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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아물지 않고 흉터로 남아 아픈 기억을 재생시키지 않더라도 생애 한 번도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다. 상처를 입은 곳이 몸이든 마음이든 간에. 정이현은 [너는 모른다]에서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담겨있지만 각자의 섬에 숨어 외로움을 견디는 가족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각자의 섬(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전쟁을 계기로 한 공간에 모인다. 간호사 해나, 잉글리시 페이션트(영국인 환자), 해나 아버지의 친구이자 스파이인 카라바지오, 젊은 인도인 공병 킵은 한때 수녀원이었으나 전쟁이 일어난 후엔 야전병원으로 사용된 빌라 산 지롤라모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들은 어떤 카테고리에 담길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나고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지만 해나와 영국인 환자는 지롤라모를 떠나지 않는다. 사막에 모든 것을 묻은, 화상과 부상으로 시체처럼 살아야 하는 영국인 환자와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부서진 해나에게 지롤라모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모르핀에 절은 가짜 팔다리를 가진 카라바지오는 영국인 환자를 싫어하지만 서서히 그에게 끌린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야하는 세상에 사는 인도인 공병 킵에게 삶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를 제거하는 일만큼 위험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몸과 마음엔 깊은 흉터가 남았다. 사람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해나에게 영국인 환자를 사랑하든, 혹은 카라바지오나 킵을 사랑하느냐는 별개로 그들은 함께 살았기에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들의 관계가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동명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소설은 세밀한 상황묘사와 현재형 시재로 인해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실존 인물,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 허구의 인물, 허구의 스토리,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다. 그리고 서서히 영국인 환자의 비밀이 밝혀진다. 마이클 온다치는 스리랑카 태생으로 영국과 캐나다, 미국에서 살다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국적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다양한 문화 경험이 소설에 녹아있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고 불확실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느리게 상처를 치유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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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는 “마이클 온다치”의 1992년 작품으로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재번역 되어 나온다는 소식에 무지 반가움을 느꼈다.
표지 또한 붉은 빛에 휩싸인 아름다운 여인이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있어 보여 눈에 더욱 띈다.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들어오게 된 20살의 간호사인 ‘해나’, 그리고 도둑이자 이중스파이 출신의 ‘해나’ 아버지 친구인 ‘데이비드 카라바지오’와 전쟁 중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지뢰를 제거하는 공병인 ‘킵’으로 불리는 인도인 ‘키르팔 싱’, 그리고 화상을 입은 ‘영국인 환자알마시’로서, 각자의 이야기들을 이끌어 간다.
전쟁 중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아야 했고, 다른 사람들과 더 안전한 곳으로 떠나야했지만 ‘영국인 환자’와 ‘해나’는 수도원에 남는다.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와 ‘킵’의 등장은 환자를 지켜보며 고요한 생활을 하는 ‘해나’에게 활기를 주게 된다. 보통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존 도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서는 ‘영국인 환자’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영국인 환자 ‘알마시’는 헝가리인으로 사막 탐험가였으며 이중 스파이였음이 ‘카라바지오’에 의해 알려진다. 작가가 시인이라서 그런지 시적인 느낌도 난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이 책이 마냥 술술 읽히고 넘어가는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가 다수이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서로 다른 환경과 과거를 지닌 사람들의 만남. 국적도 사는 곳도 달랐던 이들에게 전쟁이 없었다면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간호사, 환자, 연합군 스파이, 공병으로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의 장소인 빌라 산 지롤라모는 자신들의 상실이나 고통들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다. 전쟁으로 인하여 주인공들은 많은 것들을 잃고 살아야만 한다. 그 고통과 아픔은 전쟁이 끝나도 결코 지울 수 없는 큰 화상처럼 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면, 이 책 내내 등장하는 책이다. ‘알마시’가 화염 속에서도 가지고 나왔고 늘 가지고 다녔던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그 것인데, 자신이 사랑하고 늘 곁에 두고 싶은 책들이 있다는 것이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매독스’가 ‘알마시’와 헤어질 때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났지만 좋아하는 톨스토이 책만을 가지고 갔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서 ‘해나’가 누워있는 영국인 환자에게 읽어주는 <모히칸족의 최후>, ‘루드 야드 키플링’의 <킴>,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등도 어떠한 책인 지 궁금해진다.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서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아 꼭 읽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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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도 그 어떤 경계가 불분명해서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스푸마토기법의 모나리자를 만난 느낌이다. 화자는 조각조각 기억의 파편들을 엮어내고 있다.그래서 독자는 책에 몰입하기 어렵고 흐름을 놓치기도 하고 이야기의 단절감을 느낀다.그러면서도 고전처럼 은은하게 읽히는 책이다.암호처럼처럼 들리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인해서 뜻이 모호해지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그들의 사랑이야기.그래서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렵다.어린왕자의 이야기 속 사막과 같은 신비로운 느낌의 사막으로 우리는 서서히 끌려 들어간다.어린왕자와 장미같은 사랑과 우정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을 만나고 싶다면 좀 어려운 소설에 도전한다는 기분으로 읽어봐야한다.스토리 진행이 빠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지루하기 그지없을 것이다.그러나 잔잔한 감동을 원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전쟁보다 러브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있다.2차대전을 배경으로 아프리카의 사막에서부터 이탈리아의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그 공간적인 배경의 스케일이 크다.하지만 스토리의 진행상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의 경계는 허물어져버린다.
비행기의 추락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그의 신원조차 파악이 어려운 파일럿을 해나는 영국인 환자 (The English Patient)라고 부른다.간호사였던 해나는 종전후 모두 떠난 이탈리아의 한 수녀원건물에 영국인환자와 스스로 남겨진다.많은 부분 영국인 환자의 회상이 차지한다.
탐험가인 영국인 환자는 1930년 길프 케비르 고원의 대부분을 지도로 만들면서 제르주라고 하는 잃어버린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다.그는 제프리 클리프턴의 아내 캐서린과 사랑에 빠진다.그 사실을 알게된 남편의 비행으로 남편은 죽고 캐서린은 중상을 입지만 그가 구조를 요청하러 다녀온 사이에 그녀는 죽어있다.그가 가지고 있던 책 키플링의 <킴>과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의 일생과 캐서린의 사랑과의 운명같은 하는 묘한 관련성을 가지고 스토리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해나의 이야기.그녀는 캐나다출신으로 유럽전선으로 파견된 간호사다.해나 역시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를 가지고있다.그는 전쟁중 아이를 스스로 지웠고,아이의 아버지 역시 죽었다. 전쟁에서 홀로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아픔을 견디지 못한 그녀의 정신은 상처를 입었다.그녀의 영국인 환자에 대한 사랑은 플라토닉하고 박애주의자와 같은 사랑이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시크교도이지만 영국인 공병 킵.많은 부분 킵의 회상이 차지한다.그는 나라를 잃은 식민지 국민이며,정신적인 지도자를 잃었다.생사를 건 불발폭탄해체작업을 하면서 그와 해나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연합군 첩자였던 카라바지오는 적에게 잡혀 두 손을 잃고 붕대를 감고 있다.그래서 그는 모르핀에 의지하는 모르핀 중독자다.카라바지오는 그녀의 아버지의 친구로 그는 해나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많은 부분은 그의 회상이다.카라비지오는 영국인 환자의 정체를 밝히기위해 환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하여 환자의 이야기를 끌어낸다.그는 영국인인 환자가 헝가리인 첩자 알마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이런 부분들은 추리소설같은 매력이 있다.
꿈꾸듯 화려한 문장들은 러브스토리리를 더욱 애잔한 감동으로 이끌어간다.이국적인 지명들은 우리를 낯선 모험의 세계로 이끌어간다.다 읽고나서도 안개속에 갇혀있는 느낌이다.결코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듯 갑갑함,모호함 속에 나는 그대로 서 있다.사실과 허구가 혼재된 환상과 실재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어떤 선상에서 치유되지 않은 전쟁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있는 그들을 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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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연애할 때, 사랑하는 두 연인의 애절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는 광고에 영화를 보러갔다. 기대를 하고 갔지만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아주 잠깐, 영화를 보다 깜빡 졸았다. 그리고 번뜩 눈이 떴을 때 눈앞엔 황금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황금빛 바다는 드넓은 사막이었고 그 위를 작은 경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색의 기인 스카프. 갑작스런 상황에 이야기가 연결되진 않았지만 지금도 <잉글리시 페이션트>하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남자의 애절함과 함께.
그리고 십년이 훨씬 지난 얼마전 예전에 봤던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기다 세계3대 문학상 중의 하나라는 부커상까지 수상했던 작품이라니. 일부에 불과하지만 영화보다가 조는 바람에 필름(?)이 끊겼다는 얘길 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대체 어디야? 문제의 부분이 어느 대목인거지? 책장을 펼치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작소설은 영화와 달랐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영화가 원작소설과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영화는 심한 화상으로 죽어가는 영국인 환자인 알마시와 그를 보살피던 캐나다인 간호사 해나, 전직 도둑이면서 연합군 스파이로 활동한 카라바지오, 영국 부대에서 폭탄처리 전담이었단 인도인 공병 킵을 주요 등장인물로 해서 알마시와 그의 연인이었던 캐서린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소설은 영화에 비해 초점을 좀 더 확대한다. 2차 대전이 거의 끝날 무렵의 이탈리아 북부, 폭격으로 인해 반쯤 초토화된 빌라 산 지롤라모를 배경으로 알마시와 해나, 카라바지오, 킵 모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알마시, 해나, 카라바지오, 킵은 국적이나 직업이 서로 달랐지만 큰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저마다 뭔가를 잃었다는 것. 사랑을 잃고 가족을 잃고 몸의 일부를 잃고 전쟁을 겪으면서 모두 황폐해진 마음을 쓸어안고 그로 인한 상처로 고통 받고 있었다. 저자는 그런 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는다. 그들이 머문 곳 주변엔 온통 철수하던 독일군의 지뢰를 설치해두고서.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처음엔 서로가 경계하며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서서히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영화에서 다뤄졌던 내용은 바로 알마시가 해나와 카라바지오, 킵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다. 영화를 먼저 접해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생각처럼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줄곧 이름도 없이 ‘그’와 ‘그녀’이던 소설이 45쪽 카라바지오가 해나를 찾아오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한 사람으로 고정되지 않고 알마시와 해나, 카라바지오, 킵이 왔다갔다 해서 혼란스러웠다. 때문에 중반까지는 읽었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되짚어오기도 했지만 네 사람의 서술로 접하게 되는 각자의 전쟁과 고뇌, 사랑, 삶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의문을 던졌다.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남편이 표지를 보더니 예전에 봤던 그 영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대뜸 “음, 이 영화 좋았지.”라며 ‘집에 있는 DVD로 다시 봐야겠다’는 말을 했다. 헛, 집에 이 영화의 DVD가 있었던가? 그걸 왜 난 깜빡 잊은 걸까. <잉글리시 페이션트>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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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이탈리아 북부의 빌라 산 지롤라모. 한때 고풍스러운 수도원이었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독일군에게 점령됐다가 연합군의 야전병원으로 쓰인 곳. 폭탄이 곳곳에 떨어져 지붕과 벽을 허물고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온통 지뢰를 묻어둔 전쟁의 폐허. 전쟁은 땅에만 포화를 퍼부어대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 휘말린 역사 속의 개인도 갈가리 찢겨 영혼 깊숙이 비극을 지뢰처럼 품게 된다. 전쟁으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신은 전쟁조차 자연의 무성한 초록빛으로 포근하게 덮어 전쟁으로 단절된 삶을 계속 이어가도록 다독이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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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1996)를 본지 벌써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먼지바람이 휘날리는 사막의 한가운데로 특히 캐서린과 그녀의 남편 제프리의 등장에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하는 주인공 알마시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이야기에 매료되어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아쉬웠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시상식에서도 사회를 보았던 빌리 크리스탈의 첫등장도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할 정도로 각 부문을 휩쓸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영화는 영화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그 기억조차 희미하게 된 지금 <잉글리시 페이션트>(2010.1)는 드문 드문 기억나는 장면과 이야기의 전개를 끼워맞춰가면 읽는 재미에 내가 가장 사랑한 장면 중 줄리엣 비노쉬(해나역)을 위해 궁륭안에 그려진 벽화를 보여주기 위해 그녀의 몸에 감은 밧줄을 당겼던 공병 킵의 사랑표현이 감동적이었는데 원작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영화와는 달리 장면 장면을 글로 표현한 작가의 조각하는 듯한 묘사를 읽다보니 처음에는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글의 후반으로 갈수록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캐서린과 알마시 그들만의 사랑을 기억하는 부분부터는 매듭이 풀리듯 순식간에 넘어간다.
빌라 산 지롤라모에 모인 네 사람의 국적이 모두 다르다. 해나, 카르바지오, 알마시, 킵까지 하지만 그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한 것은 전쟁때문이다.
이미 전쟁은 끝나지만 그들만의 마음속의 전쟁이 남긴 상처로 인해 그들만의 전쟁은 진행중이다. 끊임없이 화상환자를 의심하는 엄지손가락을 잃고 모르핀 중독에 빠진 카르바지오, 아버지의 죽음과 사신의 아이를 지우고 죽음을 끊임없이 지켜봐야 했던 간호사 해나,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가진 화상환자 알마시, 조국을 지배한 편에 서서 전쟁에 참가해야 했던 공병 킵까지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사막에서 바람과 함께 모래가 그 흔적은 묻어버리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이 있는 여인을 사랑한 알마시, 그의 눈 앞에서 죽어간 캐서린을 마지막까지 살리기 위해 마지막 희망이었던 숨겨둔 비행기가 있었음에도 비행기에 넣을 기름이 없어 사막을 걸어갔을 모습이 연상하니 더 안타까웠다.
퇴각하면서 독일군이 숨겨둔 지뢰를 제거하는 킵의 조심스럽고 또 한순간의 실수로 생사가 엇갈릴 수 있는 지뢰해체하는 부문을 읽을 때면 저절로 숨을 멈추게 된다.
p 339 어떻게 나를 증오할 수 있었죠? 그녀는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내 안의 거의 모든 것으 죽여버렸어요. 캐서린... 당신은 그러지 않..... 날 안아줘요. 자기 변명은 그만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바뀌지 않아요.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감동은 원작을 꼭 읽어야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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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힘든 책이었다. 문장이 이상했다. 잘 썼지만 우리나라 문장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내용을 반듯하게 담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것저것 결합해서 써놔서 한 번에 술술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뇌가 꼬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쟁과 사랑, 만남과 상실, 상처와 치유, 전쟁 중인 유럽에서 이탈리아 외딴 한적한 곳에 따로 떨어져 있는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여자의 이름은 해나. 여자는 한 남자 환자를 간호하고 있다. 여자는 간호사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여자는 남자를 영국인으로 알고 있다. 이곳은 이탈리아의 한적한 곳에 있는 허름한 수도원 건물이다. 여자는 정원을 돌보고, 물을 길고, 책을 읽는다. 영국인 환자는 까맣게 탔다.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다. 침대에 누워있다. 그는 곧 죽을 것이다. 여자는 자두 껍질을 벗겨서 씨를 빼고 과육을 남자 입에 넣어준다. 남자는 사막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여자는 환자와 함께 스스로 갇힌 생활을 하고 있다. 책은 그녀의 생활 중 절반을 차지한다. 다른 부대원들은 모두 남쪽으로 이동했으나, 그녀는 이제 남의 명령은 받지 않기로 했다. 영국인 환자만을 간호하기 위해 이곳에 남기로 한 것이다. 한 남자가 찾아온다. 여자가 어릴 때 삼촌이라 불렀던, 아버지의 친구. 이름은 카라바지오. 남자는 두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엄지손가락이 모두 잘렸다. 그는 전직 도둑으로 연합군의 스파이였는데, 독일군에 잡혔다가 죽을 위기를 넘긴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제 배짱을 다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남자는 해나가 책만 읽고 있는 상황을 보고는 슬픔에 빠져있음을 안다. 남자는 영국인 환자 간호는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영국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해나는 까맣게 탄 영국인에게서 연민을 느낀다. 카라바지오는 모르핀에 중독되어 있다. 해나가 가지고 있는 모르핀을 자신의 몸에 넣는다. 남자는 과거 이야기 속으로 빠진다. 해나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사고. 해나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화상을 입고는 혼자서 쓸쓸히 비둘기 집에서 죽고 말았다. 비 오는 날 공병단에서 병사가 찾아온다. 남자는 시크인으로 인도에서 자랐다. 그의 임무는 폭발물 제거다. 공병은 이곳에 머무른다. 공병은 자신의 상관들과 그동안 자신의 해온 임무에 대해 말한다. 그동안 많은 사상자가 있었다. 아직도 제거하지 못해 땅에 박혀있는 수많은 지뢰들이 있다. 공병은 영국인을 좋게 보지 않는다. 영국은 인도를 지배한 국가이고, 전쟁을 이끌어가는 나라 중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전쟁에 질력이 난 것이다. 공병은 해나와 사랑을 나눈다. 누워있던 영국인 환자가 입을 열고 천천히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영국인은 사막에서 지도 제작을 하고 있었다. 부귀한 친구 제프리 클리프턴이 결혼을 한다며 신부와 함께 사막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왔다. 순간 영국인은 그의 신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으로 매력적인 여자였다. 변화를 꿈꾸는 둘은 몰래 사랑을 했다. 그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남편인 클리프턴이 눈치를 채고는 영국인 앞에서 비행기를 몰고 땅으로 추락했다. 아내와 함께 자살한 것이다. 남편은 죽고, 캐서린은 살았지만 많이 다쳤다. 영국인은 여자를 살리기 위해 구조요청을 하러 떠났다가 사막의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간신히 신분을 증명하고 돌아오지만 여자는 편지를 써놓고 죽어있다. 슬픔에 빠진 영국인은 비행기 사고가 나서 추락하고, 사막의 베어인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클리프턴은 연합군의 탐사요원이었는데, 영국인이 불륜을 저지르자, 연합군에서는 그를 감시했다. 그리고 그는 사실 영국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무전기로 듣는다. 공병은 화가 난다. 원폭의 위력으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들. 원폭 같은 위험한 무기는 항상 갈색피부 사람들에게 사용된다. 같은 아시아에 대한 연민이다. 공병은 영국인 환자에게 라이플을 겨눈다.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죽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다. 그와 함께 자신이 왜 이제껏 그들 아래에서 군인으로 고생하며 일 해 왔는지에 대한 후회다. 군인 모집 속임수에 당했다는 생각. 집에서는 그가 의사가 되길 원했지만, 그는 군인을 선택했다. 연합군이라는 정의로움의 대한 의무감. 해나도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친구는 그녀가 함께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칭찬한다. 의지 있는 결단이며, 자신들과는 다르게 속지 않았다는 것. 이제 그 누구의 개 같은 노릇을 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찾아 옳은 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공병은 천막을 회수하고 모터사이클에 해나를 태우고 그곳을 떠난다. 집으로 돌아간 공병은 의사가 된다. 아이들도 있다. 아내는 잘 웃는 여자다. 그는 행복하다. 해나를 생각한다. 해나는 34살인데,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의 맑은 눈이 떠오른다. 그녀는 진지하다. 해나는 언제나 무모한 사랑을 하고, 운이 없고, 명예를 중시하는 영리한 여자다. 전쟁 속에서 피어난 가슴 아픈 사랑을 간직한 영국인 환자. 그러나 그는 영국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다. 그를 돌보는 박애심 많은 여성 해나. 해나는 아버지가 화상으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고 있다가 그 환자를 본 것이다. 해나는 영국인 환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와 함께 남았다. 전쟁으로부터 동떨어지기로 한 것이다. 그녀를 찾아오는 또 한명의 상처 입은 카라바지오. 그는 도둑이었고 연합군 스파이였지만, 손가락을 잃고 배짱을 잃었다. 해나를 향한 사랑도 느끼지만 도를 넘지 않는다. 모르핀에 중독된 그는 계속해서 모르핀을 넣고 과거를 회상한다. 이야기 하면서 그는 점점 치유된다. 공병이 온다. 그는 인도사람이다. 공병으로 전투에서의 임무, 존경하던 상관의 죽음. 그도 상처받은 영혼이다. 소년 같은 남자다. 전쟁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것이 적군이든 연합군이든 간에 말이다. 전쟁을 주도하는 자들에게 속았다는 생각. 그래서 전쟁으로부터 이탈한 자들. 평온과 안식, 박애에 대한 희구. 상처받은 사람에 대한 연민과 동정. 전쟁에 대한 낭만적인 비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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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하면 알마시가 죽은 캐서린을 안고 동굴에서 나오는 장면이 기억에 나요. 그때 흐르던 음악과 배경이 너무나 애절하고 가슴아픈지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랍니다. 그만큼 영화는 제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올해의 100번째 책으로 선택하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것 외에도 제게는 인연이 깊은 책인데,
이번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끝까지 다 읽어야지 했는데, 성공했습니다. 책은 영화와 좀 달랐어요. 영화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자꾸 영화와 소설을 겹쳐 읽으려는 제 마음 때문에 책이 조금 덜 눈에 들어왔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은 영화와 달리 또 다른 미묘한 심리가 잘 나타난것 같습니다.
특히 킴과 해나의 사랑은 책과 영화가 많이 달랐는데, 책은 좀 더 강대국에 대한 약자의 심정을 더 많이 표현되었어요. 영화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영국과 인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인도인들이 영국의 전쟁에 참전하면서 가장 위험한 일에 앞장서야하며, 참전하지 않으면 감옥에 갔다는 사실은 책을 통해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전쟁 중 사막을 탐사하는 사람들은 국경까지 초월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개인의 생각이고, 국가적인 문제로 인해 결국 친구를 적으로 둘수 밖에 없었던 매독스는 친구에게 향할 총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책은 사랑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상, 제국주의등의 미묘한 정치적인 문제도 함께 다루었다면, 영화는 사랑에 더 많이 초점을 두었던것 같습니다. 감독은 원작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는데, 저는 작가보다 영화감독의 시선이 더 만족스러웠던것 같습니다.
아, 영화를 보면서 캐서린이 알마시와 헤어질때 멍청하게 봉과 부딪하는 장면은 무척 생뚱맞다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 장면이 캐서린의 심정을 잘 표현한 중요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래서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하는것 같습니다.^^
암튼, 책도 재미있게 잘 읽었지만, 제게 영화가 더 인상적이었던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막의 아름다움을 책을 읽고 상상만으로 그려내기란 힘들었을텐데, 영화는 시각과 청각 모두 잘 담아서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을 더 애절하게 전달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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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라고 하면 모두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동명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나도 그의 영화 중 몇몇 장면만 아련히 기억에 남고 전체 내용이 도대체 기억나지 않아 이 책을 보았다. 그러니까 영화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였다기 보단 그 영화의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단 이유 때문에 본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을 얻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함 속에 파묻혀, 아니 이 소설의 표현대로 하면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는 모양새로, 그 느낌으로 읽어내려 갔는데 그 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찾아낼 수 있었던 까닭이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렇게다 복잡다단한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도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영화로 각색하는 작업이 아주 매혹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작품이었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나 같은 일반인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어렴풋이 기억나는 영화의 줄거리는 오로지 ‘영국인 환자’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생각나는데 이 소설의 매혹적이면서도 복잡하게 하는 요소를 다 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오로지 ‘영국인 환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말이다.
등장인물은 총 넷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 되는 ‘영국인 환자’ 알마시와 새카맣게 타버린 그 ‘영국인 환자’를 간호하겠다고 남은 여간호사 해나, 그리고 그녀의 소식을 듣고 돌아온 삼촌뻘 되는 아저씨이자 명도둑이자 스파이였던 카라바이오, 마지막으로 그들이 머물고있는 이탈리아에 남아있는 지뢰를 제거하러온 공병 키르팔 싱 혹은 킵,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이 네 명의 등장인물 중 누가 화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처음에 해나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카라바지오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는 ‘영국인 환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진행되니 소설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과묵한 킵도 나중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분을 잃어버린 사건에 대해 담담하게 해설해주는 것을 보면 이 등장인물 넷이 모조리 화자이자 청자가 아닐까. 그러는 와중에도 루디야드 키플링의 『킴』과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중간 중간 삽입이 되다보니 이 어찌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이 기묘한 네 일행은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소속되어 있는 국가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 사실은 적국의 스파이끼리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묘한 시간을 지내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고,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그런 신비한 경험이 일어나 버렸다. 그랬기에 마지막 즈음에 그렇게도 과묵하던 킵이 분노하며 총부리를 ‘영국인 환자’에게 겨누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도 사실은 서로를 인정하고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키플링의 『킴』은 한 번도 읽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작품이다. 티베트의 라마승과 아일랜드계 혼혈 소년 킴이 라호르에서 히말라야에 이르는 인도의 북서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스승님에게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라는데, 여기에서 티베트의 라마승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영국인 환자’이고, 그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은 바로 킵이었기에 아마도 그런 뿌리깊은 불신을 보여주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이후론 이야기가 획획 넘어가버려서 마지막까지 다들 죽지 않고( ‘영국인 환자’는 모르겠지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쉬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각자가 전쟁 속에서 크나큰 아픔과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연 중에서 가장 으뜸이 아련한 사랑이야기인 ‘영국인 환자’의 캐서린 이야기일 것이었다. 불륜을 끝낸 1년 뒤에 뒤늦게 그 사연을 알게 된 남편의 분노로 동반자살을 하고자 사막으로 떨어지게 된 세 사람. 남편은 즉사하고 캐서린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출혈이 있어 동굴 안에 감춰놓고 사람을 부르러 갔다가 그만 스파이로 오인받은 이야기. 그리고 나서 겨우 3년 만에 다시 캐서린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 ‘영국인 환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에 드러나는 그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정말 눈물겹다. 모래가 휘몰아치는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지금에서야 기억나는데 그들의 바로 그들이었구나. 그런 아련한 사랑이야기를 새카맣게 몸이 다 타버린 상태에서 담담히 읊조리는 것을 보노라면 어느 누가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역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더니 캐서린과 알마시의 사랑도 감동적이다. 죽어가는 그녀가 죽을 것을 알면서 끌려가야 했던 알마시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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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색채, 상실감으로 가득찬 여자의 눈빛. 표지만으로도 깊은 슬픔이 전해진다. 이미 1997년 아카데미 9개 부분을 수상한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소설은 아주 천천히 속내를 드러냈다. 소설은 내게 집중을 요구했다.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네 명의 이야기다. 수도원에 사막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화상을 입은 영국인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 ‘해나’가 있었다. 그녀를 찾아온 ‘카라바지오’는 죽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첩자이자 도둑이었고, 그곳에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공병 ‘킵’이 찾아온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화상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해나에게 사막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를 영국인이라 굳게 믿고 있는 해나에게 카라바지오는 그가 영국인이 아닐 꺼라 주장한다. 전기가 끊긴 수도원은 그들에게 안식처와 같았다. 카라바지오가 구해오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때로 춤을 추며,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완전하게 변화하였고, 전쟁이 끝난다 해도 그들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전쟁으로 해나는 그녀 자신과 아버지를 빼앗겼다. 절망과 상실감으로 해나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거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읽는 동안 몇 몇 문장은 머리 속으로 장면을 그려본다. 어둠이 가득한 수도원, 희미한 촛불에 의지하여 영국인 환자 머리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해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한 여자와 사막을 이야기하는 남자. 가족과 형제를 떠나 낯선 나라의 공병이 된 청년 킵, 첩자 활동 중에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해나와 킵은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처절하며, 강렬하다. 사랑은 참으로 작아서 바늘귀도 들어갈 수 있다(p381)는 글처럼.
소설은 잔잔한 음률이었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들의 앞 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쟁으로 인한 상실은 치유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의 끝에는 여전하게 삶이 있었다. 의사가 되었고, 가정을 이룬 킵이 해나를 떠올리는 장면은 영화의 엔딩이었을까?
이제는 식사 시간에 그녀와 다시 이야기하고 그들이 천막 안에서나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그 단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요동치는 강같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던 두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를 회상하자 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소년답고 진지한 사람. 나긋나긋한 팔은 그가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를 향해 허공으로 뻗는다. 젖은 장화는 끈을 한데 묶어 이탈리아의 문가 옆에 서 있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대 위에는 엎드린 인물 형상이 있다.p 3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