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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제목이 끌려 책을 볼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지만 조금이나마 앤드류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음악산업이 폐허화된 상태에서 그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고, 그속에 속한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맨 마지막 후반부에 가서 음반뿐 아니라 같은 지적재산권분야인 출판관련 그의 강의에서도 위기와 거기에 대응하려는 모습은 안따깝지만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보면 인터넷 유저인 우리가 원숭이가 아니라 오히려 저자가 원숭이라고 말할 수있다. 음반산업이 처음 생겼을 때로 돌아가보자. 그것도 소위 서구의 클래식 음악계로 가보자. 공연장이 아니면 들을 수 없었던 그 고상하고 예술적인 음악을 싸구려 플라스틱에 담아서 팔리는것에 대해, 그당시 연주가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터이다. 연주는 똑같지만 재생의 수준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잡음과 소리의 대비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기술적 초보를 벗어나서도, 음악의 재생하는 기기의 수준이 떨어지면 연주 본래의 질적차이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결국 공연을 하는 음악가들은 그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아마도 저자처럼 원숭이 비스므레한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지금도 수백수억하는 앰프를 구성해서 본래 녹음된 음악을 듣는 매니아들에겐 라디오방송쯤으로 듣는 클래식은 원숭이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할것이다.
그러면 저자가 말하는 음반산업이 황폐화된 상황과 과거 공연중심이 라디오나 음반으로 옮겨지는 시대적 상황은 닮은꼴이다. 과거나 오늘의 저자는 똑같이 라디오청취자나 웹유저들을 원숭이쯤 되는 싸구려 소비문화의 대상(저자가 말하는 수용자)로 보았다. 그런 저자의 생각은 지극히 단순하고 한쪽에 치우쳐 있다. 즉 음악이나 도서를 전제로 한 전체가 아니라 음악산업이라는 공급자나 출판사같은 제작산업중심일뿐이다. 저자의 이같은 단순한 시각을 벗어난 대부분의 연구자(교수나 기타)들은 왜 그같은 현상에 광분하고 그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르겠는가 생각해보자. 그건 그들은 양쪽을 보는게 아니라 전체를 보려는 객관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원숭이는 수준의 차이로 비하한것이지만, 내가 말하는 원숭이는 하나뿐인 눈인 저자의 단순함을 가리킨다.
저자는 게다가 현제에 묶여 있는 사고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현대사회시스템의 연대가 얼마나 되었는지 따져보면 굳이 이백년이 채 되지않는다. 다시말해 오늘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마치 모든것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생각은 못배운것인지 아니면 아는걸 무시하는것인지 저자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막스나 다른 사회주의가 없으니 자본주의가 정의이고 최상인것처럼 구는 일부의 무식한 사람들과 같은 원숭이처럼 보인다.
역사를 보고, 그속에서 사회, 저자가 말하는 음악이나 도서를 본다면, 지식이 어떻게 제한되고 권력으로 이용되었는지에 대해 오히려 부끄러워해야한다. 궁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클래식음악이 일반서민에게까지 들려지는건 좋은것일뿐이나라, 그 서민(저자의 원숭이들)이 음악을 만들고 나눈는 것은 지식의 확장내지, 인간이 가지는 지적세계의 확장이라는 공감을 받는다.
저자는 오늘만 보고 오늘의 음악을 산업적인 부분만 보고서 웹유저들을 원숭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그런 긴 시각이 아니더라도 각개인은 인간이 가지는 본성 즉 타인에 대한 호기심, 자기자신을 타인에게 알리고싶음, 같은 주제로 대화하려는 본성에 기인한 웹상의 여러가지 모습(페이스북이든 뭐든)을 그동안 할수없었던 것들을 기술적 제약을 풀어주는 웹환경이 탄생시켰다. 그 질적 낮음으로 비판할게 아니라 오히려 그 자유로움에 대해 평가해야한다. 만약 저자가 음악산업의 쇠락이라는 자본의 관점이 아니라, 음악의 질적 하향 평준화에 대해 고민한다면 오히려 음반산업 이전으로 더 활성화된 공연장을 기대할수있는 기회가 생긴다고도 볼수있다. 저자는 자기분야에서 가질수있는 몫을 빼앗긴데 화를 내지만, 오히려 공연중심의 오프라인으로 자신의 치즈를 옮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않는다. 그게 오히려 자본의 이익, 자기투자의 성과를 거둘수있는 바람직한 생각이지, 자유로움을 막고 비판하는건 이책 한권을 팔고 강연료는 챙기는데는 도움이될런지 몰라도 우물안에 갇힌 자신의 모습을 떠벌리는것과 다를 바 없다
난 저자에게 오늘에 묶힌 시각, 특히 자본주의적 사고에 쩌들은 저자에게 보다 넓은 인문학적 독서와 문화인류학적인 지식을 찾아 책과 인터넷을 헤매라고 권한다.
저자는 파란피부를 가진 스머프들을 잡아먹으려는 가가멜이나 그 애완고양이인 아즈라엘처럼 보인다.
그렇지않다면 그대가 오히려 원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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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지만 나 자신은 인터넷을 그리 잘 쓰진 않는다. 흔한 블로그나 미니홈피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그저 왠지 나를 너무 노출시키는 것이 꺼림직한 이유였다. 가벼운 제목에 만화같은 표지를 가지고 있어 그냥 스칠뻔한 이 책을 무심코 들었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 억지스러운면도 없지 않은 것 같고 조금 과장된 면도 있는 것 같지만 우리 모두 집단지성을 새시대의 보배처럼 추앙하는 지금 홀연이 아니라고 말하는 한권의 책은 특별한 자기 주장도 없는 시대를 따라 재잘대는 그저그런 인터넷 국내서 가운데서 푸르르게 빛이날 정도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미네르바 사건 부터 최근에도 불거진 장관비하 동영상까지 어디까지가 자유의 범위에서 허락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웹상에서의 우리의 행동에 너무 관대해 진것은 아닌지 아니면 온라인의 특성상 오프에서의 가치관과 규범을 따를수 없는 것은 아닌지 어려운 숙제로 남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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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게제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세상. 유비쿼터스.....세상의 정보기반인 웹....2.0,,,,물리적인 RFID....이것은 편리하고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언제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어디서나 당신은 감시당하고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문학적 기반이 없는곳에서의 발전된 기술은 ...거대 자본에 유리한 감시체계로 전락할 수 밖에없을것이다. 과연 축복이 될 수 있을까...의문을 가져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