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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지느러미 내 곁에는 거센 물살을 힘겹게 가르는 작은 친구 물고기들이 있다. 그들은 물살을 따라 내려가다가 또는 거슬러 올라가다가 몸에 생채기가 나고 한쪽 지느러미가 잘려나갔다. 우린 모두 서로에게 실오라기 한 올만큼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없음을 나는 안다. 다만 이 말만은 할 수 있을 듯하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늠연하게 견뎌내는 이들의 지느러미에는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눈부심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찾아내는 일만이 이 혼돈의 세상을 사는 보람이라고. - 박찬순의《발해풍의 정원》중에서 - * 지느러미에 상처가 나는 것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거센 물살을 가르려고 정말이지 온 몸으로 몸부림을 치기 때문입니다. 움직이는 지느러미만 생채기가 납니다. 살아있는 지느러미만 상처가 납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곧 상처이고 사는 것이 곧 눈부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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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풍의 정원에 나와 있는 11편의 단편을 단숨에 다 읽었다. 소설의 배경이 된 서울,부산뿐아니라, 태국, 보르네오, 프라하, 장백산, 타슈켄트 등지를 등장인물과 함께 여행을 하며, 갖가지 다양한 직업과 그 직업에 관련된 상세한 지식을 덤으로 얻으면서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 책을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등장인물들은 거의가 별볼일없는 떠돌이 인생으로 소외된 불쌍한 군상들이다. 그들은 대개가 불륜관계로 만나 서로의 온기로 외로움을 위안받는다. 저자는 이들 불륜 관계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하기보다 오히려 이들의 외로움을 어머니같은 연민의 정을 가지고 다독거려준다. 저자가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때문에 이 소설속의 불륜이야기들은 독자에게 가슴 찡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 자칫 추잡한 소재로 전락할 수 있는 스토리를 진지하고 격조높은 품위를 지닌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의 기술이 놀랍다.
전편 소설의 종말은 거의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방불명되거나. 깡패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애인과의 재회를 포기하는 등 어둡게 끝난다. 절망적인 종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에게서 받은 멧세지는 부정적이지 않다. 아무리 보잘 것없는 존재일지라도 모든 사람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또 마땅히 사랑받아야한다는 작가의 측은지심이 전편에 따뜻하게 녹아있어서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괴롭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위로 받으며 꿎꿎이 벼뎌나가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해준다.
이 소설은 저자가 상상력과 글솜씨만으로 쉽게 써내린 글이 아니라 60여년이란 인생의 연륜을 통해서 역경과 고통을 인내하고 승화시켜 한땀한땀 수 놓듯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다. 30년간의 외화번역가로서 갈고 딲은 글솜씨가 빚어낸 간결한 문장은 군더더기가 하나없다. 소설 한편 한편을 위해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고 답사하고, 전문분야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작가의 성실한 창작자세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서가에 꽂아놓고 다시 읽어보고싶고 주위 친구들에도 추천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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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 한국소설의 현주소는 어디쯤 있을까? 그것보다 나에게 한국소설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접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본다. 소설이 나에게 멀어진 것보다 내가 소설에게서 멀어졌던 느낌이 든다. 비로소, 발해풍의 정원을 읽고 난 뒤, 그동안 한국소설을 차가운 가슴으로 접했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아닌 반성을 해본다. 여타 인기 있는 외국작가들에 대해서 나는 내가 스스로 뜨거운 가슴으로 그것들을 접했다.
박찬순의 소설에는 입안에서 살살 녹아드는 달콤함보다는, 심장을 팔닥거리게 하는 두근거림보다는, 서서히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와 온몸을 달구고, 후끈한 열기가 머릿속을 뚫고 지나가, 급기야는 서늘한 이성으로 녹아들어, 온전하게 그것이 나와의 삶에 다가온다.
요즘 반짝반쩍 윤이 나는 인기몰이의 소설보다 호흡을 고르고 낮은 고공을 쉼없이 날아가는 작가의 여백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삶이란 그저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발해풍의 정원을 읽고 진정한 나의 삶은 무엇이였던가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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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하늘 날리는 비단 천, 은행나무 밑 곱게 입은 한복을 입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여인. 하지만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는 넓은 초원. 이 책의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어쩌면 이 표지 그림과 책 옆면에 궁서체로 적혀있는 ‘발해풍의 정원’ 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난 이 책을 꼭 사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아마 발해 역사에 심취해 있던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이 수업 도중 종종 지으시던 슬픈 표정 때문일까,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모여 세운 나라라는 발해의 정체성에 끌렸기 때문일까. 무언가 아련한 느낌, 혹은 가슴 짠한 느낌이 나를 이 책을 사도록 이끌었던 것 같다. 이 책은 11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모음집이다. 각 단편의 주인공은 모두 제각각이다. 남편의 병상을 돌보는 여자, 가리봉동에서 양꼬치를 파는 청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돌보일러를 고치는 사내 등 모두들 다른 직업,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어떠한 감정이 존재한다. 정확히 무엇이라 정의를 내리지는 못하겠다. 한마디로 이 책을 논하고픈 마음에 다시금 읽어보아도 이 모든 사람들, 너무나도 많은 사랑과 증오 그리고 그리움을 다룬 11개의 작품을 하나로 정의를 할 수 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떨림, 아니 울림이 나를 자극했다. 아픔이 있어 희망이 있고 이 희망으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어느 소설가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다. 11개 단편 속 주인공들은 다들 무언가에 지쳐있다.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거나 혹은 고향, 잊어버린 꿈을 그리며 살아간다. 지쳐있는 의식 속에서도 다들 무언가를 꿈꾼다. 잃어버린 옛사랑과 다시금 딱 한번만 만나고픈 간절한 소망, 기필코 양꼬치를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당당한 요리사가 되고픈 마음, 병을 앓고 있는 그 사람이 다시 건강해지는 꿈. 이러한 희망들이 있어서 이 주인공들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지도 모르겠다. 또 고통을 견뎌내는데 있어 소중한 사람들이 주위를 지켜주기에, 희망을 가지고 꿈을 가지며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내 곁에는 거센 물살을 힘겹게 가르는 작은 친구 물고기들이 있다. 그들은 물살을 따라 내려가다가 또는 거슬러 올라가다가 몸에 생채기가 나고 한쪽 지느러미가 잘려나갔다. 우린 모두 서로에게 실오라기 한 올만큼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없음을 나는 안다. 다만 이 말만은 할 수 있을 듯하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늠연하게 견뎌내는 이들의 지느러미에는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눈부심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찾아내는 일만이 이 혼돈의 세상을 사는 보람이라고.
- 박찬순의《발해풍의 정원》중에서 -
내가 느낀 감정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작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줄 수 있음을 깨닫는 다면 조금 더 이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이 사람들의 소박한 목표이자 꿈을 이 책은 ‘발해풍의 정원’ 이라는 상징적이기도 하면서 실존하기도 하는 하나의 소재로 묶음으로서 더 큰 깨달음을 준다. 나라를 잃은 고구려 유민들이 30여년 간 만주땅을 떠돌다가 한마음 한 뜻으로 세운 나라 발해. 모두 제각가의 상황에 처해있지만 무언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이 책. 무언가 이 둘 사이를 관통하는 깊은 울림이 있다. 이 울림은 아마도 한민족이 가지는 두가지 정서. 즉 나눔의 정서와 한의 정사가 결함된 울림이 아닌가 한다. 나라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설움과 행복을 이루지 못한 채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떻게 보면 동일선상에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11개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누군가는 사랑을 찾지만 누군가는 사랑을 잃고, 누군가는 죽음으로 삶을 끝맺지만 누군가는 또 다른 희망으로 삶을 계속한다. 결말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 모든 사람들은 고통을 늠름하게 견디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의 지느러미에서 풍겨지는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눈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눈부심이 세상을 사는 보람이라고 표현한 소설 속 말처럼 고통을 인내하는 모습,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슬픔을 나누는 모습에서 나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내일보다 찬란하게 빛날 그 다음날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발해풍의 정원이 이 사람들 마음속에 실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우리의 인생은 비록 발해처럼 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더라도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책 속의 수많은 주인공들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내야 하는 삶이기에, 같이 이겨내야 하는 너무나도 힘겨운 삶이기에 그 속에서 ‘희망’ 이라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 희망이 우리로 하여금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우며 내가 바라는 꿈이 이루어진 발해풍의 정원으로 인도하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