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5%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8.0
  • 30대 10.0
  • 40대 10.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손잡고 허밍
"손잡고 허밍" 내용보기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표지와 제목이다. 한마디로, 그 책의 첫인상에 따라 내가 그 책을 읽을 지 말지가 고민된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리뷰가 아무리 흥미로워도, 그 책의 표지가 내맘에 들지 않으면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손잡고 허밍은 내게 있어서 끌리는 책이었다. '손잡고 허밍' 이라는
"손잡고 허밍" 내용보기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표지와 제목이다. 한마디로, 그 책의 첫인상에 따라 내가 그 책을 읽을 지 말지가 고민된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리뷰가 아무리 흥미로워도, 그 책의 표지가 내맘에 들지 않으면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손잡고 허밍은 내게 있어서 끌리는 책이었다. '손잡고 허밍' 이라는 , 어쩐지 자꾸 입 안에서 맴돌것만 같은 제목, 민트가 살짝 섞인 듯한 깔끔한 하늘 색 표지, 예쁜 제목의 글씨체까지,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다.
 책을 고르고 나서, 계속 읽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작가의 어조이다. 문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건 어조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특히 한국 소설일수록 더욱 더 글의 어조가 중요하다. 내 취향의 표지 덕에 기대감을 가지고 들쳐본 이 책은, 다행히도 어조도 내 취향이었다. 조용조용히, 어쩐지 붕 뜬(이 경우 설레서 붕 뜬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공중에 붕 뜬 듯한), 멍한 듯 담담하고 리듬감 있는 글의 분위기가 좋았다.


책은 총 9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내 마음에 들었던 글 몇 가지를 말하자면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과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 이다.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은 여주인공의 성격이나 묘한 비틀린 상실감이 마음에 들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과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 는 이룬 건 없고, 취업은 걱정이며, 딴 길로 새고 싶고,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 헤매는 중인 내 상황이 오버랩되서 마음에 들었다. 딴 얘기지만 고등학생 땐 진로를 고민하고 딴 길로 새고 혹은 나름의 타협을 하는, 아니면 학교에 반발하는 얘기들이 그렇게나 재밌더니, 지금은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취업에 실패하거나 취업에 관심없는 청년들 얘기가 이렇게나 재밌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얘기들에 눈이 가나보다.


'반짝반짝 빛나는'은 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월 20의 집에 살며, 취업을 못해 계속 휴학을 연장하는 청년과 그의 배변활동과 심부름과 면접에 대한 이야기. 21살의 나이는 참 묘한 나이이다. 다들 나보고 어리다고 하는데, 나는 스무살 때 이런 저런 걸 하고, 마지막으로 도전해 볼껄 싶다. 아직 너무 어린 날인데, 뭔가를 새로 시작하자니 (예를 들면 삼수나 자퇴라고 하면 확 감이 오려나) 다들 큰 결심이라고 한다. 새로 시작했을 때 이뤄야하는 것들의 기준선은 올라가 있고, 여태껏 했던 것을 버리기엔 일년 반이 다 되어가는 시간들이 아깝다. 취업이 성큼 다가오는 데 솔직히 막상 뭘 할지는 잘 모르겠는 나이기도 하다. 스무살의 낯섦에 비해, 익숙해지고 친숙해져있지만, 그렇기에 한 발 딛기가 더 무섭고 귀찮다.
 작가가 뭘 의도했는 지 이런 건 딱히 신경도 안 썼고 짧은 내 식견으로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읽고 나니 후련해졌다. "그래, 아무리 거지같아도 삶은 계속된다. "라는 메시지를 받은 듯한 기분이다. 이때 계속 된다는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하게 위로를 받은 느낌이기도 했다. 망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상한 위로. 다 읽고 나니, 오랫동안 변기로 안고 있던 묵은 변은 시원하게 내보낸 듯한 기분이 든다. 이상하게 홀가분해졌다.

구더기의 몸부림이 만드는 파문에 그때의 똥들은 반짝거렸다. 똥이라는 것도 예뻐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삶이 지속되는 한, 배변 활동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달빛 받아 반짝이는 내 삶들을 언젠가는 볼 수 잇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별처럼.

                                                                                                     -P142,143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는 뭐랄까, 망한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곧 청춘이라 부르기 애매해 질, 아직 정신 못차린 애들의 이야기. 누군가에겐 그럴 것이고, 뭐 좋게 말하자면 아직 가슴의 열정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뭔가 내 이야기 같아서 좋았고, 내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이야기 같아서 좋았고, 내 이야기가 될까봐 무서운 이야기여서 좋았다. 머리로는 저렇게 살면 안되 싶은 데 가슴으로도 아, 저렇게 살고 싶다, 아니, 나는 결국 저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 싶은 이야기였다. 특별한 사건 없는 이야기였지만 읽으면서 묘하게 즐거워졌다.

이 글을 가장 잘 설명해주면서, 가장 공감갔던 대목을 소개하자면

독서, 음악 감상, 춤추기, 여행은 누가 봐도 특기가 아니라 취미였다

                                                                                                      -P181
 정말 읽으면서, 와 너무 적절한 표현이다 싶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완벽한 표현이라니. 작가님이 100번 탈고한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도 같은 데 그렇게 탈고를 많이 거치면 이렇게 딱 맞춘듯 꽉 맞아떨어지는 비유를 쓸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외에도 공감되는 대목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다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과 이 책의 타이틀인 손잡고 허밍은 대목만 소개할까 싶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은 내가 느끼기엔 외로워서 날카로운 여자의 이야기였고, 손잡고 허밍은 죄책감과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이름 모두가 고양이의 이름 같았고, 그 모두가 고양이의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P41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야 할 때는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이름을 댔다.
그래서 누군가 그녈르 부르면 그녀는 잠시 말설이다 돌아보곤 했다. 미영이거나, 수빈이거나, 지니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이름이라도 다 자신의 이름 같았고, 그 모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부르는 소리에 망설이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P27

그는 대숲에서 울고 있었다.
다음날 그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손잡고 허밍   P69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책은 붕뜬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k*****4 2018.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손잡고 허밍
"손잡고 허밍" 내용보기
손잡고 허밍은 9개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있는데 제목들이 참 재미있다.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손잡고 허밍허공의 케이반짝반짝, 빛나는축지법교본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태양을 쫓는 아이비틀젠틀 셔틀맨옷들이 꾸는 꿈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을 읽으면서 늦은 밤 집에 오는 길의 고양이 울음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던 것이 생각 난다. 길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을 마
"손잡고 허밍" 내용보기

손잡고 허밍은 9개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있는데 제목들이 참 재미있다.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

손잡고 허밍

허공의 케이

반짝반짝, 빛나는

축지법교본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

태양을 쫓는 아이

비틀젠틀 셔틀맨

옷들이 꾸는 꿈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을 읽으면서 늦은 밤 집에 오는 길의 고양이 울음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던 것이 생각 난다. 길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을 마주보고 "고양아~ 야옹아~ 나비야~ 지니야~"라고 불러 보았는데 주인공도 지나칠 수 있었던 고양이에 대한 관심과 데리고 와서 보살피면서의 책임감들이 느껴졌다. 무심한듯 하지만 미영에게도 보호 받고 싶은 마음이 보호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손잡고 허밍은 옛날에 내가 살던 고향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개발되어 버린 도시에 나의 추억만 남아있는 그곳. 어린 나로 돌아 간다면 그 고향의 풀냄새 땅냄새, 그리고 그 곳곳에 서려있는 추억들이 떠오른다. 구남씨가 녹음한 대숲의 소리처럼 나도 고향의 소리가 그립다.

 

허공의 케이는 나의 어린 시절 목욕탕을 뛰놀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이른 새벽에 가면 조용한데 물이 똑똑 떨어지는 그 소리, 세신사 아주머니 등~ 지금은 목욕탕에 잘 가지 않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옛날에 목욕하고 시원한 스콜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반짝반짝, 빛나는을 보면서 어릴적 친척집에 가면 재래식 화장실을 썼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하며 내 나이가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구나. 나도 참 옛날식 문화에 대한 연식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래식 화장실은 더럽고 빠질까봐 무섭고, 냄새가 지독해서 코를 틀어막고 사용했었고, 그 밑은 서늘하고 득실득실하는 구더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고 볼일을 보고 뛰쳐나오곤 했었는데 작가는 이런 재래식 화장실에서 반짝거리는 별을 찾아 낼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지법교본을 보면서 이토록 추운 겨울에 순간이동을 하거나 촥- 촥- 하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축지법교본이 요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맞지만 너무 빨리 빨리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전체를 먼저 보고, 앞서간 다음엔 뒤도 돌아봐라'

 

 

s******2 2018.02.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저항과 투쟁의 욕망 - 「손잡고 허밍」(이정임)을 읽고
"[서평] 저항과 투쟁의 욕망 - 「손잡고 허밍」(이정임)을 읽고" 내용보기
인간은 자연이 일부라고 흔히들 말하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인간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인간의 역사는 곧 정복의 역사였다. 이 정복의 대상은 같은 인간일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자연이 그 대상이었다. 다른 동물들에 비교해 신체적으로 그다지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던 인류의 조상들이 냉혹한 자연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발버
"[서평] 저항과 투쟁의 욕망 - 「손잡고 허밍」(이정임)을 읽고" 내용보기

인간은 자연이 일부라고 흔히들 말하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인간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인간의 역사는 곧 정복의 역사였다. 이 정복의 대상은 같은 인간일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자연이 그 대상이었다. 다른 동물들에 비교해 신체적으로 그다지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던 인류의 조상들이 냉혹한 자연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발버둥을 쳤기에 지금의 우리가 지금 존재할 수 있긴 하겠지만, 어쨌든 그 발버둥은 그다지 우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우아하지 않은 발버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늘 자연과 맞섰고, 그 결과 표면적으로 보면 당당히 승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주위를 둘러보면 죄다 인간이 만든 건물이다. 모든 것이 인간의 욕망에 맞게, 편의에 맞춰서 변화되었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자비가 없다. 일단 인간의 욕망이 우선이고 모든 것은 그다음이다. 이것을 함부로 '이기심'이라고 말할 순 없다. 수십억 년 지구의 역사에서 주인은 늘 바뀌었다. 인간은 그저 지금의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어떤 존재보다 폭력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손잡고 허밍'은 꽤 암울해 보이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둠스데이(doomsday), 지구 최후의 날'을 대비하기 위한 계획도시는 '둠스데이 프레퍼스'라고 인류 멸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남들이 여가생활을 즐기는 동안 그들은 닥쳐올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개인 벙커를 짓고 비상식량을 갖추고 있다. 일종의 '생존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곳에 주인공인 '나'가 입주민으로 들어와 '구남씨'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각자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가 생매장당하는 모습을 보고 더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그녀와, 사라져가는 대나무 숲의 소리를 녹음하며 꺼이꺼이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진다. 시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회로 인해, 좀 더 많은 건물을 짓고 땅을 개발하려는 사회로 인해, 이들은 좀처럼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다. 돼지와 소를 오로지 인간이 먹을 고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육하다가 문제가 생기가 가차 없이 모두 생매장시켜버리면서 시장을 지키기 위한 욕망, 자신들의 활동반경을 보다 넓히고, 건물을 지어 보다 많은 돈을 벌고, 좀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 이러한 욕망의 희생양은 일차적으로는 자연이었고, 이차적으로는 인간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결국 인간 그 자신을 향하기 시작한 셈이다.

숲의 소리를 듣고 싶으면 숲속에 가면 된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숲은 사라져 버렸고,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꼈던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그 소리만이 녹음되었다. 숲을 파괴하고 지은 건물 안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잠이 들기 위해 녹음된 그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이것을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삶의 질이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파괴의 욕망, 정복의 욕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파괴적인 욕망에 맞서 싸우겠다는 욕망도,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걸 지키겠다는 욕망도 존재한다. 그녀가 예전부터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돼지들이 생매장당하는 모습을 보고 더는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일종의 저항이었다. 그가 사라지는 대나무 숲의 소리를 녹음한 것 역시 하나의 저항이었다. 인간의 그 무한한 욕망을 완전히 막을 순 없지만,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당당히 맞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곧 정복의 역사, 파괴의 역사라고 하지만 이러한 저항 역시 늘 존재해왔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한창 자연을 개척하고 물질문명으로 나아가던 미국을 배경으로, 한 호숫가에서 자연을 벗 삼아 홀로 살아가면서 물질문명과 인간의 탐욕에 대해 지적을 했던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지금 물질문명의 중심 그 자체가 되었기에 이 작품이 커다란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월든'이 있었기에 문명은 조금은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법, 사상, 욕망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다듬어져야 한다. 결국은 큰 흐름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지만, 그 흐름에 맞서는 노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니, 이 또한 인간의 본능이자 욕망이다. 저항의 욕망, 투쟁의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파괴의 욕망, 정복의 욕망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무관심하거나 자신이 어쩔 수 없다며 무기력에 빠지곤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 역시 처음에는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남씨'를 만나 그의 손을 잡고 무기력에서 헤어나와, 함께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공동체' 혹은 '연대'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혼자서 투쟁하는 건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고 함께 투쟁하는 그 순간이 바로, 변화의 시작이다.

"이 씨앗이 지금은 작지만요. 제 땅이 손바닥만 하지만요. 얼마든지 클 수 있으니까요."

개발로 인해 파괴되어버린 숲속에 씨앗 하나를 심는다. 씨앗은 곧 투쟁의 시작이다. 이 씨앗에서 얼마나 예쁜 열매가 자랄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도 다시 아름다운 숲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렌다.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손잡고 투쟁, 그리고 손잡고 허밍.



h*******t 2018.01.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참 멀었나 보다
"한참 멀었나 보다" 내용보기
전에 읽었던 호밀밭 출판사 소설선 '소설의 바다'의 <모두의 내력>가 무척이나 재밌었던 나머지, 이번 작품에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손잡고 허밍>은 안타깝게도 기대에 못 미쳤다. 첫 번째 단편소설인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구절들을 여러 번 읽어도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야기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내게 스며들지 않는듯했다.그래도 단편소설
"한참 멀었나 보다" 내용보기

전에 읽었던 호밀밭 출판사 소설선 '소설의 바다'의 <모두의 내력>가 무척이나 재밌었던 나머지, 이번 작품에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손잡고 허밍>은 안타깝게도 기대에 못 미쳤다. 첫 번째 단편소설인 [고양이를 부르는 저녁]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구절들을 여러 번 읽어도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야기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내게 스며들지 않는듯했다.

그래도 단편소설 중에서 [태양을 쫓는 아이]는 꽤 재밌었다.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날, 최정미가 왜 지영이를 노려봤을까. 읽는 내내 궁금했었고, 아직도 답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 써니가 미국으로 간다는 게 섭섭해서였을까? 그 사실을 알려준 지영이가 미워서일까? 자신은 여기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짜증 나서였을까? 어린 나이에 피부색과 가족 때문에 놀림을 당하고, 써니와 비교당하며 사는 최정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이었다. 최정미는 자기 자신이 정말로 미웠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티는 잘 안 내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자신의 모습과 가정배경을 질책하며 살아왔을 것 같다. 그리고 써니에게 꾸준히 호감을 내비치며 잘 대해주는 것도 일종의 '반동형성'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난 최정미의 진심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야기의 끝부분에 조금 더 확실한 단서가 나왔으면 하고 바랬다. 

내가 최정미였다면 써니를 질투하고도 남았을거다. 질투심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커져서 써니를 어떻게든 곤경에 빠트리려고 애썼을 것 같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더라면 더 짓궂은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마음속에 항상 칼을 품고 살아왔던 건지,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어떤 이가 부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그리고 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오래 지속되었다. 나름대로 사람을 많이 만나보고, 별의별 상황을 다 겪어본 지금에서야 내 감정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아직도 한참 멀었는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를 만나 질투심을 느끼게 되면 화가 나고 짜증을 부릴 것 같다.

나는 아직 어린가 보다. 평소의 나보다 훨씬 더 작게 느껴진다.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어쩌면 최정미처럼 살고 싶은 걸까. 얼굴에 철판 깔고 당당하게 쿨하게 써니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대단하게 보인다. 어린 나이의 그녀가 크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이 소설에 감사하다. :-)


s******e 2018.06.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