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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을 보면 길동이 아버지 홍판서 앞에서 자신을 호칭하는 말이 소자(小子)가 아닌 소인(小人)이었다. 홍 판서를 부를 때는 아버지가 아닌 상공이나 대감이라고 불러야 했고. 길동 같은 서얼들은 부자간이라는 표현을 하지 못할 정도로, 호칭을 비롯해서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적자와는 다르게 차별을 받았던 것이다. 서자란 아버지가 같더라도 어머니의 신분이 낮거나 정식 혼인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말하는데, 더 구분을 하자면, 양반 아버지와 양민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서자(庶子)와 양반 아버지와 천민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얼자(孽子) 이 둘을 아울러 서얼(庶孼)이라고 한다. 중국에도, 고려에도 서얼이 존재했지만 조선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적서 차별이 심했다. 갑오개혁이후 신분제가 폐지된 지 백년이 넘은 지금까지 관습적으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정도로 그 차별은 우리 사회 속에 질기게 뿌리내리고 있다. 조선 사회를 지탱해온 사회적인 근간이 신분제였음에도 같은 양반 신분 중에서도 적자만 우대하는 제도적 장치는 태종대에 서얼들의 과거응시를 제한하는 ‘서얼 금고법’이 탄생함으로써 본격화 됐다. 서얼의 관직 등용을 차단함으로써, 서얼에 대한 차별의 벽이 단단하게 쌓여진 것이고, 그런 차별은 또한 관리로 진출하는 양반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차별이 공고해질수록 서얼 허통을 요구하는 서얼들의 목소리 또한 조선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인재 등용을 위해 서얼도 관직에 기용 해야 한다는 조광조나 이이 같은 사대부도 일부 등장했고, 조선 말 순조 대에 이르면 서얼 김희용이 무려 9,996명과 함께 상소를 올릴 정도로 서얼들 역시 대대적으로 서얼 허통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의 결과 영조 대에 이르면 서얼의 과거 응시를 허용하고 정조대에는 서얼 출신을 검서관으로 기용하는 등 서얼 허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차별은 쉽게 가지기 않았다. 조선 내내 대과에 급제한 서얼이 열 명 남짓했고, 벼슬도 6품 정도에서 머물르고 더 이상의 고위직에 진출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홍길동처럼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리 비상한 재능과 실력이 있어도 무용지물이었던 이들, 물론 서얼 출신으로 고위직에 오른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였지만 그렇게 고위직에 올라도 이들에겐 신분에 대한 구설이 늘 따라 다녔다. 세조에게 발탁된 간신의 대명사 유자광이나, 장원급제를 했음에도 서출이라는 소문에 시달려, 제대로 관직에 나아가지도 못했던 성종 때 인물 최서, 서녀의 몸으로 정경부인까지 오른 정난정, 정조 때 검서관으로 기용됐던 이덕무, 개화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했던 윤치호 등이 서자출신으로 출세한 인물이었다.
이들이 이자리까지 오르기에는 적자들 보다 몇배는 더 피맺힌 노력을 해야만 했지만, 하지만 이들은 말년까지 평화롭게 살지를 못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그들의 신분은 언제나 정적에게 공격당하는 빌미가 되거나, 스스로 신분의 제약,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느라 자충수를 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송유진이나 이몽학처럼 난을 일으키거나 박응서처럼 범죄를 저질러 체포됐다가, 역모를 꾸몄다고 나선 경우까지 있었을 정도로 이들에게 신분의 굴레는, 사회적으로 아무 것오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과 조선 사회에 대한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품게도 만들었다.
적서 차별은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이처럼 적서 차별을 실시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조선은 유난히 혼인에 간섭을 많이 한 나라였다. 실제 가족관계에서는 가장의 사랑을 차지한 첩과 서자가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처와 적자가 재산 한 푼 물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로 발생하자 혼인관계로 맺어진 정처와 그 적자에 대한 재산 상속권을 보장해주고, 과거 응시자격을 주는 것으로, 조선의 신분제를 안정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일부일처제였지만 첩을 두는 풍습으로 처첩 간 갈등이나, 재산상속 문제 등 가정 내 갈등이 심각해지자, 처와 적자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으로써 조선 사회의 안정을 도모했던 것이었다.
서얼들은 이러한 조선의 필요에 의해 잉여 취급을 당했고, 반쪽짜리 양반이었다. 이들은 사대부로서 꿈을 펼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사회적 차별과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희생자 역할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또한 적서 차별은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런 한편으로 가부장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는 악순환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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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와 얼자. 이를 통칭해서 '서얼'이라 부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런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서얼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역사학에서는 해서는 안된다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보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 시대의 억압을 뛰어 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을.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신분제도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폐기된 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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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라는 가정은 어찌되었든 지금의 자신이 처한 조건이나 상황에 대해 달리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의 반영일 것이다. 지금 자신을 규정하는 조건이 두세 가지만 아니 한 가지만이라도 달라진다면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담겨있다. 여전히 미흡한 측면이 있지만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두루두루 열려진 조건과 공간이 마련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도 이런데 엄격한 신분사회를 살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