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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얼마나 기도를 하시고 계시고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시나요?
저는 사실 기도를 많이 하지 못합니다. 여기저기에서 '기도는 어떻게 해야된다' 라는 말을 들은것이 오히려 저에게 기도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기도를 해야한다고 강조하는데 기도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방언을 받았으면서도 잡생각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5분내로 교회에서 나오는일도 많아져 기도를 점점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하나님은 뻔뻔한 기도에 응답하신다" 는 책의 제목을보고 아!! 내가 뻔뻔하게 기도하지 않아서 기도가 안된것인가? 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래서 기도방법을 알기위해 이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겉표지를 보고 *결과보장못함 이라는 작은글씨를 보고서.. 실망을 했습니다. 아.. 물론, 하나님이 아니니까 보장은 못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너무 간절한데.. 누군가가 책임져 준다고 했었으면 좋았을걸.. ㅠㅠ 이런 마음으로 몇일간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ㅠㅠ
그러다 차안에 놓아둔 책을 다시 보게되면서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저의 기도에 대한 틀이 잡혀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기도가 일하지 않는다.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중략) 그래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중략) 상황을 바꾸는것은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상황을 바꾸신다
다른분들은 안그러셨을진 모르겠지만 저는 이러했습니다. 너무나 정확하게.. ㅠㅠ 제 기도가 응답이 안되었을때 제 자신을 탓했고 내가 어떤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었던것은 아닌지 다른 방법을 찾거나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런 작은것들이 사단에게 미혹당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물론,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으로 인해 기도를 하지 않게되기 때문입니다.
어릴때에는 하나님이 제 곁에 계시다고 생각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것처럼 하였는데 커갈수록 격식을 차리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는기도는 무엇인지 생각하게되었네요 ㅠㅠ
기도는 하나님과 하는 대화다..............(중략) 대화는 예행연습을 거치지 않는다. 그저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난다.............(중략)
엘리가 부모님 저녁을 마치려던 참에 친구집에 차를 갖고가도 되는지를 묻는 대화내용이 예로 나온다. 그 대화에는 격식을 차린 상황설명도 없고 누구도 조심스럽게 말을 계획하지 않았으며 남의 눈길을 의식하거나 불안해 하는것이 아니었다. 기도도 그래야 한다.............(중략 및 요약)
이 책 제목을 보고 먼저 판단을 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어떨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던 그 생각이 너무 부끄럽네요.
제 자신이 너무 사람눈에 비춰진 기도만을 하려 했던것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후에도 계속 예화가 나오면서 제 자신이 생각하도록 나와있는데요 순식간에 몇장씩 읽게 됩니다. 일반예랑 성경예도 나와있어서 이해도 잘 되네요~
그리고 또 흥정기도에 대해 나온부분이 또 제게 하신말씀이 아닌가 싶네요.. 여기에서 더이상 언급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기도를 하지 못하는분. 기도에 대해 궁금하신분. 등등 권해드리고 싶네요..
사진이 등록이 잘 안되서 블로그 주소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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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먼저 제목이 인상적이다. 또한 우리들의 마음과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제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기도했다. 책 장을 넘기면서 더욱 기도에 대한 매력을 느낍니다. 기도에 대한 책들을 보면 대부분 어떤 틀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들의 답답한 부분들을 명쾌하게 밝혀주고 있다. 과연, 이런 기도도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인가하는 생각들을 반성케 한다. 이런 기도도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흥정이라는 단어에 한참을 웃었다. 마치 공판장에서 흥정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의 흥정은 진지하다. 한푼이라도 내리고자, 그러면서 좋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그들의 흥정의 눈은 불을 내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정은 마치 자신의 것을 반드시 갖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흥정이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명쾌하게 그렇다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는가? 저자는 경계한다. 기도에 대한 허식을 말하고 있다. 정치가들처럼 기도에 대한 겉모습에 대한 지적을 한다. " 모두 기도같이 보이고, 기도 같은 냄새가 나고, 기도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연 기도라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로 가장하지만 주님은 듣기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기도한들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중심을 아시고 보시는 분이다. 그분앞에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이 책의 매력은 모두가 할 수 있는 기도를 모두가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도 기도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 참으로 뻔뻔하다. 미안해 하지도 않다. 그저 자신의 필요를 늘 채우고자 한다. 이기적인 모습이 어린아이 때 가장 크다. 자신만을 봐달라고 한다. 자신에게만 집중하도록 한다. 그 모습을 주님은 원하신다. 그런 모습속에 있다하더라도 주님은 기뻐하신다. 이 책이 그렇다. 이기적인 인간들이지만 주님은 그 이기적인 것을 듣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쁜 소식이 아닌가? 이 책은 그 기쁘고 즐거운 소식을 더욱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도하자는 말을 남기고 싶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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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온다. 모두가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한다. 기도에 구체적인 제안보다는 기도에 개념, 기도의 능력 등을 많이 갖게 한다. 그러나 기도는 해야 한다. 즉 실천해야 된다. 기도해야만 능력을 체험한다. 기도는 기도를 하는 자의 것이다. 기도의 응답은 믿음의 결과이다. 이 책의 제목이 독특했다. 뻔뻔한 기도에 라고 한다. 번역을 재미있게 했다. 사실. 우리는 뻔뻔하다. 죽일 자리에 있는 우리를 건지시고 살리주셨는 데 우리는 그분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먹을 것을 달라, 거처를 달라 등등을 달라한다. 그러나 그분은 마다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더욱 구하라고 한다. 많은 것을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뻔뻔한 자들이 뻔뻔한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은 들으신다는 것이다. 뻔뻔한 자들이지만 이미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다. 뻔뻔한 자가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귀하고 자녀로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뻔뻔함으로 받으시지 않으시고 사랑스러운 자녀의 요구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주요한 요지가 그렇다. 이 책의 8번째의 chapter를 제목으로 삼았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이기적이다."는 대목에서 우리들의 기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실 의무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거듭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주시기를 원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과자를 놓고 다른 것을 요구했을 때 부모나 조부모들은 이 모습에서 눈을 땔 수가 없다. 그저 아름답고 귀엽기만 한다. 너 뻔뻔하구나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스럽다 . 하나님이 그러신다. 우리를 바라보실 때의 모습은 인자하신다. 우리의 작은 것이라도 다 들어주시고자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 자 되기를 바란다. 기도를 하는 자와 기도를 들으신 분의 마음을 그려보고자 한다. 내용중에 하나님의 사랑, 약속에 대한 말씀을 한다. 그 두 단어가 바로 뻔뻔한 우리들을 기대케 하는지 모른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내 자신을 보게 되었으며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의 참 사랑을 보게 되었다. 뻔뻔함이라는 단어를 번역함에 더욱 이 책에 관심을 끌게 될 것을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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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며 도발적인데 이상하게 제목을 보는 순간 뻔뻔하게 기도해도 되는 거였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기도를 하면서도 이 기도는 하면 안 될것 같아 빼고, 저 기도는 왠지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 빼놓는다. 이것저것 다 기도하면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꾸중을 들을 것 같아 내 선에서 알아서 솎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뻔뻔하게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라고 한다.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뻔뻔하게 기도해도 되는 걸까?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데, 찔리는 게 너무 많은데, 불끈불끈 화도 잘 내고, 다른 사람 흉도 잘 보는데 어떻게 뻔뻔한 기도를 할 수 있으며, 기도한다 하더라도 어찌 뻔뻔한 기도에 응답하실까? 사실 잘 믿겨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뻔뻔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먼저 기도에 대한 정의부터 내린다. '기도는 하나님과 하는 대화다.'라고 말한다. 남의 눈길을 의식하거나 불안해 하는 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심조심 하며 앞뒤로 계산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기도도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지금 감정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것이 진자 대화이고 기도라는 것이다. 누구도 보지 못한 한 부분을 드러내도 상관없다. 모든 것을 보여드려도 그분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신다. "편안하고 친근한 대화처럼 기도는 우리가 약점을 드러내어도 안전한 장소이다."(19쪽)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약점이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신뢰한다. 그래서 가끔 내 서러움에 겨워 눈물을 쏟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는 건 전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그분이 주시는 위로가 필요해서이다.
[하나님은 뻔뻔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기도는 본능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기도에 관한 공식이나 옳은 방식에 대해 배우지 못한 채 기도를 하게 된다. 예수님의 '주기도문'을 기도의 모범으로 배운 정도다. 나는 신앙의 선배들이나 목회자들의 기도를 들으면서 기도하는 방식을 혼자서 터득했다. 공예배 대표기도를 들으며, 소그룹 모임의 대표기도를 들으며 기도의 순서와 내용을 익혔다. 적당히 포장된 기도, 미사여구가 들어간 기도, 감사와 회개와 소망을 적절히 안배한 기도가 그것이다. 적어도 10년 이상 나는 이 기도의 모형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집에서 개인기도를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기도의 틀을 깨게 되었다. 하나님이 앞에 계시다는 생각을 하면 기도의 형식은 저절로 깨어진다. 우리 안에는 기도 본능이 있고 이 본능이 우리를 무릎꿇게 만드는 것이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본능이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저자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짧은 외침도 하나님을 향한 절절한 갈망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책은 흥정하는 기도와 질문하는 기도, 정의를 구하는 기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기도, 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시지 않는 기도, 하나님이 거의 응답하시지 않는 기도, 응답하고 싶지 않지만 반드시 응답하시는 기도, 그리고 뻔뻔한 기도에 대해 다룬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 정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에만 응답하시는 게 아니라, 뻔뻔하고 이기적인 기도와, 하나님과 감히 흥정하려 하는 기도에도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바라던 것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길 바라시고 우리와 친밀해지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본능이 신호를 보내는 것을 느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만드는 책, 기도를 사모하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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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들의 형편없는 기도에도 응답을 주신다. 기도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기도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나 이와 같은 질문을 수 없이도 하면서 살아왔다. 믿음의 자란 후인 지금은 기도가 우리의 호흡과도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길을 가더라도. 또 무엇을 행하기전과 후엔 반드시 기도를 하는 습관이 나에게 생기기까지엔 많은 훈련도 있었고, 또 기도의 응답도 셀 수 없이 많았던 것같다. "하나님은 뻔뻔한 기도에 응답하신다" 이 한권의 책은 어찌보면 자극적인 제목으로 과연 책에 담겨진 내용이 무엇인가 하고 궁금증으로 달려들게 만들어준다. 기도란 우리가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이 한권에 담겨진 행복한 내용은 기도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게 만들어주고 더욱 기도하게 만들어주는 위로가 담겨있다.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신실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하나님과의 거룩한 동행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기도의 교과서 같은 귀한 책이다. 믿음이 굳건하신 분들과 또 초신자분들 모두가 읽으므로 지혜와 지식을 얻기에 정말 유용한 책이고 또 선물하기에도 좋은책으로 추천을 한다.
이 책에는 첫째로 흥정하는 기도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한 성을 하나님께서 멸하실 계획을 알게되고 그 성에 살고있는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과 거룩한 흥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보상은 아브라함의 뻔뻔한 흥정에도 하나님께서 기꺼이 귀 기울이셔서 그의 생각을 헤아려 들어주실것을 확신하며 구한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았다. 둘째는 질문하는 기도가 있다. 우리모두는 질문을 하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묻는 질문 과 우리가 이토록 미련하게 묻는 질문속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증거가 담겨 있다는 책의 글에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바로 알게되고 또 우리의 추구함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의 미련한 질문에도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답을 하여 주시고 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만들어 주신다. 이처럼 정의를 구하는 기도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기도, 뻔뻔한 기도, 마지막으로 아름다움과 행복을 구하는기도까지..한글자 한글자 우리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아가고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것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우리의 삶이 변하고 또 우리의 기도 생활이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귀한 책이 더욱 많이 읽혀지고 많은분들의 손에 들려져서 읽혀지기를 기도한다. 읽어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알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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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란 어떤방식으로 하는것이 하나님께서 제일바라는것을까요^^ 아무도 말할수 없다는것입니다. 이책의 말처럼 하나님은 뻔뻔한기도에 응답하신다. 과연맞을까요. 우리가 교회를 다디면서 말을들어보면 하나님은 한없이 좋으신고 우리가 원하는것을 들어것은 무엇이던지 들어주신 기적의 하나님 이책을보고 참 맞다는생각을 했답니다. 목사님 말씀중에 그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것을 들어주신다 그렇지만 명심하라고 자신이 원하고 또 하나님께 약속한 내용을 기억하고 지키라고 어떤방법으로던식 자신이 한 약속은 절대 잊지 말아야한다고 하셨읍니다. 우리는 내가 필요할때 자신이 위험할때 눈앞에서 우선 그 순간을 위해 약속하고 잊어버리고많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때 종류을 기억하는가?
[흥정하는기도 [질문하는기도 [정의를 구하는 기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기도 [뻔뻔한기도 [아름다움과 행복에 관한 기도 우리가 볼때 어떤기도가 뻔뻔한 기도일까 아주 많을것 같다. 어떤 내용이떤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되면 사람들은 뻔뻔한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말씀 안하신다. 약속을이행하라고도 또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나도 약속을 이행못한다 말을 할까요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던지 조용히 지켜보시고 조용히 원하는일을 언젠가는 이루어 주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한는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다른사람이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같은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속상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불만을 토론할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어떤 행동을 하시던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만큼만 그안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어떤 지주가 시간과 상관없디 자신이 원하는금액을 일꾼들에게 줄수 있는것 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사람들에게 더 많은 복을 주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새로 운 흥정으로 많은것을 받았다면 그 많큼 하나님께 드려야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기도를 하게된다. 그렇기에 뻔뻔한 기도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고 행동에 나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아끼치 않고 우리에게 보내신것 처럼 우리의 모든것을 간절히 들어주신다. 기도는 우주의 창조주와 우리을 잇는 길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늘 최상의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흥정하는기도,질문하는기도,정의를 구하는기도,절망적인 기도,뻔뻔한기도,그리고 아름다움과 행복을 구하는기도 이 모든것에 응답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이 적은 숫자에만 기도에 응답을 주신것이 아니다. 아주 많은 내용의 기도에 응답을 주신다. 뻔뻔한 기도도 좋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라 그리고 약속을 기키고 자신이 하나님과 한 약속을 기억하고 지켜라 ^^ 기도는 어렵지 않다.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그리고 이것은 반가우면서도 상당히 두려운 사실이기도 하다. 기도의 본질은 관계다. 기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핵심으로 돌입하라.
하나님의 응답하는 기도는 ?? ["아 하나님! 감탄사도 기도라고 할수 있다. [하나님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기도에 잘 응답하신다. [정의를 구하는 기도에는 받드시 응답하신다.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제목은 제목이고 , 이기적인 기도나 뻔뻔한 기도를 드려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응답하고 싶지 않아도 받드시 응답하시는 기도가 있다. [하나님이 거의 응답하지 않으시는 기도도 있다. [하나님과 흥정하면 우리가 손해다. [옷을 잘 차려입고 무릎 꿇고 하는 기도가 아무래도 더 잘 응답받는다. 과연 이중에 하나님이 잘 들어주신는 기도가 있을까요? 저도 궁금해요^^ 당신이 하나님이 존재하는것일까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는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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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우와~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네"라는 설레임으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앞에서 계속 반복되는 죄들이 싫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서기 민망하다면서 피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기때문에 더더욱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본 것 같다.
기도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대화이지 하나님앞에서 늘 노심초사하면서 올바른가 그렇지 못한가가 전부가 아니기때문이다.
실제로 성경안에는 수많은 기도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런 기도의 특징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정립하면서 내가 누구이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드리는 기도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기도의 내용보다는 기도의 대상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기도의 대상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고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라면 따뜻한 부자관계가 성립된것이고 이제부터 우리 아버지에게 못할 말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분이 누구인지를 아는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기도가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뻔뻔함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 다시말해 끈질긴 기도를 원하신다는 점이다. 끈질긴 기도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분과 그정도로 친밀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반증이 아닌가?
실제로 우리는 기도를 정결하게 드려야한다고 생각한다. 맞다. 기도는 우리의 탐심을 빼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땅을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100% 만족시키는 이상적인 기도를 드릴수는 없다. 그렇기때문에 뻔뻔한 기도를 드려야한다. 떼쓰는 기도조차도, 무엇을 얻기를 구하는 기도조차도 다 의미가 있는 기도이고 귀한 기도라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내용보다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대상에 주목하게 한다. 그래서 그분이 진정한 나의 아버지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임이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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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 말 못하고 쌓였던 불평 불만, 원망과 어려운 마음들을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하나 하나 낱낱이 이야기하는 기도를 했었는데요.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과 교제의 영역이 더 세밀해지고, 깊어지고,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세한 것 하나하나 하나님께 먼저 이야기하고 때론 농담도 주고 받고, 힘들면 좀 힘좀 주지 뭐하시냐고 나름대로 땡깡도 부리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죠. 어쩌면 이 책이 제게는 그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다가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야 이거 한번 읽어보고 내 맘좀 잘 파악해'라고 유머스런 훈수를 두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사실 우리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 가장 거룩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마치 '친구와 이야기 하듯'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빠지게 되는 오류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고 어려운 구만리 장천 어디쯤에 계시는 아련한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어렵게 여기고', 그분과의 대화에서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도 않는 극존칭과 경어들을 '거룩하게' 섞어가면서 말한다고 우리를 가까이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어색해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어색해 한다는 것이죠. 오히려 내 마음이 낮아질대로 낮아져서 하나님 앞에서 그야말로 가장 '인간스러워'졌을 때, 하나님도 나를 하나의 존재로서 가장 가까이 대해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런 하나님의 속성, 즉 '하나님의 인성'이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기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적절한 유머들을 섞어가며 제대로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인격 중의 인격'이시라는 거죠. 당연한 게 우리는 그분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어졌으니까요.
'인격이신 하나님 앞에 인격으로 나아가자' 이것이 이 책이 제게 알려준 기도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어렵고 딱딱하고 진부하게만 느껴지고, '내가 기도를 멋들어지게 해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거야'라는, 마음의 부담아닌 부담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양약이 되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의 기도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기도의 키 포인트들이 무수히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기도를 유창하게 잘 하는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한 척 한다고 해서 우리가 거룩해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실상은 그렇지가 않죠.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나는 창기와 같지 않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와 같은 종교성 짙은 거룩스런(?) 기도보다는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같은 세리의 위선적이지 않은 솔직 담백한 기도를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이 책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을 이 책의 방식으로 압축하자면 '너 아빠 못 믿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모두 경건의 모습만 있는 신앙에서 벗어나서 경건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자랑스럽고 떳떳한 아들, 딸들로 변화되는데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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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받은 가르침은 '뻔뻔한 기도는 하지 말라'였다. 자기 욕심을 구하는 기도나 이 기적인 기도등 이런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 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기적인 기도 아닌것이 없을 정도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가 하는 기도의 중심에는 어느 면이든지 이기적인 요소는 조금씩 들어 있다. 그러므로 이 기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는것은 곧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 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이기적인 기도일지라도 기도를 하는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도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전례와는 조금 비교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쨋 든 '뻔뻔한 기도에 응답 하신다'는 제목 만큼이나 저자의 글도 이례적이다. 응답 받은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와 다른 책에서 얻은 내용들과 저자의 견해를 섞어서 흥정하는 기 도,질문하는 기도,정의를 구하는 기도,매달리는 기도,뻔뻔한 기도를 설명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면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흥정이든, 질문이든, 정의이든, 매달리 는 기도이든, 뻔뻔한 기도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는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 려운 일이다. 어느 동기가 진짜 동기인지, 진짜라고 확신하는 그 확신까지도 진실을 규 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진실만이 그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기도 책이 든 읽어 보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기도의 요점은 오직 하나님 한 분께 집중되길 원하는 '진실된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은 진실 그 자체 이시기 때문에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시고 기도가 아 무리 뻔뻔하다 해도 진실한 기도라면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또한 응답하시지 않는 기도 두가지도 나와있다. '척하는 기도'이다. 고 싶습니다. (p211) 말은 적게 하고 행동을 많이 하면서 본을 보이는 것이 기도가 진 짜 기도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력하기 보다는, 사람들 이 기대하는 기도나 자기 믿음을 보이려고 더 애쓰는 일이 가짜기도에 속한다.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이렇게 척하는 기도를 하는지 우린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공중 예배에서의 대표기도나 사람들이 많은 공식석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도 6가지가 나와 있지만 사실 하나님은 이것보다도 더 뻔번한 기도 600가지 아니 6천개 , 6만개라도 이것의 몇갑절이라도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왜냐하면 오직 우리 의 기도를 통해서만 응답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뻔뻔하고 이기적인 기도일지라도 기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도가 일을 행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일을 행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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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흥정하는 기도, 질문하는 기도, 정의를 구하는 기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기도, 뻔뻔한 기도, 아름다움과 행복을 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흥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도 들어주신다. 사실 흥정이라는 것은 동등할 때 흥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흥정할 만한 자격이 없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맞바꿀 때 비로소 우리는 구하고 받을 수 있다.
질문은 우리의 영적 음파 탐지기이다. 하나님께 무슨 질문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다. 우리가 물으면 하나님은 답하신다. 다름 아님 임재를 통해서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하심으로 우리의 어떤 질문에도 답해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의 응답하시지 않는 기도와 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시지 않는 기도가 있다. 첫 번째로 그것은 바로 ‘왜’라고 묻는 기도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식이다. 왜를 묻는 기도는 사후 부검과 같다. 왜는 과거를 바꾸지 못하며 현재에도 큰 의미가 없다. 응급 상황에 따르는 첫 번째 질문은 ‘왜’가 아닌 ‘무엇’과 ‘어떻게’ 이다. “왜 환자가 피를 흘리나?”라는 질문조차도 “어떻게 해야 환자의 피가 멈출까?”보다 부차적이다. ‘왜’는 미래 행동으로 우리를 안내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왜’에서 ‘어떻게’로 관심을 돌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고 또 기꺼이 그렇게 해 주신다. 두 번째로 “모든 금이 번쩍이는 것은 아니라네”(반지의 제왕에서 마법사 간달프가 한 말)라는 말처럼 ‘하는 척’ 가장하는 기도를 듣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옳은 동기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나 또한 동기에 그치지 말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진짜 기도에는 증거가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기도와 일치된 삶이다. 진실한 기도는 뻔뻔하리만큼 자기 중심적일지라도 하나님은 들어주신다.
하나님은 정의를 구하는 기도도 들어주신다. 이 세상은 정의롭지 못한 일들로 가득넘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박국처럼 따지고 싶어하고 아모스처럼 따지고 싶어한다. 공의를 지각하는 능력, 정의를 구하는 욕구는 태어날 때부터 받은 묶음 세트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공평하고 그른지 인식하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 정의는 실재하며 또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간청에 예수님은 이렇게 응답하신다. “진실로 정의를 원하느냐? 자비의 균형없이 이 잣대가 네 삶에 적용되길 원하느냐?” 우리가 널리 자비를 베풀고 정의의 집행 자격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면 하나님은 정의의 가혹한 요구에서 우리를 해방하신다.
하나님은 필사적인 기도에도 응답하신다. 기도는 희망의 죽어가는 마지막 불씨다. 수치를 잊고 도와달라 부르짖는 우리의 울음소리다. 하나님은 필사적인 기도에 늘 응답하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저 응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늘 응답하셨음을 믿기 위함이다. 지금 당장 여기서 응답받지 않더라도, 멀지 않는 내일의 나라에서 응답을 찾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경이로운 순간, 황홀한 순간, 감동의 순간에 오 하나님!을 외친다(사실 이것은 한국 정서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또 한번 그러한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러한 경험을 다시 얻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평범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보고자 우리의 마음을 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나님은 기쁨의 순간을 좀처럼 반복해 주시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은 “한번 더”라는 우리의 기도에 새로운 놀라움으로 답하신다. 하나님은 똑같은 손가락 그림, 눈송이, 일몰을 반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당신 곧 창조자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시고자 창조 행위를 반복하신다. ‘더욱’ 달라고 청하는 기도는 게릴라식 경험으로 응답을 받는다. 이 응답은 우리의 굶주림을 더욱 자극하고, 기도하게 하고, 냄새는 맡았지만 아직 맛보지 못한 감질나는 선의 근원지를 찾게 한다.
응답하고 싶지 않지만 반드시 응답하시는 기도도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고파 하는 그분의 아이들을 천국의 지하실에 가두어 버리시는 것을 가장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유하고 싶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서 사랑받고자 하심이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으면 그분은 오실 것이다. 그러나 단호한 결심으로 독립을 요구하면 그분은 우리를 놓아주신다. 절대로 강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독립을 요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싫어하신다. 그러나 그 기도도 들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결국 기도자체가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이 일을 행하시는 순간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알기를 원하시고 또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게 해야 한다. 우리를 ‘야다’하시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알고 ‘야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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