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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왕세자의 입학식, 무엇을 위한 의식(儀式)인가
"[10-07] 왕세자의 입학식, 무엇을 위한 의식(儀式)인가" 내용보기
이 책은 순조(純祖)의 아들로 조선왕조 마지막 희망이라고도 불리는 효명세자(孝明世子)의 입학식을 기록한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에 대한 해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처럼 조선 왕세자의 입학식 절차를 살펴보자. ‘입학례(入學禮)’라고도 하는 이 절차는 출궁의(出宮儀), 입학의(入學儀), 수하의(受賀儀)로 구성된다.   첫 번째 절차가 왕세자가
"[10-07] 왕세자의 입학식, 무엇을 위한 의식(儀式)인가" 내용보기

이 책은 순조(純祖)의 아들로 조선왕조 마지막 희망이라고도 불리는 효명세자(孝明世子)의 입학식을 기록한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에 대한 해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처럼 조선 왕세자의 입학식 절차를 살펴보자. ‘입학례(入學禮)’라고도 하는 이 절차는 출궁의(出宮儀), 입학의(入學儀), 수하의(受賀儀)로 구성된다.

 

첫 번째 절차가 왕세자가 궁궐을 나와 성균관에 도착하기까지의 의식인 출궁의(出宮儀)로 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출궁도(出宮圖)’이다.

 

그 다음 절차가 왕세자가 성균관에 도착한 이후 치르는 일련의 의식인 입학의(入學儀)인데, 크게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왕세자가 문묘(文廟)라고도 하는 성균관 대성전(大成殿)에서 공자(孔子)를 비롯한 성현(聖賢)의 신위에 술잔을 올리는 의식인 작헌의(酌獻儀) 혹은 알묘의(謁廟儀)를 마치고, 명륜당의 문밖에서 스승에게 수업을 청하고 문 안으로 들어오는 의식인 왕복의(往復儀)를 거쳐 왕세자가 스승에게 예물을 올리는 수폐의(脩幣儀) 혹은 속수의(束修儀)를 마쳐야 비로소 왕세자가 명륜당에 올라가서 박사에서 수업을 받는 의식인 입학의(入學儀)가 치러진다. 이 모습을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에서 각각 작헌도(酌獻圖)’, ‘왕복도(往復圖)’, ‘수폐도(脩幣圖)’, ‘입학도(入學圖)’라는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

 

왕세자 입학식의 마지막 절차는 입학례를 마친 왕세자가 궁궐로 돌아와 종친과 2품 이상의 문무 관원들의 축하를 받는 의식인 수하의(受賀儀)수하도(受賀圖)’라는 그림에 잘 나타나있다.

 

그런데 조선왕실에서 중국에서도 거의 시행되지 않은 왕세자의 입학식을 이처럼 성대하고 거창하게 거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미래의 군주가 될 왕세자가 스승을 대해 예를 다하고 높이는 모습과 성균관의 수많은 학생 가운데 하나로서 단지 나이만을 기준으로 예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후계자를 교육하는 동시에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윤리의 모범이 되어 그들을 교화하는 역할도 기대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후계자 교육의 목적은 몰라도 백성의 교화라는 목적은 사실상 이루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평생가도 한번 보기 힘든 이러한 행사를 통해 조선 8도의 수많은 백성이 보지도 않은 행사에 감동하여 저절로 교화(敎化)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단지 그뿐이었을까? 오히려 국왕의 의도와는 달리 스승인 사대부 앞에서 엎드려 책을 읽고, 다른 성균관 유생들과 나이를 따져 예우를 하고 받았던 왕세자를 보면서 사대부 스스로 조선을왕의 나라가 아닌사대부의 나라라는 인식을 굳혀가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왕세자의 입학례는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나타나듯이 왕과 사대부를 동격으로 여겼던 조선 후기를 좌우했던 노론(老論)의 사고방식을 조장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대부의 입장에서는 대신이나 환관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성균관 소속의 관리와 유생들에 의해 치러지는 왕세자의 입학례는 미래의 국왕이 될왕세자 길들이기가 아니었을까 

 

옥의 티

 

p. 43

성리학자 6주돈이, 정호, 저이, 소옹, 장재, 주희을 추가했는데,에서 저이정이[] 의 오타이다.

w******f 2010.02.19. 신고 공감 5 댓글 25
리뷰 총점 종이책
제왕의 길을 걷기 위한 가례의 시작인 왕세자의 입학식
"제왕의 길을 걷기 위한 가례의 시작인 왕세자의 입학식" 내용보기
입학은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 낯선 공간에서 더 넓은 세상을 호흡하며 지내게 될 신호탄 성격을 띠는 통과의례 중 경사스러운 일이다. 맞벌이로 아이들에 대한 부채를 안고 사는 엄마는 늘 어리다고만 여겼던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만큼이나 불안과 염려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느슨한 유치원 시절과는 달리 엄격한 시간 통제 속에 다수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느라 시
"제왕의 길을 걷기 위한 가례의 시작인 왕세자의 입학식" 내용보기
  입학은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 낯선 공간에서 더 넓은 세상을 호흡하며 지내게 될 신호탄 성격을 띠는 통과의례 중 경사스러운 일이다. 맞벌이로 아이들에 대한 부채를 안고 사는 엄마는 늘 어리다고만 여겼던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만큼이나 불안과 염려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느슨한 유치원 시절과는 달리 엄격한 시간 통제 속에 다수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느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낼 아이가 미덥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입학을 앞두고 혹독한 열병을 앓기까지 했다.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굼뜬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자신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적잖은 부담을 안겨 줬다. 아이에 대한 염려는 자연스레 아이의 담당 선생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이왕이면 아이들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선생님이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기억이 떠올랐다.

 

 

  역사적 사실을 극으로 꾸며 연출하는 사극을 들여다 볼 때마다 어린 왕세자가 좌정한 뒤 궁중 법도를 지켜 원로 대신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대목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어린 나이에 어쩌면 저리도 영특하게 말을 잘하는지 신기해했는데 왕세자의 입학식을 찬찬히 읽었을 때 그 궁금증이 다소 풀리기 시작했다. 제왕의 길을 걷기 위해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던 왕세자의 입학식은 국가적 경사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왕세자나 왕세손으로 책봉된 이는 오늘날의 국립 대학교에 해당하는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치렀다. 단 한 사람인 왕세자의 입학식이라 조촐하게 치러질 법도 한데 입학식에는 수많은 이들이 동원되어 규정된 철칙에 따라 엄숙한 예식(禮式)을 따라야 했다. 입학례는 왕세자가 궁궐을 나서 성균관을 방문하여 박사에게 수업을 받는 중요한 의식으로 배우고 익히며 성인(聖人)의 도를 이뤄 훗날 제왕의 풍모를 다듬어 가는 과정을 면밀히 보여 주는 의식이다.

 

 

  가례(嘉禮)에 해당하는 입학례는 학문과 예의를 중시했던 조선 왕실의 특징이 무엇보다 잘 나타난다. 입학자가 궁궐을 나와 성균관에 이르는 ‘출궁의’, 입학자가 성균관에 도착한 뒤 치르는 일련의 의식인 ‘입학의’, 입학례를 마친 입학자가 궁궐로 돌아와 문무 관원이나 종친들의 축하를 받는 ‘수하의’절차를 거치면서 입학자는 본격적인 수업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세 가지 절차를 세분화하여 그린 효명세자의 입학식 절차를 그린 왕세자입학도첩에는 경사스런 의식을 비교적 소상하게 압축해 놓아 후손들이 그 과정을 확연히 알 수 있도록 해 문화 창달의 기틀이 될 만한 소중한 자료를 담고 있다. 성균관에 도착한 왕세자는 학생복으로 갈아입은 뒤 입학식을 마치고 성균관을 나올 때까지 학생이 스승에게 갖춰야 할 예법을 그대로 따랐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내걸고 경세 치민했던 조선 시대에 삼강오륜은 시대의 이념으로 만백성들의 삶을 규정하며 국태민안(國泰民安)에 기여한 공이 크다. 왕세자이더라도 유학을 배우는 학생으로 스승에 대한 예절을 다하였고, 이런 수련 과정을 통해 왕세자는 학문과 덕망을 갖춘 성군(聖君)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입학식을 거행하면서 입학자는 스승인 박사(博士)에게 먼저 가르침을 청한 뒤 스승의 허락을 받은 뒤 건물 내로 들어가 예물을 바쳤고, 강의 시간에는 몸을 낮춰 스승의 가르침을 들었다. 왕세자는 책상도 없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어야 했다는 점은 스승과 제자가 지켜야 할 관례대로 스승과 생도의 예를 다해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데 솔선했음을 보여준다. 어린 아들이 불편하게 공부하는 점을 안쓰럽게 본 왕은 입학식 수업 중 책상 사용을 건의했지만 그것이 관철되지 않을 정도로 스승의 위상을 더욱 높였던 듯하다.

 

  

  왕세자의 입학식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성 교육을 부르짖으면서도 오로지 성적 제일주의에 발목이 잡혀서는 지적 양산만을 높이 평가하며 도외시해서는 안 될 도덕적 규범을 따르지 않고 아이들을 점점 버릇없이 자라는데 일조하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 선조들이 소학을 익히며 예의범절을 다했던 시대와는 달리 지식 습득에만 골몰한 채 어린 아이들에게 학습서만 떠안기는 것을 보면 유년 시절부터 보살피고 다듬어줘야 할 것들을 간과하고 지내는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가르침을 전하는 선생님을 공대하고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익혀야 할 기본예절을 담은 인성 관련 책을 읽으며 균형 잡힌 학생들로 커나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n*****9 2010.02.22.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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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 되기 위해, 먼저 무릎 꿇는 세자
"제왕이 되기 위해, 먼저 무릎 꿇는 세자" 내용보기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를 읽으면 부담이 없어 좋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에 사진들이 많이 들어 있어서, 그리고 한가지 주제에 대한 고증이다 보니 군더더기가 없다. 주제도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듯한, 그러나 세세히 알지 못하는 그러한 것들 이어서 좋다.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란 부제가 붙은 이책 [왕세자의 입학식]은 말 그대로 조선시대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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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를 읽으면 부담이 없어 좋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에 사진들이 많이 들어 있어서, 그리고 한가지 주제에 대한 고증이다 보니 군더더기가 없다. 주제도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듯한, 그러나 세세히 알지 못하는 그러한 것들 이어서 좋다.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란 부제가 붙은 이책 [왕세자의 입학식]은 말 그대로 조선시대 왕세자들의 성균관 입학식에 대한 내용을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듯,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조선시대 왕세자의 입학식은 태종때 양녕대군의 입학례를 처음으로 시작한 이래, 세종때 그 의식절차가 완전히 갖추어졌으며, 세조때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거행하는 주인공을 왕세자, 왕세제, 왕세손 등 왕위계승자로 결정된 인물들에 한해서만 하는 것으로 정하여 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의 의식절차를 기록한 책들 대부분이 소실되어 선조때 광해군의 입학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광해군 이후 정상으로 복구되어 고종때 순종의 입학례 거행시까지 꾸준히 계승되어 왔다.

 

입학례의 기원에 대해서는 유교 경전의 하나인 예기에 나온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의 양나라, 그리고 당나라에서 입학례가 치러졌다는 기록이 보이고, 당나라 이후에는 어디에도 입학례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조선의 경우에는 성종때 간행된 국가전례서인 국조오례의, 영조때 새롭게 정비한 국가전례를 수록한 국조속오례의보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려있다.

 

조선시대 왕세자의 입학식 절차가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왕세자입학도첩에 나타난 그들의 입학례를 보면 조선시대 제왕들과 후계자에 대한 한 단면을 엿볼수 있다. 왕세자입학도첩은 순조때 효명세자의 입학례를 기록한 것으로 출궁도, 작헌도, 왕복도, 수페도, 입학도, 그리고 수하도의 총6장의 그림으로 효명세자의 입학식 절차를 남겨 놓았다고 한다. 그 그림속에 나타난 조선시대 왕세자들의 입학례를 따라가 본다.

 

먼저, 출궁도는 왕세자가 궁궐을 나와 성균관에 도착하기 까지의 의식인 출궁의의 모습을 그린것으로, 창경궁 홍화문을 나와 성균관으로 향하는 효명세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장차 제왕이 될 세자의 출궁인지라 그 모습이 제법 거창하다.

 

이렇게 하여 성균관에 도착한 왕세자는 입학의를 치르게 된다. 작헌도는 성균관 대성전에 있는 공자와 공자의 제자인 네 성인, 즉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신위에 술잔을 올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성균관 대성전의 대성은 공자를 지칭하는 말 이라고 한다. 이렇게 성인의 신위에 술잔을 올린 왕세자는 이제 스승을 찾는다. 명륜당 문밖에서 스승에게 수업을 청하고, 세번의 사양과 청함 끝에 스승이 가르치기를 승락한 후 세자는 문안으로 들어온다. 왕복도는 효명세자가 명륜당에서 스승에게 수업을 청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 그림에서 스승은 동쪽에 서 있으며, 세자의 자리는 서쪽에 있다. 해가 뜨는 동쪽은 양이라 하여, 해가 지는 서쪽인 음보다 상석이라고 한다. 스승이 왕세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페도는 스승에게 예물을 올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예물을 전하기 전에 세자가 먼저 두번 절하고, 스승이 답례로써 두번 절을 한다.  이어서 스승에게 교육을 받는 모습을 그린 입학도가 있다. 스승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책상위에 책을 펴놓고 강의하나, 세자는 맞은편 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다. 입학식이 거행되는 동안 세자는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가 아니라 성균관의 학생이라는 자격에 부합하는 대접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입학의의 과정을 나타낸 네장의 그림에는 왕세자의 이동경로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요즘 귀빈이 어딘가를 방문할 때, 그 이동경로가 표시되는 것이 거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입학의를 마친 왕세자는 궁궐로 돌아와 종친과 문무관원들의 축하를 받는다. 왕세자입학도첩의 마지막 그림인 수하도는 효명세자가 입학례를 끝내고 궁으로 돌아와 축하인사를 받는 장면을 그렸다. 이때는 세자가 동쪽에 서서 이들을 맞이하고, 이들이 먼저 두번 절하고 세자가 답례로써 두번 절한다고 한다. 성균관에서의 모습과는 뒤바뀐 것이다.

 

입학례때 사용하는 교재는 소학이었다. 효종이나 현종은 대학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 입학을 하였기에 대학을 강의해도 학문적 부담이 없었으나, 대부분의 세자들은 입학례를 치를때 열살 전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입학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균관에서 주도 하였다. 입학식과 관련된 논의는 대신들이 주도했지만, 입학식 자체는 철저하게 성균관 소속의 관리와 유생들의 몫이었다. 명륜당에서 학생 신분으로 스승에게 갖춰야 할 예절을 지키고 배우는 것은 조선시대 유학의 명분과 실질에 잘 부합하는 의식이었으며, 장차 왕위에 오를 왕세자일지라도 유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스승에 대한 예절을 지켜야 학문과 덕망을 갖춘 성군으로 성장할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학례가 진행되는 동안 성균관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 올 수가 없었다. 호위군사는 물론 환관이나 대신들도 의식이 끝나고 왕세자가 문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입학식이 끝나면 왕은 성균관 유생들과 입학례에 관계한 사람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고 상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논란이 있었지만 별시를 치러 관인들을 뽑음으로써 사대부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일반 백성들에게는 사면령을 내렸다고 한다.

 

입학생은 왕세자 단 하나뿐인, 왕세자의 입학식은 왕세자가 주연이고, 성균관의 박사와 유생들이 조연을, 그리고 백성들은 관객이 되는 한편의 연극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주연인 왕세자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왕세자가 궁궐을 나와 성균관에 갈 때 수많은 호위군사와 화려한 의장이 수행을 한다고 한다. 이는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고, 성균관 유생의 도움을 받아 의식을 거행하고, 성균관 소속의 관리에게 교육을 받는 입학식의 모습은 한명의 유생에 불과함을 나타내는 것 이라고 한다.

 

왕세자가 입학식 이라는 의식을 통하여 부자의 윤리, 군신의 윤리, 장유의 윤리를 실천하면 백성들도 오륜의 윤리를 실천하도록 자극을 받는다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왕세자가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윤리의 시범을 보이면 백성들이 이를 따라서 하며, 왕세자가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교육효과가 커진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선의 제왕들은, 그리고 유학자들은 스승에 대한 존경과 연장자에 대한 예우 등의 방식을 통하여, 후계자를 단련 시키는 동시에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 그들을 교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은 것이다.

 

왕세자의 입학식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를 제대로 실천한 것은 조선 이었다. 이는 학문과 예의를 중시하는 조선의 특징이 잘 나타난 국가전례이자, 다양한 교육목적을 가진 왕실행사 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록 한번의 일회성 행사에 그쳤을 지라도 장차 제왕이 될 세자에게 이러한 의례를 통한 교육을 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인과 예를 중시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어떻게 보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중세 우리 선조들의 위민사상의 일단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온고지신.. 우리의 옛것을 있는 그대로 찾아, 제대로 이해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k*****1 2010.02.08. 신고 공감 4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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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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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 괜찮다. <처녀 귀신>에 뒤이어 읽은 시리즈인데, <한국의 문화>를 인문학으로 풀어낸 책들이다. 책내용은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참 알짜배기다. 앞으로도 쭉쭉 출간을 한다고 하니 살짝 기대를 한다.  조선시대에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에 아주 성대한 식을 치뤘단다. 궁궐에서 출발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문묘'를 향해 공자에게 예를 올리고, 이어서 여러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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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 괜찮다. <처녀 귀신>에 뒤이어 읽은 시리즈인데, <한국의 문화>를 인문학으로 풀어낸 책들이다. 책내용은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참 알짜배기다. 앞으로도 쭉쭉 출간을 한다고 하니 살짝 기대를 한다.

  조선시대에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에 아주 성대한 식을 치뤘단다. 궁궐에서 출발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문묘'를 향해 공자에게 예를 올리고, 이어서 여러 성인들에게 차례대로 예를 올린 뒤에 스승으로 모실 분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다시 궁궐로 돌아오기까지 아주 어렵고 복잡한 절차를 고작 8살난 어린 왕세자가 치뤄야 했단다. 그 때문에 왕세자의 입학식을 13살에 치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8살에 치루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단다.

  그렇지만 모든 왕세자가 다 어린 나이에 입학식을 치뤘던 것은 아니고, 전란을 치룬 광해군이나,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위에 올라야 했던 봉림대군(효종), 그리고 왕세자가 아니라 왕세제(왕의 동생)였던 연잉군(영조)은 훨씬 늦은 나이에 입학식을 치루기도 하였단다.

   복잡하고 힘든 왕세자의 입학식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왕세자가 스승을 모시는 장면이었다. 마치 유비가 제갈공명을 모셨던 것에서 유래한 '삼고초려'처럼, 아니 마치 임금의 자리를 넘겨주는 '선위'를 치루는 것마냥 왕세자가 신하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구걸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왕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신하가 될 사람이지만 스승으로 모시는 분에게 예를 다하는 것이 유교의 도리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왕이 되고 난 뒤에도 수많은 신하들에게 예를 받는 자리에 있다하더라도 스승이었던 신하에게만은 왕일지라도 함부로 하대할 수도 없고, 오히려 왕이 예를 다해 모셔야 한단다. 조선시대에 얼마나 예를 숭상했는지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얼마나 극진히 모셨냐면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스승은 책상 위에 책을 놓고 경연을 하면, 왕세자는 바닥에 책을 놓고 엎드린 자세로 가르침을 받아야만 했단다. 이를 두고, 자세가 불편하고, 유교 경전을 바닥에 놓는 것이 예가 아니니 왕세자에게 책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을 임금이 직접 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스승의 경연을 들어야 했던 왕세자로서는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균관에 입학한 왕세자가 배웠던 교과서는 <소학>과 <대학>이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소학은 유교적 예법을 배우는 책이고, 대학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와 같은 유학의 교리를 배워 나라를 잘 다스리는 성군이 되라는 뜻으로 배웠단다. 왕세자가 입학하는 나이가 8살이 원칙이니 <소학>이 기본 교과서다. 이는 왕세자뿐 아니라 유학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음으로 배우는 기본적인 책이니 그닥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앞서 늦은 나이에 입학한 왕세자도 있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비교적 나이든 왕세자의 경우 이미 <소학>을 뗀 지 오래인데 다시 <소학>을 배우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여 종종 <대학>을 교과서로 쓴 경우도 있단다. 쉽게 이야기하면, <소학>은 초등학교 교과서이고, <대학>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인 셈이다. 스무 살이 넘은 왕세자의 경우 초등학교 교과서로 공부하면 이상할 것이고, 이제 갓 열 살을 맞이한 왕세자가 <대학>을 공부하는 것이 이상하다 하여 임금과 신하가 종종 실랑이를 했단다.

  요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은 꼬투리를 잡고서 하릴없는 논쟁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일 법도 하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를 기틀로 삼은 나라이고, 유교는 <예법>을 그 무엇보다 더 중요시 하였기 때문에 때론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도리이기도 했단다. <예송논쟁>이 벌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조의 젊은 대비가 아들(효종)과 며느리의 장례절차에 따라 상복을 장자(맏아들)라면 3년을 입어야 한다, 차자(둘째 아들)라면 1년을 입어야 한다로 1차논쟁을 벌이더니, 맏며느리라면 1년, 둘째 며느리라면 9개월을 입어야 한다로 2차논쟁을 벌인 사건이 <예송논쟁>이었다. 이 모든 까닭은 <예법>을 숭상한 조선에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도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왕세자의 입학식>.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의 양나라와 당나라 때 잠시 치뤘을 뿐,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치루지 않은 예법이란다. 그걸 조선에서는 500년 동안이나 대대로 치뤄왔으니 우리 나라의 고유 문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비교적 다른 책에 비해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우리 고유 문화를 배워 <한국 문화>를 쌓아나갈 수 있는 이 시리즈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틈틈이 읽으며 미처 깨닫지 못한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1.10.20. 신고 공감 3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축하할 일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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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부터 든다. ‘우리들은 1학년’을 끼고 슬슬 받아쓰기 준비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너희들도 고생 시작이구나 싶다. 교복에 몸이 맞춰지는 아이들과 마주하자면 수능이 그림자가 된다. 입학이란 게, 축하할 일만은 아닌 시대다.   조선의 왕세자 역시 입학식을 치렀다고 한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입학식! 세자로 책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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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학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부터 든다. ‘우리들은 1학년’을 끼고 슬슬 받아쓰기 준비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너희들도 고생 시작이구나 싶다. 교복에 몸이 맞춰지는 아이들과 마주하자면 수능이 그림자가 된다. 입학이란 게, 축하할 일만은 아닌 시대다.


  조선의 왕세자 역시 입학식을 치렀다고 한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입학식! 세자로 책봉되고 나이가 차 입학하는 게 뭐 대수라고, 책 한 권으로 나왔을까 의아했다. 한 명의 학습자 중심으로 학교 규모가 움직일 텐데, 누구보다 고급 교육을 받을 텐데, 굳이 성대한 입학식까지 필요할까.


  허나 한 사람이 아닌, 장차 한 나라의 왕이 될 자의 입학식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많은 인력이 필요한 규모와 까다로운 절차의 식은 세자의 존귀함을 널리 알리면서 동시에 성군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후에 왕이 되어서도 스승이었던 신하에겐 맞절을 할 만큼 예를 중시했던 교육과정은 왕 역시 결국엔 평생 배워야 하는 학습자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왕세자 교육의 시작이 바로 입학식이었다.


  덕혜옹주의 입학식이 마지막 기록이다. 500여 년, 스물을 넘겨 입학식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대게 오늘날 초등입학 연령에 입학하였다. 좁은 어께를 누르는 압박감, 여덟 살 아이에겐 어쩌면 축하할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YES마니아 : 골드 a*****4 2010.03.28. 신고 공감 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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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 왕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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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입학식은 가족의 큰 행사 중 하나다.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는 【왕세자의 입학식】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왕세자의 입학식을 다룬 책이다. 왕세자가 입학식을 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기에 흥미로웠다.   아이들에게 교육은 중요하다. 장차 국왕이 될 왕세자에게 교육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입학식은 가족의 행사지만 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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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입학식은 가족의 큰 행사 중 하나다.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는 【왕세자의 입학식】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왕세자의 입학식을 다룬 책이다. 왕세자가 입학식을 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기에 흥미로웠다.

 

아이들에게 교육은 중요하다. 장차 국왕이 될 왕세자에게 교육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입학식은 가족의 행사지만 왕세자의 입학식은 국가의 중요 행사였다. [왕세자입학도첩]에 나오는 6장의 그림엔 왕세자 입학식 풍경이 담겨 있다. 왕세자의 입학식은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에 학문을 배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의를 배움을 백성에게 알리는 행사였다. 백성들은 왕세자의 입학식을 통해 예의를 배우는 계기로 삼았다. 왕세자의 입학식은 왕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입학례였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학교에서도 특별 대접을 받길 원한다. 왕세자는 장차 국왕이 될 존재이기에 너무도 당연히 특별 대접을 받으며 교육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속담은 왕세자에게도 유효했다. 스승은 책상에 책을 펴놓고 강의를 하지만 왕세자는 바닥에 엎드려 책을 봤다. 왕세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생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 성균관 밖에서야 왕세자로 특별 대접을 받았지만 성균관 안에선 다른 유생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 장차 덕망을 갖춘 왕이 되려면 학문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예의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입학식과 관련된 논의는 대신들이 했지만 입학식 자체는 철저히 성균관 소속 관리에게 맡겼다. 왕은 입학식과 교육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지만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기존의 전통을 따른 것 또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왕세자들은 학문과 예의를 배우며 국왕 수업을 받았다.

 

남의 아이의 버릇없음은 탓하면서 내 아이의 버릇없음엔 관대한 부모들이 많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성공이며 공부만 잘 하면 버릇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연장자란 이유로 무조건 예의를 행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길 바란다면 왕세자의 교육법을 따라해 볼 일이다.【왕세자의 입학식】은 조선시대 왕세자들의 입학식을 엿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올바른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0.03.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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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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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왕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조선의 저력은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중국 문화권 하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던 지난 역사 속에서 숱하게 변천했던 중국 대륙 내의 왕조에도 불구하고 온건하게 유지되었던 조선 왕조 500년. 난 그 답을 내리기엔 터무니 없는 일천한 역사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선이 꾸준하고 일관되게 강조했던 유학 사상의 실천은 왕조의 지속을 뒷받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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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왕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조선의 저력은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중국 문화권 하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던 지난 역사 속에서 숱하게 변천했던 중국 대륙 내의 왕조에도 불구하고 온건하게 유지되었던 조선 왕조 500. 난 그 답을 내리기엔 터무니 없는 일천한 역사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선이 꾸준하고 일관되게 강조했던 유학 사상의 실천은 왕조의 지속을 뒷받침 한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 조선 왕세자의 입학례를 통해 실천한 3가지 선() - 父子의 도리, 君臣의 도리, 長幼의 도리 - 은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입학례 의식의 기원은 중국의 유교 경전 [예기]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사에서는 당나라 이후 입학례를 거행한 사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조선 왕실은 태종 대부터 조선 왕조 거의 끝무렵 고종 대까지 입학례를 꾸준히 실천한 것이다. 조선 왕실의 입학례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길래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했던 것일까 라는 궁금증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에서 고종까지 총 7번의 입학례 절차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자료는 이 책의 기록화에 등장하는 효명세자의 입학례라고 한다. 절차를 크게 3등분 하자면 궁을 나서는 출궁의, 성균관에서의 입학의, 그리고 입학례를 마치고 궁궐에 돌아와서 치르는 문무 관원이나 종친들의 축하연 성격의 수하의이다. 그럼 기록에 남겨진 화폭 속으로 들어가보자.

1.  출궁도- 창경궁 홍화문을 나와 성균관으로 향한다.  세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세자익위사의 관원들은 의장을 들고 가거나 주변 경호를 담당한다. 이들은 어쩌면 왕세자의 위엄을 세우는 역할일 것 같다.

2.  작헌도 성균관 대성전에 있는 공자와 네 성인의 신위에 술잔을 올린다.성균관에 도착하면 출궁할때의 곤룡포와 익선관은 벗어두고 학생복으로 먼저 갈아 입는 것이 주목할점이 아닌가 싶다.

3.  왕복도 명륜당에서 스승에게 수업을 청하기 위해 준비한다.스승과 제자 입장인 왕세자는 계단 이용이 다르다.동쪽과 서쪽 계단을 분리함으로써 스승의 지위가 높음을 인정한다.

4.  수폐도 스승에게 예물을 드리는 모습이다.

5.  입학도 스승에게 교육을 받는 모습인데 여기서 왕세자는 바닥에 엎드려 책을 본다. 책상 없이 바닥에 엎드린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6.  수하도 궁으로 돌아와 축하를 받는다.왕세자는 궁에서 평소 학문을 익히던 장소에서 드디어 왕위를 계승할 존귀한 지위를 부여 받는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시선이 일관되지 않은 단점이 발견되긴 하나 자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이러한 절차를 중국과 비교한다면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고 하나 강의 장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중국은 강의실에서 최고위의 스승을 제외하고 모두가 절을 올렸는데 조선은 없었고 다수의 스승이 역할 분담하여 진행한 강의 방식에 비해 조선은 박사 1인이 모든 것을 담당했다고 한다. 조선의 왕세자는 당나라의 황태자에 비해 배움터에서는 훨씬 낮은 지위를 부여 받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그러나,이는 일견 왕세자의 지위를 낮게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결국에는 1인 왕조 체제의 견고화 및 예의를 중시함으로써 상하관계 질서를 돈독히 했던 조선 왕조의 사상적 측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성균관에서 일반 유생과 마찬가지로 책상 없이 바닥에 엎드린 왕세자의 모습을 자못 놀랐다고 표현한다.자식을 가진 아비의 마음은 모두 같을 지언데 하물며 최고 권력을 가진 왕이 이러한 부분에서도 어쩌지 못했음은 조선왕조가 1인에게 무한 권력을 부여하지는 않았음을 반증한다. 물론 왕세자의 이런 모습에서 누려질 교육적 효과는 더 커진다. 배움 앞에서 특권의식을 내려놓는 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교육 현장이라는 것에 토를 달 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최근 학교에서 보이는 부모들의 도가 넘친 자식 사랑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왕세자도 궁을 나서서 도착한 성균관 안에서는 한 명의 유생에 불과하다는 사상을 일관되게 관철하는 입학례는 凡人들에게도 배움이라는 것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일깨웠을 것이다.또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정립함으로써 상하관계를 반듯이 세웠던 조선 왕조의 사상적 측면은 왕조의 건승함에도 기여했을 것이다.

왕세자가 왕이 되기 위한 많은 통과의례 중에 성균관 입학례는 유일하게 궁 밖에서 행사되면서도 그 지위의 특별함을 인정치 않는 독특한 의식이었던 것 같다.화려하고 긴 행렬을 이끌고 그 세를 과시하면서 도착한 성균관. 그러나 그 안에서는 한 명의 학생임을 강조했던 조선의 예의와 학문 중시 풍토. 그것은 하나의 의례로 여러 가지 부수 효과를 한 번에 건져 올렸던 조선의 통치 지혜가 숨어 있는 것 같다.

h***3 2010.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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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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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즐겨보던 사극 하나가 떠올랐다. 깜찍하고 똘망똘망한 연기로 당시에 꽤 인기를 얻고 있던 아역 탤런트가 세자로 나왔던 드라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 어려운 고어를 술술 얘기하는 꼬마의 모습이 신기해 감탄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왕세자의 입학식'이란 이 작은 책을 소넹 들면서 문득 그 사극속 아역 탤런트가 생각난건 왜일까? 아마도,'왕세자'란 단어가 주는 생경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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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즐겨보던 사극 하나가 떠올랐다. 깜찍하고 똘망똘망한 연기로 당시에 꽤 인기를 얻고 있던 아역 탤런트가 세자로 나왔던 드라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 어려운 고어를 술술 얘기하는 꼬마의 모습이 신기해 감탄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왕세자의 입학식'이란 이 작은 책을 소넹 들면서 문득 그 사극속 아역 탤런트가 생각난건 왜일까? 아마도,'왕세자'란 단어가 주는 생경함과 '입학식'이라는 익숙한 단어의 충돌, 그 속에서 둘을 이어줄 연결고리로 그 꼬마의 모습을 떠올린건 아닌가 싶다.

드라마 속 왕세자는 그 '캐릭터'로서, 역할을 맡은 아역탤런트가 외워 말하는 '대사'들로 만들어진 허구였지만, 그 실제 모델인 '진짜 왕세자'의 생활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 책은 소서와 그림들을 바탕으로 한 역사서에 가깝지만, 읽는 내내 마치 한 권의 소설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 잘 짜여진 소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주인공에세 동화되어 함꼐 나아가는 것과같이, 아니,ㅡ 오히려 소설이란 장르보다 더 현실적인 역사서라는 점에 있어선 더욱 더 생동감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느새 나 자신이 그림속에 직접 들어가 그 장면을 생생히 관전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때로는 한양의 백성이 되어 수천명의 인파를 뚫고 왕세자의 입학행렬을 구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공부하는 그를 지켜보기도 하며, 어느새 왕세자 본인이 되기도, 그리고 그의 높디 높은 스승이 되기도 한다.

 

복잡하지만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왕세자.

분명 그는 조선 제일의 신분인 왕족임이 분명하지만, 입학과 동시에 한 명의 유생으로서 그 신분과 형식을 모두 벗어던지고 오직 스승의 가르침을 목표로 하루종일 학업에 정진하게 된다.

 

그 모습을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듯한 느낌..문득, 요즘 시대의 아이들은 어떤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날로 떨어져만 가는 교육자의 위상, 그리고 스승과 제자라는 고매한 관계의 추락.

 

왕족의 신분으로도 넘지 못할만큼 그 높디높음을 추앙받던 교육자의 존재가,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이렇게나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비록 왕세자처럼, 스승의 앞에선 책상조차 사용하지 않고 그 높음을 기리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네의 교육 현실은 그 정신을 조금이나마 되짚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k*******n 2010.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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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나라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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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나라의 자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제목을 써보았다. 아무래도 싱가포르에 있다보니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많이 찾게 된다.  특히 아이가 제법 나이가 들면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책이 많이 필요하였고, 이 책은 아동용 도서는 아니지만, 시리즈 다섯 권 모두 굉장히 가치있어보이는 문학동네의 야심작이었기에 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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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나라의 자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제목을 써보았다. 아무래도 싱가포르에 있다보니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많이 찾게 된다.  특히 아이가 제법 나이가 들면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책이 많이 필요하였고, 이 책은 아동용 도서는 아니지만, 시리즈 다섯 권 모두 굉장히 가치있어보이는 문학동네의 야심작이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단박에 책을 집어들었다.

 

키워드 한국문화 그 네 번째 책인 [왕세자의 입학식]  사실 이 책은 딱 친정아버지가 좋아하실 법한 책이다.  그래서 다섯 권의 책을 다 읽으면 아마도 조만간 우리 집 책장을 떠나 친정으로 갈 책일 듯싶다. 친정 아버지께서 다 읽고 나면 다시 우리집 책장에 넣어두면 되겠지. 고급스런 양장본으로 된 [키워드 한국문화] 세트는 두고두고 볼 책이며, 우리 아이가 조금 더 컸을 때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느낄 수 있도록 이 책을 물려주고 싶다.


여기에 있다보니, 이국적인 문화를 많이 접하게 된다. 아주 작은 싱가포르 -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면전은 전체 다 합해도 서울보다 아주 조금 크니까 말이다.

그런 이 나라에 말레이 계와 중국계, 그리고 인도계 사람들이 한 나라를 이루고 살고 있다. 또 아시아의 중심에 있는 지역적인 위치와 더불어서 아시아의 금융과 경제 중심지인 싱가포르이다보니 세계 각국의 나라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다.

 

영어가 공용어지만, 각 나라의 말과 함께 어디서나 4개국어로 쓰여진 안내판을 볼 수 있는 나라.  세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나라에 아시아 권 여러 나라 뿐 아니라 서양인들도 심심치않게 만나게 된다.

우리 아이 역시 학교에서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과 함게 어울려 친구가 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와 역사, 언어에 대한 관심도 많다.

 

박물관에 가면 싱가포르의 역사와 함께, 여러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엿볼 수 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계속해서 필리핀에 대한 다양한 주제로 몇 개의 박물관들이 연합하여 전시를 이루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치기에도 좋고, 외국의 역사와 비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작년 여름에도 아시아 문명 박물관에 가서 중국의 다양한 역사를 접할 수 있었고, 이번엔 필리핀 역사와 고대 이집트 전시회, 그리고 페라나칸 박물관에서는 인도 신화인 라마야나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힌두교 인도계 사람들의 축제인 타이푸삼을 우연히 보면서, 그들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도 함께 배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천년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화제를 갖고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싱가포르 역시 왕이 없다. 하지만 워낙 여러 나라 아이들을 친구로 두다보니 각 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그런지 왕이 있는 나라를 묻는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중국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 모두 옛 시대에는 왕들이 존재했을테니까.

 

그들의 문화는 수준이 낮고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문화는 수준이 높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는 여기서 다양한 나라와 민족 아이들을 만나면서 종교나 인종의 편견이 거의 없다. 흑인도 백인도 다 같이 어울려 놀고, 메이드나 페인트공 등 타국에서 힘들게 고생하는 사람들과도 편안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우리 아이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더 갖기를 원했다. 우리 아이에게 조선시대 왕세자들의 교육은 어떠했는지 잠깐 잠깐 이야기해주며,  또한 풍부한 그림들과 자료를 보면서 조선시대의 왕세자 교육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아이의 질문을 받아서 내가 아는 힘껏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 아이가 조선시대에 왕세자들의 교육에 대해 흥미로워했다.  그들 역시 왕이 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더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야했고, 학습 면에서도 뛰어나야했을 테니까.  조선시대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할 왕세자 - 그래서 그들의 의무와 책임은 여느 사람보다 막중했으니말이다.

 

작년에 싱가포르의 한 박물관에서 중국의 왕이 행렬을 하는 그림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여러 사진을 함께 보며 또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그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도 아이의 느낌과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행차도 굉장했지만, 우리나라의 왕세자 입학식 역시 국가의 중요한 행사였다는 것을......

 

또한 신라시대와는 한참 지난 조선시대 왕세자들에 대한 책이었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신라시대의 금관이 떠올랐다. 

왜나하면 작년 설에 싱가포르 대통령 궁인 이스타나에 갔을 때 제일 처음 눈에 띈 것이 신라시대 금관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앞 중앙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던 아름다운 우리 문화.  - 얼마나 자긍심이 생기는지 그 기분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함께 간 남편도 우리 아이도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늘상 한국에 있을 때에도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게 금관이었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싱가포르의 대통령 궁 안에서 보았던 신라시대 왕관은 장관이었다.

신라시대 역시 왕이 되기 위해 어떤 수업을 받았을까?  그 찬란하게 빛나는 금관은 그냥 왕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물려받은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보았다.

 

조선시대는 이런 신라시대의 왕관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왕과 왕세자들만이 쓸 수 있는 왕관이 있었고, 곤룡포가 있었고 세자복이 있었으니까.

그 왕관을 쓰기 위해서 왕세자는 성균관에 입학식을 할 때부터 국왕이 되기까지 겸손과 덕양, 학문과 지혜를 함께 배우는 것이다.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어릴 때부터 그들은 왕세자이기 때문에 왕실에서도 다른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하물며 온 백성이 지켜보는 성균관의 입학식을 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싱가포르 공립학교는 입학식이 따로 없다. 입학 한 달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엄마와 아빠가 입학하는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간다. 말은 오리엔테이션이지만 입학식이나 다름없는 행사인 것이다.

그래서 새학기가 시작되는 첫날이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재학생과 똑같이 줄을 서고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똑같은 시간에 끝마친다.

 

우리나라의 입학식과는 사뭇 달라서 처음엔 무척 신기했는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 입학식은 우리와 다르기에 그리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입학식이 중요하고 졸업식이 중요하다.  지금 뿐 아니라 조선시대 역시 그러했다는 것에 우리 역사와 교육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생긴다.

 

첫단추가 올바르게 껴있어야 그 다음 단추들도 잘 연결이 되듯이, 우리나라에선 무엇이든지 그 시작을 중시했고 그랬기때문에 왕세자의 입학식 역시 왕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첫단추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왕세자의 입학식을 접하고 보니, 한국에서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도 떠올랐고, 온 백성이 함께 즐기는 국가의 경사였다는 사실이 기뻤다.

얼마 전 조선시대 성균관 입학 의식을 그대로 본뜬 대학 입학식이 열렸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우리 아이도 그런 경험을 시켜보고 싶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선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의 입학례를 재현했다는데 그 신입생들은 얼마나 뿌듯했을까!

 

 

성균관에서 입학례를 하면서 세상에 첫발을 내딪는 왕세자.  자신이 제 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승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고 무릎을 꿇은 왕세자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왕세자이지만, 그를 가르치는 스승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는가?

 

또한 입학식 당일엔 한양에 거주하는 수천명의 백성이 보았다고 하는데, 비단 한양에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몰려오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의 왕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왕세자를 보는 사람들의 심정도 십분 헤아려볼 수 있었다.  인자한 왕, 성군, 태평성대를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

 

왕세자의 입학 의식과 더불어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별시가 시행이 되었으며, 지금도 국경일이 되면 특별사면이 있지만, 왕세자의 입학식 역시 사면령이 내려졌다니.....

 

비록 책은 못 읽었지만, 나의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서 왕세자의 입학식을 접한 우리 아이도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왕세자 역시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스승께 예의를 갖춰 먼저 인간이 되는 학습부터 한 것처럼,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올바른 인성이 중요함을.

 

동방예의지국의 나라 조선시대. 자랑스런 우리 문화와 역사를 늘 기억하고 살게 되기를 바란다.

 

먼훗날, 우리 아이가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살지는 모른다. 국내에 살게 되어도 난 우리 아이가 외국인들을 만나게 될 때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 외국에서 살게 된다면, [자신은 한국인(Korea)이며, 우리나라는 무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 왕세자들은 이런 교육을 받았고, 왕의 자리에 올라도 단순히 권력자가 되어 독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를 중시하며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고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는 현명하고 인자한 왕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나라의 문화와 긍지를 알리는] 멋진 한국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디에 있든지 자랑스런 우리 문화를 나타내는 삶. 그래서 이번에 읽은 왕세자의 입학식은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한국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데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 그 속에는 이렇게 멋진 [왕세자의 교육]이 있음을......

s******l 2010.03.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