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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했다. 내게 요술지팡이가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행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텐데. 나는 나를 아껴줄 어떤 사람을 줄곧 원했다. 아이들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아이들을 이 세상에 데리고 왔단 말인가? 왜 그랬단 말인가?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면, 나를 그리워해줄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아이들은 반드시 일 년에 두 번 선물을 받아야 하고, 한 달에 한번은 새 옷을 입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젖은 침대에 재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때리는 부모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 부모도 자기 아이를 학대할 권리는 없다. 나는 언제나 행복을 갈망해 왔다. 날이면 날마다 행복하길 바란 것이 아니라 그저 가끔이라도 행복하길 원햇따. 행복이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분명히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제일 먼저 야뇨증 경보기를 치춰버릴 것이다. 그 다음엔 모든 음식을 냉장고나 찬장에 넣어두고 내 방엔 하나도 숨겨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음 문을 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디에 있었던 거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잠깐만 기다려줘. 당장 짐을 싸서 너와 함께 갈게"P327-328
책을 읽는 동안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어린 아이가 겪었을 당혹감과 절망과 고통에 나 조차도 몸서리 쳐졌다. 그 시초가 무엇이었는지 이렇게 큰 학대를 겪을 정도로 그 엄마를 자극했던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 많은 의문이 남긴한다.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정진적인 질환이 있었지 않을까라는 추측정도이다. 배경은 1960~70년 이기 떄문에 지금의 현실과는 조금은 틀린 부분이 있을것이고 또한 영국이라는 다른 문화권에서 일어난 일이기 떄문에 우리의 잣대를 드리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한 어머니가 자기 몸에서 낳은 아이를 이런식으로 대접한 다는 것은 내상식선에는 상상조차 안가는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안좋고 6-7살 무렵 야뇨증이 시작되어서 아마 12-13살 무렵까지 지속되었고 어느 순간 탈모도 진행되어서 대머리가 된다. 요런 정황만 보아도 이 아이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은 짐작 할 수 있게 된다.
면전에 대고 못생겼다고 하고 입은 타이어 같다고 말하며 갈보라고 놀린다. 밥을 안주는 것은 일쑤고 집안일을 시키고 나중에는 집세와 생활비를 내라고 한다. 13살에는 '클레어'를 두고 온집안 식구가 이사를 가버린다.
정말 믿겨지지 않는 구석들이 너무 많다.
의붓엄마도 이러지는 못할 것인데 고아처럼 자라나게 됏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 지 k선생님을 만나서 "이 세상에는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어, 클레어, 그걸 잊지마라.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어. 너는 멀리까지 나아갈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냥 가기만 하면 돼"라는 말로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클레어는 처세에 능하지 못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적극적인 성격탓에 매를 더 벌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부당한 처우와 의붓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거침없이 반론을 제기한것이 사이를 악화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이 아이를 두고 버릴 싸움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마지막 이 책이 나오고 70세의 노모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재판 끝에 승소를 하고 책은 무사히 나왔으니 어느정도 입증은 되었고 마지막 인터뷰에 "어머니는 절대로 용서못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절대로 용서를 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 같다. 그가 겪었던 일들을 되내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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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 책이 배송되어 앞부분만 잠깐 읽고 먼저 읽던 책 다 끝내려 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본명 '콘스탄스'도 모른체 '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소녀. 야뇨증이라는 병 때문에 엄마라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학대를 받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담담한 필체로 이 책에 들어있다. ![]()
더군다나 엄마라는 여자는 다른 사람의 자식까지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 자식도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다섯을, 새 남편과는 셋인지 넷을 낳았다. 저자도 책에서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가끔씩 말하지만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아마존 영국판에서 이 책의 리뷰를 보면 의외로 별 한개를 준 사람이 많이 있다. 별 한개 의견의 대부분은 역시 책의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한 아이만을 그렇게 학대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어린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고용주는 증빙을 요구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현금으로 급료를 지불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으며 (외국은 파트타임을 해도 통장으로 돈이 지급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최저 임금보다 돈을 덜주고 현금을 주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학교 선생이 학생을 자기 집에 데리고 있는다는 설정(?)도 웃기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기를 보니 영국에서 책이 발간된 후 클레어의 엄마가 책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며 딸과 출판사를 고소했단다. 물론 클레어의 승리로 재판은 끝이났고 클레어는 '절대로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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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는 그녀를 그렇게 혹독히 미워했을까? 부모와 자식 사이의 단순한 애증의 감정을 넘어 엄마는 그녀를 때리고, 저주를 퍼붓는다. 심지어 열서너 딸에게 생활비를 거두고, 집에 전기를 끊고, 대학 입학 서류를 찢어 허공에 날린다.
그러한 부모의 방기 다른 한편,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명랑한 소녀"를 돕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있다. 사랑받지 못한 오줌싸개 소녀 클레어 브리스코를 의붓아버지의 폭행에서 구원하는 것은 '사회보호국'이었고, 치료비 걱정 없이 가슴의 외상 종양을 제거해주는 병원이 있었고, 그녀의 주린 배를 그나마 채워주는 것은 학교의 무료 급식이었고, 어린 그녀에게 일을 주는 공공 병원이었다.
영국 최초로 흑인여성판사가 된 콘스턴스(클레어) 브리스코의 눈물 어린 자전적 스토리인 이 책을 읽다보니, 언젠가 봤던 이 글이 떠올랐다. 그 어린 소녀가 가졌던 '특별한 자존감'만으로는 자신의 생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좋은 세상이 그저 만들어지나요?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봉은사 <판전> 2008.2) 마포와 도곡동을 오가며 직업이 있는 딸들을 대신해 손자들의 청소 당번과 급식 당번을 하고 있는 내 친구는 하소연한다. 방과 후 교문 밖에서 손자들을 기다려야 하는 것까지 책임지려니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하는 방과 후 수업이나 축구, 수영, 원어민 과외 등을 하려면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밖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엄마들끼리 사교도 하고 정보도 교환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는 아이들은 그 그룹에 끼어주지 않고 따돌림을 당한다고 한다. 정말 그러냐고 강남 엄마의 전형 같은 이웃집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당연하지요. 누구는 직업 갖고 자아실현하고 싶은 마음 없겠어요? 이걸 선택하면 저걸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또 어느 학원을 보내고 어떤 과외를 시키고 어떤 나라로 연수를 가야 하느냐를 놓고 전략과 전술을 짜고 시간과 정력, 돈을 모두 쏟아 넣고 경쟁하는 마당에 남 돌볼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 딸도 그럼 직업을 가지면 안 되겠네 했더니, 무슨 말씀이냐고 아나운서나 변호사를 만들겠다며 “그때는 세상이 좀 좋아지지 않겠어요?”란다. 좋은 세상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은 좋은 세상으로 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당신 딸은 고생 좀 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부모의 관심과 책임, 경제력이 없다면,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우리 사회... 진짜 좋은 세상은 무엇일까?
참! 번역이 매끄러워, 읽기가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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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턴스 베벌리 브리스코. 그녀의 어린 시절은 남들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친아버지를 가위로 찌르고는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양부와 함께 사는 어머니. 게다가 자식은 9명이나 있지만, 늘 클레어라고 불리던 자신에게만은 못되게 구는 어머니. 솔직히 진정으로 친엄마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를 많이 의심했다. 설마.. 설마... 자식들 중에서도 유난히 되바라진 아이가 있는데, 되바라져서 말끝마다 반항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물론 저자의 입장에서만 씌여졌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카톨릭 신자이면서도 아이를 학대하고, 아이를 버려뒀으며, 버려둔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집에서 산다는 것만으로 집세까지 꼬박꼬박 받아갔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오자 사실이 아니라고 재판까지 걸었다. 엄마가.. 엄마가... 그럴 수가 있을까? 다른 자식들에게는 그러지 않으면서 유난히 한 자식에게만? 내 머리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브리스코에게 K선생님과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과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면 그런 환경에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사무실 청소일을 하고, 밤에는 환자도우미를 하고, 토요일에는 옷 가게에서 일을한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살아남는다. 포기하는 것 대신 억척같이 살아남는 것을 택한다. 결국 그녀는 꿈이었던 법정변호사 자격증을 손에 넣는다.
지금 힘들다고 내 자리에서 슬퍼하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면 꼭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깨달았다. 나도 다시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달려가야겠다.
275쪽 아니다. 나는 결심했다. 곧,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내 슬픔은 끝날 것이다.
299쪽 "그래야지, 얘야. 목표를 높이 세워야 하는 거야. 이 세상에는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어. 클레어, 이 말을 잊지 마라. 안야 코르힌스키에가 이 세상에 너를 가로막을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는 걸 말이다." "그게 누군데요, 선생님?" "너다, 클레어.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너는 멀리까지 나아갈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냥 가기만 하면 돼."
304쪽 "그 책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단다, 클레어.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 절대로. 네가 무엇을 원하든, 네가 원하기만 하면 너는 할 수 있어."
편집/구성에서 별이 네 개인 이유는... 17쪽 둘째 단락에서 [머리카락이 짧고 두꺼웠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머리카락은 굵은거지 두꺼운 것이 아니다. 이런 몇몇 맞춤법이 틀린 곳이 있기 때문에 별 한 개 감점이다. 모든 편집자들이 신경 써 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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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 앞니가 처음 흔들거려 엄마를 따라 치과에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의사 선생님은 전혀 자상하거나 친절한 분이 아니어서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고, 결국 이도 뽑지 못하고 쫓겨났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저 이를 뽑지 못하고 치과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엄마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으며 맞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때 일을 전혀 기억하시지 못하지만 나는 그 한 장면 한 장면까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일로 지금까지 내가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내 잘못이 아닌 상태에서 억울하게 혼났다는 점과 그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자존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엄마의 행동에 실망했고 때문에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부모들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많은 가정에서 그렇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아주고 보살필 의무가 있지만 이 의무는 때로는 권리가 되고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도, 하루에 수십 번씩 이 경계를 왔다갔다 하고는 한다. 내 기분에 따라 소리를 질렀다가 애정 표현을 했다가... 혼자서 반성하기도 하다가 다시 말대답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의 철학과 기준이 명확하므로(비록 그 기준이 부모와 맞지 않는다고 해도..) 아이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대체 클레어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불편하고 읽기가 힘들던지.... 너무나 일방적인 미움과 폭력 앞에 독자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원치 않던 임신? 몇 년이나 계속되는 야뇨증? 아니면 자신과 너무나 다르게 못생긴 얼굴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내 자식”이라는 이름 앞에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던가?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던데... 도대체 자신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어째서 그토록 밉고 미운 철천지원수가 된 것일까.
“그렇지만 선생님. 이 지상에서의 삶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고 아무 기쁨도 없다면요? 선생님은 천국이 즐거운 곳이라고 하셨잖아요? ”...90p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엄마에게 부정당한다면 어떤 아이가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면 왜 천국에 조금 일찍 도착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형제들 모두가 아닌, 자신 혼자만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그토록 많은 식구들 사이에서 어째서 외롭지 않겠는가 말이다. 학교에서의 생활이 더욱 행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아르바이트가 더욱 즐거운 클레어가 어떻게 그러한 생활 속에서 견뎌낼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클레어는 그만큼 강한 아이였다.
집에서는 당연하고, 학교 선생님들조차 큰 꿈을 갖는 클레어를 인정해주지 않는 생활 속에서도 클레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꿈을 착실히 밟아 나아간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진즉에 삶을 포기했을만한 상황에서도 클레어는 굳세고 꿋꿋하게 하나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견디고, 견디고... 견디면서.
“너다, 클레어.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너는 멀리까지 나아갈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냥 가기만 하면 돼.”...299p
클레어에게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을 이 한 마디. K 선생님의 이 격려는 클레어를 끝까지 버티게 하는 버팀목이 되고 꿈이 된다. 그리고 결국 콘스턴스라는 이름으로 그 꿈을 이루고야 만다.
“나는 생각했다. 내게 요술지팡이가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불행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텐데. 나는 나를 아껴줄 어떤 사람을 줄곧 원했다. 아이들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아이들을 이 세상에 데리고 왔단 말인가? 왜 그랬단 말인가?
...(중략) ...
나는 언제나 행복을 갈망해왔다. 날이면 날마다 행복하길 바란 것이 아니라 그저 가끔이라도 행복하길 원했다. 행복이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분명히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328p
원서의 부록에는 이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책의 출판 이후 어머니의 고소)이 적혀있다고 하는데 그 부분까지 번역되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콘스턴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냈지만 그녀의 인생을 읽은 독자로서는 그 후의 이야기도 역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역자후기에 소개된 그 간략한 결말 이야기를 읽고는 나도 생각해보았다. 나라면... 내가 클레어였다면 결국은 성공했고, 몇 십년이 흐른 후에라면 그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주 작은 기억의 단편도 잊지 못하고 그 감정에 인상을 찌푸리는 내가, 클레어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당신은, 당신이라면... 용서하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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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턴스 브리스코는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판사라 한다. 브리스코는 이 책에서 자신이 불행한 어린시절의 고난을 딛고 어떻게 꿈을 이루었는지를 쓰고 있다.
브리스코는 어머니로부터 정말 이 사람이 어머니일까하는 의심이 드는 갖가지 끔찍한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어머니와 별거 중인 브리스코의 아버지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일년에 한두번 방문을 해서 선물을 사 주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이다. 이 아버지의 행태도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브리스코는 학대로 인한 스트레스로 야뇨증에 걸리게 되는데 어머니는 그걸 빌미로 더욱 더 브리스코를 미워하며 젖은 이불과 잠옷을 다시 입고 쓰게 하거나, 이불을 빼앗가 가서 맨바닥에서 자게하기를 일삼고 친구가 왔을 때 일부러 브리스코의 야뇨증을 말하기도 한다.
이 악마같은 어머니는 요리, 빨래, 청소 등 온갖 집안일을 브리스코와 두 언니에게 떠 넘기면서 정부에서 받는 육아수당을 타기위해 브리스코의 양육은 결코 아버지에게 넘기지 않는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어머니의 행동은 거침없고 끊임없고 점점 심해진다. 정신병자가 아닐까 싶다.
브리스코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폭력과 따돌림은 어찌나 다양하고 가혹하고 끔찍한지, 읽는 내내 끔찍하고 속이 부글거렸다. 그 가지가지 방법들은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 생각 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크리스마스에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는 좋은 선물을 사 주면서 브리스코에겐 원래 브리스코 것이던 헌 인형을 다시 포장해 주거나 학교에 입학할 때 작은 구두를 억지로 늘려 신게 하는 장면은 기가 막힐 정도다.
심지어 이사를 가면서 브리스코와 언니들을 버리고 떠난 후 다시 찾아와 때때로 집 임대료와 전기요금, 가스요금을 요구하며 브리스코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다 가져가 버린다.
브리스코는 잠을 줄이면서 일을 해서 돈을 벌면서도 대학에 가서 법학을 공부하리라는 꿈을 꾸고, 악착같이 공부를 하고, 결국 법대에 입학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의 브리스코가 살 수 있도록 지지해 준 것은 불쌍한 어린 아이를 가엾게 여긴 이웃들과 선생님이고 부모 대신 브리스코를 키우고 가르치고 성공시킨 힘은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이다.
1960년~70년대에 이렇게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이었기에 브리스코같은 성공이 가능했으리라.
아침과 저녁 굶기를 밥먹 듯 하는 브리스코에게 학교 무료급식은 살아갈 힘이 된다. 늘 배가 고픈 무료급식 대상자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밥을 먹게 하는 것과 푸짐하고 맛있는 식단이 인상적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교복구입비까지 지원이 되고 아플 경우에는 미성년자 혼자서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수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의료보장이 되며 폭행을 당했을 때 고발하고 재판을 요구할 권리가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만일 브리스코가 우리나라에 태어나 이렇게 가족으로부터 학대받고 살았다면, 이렇게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며 혼자 힙으로 노력해서 법대에 갈 수 있을까? 왠지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하기가 어렵다.
브리스코는 대학입학이 결정된 후 어머니를 찾아가 "다시는 엄마하고 말을 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는. 내가 살아있는 한."이라 말한다. 얼마나 슬픈 장면인지....
다행히 브리스코는 지금 두 아이를 낳아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두 아이에게 훌륭한 어머니임에 틀림 없을 것이고 어릴 때 받지 못한 가족의 정을 아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 마음이 놓인다.
이 책이 출판된 후 어머니가 브리스코와 출판사를 비방죄로 고소했고, 그 소송에서 브리스코가 이겼다는 역자후기에 책 읽는 내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후련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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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콘스턴스 브리스코는.. 책에서는 "클레어"라고 불리는데..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판사로써.. 코스턴스 브리스코의 휴먼 스토리가 담긴 책이다..
제목에서 부터 어떤이야기가 펼쳐질지 아주 궁금해지는 책이다. 도대체 누구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걸까? 가족, 친구, 이웃??
너무나 충격적이게도 학대를 하는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이다.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고 떠올리면 희생, 무한한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를것이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책에서는 다르다
이책의 저자에게는 어머니란.. 우리가 생각하는 희생,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가 아닌 자신을 아주 괴롭히는 폭력자, 학대하는 사람..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존재이다..
책을 읽는내내.. 어쩜.. 이런엄마도 다 있을까하며.. 마음한켠에서 갑갑함과 안타까움등.. 여러감정이 속에서 부글부글..복합적으로 끓어오른다.
내가 이책의 주인공이였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너무나 소름이 끼치는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이책의 저자는 그 불행한 환경을 극복해서 결국은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 된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위안이 되었지만.. 지구 어느한곳에서는 아직 클레어와 같은 아이가 없다고 보장할수 없다.
아이를 낳아서 키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한다. 다시는 클레어와 같이 학대를 받는 아이가 없기를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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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이 심한 영국에서 최초로 흑인 판사가된 어느 여성의 학대받았던 유년시절을 엮은책. 어머니는 자메이카출신으로 영국으로 남편과 이민와 다섯 남매를 키우며 산다. 부모의 불화, 셋째인 주인공에게만 몹시 심하게 대하시던 엄마의 태도 그렇게 좋은 환경도 아니었고 늦게까지 야뇨증으로 놀림받고 고통받던 어느 흑인아이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다른아이들보다 훨씬 고통받고 자란건 안된 일이지만 그래도 특별한 머리가 있었으니 판사가되지 않았을까 무일푼으로 서울로 상경했지만 특별한 재능이 있었으니 현대그룹의 왕회장이 되지 않았을까 근데 나는 무얼까 아무재능도 없고 난 남들이 안 느낀 독특한 열등감을 느꼈다 내가 왜 생각이 이 모양인지 허허허... 어머니에게 무참한 학대를 받고 있던 어린 소녀에게 희망을 던져준 k선생님이다. 선생님과의 만남을 꼐기로 소녀는 자기 속에 있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믿게 된다. 어글리는 희망이 곧 용기이고 자존심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게 있는 희망을 토닥여 키워가는 것이, 그리고 다른 사람의 희망에 빛을 비춰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가르쳐주는 책이다. 예전에 나이키를 만드는 후진국어린이의 사진한장이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래도 주인공은 선진국에서 어느 정도의 제도권이 보장된 곳에서 심한 학대를 받고자랐지만 그보다 못한 이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느낌이 안와 닿았다. 내가 만약 주인공의 처지가 된다면 생을 비관했겠지만 주인공은 꿋꿋이 이겨낸다. 그런면에서는 나보단 나을지라도 무언가 오는 느낌은 적었다. 이글을 읽으면서 나는 학교다닐때 풍족하게 용돈을 받은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잘나간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식주정도는 걱정없이 살았었는데 우리반엔 보통 70명정도 그렇다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해주었을까 따뜻한 시선과 말한마디라도 건네어 보았을까 나는 전무했다. 이제라도 무얼할 수 있을까 나는 재벌이하는 대형마트는 안간다 필요하다면 도시빈민들이 운영하는 허름한 노점상에서 조금은 비쌀지라도 그곳에서 지갑을 연다. 내 용돈이 중학생들보다 적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선 도우며 살고싶다. 테레비젼을 보고 청계천7가에서 동물들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갔더니 밀렵한 다람쥐들도 있었고 나는 매년 한쌍씩 사서 산에다 방사한다. 장애인들이 고통스러워하는건 세상의 편견 중 자신들을 그냥 정상인 대하듯 대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라는걸 읽은적이 있다 장애인이라고 너무 배려해주면 오히려 자신을 열등하게 보는 시선을 느낀다고한다. 나는 이걸 신문에서 읽고 내가 마음으로 배려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따뜻한 마음을 보통사람들에게 주듯 그들에게 평범한 일상에서 하는것처럼 베푼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서 만족감을 얻는 느낌의 표정을 읽을때 나는 산정상에 오른 기분을 느낀다.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구나.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란 책을 읽고 어느 흑인소녀의 비참한 유년생활을 읽었다기보단 그걸 통해 내 곁에도 이런 사람들이 없나 살펴보고 내가 줄 수 있는한 많은것을 베풀어야하겠다는 생각을 조금더 구체적으로하게된 계기가 만들어진 것 같아 책 값을 낭비하진 않았구나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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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형사 25시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나오는 한편의 내용이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와 사는 딸을 엄마가 데려오게 되었고 그 딸을 식모처럼 일을 시키다가 갑자기 나빠진 형편 때문에 돈을 받고 딸을 술집에 판 이야기였다. 어떻게 친엄마가 자신의 딸을 그곳에 팔 수가 있는지 너무 무섭고 놀라웠는데 오늘 이 책은 나를 더 놀라게 하였다. 그 사건의 어머니보다도 더 심한 엄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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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클레어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다
" 이 세상에는 너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이 딱 한명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