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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햇살이 환하다. 예년 같으면 목련도, 개나리도 져야 할 이때에 아직도 꽃봉오리조차 올라오지 않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햇살이 그래서 더 반갑다. 책을 읽고 리뷰 쓰기를 미루어 놓은 최인호의 [인연]을 꺼내 든다. 작가가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그를 스쳐간, 아니 얽히고 설킨 인연들을 풀어놓고 있다. 그 인연들이 부모와 아내와 친구와 형제들에 관한 것이라 책을 읽으면서 나와 얽힌 인연들도 생각해 본다. 유년시절 저녁에 집에 들어오시면 다리를 주무르라고 했다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저자는 거기에 더하여 어머니의 다리를 떠올리고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인연을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에대한 기억은 없다. 아니 딱 한가지 떠오르는건 있다. 내가 읽는 책이 못마땅하시다고 수십권을 꺼내어 불사르던 그모습, 내가 집으로 돌아와 그 광경을 보았을 땐 이미 거의 타고남은 재 뿐이었다. 나도 알고 있다. 왜 그책들을 불태웠는지. 당신 생각엔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내가 불안했을 테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겁도 났을 게다. 그때 그 모습을 빼면, 눈을 감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떠오르는 모습이 없다. 지금은 요양원 병실에서 시간가는 줄도모르고, 계절이 바뀌는줄도 모르고 누워계시지만, 뼈만 앙상히 남은 그 모습에서 그분의 아집과 완고함만을 읽을 뿐이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혼자서 살겠다고 고집하시는 어머니에게선 또 다른 완고함을 읽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 속에 없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닌 너무나 많은 기억들을 나에게 주고 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부모님을 회상하는것을 보면서, 난 내 부모와 나와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현생에 한번의 옷깃을 스쳐도 전생에선 삼천번의 만남이 있었다는 성전스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분들과 나와의 인연을 나는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맘을 열지못하는 나의 완고함을 읽는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저자는 아내와의 인연을 생각하고 있다. 부모와 아내와 자식이 물에 빠졌을 때 누굴 먼저 건져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란다. 1순위가 아니라 0순위라고 한다. 그 경우 과연 나는 어떠할까?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다. 그래도 부모인데, 아니 어린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럼 아내는? 사실 나와 혈연적으로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 아내다. 내피는 부모에게서 받았고, 내 아이들의 피는 내가 주었다. 그러나 저나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아내는 나에게 있어 무엇일까? 나 또한 그 인연을 생각해 본다. 저자는 계속해서 미망迷妄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있다. 인연은 형제와 벗들과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것 들과도 이어져 있는 것 이거늘..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이어지지 않은 인연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연이 만나면 인연이 되고, 인연이 만나면 필연이 된다고 했던가? 나 하나 낳고 딸만 내리 넷을 난 후, 마지막으로 태어난게 사내아이였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한다. 저자도 기억에 없지만 어려서 죽은 형제들을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 녀석을 생각해 본다.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헤어졌던 어릴적 벗들을 생각해 본다.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 하지만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던, 단편단편 조각나 있지만 그들과의 한때의 기억들이 선명하다. 그리고 악연들을 생각해 보고 어긋난 인연들을 생각해 본다. 잊혀졌던 기억들이 봇물처럼 떠 오른다.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했던 것들이 제 때를 만난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어찌 사람과의 만남만이 인연일까? 책과의 만남을 생각해 보고, 야간 완행열차에서 불 꺼진 산과 들을 보면서 까닭 모를 슬픔에 잠기었던 어린 날들을 생각해 보고, 한때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젊은 날들을 생각해 보고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본다. 책은 글과 사진이 배합되어 기억 속으로, 인연 속으로 읽는 이들을 안내하고 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들을 읽으면서,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우리의 인연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위암으로 고생하는 저자의 쾌유를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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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고 나면 우리가 살았던 흔적은 모조리 없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풍경 한 조각을 지키고 우리를 기다려 준다면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돌담 아래서, 그 노파의 주름진 눈망울에 어른거리는 지난 시절의 풍경을 앞에 두고 우린 주섬주섬 과거 우리가 살았던 시절의 아야기를 꺼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이다." 이 구절이다. 최인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회상적이며, 지지부진하던 이 책 '인연'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구절에 와서, 최인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최인호는 현재 위암을 앓고 있다고 한다. 책읽는 내내 투병생활중인 최인호가 머리에 떠올려졌다. 생과 사의 길목을 실감하는 위대한 작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보려고 노력했다.
최인호는 사실 목마르고 메마른 시대의 소설이 어울리는 작가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조금은 어색하다. 굳이 '인연'이라는 타이틀에 메달릴 것 없이, 그냥 최인호의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더 마음편히 읽힐 듯하다. 백종화의 아름다운 풍경사진들은 그 자체로는 훌륭하나, 최인호의 글체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못해 안타깝다.
해방둥이 최인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참 많은 가난을 경험했다. 옷은 언제나 물려입었으며, 단칸방에서 모든 식구가 잠을 자야했다. 감수성에 예민했을 그 청소년기의 그 가난을 최인호는 어머니와 형님의 애틋한 사랑으로 극복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최인호의 감정은 존경과 자랑스러움, 그리고 죄송스러움으로 점철한다. 최인호는 아내와 자식을 보듬는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에게 있어서 가족은 종교와 다름아니다. 마흔 넘어 천주교에 귀의한 최인호는 그후 독실한 신앙인으로의 생을 새롭게 만들어갔다. 모든 종교의 근본은 사랑이 아닐까. 그동안의 잘못을 고백하고, 새로 태어난 기쁨으로 또 끝없는 사랑으로 자신과 모든 이들을 대하려는 진실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가족은 최고의 최상의 인연이다.
꽃에 물을 줘본적이 얼마나 있는가. 대체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40 또는 50넘으면, 자연스럽게 꽃이 보이고, 꽃에 관심이 가고, 꽃이 가지는 생명의 신비함에 매료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꽃의 경이로움에 매료되기는 장년의 최인호도 마찬가지였다. 죽을 것 갔던 난을 들여다 키우며, 마침내 꽃대를 보면서 느끼는 그 감동. 아침마다 집마당에 피어나는 꽃들에 말을 걸며 물을 주는 그 기쁨을 그는 만끽하는 듯했다. 문학상이란 문학상은 다 휩쓸었을 것이고, 그외 영화 등 문화적 또는 세속적 성공을 맛본이가 이제는 집앞 조그만 뜨락에 행복을 느끼고, 빨갛게 익어가는 딸기에 감동하고, 이따금 찾아오는 나비에 감사한다. 절대적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소소한 것에도 행복하게 한다.
최인호가 만난 이는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그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자기를 구해준 그 바보에서부터, 고속도로에서 고장난 차를 수리해준 그 천사들, 김유정, 황순원, 안성기, 이해인, 아내, 아버지, 어머니, 형, 아우, 아이들 등등.. 그들과 만나서 무엇을 하였는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해야 할 일인지 조용히 회상하고 있다. 무슨 조건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저 만나게 되었을 뿐. 우리는 놀랍게도 그 고마운 인연의 끈을 이어가며, 이 힘겨운 생을 꾸려나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함께 할 것은 이들과의 만남이 전부가 아닐까. 그 인연을 감사하는 것, 그 인연의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의무이다. 자신의 외로운 눈을 바라보아야 하는 저녁, 내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상이는 순간, 저자는 이런 구절로 끝을 맺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육체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모두 스스로 가진 것을 버리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며, 스스로의 몸을 헐벗게 하는 일로 다른 사람의 눈물과 고통에 연연할 수 있다면 이 슬프고 고통스런 세상에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몸을 지니고 있다. 당신이 지구 반대편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지구의 반대편에서 그 누군가가 당신을 위하여 울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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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혼식장 두곳을 다녀오니 하루가 다 저물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고가고 기다리는 사이에 <최인호의 인연>을 모두 읽었다. 결코 나쁜 장사만은 아니었는가 보다. 오늘 다녀온 결혼식이야말로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인연의 장면장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남녀간 인연은 물론 친구, 친척, 인척, 직장동료간 만남이 다 모여있는 곳이다. 오늘 나는 우리 모두가 나누는 인연의 관객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애를 지탱해 주었던 일상의 곳곳에 박혀 보석처럼 반짝이는 자신의 인연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머니로부터 형제들, 그리고 아내에 이르기까지 가족들간의 아름다왔던 순간들을 회상하는 애틋한 추억의 장면들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배우 안성기, 배창호 감독, 이해인 수녀와의 인연도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인연은 사람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마당의 나무에서 자라는 꽃잎, 길에서 주워 온 난이 피워 올린 꽃망울, 수십 년 동안 입고 신어 온 옷과 신발, 어렵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까지 최인호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인연이나 그에 얽힌 추억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의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추억은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들이지만 감정의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어린 시절 화장도 하지 않던 우리 어머니의 모습과 이를 부끄럽게 여기던 어린 학생시절의 추억, 잃어버린 옛날 고향집의 모습, 정겨웠던 친구들과 동네마다 있던 바보를 놀리던 이야기들, 아내와의 연애편지 관련된 추억 ... 특히 이런 내용을 접할때에는 마치 나를 옛날 어린시절로 되돌려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소멸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만 거기에는 반짝이는 인연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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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부터 나는 아내와 함께 하는 쇼핑을 멀리했었다. 필요한 물건만 후다닥 사서 쫓기듯 그 자리를 뜨는 나의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아내의 쇼핑 시간은 마냥 늘어져 기다리는 나를 늘 지치게 하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빨리 나가자고 몇 번이나 채근하는 나를 딱하다는듯 쳐다보다가도 어느새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물건에 시선을 뺏기곤 했다. 마침내 내가 슬슬 부아가 치밀어 참지 못할 지경에 처할 즈음에서야 아내는 못 이기는 척 뭉그적뭉그적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다시는 같이 나오지 않겠노라 다짐을 하면서도 지금껏 장롱면허를 갖고 다니는 아내를 생각하여 다시 쇼핑길에 따라 나서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들은 ’쓸모’를 따져 물건을 구입하지만, 여자들은 ’이야기’로 물건을 사는 듯했다. 하나의 물건을 손에 쥐고 그 물건이 놓인 장면을 상상하고, 그 물건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까지 하염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옳다구나 싶으면 기어코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결국 여자들에게 쇼핑은 단순한 물건 구매가 아닌,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의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며, 그 물건은 그들 사이에 놓인 작은 소품과 같은 것이다. 나는 아내를 보면서 그렇게 결론지었다. 여자들에게 쇼핑은 ’이야기’를 사는 것이라고. 최인호의 <인연>은 오래 전에 읽었던 피천득의 <인연>과는 또 다르다. 뭐랄까 조금 대중적이라고나 할까? 화려한 미사여구나 문학적 천재성이 돋보이는 그런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글을 읽는다기보다 시간을 넘나들며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추억이란 묘한 것이어서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어쩌면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술술 잘도 풀려 나온다. "한 해도 저무는 세모의 저녁,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서 한 벌의 헌 옷도, 한 닢의 동정도 베풀지 못하면서 내가 감히 말씀드릴 것은, 여러분 가슴속에 자라고 있는 행복의 꿈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 매달린 향기로운 과일을 따보라는 것이다." (P.39) 작가는 세월의 잔물결따라 골과 마루를 같이 넘어온 사람들과 그때의 빛바랜 잔상을 쓰고 있다. 커다란 풍파없이 살아온 것도 얼마나 감사할 일이겠는가. 자신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인생의 황혼에서 누군가에게 감사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겸손하고, 더 겸손하라는... "가끔 한밤중 잠에서 깨어 멀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전히 내 손바닥에 남아 있는 체온에서 나는 두 분의 따뜻한 음성을 듣는다. 나는 안다. 그분들은 이미 세상에 안 계시지만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계심을. 내 손바닥이 기억하는 그 모든 시절의 추억들로 나는 안다." (P.275) 나는 어쩌면 '쓸모'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사람도, 물건도 쇼핑하듯 긁어 모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없으면 감동도 없는 법.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인연은 그렇게 만들 일이다. 아내는 어쨌든 성마름 대신 여유를, 다른 살이들을 탓하기 전에 나의 내적 성찰을 쇼핑을 통해 가르쳐주려 했었나 보다. 이야기가 없는 인연은 매마른 대지에 부는 한줌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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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와 나는 시대가 달랐다.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불새>,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안녕하세요 하나님>, <상도> 정도만 봤을 뿐이다. 문학적 엄숙주의가 판을 치던 7~80년대 문단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으며 소설과 영화를 오고갔던 최인호. 상업주의 소설이 흠이 됐던 시대에 그는 도회적이면서 감각적인 소설을 주로 썼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대중성이 있었고, 인기가 있었다. 정식으로 등단했고 이상문학상도 수상했지만 여전히 그는 '문학'보다는 '소설'이나 '이야기'에 방점이 찍힌 작가였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그는 천상작가였다. 월간 <샘터>에 자전소설 <가족>을 30년간 연재했을 정도로 성실했으며 열정적인 '영원한 청년'이었다. 사실 최인호가 이룩한 문학적 성과에 비해 그에 대한 평가는 미진한 점이 많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최인호가 전후 한국 소설가 중 가장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황석영 선생이 다시 태어나면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 말 속에는 소설가보다는 '시대의'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이 창작한 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찬사를 받고 싶어하고, 더 나아가 흥행성까지 갖추고 싶어하는 작가적 욕망이야말로 창작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 한국의 문단에서는. 그것도 7~80년에는. 그래도 최인호는 해냈다. 문학성과 예술성보다는 이야기의 본연인 재미를 잃지 않고,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작품을 수없이 썼다. 그게 최인호의 힘이자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책을 읽으며 최인호를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피상적으로만 알았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열정적이고 치열한 한 청년이 보여 자세를 바로잡아야 했다. 자신의 가족사를 비롯해 문단에 데뷔하기까지의 과정, 어려운 신혼생활과 작가생활을 담담히 적은 글. 자서전 같기도 하고 생활 에세이 같기도 한데, 곳곳에 소설 같은 장면이 많아 역시 천상 소설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결혼을 하고 목욕탕 윗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물바다를 만났을 때의 장면은 너무 웃기고 슬프고 판타스틱해서 멋진 단편소설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물난리가 나 가재도구들이 복도에 두둥실 떠나니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는 대목은 소설가의 일상 자체가 모두 소설감이다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였다.
읽으며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 더욱 감정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변호사였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짧은 추억, 난쟁이 같이 작았던 어머니와 형과 누나들에 대한 이야기, 열정적이면서 영화같은 사랑을 나눈 아내와 자식들의 이야기까지. 작가가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꼭 최인호를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힐링이 되는 책이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듯. 한 명의 소설가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해가는지가 자서전 형식으로 잘 나타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최인호의 소설과 에세이를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소설들이 생각보다 많이 절판되어 최근 에세이부터 차근차근 살펴볼 생각이다.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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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일어시라라!
최인호가 집필을 중단했다. 최소한 ‘샘터사’에 매월 402회를 연재하며 36년 하고도 반년을 이어온 장수연재소설 <가족>만은 그랬다. 원인은 ‘암’이었다. 2008년 연재를 잠시 중단했다가 지난 해 3월 재개했었지만 10월호를 끝으로 연재를 끝냈다. 소설<가족>은 소설판 <전원일기>요, 한국판 ‘월튼네 사람들’(30여 년 전 매주 방송하던 미국 드라마)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질의 대하소설’이라면, 가족의 이야기는 어떻겠는가? 바람잘 날 없는 사건과 에피소드 속에서도 항상 끝은 훈훈하고 정겨운 가족애家族愛를 느끼게 하는 국민소설이다. 이 소설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집에서도 일어났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인호의 글을 읽으며 지난 날 ‘우리의 그 날’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마치 옆집 최씨 아저씨네 이야기를 담장 너머로 엿들으며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그 날 이렇게 하고 싶다’고 배우게 한다.
하지만 소설<가족>의 백미는 최인호의 입담이다. 그는 타고 난 글쟁이다. 글이라기보다는 ‘말’을 읽는 기분, 그래서 아이에서 노인까지, 무식쟁이에서 긴 가방끈에 이르기까지 정겨이 읽힌다. 정좌할 필요도 펜을 들고 읽을 필요도 없다. ‘말’을 듣는데 그런 것이 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냥 고개를 들어 책에 박힌 글에 눈을 대면 된다. 그러면 술술 읽힌다. 좀 더 읽다보면 중저음의 개구쟁이 같은 최인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뿔싸, 그런 그가 글쓰기를 중단했다. 타고난 재담꾼이 입을 다문 것이다. 대신 조용히 책 한 권으로 그 변辨을 대신했다. <인연因緣>을 읽었다.
인연은 만남이다. 그리고 만남을 인식하고 괘념掛念하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그래서 인연은 앎이고, 기억이고, 추억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우리는... 추하고 멍청하고 따분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치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는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가 인연이라 인식하고 기억하며 추억하는 것은 내가 갖지 못한 무엇을 가진, 그래서 똑똑하고 멋진 그를, 그녀를,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연>은 최인호가 사랑한 사람과 물건, 공간 그리고 일들을 기록해 놓은 수필집이다. 지난 해 펴냈던 <산중일기>가 나, 최인호를 돌아보는 글이었다면, 이번 글은 스스로 ‘나는 아름다운 팔불출’이라고 말했듯 거의 평생 ‘가족’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이야기 했던 그가 ‘또’ 사랑하는 인연들을 이야기 했다.
지금의 최인호에게 ‘인연’은 그리움이다. 스치고 지나갔던 순간의 기억이 시간이 흐르고서야 인연인줄 새삼 깨닫고 그리워진다. 몸에 병을 달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 시작한 그에게 세상은 모두가 인연이고 담고 싶은 그림이었다. 그가 돌아본 인연들은 모두가 아름답고 소중했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는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연인의 그것보다 더 지극하고 간절했다. 세상 어느 자식 안 그럴쏘냐마는 기억이 정말 날까 싶은 ‘당신(어머니)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묘하게도 기억하고는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둔해서, 뚱해서, 혹은 창피해서 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네와는 사뭇 달랐다.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마음은 단 몇 줄에도 사랑이 뚝뚝 뭍어난다.
“그래도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인사와 동시에 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언제나 되풀이되었는데, 그때마다 내가슴이 아팠던 것은 어머니의 다리가 점점 더 말라간다는 사실이었다. 다리를 못쓰시게 되고부터는 말라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돌아가실 무렵에는 뼈만 남아 있었다. 다리를 주무르다가 나는 몇 번이고 울곤 했다. 어머니의 다리에서 생명이 희박해져가고 있는 걸 나는 손바닥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사십여 년 동안 줄곧 안마로 모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아직도 내 손에 남아 있는 그 촉감, 그 살의 느낌, 살아 숨 쉬던 그 생명력, 어머니의 부드러운 살결, 매듭을 꺾을 때마다 뼈마디가 분질어리는 그 경쾌한 소리, 유난히 따뜻하던 어머니의 체온, 그 모든 감촉들이 내 손안에 분명히 남아 있는데도 두 분은 내 곁을 떠나고 안 계신다. “인호야, 어디 있니? 다리를 좀 주물러다오.” 가끔 한밤중 잠에서 깨어 멀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본문 275 쪽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나 되었을까... 독감에 학교를 조퇴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끄응’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앓는 나에게 내 엄마는 누런 양은 대야에 찬 물을 담아 유난히 희고 흰 타올을 적셔 열로 인해 강바닥같이 터버린 입술을 적시고, 정갈하게 접어 머리에 얹어주셨다. 차가운 각성 뒤에 오는 은근한 서늘함에 위로받아 잠이 들었나보다. 깨고 보니 안방 풍경은 그대로인데 있어야 할 내 엄마가 보이질 않았다. 두 세평 남짓의 방안이 학교 운동장만큼 커 보였고 휑 하는 바람소리마저 들리는 했다. 난 울었다. 혼자 남은 무서움 때문이 아니라 혼자 남겨진 그 느낌에 울음이 터졌다. 서러움, 난생 처음 든 그 기분은 서러움이었다. ‘우왕’하고 울던 것이 곡을 하듯 늘어지고 잦아들만 하면 끊어질까 또 목청을 높여 울었다. 내 엄마가 얼마나 먼 곳에 있을까 가늠하며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울음에 내 귀가 아팠다. 깨어나면 떠먹일 찬거리를 사러 나갔다 온 내 엄마는 “내 새끼, 언제 깬거야. 어휴 그래. 혼자 있어서 운거야?” 하며 잰걸음으로 달려와 나를 안아 등을 두드려줬다. 톡.톡.톡. 그 두드림은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였다. 더 이상 누릴 수 없음은 그리움이 된다. 단 한 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와 숨결, 그리고 따뜻한 기운은 최인호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이 된다. 그의 손바닥이 기억하는 부모의 느낌들은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는 교감의 잔상이리라. 읽다 보면 그 간절함에 나마저도 울컥 울컥 속이 상해진다.
인연의 시작이 만남이면 끝은 헤어짐이다. 최인호는 이 책으로 소중한 인연들에게 ‘내가 너희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을 걸고 있다. 사람 좋은 배우 안성기, 넉살 좋은 영화쟁이 배창호, 애틋한 사랑 이해인 수녀님, 그리고 삼라만상의 풍경을 만드는 자연까지. 심지어 적막마저도 ‘내가 너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다. 글을 읽다가 문득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생각났다. 파킨슨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모리선생은 어느 날 지인들을 모두 불렀다. 자신이 떠난 후 듣지 못할 ‘애도의 글’을 미리 듣고 싶어서였다. 지인들의 낭독에 때로는 웃음으로, 한 줄기 울음으로 말없이 답하는 모리선생은 슬프도록 행복해했다. 이 글은 어쩌면 최인호의 미리 써둔 연서戀書인지 모른다. 사랑은 먼저 주는 것이고 표현해서 드러낼 때 완성되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의 사랑들에게 글로써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지으며 많은 미소와 눈물을 흘렸으리라.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행복했으리라.
“아아, 나는 돌아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가서 김유정의 팔에 의지하며 광명을 찾고 싶다. 그리고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싶.다.“ 본문 266 쪽
‘병중인 그‘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 나는 지난 해에 이어 ’또‘ 수필집이 나왔다는 소식에 불뚝 화가 났다. <잃어버린 왕국>과 <해신>을 통해 나라를 걱정하고,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등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지닌 청춘들을 이야기하던 그가 짧은 숨의 ’수필집‘이냐 싶었다. 한국 현대문학의 한 기둥인 그에게는 우리의 오늘을 대신 고민하고 위로를 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코맥 매카시나 필립 로스처럼 이순耳順의 최인호만이 뱉어내야 할 글들이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남겨야 할 대단원의 ’완성작‘을 은근히 기대했던 터라 부아가 나서 하마터면 이 책을 읽지 않을 뻔 했다.
최인호에게 요구한다. 일어나시라. 천막 안에 청중이 그득한데 연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혼이 나야 한다. 단 한 명의 청중이라고 천막 안에 있다면 연사는 아플 자격도 없다. 당신은 아직 토하고 쏟아내야 할 말들이 많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당신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로 천막안으로 들어오시라 요구한다. 어서 빨리 돌아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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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다.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되게 되는데, 첫 인연은 바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아빠와 엄마였다. 그 후 형제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면서 관계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면서 삶은 더 즐거워지고, 더 행복해지고 더 살만해진다. 인연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건조하고 무의미했을까? 사회는 혼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인연’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숨통일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전만해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특히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나이가 한살 두살 들어가면서 에세이라는 장르가 더 끌리고 좋아진다. 소설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주를 이루지만, 에세이는 작가의 진심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나와 닮은 모습에 공감을 느끼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작가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소설 최인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최인호를 만나게 되면서 이는 비록 옷깃이 스치지 않았지만 소중한 또 하나의 인연이 맺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에세이는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작가를 만나게 되는 에세이는 비록 작가가 나를 알지 못할지라도, 나는 작가의 마음을 엿보면서 그를 알게 되고, 그와 공감하고 그에게 배우고 그를 통해 생각함으로써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또하나의 인연이 된 셈이다. 이것이 바로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아닐까. 작가 최인호는 자신을 인연에 대해서 서툴게 배우고 서툴게 익숙해지는 사람이라 말한다. 사람과의 인연, 풍경과의 인연, 사물이나 시간과의 인연과 마주하고 상대하는 일은 서툴고 어리숙했던 그는 헤어지거나 이별하기를 싫어하는 성격탓에 오래된 옷,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데, 내 손때가 묻은 물건이 집안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는 것에 대한 미련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이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늙어가면 추억의 속도도 부푼다는 말처럼 손때 묻은 그 물건에 담겨진 추억과의 헤어짐에 익숙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모과 나무에 대한 인연, 배우 안성기와 배창호 감독과의 인연, 자신이 쓴 글을 소중히 여기던 독자와의 인연, 버려진 화분과의 인연 그리고 돌아가신 황순원 작가와의 인연 등 많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물건과의 인연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인연에게서 느꼈던 또 하나의 행복, 즐거움과 새로움을 추억하고 있다. 저자가 그러하듯, 개개인에 있어 가장 큰 인연은 바로 부모님, 배우자 그리고 자식일게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과 누나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을 함께 들여다보며, 나는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 가족과의 소중한 인연에 대해 무심하지 않았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지금까지 나와 함께했던 수많은 인연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나를 현재에 있기에 수많은 인연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소중함에 잠시 내 삶을 되돌아 잊었던 인연을 기억을 더듬어 되짚어 본다. ![]() 우리는 흔히 ’빽’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인연을 원하곤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든든한 ’빽’을 통해서 성패의 좌우가 결정되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을까?......라는 자조적인 푸념에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인연에 대한 소중함은 간과하고 있다는 내포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이미 우리 인생의 인연들을 숱하게 만나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 사람이 우리 생에 정말 중요한 인연이란 걸 모르고 지나쳐왔을 뿐." 이라고. 생에 크고 작은 인연이라 따로 없다. 우리가 얼마나 크고 작게 느끼는가에 모든 인연은 그 무게와 질감, 부피와 색채가 변할 것이다. 운명이 그러하듯 인연 또한 우리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본문 52p) 저자는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용기라고 말한다. 나는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혹 누군가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인연을 기다리며 나와의 인연은 아주 작은 인연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는 것! 그것은 바로 내가 그 누군가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사랑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완두콩 꽃과 딸기 꽃은 수수해서 눈에 띄지는 않으나 때가 지나 꽃의 영광이 시들고 나면 우리에게 그 열매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 열매를 맺는 꽃들은 그 어떤 꽃이든 겸손하고 수수하다. 아아, 저 완두콩을 닮을 수만 있다면. 내가, 네가, 우리 집 가족들이, 내 이웃들이, 모든 사람들이 장미를 닮으려 하지 아니하고 하찮은 완두콩 꽃을 닮을 수 있다면. (본문 312p) 좋은 인연이란 바로 완두콩 꽃과 같은 것은 아닐지 싶다. 내가 원하는 화려한 ’빽’을 지닌 인연이 아니였을지라도, 내가 만난 인연들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내 삶을 지탱해주었고, 나도 모르게 내 인생에 전환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 인연들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았으나, 완두콩과 딸기처럼 내 삶을 이끌어주었던 소중한 인연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화려한 장미는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완두콩 콩처럼 그들의 삶에 좋은 추억을 줄 수 있는 인연이 되고자 한다. 저자 최인호는 <<인연>>을 통해서 다른 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용기를 내게 주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란 말인가. ![]()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지금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지금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걷고 있다. 지금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주고 있다. 지금 까닭 없이 죽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본문 324p) 우리는 홀로 살아가고 있지만 정녕 혼자가 아니라고 릴케는 ’엄숙한 시간’이란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있다. 이 책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 시를 통해서 나는 나를 위해서 울고 웃어줄 내 소중한 인연들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나도 기꺼이 그들을 위해서 울고 웃어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를 배웠노라고....말하고 싶다. (사진출처: ’최인호의 인연’ 본문과 표지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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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생에 크고 작은 인연이란 따로 없다. 우리가 얼마나 크고 작게 느끼는가에 모든 인연은 그 무게와 질감, 부피와 색채가 변할 것이다. 운명이 그러하듯 인연의 크고 작음 또한 우리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 최인호의《인연》중에서 - * 스치듯 맺은 작은 인연이 평생 이어지는가 하면 오래 지속된 큰 인연이 사실은 악연인 경우도 있습니다. 인연이란 삶의 보너스와도 같은 선물입니다. 얼마나 잘 가꾸고 다듬어 가느냐에 따라 자라기도 하고 시들기도 합니다. 빛이 되기도 하고 빛을 가리는 그림자가 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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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최인호의 책들을 즐겨 읽곤 했었다. 그당시에 내가 주로 읽던 묵직한 책들과는 달리, 최인호의 책들은 그다지 무겁지 않으면서도 젊은이의 심금을 울리는 호소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드럽게 풀어가는 문장속에 들어있는 아픔의 힘이 젊음이라는 싱그럽고 또 아픈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과 공명을 일으키며 무거운 시대와 역사에 짖눌리다 휴식을 취하는 학생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한동안 대하역사소설을 쓰는 것으로 문장이 바뀐것 같던 최인호가 수필집을 냈다. 사실 최인호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동안의 최인호의 역사소설은 그 작품의 수준을 떠나서 나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시가은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고, 시대에 따라서 내가 읽고 소화해야 할 책들 또한 넘쳐났던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 이젠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무렵 우연히 이렇게 다시 최인호를 만나게 된다.
인연. 인연을 말하기에 나이란 것이 무엇이 상관있겠는가만, 역시 한 세월을 살아본 사람이 말하는 인연이라는 것이 더욱 질감이 그윽한 법이다. 우리가 잘 아는 피천득의 인연도 긴 세월이 지난뒤에 되돌아보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은근하고 부드럽게 받아들여지며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던가. 최인호 그가 이제 인연을 이야기 할 나이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었다. 학창시절부터 항상 나보다 앞선 나이를 살아가던 그가 아니었던가. 내가 중년이면 그는 나보다 더 앞선 나이를 살고 있는 것이다.
맨 첫 페이지에 인용해서 나오는 죽음을 앞둔 심정을 쓴 시는 자못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뒤의 수필들은 평이한 문장으로 질박하게 쓰여져 있다. 페이지가 쑥쑥 잘 넘어가고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문장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주제가 없어보이는 허허실실의 공백이 주는 여운의 힘은 그리 약하지 않다. 최인호는 이제 글을 그렇게 쓸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작가로 발전을 한 것이다. 주제를 내세우지 않으되 은은히 풍겨나는 은근한 아픔의 사연들.
그의 인품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 그의 소박함도 좋고, 그 소박함 속에서 삶의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못자국을 예리하게 찾아내는 예리함도 좋다. 그렇게 우리는 허위적 허위적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모르는듯,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모든 것을 관찰하면서 또 아무것도 모르는 듯 늙어가는 것이다. 늙어가는 얼굴엔 잔주름이 늘어나고 팽팽하던 피부엔 윤기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쇠하여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아픔은 더욱 강해져간다.
시간의 거대한 힘은 아름답고 싱싱하던 모든 것들을 허물어 버리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도 어쩔수 없는것이 있다. 바로 사람의 삶의 연륜과 그속에서 싹이 트는 세상에 대한 따사로운시선이다.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청춘의 아픔속에서 아무리 찾아 헤메어도 결코 알수 없는 그것. 그 느낌을 최인호는 이 책에서 술술 뽑아내고 있다. 일상의 허술한 이야기인듯이 풀어내는 이야기속에 뼈가 있고 아픔이 있고 소리를 죽여 슬피우는 울음이,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 느끼는 웃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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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게 잃어버린 왕국이었다. 그 책을 시작으로 역사소설에 입문?했고, 이분이 쓴 건 제왕의 문, 길없는길, 유림 등을 읽었다. 수필이나 다른 글은 전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냥 이 분 책이 주어진다면 다른 고민없이 읽어볼까?하고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가 믿는 작가분이라고 할 만한듯.. ^^
투병생활을 하며 천주교에서 발간하는 책자?에 글을 쓰신다는 걸 알았지만 요즈음 내가 책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유림 이후에는 이 분 책을 읽지 않았었다. 그러다 집에서 이 책이 보이길래 읽기 시작!!
책이 참 편안하다.. 오랜 투병생활로 많이 지쳐계실텐데.. 그 동안 살아온 기억, 가족과의 추억.. 옆에 앉혀놓고 조근조근 얘기해주는 느낌이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내는데 나도 나이가 이 분만큼 들고 나면 내 친구들과 이런 기억들을 얘기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때 쓰신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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