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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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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다'라는 동사 단어를 '사물의 모양을 눈을 통하여 알다'라는 첫번째 사전적 의미 외에도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먹어보다, 가보다, 손해보다, 재미를보다, 시험을보다, 시장을보다, 용변을보다, 며느리를보다...등의 '보기'를 하고 있고 또 두고보기도 하고, 끝장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들을 보면!! 우리는 '보다'라는 말을 경험하거나 누리거나 취하거나 당하는
"본다는 것에 대하여..." 내용보기
우리는 '보다'라는 동사 단어를 '사물의 모양을 눈을 통하여 알다'라는 첫번째 사전적 의미 외에도 상당히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먹어보다, 가보다, 손해보다, 재미를보다, 시험을보다, 시장을보다, 용변을보다, 며느리를보다...등의 '보기'를 하고 있고 또 두고보기도 하고, 끝장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들을 보면!! 우리는 '보다'라는 말을 경험하거나 누리거나 취하거나 당하는 데에까지 확장하여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살면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듣기도 하고 맛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는데 왜 하필 그 많은 것들을 본다고 생각할까? 그 것은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인식하고 또 자아를 확인하는 활동을 할 때 시각적 능력에 가장 많이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행위를 할 때나 어떤 사건이 주변에서 발생할 때 눈을 통해 지켜보고 나서야 확실히 그 것이 이루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볼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이라는 신체적, 어쩌면 정신적 변화는 어떤 큰 흔들림으로 인생에 진동을 전할지도 모르겠다.

셀마는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와 경찰관과 그 부인의 집에 세들어 사는 가난한 여성으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가며 근근히 살아간다. 그녀는 유전적 질환으로 인해 점차 시력을 잃게 되는데 그에 주저앉지 않고 기차길을 따라 먼 길을 걸으며 출퇴근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동을 계속하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역시나 실명을 하게 될 아들을 위해 돈을 차곡차곡 모은다.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는 노래와 영화를 즐기며 꼭 해보고 싶은 뮤지컬도 아마추어 극단에 나가 열심히 연습한다.
셀마는 생활이 불편할 지라도 결코 삶이 불행하지 않다. 그 이유는 보지않아도 되는 것을 보지않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실명은 보지 못함이 아닌 보지 않음의 상징이다. 영화를 볼때 엔딩이 나오기 전에 극장을 나오곤 하는 그녀는 그 결말을 보지 않음으로써 영원히 끝나지 않고 있는 멋진영화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을 수 있다. 보고 싶은 세상은 눈이 아닌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
셀마와 대비되는 인물인 경찰관 부부는 그들에게 돈과 총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길 좋아하는데, 이는 허영심에 사로 잡혀 물질과 권력을 계속 곱씹에 보며 확인하는 데 인생을 소비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집주인이 경찰관이라는 것은 그가 권력자 쪽의 인간,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는 쪽의 인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경찰관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더불어 살던 이웃 셀마가 시력을 잃어감에 따라 그녀를 바라보는 태도를 감시로 바꾸게 된다. '상대에게 보임'의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감시능력의 소유자는 감시능력의 비소유자에게 본다는 행위를 폭력, 제재, 착취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한 일방향의 감시체계로 전체주의속에 모든 사람을 획일화 시키며 권력을 유지했던 것을 보았듯이 말이다.
셀마는 모두가 보는 것을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나오고, 극단에서 나왔으며 권력자에게 폭력도 당하게 된다. 결국 무자비한 폭력으로 죽음에 이를 지경까지 되지만 셀마는 "사람들은 이것을 최후의 노래라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알지 못 해. 최후의 노래로 만드는 건 우리에게 달렸어" 라고 노래하면서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모두들 그녀의 종말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녀의 뮤지컬은 끝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커튼콜을 할 필요가 없다. 셀마의 사형집행에서 커튼이 활짝 열려있는 장면은 이를 잘 말해 주는 듯 하다. 사람들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결말을 지어버리고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는 게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을 볼 수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서로를 볼 수 있다. 상대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또한 비인간성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적절한 견제로서의 눈은 사람에게 하여금 짐승에서 벗어나 가치와 윤리가 존재하는 인간성을 갖게 할 수 있겠지만 과도한 감시로서의 눈은 자유를 상실케 하여 비인간성이 고개를 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바르게 이해하여 그 가치를 제대로 활용할 때 고양된 인간성을 바탕으로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본다는 것을 1차적 의미의 시각적 정보수용의 범위를 넘어서 세계와 인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확대 적용시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똑바로 보며 무지와 타락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또 필요 이상의 무용한 것들을 보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이 사회는 눈뜬자들이 춤출 수 있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h******1 2009.03.09. 신고 공감 3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