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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오프닝 화면은 잔잔하면서도 평범한 것 같지만 실제로 기억해놓으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 수가 있다. 이 나라야마 부시코의 오프닝 화면은 눈 덮힌 산에서부터 마을까지 쭈욱 훑는 듯한 풍경이다. 너무나 야성적이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마치 따스하게 덮어주는 것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신의 손길처럼 눈은 그렇게나 솜이불처럼 따스한 존재이다. 이 나라야마 부시코는 처음부터 영화의 복선을 깔아놓는 대화로 시작한다. 아라야시키의 안부를 묻고 이로 실을 뚝 끊는 타츠헤이의 어머니 오린에게 이가 33개쯤 될 거라는 손자 케사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늙은 오토리는 복받은 거라네. 눈내리는 날 나라야마에 갔으니
영화를 보며 나는 내내 오린이 가진 냉정함과 조용히 끓어오르는 듯한 깊은 사랑에 강한 감동을 받았다. 오린은 영화속 여주인공치곤 고령이었지만 그만큼의 연륜과 깊이로 영화의 무게 중심이 되어주었다. 분명 오린의 마음 속도 시끄러웠을 텐데 그녀는 집안의 평화가 계속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처리하고 간다. 먹고 살려고 시집와 도둑질까지 한 마츠야의 죽음을 유도한 것도 분명 집안이 시끄러워지지 않게 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일로 케사의 원망을 사고, 오열하는 타츠헤이의 뺨을 때리고, 타마에게 집안일을 인수하고, 리스케의 하룻밤 신부를 구해주고 그녀는 훌훌 속세의 미련을 끊어버리고 나라야마 행을 결심했다. 영화에서는 죽고 싶지 않아 계속 발버둥을 치며 아들에게 밧줄로 묶여 울부짖고 발버둥치는 노인도 나온다. 분명 오린과는 극명하게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 아들 역시 타츠헤이와는 반대의 인물인지라 살고 싶다는 아버지를 절벽 위로 밀어버리고 도망치듯 산을 내려간다. 타츠헤이라면 오린이 그토록 냉정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결국 아버지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집안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타츠헤이의 인생도 엉망진창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오린은 속세에서는 그녀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위해서 존재하고, 후에 나라야마에서는 눈이 내리는 것을 운이 좋다 여기며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그 영화를 다 보고 그 결말을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린이 그 무수하던 해골 중 하나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그저 타츠헤이가 두고 온 그 마지막 모습, 가부좌를 틀고 정자세로 기도하던 그 깨끗한 모습이 오린의 마지막일 것 같다. 그 모습 그대로 오린은 나라야마에서 그토록 보고픈 그리운 이들을 보았을 것이다. 마을에서도 늘 먼저 죽은 이들을 나라야마에선 볼 수 있을 거라며 희미하게 미소짓던 그 주름진 얼굴이 생각난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그 나이에서도 깨끗함과 단정함, 현명함을 잃지 않은 오린의 마지막은 그 어떤 여주인공의 극적은 결말보다 더욱 신성했고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었다. [인상깊은구절] -나라야마에 갈 때 꼭 지켜야 할 게 있다. 첫째, 산에선 침묵해야 한다. 둘째, 집을 두고 올 땐 눈에 띄지 않게 한다. 나라야마 가는 길은 뒷산기슭을 돌아 세번째 산을 지나면 연못이 하나 나온다. 연못을 세 번 건너 계단을 오르면 산을 하나 넘으면 깊은 계곡이 나온다. 그 계곡을 지나는데 거길 일곱 골짜기라 한다. 일곱 골짜기를 지나면 나라야마 길이 나온다. 길이 분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계속 올라가다보면 신이 기다리고 계신다. 산에서 내려올 땐 절대 돌아봐선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