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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 '누구'가 되어본 적이 없으므로,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때로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상대를 배려한 차원이건, 스스로를 포장하려는 의도이건 간에..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서 나름의 정당성과 좋은 의미를 부여하는 거짓말이라는 것도 객관적으로 존재할 정도라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야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 도덕의 딜레마라는 문제를 가지고 다양한 사례로도 인용되잖는가. 이를테면 공산당이 쳐들어와 아빠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을 때, 솔직하게 '장롱 속에 숨어있어요..'라고 하는게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인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하고 '내 모습 어때..?'라고 묻는 상대에게 '정말 꽝이거든..'이라는 솔직한 대답보다 '뭐 봐줄만 한데, 넌 이런게 훨씬 더 잘 어울려..'라고 말하는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한 센스있는 거짓말까지 말이다.
그런데, 내가 가끔 하는 거짓말은 그런 차원의 거짓말이 아니다. 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포장과 변형을 가하는 거짓말이니까. 그것 악의 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을 배려한다거나, 사회적 효용(Utility)을 증가시키는 거짓말은 절대 아니기에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남들이 그 거짓말 너머에 있는 나의 본질을 알아챘건, 아니면 나를 둘러싼 그 어설픈 거짓말을 믿어 나를 그런 사람으로 인지하건 간에, 대개 그런 나의 거짓 앞에 선 이들은 대개 나의 그러한 거짓말에 수긍해준다. 속으로 '이 거짓말장이.. 하지만 믿는 척 해줘야지. 딱하기도 하고 괜히 긇을 필요도 없으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형식적인 관계 선에선 그런 거짓이 꽤 잘 통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지속되다보면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인 나는 스스로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나는 그 거짓이 들통났을 때 상대방이 느낄 실망감과 모멸감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피상적으로 형성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나에 대한 타인의 친밀감이 '나' 라는 본질적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닌, 내가 포장해내고 꾸며낸 것들에 대한 호감과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건 마치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한 찬사와 부러움이 나라는 존재에 대한 것이 결코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지닌 거짓의 탈을 벗었을 때, 그래서 드러난 초라한 내 진짜 모습은 결코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사랑받은 적이 없었기에, 움츠리고 숨길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 고독해지고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실망할까봐, 멸시당할까봐 그래서 버려지고 혼자가 될까봐 자신을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은 결국 혼자만의 은폐하고픈 은밀한 비밀들을 만들기 마련이다. 은폐하고 싶은 비밀이 늘수록 죄책감도 함께 늘어나게 마련. 술을 많이 마시면 혹시 내 안의 본질이 거짓의 포장을 찢고 밖으로 돌출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 그래서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술을 마신 다음날 근거없이 몰려오는 죄책감 속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애초에 솔직함으로 승부, 자신의 모든 장단점을 모두에게 오픈하고, 그런 온전한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온 이라면, 이런 부분을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
심리학에서는 이런 기제(機制)는 어린시절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자아의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솔직한 자신으로는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바탕이되어 좀 더 사랑받을 법한 모습,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변장시키는 과정 속에서 진짜 생각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하고, 사실과 다른 거짓 상황들을 부풀리게 되는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 철저히 외부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격이므로 스스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해석이 될 수는 있겠지만, (물론 100%로 남탓만 할 수 있는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남탓이나 하며 그냥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잖는가. '한 번' 뿐인 '내' 인생인데 말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조금은 다르게 설명한다. 인간 사이의 만남을 수평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의 관계형성으로 보는 것이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형성은 평가자와 피평가자라는 입장을 넘어 대상화된 인간을 스스로가 하나의 물건이나 상품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뜻이다. 대상화된 인간은 당연히 좋은 기분일 리 없고, 타인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고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관계를 기싸움이라고 하는 건, 내가 그 사람의 대상이 되느냐, 내가 그 사람을 대상으로 만드느냐의 싸움이고, 그런 기싸움에 약한 이들은 대다수의 관계 속에서 대상이 되어버린다. 대상이 된 인간은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을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한 기분과 불안감 그리고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연스레 거짓말을 유도해낸다는 것이다. 이것도 참으로 그럴 듯한 설명인데, 역시 대상이 된 이가 하는(할 수 밖에 없는) 거짓말에 대해 제법 그럴듯한 변명꺼리를 제공해주기는 하나 시원한 해법까지 선사하지는 않는다. 결국.. 내 스스로 해법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비단 나와 같은 문제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살면서 제법 오랜기간 스스로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문제들을 한 두가지는 안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과학기술이 무척 발전해 각종 이기(利器)가 넘쳐나는 문명사회 속에서 살건, 스스로의 배움이 넘쳐 머릿속에 남다른 지식이 들어있건 마찬가지일게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줄 기계장치나 약품이 나올 수 없고, 학교에서 그런 개인적 문제(Problem)을 풀 수 있는 해결방안(Solution)을 제공해주지도 않으니까. (어짜피 학교는 질문(Question)과 정답(Answer)만을 다룬다)
그럼 이런 개인적인 문제의 해법은 어떻게 해야 구해질 수 있는걸까..?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며 그 해답이 바로 인문학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알아가는 것 못지않게, 아니 선행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진단하는 것일진댄, 자신을 제대로 알아간다는 건 스스로의 생각 속 깊은 심연으로만 빠져들어선 결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짜피 자기만의 생각이란건 불안정하고 위태로우며 감정에 의해 쉽게 변형되고 파괴되는 무엇이니까. 그런 위태로움과 아슬아슬함을 넘어 보다 보편적이며 범용적이고 견고한 틀 속에 자신을 끼워넣어야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이, 타인이 보는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게 객관적으로 보일 것이고, 그래야 타인의 문제를 대하듯 냉정하고 공정하며 현명한 판단과 방안을 낼 수 있을 터이다. 그러면 당연히 무엇을 바꾸어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좀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문학은 교양이 아닌 필수요, 현학(衒學)이 아닌 삶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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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콘서트' 처음 '철학 콘서트' 란 제목의 책을 집어들었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이 책은 KTV 인문학 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대담을 엮어낸 책이라는 것을 서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교양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TV 앞에 서면 유희성 오락 프로그램을 찾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어렵고 딱딱해서이기도 하지만 TV 앞에서만큼은 나를 놓아두는 시간을 주고 아무 생각 없이 깔깔 웃어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어쨌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대담을 나눈 학자들은 한국 지식인의 계보에서 나름 높은 지위와 명망있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기만 했다면 이 책은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시청자가 어느 정도 공감을 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책이란 소리다.
이 책을 읽고서 인문학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으리라 조심스레 바람을 가지며 책을 집어들었다.
인문학과 관련된 소재도 있었지만 자연 세계, 우리 아이들의 현실, 미래의 이상향은 어떻게 변해갈지 등등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툭 꺼내놓고 우리 머릿속을 고민시킨다고 해야 하나~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대담을 그대로 적어내려간 책이므로 화자와 대화한다는 느낌이 들고 그만큼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므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에 든 부제를 꼽으라면 통섭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알게된 것, 그리고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것, 왜 고전을 읽어야 하고 인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통합은 물리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그냥 한데 묶어놓은 것입니다. 융합은 하나 이상의 물질이 함께 녹아서 화학적으로 서로 합쳐지는 것을 말해요. 통섭은 그저 합쳐지는 데서 그치면 안되고, 거기서 뭔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통합은 물리적이고 융합은 화학적이며 통섭은 생물학적인 것에 비유할 수 있겠죠. (47~48p)
부모는 어떻게 하면 자식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지에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내 아이에 대해서는 나만의 철학을 갖자는 겁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직업이 3만가지가 넘습니다. 구태여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에 그리 집착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자녀에게 좋은 성적을 받아오라고 하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서 교양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121p)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갈망에서 인문문화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삽니다. 우리는 누구나 인문 문화적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만 인문학은 그러한 문화를 일구어 오는 과정에서 인간이 유별나게 잘 성취한 것을 좀 더 적극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거지요. 사실 인문학적 관심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관심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294~295p)
보통 인문학 하면 멀게만 느끼고 현실 속과 거리가 먼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이 책으로 인해 인문학에 발을 담글 수 있게 된 것 같고 이제는 다른 인문학 책을 조금 더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이런 의미있는 토론은 반드시 계속 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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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이 많다. 먹고살기 바쁘기 때문아닐까. 게다가 점점 기술이 중요해지면서 인문학은 관념적으로 치부되고 있다. 저자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우리 현실에서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에서 개인적인 관점을 정립한다든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역할이라고 한다. 인간은 상황에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여 대응하는데 그런 인간만이 갖는 고유성을 더욱 증대시키는 부분이 인문학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최재천님은 지식의 통섭이 중요하다고 한다. 한 분야만 파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접 학문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자연도 순수를 혐오하고 섞여야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패거리문화이고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통섭이 잘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섞여야 아름답다는 말은 생각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 반대로 빠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고, 약자의 경우에는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웅님은 디지그노가 중요하다고 했다.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의 엄밀성, 사회과학의 상상력과 더불어 인문미학적 예술이 서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용린님은 교육은 집어넣지만 말고 끄집어 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내적인 텃밭이 다르다. 교육을 통해 그 텃밭의 질을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교육을 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좋은 대학에 넣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기 때문에 인문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야 한다. 황경식님은 철학의 기능은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덕의 윤리가 중요한데, 행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품과 성품, 존재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고미숙님은 사랑을 하면 폭풍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세계의 삶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사랑은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폭풍이라는 것이었다. 자본주의화한 사랑이 현실인데,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랑을 게임식으로 하게 된다고. 게다가 포르노와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배설하게 되면서 몸을 망치게 된다고 한다. 금욕도 신체적인 리듬을 억압하는 것이라 한다. 몸에는 자신을 파멸로, 혹은 흥분 상태로 이끌고 격동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광기 혹은 열정. 니체는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 있는가?" 라고 했다. 우리의 관계는 화폐의 힘으로 맺어지고 있다. 자신의 고유한 삶의 리듬을 찾으려면 화폐의 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앎이 주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사랑에는 두려움 없이 빠지라고 한다.
유토피아를 추구해야 할까, 현실에 만족해야 할까. 유토피아가 위험한 이유는 전체주의화 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의 이면에 디스토피아가 있다. 과학의 힘과 인문학적 상상력이 현대문명의 두 축이라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문명이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 준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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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문학이 어렵다고 한다. 그 답을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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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소설처럼 편하게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소설이나 에세이 분야에 치중해 읽는 독자라면 더더욱 그러한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인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이나 인문학이 애써 독자와 거리를 둔-지나치게 전문적이고 딱딱했던- 까닭으로 인해 인문학은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인문학이 위기라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언론을 들썩였다. 그로 인해 인문학에 대한 성찰과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언어로 재해석되었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상으로 기획되었다.
<인문학 콘서트>(이숲, 2010년)는 한국정책방송(KTV)에서 방영된 ‘인문학 열전’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책이다. 나도 일전에 방송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편안하게 특정 주제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콘서트가 무언가. 인기 가수의 콘서트라면 가수의 노래를 듣고, 함께 교감을 나누며 즐길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인문학 열전’이 콘서트에 비유될 수 있다면, 또 그렇게 진행되어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교감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대단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이자 각종 매체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한 김갑수가 사회를 맡아 예리하고 적확한 질문으로 콘서트를 이끌어왔다. 등장하는 인문학 가수들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로라하는 인문학자들이다. 김갑수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텔레비전에서 인문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말 잘하는 사람들 위주로 출연자들이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나오는 사람들만 나왔던 것. 그래서 이번 콘서트에서는 그런 부담을 없애 말은 잘 못해도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들을 많이 모셨다. 김경동, 김기현, 최재천, 김광웅, 문용린, 정진홍, 황경식, 고미숙, 김효은, 장회익, 차윤정, 도정일, 박정자, 김영한 등이 이 책에 소개된 주인공들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인문학에 대한 벽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책 혹은 프로그램을 직접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야기하듯 편하게 인문학을 논하기 때문에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인문학과 독자의 거리 좁히기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장점은 인문학의 세부 분야를 거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출연자들은 철학자, 신학자, 물리학자, 생태학자, 사학자, 문학가, 교육가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그 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의 연구성과와 주요 쟁점들, 저자의 책 등을 소개받다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친숙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수강한 노숙자가 다시 새 삶을 찾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제는 CEO 인문학 과정도 생겨났고, 인문학으로 광고한다는 한 광고기획자의 책도 출간되었다. 이제야 인문학이 제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이 무언가. 사람 인자가 들어간 우리 삶을 이해하는 학문이 아닌가. 인문학이 우리 삶에 더 가까이 들어와 함께 하길 기대한다.
by 꽃다지, 2010년 1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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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 대학때 '광고심리학' 시간에 사적으로 교수님께 우문한 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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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벌써 1년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속된말로 간지나는 그래픽노블 양장본을 들고, 이 책이 재미있을까? 의구심에 가득 차 '브이 포 벤데타'를 읽었던 것이. 그때 책의 머릿말에 씌여있던 이 책은 뉴스가 시작되어도 채널을 돌리지 않는 이들을 위한 책입니다,라는 글을 읽으며 조금 뜨끔한 느낌을 가졌었다. 뉴스가 뉴스가 아니라 쇼,라고 생각한 이후 이슈가 되는 뉴스가 있을 때만 가끔 쳐다보던 뉴스를 그 이후에는 조금 열심히 지켜보려고 노력한것은 그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하릴없이 뉴스방송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러가지 토픽이 지나가고,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던 아이티 뉴스가 이제는 점차 밀려나더니 이제는 구조소식도 아니고 아이티를 위한 모금활동을 보여주거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대사관의 역할은 어떤가,를 이야기한다. 성급한 맘에 뭔 개뿔같은 소리를 하나 지켜봤는데, 소위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대사관 직원들의 행태에 대한 고발이었다. 아이티의 지진대재앙 이후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구조대원이 아이티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119구조대원도 역시 파견되어 최소한의 짐만을 꾸리고 육로로 머나먼 길을 찾아가 구조활동을 시작했고 열흘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물이 모자라 샤워도 못하고, 침낭도 없이 맨흙바닥에 모기장하나만 치고 잠을 자고...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올수가 없다며 그저그렇게 열악한 사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119구조대원의 인터뷰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프랑스나 영국같은 유럽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못사는 나라들로 이루어진 남아메리카의) 에쿠아도르 구조대원의 '샤워는 매일 하고 있습니다. 매일하지 않고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지요?'라는 반문으로 더욱 어이없어졌다. 그 뒤에 이어진 도미니카 공화국 대사의 인터뷰와 대사관 직원들 임시숙소에 쌓여있는, 수백개는 되어보이는 콜라와 맥주캔, 포장도 뜯기지 않은채 혹시 언제 방문할지 모르는 국회의원들, 대사관 직원들을 위해 쌓아둔 매트를 보고 있으려니 화가나는데, 소위 우리나라에서 외교관으로 해외에 파견된 대사라는 작자는 '스스로 생활이 가능하고 자급자족이 되시는 분들만 찾아와주시면...'이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화가난다. 나는 '인문학 콘서트'라는 책을 읽는동안 '먹고 사는데 인문학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뉴스를 보고 나니 그 물음이 얼마나 절박한것인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문학 콘서트는 인문학에 대한 여러분야의 전공자들이 자기분야의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콘서트 연주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고, 이것이 인문학이라는 것이구나 감탄하고 있었지만 정말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오늘의 뉴스로 인해서이다. 119 구조대원은 자신의 일이 생명을 구하는 일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삶의 모습으로 체화시키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앎과 삶은 구분되는 것이 아닐것이다. "모든 사랑의 기본은 '측은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든 길가의 풀이든, 어쩌면 고통일지도 모르는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인간이라는 사실에 너무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고 겸허하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살아야겠지요."(289)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인문학 따위는 집어치우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어 제 몸 하나 살찌우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어느 대학을 가야하는지에 더 혈안이 된 사람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똥덩어리 지식으로 가득찬 이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본래 앎의 목적은 결국 좋은 삶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학계에서는 앎과 삶의 관계는 도외시하고 그저 앎 자체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것을 소위 '아카데미즘'이라고 생각해서 거기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까 앎의 범위나 내용은 넓고 깊어지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점에 대한 생각은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은 아예 저 밖에 있고, 우리는 그저 조각난 부분들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삶과 앎 사이에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봅니다."(234) 삶과 앎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모든 학문 분야가 내것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이가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삶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리의 현재인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막대한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에게, 교육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깊이있는 성찰을 하자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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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다. 특히 고전 열풍이 불고 있는데, 참으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책 「인문학 콘서트」는 글로써 인문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접근하는 방식이다. 다른 여러 학문과 소통하는 인문학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는 몇 종류의 전문분서가 있다.(세무, 보건, 토목분야 등) 이들에게는 전문가다운 아주 능숙한 모습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자신밖에 모르는 답답한 면이 보이기도 한다. 아주 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지만 자기식대로 행동하여 구성원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 분야에만 집중하다보니 넓게 보지 못하여 생각과 이해의 폭이 좁아진 집단이였다.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여야 하는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분야에는 발전과 비전이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적 사고일 것이다. 통섭(通涉)해야 한다고 충고해 주고 싶다. 그래야 우리 모두 발전할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나도 잘해야겠다. 기본에 충실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인문학 공부구나하고 새삼 느낀다. 새로운 윤리의식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나름대로 아주 도덕적인 면이 있어요. 단지, 도덕의 개념이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를 뿐이지요. 그들은 이전 세대의 전통적인 도덕보다는 현대화한 합리적 도덕에 길들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 세대처럼 도덕적 기준을 너무 높이 잡지도 않고, 현실에 잘 적응하여 실천할 수 있는 시민의 도덕성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태를 한탄하는 어르신들이 요즘 세대에 대해 너무 절망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황경식 덕(德)의 윤리 “실천이 따르지 않는 도덕성이란 어쩌면 기만이나 위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실천은 우리에게 의무로써 강제되는데, 법이나 풍속을 통해 강제된 윤리보다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도덕성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 김갑수 “윤리적 실천에는 세가지가 중요합니다. 지(知), 정(情), 의(意). 우리 마음에는 이 세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우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적인 각성이 요구되고, 그 다음엔 그것을 꿋꿋하고 당당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의지력이 요구되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감정상태가 중요합니다. 이런 삼박자가 잘 맞았을 때 유덕한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거죠” - 황경식 난 이 부분에서 참 힘들었다. 알고 행동하는 것까진 했는데 그것을 행복하게 여기지 못하고 있다. 도덕적 의무로 시어머니 봉양하고 있지만 난 전혀 행복하지 않다. 나에게 덕이 없는 것일까? 이것은 진정 나만의 문제일까? 하는 고민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사랑과 성의 윤리 “오늘날 철학적인 윤리학은 상당히 개방적인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했듯이 사랑이 있는 성과 사랑이 없는 성 사이에서 자기 주장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밑받침되는 것. 그것이 철학이거든요. 그래서 철학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정답을 허용하지만, 자기가 선택하는 정답에 대해 합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유 있는 주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리적 주장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되, 철학적인 논의로서는 나름대로 아주 엄정한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 황경식 자기 주장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밑받침되는 것. 바로 철학. 이 부분을 읽은 날, 모처럼 동료 직원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나의 근무태도로 우리는 논쟁이 붙었다. 내가 근무시간중에 인터넷이나 보면서 논다는 것이였다. 난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쳤다. 내가 보는 인터넷은 시대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함이고 나는 열심히 남들보다 빠르게 일하고 잉여 시간을 관리한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무실에는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다른 직원들도 다들 그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것은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동료직원은 설사 내가 그렇다 할지라도 나의 근무태도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조직의 분위기를 바꾸지 못할거면 사실 기분이 몹시 상했다. 하지만 난 진보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문화라는 것이 바뀔 수 있겠는가? 점차 바뀌겠지. 내가 진짜 놀기만 했다면 난 그대로 주눅 들어 내가 잘못했구나 생각했을 텐데 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과 쓸데없이 술 먹으며 내 황금 같은 시간은 허비했구나...쯧쯧 앞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내 주장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잘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다짐... 난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아무리 사회가 달라져도, 인간에게는 바뀌지 않는 경험의 조건들이 있다. 좌절과 고통의 경험은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조건이다. 양심이라는 경험도 있다. 우리는 고민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저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고전은 인간의 경험이 종속되었던 이런 근본적인 조건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기록해 놓았다. 그런 반응은 시대에 속박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그래...읽자. 나 항상 새로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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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가 많아졌다. 실생활에서도 인문학적 사고와 지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실생활에서 어떤 활동을 했을때 그 의미를 파악하고 정의를 내려주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여러 위기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선택을 위한 지식이 필요할때 인문학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학문의 통섭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인문학도 다른 학문과 토론하고 담론을 생성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교류 의외에 학문 간의 장벽을 허무는 일도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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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열풍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하고 그냥 섣불리 접근하기에도 너무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럴때 필요한 책이 입문서인데 이 <인문학 콘서트>란 책이 그 길을 열어주었다. 저자 혼자 쓴 책도 좋지만 이 책처럼 여러명의 저명한 인물이 각각 파트를 맡아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이야기해주는 책도 좋다. 각 분야의 교수님들이 전하는 인문학 이야기를 계기로 좀더 인문학이 친숙하게 느껴졌고, 슬슬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그 길이 보여서 좋았다. 인문학이란 학문이 정말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고 또 활용될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고 많이 배웠던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