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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권을 구입하자마자 길가에서 읽기 시작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목숨을 건 만화읽기였다. 책장 넘길 때마다 숨막혀서 질식할 것 같지, 책에 너무 빠진 나머지 빨간 불일 때도 도로를 건너지 않나‥ 하지만 무엇보다 악천후를 피해 폐가에 피신한 안타까운 두 남녀의 '사랑'을 보면서 심장이 타버리는 줄로만 알았다. 연애도 지겹게 하고 결혼까지 해서 배우자가 지겨워 죽겠다는 현실에 찌든 사람이면 모를까, 로망을 꿈꾸는 나같은 이십대 중반남부터 그 이하 청춘남녀들까지는 간곡히 부탁드리건대‥ 이 13권은 방에 편히 누워 몸을 이완시킨 다음에 차분히 읽기를 바란다. 첫장부터 기타지마 마야는 정말 대책없이 마스미에게 푹 빠져버리질 않나, 마스미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마야에게 일부러 냉정히 대하질 않나, 거의 운명적인 만남에 가까운 두 남녀가 속내를 숙이고 서로 쳐다보면서 '연기'만 하는 것을 보면 속터지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날씨가 쌀쌀하다는 핑계로 서로 '포옹'해버리질 않나, (* 특히 마스미상>_< - "나도 남자니까 책임지지 못할지도 몰라"라는 대사는 요새 음탕한 만화들과 대조적인 명언이다. 모두 각성하랏 !), 그렇게 잠들면서 그 아름다운 밤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라는 식으로 안타깝게 보내니. 주위의 많은 커플들이 깨지는 것을 보고 '연애'에 환멸을 느낀 사람으로서도 '마음 어딘가 설레이는' 터라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걸 어쩌란 말인가 ?
마스미와 마야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사실 이번 13권의 질식 포인트 두가지를 놓치면 큰일날 것이다. 하나는 마야와 아유미의 "홍천녀 쟁탈전"이다. 물의 연기, 홍천녀의 정체성에서 벌이는 대결은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츠기카게 선생의 '과거', 즉 홍천녀의 '탄생 사연'이다. 전권들에서 가볍게 언급되었던 홍천녀의 작가, "오자키 이치렌"이 액자식 구성으로, 즉 츠기카게 선생의 '꿈'에서 회상 형식으로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다. 아유미는 연기 대결 중 마야에게 뒤처지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나머지, 기권을 결심하고 도쿄로 떠나던 중에 마야가 다리에서 추락할 위기에 봉착한 장면을 보고도 죽으면 홍천녀는 자기 것이 된다는 망상까지 사로잡히고야 만다. (* 역시 대결은 무섭다. 당당한 아유미가 어째‥) 물론 전체적으로 아유미가 우세하다. 우아한 몸짓, 정묘한 표현, 선녀같은 미모‥. 마야는 단지 본능적인 연기의 감(感)으로써 스스로 홍쳔녀가 되어가기에 아유미보다 나아보이는 것이지. 두 경쟁자는 서로 대결해가면서 완벽한 홍천녀에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는 죽음을 직감한 츠기카게 선생은 마지막 홍천녀 연기를 시도하려한다.
13권에서 눈여겨보아야할 것은 만화의 '분위기'가 '종교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야의 "홍천녀 연기"는 천둥번개만 안 친다 뿐이지 광풍이 불고 잎사귀가 날라가는 것이 진짜 여신의 등장과 다름없다. 츠기카게 선생의 가르침은 신(神)의 존재를 탐구하는 어느 선사의 선문답과도 비슷하다. 특히 홍천녀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는 마야와 아유미의 노력 과정은 속세를 초월하려는 구도 과정과도 같다. (* p 226, p 346, p 509 를 보시라. 치구사, 마야, 아유미의 연기는 종교만화나 다름없다. 미우치 스즈에 여사가 신흥종교교주로 나선 배경과 연상된다.) 종교적인 해석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독자들이 침을 꾹 삼키고 지켜보는 '마스미와 마야의 향후 운명'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눈치 빠르신 분은 마스미와 마야의 관계는 츠기카게 선생과 오자키 이치렌의 사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첫째로 남자가 여자를 적극 원조해주었다는 것, 둘째로 서로나이차가 많이 났다는 것, 셋째로 서로가 좋아하였으나 모두 순수하기에 마음을 숨기고 상대방에게 헌신한다는 것‥. 물론 이치렌과 치구사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홍천녀로 갈무리되어진다.
그런데 나만의 착각일까 ? 오자키 이치렌은 자살하기 전날에 치구사에게 얘기한다. "사람은 왜 환생하는 걸까 ?" - 나는 되물어보았다. 미우치 스즈에 여사 같은 완벽주의자가 저런 대사를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일까 ? 혹시‥ 우리의 하야미 마스미상은 즉, '오자키 이치렌'의 환생이 아닐까 ? 웃으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차근차근 따져보자. 13권에만 등장하는 이치렌의 대사만 나열해보자. "아직 어린애구나. 치즈." "이것은 다카오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분'이 다른 사랑." "난‥ 너보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나와 함께 있어도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 이 대사들은 마스미상의 그 말투와 흡사하지 않은가 ? 게다가 '극장주'라는 점, 그리고 어린 치구사를 여배우로 키워서 성장시킨다는 점‥. 외모만 약간 다르지 이치렌과 마스미는 거의 판박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이야기 중에서도 마스미는 이치렌이 자살한 뒤에 태어났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츠기카게가 홍천녀에서 은퇴한 뒤 27년이 지나고 나서 마야와 아유미가 후계자로 떠올랐을 때, 마스미의 나이는 31~32 정도다. 다시 말해 츠기카게의 은퇴 당시에는 5살 정도였다는 얘기이고, 이치렌 자살 뒤에 츠기카게 선생이 독립하여 홀로 홍천녀를 이끌어갔을 시기를 "4~5"년으로 잡는다면‥ 이치렌 사후에 마스미가 태어났다는 논리가 성립되어 환생설'은 유력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종교만화(!) 유리가면에서 여신 홍천녀를 탄생시킨 이치렌의 소원이 안 이뤄질리가 없다.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또다시 그대(*츠기카게)와 만나고 싶구나‥." - 이것이 이치렌이 자살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게다가 마스미가 이치렌의 환생이라는 가설을 인정하면 이야기의 해석은 쉬워진다. 어린 시절에 운명처럼 홍천녀와 조우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치렌을 파멸시켰던 하야미 에이스케의 '양자'로 들어가서 홍천녀를 '빼앗기로 작정하는' 것은, 환생의 필수원소인 '인과응보'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 마스미는 어느 누구보다도 홍천녀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한 인물이라는 점을 떠올려보시라. 치구사와 이치렌의 사건은 마야와 마스미의 관계에서 그대로 반복될 것 같다. 홍천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간의 사랑, 한번의 비극은 또 다른 비극으로 재현될까 ? 아니면 모든 갈등을 치유하고 행복으로 이끌리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까 ? 지금도 책장을 넘기면서 마스미가 이치렌의 환생이라고 굳게 확신하며 작가의 숨겨진 코드를 찾고 있다. 우유부단하고 순진한 것만 보아도 닮지 않았는가 :) [인상깊은구절] 결혼(結婚)이란, 사실은 결혼(結魂)이라고 써야하는게 아닐까 ? 영혼으로 맺어지는 상대‥. 마음이 하나가 되고 영혼이 맺어진다. 그리고 한몸이 되어 살아간다. -> * 츠기카게 치구사 선생님의 젊은 시절 명언(* 이 시절에는 최고 미녀였음 T_T) |
| 유리가면 애장판을 13권까지 읽었을 때, 나는 무심결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마야-종교인으로 살자. (두둥) 지금 내 머릿속에는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 섞여진 이미지들이 어떤 식으로 튀어나와야할지 망설이고 있다. 마치 마야가 자신의 피부와 심장을 통해 넘쳐날 듯한 감정을 어찌하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하는 것처럼, 지금 내 가슴 안에도 그런 하나의 길을 찾아 헤매는 무한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자자, 헷갈리든 아니든 일단은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아는 사람은 다아는 유리가면의 작가는, 이 작품의 끝도 내지 않은 채 신흥 종교를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온 이 작품의 후반부만 보아도 그녀가 종교인이 되었다는 것에는 반대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나로서는 이 작가가 [홍천녀]라는 궁극의 연극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달점이 결국 하나의 종교로 귀결되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종교야말로 결국 인간이 바라는 최상의 이상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라고 밖에. 마야라는 천부적인 연극의 재능을 타고난 인물에게서 작가는 무엇을 이끌어내려 한 것일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으로 화할 수 있는, 그것이야말로 천의 가면-인간이 아닌 신에 가까운 일체감이 아닐까 싶다. 이 유리 가면이라는 작품을 읽다보면 사람을 몰아붙이는 무언가가 있다. 극적으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시련과 시련, 그 시련을 이겨내면서 마야라는 인물은 점차 자신을 깨달아간다. 숨겨져 있던 힘을 수양과 역경 속에서 외면으로 펼쳐보이는 것이다. 그래, 여기서부터 이미 이 작가는 뭔가 도인으로서 경지를 보이고 있다. 옆에서 오빠군이 떠들어대는 것처럼-_-; 이 작품 안에 나오는 인물들은 연기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통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자신을 시련 속으로 던져 넣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종교인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시각을 깨달아가기 위해 산 속으로 은둔해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_-;;;;; 수양, 고찰, 탐색의 과정. 아아, 도대체 생각할 수록 이건 종교인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이런 면모는 마야와 아유미가 홍천녀를 연기하기 위한 시험에 들어가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가시화된다. 신내림을 받듯 일순간 기를 토해내는 마야(-_-) 물과 불과 바람과 땅을 연기하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연기하는 과정 속에는 어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수양이라고 보여진다. 홍천녀라는 연극 자체가 이미 신내림의 궁극점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 마야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내린 것도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본질적인 이해의 능력을 말하기 위해서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연 그대로 주어진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그힘을 이끌어내 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궁극의 점이라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읽다간 나까지 도 닦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하지만 유리 가면의 매력은 단지 이런 것만이 아니다. 하야미 마쓰미라는 거대한 카리스마의 캐릭터도 작품의 한 축이며, 그를 이해해가는 과정 또한 마야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 흥미 있는 것은 작품 내에 등장하는 연극. 기존의 것을 가져온 것도 있지만 작가가 창작해낸 것들도 섞여 있다고 한다. 이 연극 하나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유리 가면은 보는 동안에 전혀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홍천녀 라는 작품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 또한. |
| 드라마를 보다가 정말 연기를 못하는 연기자를 보면 그 연기자 한명으로 인해 다른 연기자까지 어색하게 보일 때가 있고, 아예 그 드라마를 안보는 경우도 있다. tv드라마는 몇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촬영할수 있지만 연극무대란 정말 단 한번의 기회이다. 대사가 틀려서도 안되고 연기가 서툴러서도 안된다. 정말 책의 제목처럼 유리가면을 쓰고 자신이 진짜 그 역할이 되어서 연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한 순간이라도 주춤했다가는 유리가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가면이 깨져버리지 않기 위해 마야처럼 노력한 연기자가 실제 있다면 보고싶다. |
| 정말 오래 전에 보았던 만화였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쯤... 지금 보니 그림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고 옛날 티가 물씬 나는데다 지금은 다들 사용하는 스크린톤 하나 없이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진 장면들... 그래도 펼쳐지는 얘기들이 갖는 흡입력은 남달랐었다. 정말 날 새는줄 모르고 얘기속에 푹 빠져들었었고 다음편은 언제 나오나 조바심하며 기다렸었다. 개인적으로 마야가 잃어버린 황야를 연기할 때와 지금 13권의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원수처럼 여기던 마스미 사장을 좋아하는 마음을 깨닫는 마야와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끌리는 마음을 어쩔수 없는 마스미 사장. 그와 더불어 최고의 목표였던 홍천녀를 연기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마야와 아유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천재소녀로 불리지만 마야에 대한 열등감에 흔들리는 아유미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고 객관적인 열세를 극복해나가는 마야의 모습에 흥분하게 되는...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정말 홍천녀라는 연극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공연될까, 상상의 즐거움과 놀라움을 만끽할 수 있다. 두개의 팀이 본격적으로 홍천녀를 준비하게 되고 마스미 사장에 대한 연모의 감정으로 괴로워하는 마야의 모습이 나올 다음권이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반드시 완결을 볼 수 있기를.... |
| 넬 베르디라는 프랑스의 동화 작가가 쓴 명작 동화라고 했었다. 나는 그 얘기를 곧이 곧대로 믿고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화책 세 권으로 압축해놓은 단순한 스토리보드를 원작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읽었다. 도서관에 없었기 때문에 서점에서 무려 4시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서서 세권을 읽고 주말마다 서점으로 책을 읽으러 갔던 초등학생때의 경험이 있다. 나중에 알게된 유리가면은 만화책이었다. 그것도 일본의 만화 순정만화. '일본 순정만화는 다 그렇고 그렇다' 라는 편견으로 앞에 있던 만화도 안 보던 내게 원작이었던 동화보다 더 자세한 그리고 더 감동적인 만화는 솔직히 충격이었다. 얼마전에야 일본문화의 개방에 자유롭지 않던 예전에 이 만화를 들여오기 위해 저 멀리 프랑스의 넬 베르디라는 있지도 않은 인물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엄마도 흑나비라는 해적판으로 읽었다는 이 만화는 이제서야 애장판 붐을 타고 보관용으로 안전하게(?) 출간되었다. 애장판이 아닌 문고판이 제본문제로 잘 흩어지는데 비해서 이 애장판은 그야말로 애장판이다. 유리가면의 팬이라면 집의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 법하다. 플롯은 간단하다. 천부적 재능은 있지만 환경이 안 되는 소녀와 엄청난 환경에서 노력으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소녀와의 대결. 하지만 그것이 연극이라는 특별한 소재와 결합하면서 내용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독자는 스토리에 빠지고 캐릭터에 빠지고 유리가면이라는 연극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들의 연극이 끝날때마다 박수를 치고 싶은 욕망이 들정도로 이 만화는 연극적이다. 많은 연기자들이 어렸을때 이 책을 읽고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나도 이 책때문에 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8년전의 그림이라 매우 고전적이고 식상한 전개 방식이지만 개성 넘치는 두 배우의 연기는 실제로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연극은 일회적 예술이라고 한다. 기록된 연극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선택하길. 볼 때마다 서로 다른 느낌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 순정만화의 오랜 고전중의 고전..그러나 연출력은 아직도 무척이나 뛰어난 작품.. 그리고 아직도 완결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작품... 천재적인 연기력을 갖춘 마야가 펼치는 연기의 세계를 알고 나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할 정도로 이 작품에 푹 빠져있었다.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엔 엄청난 해적판과 아류작들이 난무했고 정식판으로는 애장판으로 두껍 나올정도로 인기와 지지도를 자랑한다. 처음 너무 빠른 연출과 촌스러운 그림체로 눈을 돌릴지도 모르지만 곧 마야의 연기에 몰입하게 되어 이 작품의 매니아가 된다는 것을 장담한다. 요즘 다시 나오는 순정만화의 패러디풍의 분위기는 거의 이 작품에서 도래할 정도.. 특히 필살 눈알 비우기는 호러를 느끼게 할 도로 무섭다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