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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맨』이라는 제목의 이 책 표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발’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폴 레이먼트’에게는 발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 쪽 다리가 없어진 것이다. 어느 찬란한 아침 ㅡ. 날카롭고 놀라운 충격이 전달됨과 동시에 그의 몸이 공중을 나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고는 정신을 잃는다. 깨어난 그에게 남겨진 것은 ‘frivolous(보잘 것 없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다리를 잃은 비참한 한 남자의 삶뿐이다 ㅡ. 그런 그에게 사회복지사인 퍼츠가 나타나 퇴원 후 그를 간호해줄 사람을 소개시켜준다. 수족이 풀리고, 영혼이 풀리고, 영혼도 무너지려는 순간 만나게 되는 여자 ‘마리야나’ ㅡ. 그는 그녀를 사랑(그의 복잡한 심경을 짧게 표현하려니 이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하게 된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생뚱맞게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라는 여자가 집으로 들이닥친다. 레이먼트를 향해 “당신이 나한테 왔어요.” 라고 말하는 여자, 그러면서도 “폴 레이먼트, 당신은 누구죠?” 라는 질문을 던지는 여자 ㅡ. 자연스럽게 혹은 놀랍게(?!) 만나게 된 그들 ㅡ. 그렇게 이야기는 폴 레이먼트가 마리야나와 코스텔로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ㅡ.
보통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을 돌아보면서 쓰는 글은 작가의 실제 삶보다는 책 자체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작가의 삶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깊숙하게 이 책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부커상 2회 수상작가로 유명한 이 책의 작가 ‘존 쿳시’는 남아공 출신이다. 실제로 남아프리카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고 한다. (내가 직접 읽어 본 책이 없고, 그와 관련된 정보를 통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기에 이런 말투를 쓸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던 고국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것 자체가 그에겐 큰 사건으로 다가온 것이고, 그것이 이렇게 무거운 소설을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런 무거움을 표현하면서도 또 다른 무게로 그를 짓누르고 있는 그 무언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아프리카가 배경이 아닌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설정했는지도 모르겠다 ㅡ. 어쨌든, 작가 존 쿳시의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ㅡ.
존 쿳시의 글은 덤덤하다고 해야 할까?! 덤덤하다 못해 냉소적이라고 해야 할까?! 대체로 짧아 보이는 그의 글에는 유난히 괄호가 많이 보인다. 그 괄호를 통해, 하고 있는 생각과 하고픈 말들은 넘쳐나지만 그대로 들어내 보이긴 힘들 것들에 대한, 속내를 많이 드러낸다 ㅡ. 너무 솔직해서 날카로우면서도 적적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애절함이 묻어난다. 옮긴이가 수많은 과정 속에서 소설 곳곳을 더듬으면서 느꼈다는 것들을 내가 한 번 읽고 정확히 파악해 내기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당장의 모습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나의 모습을 통해서 또 다시 나를 생각할 수 있다는 멋진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인데, 그 멋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가 힘이 든다. 내가 아직 소설 속의 레이먼트라는 인물을 완전히 이해할 만큼의 삶을 살지 못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역시나 만져질 듯 만져지지는 않는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글 솜씨가 부족하기에 더더욱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글로 표현하지 못한 이 느낌들과 내가 찾아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당신이 직접 이 책을 읽어보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 ㅡ. 나 역시도 한 번 읽고 느끼지 못한 전혀 다른 무언가를 직접 만져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다시 이 책을 읽어나가야 겠다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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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책읽는 밤'을 통해 '존쿳시'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 곳에서 소개된 그의 책 '슬로우맨'으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척박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의식을 소유한 내가 그의 작품세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충동과 기쁨에 이끌려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어느날 예기치않은 사고로 한쪽 다리를 본인의 선택의 여지없이 잘라내야만 하는 상황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내게 무언가 숨쉬기 곤란한 답답함이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의 기초 환경을 제공하는 듯 했다. 다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오는 절망감과 아무도 의지하고 기댈 곳 없는 외로움과 고독에서 기인하는 무거움 이었을까? 그는 이제 누구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거동하기 불편한 이전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권유되어 주어진 의족을 거부함으로서 그는 의도적으로 현실을 회피하며 자신이 처한 모습을 부정하는 듯 보인다.
누구나 살면서 우연히든 아니든 삶의 쓰디쓴 상실감을 맛보고 실의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시간을 보내곤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집중하고 회한을 느낀들 현실은 그것을 리와인드 해 데려다 줄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스스로 감내해야 할 모든 부분들에 지나지 않는다. 책속의 폴의 말처럼 그냥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가야 할 뿐이다.
'어떤 운명이 자신에게 닥치면 그냥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흐느끼지도 말고 푸념하지도 말라. 그는 이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믿곤 했다' -72-
나에게 주어진 현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지금 이것이 내 자리가 아니라고 느끼며 숫한 시간을 자기부정과 자격지심에 빠져 과거를 현재로 오버랩하여 혼동되고 분열된 자아를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해 현실 적응에 실패하기 일수인 나로서는 자기혐오를 일으키는 매개체인 거울속의 나를 바라보며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보곤 한다. 그 의 말 처럼 그 존재의 눈길을 피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며...
'우리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거울을 바라보아야 해요. 거울 속으로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말이죠...나는 안경 뒤에 갇혀 있는 존재를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보통 그 존재의 눈길을 피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잖아요...' -272-
폴은 자신을 돌보아 주는 애뜻한 사랑의 감정을 품은 마리야나와 그의 아들이 만들어 준 누워서 타는 자전거를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깨닫는 듯 하다...
'하지만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바로 그것이 조키치 가족이 그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잰 체는 그만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인근의 구경거리 중 하나로, 사회조직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기이한 유형 중 하나로 돌아가라고...' -334-
불가항력적으로 진행되는 시간 앞에 많은 것을 상실해 가는 우리는 누구나 저 '슬로우맨'이 될 수 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가 아닐까? 어느 순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든 결국 모든 걸 혼자 감내하며 이끌고 갈 수 밖에 없는 고독한 존재들!
불현듯 비틀즈의 노래 'eleanor rigby' 의 후렴구 가사가 떠오른다. ah~~look at all the lonely people!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come from?...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belong?... (아~~저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봐바...저 외로운이들은 모두 어디서 온거지? 저 외로운이들은 모두 어디에 속해 있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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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맨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존 쿳시의 개인적인 삶이 계속해서 오버랩 되었던 것은 주인공과 저자가 비슷한 환경속에서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슬로우 맨은 이민자의 애환과 노년의 사랑에 대한 서글픈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책이다. 작가 존 쿳시는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았지만 남아프리카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가게 되었는데 그가 어렵게 이주를 결심했던 것은 추락이란 작품 출간이후 많은 사람들의 차갑고, 냉담했던 반응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아공에서 백인여성이 흑인들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땅까지 빼앗기게 되는 내용의 소설을 출간한 존 쿳시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일까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부커상 2회 수상작가로 유명한 존 쿳시를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낯선 작가의 작품에 저절로 이끌렸던 것은 아마도 책을 읽기 전 소갯말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던 첫인상이 무척이나 강렬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이 나의 삶을 먹어치웠다란 어찌보면 평범한 문장속에 숨겨져 있던 담대함과 비범함이 이 책에 이끌리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함속에 숨겨져 있는 비범함이란 그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슬로우 맨을 읽게 된다면 반드시 그 짜릿한 경험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예기치 않았던 교통사고와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던 가엾은 레이먼트의 이야기로 슬로우 맨은 시작한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자신의 다리를 잃은 레이먼트는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지만 표현할 수 없었고, 의사에게 따져묻고 싶었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눈물을 쏟아내며 울고 싶었지만 울 수조차 없었고 가장 서글픈 사실은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이도 많고, 사고로 거동도 불편해진 그였지만 그렇게 비참한 상황속에서도 그에게 사랑은 찾아왔다. 이민자였던 마리야나의 간호를 받으며 그녀에게, 그리고 달라진 자신에 익숙해져 갈 때쯤 레이먼트의 가슴은 그녀로 인해 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레이먼트의 노년의 사랑은 가을빛과 참 많이 닮아 있었고, 식어있던 열정도 잔잔히 일깨우는 모습이었다. 존 쿳시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읽은 그의 첫 작품은 전반적으로 소박하고, 정갈한 분위기였다. 고독한 노년의 삶과 사랑을 통해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삶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지만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을 살아가지만 가슴 속 깊은 구석엔 언제나 희망이 가득차 있고, 늘 이룰 수 없는 꿈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살아야 가장 인간적인 것이며,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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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뭔가를 해보세요. 뭐라도 해보라고요. 나를 놀라게 해보세요. 당신의 삶이 반복적이고 제한적이고 날마다 더 지루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당신이 이 빌어먹을 아파트에서 거의 나가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 297에서
* 매일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 어떤 이들은 그것을 지루한 날들이라 부르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평화로운 날들이라 말한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남자 거의 노인이라 해야 할 폴.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한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돌봐줄 가족도 없이 홀로 사는 그는 간호사를 고용해서 도움을 받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형편이 된다. 홀로 외롭게 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는 그의 삶에 아주 큰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그는 그 구멍에 빠져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고 허우적댄다.
존 쿳시의 이야기는 <포> 하나 밖에 읽은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보았을 때 이번이 존 쿳시에 대해 다시금 알게 될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노벨상 까지 거머쥔 존 쿳시지만 나하고는 좀 맞지 않는 듯. 나는 많이 불편하고 거북하게 그닥 재미는 없게 읽었다. <포>는 좀 수다스럽고 상당히 지적인 문제제기들을 뒤섞어 놓은 이야기였다. 이번 책 역시 모국어를 쓰는 고향을 떠나서 사는 이민의 괴로움과 외로움, 나이듦과 사랑과 용기의 이야기가 뒤범벅으로 뒤섞여 있다.
이야기는 쭉 쭉 읽히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직 다 정하지 않고 글을 써내려간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문장 문장 단락 단락들은 괜찮지만 그것들을 모두 모은 이야기는 한 곳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느낌. 초반 이야기가 잘 나가다가 뜬금없이 그의 다른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뜯어다 붙인 퀼트 같았다. 쓰임을 제대로 정하지않은 일단 만들다가 그냥 마무리지어버린 퀼트 말이다.
옮긴이의 글을 보면 이 책은 그가 고향인 남아공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이후 처음으로 쓴 장편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 남의 나라에서 살게 된 그가, 마찬가지로 타국에서 살아가면서 다리마저 잃고 외로움에 떨다가 겨우 노년에 지푸라기잡듯 사랑을 쥐어잡는 폴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많구나 하고 여겼다. 읽으면서 나이듦의 서글픔과 마음 속의 진정한 고향과 누구나 결국엔 마주할 수 밖에 외로움의 거북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런 노년의 위기 욕망이 뒤엉킨 소설<슬로우맨>이었다. - 다락방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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