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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면 어쩌나, 하고 김용걸씨의 비애모를 보러 가기 전엔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있었는데, 보고 와선 다시 이 영상을 며칠이고 돌려보게 되네요. 2008년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실황이고 피나 여사 작품 중 단 하나 남아 있는 영상물이죠. 반가운 얼굴, 김용걸씨와 임선혜씨의 모습도 만날 수 있고요.
사샤 발츠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수작이긴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 춤과 노래의 균형이 무너져 노래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아쉬움이 있는데, 이 작품은 다 보고 나서 노래를 다시 듣고 싶고, 노래를 듣다 보면 춤이 눈앞에 떠오르는, 감각을 깨워 일으킨다는 건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거지요.
오르페오는 혼란스러워하며 고통을 느끼는데, 사실 2부의 제목은 폭력이 아니라 아우성이나 고통으로 읽어도 의미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아요. (디비디 한글 제목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라고 되어 있지만 글루크의 오페라 제목을 따라 여기서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로 표기하겠습니다. 지난번 포스트처럼요)
좋은 군무는 안무를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군무만으로도 작품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3부까지, 오르페오는 어딘가 혼이 나가 있는 듯하고 에우리디체는 까메오처럼 지나가 작품의 흐름을 장악하지는 못하는데, 주인공이 빠진 자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역시 군무입니다. 한 사람이 춤추는 듯이 일사불란한 움직임 보여주는 러시아 발레단의 군무는 물론 극강이지만 이렇게 감정을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작품에서 파리오페라만 한 군무를 보여줄 수 있는 단체가 또 있을까 싶네요.
4부가 에우리디체의 감정선을 따라 진행되다 보니 오르페오 역의 얀 브리다르는 지요에게 끌려다니다가 에우리디체를 다시 떠나보내고 자신도 죽음을 맞는데, 지요를 워낙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4부의 브리다르는 좀 아쉽습니다. 덜 보여준 것 같은 감정이나 에우리디체의 죽음 이후 마리아 리카르다 베셀링의 절창으로 오르페오의 회한과 슬픔을 토해내는 동안 정작 무용수는 안무 없이 무대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데, 그 덕에 노래에 집중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오르페오의 마음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이 없는 건 아쉬워요. 작품은 죽음으로 두 번이나 헤어져야 하는 신화의 연인(부부)을 다루고 있지만, 비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백조의 호수와 같이 집안의 반대나 오해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불신의 씨앗을 다스리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는 연인들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이기도 합니다. 언제고 꼭 실연무대에서 볼 수 있는 날 있겠지요. (사진은 디비디 버전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이 둘 다 스테판 부이용이네요. 에우리디체는 맨 위의 사진은 지요, 마지막 사진은 알리스 르나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