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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군중 되기 (베르나르 마리스,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똑똑한 군중 되기 (베르나르 마리스,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내용보기
똑똑한 군중 되기 (베르나르 마리스,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우리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길 희망한다. 막상 그 집단에 자신이 소속이 되면, 개인은 집단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 모색도 다양하다. 그러나 일단 이들이 '개인' 이 아닌 '군중' 이 되었을 때, 똑똑한 개인은 사라진다.   창비에서 2009
"똑똑한 군중 되기 (베르나르 마리스,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내용보기
 

똑똑한 군중 되기

(베르나르 마리스,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우리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길 희망한다. 막상 그 집단에 자신이 소속이 되면, 개인은 집단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 모색도 다양하다. 그러나 일단 이들이 '개인' 이 아닌 '군중' 이 되었을 때, 똑똑한 개인은 사라진다.

 

창비에서 2009년에 출간한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는 공동체적인 삶에서 자본주의의 불행을 경제학의 관점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 베르나르 마리스는 프랑스 파리 8대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옮긴이 조홍식은 그와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숭실대 정치 외교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책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장단위의 개념으로 편집되었다. 특히,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고전경제학자의 원문을 '원문 읽기' 라는 코너를 마련해 실어 줌으로써, 생각할 꺼리를 제공했다. 주석을 제외한 전체 책의 분량은 395페이지로 여느 소설책의 분량과 엇비슷하다.

 

케인즈의 경기활성화란 노동자에게 구매력을 제공함으로써 재고를 없애고 공장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p.51)

 

정보 비대칭성이란 아주 단순하게 '네가 모르는 것을 나는 안다'는 상황, 즉 정보를 혼자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 은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진 않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비밀 숭배와 불투명성은 사업의 기본이다.(p.76)

 

흔히들, 요즘을 IT 산업의 시대, 정보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보 독점화' 현상이 비일비재하고, 그 가치는 돈이 되는가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갖는 명백한 오류이다. 현상을 이분법 하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나, 좀 더 단순하여 설명하자면, 이제 세계는 정보를 소유하는 계층과 정보를 소유하지 못하는 계층으로 나뉜다. 일정량의 정보, 말하자면 돈이 되는 정보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노동자가 노동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아야한다. 다시 말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더 이상 속담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즉흥적인 모방 없이 지식의 발전이란 불가능하다. 상인들은 원래 훌륭한 모방자다. 그들은 거의 비슷한 것을 아주 잘 만들어낸다. 그들은 재주가 뛰어나고, 운이 좋거나 보호받는 짝퉁 생산자들이다. …… 호모 코피안스, 즉 베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p 170~171)

 

맑스는 자본주의를 A - M - A' 주기가 끊임없이 확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A는 돈(argent), M은 상품(merchandise) 이며, A'는 좀 더 많은 돈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재생산도 통제한다. 왜냐하면 M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도 포함하며, 동시에 노동을 만들어내는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172)

 

여기에서 우리는 '지식의 발전' 이라는 말을 정리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철학이나 학문적 탐구로서의 지식을 말 할 수 도 있지만, 상품 생산의 기술적 진보를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상품 생산의 기술적 진보는 어떻게 이뤄지는 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수요와 공급의 쌍선에서 접함을 이루는 지점을 우리가 '가격'이라고 정의 했을 때, 적정 수준의 품질이며, 나아가 광고를 통해 획득한 브랜드의 가치이다. 사실상 이 시대는 소비하는 상품의 시대가 아니라 소비하는 브랜드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구매 충동 욕구를 자극하고, 그것이 마치 그 사람의 품격인 것 마냥 치장한다. 따라서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는 맑스의 말 대로 상품이다. 노동자 역시 상품을 소비하는 집단의 범주에 포함되며, 또 상품을 생산하는 집단에도 포함되기 때문에, 상품이라는 말은 이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더불어 시장은 변화무쌍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또한 안정성을 지향하기도 한다. 잘 팔리는 것, 그것을 우리는 '유행'이라 말한다. '유행'은 고도의 자본과 기술력을 요구하는 심리 게임이다. 쌍 방향에 이뤄지는 '시대적 요구' 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장식 될 수 도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장사 잘 되는 것을 박수 치며 '좋겠네요.' 라고 말할 상인은 단 한명도 없다. 그 시장에 자신도 뛰어 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방은 필수불가결한 수단이 된다.

 

네트워크는 또 소비한 뒤에야 품질을 사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품 경험'의 확산을 소리 소문을 통해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포인트다. "인터넷의 상호작용은 시장 상품의 잠재적 실용성에 대한 각자의 불확실성을 축소시켜준다. 예를 들어 아마존같은 싸이트에 책과 음반에 대한 의견과 비판,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p.224)

 

『돈의 철학』(Philosophe der Geldes)의 저자 게오르그 짐멜은 인간관계의 비인격화에 충격을 받았다. 비인격화란 사람과 사람, 주공과 충신,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이들 관계에 있었던 애정이나 자질, 경쟁이나 폭력 등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비인격화는 화폐경제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다. 돈을 통해 재물과 그 가치는 측정 가능해진다. 따라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있었던 주관적 차원은 사라진다. (p244)

 

소비 사회에 있어서, 가치 판단은 선과 악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을 벗어났다. 기준점이 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돈'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경제적 생활을 얼마나 더 지속하고 안락할 수 있는가는 돈에 의해 결정된다. 국내에서 당신은 왜 저축을 하십니까 는 주제로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때 1위 였던 것이 내가 아프면 나를 돌봐 주는 사람이 없다 였다.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전통적 경제 가치였던 '토지'가 상실됨으로써, 정을 통한 공동체 집단의 파괴와 더불어 이해집단의 공동체에 존속하게 되고, 말미암아 인간 소외, 소통 부재 등의 문제를 앓고 있다. 이럴 때 돈은 자신의 지위와 더불어 자신의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방폐막이 된다. 그것은 화합과 경쟁이라는 농가의 덕목이 치사량이 넘어서는 경쟁으로 인해 소실되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럴 때 '돈'은 단순히 유통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 있어서 '소통'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하고 싶은 사람과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많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그 각자에 원초적 불신이 있기 때문에, 보디가드라는 돈을 대동하고 우리는 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1)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주고, 2)죄책감에 대한 죄책감을 안기는 것이다. 죄의식을 갖지 마라. 거침없이 즐겨라. 세계의 파괴를 즐겨라, 아이처럼 굴어라

아이처럼 굴어라. 이것이야말로 경제의 언어다. 경제는 여러분에게 이기적이 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경제는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문화를 파괴한다. 공동체와 종의 생존을 위해서는 에로스가 타나토스의 승리해야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항상 후자를 밀어주고 주장하고 유혹하고 추진한다. (p317~318)

 

삶의 충동(에로스)와 죽음 충동(타나토스)은 동양사고 있어서 삶= 죽음( 엄밀히 말하자면 生과 死를 분류하지 않은 도가와 불가적인 삶, 유교는 치세의 근본을 덕으로 삼고, 나(我)를 우주와 동일한 구조로써 이해를 하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유교 역시 현재의 삶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으로 봤다. 이것은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된 서구의 사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의 자본주의는 동․서 사고 모두를 파괴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시작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지금․ 여기'에 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유전 질서의 법칙이 소비할 수 없는 집단의 쇠퇴를 불러 왔고, 그들은 끊임없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악순환의 굴레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다시 말해 기업은 투자를 받아 제품을 생산하고 그것을 팔아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적정량의 제품의 소비가 이뤄져야한다. 그러나 부의 편중 현상으로 소비할 수 없는 집단(소득이 없는)이 늘어남으로써 투자 할 수 있는 재원의 상실을 불러 일으켰고, 재품의 생산은 물론 소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시장은 이것들을 개선할 여지보다는 '일회용 인간상'이라는 천박한 상업정신을 발휘했다. '인생 한번인 것 즐기고 살아라' 이름하여 '내일은 없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쉽게 한탕주의, 도박, 중독 등의 심리적 폐해를 가져왔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죄책감'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는데, 바로 '공동체 정신의 함양' 이다. (사회 기업의 모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회기업도 기업 자체의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자본주의는 세대간의 협약을 깨뜨렸다. 이제는 각각의 세대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과거 사회에서는 인적자본이 인간이었지만 새로운 사회에서는 인적자본도 다만 '돈 자본'일 뿐이다. (p.350)

 

잠시 한국의 이야기를 하자면,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라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게중 4~50대의 자살과 노인의 자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범위를 좁혀서 자본의 유동성적인 측면만을 가지고 고찰해 본다면, 4~50대의 경제적 압박(교육, 자녀부양)과 노년층은 장기 부양 및 일자리 부족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세대간 협약과 절충안으로 함께 이끄는 문제가 아니라 세대간 특정 현상과 문제로서만 '문제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특정화'라고 하는데, 이 특정화가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은 다른 세대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 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각자가 짊어지는 문제의 비중이 커진다는 말도 된다.

 

무기력의 논리는 때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고문을 했다는 오싸레스(Aussaresse) 장군의 논리의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 나는 고문하고 고통 받게 하면서 몇 명 죽이지만 수천명의 생명을 구한다. 오싸레스의 논리는 가장 비열하고 야비한 것이다. 효율성의 이름으로, 그리고 준과학적 개념으로 명명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정당화한다. 구석에 숨어서 나쁜 짓을 하거나 흉악함을 품고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위대한 목적과 효과 치장을 하는 것이다. 제기되는 문제는 '내가 혼자 행동할 수 있는 가?' 이다. 고립된 상태에서 나는 내 주변에 아무도 노동법을 존중하지 않는데도 존중할 수 있는가? 누구나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데 나만 주지 않을 수 있는가? 누구나 바다에 오물을 버리는데 나만 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다시 한번 경제학의 핵심에 있는 군중이 등장한다! 군중이 나로 하여금 오른쪽으로 가게 하면 나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른쪽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p.387)

 

우리는 '군중'을 이야기 하면서도 다시 개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개인은 비판하지 못하는 개인이 아니라 비판할 줄 아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답하는 것은 어렵지만, 왜 노가 되어야하는지 설득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개인의 자체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절박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론에서 밝혔듯이 개인은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면 불안을 느낀다. 그러나 집단에 소속된 개인 역시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집단의 문제점에 대한 자신의 현실적 대처 방안 보다는 무기력증에서 오는 막막함을 공상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호 토론'은 가장 존중 받을 수 있는 문제 해결 방법이다. 사소한 문제도 공론화 하여 차선책을 마련하고, 이것을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실천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본질을 제대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자본주의의 문제는 비단 오늘만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제를 비판할 줄 알았지, 여전히 그 세계를 찬양하며 소비하고 살아간다. 책의 저자 베르나르 마리스는 바로 이러한 군중속에 개인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당신의 세계를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2 2010.07.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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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에 풀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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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박식함과 더불어 내용의 명확성은 좋은 책의 조건이다. 안타깝게도 이책은 모래알같이 흐트러진 단순 사실을 나열한 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각 장 끝에 첨부되어 있는 원문은 내용의 불명확성을 원문으로 끌어다 숨기려는 듯해 보는 이를 불편하게만 한다. 경제학 관련 서적이면서도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를 시도 했지만 알렝드보통 같은 여느 프랑스 저자의 재치같은 것은
"모래알에 풀칠하기"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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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m*****5 2010.11.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