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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九雲夢圖]. 구운몽에 관한 그림이라는 말일 것이다. 부제도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 이라 붙어 있다. 저자는 이책은 구운몽도를 가지고 구운몽을 읽은 것이지, 구운몽을 가지고 구운몽도를 읽은 것이 아니라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하루밤 만에 써내려 갔다는 구운몽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대제학으로 재직중 장희빈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고, 유배지에서의 외로움과 고통속에서 자신의 어머니도 똑 같은 심정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자 썻다고, 우리는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다. 17세기말에 창작된 이 소설은 18세기 초반 목판 인쇄되어 위로는 군왕에서부터 밑으로는 하층 백성에 이르기까지 두루 읽혀졌다고 한다.
구운몽의 줄거리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다. 중국 남악 형산에서 도를 닦는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계를 어기고 술한잔 마신끝에 위부인의 제자 팔선녀를 교각 위에서 만나 희롱한다. 그 후 팔선녀를 잊지 못하는 성진을 육관대사는 염라국으로 팔선녀와 같이 추방하고, 이들은 인간으로 환생한다. 양처사의 아들로 환생한 성진(양소유)은 양처사가 신선세계로 떠나자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고, 과거시험을 보면 장원급제요, 음악이며 시며, 전쟁이며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후 양소유가 역시 인간세계로 환생한 팔선녀와 만나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들을 만나 2처6첩으로 삼아 거느리며 잘살다가, 나이가 들자 조정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보낸다. 어느날 생일잔치를 끝내고 8명의 부인과 함께 불교의 귀의할 것을 얘기하는 도중, 이국의 승려가 와서 지팡이로 난간을 두어번 두드리니 문득 꿈에서 깨어나 방석 위에서 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바탕 꿈속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성진은 득도에 더욱 정진하고, 팔선녀도 불제자가 된다. 불자세계에서 나와 속세로 같다가 다시 불자세계로 돌아와 깨닫음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구운몽을 일컬어 조선시대 환상문학의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제목부터 몽환적이라고 말하는 그는 구운몽이 현실과 꿈, 그리고 현실과 현실너머의 세계가 중층적 구조를 이루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평한다.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고, 소설에 인용되는 수많은 역대 고사는 그 텍스트와 구운몽을 겹쳐서 이해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소설에 적용된 화법과 예법에 대한 관심이 구운몽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것은 한글을 배우고 화법을 읽히며, 교양과 예법을 공부하는 중요한 학습방법이었다고 한다. 구운몽에도 대제학을 지낸 서포의 유식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죽 했으면 영조가 구운몽을 읽고 좋은글 이라고 감탄했을까
일반적으로 소설에는 삽화가 들어간다고 한다. 서양의 소설이 그렇고, 중국과 일본의 고대소설이 다 그러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소설, 특히 조선소설에는 삽화가 전무하다고 한다. 아마 상업의 미발달이 가장큰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 된단다. 삽화가 들어가게 되면 제작비가 당연히 올라가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그린 그림은 있었다고 한다. 춘향전, 심청전, 토끼전등의 그림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논의할 정도는 안되며, 소설그림으로 대표적인것이 삼국지도와 구운몽도라고 한다. 삼국지도는 국가의 대사 또는 집안의 문제를 전쟁이라는 해결방식으로 풀이하였고, 구운몽도는 개인의 사랑을 예술과 놀이형식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구운몽도는 조선시대 민화이다. 조선시대 민화의 용도는 병풍에 쓰이는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사찰이나 관청등의 벽화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구운몽도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기방이나 주막의 벽에 걸려있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단다. 누가 그렸는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마 여러 사람이 제각기 그렸겠지만, 저자가 지금까지 확인한 구운몽도는 대략 40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림의 주로 양소유가 2처6첩의 8부인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 이고, 대부분이 병풍에 그려진 채로 소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말로 그린 그림이고, 그림은 종이 위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지만 구운몽도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구운몽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 이라고 한다. 이는 조선 병풍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장식성과 잘 부합 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마 그래서 확인되는 구운몽도가 대부분 병풍에 나타나는 것 인지도 모른다.
구운몽도를 통해서 저자는 조선시대 민화들이 조잡하고 몰개성적이라는 편견을 바꾸었으며, 구운몽의 독법까지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구운몽의 가치는 구운몽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낭만적 사랑을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있다고 한다. 구운몽도의 개성은 자유로움이고, 어디에도 얽매이지않는 활달함과 분방함이 구운몽의 정신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조선시대 풍속화와는 또 다른맛을 보여주는 구운몽도를 하나하나 다시한번 감상한다. 거기서 구운몽속의 이야기를 생각해보고, 또 우리조상들의 삶의 이야기를 찾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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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슨트(docent)와 같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처럼 저자 정병설은 소설 구운몽을 설명한다. 책 <구운몽도>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림(圖)에 대한 내용이다. 구운몽을 소재로 그린 민화(民畵)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40여 점의 구운몽 민화를 접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 구운몽도를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이 도슨트처럼 상세하다. 저자도 책 머리말에서 "이 책은 구운몽도를 가지고 구운몽을 읽는 것이지, 구운몽을 가지고 구운몽도를 읽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두었다.
소설 구운몽은 조선 숙종 때 김만중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도 유명한 고전물이다.
구운몽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 성진(性眞)이라는 자는 육관대사(六 觀大師)의 제자이다. 그는 8명의 선녀(팔선녀)에 마음을 빼앗겨 수도에 정진하지 못한다. 스승은 성진을 인간세상에 태어나는 벌을 내린다. 성진은 인간으로 환생하여 여덟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입신양명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 노년에 성진은 모든 부귀가 물거품임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꿈에서 깨어난다. 결국, 인간세상을 꿈을 통해 경험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성진은 스승에게 잘못을 용서받고 불도에 정진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구운몽은 인간세상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내용이다. 제목의 '구운'은 주인공 성진과 팔선녀를 가리킨다. 인간의 삶을 생겼다가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한 소설이 구운몽이다. 구운몽은 임금부터 기생까지 읽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명세를 탔으니 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려는 화가들도 많았을 것 같다. 실제로 같은 장면이라도 서로 다른 시각에서 그린 민화가 있다. 그런 민화를 비교하면서 저자는 구운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구운몽을 음란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다처제를 접어두고라도 주인공 성진의 호색 취향이 외설스럽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권할만한 내용이 아니므로 교과서에 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생각이 다르다. 구운몽은 교훈을 전하기보다 인생의 아름다움, 낭만, 사랑, 자유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 구운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고 받은 말에서 예절을 배우고 화법을 익일 수 있다고 한다.
구운몽이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운몽은 그 옛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였던 셈이다. 몽환적인 구름이 등장하고, 꿈과 현실이 뒤섞여 환상적인 상상을 유도한다. 생계가 각박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려운 현실을 잠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 구운몽이다. 저자는 구운몽도를 통해 이런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도 감상하면서 구운몽도를 읽을 수 있는 책이 <구운몽도>이다. 부제는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문학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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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읽었던 전래동화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이, 바로 <구운몽>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아주 짧고 원본에서 많이 각색된(교육적으로..^^) 동화였지만 그때까지 읽었던 <금오신화>나 <홍길동전>을 비롯한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랑 이야기와 꿈 속의 꿈 이야기로 무언가 몽환적이면서도 진실을 알 수 없었던 그 이야기 구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였다. (당시 사춘기가 막 시작되었던 나는 연애 이야기와 SF에 푹~ 빠져있었다.ㅋ) 그 이후 <구운몽>을 다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대강의 내용과 그때의 내 마음은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이라는 소제목을 단 키워드 한국문화 <<구운몽도>>는 내게 새로운 시도 같아 보였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마음과 그냥 소설이 아닌 그림으로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점이 무척 신선하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인상깊은 장면이나 자신이 느낀 중요한 부분을 다시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곤 한다. 이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또한 지금이나 옛날이나 다를 것이 없다. <구운몽>이라는 소설이 비록 사적으로(김만중이 어머니 윤씨부인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지기는 했지만 그당시 대단히 유행을 하고 이후 책으로 출간되어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아래로는 기생들과 일반 서민들까지 즐겨 읽는 소설이었다니 그 위세가 실로 엄청나다. 이러한 형편이니 그저 글로만 읽는 소설이 아닌, 그림으로도 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으랴. 키워드 한국문화 <<구운몽도>>는 현존하는 구운몽도 여러 점으로 살펴 본 소설 <구운몽>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림으로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와 그 용도를 추리해보고 구운몽이 갖는 의미 등에 살펴 본 책이다. "이 책은 <구운몽도>를 가지고 <구운몽>을 읽은 것이지, <구운몽>을 가지고 <구운몽도>를 읽은 것이 아니다."...머리말 <<구운몽>>의 내용 자체가 풍류를 즐기고 낭만적인 내용이기 때문인지 <구운몽도> 또한 대부분 무척이나 밝은 색채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보아 온 그림들(민화)보다 훨씬 화려한 것 같다. 절에서 본 탱화의 그 색감과 거의 맞먹는다. <구운몽도> 적격홍 장면,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 <구운몽도> 진채봉 장면,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 <<구운몽>>의 내용과 <구운몽도>를 비교해 본다면, 그 내용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참 재미있는 발견이다. "<구운몽도> 병풍이 지닌 특징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첫째 다른 그림들과 혼합된 병풍이 드물지 않으며, 둘째 이야기 차례와 그림의 순서가 일치하는 것이 없고, 셋째 소설 내용과 차이가 있는 그림이 적지 않으며, 넷째 어떤 내용을 그렸는지 특정할 수 없는 그림이 드물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28p 우리가 책을 읽고나면 그 중요한 내용은 기억하되 세세한 표현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구운몽도>가 꼭 그렇다는 것이다. 단지 그 내용 속의 이미지만 차용한다는 점에서 소설 <구운몽>의 중요한 키워드인 "자유"를 <구운몽도>에서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림들은 화가의 실력 차이에 따라 조잡하게도, 훌륭하게도 보이지만 그 그림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그림만 보아도 어떤 장면인지 잘 떠올릴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장면이라도 무척이나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구운몽도>>는 바로 이런 재미를 깨달을 수 있다. 또한 <<구운몽도>>에는 전체적인 기본 내용 외에 "키워드 속 키워드"라는 코너를 통해 <구운몽>이나 <구운몽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한 작품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구운몽>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니 원전 소설 <구운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이 <구운몽>의 사상이나 교육성 등을 따진다 해도, 결국 <구운몽>을 읽는 재미는, 서로 속고 속이며 즐겁게 희롱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살벌하고 메마른 현실을 살짝 빠져나오게 하는 탈출구"(...174p)로서의 역할이 가장 충실하다고 나 또한 생각한다. 이제 짧고 교육적으로 각색된 동화가 아닌 한문소설을 잘 완역한 소설로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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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책의 서평을 쓸 때 가장 먼저 첫 느낌이 어땠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사람과의 만남처럼 책과의 만남 또한 나에게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책 한 권에 의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말을 종종 들은 적이 있으리라. 나에게도 인생이 바뀌었을 정도는 아니지만 크게 영향을 미친 책들이 몇 있었고 처음 그 책을 고르게 됐었던 계기가 그 책의 커버 디자인과 제목이 마음에 들었었던 것이 이유였었기 때문에 나에게 책과의 첫만남, 즉 첫인상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구운몽도와의 첫 대면은 작고 아담하여 한 손에 딱 맞게 쥐어지는 판형에 혹~하고 간결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여백의 미를 강조한 표지에 반했다. 그렇게 책과의 첫만남 이후 펼쳐 든 책은 내가 지금까지 별 생각을 하지 않고 넘어갔었던 구운몽 이라고 하는 조선시대 소설에 이목의 집중을 강요했다. 다만 그 강요가 새로운 사실을 접하도록 하기 위한 기분 좋은 강요였다는 것. 구운몽은 사실 일반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책이지만 사실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읽었던 내용을 그대로 외우기만 했기 때문에 구운몽은 – 조선 숙종 때 김만중이 지은 고대 장편 소설이며 인간세상의 부귀영화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불교적인 인생관을 주제로 하고 있다 –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며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알아볼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던 소설이었다. 왜냐하면 불교적 철학을 담은 소설이라기에 조금은 따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졌었기 때문에 더 그랬었던 듯 싶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이 책에서 나는 구운몽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저자 분을 만나게 됐다. 저자 분 또한 구운몽에 대해 일반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셨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한편의 구운몽도를 계기로 하여 여타의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내용을 보게 되었다고 하더라. 책의 내용은 어렵지 않다. 저자는 구운몽을 주제로 하여 그린 구운몽도야 말로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구운몽을 어떻게 읽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자료라고 생각을 하고, 각양각색의 구운몽도에서발견되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나씩 설명해주고 있다. 게다가 그림과 같이 연상되는 시대적 배경들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같이 설명하고 있기에 그 당시의 시대적 문좌적 배경들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이야기는 말로 그린 그림이요, 그림은 종이 위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와 그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라고 93 페이지에서 저자분께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분은 그렇게 구운몽도라고 하는 그림으로 구운몽을 읽고 있었다. 나또한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알수있는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찌보면 오히려 신세대들에게 외국 문화들에 비해 천대받는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의 문화를 다시금 깊이 생각하며 흥미를 느낄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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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설 저| 문학동네| 184쪽| 240g| 140*190mm| 2010년01월08일| 정가:11,000원
[구운몽]을 읽었으나 소설이 흥미 있어 읽었다기보다 표지에 홀려 읽었다(구운몽 리뷰 바로가기). 책을 읽고 있으려니, 교과서에 구운몽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는 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역사나 우리문화에도 딱히 아는 것이 없어 읽었으나 모호한 기분이었다. 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늘 관심 갖고 있었던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에 [구운몽도]에 대한 이야기가 출판되었기에 읽게되었다.
오주석 선생의 우리 그림에 관한 책을 읽었고, 일본 우끼요에에 관심을 두었다가 요즘을 불교 미술에 관한 독서를 하는 터라, 소설을 바탕에 둔 구운몽도는 어떨지 궁금증이 동했다. 우끼요에는 소설 삽화로 많이 이용되기도 해서, 혹여나 [구운몽]에도 삽화가 들어갔으려나 기대했지만, 이 책에서 알려준 우리나라의 옛출판시장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영화 [음란서생]에서 보았던 그런 삽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판이었다는 설명이다. 종이가 꽤나 비싼 품목에 들어가 이미 쓴 중이 뒤에 글을 써 출판하기도 하였다는 이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질 좋은 종이에 인쇄된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느닷없이 감격스러웠다.
구운몽도는 사실 구운몽도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극적으로 그려넣은 구운몽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구경꺼리 많지 않았던 옛날에 그림으로 장식해 놓으면 꽤나 과감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병풍그림이라는데, 그 병풍은 일반 양반집에 걸기에는 꽤나 요란하고 맘 시끄러운 그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보면 그냥 옛스럽기만 하다.
책은 이 시리즈의 특성상 얇고 가볍지만, 김만중의 개인사와 중국고사와 구운몽의 관계, 소설의 독자가 쓴 육관대사가 성진을 지옥으로 보낼때 만든 공문의 이야기 등 다양한 가지치기 이야기가 있어 꽤나 풍성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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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의 <구운몽도>. 구운몽도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과 자유를 그림으로 해설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구운몽은 유불선의 교훈과 인생무상을 가르치는 이야기로 기억된다. 하지만 지은이 정병설은 생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구운몽이 가르치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즉 낭만적 사랑과 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살아있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남악 형산의 불제자인 성진은 육관대사의 명을 받고 용궁에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선녀 위부인의 제자인 여덟 선녀를 돌다리에서 만나 서로 희롱한다. 이후 성진은 팔선녀 생각에 수도에 정진하지 못하자 스승에게 벌을 받는데, 벌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태어난 양소유는 장성하자 바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서 서울로 향하는데, 길에서 진채봉을 만나 버들 노래를 주고받으며 혼인을 약속하고, 또 기생 계섬월의 사랑을 받아 들이며, 서울에 가서는 정경패와 혼약을 정한다. 진채봉은 그 사이 전란으로 행방불명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도덕적 부담도 없었다. 정경패에게는 자매와 같은 여종 가춘운이 있었는데 정경패와 가춘운은 떨어질 수 없다고 하여 함께 양소유를 섬기기로 한다. 계섬월은 미모와 재주가 자기와 쌍벽을 이루는 친구인 기생 적경홍을 양소유에게 추천하고, 양소유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해 조정에 들어가서 황제의 강청으로 난양공주를 아내로 맞게 된다. 외적을 물리치러 전쟁에 나갔더니 자객 심요연이 첩이 되기 위해 구름을 타고 날아오고, 동해 용왕의 딸 백능파를 구해주며 용녀까지 첩으로 얻는다. 이리하여 인간 세상에서 이전의 세계에서 마난 여덟 선녀를 모두 얻게 되는데, 양소유는 여덟 여인과 함께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다. 노년에 이른 양소유는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아무리 부귀해도 그 모두가 물거품임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한다. 이 순간 어떤 고승 한 명이 찾아오는데, 이때 성진은 꿈에서 깬다. 꿈에서 깬 성진은 큰 깨달음을 얻는데, 팔선녀 역시 같은 깨달음을 얻어서 모두 육관대사의 제자가 되어 불도에 정진한다.
이름부터 양소유는 풍류를 타고났으며, 아버지 양처사는 원래가 신선으로 양소유가 열살 때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이는 양소유가 세상에 던져져서도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신선의 아들임을 나타낸다. 양소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물이고 팔선녀 또한 그렇다. 양소유가 2처 6첩의 여덟 부인을 둔 것에서 제도적 속박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거론하는 양소유와 팔선녀는 불합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구속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구운몽의 주제인 것이다. <구운몽도>에서는 30여점의 그림이 들어있다.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 마치 내가 팔선녀 중 한사람으로 동화되어 이야기 속에 빠지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갖는 낭만과 자유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리라. 학창시절과 달리 해석해 읽어 본 <구운몽도>. '삶이 아름다운 이유'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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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다시보는 구운몽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 없이 판타지를 자아내는 것인가
읽는 사람 마음 아니겠어? 그치 순규야? 그림으로 다시보는 구운몽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 없이 판타지를 자아내는 것인가 읽는 사람 마음 아니겠어? 그치 순규야? 그림으로 다시보는 구운몽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 없이 판타지를 자아내는 것인가 읽는 사람 마음 아니겠어? 그치 순규야? 그림으로 다시보는 구운몽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 없이 판타지를 자아내는 것인가 읽는 사람 마음 아니겠어? 그치 순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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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는 부쩍 원작 소설을 따로 두고 이를 기초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영화라는 영상매체만을 위해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이라는 장르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들, 영화만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신선도가 더욱 클 텐데, 왜 구태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통해 내용을 접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영화라는 또 다른 매체로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리고 책을 읽은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 이야기를 영화로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자신의 상상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 없이 그렸던 장면과 모습들을 영화라는 실제 존재하는 화면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바로 그 마음 말이다.
![]() 상상을 구현해내는 매체로서의 그림.
책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 환상적인 배경,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수 없이 많이 그리게 되는 상상들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수는 없을지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은 아마도 글자가 존재하고 그 글자를 통해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졌던 시간들 속에서라면 시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생동감 넘치고 현실적인 화면을 보여주는 영화나 TV가 없었던 과거에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유일한 매체는 아마도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림은 그저 아름다운 것들을 지면에 그대로 옮기고 보전하기 위한 단순 기록의 매체가 아닌, 말로서는 담아내기 힘든 표현과 구현의 매체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 구운몽을 그리다.
<구운몽도>는 바로 그 소설을 그림으로 그린 그림들 중 구운몽이라는 조선시대의 베스트셀러를 그려낸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단순히 구운몽이라는 소설을 그림이 어떻게 표현해냈느냐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그저 구운몽도를 위한 책이 아니다. 소설을 매개로 하여 그림을 보는 법, 그림으로 소설을 보는 법, 여기에 소설 구운몽과 그림 구운몽도의 차이점까지 세세하고 예리하게 지적함으로서 소설로서의 구운몽과 그림으로서의 구운몽도에 각각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당시의 시대상과 문학적 혹은 미학적 가치들을 찾는 법을 소개하는 데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에 의의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구운몽이라는 소설과 그 소설을 배경으로 그려진 구운몽도에서 같거나 혹은 다르게 나타난 표현들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들의 바람이나 환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살펴보고자 노력한 것이다 ![]() 자유를 써내려간 구운몽, 환상을 담아낸 구운몽도
구운몽은 사실 우리에게 그다지 어색한 제목의 이야기는 아니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고, 단골 시험소재로 사용되었던 경력까지 가지고 있기에 대략적인 내용이나 구성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팔선녀를 만나 속세의 부귀 영화를 원한 죄로 세상으로 추방당한 성진,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세상에 나오게 된 팔선녀가 인간 세상에서 양소위와 8명의 여인으로 재회하며 속세에서 누릴 수 있는 갖은 부귀와 영화를 누려보는 인생을 얻게 되지만 모든것은 허망한 것이었고, 그 모든것이 성진의 한낱 꿈일 뿐이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성진은 그 모든것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구운몽의 줄거리는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되짚어 볼때 여러모로 충격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단지 소설이기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상상을 담아내는 소설이라는 장르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던 이 이야기는 그래서 문학사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대단히 파격적이었으리라.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던 자유분방함을 글로 써내려간 것이 구운몽이었다면 그 환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려낸 것이 바로 구운몽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구운몽도에 담긴 이상을 꿈꾸다. 책에서 언급한대로 조선시대에는 일처다부제가 가능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양소유처럼 호방하고 천재적이면서 동시에 어리숙하기 그지 없는 인물이 실존할리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당시의 세상은 모든 것이 성별과 신분, 그리고 규약과 예절이라는 억압에 갇혀 있었던 시대였다. 때문에 모든 것은 작자인 김만중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이자 상상이고, 실존하지 않기에 더욱 환상적인 허구일 뿐이었을 것이다. 실제할 수 없었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상상. 구운몽은 바로 그 이루어지지 않을 것 만 같기에 더욱 그리게 되고, 도달할 수 없기에 더욱 애절히 바라보게 되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담아낸 이야기 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구운몽을 그림으로 표현해낸 구운몽도 역시 그 환상과 상상, 그리고 애절함을 가득담은 자유분방함을 그려낸다. 소설의 내용과는 상이하게 표현된 그림들, 때로는 뒤틀리고 황당한 설정들을 그림속에 담아내어도 그것이 구운몽을 시작으로 한 것이기에 자유와 상상으로 설명되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극락이라는 환상에서 시작하여, 현실에 내려왔으나 환상에 가까운 자유와 부귀를 누리는 양소유는 그래서 글과 그림 모두에서 사람들의 환상과 바람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은 이 이야기를 지을 당시 유배중에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지은 동기에 대해서는 많은 설들이 있지만 유배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작가가 자신의 억눌라고 통제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구운몽을 지었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설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구운몽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그가 환상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글속에 불어넣었다는 것이나 문학적으로 뛰어난 독창성등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 보다는 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당시의 백성들이 꿈에서나 그렸던 소망과 교감했다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나 이룰 수 있고, 무엇이나 할 수 있던 양소유의 자유, 바로 그것을 원했던 그 마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낸 구운몽도의 가치 역시 백성들의 환상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더욱 진하게 채색하여 녹여냈다는 것은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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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이 그림의 비밀은 보는 시각에 따라 미녀도 되고 마녀도 된다는 점에 있다. 어렸을 때 선생님께서 이 그림을 보여주시면서 무엇으로 보이냐고 물으신적이 있다. 나는 이 그림이 미녀로 보였었다. 그런데 어떤 친구는 마녀로 보인다고 했고 대부분 금방 이 그림이 미녀로도 보이고 마녀로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이 그림이 마녀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직접 눈이 여기고 코가 여기고 입이 여기라서 마녀얼굴이 된다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 전까지 나에게 이 그림은 미녀얼굴 그림일 뿐이었다. 그만큼 나는 좋게 말하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꽉 막힌 사람인 것 같다. 이런 나에게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다. 하루는 조카가 학습지에서 동그라미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라는 문제가 있어 같이 풀었다. 나는 기껏해야 시계, 꽃 따위의 몇가지를 그리고는 더이상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는데 조카는 수십개의 동그라미를 다 채우고도 더 많은 생각이 나는지 빈칸에다가 동그라미를 직접 그려서 문제를 푸는 것을 보고 어린 조카가 부러워졌다. 같은 물건을 다르게 남들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 같은 것을 보고도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역시 부러운 일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역시 한 가지 관점에 사로잡혔다. 구운몽이라는 고전소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구운몽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구운몽도를 보는 내용이겠구나. 그런데 이러한 내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서두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소설을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소설을 감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또 한번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소설을 바탕으로 그림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관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선했다. 내가 미녀의 얼굴 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저자는 아마 미녀의 얼굴도, 마녀의 얼굴도 모두 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 여기서 더 나아가 미녀와 마녀 그림에서 어떤 새로운 얼굴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구운몽이라는 고전소설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이상 어떤 상상이나 기대도 하지 않는 이 소설을 작가가 얼마나 새롭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구운몽을 통해서 구운몽도를 볼 사람말고 구운몽도를 통해서 구운몽을 새롭게 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에 도전해보라. 나처럼 꽉 막힌 융통성 제로인 사람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보면 누구나 싶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 우리도 저자와 함께 구운몽도를 통해서 구운몽을 읽어보자. 어차피 그림은 종이에 이야기를 펼쳐 놓은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