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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내나는 잔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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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만난 책 속 세상 중, 이렇게 특별한 세상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상들의 잔잔한 세상이 어느 새 나에게 낯설어져 버린 현실이 슬프기도 하다. '무우,,'하는 소 울음과 흙내, 풀내가 진동하는, 고향같은 푸근한 <워낭>에게 다가가보자.    그릿소가 차무집에 들었다. 노비의 세습제가 폐지되고, 천주교 금지령이 해제되고, 러시아인이 성냥공장을 세웠다는 병술년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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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만난 책 속 세상 중, 이렇게 특별한 세상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상들의 잔잔한 세상이 어느 새 나에게 낯설어져 버린 현실이 슬프기도 하다. '무우,,'하는 소 울음과 흙내, 풀내가 진동하는, 고향같은 푸근한 <워낭>에게 다가가보자. 

 

그릿소가 차무집에 들었다. 노비의 세습제가 폐지되고, 천주교 금지령이 해제되고, 러시아인이 성냥공장을 세웠다는 병술년 어느 겨울 날, 어미 젖도 때지 못한 그릿소가 왔다. 흰별소, 미륵소, 버들소, 화둥불소, 흥걸소, 외뿔소, 콩죽소, 무명소, 검은눈소,,, 어지러운 시국 속, 차무집에 온 그릿소는 자신의 후손들을 통해 차무집과 역사를 같이 해 나간다.

 

사람의 삶을 닮은 소의 운명은 어미소에게서 발굽을 세상 속으로 들이 밀면서 시작된다. 태반과 함께 쏟아져 나온 새끼 소는 코뚜레를 한 후, 쟁이질을 해나간다. 묵묵히 주인의 논답을 일구다가 생을 내고, 새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차무집 소들은 태어난 후 밭갈이 그리고 새끼잉태, 마지막 고기 신세로 변화는 단순한 소들의 인생과는 달랐다. 어미의 혼이 들어간 외뿔소가 나기도 하고, 새댁의 화를 대신해 의병 노릇을 하는 화둥불소도 있다. 

 

<워낭>에는 -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 잔잔한 울림이 있다. 그리고 검은소가 얘기해주는 조용한 감동이있다. 옛적 소들은 사람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수단이기 전에 한 가족이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친구이자, 고단하던 삶을 함께해 주는 파트너였다. 그런 '소'가 어느 새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는다. 농작방식의 변화, 기계의 생활화,,, 삶의 진보와 비례하여 인간의 마음 가짐은 반비례했기 때문이리라.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하며 아끼던 소를 밭갈이 '능력'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적하는 기계들의 등장에 냉정하게 내쳤을 뿐이다. 그렇게 소는 우리 삶에 터전을 잃었다.

 

결론이나 대안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논하지 말자. <워낭>은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라는 뜻처럼 투박하지만 잔잔하다. 그렇게 우리가 잊고 지낸 흙과 자연과 삶과 터전에 대해 여운을 준다. 낭랑한 새벽녘 이슬처럼,,,

YES마니아 : 로얄 m*********6 2010.01.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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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처럼 걸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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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낭소리〉를 기억합니다. 순박한 농군 그리고 평생 그와 함께 한 늙은 소의 이야기였습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그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주위를 둘러봤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지만, 의외로 젊은 세대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영화에 공감하고, 함께 감동하고,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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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낭소리〉를 기억합니다. 순박한 농군 그리고 평생 그와 함께 한 늙은 소의 이야기였습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그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주위를 둘러봤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지만, 의외로 젊은 세대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영화에 공감하고, 함께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중 태어나 단 한 번도 소를 직접 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또 소의 등을 쓰다듬거나, 여물을 쑤어 준 경험이 있는 친구들도 적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저 모두 우직한 소의 일생에 같은 감동을 느꼈을 뿐입니다.

 

이 책은 격동의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살아온 소들의 이야기입니다. 120년 간 한 집의 외양간을 대대로 지켜온 어떤 소의 가문 이야기입니다. 노비제가 존재했던 먼 옛날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까지, 사람은 4대, 소는 12대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강원도 우추리 차무집 외양간을 지켰던 많은 소. 그들은 주인과 함께 땅을 일궜고, 자손을 낳았으며, 때론 고기로 때론 주인집 아들·딸의 혼사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팔려나갔습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소를 제 식구로 여겼습니다. 먹을 것, 자는 자리 하나 하나에도 사람과 같은 정성을 다했습니다.

 

작가의 유년기가 녹아있는 이 소설은 때문에 묵직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때론 너무 느려 터져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묵묵히 주인과 함께 이 땅을 지켜온 소들. 평생 논밭을 갈고, 많은 새끼를 낳고, 그러다 자신의 몸뚱이마저 온전히 사람에게 내어주는 소들. 개와 더불어 소는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특히 이 땅의 소들은 온전히 인간과 함께 지내온 가족이었습니다.

 

소에 대한 작가의 진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돕니다. 이렇게 한 가족과 같은 소들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말입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만든 추악한 시스템으로 소들을 가두고, 살찌우고, 다시 도축하는 과정. 그리고 그 비정상적, 반자연적 행태로 인해 생겨난 병들로, 다시 소들을 산 채로 땅에 묻고, 인간마저 위험에 빠뜨려 버린 지금. 우리는 과연 소보다 나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끄럽고 무참하고 너무나 미안합니다. 소들에게, 모든 자연의 친구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 가장 먼저 한 짓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었습니다. 어떤 후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사육된 소를 죽여 만든 고기를 수입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바다 건너 헤아릴 수 없이 먼 곳에서 키워지고, 죽임을 당한 소들의 고기를 먹습니다. 단지 싸다는 이유로. 물론 싸다는 그것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혜택이지만.

 

생명에 대한 경시, 자연에 대한 무책임은 온전히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소가 건강하지 못한 세상, 강이 건강하지 못한 세상엔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이 만든 돈 때문에, 소중한 소들을, 소중한 자연을 무참히 살육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을, 자연의 생명들을 헤쳤습니다. 굳이 종교적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그 죗값은 반드시 치를 것입니다.

 

한없이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살아온 소들의 이야기. 떨어지는 제 눈물이 부끄럽지 않은, 그런 이야기, 그런 책이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잠시나마 함께 살았던 소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유년시절 함께 했던 내 생애 첫 강아지, ‘복실이’가 그리워집니다. 때론 사람들보다 말 못하는 짐승들이 더 그리워질 때가 있나 봅니다. 오늘은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술 한 잔 해야겠습니다.

그냥 이유도 모르게 주책없이 가슴이 허전한 분들에게 권합니다. 그냥 그렇게 우셔도 됩니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1.1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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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통째로 가는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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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소가 사람처럼 대접받던 시절의 일이 아니라 나무가 나무로 대접받고 소가 소로 대접받던, 지금으로부터 두 갑자 전 갑신·을유·병술 연간의 일이었다.'소가 들려주는 그들의 내력'임을 이미 얼핏 듣고 책을 펼쳤다. 난 흙과 풀, 그리고 소에 관심이 많은 황소자리다. 읽은지 얼마되지 않아 등장한 위의 문장에 완독을 결정한다.(여차하면 덮어버리는게 독서 습관이다) 도리없는 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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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소가 사람처럼 대접받던 시절의 일이 아니라 나무가 나무로 대접받고 소가 소로 대접받던, 지금으로부터 두 갑자 전 갑신·을유·병술 연간의 일이었다.

'소가 들려주는 그들의 내력'임을 이미 얼핏 듣고 책을 펼쳤다. 난 흙과 풀, 그리고 소에 관심이 많은 황소자리다. 읽은지 얼마되지 않아 등장한 위의 문장에 완독을 결정한다.(여차하면 덮어버리는게 독서 습관이다) 도리없는 휴머니티나 생태주의쯤으로 흐르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가 소로, 나무가 나무로 대접받던 그 시절 감성의 근원을 찾고자 한 것이 이번 독서의 표지판과도 같았다. 식탁에서 만나는 소가 가장 소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부정하고 싶진 않다) 소가 제 명을 다하고 죽는 일이 전혀 경제적이지 않지만 갑신·을유 때만해도 소를 키우는 일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들 아다시피 밭 갈고, 짐나르고, 새끼를 배고 하는 것이 인간이 길들인 소의 일이였다. 집안의 잔치 때나 대학 등록금으로 큰 소를 팔기도 했다. 경운기가 없고 신작로도 안나고 자동차도 드문 시절, 소는 인간만큼 제 몫을 다해 밥을 벌어먹는 기특한 동물이었다. 

흰별소, 미륵소, 버들소, 화둥불소, 홍걸소, 외뿔소, 콩죽소, 무명소, 검은눈소, 우라리소, 반제기소의 소15대와 차무집 4대가 전하는 <워낭>은 소와 소키우는 집 이야기이기도 하고, 두 갑자 전 갑신·을유·병술년 한국땅의 일이기도 하다. 이런 연대기적 흐름은 '밭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가는 것' 같았다는 무명소의 걸음만큼이나 힘세고 우직한 것이었다. 

<워낭>은 그런 소설이다. 역사의 맥을 짚으면서도 절대 앞세우지 않고, 소를 화자로 내세우면서도 절대 투정하지(여태 못했던) 않고, 인간의 소살림을 전혀 가엾이 여기지 않는 아주 자존심이 센 놈이다. 독자도 눈을 낮출 필요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게 하는 그런 책이다. 소의 내력이 바코드로 축약되는 지금에 그간 소들은 모두 금우궁으로 멀어져 갔지만 결코 아까워할 이야기가 아니다.

소가 얼마나 인간을 위해 않은 희생을 했고, 인간이 또 소만큼 열심히 흙을 일구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면 소설은 참으로 구태스러웠겠지만 작가의 말을 빌려, 소를 소대로 사람을 사람대로 그리려했던 직관이 빛났다. 

크게 하는 일 없이도 늘 쌀밥만 먹고 사는 부자들과 지체 높은 양반들은 농부와 소는 배 속에서부터 일을 배워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떤 일도 그런 것은 없었다.

이런 담백한 한 줄만으로도 필요의 울림을 전하는 <워낭>. 소가 화자로 등장할 때의 피할 수 없는 리얼리즘의 손상은 이 소설의 방향과 어긋날 듯 하기도 했지만, 쇼베동굴 속의 큰 뿔들소가 흰별을 찾아와 나눈 이야기는 그야말로 환상적 전복이었다. 그 때의 소는 '갑신·을유·병술 연간의 일'만이 아니라 뗀석기의 소가 지금의 식탁에 올라와 있는 낯선 전말을 보여주었다. 소가 사육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공생이었음을 알려주는 다섯 번째 꼭지는 잊혀지지 않는다.
 
'온가족이 읽는 소설'이란 상투적인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m*******4 2010.05.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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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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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라는 다큐먼터리 필름을 보면서 한없이 가슴이 뭉클했었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러갔는지 알겠더라고요. 할아버지와 소는 인생의 동반자로 동거동락을 했기에 소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사람과 동물이라는 경계를 넘어 한없는 애정과 서로를 생각해주는 것들이 생겨났을거라는 추측이 들었습니다. 비록 말못하는 소지만 분명 그 마음속에는 그런 마음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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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라는 다큐먼터리 필름을 보면서 한없이 가슴이 뭉클했었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러갔는지 알겠더라고요. 할아버지와 소는 인생의 동반자로 동거동락을 했기에 소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사람과 동물이라는 경계를 넘어 한없는 애정과 서로를 생각해주는 것들이 생겨났을거라는 추측이 들었습니다. 비록 말못하는 소지만 분명 그 마음속에는 그런 마음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 '워낭'역시 인간과 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강원도 시골의 한 마을에서 120년이라는 긴세월에 걸쳐 일어난 소와 인간의 삶의 기록한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설마 소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믿아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소 모르게 소 이야기를 하듯 소들도 사람이 모르는 밤에 사람이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었다.(표지 글 중에서)

 

이야기의 시작은 '그릿소'부터 시작됩니다. '그릿소'는 소가 없는 가난한 집이 남의 집에서 빌려다 키우는 소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갑신정변(1884년)이 일어난 즈음에 노름빚에 팔려 어미와 생이별한 송아지 그릿소가 차무집으로 오게 됩니다. 그릿소는 흰별소를 낳고 흰별소는 화둥불소, 흥걸소, 외뿔소, 콩죽소, 무명소, 검은눈소, 우라리소, 반제기소까지 이렇게 소의 가문은 마치 성경의 한구절같이 아래로 이어집니다. 

 

 

강원도 우추리 차무집 소의 내력은 12대에 걸쳐 내려오게 되며 이 야기의 중심축으로 등장합니다.  그 의미가 무슨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네 사람들이 주인공의 집을 부를때 차무집이라고 불렀답니다.   차무집 소들은 다 이름들이 있는게 특이해 보입니다. 대개의 소들은 이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이 집의 사람들은 소를 소 이상으로 생각하며 보살켜온것 같습니다. 뭉클하고 훈훈하다고 할까요? 그런 아련한 마음들이 전해져옴을 느끼게 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워낭소리에 이어 또다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명이라는 유한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k****7 2010.02.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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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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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소와의 유대관계를 토대로 펼쳐지는 영화로 사람들이 참 많이도 감동하면서 봤다는 말들을 접해 들었다.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흥행한 워낭소리가 바로 그 영화인것이다.워낭이라는 제목을 보니 괜시리 소박하고 순박한 그림이 떠올르게 되면서 읽으면서 감동을 많이 받으면서 읽게 되었다.지금 우리가 소를 보면 농촌에서는 밭을 갈던가 아님 도시에 사는 자식들의 학비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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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소와의 유대관계를 토대로 펼쳐지는 영화로 사람들이 참 많이도 감동하면서 봤다는 말들을 접해 들었다.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흥행한 워낭소리가 바로 그 영화인것이다.
워낭이라는 제목을 보니 괜시리 소박하고 순박한 그림이 떠올르게 되면서 읽으면서 감동을 많이 받으면서 읽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소를 보면 농촌에서는 밭을 갈던가 아님 도시에 사는 자식들의 학비에 보탤려고 팔려지는 소들이 많다. 
그마만큼 소는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들에게는 큰 재산이었다. 
그 집에 소가 있다면 큰 부자로 알고 지내던 시절이었었다.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또 어떤곳은 소싸움이 고장 자랑거리로 되어있는 곳도 있어서 해마다 싸움을 잘하는 놈을 골라 훈련시키고 영양가 있는 여물을 주곤 하면서 키우는 집도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하지만 소고기가 수입되면서 우리네 식탁엔 수입소고기가 올라오게 되었고 어딜 가든 한우는 보기 힘들게 되었다.
얼마전에 광우병까지 일어난 적도 있었다.

이제 [워낭]의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한다.
우추리 차무집에 태어난지 한달도 안된 애송아지 그릿소로 와서 새끼를 배서 낳은 것이 흰별소이다. 
흰별이 커서 코를 뚫게 되었다. 코를 뚫으면서 워낭을 채우게 되는것이다. 소가 움직일때마다 워낭이 울리게 되어있다.
차무집 새댁은 흰별이를 끔찍이 생각했다. 흰별의 행동으로 워낭이 울리는것을 모두 알아차리곤 했었다..흰별의 첫새끼가 죽은것도 가슴아파했다.
나중엔 흰별이 열 네번째까지 새끼를 낳았다. 새끼를 낳은 다음해에 흰별이는 금우궁으로 귀소했다..
차무집 딸이 시집갈때 흰별이를 팔아 쓸려고 했지만 고기가 필요해서 흰별이를 잡기로 한다는것을 흰별이는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금우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동물도 이렇듯 자기가 갈 곳을 알고 있다는 걸 보니 새삼 느껴졌다.
예전에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소도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농촌에서는 큰 잔치가 있을때 소를 잡는데 잡을때 보니 눈물을 흘리더라는 얘기다.. 말 못하는 짐승도 눈물을 흘리다는 얘기에 놀란적이 있었다..
y*****f 2010.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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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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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 오른 것이 작년 극장가를 눈물로 물들였던 독립영화 '워낭소리'이다.  경상도 산골짜기 어느 마을의 마흔 살 된 늙은 소와 여든 살 된 주인, 최노인의 이야기.  소의 수명은 대부분 15년 쯤이라고 하는데 최노인의 소는 마흔이 넘었으니 목숨이 오늘내일이다.  소와 한 식구가 되어 희노애락을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다.  수의사는 기력없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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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 오른 것이 작년 극장가를 눈물로 물들였던 독립영화 '워낭소리'이다.  경상도 산골짜기 어느 마을의 마흔 살 된 늙은 소와 여든 살 된 주인, 최노인의 이야기.  소의 수명은 대부분 15년 쯤이라고 하는데 최노인의 소는 마흔이 넘었으니 목숨이 오늘내일이다.  소와 한 식구가 되어 희노애락을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다.  수의사는 기력없는 소를 진찰하고나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죽기 전에 우시장에 내다팔면 고깃값이라도 받을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고집스럽게 물리친다. 끝까지 곁에 두고 자신과 꼭닮은 늙은소의 임종을 지켜주었으며 집에서 가까운 양지바른 밭에 묻어준다.  그것이 30년 고락을 함께 했던 동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던 것이다.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소의 무덤을 찾아가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돌아온다.  가는 귀를 먹어 다른 소리에는 어두워도 소의 워낭소리만큼은 귀신처럼 알아듣던 최노인이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적 시골 집에 함께 살았던 그 늙은 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중학교 3학년까지 16년을 살았던 우리 집에는 호랑이와 사자빼고는 없는 동물이 없었다.  그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동물이 바로 소였다.  어미가 새끼를 낳고 새끼가 커서 또 어미가 되고 대대로 함께 살았던 동물들은 가축이라기보다는 '한 식구' 개념이었다.  어느 날은 둑방길에서 우리소가 새끼를 낳은 적도 있다.  덩치가 큰 동물이라 어른 여럿이서 영차 영차 어미소로부터 송아지를 이끌어내었는데, 깜짝 놀랐다. 새끼가 어미에게서 떨어지자마자 둑방길을 뛰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어? 쟤가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어린 눈에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표지의 그림이 나에게 큰 정겨움을 준다. 저 남자아이 대신 여자 아이를 그려 넣는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나의 자화상이다.  가끔 내가 정말 그런 경험을 했던가, 환상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16년간의 시골생활은 보석을 주고도 사지 못할 귀한 것이다. 집 채만한 황소나 어미소의 밧줄을 잡고서 둑방에 데려다 묶어 놓으면 되었고 해가 질 무렵이면 순번을 정해서 또 그대로 데려오면 임무 끝!  우리는 서로 같은 집에 사는 식구같은 존재감을 느꼈고 사람에게 저항을 하거나 땡깡을 놓는 반항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소설은 이런 이야기이다.  영화 '워낭소리'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던 이야기가 나의 어린시절 추억과도 오버랩이 되면서 한 권을 읽는 내내 영화속으로 어린시절로 넘나들었다. 그리고 이는 나 뿐만이 아니라  강원도 강릉 출신의 작가 이순원님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도 역시 영화 '워낭소리' 를 본 후에 자신의 친동생과 어린시절 함께 했던 소, 검은눈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소 이야기를 작품으로 엮어보리라 결심했단다.  그 검은눈소는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소이기도 하다. 강원도 대관령 아랫 마을 차무집에 120여 년 동안 대를 이어오던 검은눈소 가문의 선조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로 치자면 1884년부터 2008년까지. 나라의 운명을 뒤바꾸었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도 차무집 소들은 대가 끊이지 않고 탄생하고 또 사라져 간다.  배경이 강원도인지라 그 쪽 사투리맛도 간간히 볼 수 있어 생생하다.

 

  대대로 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보이는 차무집 안주인들의 온정과 보릿고개 시절 사산되어 나온 송아지를 고기로 먹는 대신 땅에 고이 묻어주고 노산으로 위험지경에 빠질세라 늙은 암소에게 교미를 붙이지 않던 사려깊은 차무집 바깥 주인들.  코뚜레를 뚫고 워낭을 달고 보습 달린 쟁기로 논밭을 갈며 둑에 푸른 풀을 뜯어먹으며 힘을 과시하며'소답게' 살았던 옛날부터 지금은 오직 고기만을 내기 위하여 여러 학대를 당하는 안타까운 장면까지, 이 한 편으로 소들의 120년 역사 변천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j*******2 2010.0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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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인간을 이어주는 끈, 워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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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인간을 이어주는 끈, 워낭 |" 내용보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조직 폭력배의 의리와 우정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삼류영화들이 난무하던 2009년 한국영화계에 저예산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하나가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바로 이충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경북 봉화의 한 노부부와 더불어 사는 늙은 일소의 생활을 몇 년간 담은 '워낭소리'가 그것이다.선댄스영화제에 출품되고 부산영화제에서 수상한, 그러나 그 시작은 6개 개봉관에서 보잘것 없었던 '워낭소리'는 고작 2주만에 10만 명, 37일만에 100만 명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인간과 소의 끈끈한 정을 그린 '워낭소리'는 관객석에 있던 한 작가를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지게 했으니, 바로 실천문학사에서 '워낭'을 펴낸 이순원 작가다. 그는 그의 동생이 실제로 친형제처럼 지냈던 검은눈소의 얘기를 바탕으로 120년간 차무집 외양간을 지킨 12대의 소의 역사를 소박한 언어로 담아냈다. 

 

 


'워낭'은 구한말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뜨거웠던 2008년까지 120여 년을 무대로, 강릉의 평범한 농가인 '차무집' 사람들과 그들이 키우던 소들의 이야기다. 

 

 


차무집 식구들은 걸레 대신 자신의 먹거리를 닦는 행주로 소의 얼굴을 닦아주고, 일년에 고기 한 점 먹을까말까하는 가난 속에서도 어미 뱃속에서 죽어 나온 송아지를 고이 묻어준다.  차무집 사람들에게-또는 그 당시 농사를 짓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는 사육 대상이 아니라 '농경을협업하는 동업자들'이자 식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소를 '식구'와 같은 어원을 지닌 단어 '생구'라 부른다. 소 역시 워낭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통해 차무집 사람들과 소통한다. 엄마젖을 떼기도 전에 차무집으로 왔던 그릿소는 떠날 날을 알고 곡식 낱알과 콩이 푸짐하게 섞인 여물을 반이나 남긴다. 외양간을 떠나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서글피 울어댄다, 무우~!  장터에서 우차를 끌게된 화둥불소는 일본 순사에게 고초를 겪은 주인을 대신해 경찰서를 부순 후 목숨을 온전히 내어 놓는다.

 

 


산골 농가를 떠올리게 하는 순박한 언어로 전개되는 줄거리 중간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무단점령이나 한국 전쟁 같은 역사적 사실이 짤막하게 곁들여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틱하고 서글펐던 구한말의 역사는 감동적인 이야기의 아름다움과 대조되며 처절하게 배가시킨다.

 

 


흰별소, 미륵소, 버들소, 화둥불소, 외뿔소, 홍걸소, 콩죽소.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이름들이다. 이들은 우리와 더불어 살다 자신까지 우리에게 온전히 내어주고 금우궁으로 올라간다. 금우궁 어디선가 형제의 뼈와 살이 섞인 사료를 먹어야 하는 자손들의 끔찍한 운명을 지켜보고 있을게다.

b********n 2010.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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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사람의 공존이 있던 시대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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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소를 한식구로 생각하며 키운 강원도 강릉의 평범한 농가인 우추리 '차무집' 사람들  4대와 그들이 키우던 소 12대의 이야기이다. 시대적 배경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부터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2008년까지 벌어진 약 120년간에 걸친 소가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자란곳이 시골이었고 그 연배에서 어린시절  겪었던 소에 대한 기억들이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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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를 한식구로 생각하며 키운 강원도 강릉의 평범한 농가인 우추리 '차무집' 사람들  4대와 그들이 키우던 소 12대의 이야기이다. 시대적 배경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부터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2008년까지 벌어진 약 120년간에 걸친 소가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자란곳이 시골이었고 그 연배에서 어린시절  겪었던 소에 대한 기억들이 아주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소설은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당장 젖을 먹어야 하는 애송아지가 어미와 헤어져 기진맥진울면서 아직 매서운 날씨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채 마당으로  들어섰다....치마로 닦아주기가 잘 안닦이는지 새댁은 부엌으로 가서 행주를 가져왔다. 솥 위에 올려놓아 따뜻하게 데워진 행주로 다시 코를 풀게 하듯 송아지의 코언저리와 입가, 눈가를 싹싹 닦아주었다. 소들도 누가 나를 귀하게 여기는지, 누가 나를 애틋하게 여기는지 아무리 어릴 때라도 알 것은 다 알았다. 식구들의 밥솥과 밥그릇을 닦는 수건보다 용도가 더 중한 행주로 송아지의 코를 닦아주고 입을 닦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그 마음을 어린 송아지인들 왜 모르겠는가(p.27)

 

그릿소, 흰별소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차무집 사람들은 걸레 대신 행주로 소의 얼굴을 닦아주고, 밥을 먹다가 소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의 밥을 그대로 여물에 부어주고, 어미 뱃속에서 죽어 나온 송아지를 고이 묻어주고 소들 식구로 여기며 살았던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방영한 다큐를 보았었다.  '키르키즈스탄' 사람들은 일생에 3마리정도를 만난다고 한다. 말의 수명이 짧으니 3마리를 만나게 되면 그들의 수명도 다한다는 이야기이다. 세번째 말과 함께 살고 있는 그가 말에게 보내는 눈빛에서는 진한 연민도 느껴진다. 말을 식구와 같이 생각하며 항상 보살피며 말과 함께 같이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누구나 무엇에 대한 그리움,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소설은 그러한 그리워지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게되는 내 삶의 많은것들을 더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의 고향 강릉에선 소를 '생구'라고 부른다고 한다. 생구는 '식구'와 어원이 닿아 있는 말로 소를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식구처럼 대했다는 점이다. 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는것은 초등학교때 시골의 외가집에 가면 늘 만나던 외양간의 커다란 황소이다. 비록 무섭게 보이는 큰 뿔을 가지고 있었지만 솔방울만큼 커다란 눈망울로 인해 느껴지던 순한 소였던것으로 기억된다. 그 소는 분명히 일소였다. 농사철이면 늘 쟁기를 몸에 달고 밭을 갈던 힘이 아주 센 일소였었다는 것과 해가 질때쯤이면 늘  소를 먹이기 위해 커다란 가마솥에 짚을 썰어넣고 소죽을 끓였었고 그 소죽냄새가 지금도 생생하게 나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때문인지 나의 마음속의 시골은 항상 그 소죽 냄새와 함께 굴뚝에서 피어나던 연기가 짙게 깔려 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기술의 발달로  농기계들이 과거의 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것은 농경사회에서 사람과 소가 맺었던 친밀한 관계가 사라져 버렸음을 의미하며 과거 소가 그들의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식구와 같은 대접을 받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야기가  촛불시위라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연결되버린 현실이 많이 불편해진다. 오직 사료로 사육된 고기를 제공하는 역할의 소로 전락해버린지 오래이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인간과 소가 정서를 주고 받으면서 살았던 아름다웠던 그 시절로만 가보고 싶었고 또 그 시절만이 그리웠었던 것이다. 이제는 시골에서 소를 보아도 그 소죽냄새가 바로 느껴지지 않으니 더 더욱 그렇다.

 

k****0 2010.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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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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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둘레길, 올레길, 늠내길 등 보도여행이 인기다. 각 자지단체마다 트레킹 코스 개발이 유행일 정도다. 지난 가을 강원도의 백두대간과 동해의 푸른 바다를 연결한 ‘바우길’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원도하면 유난히 추억이 많은 내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정동항을 거쳐 남항진까지 잇는 그 길을 걷고 걸었다. 바우길은 10개의 구간으로 구성해 강릉의 주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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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둘레길, 올레길, 늠내길 등 보도여행이 인기다. 각 자지단체마다 트레킹 코스 개발이 유행일 정도다. 지난 가을 강원도의 백두대간과 동해의 푸른 바다를 연결한 ‘바우길’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원도하면 유난히 추억이 많은 내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정동항을 거쳐 남항진까지 잇는 그 길을 걷고 걸었다. 바우길은 10개의 구간으로 구성해 강릉의 주요 관광지와 천혜의 자연을 도보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워낭’은 그런 후에 만난 책이라 읽는 동안 그 소박하고 친근했던 바우길을 생각하고 사진을 보고 그곳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 평시보다 2-3배 늦게야 책을 놓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와 인간의 백년사를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순원의 작품은 아날로그적이라 더욱 좋다. 작가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빚어낸 작품들은 그 배경이 어디이든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이 책에서도 작가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성장이라는 부분에 집착하는 부분을 엿볼 수 있다. 느릿느릿 대관령 고개를 넘는 노새처럼 아련하고 슬픈 눈빛과 손짓으로 그려낸 ‘워낭’ 역시 성장소설이다.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권할 수 있는 가족 성장 소설이다. 1884년 갑신정변에서 2008년 광화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현장까지 120년 한국근현대사를 주변 배경으로 삼아 소의 눈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 이순원은 강원도 출생으로 고향에 대한 남다른 정을 ‘워낭’을 통해 보여준다. 강원도 깊은 시골, 노비제도가 폐지되든 말든 바깥세상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곳인 우추리 차무집 외양간에 어느 날, 어미와 생이별한 그릿소가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릿소는 차무집 외양간의 큰할머니가 될 흰별소를 남기고 떠난다. 소의 계보를 보자면 그릿소-흰별소-미륵소-버들소-화둥불소-흥걸소-외뿔소-콩죽소-무명소-검은눈소-우라리소-반제기소로 이어지는 차무집 외양간 12대의 내력이 잘랑잘랑 맑은 소리를 내며 바람을 흔드는 워낭처럼 펼쳐진다.

 

여기에 소를 내 어미처럼, 내 자식처럼 아끼며 살아가는 차무집의 4대에 걸친 내력 또한 아름답게 그려진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바우길과 내가 어린 시절 잠시 살았던 청주를 잊지 못했다. 사무실 책상에서 책을 손에 들었지만 이미 나는 들판위에서 소와 순수한 교감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차무집 가족들이 크고작은 상처를 소들로 인해 이겨내듯, 내 현실의 작은 어려움이 그렇게… 그렇게… 벗겨지리라 기대해보았다.

 

h*****1 2010.0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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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정말 고맙다, 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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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정말 고맙다, 소들아!!-    사실 도시에서 살아서 인지 소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다.  큰집이 시골이라 초등학생 시절에 한 번 가면 일주일 정도씩 2~3번  놀러 갔었는데 그 때  외양간의 소를 본 기억과 큰 엄마가 소에게 줄 짚을 작두에 썰어 마당의 솥에 불을 때서 끓이신 후 소에게 먹일 여물인가를 만들어 먹이던 일,  그리고 외가에 역시 어릴 때 놀러 갔다가  외양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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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 -정말 고맙다, 소들아!!-
 
 사실 도시에서 살아서 인지 소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다.  큰집이 시골이라 초등학생 시절에 한 번 가면 일주일 정도씩 2~3번  놀러 갔었는데 그 때  외양간의 소를 본 기억과 큰 엄마가 소에게 줄 짚을 작두에 썰어 마당의 솥에 불을 때서 끓이신 후 소에게 먹일 여물인가를 만들어 먹이던 일,  그리고 외가에 역시 어릴 때 놀러 갔다가  외양간의 옆에 재를 쌓아두고 거기서 큰일을 보게 하신 후 재로 덮어두었다 비료로 사용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꿈처럼 어렴풋이 생각나는 정도다.  지금이나 그 때나 겁이 많은 나는  외양간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는데  벌써 30년전쯤의 일이니까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그 외양간의 냄새와  이른 아침 큰 엄마가 끓이던 쇠죽냄새,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눈망울만은 또렷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소들이 죽고 나면 하늘나라의 '금우궁'이라는 곳에 올라가 살게 되는데 , 이야기 속에서는 소가 글의 화자가 되어 하늘나라에서  자신들의 집이었던  살아생전 우추리 차무집에서의 생활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웃에게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받는 조건으로 그 집의 소를 데려다가 새끼를 볼때까지 대신 키워주는데  그 소를 '그릿소'라고 한다.  가난했던 차무집에서 처음 기르게 된 소는 바로 이웃의 '그릿소'였다.  그리고 '그릿소'를 키워내고 드디어 처음 얻게 된 그릿소의  송아지 '흰별소'는 차무집의 진정한 첫 소가 된다.  이마에 하얀 별 모양이 있다고 해서  '흰별소' 라는 이름이 붙여진  흰별소로부터 이어져, 낳고 자라고 낳고 자라기를 반복하면서  생겨난 미륵소, 버들소, 화둥불소, 흥걸소, 콩죽소, 검은눈소......까지  소의 성장과 함께 차무집이라는 한 농가의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에서, 손자......까지 이어지는 삶이 함께 그려진다.  차무집에서의 소는  때로는  아들의 결혼잔치를 위해 기쁘게 잔치음식이 되어주기도 하고,  멀리 시집 온 외로운 며느리의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고,  일본 지서에 일을 위해 갔다가 일본인에게 매를 맞는 주인을 보고 일본지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려 앙갚음을 해주기도 하고,  아내를 먼저 보낸 차무집 어른에게는  아내같은 존재가 되어 주기도 하고,  불구인 세일이에게는 사람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되기도 한다.  
 
  어영부영 하다가  영화 '워낭소리' 극장에서 상영되는 시기를 놓쳐버리고, 여기저기 매스컴에서 간단히 소개된 내용정도만 알뿐 아직 보지도 못하고  리스트목록에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읽게 된 이 책 <워낭>. 시골에서 살지도 않았고 소에 대한 추억도 없던 나는  중간 중간  정말이지 엄청 울면서  읽어나갔던 책이다.  영화를 먼저보아  내용을 알고 있고, 소에대한 추억이 많았다면 또 다르게 다가왔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최근 읽은 책중에 최고의 감동을 느낀 책이었다.  그리고  참 따뜻하고 예쁜 책이었다.
지금은 모두 '금우궁'에서 편히 살고 있는 흰별소, 검은눈소, 화둥불소......들아. 정말  애들 많이 썼구나. 그저 고마움 마음이란다.
YES마니아 : 골드 n***r 2010.0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