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0%
  • 리뷰 총점8 4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9.0
  • 50대 8.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소박한 이상향을 꿈꿨던 선조들을 따라서...【조선인의 유토피아】
"소박한 이상향을 꿈꿨던 선조들을 따라서...【조선인의 유토피아】" 내용보기
어느 시대를 살고 있어도 사람들이 꿈꾸는 삶은 다 비슷비슷한듯 하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이상적인 사회(장소)를 꿈꾸는데, 과거를 살았던 우리네 선조들도 이상향을 찾아 헤맸으니 말이다. 이상향은 사람들이 살고싶어하는 공간으로써, 서양식으로 유토피아라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토마스 모어의 소설로 만들어진 이 용어의 의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세계, 즉
"소박한 이상향을 꿈꿨던 선조들을 따라서...【조선인의 유토피아】" 내용보기


어느 시대를 살고 있어도 사람들이 꿈꾸는 삶은 다 비슷비슷한듯 하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이상적인 사회(장소)를 꿈꾸는데, 과거를 살았던 우리네 선조들도 이상향을 찾아 헤맸으니 말이다. 이상향은 사람들이 살고싶어하는 공간으로써, 서양식으로 유토피아라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토마스 모어의 소설로 만들어진 이 용어의 의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세계, 즉 누구나 꿈꾸지만 도달할 수 없는 세상을 말한다. 사회에 이리저리 치이다보면 부쩍 그런 생각을 한다. 놀고 먹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어디 없나 하고...헌데 우리 선조들이 바라던 이상향은 나의 이 막돼먹은 생각이 무척이나 부끄럽게 만들어준다. 그들이 바라던 세상은 열심히 일하고 먹을것,입을것 부족하지 않을 정도에 다같이 모여 오손도손 정겹게 살아가는, 전쟁이 없고 지나친 수탈이 없는 그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의 욕심내지 않는 세상이었다. 무엇을 하든 중간만 가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튀지도 특출나지도 못나지도 않게 평범하게만 살아도 괜찮은 삶이라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 중간이라는 의미, 평범함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안평대군이 꿈에 본 도원桃源을 그림으로 나타낸 <몽유도원도>를 시작으로 선조들의 유토피아이자 무릉도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의 솜씨로, 꿈에서 본 복숭아가 그득한 평화로운 그곳을 잊지못한 안평대군의 지시로 그려지게 된 작품이다.(허나 지금은 일본 덴리대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혹은 일제강점기때 유실된 것으로 보고있다는데.. 우리의 것, 하루빨리 되찾을 그날이 왔으면 한다.) 그의 삶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불운했지만 예술적으로는 조선 전기의 4대 명필로 꼽힐 정도라고 하는데, 그 자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한 데에는 비통하기 그지 없다.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감지했기에 그토록 꿈에 본 도원을 잊지못하였던가.  하지만 조선시대의 억울한 죽음이 어디 그 하나뿐이랴..안타까운 마음은 이쯤으로 접어두고, 그가 꿈에서 본 그곳엔 왜 복숭아나무가 그리도 가득했을까? 이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헌데 이보다 더 원류가 되는 것이 있었으니,  「도화원기」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즉, '적은 백성이 모여 사는 작은 나라'라는 이상세계를 구체화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노자의 소국과민-도연명의 「도화원기」-안평대군 「몽유도원기」(자신이 꾼 꿈과 이것을 그림-몽유도원도-으로 남기게된 사연을 적은 몽유도원도가 만들어진 뒤 적은 글), <몽유도원도>(안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몽유도원도>를 시작으로 우리 조상들의 이상향의 세계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는데, 흔히 우리가 유토피아, 무릉도원이라고 부르는 이 이상향을 지칭하는 말들이 옛 선조들의 문집이나 각종 설화에서는 셀수 없이 많았다는 것이 눈에 띈다. 옥야沃野, 승지勝地, 복지福地, 동천洞天, 낙토樂土, 부산富山, 선경仙境 등으로 이중에서도 동천洞天은 본디 도교에서는 신선이 모여 사는 땅을 의미하는데 속세의 때가 미치지 않은 깨끗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시절에는 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인 마을이 꽤나 많았다고 하는데 송시열이 살았다는 화양동도 본래 '화양동천'이라고 불리었으며, 청학동의 본래 이름도 '청학동천'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로 알수 있는 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와 우리 선조들이 바라는 유토피아는 그 의미적으로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서양의 유토피아는 세상에 없는 환상의 공간이지만 조선에서는 보다 더 가까운 자신들이 발 딪고 있는 그 곳을 유토피아, 즉 이상향으로 생각했고 더 살기 좋은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가에서는 왕도王道가 잘 구현된 사회를 이상사회로 여겼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맹자가 양혜왕에게 왕도사회를 소개한 글은 다음과 같다.

다서 묘 되는 넓이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 노인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개나 돼지나 닭 등의 가축을 기르면서 때에 맞게 새끼를 치게 하면 칠순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 묘 넓이가 되는 토지에 때에 맞게 농사를 짓는다면 몇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굶주리지 않게 되고, 학교에서 잘 가르쳐서 효제孝悌의 의리를 거듭 당부한다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저 건강한 몸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고, 가족들이 배곯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만도 큰 복이라 여겼던 선조들의 꿈을 엿보면서 욕심내며 살고 있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탐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베풀면서 살아가야 하는걸 책을 통해서 항상 배우지만 여전히 갈 길은 참으로 멀다는걸 다시 한번 느낀다. 꿈에 본 도원을 잊지못해 그림으로 남기고, 몇년이 지났어도 그곳을 잊지못해 복사꽃(복숭아 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왕산 기슭에 무계정사라는 곳을 남긴 안평대군. 지금은 비록 그 옛날 전해지는 폭포도 없음이요, 잡풀만 무성한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 길을 지나는 행인들의 기억속에라도 평화롭게 살고팠던 그의 넋이 전해지길 바란다.






w*****8 2011.10.27. 신고 공감 18 댓글 30
리뷰 총점 종이책
몽유도원도와 삼재불입지지
"몽유도원도와 삼재불입지지" 내용보기
불, 물 그리고 왜적 등 삼재를 막아 줄 수 있는 곳을 삼재불입지지라고 한다.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장풍 득수의 기본적인 개념에서 시작된 풍수는 산사람을 위한 양택보다는 죽은 사람을 위한 음택을 위주로 발달됨에 따라 살 사람을 위한 장소의 선정 조건에 이렇게 삼재가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을 고르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음택을 위한 풍수는 여전히 여러가지 논란거리에
"몽유도원도와 삼재불입지지" 내용보기

, 물 그리고 왜적 등 삼재를 막아 줄 수 있는 곳을 삼재불입지지라고 한다.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장풍 득수의 기본적인 개념에서 시작된 풍수는 산사람을 위한 양택보다는 죽은 사람을 위한 음택을 위주로 발달됨에 따라 살 사람을 위한 장소의 선정 조건에 이렇게 삼재가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을 고르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음택을 위한 풍수는 여전히 여러가지 논란거리에 휩싸여 있지만 몇 년전에 최창조교수가 일대 선풍을 일으켰고 이젠 한풀 꺾인 것 같지도 하지만 (하긴 대선이 가까워 지면 찌라시의 선동에 따라 어김없이 부활한다) 장소에 따라서 당대 또는 후손이 발복할 수 있다는 자리부터 시작해서 왕후장상이 태어날 자리 등등 음택에 대한 에피소드는 널리고 널렸다.

 

최창조교수의 책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을 무렵에 지방지 기자였던 친구와 함께 절에 가기 위해서 팔공산 자락의 한 곳을 지나다가 비슷한 마을을 본 적이 있었는데 밖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 입구의 좁은 길에 마을 입구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두는 저수지가 있고 양 옆과 뒤로는 팔공산이 둘러 싸고 있어서 삼재불입지지의 전형적인 지형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안평대군이 꿈꾸었던 내용을 화가 안견으로 하여금 내용을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에서 시작한다. 유토피아는 있을 수 없는 곳이라는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안평대군이 꿈 꾼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곳이었고, 후년에 수양대군이 집권한 후에 꿈 꾼 곳을 본 따서 인왕산 자락에 집을 지었는데 이 집이 역모를 위한 것이라는 모함을 받아 결국 유배에 이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안평대군이 꿈 꾼 것은 이미 수 천년 전부터 중국인이 이상향으로 여기던 곳과 다르지 않았으니 도화유수묘연거로 시작되는 그러한 이상향의 조각그림을 맞춘 것과 다름 없었다. 일반인이나 박지원의 허생전 또는 정약용의 미원은사가에서 다룬 곳과는 사뭇 달랐으니, 이러한 일반인이 꿈 꾼 곳은 불, 물 그리고 왜적 등 삼재가 들어오지 않을 삼재불입지지가 각광을 받았고 관리의 수탈이 없는 곳, 식자들의 횡포가 없는 곳 정도를 꼽았을 뿐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꿈꾸던 세상은 모두들 애써 일하고, 일이 없으면 공부하고,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않고, 모두들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 최창조 교수에 따르면 도시나 시골 출신을 따지지 않고 한국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고향이란 개념은 큰 뒷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건너편에 작은 동동산이 하나 있는 그런 곳이라는데 이는 풍수적으로는 이상적인 환경과 일치한다. 한편으로 지리 외적인 환경으로서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르던 게으름부리지 않고 일한 만큼 거둬들여 살아가는 생활태도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우리가 만들 수도 있는 낙토라는 것이 의외로 소박하다.

 

안평대군/안견 합작의 몽유도원도는 꿈 속에서나 가능하지만 현실 속에서 도화유수묘연거라는 곳도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작은 공동체로도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l********y 2010.08.27. 신고 공감 6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 내용보기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안평대군의 꿈[夢]을 그린 몽유도원도부터 시작하여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이상공간을 들여다 보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라는 부제가 마음에 와 닿는것도, 이 책을 읽는 나 또한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꿈꾸었던 그 이상향을 꿈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동양의 역사에서, 또 우리의 역사에서 사람들이 찾아 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 내용보기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대로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몽유도원도부터 시작하여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이상공간을 들여다 보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라는 부제가 마음에 와 닿는것도, 이 책을 읽는 나 또한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꿈꾸었던 그 이상향을 꿈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동양의 역사에서, 또 우리의 역사에서 사람들이 찾아 헤메던 무릉도원은 어디에 있었는지? 혹 곁에 두고도 우리가 못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무릉도원 이라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라는 것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별세계는 아닌지 를 묻는다. 그것을 찾기 위하여 저자는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세계를 살펴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찾아 헤 메였는지, 그리고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이상향은 있는지를 둘러보고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이다 찾아든곳이 마치 신선이 사는듯한 복숭아밭 이었다고 한다. 곁에는 처음부터 박팽년이 있었고, 나중에 최항과 신숙주가 따라 왔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난 안평은 꿈속의 장면이 너무 선명하여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몽유도원도라 제목을 써넣고 장문의 기문을 남기고, 당대 쟁쟁한 문인 21명에게 일종의 감상문을 받으니 그 길이가 20여 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안평이 꿈꾸고 안견이 표현한 이 도원은, 세상과 떨어져 고요한 자연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그곳은 참 이상세계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족으로 이 몽유도원도와 관련해서 안타까운 일은 계유정난때 사라진 이 그림이 지금은 일본에 있다는 것과, 아이러니한 것은 안평이 꿈속에서 본 세사람이 6년후 계유정난 때 보인 행보이다. 꿈속에서 처음부터 곁에 있었던 박팽년은 안평과 생사를 같이 하지만, 나중에 나타난 최항과 신숙주는 수양편에 서서 안평을 죽이는일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조선문인들이 그린 이상향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도화원기는 노자가 꿈꾼 이상향인 소국과민, 즉 적은 백성이 모여 사는 작은 나라라는 이상세계의 꿈을, 좀더 구체화해서 무릉도원으로 묘사하였다고 한다. 그곳은 가혹한 학정과 수탈이 없었고, 과도한 강제노역이 없는 것은 물론 전쟁도 없는 세상이었다. 옛날 그들이 세속에서 꿈꾸던 이상향은 그저 다같이 땀흘려 일하고 이웃과 나란히 함께 조용히 살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었을 뿐이었다. 저자는 청구야담에 나와있는 설화를 빌어 이야기 한다. 설화의 주인공 권진사가 가서 본 별세계는 단순히 놀고 먹는 세계가 아니다. 일하는 것이 너무 지겨워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모두가 함께 열심히 일하면서 노동에서 오는 풍요와 즐거움을 누리는 공간 바로 그것이었다. 자연을 존중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용하며, 자연도 그 정성에 보상을 하는 바로 그 공간이었다. 연암 지원이 허생전에서 돈을 번후 도적들을 데리고 들어가 건설한 무인도가 바로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상향은, 찾아가고 싶다고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되었고, 다시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단지 상상속의 세상이었다. 서양이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우리 조상들은 도원을 갈망하였으며, 그들의 바램은 청학동, 이화동, 단구, 회룡굴, 정토, 선경등 이름을 달리하여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지만, 그들이 추구하였던 것은 단순히 어느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바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무릉도원이라 부르던, 유토피아라 부르던 이상세계는 본래 실체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시대에 따라, 처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몇백년전, 혹은 몇십년전에 꿈꾸었던 것들이 거의 이루어진 지금에도 사람들은 유토피아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내일을 또 꿈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상세계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오로지 꿈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일까 

 

흔히 세상 좋아졌다고들 말하지만 누구도 지금을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질은 풍부해졌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고달프기만 하다. 위정자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며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을 피곤하고 어지럽게 만든다.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들은 또 꿈꾼다.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를 우리도 다시 꿈꾸는 것이다. 그저 소박하게, 우리의 조상들이 소국과민을 이상향이라 여긴 것처럼, 우리도 조용하고, 평안하며 건강한 사회를 이상향이라 여긴다.



k*****1 2010.02.10. 신고 공감 3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무릉도원은 어떤 세상일까?
"무릉도원은 어떤 세상일까?" 내용보기
새해부터 대설(大雪)이 내렸다. 하루아침에 별천지(別天地)가 눈앞에 펼쳐졌다.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설국(雪國)은 아름다움을 물씬 빚어냈다. 그래서 인지,   내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 빙긋 웃고 답 안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 복사꽃 잎 떠 흐르는 물길 아득하게 멀어지니 이곳은 별천지요 사람 세상이 아니로다   이태백(李太白)의 시가 절묘했다. 무릉도원(武
"무릉도원은 어떤 세상일까?" 내용보기

새해부터 대설(大雪)이 내렸다. 하루아침에 별천지(別天地)가 눈앞에 펼쳐졌다.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설국(雪國)은 아름다움을 물씬 빚어냈다. 그래서 인지,

 

내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

빙긋 웃고 답 안하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

복사꽃 잎 떠 흐르는 물길 아득하게 멀어지니

이곳은 별천지요 사람 세상이 아니로다

 

이태백(李太白)의 시가 절묘했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해도 좋을 듯 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무릉도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가 동양에서는 무릉도원으로 불린다는 사전적인 정보 수준이었다. 그래서 무릉도원의 실체에 대해 시종(始終) 궁금한 게 사실이었다. 일찍이『논어』에서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곰곰이 반추해보면 즐기는 데 있어 앞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서신혜의『조선인의 유토피아』는 이런 지적 호기심에「몽유도원도」로 답하고 있다. 이 책은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라는 소책(小冊)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한 장의 그림 또는 한 장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구체적인 대상일 통해 한국을 찾자는’ 것은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었다. 한국문화의 진면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는 어땠을까? 책을 펼치면 안견의「몽유도원도」가 나온다. 그리고 다시 책장을 펼치면 안평대군의「몽유도원기」가 나온다. 안평대군이 꿈에 본 도원(桃源)을 안견이 그린 것이다.「몽유도원기」을 보면 ‘골짜기에 들어서자 안이 넓게 트여 2~3리는 될 듯하였다. 사방으로 산이 벽처럼 둘러서 있는 가운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가깝고 먼 복숭아나무 숲에 햇살이 비치어 마치 노을이 지는 듯했다(…) 앞 내에 조각배만 물결을 따라 떠다닐 뿐이어서 그 쓸쓸한 정경은 마치 신선이 사는 곳인 듯했다.’라고 하면서 도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편 도원이 조선인의 유토피아를 상징했던 것은 도연명의「도화원기」에서 비롯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몽유도원도」와「도화원기」에서 속세와 단절된 별세계 즉 무릉도원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도원을 꿈꾼 후 “내 몸은 궁궐에 매여 밤낮으로 일을 하는데도 어떻게 꿈에서 산림에 이를 수가 있었을까? 또 어떻게 하여 도원을 갈 수가 있었을까?”라는 심정을 토로했다. 반면에『도화원기」는 무릉이라는 사람이 길을 잃어 도원에 가서는 그곳 사람이 말하길 “선대에 진(秦)나라 때의 난리를 피하여 처자식과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이 외딴곳으로 온 후 다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깥세상과 교제가 끊겼지요.”라는 놀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무릉도원이 조선인의 마음에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면 동천(洞天), 부산(釜山), 청학동(靑鶴洞), 판미동(板尾洞)이라는 지명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동천은 신선이 사는 땅으로 세속의 때가 묻지 않는 깨끗하고 아름다보고 조용한 공간을 말한다. 부산은 물자가 풍부하여 가난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청학동은 푸른 학이 사는 곳이다. 무릉도원이 환상적인 공간이라는 것과 달리 자기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곧 자기들이 바라는 세상이 되고자 염원했던 것이다.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며「몽유도원도」의 세계를 두루 산책하며 감상(鑑賞)할 수 있었다. 옛 그림에 얽힌 다양한 시선과 상징하는 바를 보면서 덕분에 우리 문화를 새롭게 조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옛 그림 속에는 역사가 있다.”는 오주석 선생의 따끔한 충고가 소중한 지적 자극이 되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 분의 그리운 옛 조상을 만날 수 있다.”는 진실은 더 말할 나위가 무엇이겠는가?

p******0 2010.02.18. 신고 공감 2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그곳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그곳" 내용보기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그곳현실을 살아가기가 어렵고 답답할수록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의 모색으로 복권을 사기도 하지만 간혹 이룰수 없는 꿈을 꾸기도 한다. 마음의 고통이나 억매여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꿈속에서나마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가는 자신의 이상적인 꿈을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그곳" 내용보기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그곳
현실을 살아가기가 어렵고 답답할수록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의 모색으로 복권을 사기도 하지만 간혹 이룰수 없는 꿈을 꾸기도 한다. 마음의 고통이나 억매여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꿈속에서나마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가는 자신의 이상적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래서 더 간절함이 있고 늘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가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상향을 찾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늘 있어왔기에 앞선 시대를 살아온 선조들은 그 이상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비교해 본다면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조선인의 유토피아]는 그렇게 선조들의 삶속에 살아 숨 쉬고 있던 이상향에 대한 모티브를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에서 찾아보고 있다. 안견이 그렸다고는 하지만 그리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안평대군이 꾸었다는 꿈이기에 이야기 중심은 당연하게 안평대군으로 모아지고 있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아들이며 문종 때 주로 활동하였으며 둘째 형 수양대군의 권력에 맞서는 모습이었다. 계유정난으로 강화도로 귀양을 갔으며 다시 교동도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30대 중반인 나이에 사사되었다. 시문을 비롯하여 그림, 가야금 등에 예능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명필로 꼽혔다.

이 책은 몽유도원도를 시작으로 이상사회에 대해 문헌상 나타나는 기원을 찾아보고 이상향의 다양한 형태와 그 구체적 메커니즘을 확인하고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 한유의 제도원도시로부터 도연명의 도화원기 등 이상향에 대한 기원을 찾아보며 각 시대별로 이상향이 담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이상향을 실제로 구현한 사례인 지상에 건설된 낙원 - 판미동을 찾아보고 그 실현 가능성까지를 살피고 있다.

군주의 나라에서 왕이 되지 못하고 왕의 형제로 살아가기에 너무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안평대군의 삶속에서 그가 그리던 이상향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시대적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안평대군에게 꿈속에서 본 깊은 계곡 복숭아꽃 활짝 핀 무릉도원은 심상치 않게 다가왔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화동, 유토피아, 무릉도원, 이상향, 청학동, 선계 등 불리는 이름은 각기 다르나 그것이 담고 있는 뜻은 모두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꿈의 세계, 소망하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역사 이래 이러한 이상향을 찾는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녹녹치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상사회가 담고 있었던 지향점이 마냥 놀고먹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의 성과를 공평하게 나누며 권력으로부터 착취당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순박한 꿈인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을 떠난 꿈같은 사회, 이상향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결코 허황된 꿈으로 치부하기에는 허전한 무엇인가가 있다. 옛날이나 현대에 이르러서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한다고 표방한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돌아오는 현실은 암울하기만 한 세상이다. 그래서 늘 꿈같은 이상세계, 꿈속의 이상향을 찾는 여정은 멈추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상향들이 한결같이 깊은 산중 찾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속세와의 단절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하는 바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안평대군의 꿈속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운명과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나라를 잃고 남의나라에서 서러운 운명을 살아가는 몽유도원도의 운명이 어쩜 비슷해 보인다. 키워드 한국 문화는 바로 이렇게 우리 선조의 숨결이 담겨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하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한 점의 그림을 통해 참으로 많은 역사적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음을 확인한다. 시간의 흐름에 거스르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그 존재를 밝히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다. 안평대군이 발하고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의 실물을 우리 품에서 볼 수 있길 기원해 본다.



m*****8 2010.02.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져진 유토피아, 진보에 대한 열망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져진 유토피아, 진보에 대한 열망" 내용보기
유토피아, 생각만 해도 설레는 말이다. 누구든 그걸 발언하는 순간, 천기누설이라도 하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자못 진지하게 은밀한 눈빛을 나누곤 할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달뜬 얼굴엔 묘한 기운도 서려있을 테고. 이토록 모두를 들뜨게 만드는 유토피아, 이상향에 대한 관념은 예나 지금이나 또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 지성의 보편적 산물이라 하겠다. 우리에게도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져진 유토피아, 진보에 대한 열망" 내용보기

유토피아, 생각만 해도 설레는 말이다. 누구든 그걸 발언하는 순간, 천기누설이라도 하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자못 진지하게 은밀한 눈빛을 나누곤 할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달뜬 얼굴엔 묘한 기운도 서려있을 테고. 이토록 모두를 들뜨게 만드는 유토피아, 이상향에 대한 관념은 예나 지금이나 또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 지성의 보편적 산물이라 하겠다.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런데 우리 선조들, 특히 조선 시대 할아버지들은 한층 더 간절하게 이상향에 대해 열망했던 것 같다. 하여 저자는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유토피아를 먼저 꼽은 듯하다. 그런데 왜 우리 할아버지들은 그토록 유토피아에 집착했던 것일까? 그건 아마 한국인 특유의 정신세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진보에 대한 열망이 집단 무의식이랄 정도로 유전자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기에 자연스레 이상향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되었을 거라는 말이다. 한 사회의 생활양식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를 낳은 근원인 사고방식에 대한 접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한국인의 정신세계 저 밑바탕에는 현실의 질곡에 갈급해하며 그런 막막함을 극복하여 새로운 지경인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관념이 유독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관념을 떠올리게끔 추동하는 의협심과 역동성도 듬뿍 깃들어있는 것 같고. 그랬으니 우리 선조들은 유토피아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 실제 현실세계에서 구현하기 위해 지적인 설계는 물론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했던 것이리라.


1. 인류의 보편적 관념, 유토피아


이상사회에 대한 관념은 언제 어디서나 있어왔다. 서양에서의 그것은 크게 코케인(Cockaigne), 아르카디아(Arcadia), 천년왕국(Millennium), 그리고 유토피아(Utopia)의 네 범주로 존재해 왔다. 이는 각각 노동에서 해방된 환락국형, 목가적 이상향으로 절제가 있는 공간, 예수 그리스도가 건설한 미래의 왕국 그리고 사회제도를 통해 인간 본성을 통제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상사회를 의미한다. 동양에서도 진작부터 이상향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었는데, 그 유형은 크게 모든 것이 천부적으로 충족된 신화적 이상공간인 산해경형, 도교적 이상공간이되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신국인 삼신산형, 인위적 권력을 배제하여 현실 속에 이룬 이상공간인 무릉도원형 그리고 현실 속에 이룩한 유교적 이상공간인 대동사회형으로 나눌 수 있다. (65쪽 참조)


조선시대 우리 할아버지들은 유교적 지배질서에 순응하면서도 도가(道家)적 무위자연을 꿈꾸곤 했으니 무릉도원형과 대동사회형, 더러는 이 둘이 결합된 형태의 이상사회를 모델로 상정했던 것이다.


무릉도원형 이상사회에서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그것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데, 다만 산해경형처럼 천부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라 인간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이룰 수 있다고 상정하였다. 특별히 권력의 수탈과 학정, 전란의 위험을 피하여 외부와 단절된 곳에 소규모 촌락을 구성한다는 설정도 이 유형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대동사회형 이상사회는 사람들이 각기 능력에 맞는 자리에서 일하며 노인을 자신의 부모처럼 대접하고, 모든 어른은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기르는 공간으로 그렸다. 또 남을 해치는 사람도 없고 도적도 없는 바람직한 곳을 지향하는 것으로 개념화하였다.(69쪽 참조)


이처럼 유토피아에 대한 아이디어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관념으로 조선시대 우리 할아버지들의 머릿속에도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2. 끊임없이 유난히도 갈급해했던 우리 선조들


그런데 왜 우리 선조들, 특히 조선시대 할아버지들이 유난히도 민감하게 이상향에 반응을 보이고 더러는 이를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행동에 옮기기까지 했을까? 그만큼 갈급함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갈급함을 느끼게 하는 모순적 사회구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왔겠지만 기질적으로 이러한 지경을 심각하게 느끼고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는 지적, 감성적 능력이 탁월했기에 권력의 수탈과 학정, 그리고 전란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이상사회를 그리며 이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현실을 두고 목마름과 막막함에 절절하게 가슴 쳤을 것이라는 말이다. 내면에 가득 잠재되어 있던 의협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불의한 질곡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정의로운 분노가 유전자에 잠재되어 있다 생생하게 일어서며 우리를 부추겼던 것이리라. 또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지레 포기하듯 축 늘어져 버리는 게 아니고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고 분투하는 생기발랄한 역동성도 지니고 있었다. 조광조나 허균, 정약용 등 선각들의 행태를 보면 이를 단박에 알 수 있다. 하여 지적, 정서적 그리고 의지적인 측면에서 우리 선조들은 유토피아를 떠올리고 실현하는 데 적합한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겠다. 그랬기에 예술적 감성이 탁월하고 현실 정치에 대한 안목도 남달랐지만 형인 세조의 등쌀에 기개를 펴지 못했던 안평대군이 현실에선 해소할 수 없는 목마름을 꿈 속 무릉도원에서라도 풀어 보고자 <몽유도원도>를 남겼던 것이리라.


그런 의식은 면면히 이어져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오늘날 우리는 단기간에 세계 최빈국 상태에서 유수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또 2차 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 가운데는 드물게 폭압적인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이룬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기적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한국인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이상향에 대한 염원, 또 이를 이루겠다는 절절한 열망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겠다. 유토피아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고 또 이를 현실에서 이루고자 분투한 지적 전통이 있었기에 이런 단계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리라.


3. 이상향은 사회 진보를 이끄는 추동력


그런데 이상향에 대한 관념은 늘 한결같은 고정불변의 모습으로 정형화되어있는 게 아니고 약간씩 형태를 달리하며 버전업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건 아마 인간의 정신적인 역량이 다다를 수 있는 범주 내에서만 비전을 상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상향의 모습은 동시대 구성원들의 지적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할 밖에. 인식하고 그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떠올린 바람직한 사회구조의 모형이 각 시대나 지역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조선시대는 유교사회였으니까 대동사회를 꿈꾸되 불교적 피안 그리고 도교 계열의 노장사상의 명맥도 남아 있었으니까 무릉도원도 생각했던 것일 테고.


그러므로 이상향은 완전 경이로운 피안은 아니라 하겠다. 조금만 노력하면 가 닿을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지경을 설정한 관념인 것이다. 이상향은 기존 사회를 개혁하여 진보를 이루겠다는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대 사회구조의 모순을 자신들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초극하고자 한 것이니까 말이다. 하여 유토피아 관념은 사회 진보를 이끄는 추동력이라 하겠다. 그런 이상향을 이루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사회구조는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경제구조의 질적 발전과 정치 체제 및 의식의 선진화 같은 형태의 사회 진보가 요구되고 있는데 이는 핀란드나 스웨덴 등에서는 이미 실현된 바 있다. 그들이 도달한 단계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일 것이다. 하여 이를 모델로 삼아 나아가면 우리도 조만간 그 수준에 이르러 지금보다 한층 나은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상향을 떠올렸다는 것은 실현 가능한 사회진보의 방향을 설정한 셈이라 하겠다.


4. 그럼 오늘 여기는?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더 나은 단계로 진보할 것이다. 한국인의 유전자에 이상향에 대한 열망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관념이 집단무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의 갈급함을 느낄 줄 아는 정서적 민감도에다 불의한 체제를 바로잡겠다는 의협심까지 갖추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적인 설계를 구체적으로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지니기까지 했던 것이리라. 하여 필자의 전언(傳言)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안평대군은 사라졌지만 그 후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상세계를 머리고 그리며 꿈으로 꾸었다. 삼 년 아니라 삼십 년, 삼십 년 아니라 삼백 년이 지나더라도 그림을 뒤적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계속 이어지리라.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144)


하여 유토피아, 이상향은 한국인의 생활양식, 아니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그래서 저자가 키워드 한국 문화 시리즈의 한 부분으로 무릉도원, 이상향을 잡은 것은 여러 모로 적절한 선택이었고 또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모색을 거듭하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a*****7 2010.03.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인의 유토피아 / 할아버지들이 꿈꾸던 세계
"조선인의 유토피아 / 할아버지들이 꿈꾸던 세계" 내용보기
무릉도원이라는 이상향은 학교 때부터 문학과 역사 등의 시간에 배웠던 듯 싶다. 이 책은 교양서이며, 고등학생들이 과외로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다. 서양에 코케인, 아르카디아, 천년왕국,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이 존재하듯이, 동양에는 산해경형, 삼신산형, 무릉도원형, 대동사회형의 이상향들이 존재했다. 조선인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상사회는 무릉도원형이며 이는 속세에서
"조선인의 유토피아 / 할아버지들이 꿈꾸던 세계" 내용보기

무릉도원이라는 이상향은 학교 때부터 문학과 역사 등의 시간에 배웠던 듯 싶다. 이 책은 교양서이며, 고등학생들이 과외로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다. 


서양에 코케인, 아르카디아, 천년왕국,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이 존재하듯이, 동양에는 산해경형, 삼신산형, 무릉도원형, 대동사회형의 이상향들이 존재했다. 


조선인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상사회는 무릉도원형이며 이는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찾아가기 힘든 산속 골짜기속 동굴 저편에 존재하는 풍요롭게 평화로운 곳이다. 

그곳을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은 자연이 주는 풍요도 있으나, 그들은 코케인이나 산해경처럼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것이 충족되는 것을 바란 것인 아니라 힘써 일하고 글을 읽으면서도 일한 만큼 작물을 얻고 평화롭게 사는 것을 바랐다. 그 모습이 놀랄만큼 소박하고 선량해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현실세계에서의 고통을 잊기 위한 것이다. 조선인들의 유토피아의 형식을 보면 그 산촌에 관리의 수탈만 없어져도 거기가 무릉도원임을,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세금과 정치와 전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유토피아를 실제로 건설하여 대동사회영의 마을을 이뤘던 이들도 조선에 있었다. 17~18세기에 살던 신석의 일가는 경기도 가평 부근으로 이주하여 판미동을 건설했다. 그들은 규악을 만들어 지키고 소박하고 근면한 생활을 하면서 명성있는 마을을 만들었다. 그러나 에너지의 무질서가 증가한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이라도 따르듯 그 마을은 백 년 후 와해되었다.


현대인들의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인들의 눈에는 현대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그러나 저자 서신혜는 말한다. 내일이 내일을 사는 사람에게는 오늘일 뿐이듯이, 유토피아를 찾고 건설하려는 시도는 현재 진행중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의 문제점을 꿈 속에서나마 해결해보려는 시도이다. 현대인들의 유토피아를 찾으려면, 현대인들이 당면한 문제를 찾아보는 것이 선순위일 것이다.

q*******6 2018.10.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인의 유토피아』- 꿈을 거닐다
"『조선인의 유토피아』- 꿈을 거닐다" 내용보기
언제부턴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ㅡ. 나는 어느 좁고 깊은, 그리고 어두운 공간으로 빠져든다. 오랜 시간을 어둠속에서 헤매다 눈부신 빛줄기와 마주하게 된다. 꿈속이지만 정말 꿈같다고만 느껴지는 공간에 내가 서있다. 맑은 시내가 흐르고, 복숭아나무 가득한, 흔히 이야기하는 무릉도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눈부신 빛만으로 충분히 따뜻한 공간이다.
"『조선인의 유토피아』- 꿈을 거닐다" 내용보기

언제부턴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ㅡ. 나는 어느 좁고 깊은, 그리고 어두운 공간으로 빠져든다. 오랜 시간을 어둠속에서 헤매다 눈부신 빛줄기와 마주하게 된다. 꿈속이지만 정말 꿈같다고만 느껴지는 공간에 내가 서있다. 맑은 시내가 흐르고, 복숭아나무 가득한, 흔히 이야기하는 무릉도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눈부신 빛만으로 충분히 따뜻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등등 원하는 것을 마음껏 가질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도 있는 공간 ㅡ. 난 항상 그런 공간,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던 시기 -‘언제부턴가'라고 앞에서 표현했던- 가 아마도 군대에 있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원래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있을 때, 혹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때, 자연스럽게 다른 세상을 꿈꾸기 마련인 것이다 ㅡ. 나 역시 그런 보통 사람에 불과했고 말이다. 막상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꿈꿔 왔다고 말하는 내 자신이 정말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특히나 『조선인의 유토피아』를 만나면서 더더욱 ㅡ. 우리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리던 꿈꾼 세상을 그려보며 더더욱 말이다 ㅡ.

 

『조선인의 유토피아』는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와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ㅡ. 『몽유도원도』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이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이지만, 『몽유도원도』는 우리 것임에도 1939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고, 최근에는 그것을 빌려와(!!) 국내에서도 짧은 기간 전시가 되었다. 왠지 우리 꿈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어, 그 멋진 꿈을 이야기하면서도 씁쓸하기만 하다. 오주석 선생의 “작품 속에는 인적이 없으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무릉도원에 대한 애틋한 정한만이 쓸쓸한 기운으로 남아 있다”라는 설명까지 봤기 때문일까, 안평대군의 비극적인 삶과 지금 그림이 보관되어있는 공간, 그 씁쓸함이 묘하게 겹쳐지면서 뭔가가 나를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든다 ㅡ.) 《몽유도원기》와 『몽유도원도』를 조금씩 읽어가면서, 우리들은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이상향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게 된다. 그전에 우리 조상들이 그리는 이상향의 바탕부터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문인들이 그리는 이상향은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다시 우리 조상들, 당신들이 원하고 바라던 공간을 표현한 그림과 글 속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우리 조상들이 꿈꾸며 그리던 세계를 상상해보고, 또 내가 바라고 원하는 세계를 그려본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그들과 우리가 꿈꾸던 세상을 표현하는 말들이 이렇게 많았나?!’라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옥야, 승지, 복지, 동천, 낙토, 부산, 선경 등에서 부터 서양에서 말하는 코케인, 아르카디아, 천년왕국, 유토피아 까지 ㅡ. 다양한 용어이지만 그 종착지는 거의 비슷하다. 이런 이야기만 한다면 어쩌면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라 느껴져서 슬슬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나 저자도 이 점을 놓치지 않고, 단순한 우리 선조들의 이상향의 이야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 연결고리는 조금 후 다시 이야기하고..) 그렇게 저자는 이상향의 구체적 메커니즘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새 세상을 건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ㅡ.

 

세상이 어려울수록, 현실을 지워버리고 꿈을 좇게 된다. 하지만 현실이 그 이상으로 너무 힘들어지면, 그 현실을 지워버릴 생각도, 꿈을 좇게 될 힘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ㅡ. 어떤가, 당신은 꿈꾸고 있는가?!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마저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입장이든 지금의 현실이 만족스럽다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ㅡ. 그렇다면 우리는 더더욱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무릉도원’으로 대표되는 이상향은 어떤 곳인가?! 우리의 조상들이 생각하던 그 곳은 금은보화가 쌓여있는 곳은 아니었다. 단지 충격적인 사실-권력과 부를 가진자들의 횡포이든 개인적인 일이든-로 인해 속세를 피해 떠나온 곳으로, 자연 속에 고즈넉하게 구축된 세상으로 그려진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는 단지 목숨만 부지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이상향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저 모두가 걱정 없이, 평안히 살아가는 곳이 바로 그런 곳으로 생각되어졌다. 하지만 그 역시도 시대에 따른 의식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렇게 바라보면, 오늘날의 생각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것보다 ‘오늘날,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든 것이 정리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고, 그 대답을 다시 곱씹어보라. 예전의 그것과 다름없이 걱정 없고 평안한 삶을 원하겠지만, 분명 다른 무언가가 불편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 불편함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것을 없애는 것이 바로 ‘절제와 양보, 신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이상향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꿈부터 정말 이상적으로, 올바르게 그려져야 된다고 생각된다.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들, 그것이 다시 모두에게서 살아 숨쉰다면 우리가 그리는 세상도, 우리의 꿈도 똑바르게 세워지지 않을까?!

 

꿈을 세웠다면 이제는 그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이다. 수많은 문헌들에서 언급되었던 이상향 ㅡ. 그곳은 속세와는 엄격하게 단절된 공간이다. 그 공간으로 가기위해서는 험난한 진입로를 거쳐야 한다. 험하다고 그냥 꿈만 꾸고 주저앉을 것인가?! 그 좁고 험난함은 속세의 때와 더러운 권력 등의 침투를 막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왜 그래야 할까 싶기도 하다. 그냥 완전히 차단해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속세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없애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정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상향이지만, 절대적으로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존재할 수도 있는 공간이며, 그 속세와 이상향의 연결고리를 우리가 직접 이을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ㅡ.

 

너무 뻔 한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세상이 무릉도원을 꿈꾸게 만드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뚱맞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삶,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자체가 바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길 소망해본다 ㅡ. 이 세상이 그래도 아직은 그 자체로 이상향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의지가 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ㅡ.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난, 오랜 시간 방황했다. 부끄럽게도 오랜 시간 꿈꿨다 ㅡ. 꿈이라는 그 순수한 이름에 먹칠을 하며, 그 먹칠된 이름만을 빌려서, 난 도망치고 있었을 뿐이다 ㅡ. 그 시간들이 지난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때의 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망상일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에 빠져 순수한 꿈을 시커먼 재로 만들어 내 주변에 남겼을 뿐이었다. 『조선인의 유토피아』를 만나게 되면서, 이제는 방황이 아닌, 현실이라는 길로 한걸음 내딛어 본다. 그렇게 이제 다시 꿈을 꾼다 ㅡ. 망상이 아닌 현실 속에 흐르는 꿈을 ㅡ.

b****j 2010.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박하고 평온한 삶을 꿈꾸다
"소박하고 평온한 삶을 꿈꾸다" 내용보기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면 새로운 도구가 가득하고 음식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험준한 산이 가로막은 작은 마을이다. 변관식의 ‘무릉도원’ 역시 산이 둘러싸인 곳에 촌락이 보인다.   왜 조선시대에는 무릉도원을 이상향으로 보았던 것일까.   스마트폰과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운데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며 과일을 먹는 것일까.   안평
"소박하고 평온한 삶을 꿈꾸다" 내용보기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면 새로운 도구가 가득하고 음식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험준한 산이 가로막은 작은 마을이다. 변관식의 ‘무릉도원’ 역시 산이 둘러싸인 곳에 촌락이 보인다.

 

왜 조선시대에는 무릉도원을 이상향으로 보았던 것일까.

 

스마트폰과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운데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며 과일을 먹는 것일까.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에 얽힌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24쪽을 요약해 보면 ‘안평대군이 꿈꾸고 안견이 표현한 도원이라는 공간은 복숭아나무가 있는 고요하고도 깨끗한 공간이다. 세속의 때나 강압적인 것도 화려함 같은 것도 없다.’라고 한다.

 

또한 82쪽에는 ‘이상공간에서도 사람들은 속세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렇다면 현실과 이상세계가 다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연이 그 생명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사람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아 조화를 이룬 것을 알 수 있다.’란 대목이 있다. 현대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누구나 나눈다면 빈곤계층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5천명이 넘는다는 기사를 접할 때면 사람들이 나만 잘 살고자 하는 욕심이 강하며 아직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와 닿는 구절 중 하나는 86쪽의 ‘요즘은 날마다 대통령이나 정부 무슨 기관에서 무엇무엇을 했고 이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말이 어김없이 뉴스 첫머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날마다 무얼 해보겠다고 뛰어다니는 위정자들이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 백성은 정치적이 행위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요, 조용하고 평안하며 건강한 사회를 이상향이라 생각한다는 것을 말이다.’였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생각이 들어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고 무관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정치로 모든 국민은 최대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강원도와 서해, 남해바다로 피서객들이 몰리는 것을 본다. 전자기기를 버리고 편한 도시를 떠나 산을 타고 물놀이를 즐기는 것을 보면 도시생활이 완벽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조금 더 절제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사회가 올 때 진정한 유토피아가 온 게 아닐까 싶다.

s*****d 2010.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키워드 한국문화 "조선인의 유토피아"를 읽고
"키워드 한국문화 "조선인의 유토피아"를 읽고" 내용보기
이상향이라고 하면, 나는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가 떠오른다. 특히 “유토피아”라는 말은 어원을 보면 서양에서 생각하는 이상향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세상 사람들이 꿈꾸고 바라는 좋은 곳이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 없는 공간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할 때 배웠
"키워드 한국문화 "조선인의 유토피아"를 읽고" 내용보기

이상향이라고 하면, 나는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가 떠오른다. 특히 “유토피아”라는 말은 어원을 보면 서양에서 생각하는 이상향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세상 사람들이 꿈꾸고 바라는 좋은 곳이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 없는 공간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할 때 배웠던 내용이고, 이제까지 나는 이상향을 그런 의미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의 유토피아”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상향의 정의가 단지 서양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동양에서 정의한 의미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동양 역시 서양처럼 막연하게 환상적인 공간이 이상향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이에 반하여 특히 우리 조상들은 이상향을 우리 주변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 예로 우리 선조들은 그 당시 이상향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말 중에서 “동천”이라는 단어를 마을 이름에 붙이기도 했다. “동천”은 그 뜻이 신선이 사는 땅으로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조용한 공간이다.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조상들이 이상향을 거주하고 있는 삶의 공간을 ,꿈꾸고 바라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소망했던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꿈꿔온 이상향은 단순히 먹고 노는 , 무위도식을 하는곳을 이상향이라 여기지 않았다. 인간은 일도 안하고 먹고 놀게 되면 한없이 나태하고 게을러지는 본성이 있기에 이를 이상향이라고 조상들이 여기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우리 조상들은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얻어서, 삶에서 오는 소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이상향으로 여긴 걸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방금 위에서 언급한 것은 어찌보면 이상향이라 여기기에는 대단하지도 않고 소박해서 과연 이상향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을 더 읽다보니 이상향은 그 당시 조상들이 살던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 시대에는 왕조 초기에, 그 이전 왕조가 토지제도의 문란으로 멸망한 것을 해결하고자 새 왕조가 등장했기에,토지를 재분배 하여 백성들의 삶을 나라가 보장해 주려고 했다. 이는 왕조 초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 고위층이 토지 소유를 확대하는데 , 이것이 합법이 아닌 불법으로 토지 겸병을 해나가고, 이 과정에서 백성들이 억울하게 자신들의 토지를 잃게되고, 또 지방의 수령과 그 밑의 아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위해 조세를 부당하게 더 많이 거두어 들여, 백성들의 삶이 궁핍하게 되었다. 이러한 그 당시 현실 문제인 ,민중들은 권력의 부당한 수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으며, 이런 생각이 우리 조상들의 이상향에 반영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우리 조상들이 오래 살고 싶은 , 장수하고 싶은 마음을 이상향에 반영시켰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게 되고, 전쟁으로부터 백성들은 안전한 곳을 찾기를 선호해 ,그러한 마음이 이상향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맨 처음 조선시대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통해 조상들의 이상향에 대한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어느 날 꿈에서 무릉도원을 보고,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어 화가 안견에게 꿈을 그리라고 시켜 탄행한 그림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사람들이나 내가 아는 몽유도원도에 관한 지식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 그림이 현재 일본의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고 ,작년 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특별전에 잠시 우리나라에 왔다는 것, 그리고 그림이 나온 당시 당대 최고의 문인 21명에게 찬문을 붙인 그린 그림이었다는 걸 부끄럽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안평대군은 무릉도원을 추구하였지만, 내 생각에는 무릉도원을 추구하다가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안평대군은 무릉도원을 추구하는 것이 단지 그림에서만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에서 실현시키고자 하여서 오늘날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무계정사” 라는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당시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 서쪽에 있고 ,궁궐을 내려다 보여서 , 당시 수양대군과 그를 따르는 가신들에게 공격할 빌미가 되고 , 결국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보내고,거기서 안평대군은 최후를 맞게 된다. 안평대군이 이상향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권력다툼의 여러 가지 빌미 중 하나가 된 것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안타깝고 씁쓸한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이상향을 단지 꿈꾸고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현실 속에서 이상향을 실현해보고자 했던 노력이 안평대군의 “무계정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후기 정조 때 경기도 가평에 “판미동” 이라는 마을을 만들고 중국의 여러 이상향중 대표적예인 주진촌처럼 일가 친인척이 모여 살던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지형이 두메산골이고 험해 몽유도원도 그림에 높은 봉우리 지나 무릉도원이 있듯 그런 비슷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한편 보통의 이상향은 일반 사람이 가고 싶어 갈 수 있는게 아닌 우연한 기회에 가는데 비해 판미동은 유교적 색채의 이상향이라 마을에 향약과 비슷한 규칙을 만들어 마을 운영하고 , 먹고 노는 무위도식이 아닌 근면과 성실하게 일한 대가로 먹고 사는 마을이고, 외부에서도 판미동이 이상향과 비슷한 마을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교의 이상향인 “대동사회”를 구현하려고 했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판미동은 3대에 걸쳐 100년간 유지되지만, 이 마을을 세웠던 가문의 후손들이 벼슬길에 나가기 위해 한양으로 이주하고, 많은 사람들이 판미동으로 이주해 와서 이상향으로 끝까지 남지 못하고 , 결국 이상향의 의미를 잃게 되었다. 책을 통해 판미동 사례를 접하며 우리 조상들이 꿈꿔온 이상향이 엄청 대단한 것이 아닌, 삶 주변에서 소박하지만 안빈낙도의 삶이 이상향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판미동 사례를 통해 조상들이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시켜 보았지만, 결국 끝까지 유지 할 수 없었기에 이상향을 현실에 실현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이상향의 다양한 모습 또한 접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몽유도원도 그림이 중국에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연명이 살던 시대는 위진남북조 시대로 혼란의 시기로 중국 사람들의 이상향에 대한 갈망이 커서 노장사상의 유행이라든지, 죽림칠현이 나타났다. 그런데 “도화원기”는 과거 노자의 “소국과민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노자가 살던 시대도 춘추시대라 전쟁이 끊이지 않고 백성들의 삶이 어려운 시대라는 걸 책을 통해 연관지어 보면서 이상향은 그 당시 시대 현실이 어둡고 불안할수록 더 갈망하게 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노자의 “소국과민”사회와 무위자연의 사상을 통해 동양에서 꿈꿔온 이상향이 자연을 무자비하게 이용하는게 아닌 자연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 말로 이상향이라는 걸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환경파괴가 심하고 개발을 해야하는 상황에 비추어서 많은 교훈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는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허생전 이야기를 통해 유토피아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 식자( 아는 것이 많은 자)를 비판하고 있다는 걸 고등학교때 배웠던 내용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되었다. 많이 아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온갖 고통과 다툼의 원인이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김홍도의 풍속화첩이 이 책의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이상향으로 등장한 걸 읽어 보았다. 그림에서 남편은 돗자리를 짜고, 아내는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그 뒤에 아들은 글자를 짚어가며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 조상들은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상향으로 본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조선인의 유토피아”라는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어렴풋이 알던 이상향에 대해 조금이나마 깊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상들이 생각한 이상향은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게 아닌 소박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상향에 대해 갈망하고 그 곳에 살고 싶어할까? 라는 물음을 이 책은 물음에 답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데 있어서 어렵고 힘든 것이 사람들이 이상향을 생각하게 되는 동기라고...

 

비록 완벽한 이상향을 이 세상에서 실현시킬 수는 없겠지만..이상향을 추구한 노력이 있었기에 과거에는 신분차별, 부당한 권력의 수탈이 지금은 사라져서, 옛날 사람들이 본다면 지금이야말로 이상향이라고 여길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진보해왔다.

이상향은 사회를 발전 시킬 수 있는 동기라 생각한다. 지금도 아직 세상은 불합리하고 억울한 것이 많지만..사람들이 이상향을 추구해..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간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상향에 한 발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t********4 2010.03.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