘리자가 초반에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것은 톰의 행동과 상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리자도 역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아이가 팔린다는 소식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과 톰이 현세보다 내세를 더 믿었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았다는 것은 그 시대 기독교 내부의 상반된 견해를 보여준다. 이 둘은 모두 같은 주인 밑에서 살았다. 하지만 자신이 팔려간다는 소식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 명은 아이를 위해 달아나고, 한 명은 주인을 위해 팔려간다.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벗어나려고 한 그녀와 그것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움직인 그를 보면 역사를 움직인 것은 바로 엘리자나 조지 같은 행동가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현재의 시각에서 톰의 위치가 조금 못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악덕 주인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종교의 힘만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평안한 생활이 보장되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그가 주인이 준 통행증으로 충분히 달아날 수 있었는데도 그 피해가 주인과 가족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도망가지 않은 것과 맞물려 있다. 그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했는지 보여준 장면에서 약간 의외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그 시대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만약 도망자인 톰을 그려내었다면 현재의 쿤타 킨테처럼 그 시대에 많은 동조와 호응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대출 알고 있던 것이지만 세부적인 이야기나 전체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새롭다. 단순히 모든 노예가 학대받았다거나 주인공이 노예를 학대했다거나 하는 인식을 산산조각 낸다. 그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살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장면에선 가슴이 아린다. 약 150년 전 한 지주의 입을 통해 노예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말할 때는 그 시대도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 놀란다. 하지만 노예해방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이 존재했는지 알고 나면 이것이 단지 큰 발전을 위한 한 걸음이었음을 알려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쉽고 빠르게 읽힌다. 특히 관심이 가는 장면들은 두 번째 주인인 세인트클레어 집에 머물 당시에 있다. 그가 풀어내는 노예제도의 모순과 그 시대의 한계와 문제점이 현재에도 유효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바가 보여준 놀라운 믿음과 영향력은 한 편의 종교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국이 법으로 노예를 해방했지만 최근까지 그들을 결코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를 생각하고, 전통적 의미의 노예대신 급여의 노예가 되어 고용주의 말에 휘둘리는 현대인을 보면 흑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해방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족처럼 몇 가지 덧붙인다면 삽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노예매매와 탈출의 현장은 그 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노예가 만들어지고 팔리고 학대받고 탈출하고 죽는지 알게 된다. 삽화만 보아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불만은 번역에서 시대를 넘어선 표현이 드러난 곳이 보이는 것이다. 특히 영화와 관련된 문장이 나올 때는 번역상의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가끔 매끄럽지 않은 곳이 나타나 흐름을 흩트리는데 멋진 작품 속 옥의 티가 된다.
이달의 사락 f***2 2010.0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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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도의 실상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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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킨테라는 주인공이 등장했던 그 드라마의 강렬한 영상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인간존중이니 인종차별이니 하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만큼 생각이 있던 나이는 아니었지만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과 잔인한 백인들의 고문 장면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만은 생생히 기억한다.[엉클 톰스 캐빈]은 노예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린 책이다. 비인간적인 생활상이 노예모집에서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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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타킨테라는 주인공이 등장했던 그 드라마의 강렬한 영상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인간존중이니 인종차별이니 하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만큼 생각이 있던 나이는 아니었지만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과 잔인한 백인들의 고문 장면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만은 생생히 기억한다.

[엉클 톰스 캐빈]은 노예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린 책이다. 비인간적인 생활상이 노예모집에서 운반, 판매, 노동, 죽음까지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되어져있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파는 일은 같은 흑인인 다른 부족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다 팔고 부려먹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이야기 일 것이다. 그 안에 존중이나 배려는 이미 존재치 않는 것이다.

우직하고 성실한 노예 톰이 머물고 있는 주인집은 노예에게 비교적 인간적이었다. 허나 그것도,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여 노예들을 청산해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이다. 가족만큼 아꼈을지 모르지만 가족은 아니었던 것이다. 팔려갈 것을 알게 된 다른 노예 엘리자는 집을 도망나와 고생한 끝에 자유의 땅에 남편과 함께 도착하고 톰은 다른 주인을 만나 잘 적응하던 터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도망 나온 노예를 돕는 백인들도 있다. 모든 백인이 노예를 원하고 그들에게 모질게 구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기독교도들인 백인들은 성경의 말씀을 따르고 천국에 가길 바라면서 그같은 일을 저지른다. 이 모순된 상황을 교묘히 합리화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얼마나 간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또한 못된 백인주인 밑에는 그를 도와 흑인을 괴롭히는 같은 인종의 흑인이 있다. 이것을 인종적인 문제로만 봐야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톰이 두 번째로 도착한 집의 주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오래전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영화가 이 책의 제목과 같았다는 것은 신경과민의 괴팍한 주인이 여자 노예의 기지에 제대로 걸려들 던 장면에서였다. 결국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미 아는 얘기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 책이 또 한 권있었다. 바로 바베트의 만찬이다. 영화는 내내 질척거리는 공간배경만큼 우울하고 재미없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까진 영화의 제목도 몰랐었다. 소설 [바베트의 만찬]을 읽으며 어디서 본듯한 영상이 떠올랐는데 책이 끝날 무렵 드디어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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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의 여부는 이런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재미를 떠나 마음을 움직였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것...인지하지 못하던 순간에도 내 안에 깊이 자리해있던 세 가지 이야기들을 한 번에 만난 기분이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긴이야기이지만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가독성 있는 책이다.

탈출한 노예들과 함께 도망다니다 보면 어느새 함께 지쳐있는 자신을 깨닫게 될 정도였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옮긴이의 설명이 많은데, 누구에게나 도움될 것이다. 이젠 역사의 뒷이야기로 자취를 감춘 노예! 하지만 신노예에 해당하는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책을 덮으며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화두를 자신에게 던져본다.

 

 

작품성의 여부는 이런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재미를 떠나 마음을 움직였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것...인지하지 못하던 순간에도 내 안에 깊이 자리해있던 세 가지 이야기들을 한 번에 만난 기분이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긴이야기이지만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가독성 있는 책이다.
탈출한 노예들과 함께 도망다니다 보면 어느새 함께 지쳐있는 자신을 깨닫게 될 정도였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옮긴이의 설명이 많은데, 누구에게나 도움될 것이다. 이젠 역사의 뒷이야기로 자취를 감춘 노예! 하지만 신노예에 해당하는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책을 덮으며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화두를 자신에게 던져본다.
g******a 2010.01.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