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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측의 찬사, 심사위원들의 그럴듯한 상찬 그에 비하면 내용이 특별한 것은 없는듯 싶다 본격문학이라기보다는 <뉴웨이브문학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이즈음의 풍조인 팩션의 일종이라는게 맞다 우리 문학에 수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도입했다는 기대어린 평가에 들어맞으려면 좀 더 본격적인 수리철학적 대화와 성찰이 담겨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스토리도 처음 20여쪽을 읽으면 대강의 진행과정과 결말마저 뻔히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이다 작가가 나름의 시대상과 풍속을 연구한 일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문학적 성취라는 측면에서는 그리 큰 점수를 주기 어려워 보인다 다 읽고 난 후에 가슴속에 아련한 감정, 울림같은게 남는건 없다 시민단체를 이끌었다는 니코스의 갑작스런 권력에 대한 추구 그가 왜 그리 변질되는지에 대한 필연도 마땅치 않고 이리스톤과 히파소스의 추리 및 탐색도 너무 긴박하지 못하고 김빠진 맥주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디오도로스와 현자의 수학적 발견에 대한 나름의 긴장과 갈등이었을텐데...이를 좀 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구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권력에 대한 질타, 곡학아세하는 지식인의 허약함 등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바로 현자와 디오로로스와의 첨예한 대화를 통해 드러나야지 작가가 군데군데에서 해설식으로 보태서는 아니된다고 본다 우리 문학계의 고질적인 풍토...심사위원들의 구태의연한 칭찬의 말... ㅎㅎ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기대한 밥상에 김치와 간장 반찬이었는데 굳이 일말의 기대를 충족했다면 김치를 들기름에 볶은 정도랄까.....?? |
![]() "디오도로스의 죽음과 어떤 식으로 연관이 있는 그곳을 제발로 찾아가겠다는 건가. 그건 더욱 안될 일일세. 제발 마음을 돌리게. 죽은 사람을 위해 산사람이 다칠 수는 없는 일이야." 아리스톤의 손을 붙잡는 니코스의 눈빛이 간절했다. (P.52)
작년 이정명의 소설 <악의 추억>의 배경이 된 도시가 작가의 상상으로 창조된 가상의 공간이었고 등장인물이 외국인들이었기에 번역서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작품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번에 만난 이 책 <천년의 침묵>의 등장인물들도 이름이 그리 익숙하지 않은 고대인물들이고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크로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다보면 고대 역사 속의 한장면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책이다. 우리 저자가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저자의 상상력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처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접했을 때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게 했던 것도 이런 독특한 배경과 내용 때문이기도 했고,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의 심사위원단이 만장일치로 선정한 수상작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기대를 했던 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로마인이야기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책을 집자마자 바로 빠져들 수 있었다. 내용은 정말 독특하게도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직각삼각형 공식으로 알려진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피타고라스 학파에 얽힌 이야기이며 어느날 피타고라스의 수제자 디오도로스가 의문의 시체로 발견되면서 그의 동생 아리스톤과 피타고라스의 수제자 히파소스가 디오도로스의 죽음 뒤에 도사리고 있던 피타고라스의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피타고라스의 공식이 피타고라스가 발견해낸 것이 아니라는 전제로 꾸며진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는 독자라면 살인범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소설적이긴 하지만 살인사건의 배경에 누가있는지를 미리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은 구성이다. 그래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기대를 뒤집는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적인 요소를 기대하기 보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무리수'라는 수학적인 소재를 소설로 승화시킨 저자의 놀라운 상상력에 흠뻑 빠져보는 것만으로도 읽는 내내 즐겁기만한 책으로 보면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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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 오늘날 이탈리아반도 남단의 도시 크로톤과 피타고라스학파를 둘러싼 안팎에서 펼쳐지는 인간 욕망의 충돌들이 다양한 변주 속에 흐른다. 소설작품의 소재로서는 독특하다 할 수 있는‘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각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어린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풀어보았던 것이어서 이러한 소재에 어떤 신비로움과 상상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하고 내심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부한 예견은 내 열악한 상상력의 탓이었음이 바로 탄로가 나버린다. 그간의 철학사에서 흘금 엿보았던 피타고라스에 얽힌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풍부하고 사실감 넘치는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리스전역의 인재들이 몰려들고, 엘리트 귀족들의 필수 교육기관으로서 현자(賢者)인 피타고라스가 이끄는 폐쇄된 집단의 왠지 어둡고 투명치 않은 배경과 급하게 쫒기는 현자의 수제자, ‘디오도로스’의 다급한 행동이 이미 끔찍한 죽음을 암시한다. <다빈치 코드>의‘소니에르’가 죽음을 앞두고 다급하게 암호를 남기는 장면을 연상시키듯이...
석연찮은 시신으로 돌아온 형 디오도로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귀족의원직을 버리고 어려운 입시관문을 통과하여 현자의 학파로 진입하는‘아리스톤’의 형제애와 복수의 의지(意志), 여기에 사형‘히파소스’와의 의문의 죽음의 본질을 추적하는 과정은 명예와 부와 권력이라는 욕망과 관능적인 육체적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축으로 하여 흥미로움을 더한다.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보랏빛 아네모네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전경에서 알 수 없는 음모와 숨겨진 진실, 그리고 처연한 전설이 흐르리라는 걸 예상케 한다. 천년을 거슬러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라진 흙서판, 죽음을 감지한 형이 화급히 남긴 듯한 네 개의 직각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마름모꼴과 기호들, 결국 그 비밀인 “정수와 유한 소수, 또 순환하는 무한소수”이외의 “우주의 끝에 닿아 있는 수”, 또한 “아네모네 꽃 같은 수”이자, 이루어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다른 형상이리라.
그래서 이 신비의 수(이 수를 보면 아마 독자들은 활짝 미소 지을 것이다. 아~하~)에 대한 히파소스의 터득은 환희와 자긍심이라기보다는 권력과 불신, 그리고 죽음에 더 가깝다. 여기에 현자의 아내인 ‘테아노’의 디아도로스와의 떨림과 설렘조차 분간이 안 될 관능의 쾌락이나, ‘에우니케’와의 동성애에 탐닉하는 위선적인 피타고라스에서 ‘욕망을 기억하는 몸’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보게 되고, 궁극에는 권력의 쾌락이 가져온 두려움에 가려진 지적탐닉이 오히려 “영혼을 타락시키는 칼로”작동함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더해 지배 권력의 상징으로서 크로톤의 참주이자 귀족대표인‘킬론’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들의 무지가 착취의 수단이 되고 있음을 깨달은 시민들”즉 시민 권력을 이용하여 대항권력으로 성장한 지식권력인 현자학파를 처단하는 권모술수는 또 하나의 작품 축으로 넌지시 오늘의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로 작용하기도 하며, 또한 “신전과 관청, 학파건물이 화려해지고... 그러나 냄새나고 지저분한 저잣거리 뒷골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시민단체의 열성원이자 속물인‘니논’의 불만으로,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크로톤과 달리 시민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고 있지 않는 현실의 푸념은 작금의 불평등한 부의 흐름을 꼬집기도 한다.
피타고라스의 스승인‘페레키데스’가 운명하며“권력의 맛을 알면 누구든 시궁창같이 부패해. 학자라 해도....몸 파는 유녀와 다르지 않아...”라고 제자에게 남기는 유언 또한 어떠한 숭고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제어되지 않는 욕망의 끝이 도달하는 그 추함과 불행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괴물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하는 문장과 결합하여 순간 이 혼돈의 체제를 진중하게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친다는 전통적인 추리의 패턴을 지니고 있지만, 통속적인 재미에만 치우치지 않고, 이처럼 나름 예리한 현실 비판적 의식까지 수용하였으며, 게다가 피타고라스의 정리, 무리수(無理數) 등 신선한 수학적 소재의 발굴, 그리고 에로틱한 로맨스까지 곁들여진 진정 탄탄하고 치밀한 플롯으로 안정감을 더한 우리의 장르문학에서 쉬이 발견할 수 없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오며,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아쉬움과 감동이 그리고 뿌듯한 기운까지 느끼게 된다.‘뉴웨이브문학상’심사위원단 만장일치라는 광고문구가 전혀 과장되지 않은 수작임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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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는 순간 스케일에 놀라고, 한번 잡으면 밤을 새워 읽게 되는 소설!"이 맞는가?
"역사와 신화를 관통하는 매혹적인 상상력과 압도적인 서사!"를 묘사한 책인가?
"2010년 대한민국, 이제 우리도 이런 대형 소설을 가질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정리해 보면 한권으로 끝내기 아까운 작품이다. 테아노와 히파소스의 운명이 너무나 아쉽고 밋밋하다. 그 정도가 아주 비극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전적이지 않을까? 뭔가 더욱 짜릿하면서도 감각적 묘사가 기다려지고 사건전개가 있을거라는 기대가 부끄럽게 마무리해 버린다. 아리스톤과 다모의 관계설정이 왜이리 싱거운지... 이렇게 서둘러 끝내기에는 아리스톤의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에 걸맞지 않은 듯하다. 아리스톤의 아이를 낳은 다모가 줄거리의 곁가지라고 생각한 듯한데 심적 깊이를 표현해내는 또다른 소재꺼리가 될 수 있지않았을까?. 리넨 모포의 상징만으로 떠났다는 것은 독자에게 던지는 여운이라고하기엔 축약이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인간의 마음이 이상에서 탐욕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네 일상의 삶을 보는 착각에 빠진다. 지키고 싶은 것,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 많아지면서 현자의 눈은 한곳을 오래 바라볼 수 없는 눈이 되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남의 속내를 훑는 눈이 되었다. 손에 쥔 권력이 커질수록 무서운 것도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두려움 없는 눈이 무서웠다. 한때는 현자의 눈도 그랬으리라. (214쪽)
임종 직전의 스승은 현자에게 말한다. "자네 변했구먼. 세상과 세월이 자네를 변하게 한 건가? 지식은 그 자체로서 빛날 때 참된 진가가 발휘되는 거라네. 권력의 손을 잡은 지식에선 악취가 나기 마련이야...... 명심하게나. 권력의 맛을 알면 누구든 시궁창같이 부패해."(268쪽)
여기서 또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안티테제가 '현자'라면 테제는 누구일까? 디오도로스? 과연그럴까? 이 부분이 얼른 정리가 안되는 이유를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아마도 킬론의 캐릭터가 권력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함이 생각의 정리를 필요로 한다. 이 책에서 나의 마음을 흔드는 문장이면서,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 글이 아닐까 한다. "결국 히파소스가 얻은 것은 '무한'이라는 진리였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펜타그램처럼 수의 세계 또한 무한과 다르지 않았다. 그 무한은 어떤 순환과 획일성도 거부하는 또 다른 세계였다. 현자가 그토록 욕망하던 것도 어쩌면 그 무한성이 아니었을까. 유한한 인생에 불멸의 명성을 입혀 무한으로 존재하고 싶은 욕심이 그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이다." (259쪽)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욕망에 대한 속성을 수학적 감각으로 잘 풀어쓴 깨친자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탐욕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마음을 가지기 힘든 시대에 이 소설로 다시금 인간의 허영심과 권력의 그림자를 깨닫는다. 오랜만에 생각할만한 소설이 나왔다는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
사족 : 출판사에서 몇몇 그림부분은 컬러인쇄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하다. 물론 단가는 올라가겠지만 충분히 판매로 상쇄되었을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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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씨의 천 년의 침묵은 직각삼각형 공식으로 널리 알려진 '피타고라스 정리'에 얽힌 이야기로 1억원 고료 제 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이다. 생소한 상인 것 같아 검색해봤더니 제1회 수상작은 유광수씨의 진시황 프로젝트(백두대낮 세계 심장부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일어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얽힌 음모와 진시황 부활 프로젝트, 연쇄 살인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로 뤽베송, 아리엘 제이툰과 공동제작으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라고. 꺄아악 ~ 요것도 읽어보고 싶다 !!) 제2회 수상작은 검색해도 안나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당선작이 없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두말 않고 읽겠다 싶은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탄탄한 구성과 재미를 보장받는 유명한 상으로 거듭나길 !!
시체 하나가 발견된다. 매질을 당한 흔적은 물론 묵직한 금괴 네개를 몸이 지닌 상태로 형 디오도로스가 죽었다. 석학들도 넘기 힘든 관문을 이년이나 빨리 해치운 형. 휴가에서 복귀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기숙관에 있어야 할 형인데 무슨일일까? 매질의 상흔과 발목에 남은 밧줄, 그리고 금괴 네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학자 중의 학자로 가장 촉망받던 제자였던 형이 학파로부터 퇴출당한일부터 논리와 이성을 가진 자들이 이 사건을 단순히 자살로 보는것 등등 의심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다들 못들어가서 안달인 귀족회의를 사임하고 학파에 입문해 형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아리스톤' 학파 시험에 합격해 청강자로 지내면서 학파 생활의 제반 사항과 불문율을 숙지하는등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형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그의 하루는 초조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던 어느날 형의 절친 '히파소스'를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하게 변한다. 과연 그들은 디오도로스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
매번 일본소설만 읽다 간만에 한국소설을 읽게 되었고 더군다나 국내 최고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를 받은 작품이라길래 나름 기대감이 컸는데 역시 !! 그것이 피타고라스 정리에 관한 지식소설이면서도 미스터리적 요소도 한가득이라 다빈치코드 만만치않은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다. 수학선생님을 좋아해 조금 하는척 했던 공부 빼곤 수학과 담쌓은 나였기에 살짝 두려움을 안고 읽을수밖에 없었는데 읽으면서 그런 걱정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픈 현자의 그릇된 욕망은 물론이고 테아노의 금지된 사랑등 온전히 책 속 주인공들에 흠뻑 빠져 책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자네 변했구먼. 세상과 세월이 자네를 변하게 한 건가? 지식은 그 자체로서 빛날 때 참된 진가가 발휘되는 거라네. 권력의 손을 잡은 지식에선 악취가 나기 마련이야 . . . "명심하게나. 권력의 맛을 알면 누구든 시궁창같이 부패해. 학자라 해도 . . 몸 파는 유녀와 다르지 않아 . . ." <p.268>
모 방송국에서 출세만세라는 방송을 했는데 참 흥미진진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출세라는 말 그대로의 출세에 대해, 완장을 둘러싼 사나이들의 고군분투기는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는 출세에 대한 이야기, 두산 CEO 박용만 회장의 24시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쭈욱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는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비로소 현자의 행동이 현실사회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묘하게 공감가는 캐릭이란걸 알았다. 내가 그의 위치였다해도 나 역시 그랬을 것만 같았으니까 ~ 알고 이해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 묘하게 쓸쓸해지네 ~
한 권의 책이지만 어떤 이는 많은 것을 얻고 느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시간만 흘러 보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크로톤을 배경으로 피타고라스 정리를 둘러싼 음모와 암투를 그린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냉큼 지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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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정리 너무도 유명한 정리 왜? 교과서에 나오니까 [직각삼각형의 직각을 포함하는 두 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빗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 ] 바로 이거다. MBC 서프라이즈에서 피타고라스에 대해 나온 적이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아니라는 것. 그 당시에도 절대자와 그를 따르는 자 그리고 절대자의 횡포에 반항하는 자 사이에 갈등이 심했구나 하는 탄식이 들었다. 이 책은 어느정도 허구와 어느정도 진실을 잘 융합했다. 지식과 수를 갈구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좀 새롭지만 수학을 못한다고 읽히지 않는 건 아니다. 피타고라스라는 말은 한마디로 안 나오지만 현자가 그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제자의 발견을 빼앗는 현자. 지혜보다 권력을 지키려는 현자. 마치 외화 한편을 보듯 권력으로 치닫는 현자와 주변인물이 눈앞에서 숨쉬며 움직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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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으로서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우물에 빠뜨려 죽었다’는 한 줄의 글로 태어나게 된 이 소설은 실존 인물인 피타고라스와 히파소스,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권력자 킬론과의 갈등을 미스테리 형식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픽션이지만 정오각형인 팬타그램을 발견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당시 정삼각과 정사각형만 그릴줄 알았던 수학자들 사이에 엄청 큰 발견이었으며 정오각형의 대각선들로 이루어진 펜타그램은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가져온 황금비율 (1:1.618)을 정확히 보여준다.이 사실이 자랑스러운 피타고라스는 모임의 상징으로 정오각형을 사용했다. 그러나 당시 피타고라스 학파는 종교적인 비밀집회같은 성격도 가지고 있었고 계율에 대하여도 절대적인 신실과 자제,복종을 설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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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책읽기를 시작하면서 최고의 걸작을 만났다. 마치 번역본을 읽는듯한 완벽한 느낌과 동시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 물론 우리의 소설도 훌륭하다. 우리의 소설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보통 우리 작가가 외국에 대한 소재를 쓴다하더라도 상상력은 그것을 절반쯤은 접게 만들곤 했다.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작품의 배경을 상상하는데 제한을 두게 하거나 그 상상의 무대가 한국으로 그려지곤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천년의 침묵]은 완벽하리만큼 고대 그리스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현자 피타고라스의 이름은 회자되지 않는다. 그저 현자라고만 밝혀지며 그는 몇몇 단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문적으로는 많은 이들이 충성을 맹세할만큼 우월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수학사에서 피타고라스는 자주 불려지는 이름이다. 수학시간에 계산이 서투르거나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있어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들어보지 않은 이들은 없다. 여러 법칙들이 있지만 그 만든 이를 일일이 다 기억해놓지 못해도 단 한 사람, 피타고라스만큼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랬던 그가 학문에 대한 욕심이 앞서 사람을 죽였다니... 그것도 직접해한 것과 타인에게 사주하여 해한 것. 학문에 대한 탐구심이 지나쳤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의 검은 마음이 학문을 향한 푸른 마음과 합쳐졌다고 감히 말해도 좋을까.
현자가 머무는 곳에서 한순간에 음모의 도시로 타락해버린 크로톤. 학파라는 것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것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해하게 된 사실이었다. 보통 철학자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학파"라는 것들과 대면하지만 수학에서도 "학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 생소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형의 억울한 죽음을 쫓아 "학파"로 잠입한 아리스톤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긴 하지만 이 소설의 스케일은 단순한 살인사건의 범위를 넘어선다. 인간으로 살면서 권력과 명예욕 앞에서 우리의 자세에 대해 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의 화두가 자꾸만 떠올려지는 이유는 인간은 욕망앞에서 참 나약하다는 것을 발견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 속의 그 누구도 자신의 욕망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다. 애욕이든,명예욕이든, 물욕이든 간에...
인간이기에 그런 것인가보다. 인간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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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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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데 그동안은 일본 추리소설에 탐닉해 왔다. 기이한 소재,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많아서 유명한 작가와 OO 대상 수상작이라는 책들에 열광하면서 한국소설을 멀리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다시금 한국소설의 독자가 되어보리라 마음먹었다. 학창시절 우리가 외웠던 무수히 많은 공식들 중 피타고라스정리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공식이 파박!하고 튀어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난 긴가민가하면서 기억을 더듬어봐야 한다. (수학과는 담 쌓았었음을 스스로 인증하는 꼴...) 그런데 이 책은 소설이다. 팩션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려나? 아무튼 그 위대한 피타고라스가 역사에 길이 남길 수학공식을 발견하게 된 학문적 과정을 더듬는 일이 절대 아니라는걸 먼저 얘기하고 싶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어 작가가 머릿속에서만 그려놓았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드디어 독자들 앞에 내놓았을 뿐.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라는 배경, 히파소스나 디오도로스 같은 외국인들이 주인공이여서 혹시 외국소설인가? 라는 생각도 잠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신인 작가의 순수한 창작물이고, 그녀의 첫 작품은 분명 성공적이라고 보여진다. 짧은 소견이지만 소설의 재미는 물론 소재의 신선함, 대중성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멋진 작품이기에. 고대 그리스의 크로톤에는 현자라고 추앙받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학파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과 원칙 속에서 교육생들을 가르친다. 어느 날, 현자의 뛰어난 제자 중 한 명이었던 디오도로스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의 동생이 형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직접 현자의 제자가 되는데.... 그 와중에 또 다른 수제자이면서 디오도로스의 절친이었던 히파소스를 만나면서 점점 학파내에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가게 된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현자라고 추앙받는 학자일지라도 욕망과 야심을 숨기고 살아가는 한 인간이고 학문을 부단히 갈고 닦고자 하는 제자들의 마음 한 켠 역시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외에 개인적인 영달과 함께 권력에의 욕심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곳은 보이지 않는 비리와 암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결국 그곳 또한 학문이라는 높은 벽을 허상으로 세워둔 세상이었고 그 중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존경을 받는 현자가 버티고 있었음이다. 예전에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저자는 분자생물학 교수로써 자신의 분야를 이 책에서 알기 쉽게 풀어썼는데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 중 하나가 과학자들 사이에서의 시기와 질투를 토로하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연구원을 종처럼 부려먹는 권위있는 학자들부터 서로 경쟁관계를 팽팽히 유지하며 연구 분야가 같으면 부당하게 상대의 연구실적을 가로채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다며 학자들의 어두운 세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천 년의 침묵 역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빚어낸 비극적인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이제 나에게 피타코라스의 정리와 같은 수학공식이나 과학자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지식마저도 권력 앞에, 불순한 욕망 앞에 흔들리는 일이 역사 속에서 혹은 어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여전히 반복된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