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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문제 있다. 그러면 그 다음은...?
기독교인이 된 지 20여 년이 되어가지만, 늘 기독교와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대학을 다닐 때도 자크 엘룰의 책이나, 박기삼, 박철수 목사, 김진홍(20년 전만 해도 기독교 내 개혁적인 인물이었는데, 왜 일케 망가졌는지... 쩝) 목사 등의 책을 읽으면서 열을 올리기도 하고,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노하면서 한국 교회의 겉으로 보이는 문제를 까발리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는 곧 허탈감이 찾아온다.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고, 대학 기독동아리의 동지들을 만나면 핏대를 올리며 돈 먹은 목사, 비리를 눈감아주는 교회, 친미보수를 지향하는 기독교단체들, 신앙의 이름으로 위선을 저지르는 기독교인들 ... 나는 다른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나 또한 그들과 같은 기독교라는 분류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렇게 비판의 칼날을 높였던 저자들도 뜬구름 잡는 식의 결론을 낼 뿐이었다.
그리고 교회나 목회자들은 이런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해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말하면서 늘 '일부'라고 말한다. 또 아예 눈감아 버리는 목회자와 기독교인들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교회 밖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은 매섭다. 어쩔 때에는 기독교인은 사회에서 숨죽이고 정체성을 숨기거나 눈치만 보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최근에 계속 출간되어 온 기독교 비판서들을 보면서 허탈감을 넘어서 부담감을 느꼈다.
맞다! 기독교 신앙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에어장 목사 사건에 뉴라이트 단체 문제,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의 거친 언행들, 메가 처치 논쟁이 일고 있는 대형 교회 문제 등 이제는 기독교에 관련된 큰 사건이 터져도 무신경해질 만큼 익숙해졌다. 그만큼 곪아 있는 많은 문제들이 밖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하지 않을까?
김 진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깊이 공감하고 느낀 부분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현재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인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짚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은 어쩌면 한국 교회가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위 일반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언급하는 속칭 구원파와 다를 게 무언가? 사실 나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또 예수 제자로의 길이 쉽고 편하다고 생각하는 오해가 있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신앙생활을 통해 평안한 삶과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과 좁은길을 가야 한다는 것, 예수 믿는 것은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자아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 등 이런 것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교회에서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흔히 그냥 지나쳐 왔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너무 편하게 예수님을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저 안락한 종교생활을 탐닉하는 수준의 기독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생각으로는 돈보다 신앙이라고 하지만 정작 몸은 자본주의를 숭배하고 있었다. 늘 돈에 매여서 아등바등하면서 대출금 문제, 매월 카드값에 세금에 쩔쩔매는 모습에서 은연 중에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 깊숙이 지배하고 있었다. 돈이 우선이라는 세계관에 젖어 있으면서도 나는 늘 돈으로부터 자유한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에게 거짓 암시를 보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 돈이라는 것을 흘려보내기보다 잡으려고 집착하는 나는 결국 맘몬을 숭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마지막으로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생각(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기보다 자신의 욕심으로 얻기 원하는 탐욕의 복),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 등 잘못된 신앙관과 관점이 내 신앙의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잘못된 신앙생활과 삶의 행태를 비롯되게 만들었다. 김 진 목사님의 말대로 정말 성경적인 기도라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며 순종하겠다는 기도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나는 늘 내 욕심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강요해왔고, 내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실망하곤 했다.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실망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해도 나의 실망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실망인 것이다.
이처럼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는 내가 잊어버렸던, 또 생각하지 못했던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에 강한 도전을 해왔다. 줄을 그으면서 책을 읽다가 잠시 나를 반성해 보았다. 그리고 다른 책에 비해 매우 좁은 여백(아마도 대본처럼 쓰기 위해 그런 듯)에다 깨알 같이 나의 반성을 써넣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나의 습관적인 신앙의 껍데기를 한꺼풀 벗겨내는 느낌이었다.
예수 믿지 않은 기독교인은 바로 접니다
책의 써내려간 저자의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관점을 넣으려고 했고, 자신의 목소리만 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술식으로 풀어서 쓴 글을 읽었다면 조금 지루했을 법도 한 글을 각 주제에 맞춰 짧게 한 사람씩 토론식으로 이야기하는 글이라 다양한 관점으로 빨리 요점만 읽을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흡인력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남예혁 교수라는 인물의 말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괜찮다. 저자의 아바타라고 느껴지는 남예혁 교수의 날카로운 지적은 내게 지적 / 신앙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는 그다지 허탈감이 들지 않았다. 저자는 단지 비판의 칼날만 세운 게 아니라 따뜻한 제안과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예수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진정한 믿음을 통해 '신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각성하고, 예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도록 조언해 준다. 그것은 예수에 대한 믿음과 예수의 믿음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즉 기독교 이전에 초대 교회의 예수 공동체가 가졌던 예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삶을 우리의 삶이 되도록 몸의 반성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믿음인지를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믿음을 우리의 믿음으로 삼을 때 우리가 온전한 예수의 제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책 제목을 보면서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라는 말이 의아했다. 읽으면서 처음엔 제대로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이나 잘못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내가 예수를 믿지 않은 기독교인임을 자각했다. 내 생각의 기저부에서 겨자씨 만한 온전한 믿음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삶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다 읽고나서 말랑말랑한 영성 관련 도서보다 이 책 한 권이 일깨우는 영적 인사이트가 더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고 교회 목사님 두 분과 안수집사님 3분에게 사서 선물드렸다. "예수 믿으세요"라는 어설픈 농담을 하면서 드렸는데, 제목에 놀라시면서도 싫어하지는 않으신다. 책 선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셨단다.
습관을 좇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늘 문제의식을 느끼는 독자라면, 기독교와 한국 교회에 대한 불만을 늘 달고 사는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를 보면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던 일반 독자라면 한 번 읽어보면 결코 책값이 아깝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면 나처럼 믿음의 꺼풀을 하나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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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식어빠진 지루한 기독교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미국 FBI의 위폐감별사에 대한 이야기들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비 위폐감별사들은 2-3년간의 훈련 기간 동안 위폐는 하나도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지 진폐만 계속 보고, 만져보고, 느끼기만 반복합니다. 그런데 훈련 기간이 끝나면 기가막히게 위폐를 찾아낸다고 하네요. 달러화에 대한 전 세계의 위조 지폐는 무수히 많고, 심지어 미국 연방은행에서 만든 달러화보다 더 정교하게 인쇄한 위조 지폐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종류의 위폐들 가운데에서 위폐감별사들이 쉽게 진폐를 찾아내는 비결은 진폐 하나만은 분명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진 목사님의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도 그렇게 말합니다. 현대 기독교와 교회에는 잘못 전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왜곡된 복음,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기독교의 모습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만이 바른 신앙을 분변하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나 기독교가 본질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더 목숨을 건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교단과 교단, 정통과 이단 등은 교리 때문에 헐뜯고 싸우는가 하면, 큰 교회나 단체는 이권과 돈과 관련한 문제로 싸우기도 합니다. 또 순전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교회 봉사, 헌금생활, 주일성수, 전도 등 신앙생활에 관련한 것들을 강조하다보니 본질적인 부분이 뒤쳐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감격보다 교회 봉사와 여러 가지 활동 때문에 더 바쁘고, 그러다보니 복음의 진리를 누리기보다 오히려 교회 일에 얽매여 있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는 짝퉁예수가 아닌 진품예수를, 성공신화와 세상적 복과 부유케 됨을 가르치는 다른 복음이 아닌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시는 순수한 복음에 다시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한국 교회와 기독교에서 많은 부조리한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예수님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기독교와 교회의 부패와 그로 인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수호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가 뒷전으로 밀리고 변질되어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근래에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질타를 당하고, 기독교인에 대한 대사회적 인식도 매우 나빠져 가고 있습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단순하지만 명쾌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즉 예수의 믿음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합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고 믿는 것만큼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해 가지셨던 믿음을 그대로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라는 저자의 강조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매우 비판적인 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작 읽고나면 비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라는 강한 도전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정말 저처럼 식어빠진 신앙 때문에 재미없어 하는 분들이라면, 지루한 교회생활 때문에 버거워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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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20여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 사이에 한국은 선진국의 대열로 올라가고 월드컵, 올림픽, 국제 행사들을 치룰 수 있는 저력의 나라가 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된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대학 진학률이 무려 80%에 가깝게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분야에서 아직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정치요, 또 다른 하나는 종교이다. 청렴도에 있어 정치가들은 거의 꼴지를 하고 있다. 종교라고 하면 한국은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하지만 한국을 이끄는 정신세계가 없다는 말이 된다. 불교계, 기독교계, 천주교계, 대순진리회라는 종교가 4대 종교가 되는 게 한국이다. 그중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종교는 바로 기독교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이 있다. 위즈덤로드에서 나온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진 교수는 신학을 전공하고, 선교사로 인도에서 사역을 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에 던진 질문을 책으로 쓰면서 100분 토론의 형식을 통해 7명의 패널을 중심으로 하는 책을 썼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현대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방송인 신석기, 보수목사 나정통, 성공한 유학파 목사 이성공, 연예인 기독인 예신자, 4진보목사 남예혁, 여성목사 조하나, 사회비판가 권중진이다. 이름을 들어보면 그 인물의 성향을 너무나 알도록 재미있게 썼다. 책의 화두는 예수 없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 죽어가는 교회를 위한 비판이다. 진품예수는 없고, 짝퉁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진품, 명품 신앙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믿고 살아가는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씁쓸한 웃음을 짓지도 했고, 공감을 하며 무릎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책에서 받는 느낌은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 겠다는 다짐이다. 그리고 잘못 믿고 있고, 잘못 가르치는 기독교가 아닌 정품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바라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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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본문에도 그런 말이 있다.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쓴웃음, 소위 썩소를 날렸단다. 그만큼 이 책은 제목이 너무 강하다. 왠지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나 한완상 박사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만큼 강한 저항감이 들게도 만든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대중적으로 입질하기 위해 과격한 제목을 지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없다>처럼...
하지만 책을 읽어 보면 그다지 과격한 것은 아니다. 또 제목이 주는 반감보다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라는 이 책의 화두가 던져 주는 공감이 더 크다. 즉 <예수는 없다>처럼 낚시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저자의 깊은 고민과 애정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사실 저자도 비판서처럼 느껴지거나 그런 류의 책을 쓴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서문에 썼지만, 본문 가운데에도 간간이 자신이 느낀 부담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무튼 좋다. 이 책은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확실히 예수 믿고 있다는, 또는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자기 확신과 믿음을 여지없이 흔들어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은 기독교를 와해시키고 무너뜨리려는 것은 아니다. 자기반성을 통해 현재 나의 신앙이 정말 참신앙인지 되묻고 있다. 사실 이런 반성과 의심이 없이 어떻게 견고한 신앙이 세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쩌면 짝퉁예수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현대 교회가 붕어빵처럼 붕어를 닮기는 했지만 전혀 붕어와 다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꿈꾸던 공동체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기독교가 초대 교회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너무 제도화되고 교리화된 것은 아닌지 ... 신앙의 원초적인 부분부터 다시 점검할 것을 요청한다.
예전에 구원파에 속한 친구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정말 꽉 막힌 친구였다. 구원받은 날짜를 알고 있냐는 둥, 니가 믿고 있는 구원은 제대로 된 구원이 아니며 제대로 믿는 게 아니라는 둥 하면서 거의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나와 같은 교단(예수교장로회)에 속한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구원파에 속한 친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친구 정말 꽉 막혔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그것이 진정 튼실한 신앙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과연 우리의 신앙이 맹신적으로 주입된 신앙인지, 진지한 성찰과 의심, 그리고 반성을 통해 다져진 믿음인지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신앙의 분위기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비교적 보수적인 기독교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반면 저자는 다시 진보적인 기독교 교단에 속한 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글은 내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나의 믿음에 대해 강력한 도전 과제를 던져 주었다.
나는 이 책을 기독교의 문제성을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한국교회가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잘 해왔고, 의심없이 예수님을 잘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이 당신을 알에서 깨어나오게 할 만큼 권위 있다고 말할 순 없다. 또한 당신이 알 속에 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민 없이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이 책을 통해 고민과 의심, 그리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면 신앙을 더 견고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행여나 이 책을 보면서 믿음이 흔들릴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기우다. 정말 믿음을 흔들게 하는 책은 <긍정의 힘>이나 <시크릿> 같은 책이라는 것을 ... 이 책이 알려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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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충격적일만치 강렬한 펀치를 날리는 제목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도를 믿지 어떻게 믿지 않는단 말인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 끝을 왜 보느냐는 말이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어찌 보면 따가운 비난이 돌아올 수 있는 말인데 기독교인이라면 진정 예수님를 품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도전장을 내어민다. 100분 토론 형식으로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진정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왜 그런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가 갔다.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흥분하지 말고, 왜 우리가 남이 볼 때 '예수님을 안 믿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너는 정말 나를 믿는 기독교인이냐"라고 묻고 계세요. -25쪽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왜곡하지 않고, 예수님의 뜻이 구현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겉 모양만이 붕어빵처럼 찍혀있는 기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품어내는 예수님의 진리와 생명의 씨앗을 전하는 기독교. 현대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를 찾아가보고 질책을 두려워하지 않고 밝히며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품어야 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고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책이다.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과 한국 교회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토론의 방식으로 오늘의 기독교를 성찰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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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파격적인 제목과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저자가 겨냥한 독자는 '기독교인'이다.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의 정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소위 '기독교인'인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느낀 평소의 고민과 많이 닮았다.
1. 헌금
십일조.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내게 생명을 주셨으며,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자녀를 허락하시고, 가정을 허락하시고, 생업을 포함한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돈의 일부를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의미있는 행위이다.
나는 헌금은 십일조로 족하고, 모든 교회 지출은 십일조로 이루어진 교회수입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십일조, 건축헌금, 절기헌금 (부활절, 맥추절, 성탄절), 감사헌금... 헌금의 종류가 많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교회마저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우리 교회는 현재 성전건축을 위한 부지를 구입해 놓은 상태인데, 모자라는 땅값을 은행에서 대출 받았는데, 은행은 대출금에 대한 일종의 '담보'로 성도들의 '건축헌금 작성서'를 요구했고, 건축헌금 작정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당신을 낮추고 낮추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과연 오늘 날 으리으리한 교회건물에 들어가시기나 하실 것인가?
저자는 자발적인 헌금이 아니라 사람들의 목적과 금액을 먼저 설정하고, 그 목표액의 헌금을 강요하는 교회의 현실을 불편한 눈으로 보고 있다. me too...
2. 당신들의 천국
마르크스가 종교 (천주교,기독교)를 '아편'으로 규정한 이유는 기독교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내세의 천국만을 강조하면서, 현세에서 가난과 병에 시달리는 자에게 하늘나라에서는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만 위로할 뿐이어서 였는데, 저자 역시 예수님은 현세의 천국을 내세의 천국보다 강조하셨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대학시절 들었던, 아마도 남미에서 시작된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측되는, 천주교발 민중가요 '금관의 예수'가 잘 보여주고 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이곳에 ... 우리와 함께 하소서"
왜 사회의 불의에 대해 기독교는 침묵하는가?
3. 너무 값싼 구원 기독교가 선포하는 구원은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 참 쉬운 것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올려 놓고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무임승차하면 된다.
1주일 중 6일을 개차반처럼 살더라고 까짓 것 1주일에 한 시간쯤 시간내어 교회에 가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내 영혼은 구원받고 나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교회가 가르치고 있지만, 저자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살지 않으면, 관념적 믿음이나 립 서비스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4. '쉼'이 없는 교회 - 누구를 위한 봉사인가?
현대 교회는 조직화가 되어 그 조직을 유지해갈 인력이 필요하다. 성도들을 위한 차량운전도 해야하고, 큰 교회는 주차요원도 필요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필요하고, 성가대도 필요하고... 교회 조직을 위해 나름대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교회조직을 위한 봉사를 하나님에 대한 봉사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그것이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니라면서 어떤 성도가 인터넷에 올린 '교회에 갔다오면 5년씩 늙어요'라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1주일에 5~6일을 생업에 종사하면서 피곤하여 하루쯤 쉬어야 하는데도 기독교인들은 주일까지 교회에서 각종 일을 하면서 쉼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김장환 목사님의 아드님인 김요셉 목사의 저서인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에서도 주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안식일을 지키는 게 소개된다. 쉬는 것은 게으른 게 아니라 인생의 마라톤을 위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필수적인 것이다.
주말에 집에서 잠만 잔다고 구박하는 신랑과 애들 앞에서... 이제 당당하게 쉬어야겠다...
5. 기복과 기도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교회에는 '거지'가 득실거린다고 했다. 왜냐하면, 기도 내용을 들어보면 하나 같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고.
"우리 아들 좋은 대학 붙게 해 주세요." "우리 딸 좋은 회사 취직하게 해 주세요." "우리 신랑 사업 번창하게 해 주세요."
정화수 떠 놓고 천지신명께 자녀의 안녕과 번영을 빌던 기복신앙과 기독교인의 기도가 뭐가 다른가?
내 기도 역시 기복에 머물고 기도의 범위를 피붙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새 학기를 맞이하여 애들을 위해 기도한다.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을 애들 주변에 배치해 주셔서 아이들이 좋은 영향을 받아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러다 문득, 나 자신은, 나를 구원하시려 자기 목숨을 버리신, 나를 위하여 조건없는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소위 크리스찬인 나는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던가? 돌아보게 되었다.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사소한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핏대 올리고, 내게 조금 섭섭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칭찬하기 보다 뒤에서 흉보는 내가 보인다.
크리스찬으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조건없는 예수님의 삶을 흉내내리라 결심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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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감사하게도 위즈덤하우스 서평단에 뽑혀서 선물로 받아서 읽어 본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어떠한 책을 읽을 때보다 더욱 더 꼼꼼하고 정확하게 어떤 내용으로 어떤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인지 생각하면서 읽었다. 먼저 이 책의 내용적인 면을 얘기하기 앞서 우리가 잘 아는 100분토론의 형식으로 이 어려운 주제를 풀어나가는 점에서 책을 읽는 사람 입자에서는 어려운 내용을 아주 재미있게 토론형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시작해 본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다시피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기는 한데 그냥 곁으로 보기에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하는 기독교인들 이 책에서 붕어빵기독교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에 딱 걸맞다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일까? 를 서로 고민해 보는 토론의 내용이었다. 역시 어느 주제나 마찬가지로 빠질 수 없듯이 진보적인 기독교인들(목회자 포함)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목회자 포함)로 나누어 물론 글로 풀이해 놓은 것이지만, 실질적인 100분토론을 하는 장면들을 연상하면서 볼 때 화끈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목사를 먹사로 짝퉁예수, 붕어빵 기독교, 등 보수적인 기독교인 측면에서 듣기 거북한 언어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이제 짱구는 이 책이 왜 출판하게 되었고, 왜 100분토론 형식으로 표현하면서 까지 이런 내용을 다뤘을까? 먼저 남,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비 기독교인들이나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는 한편으로는 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회개하면서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진정한 예수님을 만나고 일하기를 기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긴다. 이 책 마지막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교회를 다니는 목적? 교회에서 기도하고 설교말씀을 듣고 찬양을 부르는 이유? 누구한테 잘 보기 위해 누구를 위해 일부분은 맞는 말일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은 혼자 살 수는 없다. 서로 돕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기본일 것이다. 그 이후 역시 예배시간 때 졸음이 와서 조는 것은 물론이고 예배만 마치면 그냥 도망가듯 인사만 드리는 가버리는 초신자생활만 지속하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면서 교회 내에 있는 아동시설과 노인시설을 같이 섬기고 있는 교회로 취업이 되어 지금 4년이 지났다. 그러면서 믿음이 자라기 시작하고, 짱구는 다른 어떤 기도는 잘 하지 않는다. 진정하고 정직한 예수님의 믿음을 주면서 교회 안은 물론이고 밖으로도 항상 예수님을 위한 일을 해 달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이런 주제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는가? 적어도 우리라도 회개해서 다른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자랑할만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런 자격이 될만한 사람이 되도록 회개하며 믿음을 달라고 짱구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항상 머리에 각인 시켰다. 그래도 사람이라서 화내고 욕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 맞나? 할정도의 어이없는 태도를 보일 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숫자를 줄여 나가는 것 진정한 예수님신자로 계속 변화되는 것 이 책을 통해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비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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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며 딸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엄마,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는데 왜 이런 책이 있어요?!!" 나 역시 받아든 책을 보며, 아니 책 제목만 보고서 '헉!'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다 읽고 난 지금 난 체해 있다.( 원체 잘 체하기도 하지만, 참 맘이 너무나 아픈 책이었다.)
어릴 적 학교를 다닐 때에, 운동을 한답시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교회와, 신학과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비판했던 때가 있었다. 신학을 하면 할수록 너무나 부끄럽기도 했고, 내가 배우고 있는 예수와 내가 전하고 있는 예수와, 또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들려지는 예수는 전혀~ 딴 판이었던 적이 있었다. 젊고, 채 알지 못한 모습이었기에, 그냥 그대로 삿대질하고, 거품을 물곤 했던 때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치기어린 내 모습이 스친다.
어쩜 말도 안되는 제목인 것 같지만, 맞는 말임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죄송하고, 나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아니 내가 고백하고, 내가 말하고 있는 예수님과, 교회,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게 했다.
이 책엔 소위 정통 보수라고 하는 분들이 보기엔 참 민망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들도 나온다. TV프로인 100분 토론 형식을 빌어서 여러 패널들과 사회자,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목소리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서로 열띤 토론들을 하는 이야기이다. 작가가 얘기했듯이 아마 이 책이 그냥 서술형으로 진행이 되었더라면, 이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던져 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박진감과 사실성들이 대화의 형식을 빌어서, 독자들에게 훨씬 더 쉽게 어필을 하고 있다.
나정통, 이성공,조하나, 남예혁의 네명의 목사와 누구를 그렸음이 짐작이 가는 연예인 평신도인 예신자. 사회비평가이기도 하며 평신도운동의 이론가인 권중진, 또한 사회자인 신석기 이 7명이 요즘 참 많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이 궁금해 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는 9가지 문제에 대해 설전을 펼친다.
예수와 관계가 없는 기독교, 붕어빵 기독교와 그 원인들( 성공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예수!), 붕어빵 교회와 짝퉁 예수, 그에 반하는 진품 예수, 예수에 대한 믿음과 예수의 믿음!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정말 목숨을 내 놓고 예수를 믿었다. 믿음 때문에 집안에서, 마을에서 쫓겨나고 미움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사교의 장처럼 되어 버린 아픔의 현실이다. 내가 만들어 놓은 예수와 그런 예수를 섬기는 부끄러운 내 모습 어느덧 교회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버린 나눔이나 섬김의 모습이 아닌,맘몬의 모습들 예수의 믿음을 알기보다는 통로로서의 내가 되기 보다는 내 욕심으로 점철이 되어 버린 우리의 모습들! 그런 모습의 우리를 보며 그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삶의 변화가 없고 믿음의 뿌리도 없는, 섬김과 사랑, 나눔이 점점 부재가 되어 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나 때문임을 가슴 절절하게 느끼며, 초대교회의 모습처럼 나누고 실천하는 모습이 보여질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 움직이시며,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마지막에 나왔던 예수님의 소리가 맘이 계속 남는다.
.. . . . .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 모여 놓고도 나를 모른 체하고 내 이름을 찬양하면서도 내 마음에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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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나의 말을 전하라! 너희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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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주여." 부르짖는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그렇게 고백한다고 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신실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은 전혀 다른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다. 구원은 외면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내면의 믿음과 그에 맞는 행동의 발현으로 받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입으로 주님을 부르짖어도 구원이 보장 되지는 않는다.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이 책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앙 행태를 지적한다. 모양은 붕어와 같은데 그 안은 전혀 달라서 진짜 붕어라고 할 수 없는 붕어빵과 같이 모양은 기독교지만 그 안에는 주님이 없는 붕어빵 기독교를 고발한다. 짝퉁 예수를 가르치고, 전하는 붕어빵 기독교의 잘못을 밝힌다. 특이한 점은 이야기를 'MBC 100분 토론' 이라는 TV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 인물들의 대화로 진행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형식을 통해 다소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비교적 쉽게 풀어나간다. 따라서 읽는데 기교적 지루함과 부담이 적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현재 한국 교회의 오류를 밝힌다. 강단에서 행해지는 잘못들과 교회의 문제점 등 한국 교회의 위태한 모습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제시한다. 이야기의 마무리로 비판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작금의 한국 교회의 문제를 되돌아 보고, 그것을 반성 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단지 그것으로 그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잘못하고 있는 것은 바르게 고치고, 잘 하고 있는 것은 더 잘해야 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말이다. 예배 시간에 복음을 듣는 게 쉽지 않다. 이 말에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설교에 담긴 게 복음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그러면 이렇게 대답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는 대부분의 설교에는 복음이 아닌 복음이 담겨 있다라고. 성도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 축복의 말, 긍정의 말만 가득한 설교에 복음은 없다. 단지 복음처럼 교묘하게 위장한 말만 담겨 있다. 물론 모든 설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문제는 많은, 거의 대부분의 설교가 그렇다는데 있다. 그로 인한 문제점은 성도들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나아가 구원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목회자들의 어깨가 매우 무겁다. 로마서에서는 율법주의자에 대하여 믿음이 강조 되었고,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강조 되었다. 그 두 가지를 고루 갖추지 못하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입으로만 시인하는 믿음, 혹은 믿음 없는 행위는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성도들이 전자 혹은 후자에 머문다. 그래도 구원을 받을 줄로 착각하고 말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목회자들의 잘못이 크다. 성공제일주의에 빠져 성도들의 눈치를 보며 설교를 한 까닭이다. 한국 교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 물론 하나님의 큰 틀 안에서는 지금의 상황도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없다. 다만 이대로 간다면 마지막 날에 구원 받는 영혼의 수가 적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을 하루 빨리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영혼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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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요일 점심 때, 교회에서 이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본 다른 분이 무슨 이런 책을 읽냐고 핀잔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재밌다고 읽어보라고 했더니... 됐다고, 나는 이런 책 안 읽어도 된다고 하면서 가버리는 겁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제목만 보고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해라고 반문할 것 같습니다. 소위 이런 책은 기독교를 까고 싶어하거나 교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나 읽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책은 교회 비판하려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우리는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성경대로 따져보니 왜곡된 것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저도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정상적인 기독교 안에서 예수 잘 믿는 제대로 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그게 매트릭스처럼 진실이 가려진 세상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하니까 다른 분은 그런 너는 다빈치 코드 읽고나서 지금까지 기독교는 다 틀렸다고 말할 수 있냐고 묻더군요.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물론 이 책도 그렇게 전복(?)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닙니다. 즉 다 틀렸다가 아니라 적어도 지금 시대의 교회와 기독교 가운데 일부 잘못된 현상이 있으므로, 그것은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잘못을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보다 위험한 신앙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책이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정말 이런 책 왜 읽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서점에서 몇 페이지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