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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함축적인 구절 속에 담긴 의미를 찾기는 힘들었지만 4박 5일 동안 승보 종찰 송광사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수행에 들어갔다.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 선풍기 한 대도 돌리지 않는 공간에 80여명이 함께 열을 지어 생활하는 규칙적인 일상은 세속적 욕망을 내려놓고 인욕(忍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첫새벽부터 일어나 한 줄로 늘어서 대웅전으로 향해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행하며 업장을 녹이는 일상으로 하루를 열었다. 스님들처럼 발우 공양을 하면서는 그동안 입에 단 음식을 탐닉하여 배불리 먹으며 지냈던 시간이 자꾸만 떠올라 괴란쩍기만 했다. 먹을 양을 덜어 음식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먹어 설거지를 따로 하지 않으며 지냈던 시간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음식이 주는 행복에 잠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큰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며 삼독(三毒)에 빠져 지냈던 자신을 반성하고, 참선하는 시간에는 화두를 들어 무아(無我)의 세계로 향하며 색다른 경험으로 빠져들어 갔다. 저녁 예불을 보기 전 사물을 치는 광경을 관조하면서 무한한 법열에 젖어 전율하는 자신을 대면할 수 있었다. 편안함에 길들여져 본능대로 행하며 살던 습을 버리고 정해진 계율을 따르며 지냈던 힘든 시간이 지나고 수계(守誡)를 받던 날 연비하는 의식을 행하며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비로소 부처님의 제자로 청정한 삶을 사는 불자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얻어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겠구나,’
무욕(無慾)의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는 마음을 더했지만 생활인으로 지내는 동안 초발심(初發心)을 잊고 지내기 일쑤였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서는 방일(放逸)하며 점점 안이한 생활에 젖어 갔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뒤에 있던 절을 찾으며 지냈던 신앙이 굳어져 뿌리를 내린 터라 평소 불자라고 칭하면서도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 명확히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계종 출판부에서 2년 남짓한 연구 끝에 펴낸 부처님의 생애를 접한 순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듯하다.
기원전 624년 사꺄족의 후손인 숫도다나왕과 마야 부인 사이에 왕자로 태어난 고따마 싯닷타는 왕궁에서 더없는 사랑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연회장에서 빠져 나온 태자가 맞닥뜨린 일들은 까삘라성 안팎이 판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 번민에 휩싸여 색앙에 잠기는 시간이 늘었다. 성문밖에 벌어진 민중들의 참상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출가를 결심하였다. 아내 야소다라왕과 고따마 사이에 태어난 왕자를 라훌라라 일컬으며 속박을 낳았다고 말하던 외침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직접 겪고 그것의 덧없음을 깨달아 해탈에 이르는 길에 묵묵히 나서게 했다. 자신이 누리며 살던 물질적인 복락(福樂)을 거두고 구도의 길에 나선 고따마의 수행은 사문들의 도시 라자가하에서 고행으로 시작되었다. 음식을 먹지 않는 고행으로 이어갔던 고따마는 점점 야위어 갈비뼈가 서까래처럼 튀어 나와 달라붙고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형상을 하였다. 식탐이 동할 때마다 라호르 박물관에서 참배했던 부처님의 고행상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행자는 살이 붙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비춰질 정도였다. 점점 불어나는 뱃살을 보며 하루에 한 끼라도 금식하는 수행으로 보살도를 실천하는 길이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 (100쪽)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 ‘나’라는 교만한 마음을 던져버릴 때, 그 누구보다 위의 없는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영위하며 중도(中道)적 삶을 걷는 길이야말로 부처님이 설하신 팔정도(八正道)를 통해 그릇된 욕망이 초래한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아직까지는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고만 여겼던 이들의 급작스런 부음은 인생의 마무리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무한히 살아갈 것처럼 욕심을 채우려 아귀다툼을 벌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르며 윤회를 거듭하는 우리네 삶인지도 모른다. 탐(貪), 진(瞋), 치(癡)를 버리고 선업(善業)을 쌓는 일이 공덕으로 이어져 여법한 삶을 아로새길 수 있지만 실천이 어려운 점을 감안한다면 내려놓기부터 시작해야 부처님을 닮아 갈 수 있을 듯하다. 빔비사라왕의 보시로 지워진 죽림정사에서 부처님은 많은 비구들을 받아들여 가르침을 전하며 기원정사로 거처를 옮겨 사문들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교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왕의 죽음을 앞두고 들러 자식 된 도리를 다하려는 대목은 참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성자(聖者)처럼 다가왔다.
자신을 혈육처럼 돌봐 준 이모 마하빠자빠띠가 정성스레 지은 옷을 보시하려고 했을 때 부처님은 그 옷을 승가에 기증하라고 해 사사로운 정에 끌리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시자 아난다의 도움으로 출가를 승낙받은 이모는 비구니의 길을 걸었고, 상속해 줄 재산을 주라던 아들 라훌라 역시 사미로 받아 수행자의 길로 나섰다. 속세의 인연을 넘어 출가한 비구를 따라 비구니로서 사문의 길에 나선 많은 출가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한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를 가르쳐 행복의 문에 이르는 길로 이끌었다. 귀하게 키운 아들을 잃고 생명의 불꽃을 다시 피어오르게 하려던 여인에게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자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함을 겨자씨 구하는 법문으로 일깨움을 전하였다. 목숨 가진 중생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없이 중해 보였다. 부처님은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죽은 이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던 살인귀 앙굴리말라까지 그의 제자로 삼으며 평등한 출가자로 지난날의 업장을 녹이는 일로 수행의 전범으로 삼길 바라는 마음이 커 보였다. 부처님은 출가자가 출가자의 삶을 살지 못하면 이는 세간의 행복도 놓치고 출세간의 행복도 놓치는 것이라며 제자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강조하였다. 열반에 들기 전 부처님은 시자 아난다에게 그 가르침을 전하였고 그 법문은,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이어져 들은 내용을 기술하여 경전으로 묶어 지금껏 수행자들이 부처님 당시의 설법을 따르며 수행하고 있다. 부처님의 반열반상을 사진으로 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성장, 구도와 깨달음, 전법과 교화, 입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일대기 형식으로 담은 부처님의 생애는 더없는 환희심으로 부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한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각주를 달아 이해를 높였고, 부처님 가계도에서부터 부처님 설법 장소, 우기에 안거하며 수행하던 장소까지 지도에 담아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 순례에 나서는 길에 적잖은 도움이 될 듯하다.
지난 3월에는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펼치며 청정한 삶을 살다 원적(圓寂)한 법정 스님의 다비식에 다녀왔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라는 스님의 법문처럼 더 나은 인간, 철든 인간으로 살다가기 위해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스님은 관도 없이 장삼을 덮은 채로 자신이 남긴 모든 것은 이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하는 일에 보태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서방정토로 향하셨다. 출가 수행자의 마무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몸소 실천하는 모습은 불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청정한 삶을 살다 대중들에게 큰 가르침을 전하고 간 스님은 미혹함이 많은 세상을 떠났지만 중생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게 했다. 어쩌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실천하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사표로 불자들에게는 귀한 가르침을 전해줬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삶의 지표로 남아 좀 더 청정한 삶을 위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 지나 온 시간을 돌이켜 봤을 때 남는 것은 잘한 일보다는 못한 일이 더 많이 떠올랐다. 트집을 잡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에도 발끈하여 화를 내는 자신은 당혹스러움을 더한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난 자리를 응시해 보면 그 밑바탕에는 탐욕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삶의 고통 역시 탐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욕심 때문에 자식들 학업성취도를 비교하며 아이들을 닦달하며 살아왔다. 궁극적으로는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에서 자신이 임의대로 정한 잣대로 주변인들을 옭아매고 살아왔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채 극단에 치우쳐 피해를 준 일도 떠올라 이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더없는 가피(加被)로 행복에 달뜬 시간을 보냈다. 타인을 배려하며 존중하고 뭇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나가는 첫걸음인 셈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깨닫고 타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마음을 풀고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찾아 행복에 이르는 법을 실천하며 살아야만 한다. 바른 생각으로 효도와 공경을 으뜸으로 삼아 선행하는 가운데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삶을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는 깨달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한 가지라도 실천하는 나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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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내가 알던 부처님은 석가모니라는 분이었다. 부처란 도를 깨친 사람이라 들었다. 예수는 유일신이라 지만 부처는 누구나 덕을 쌓고 도를 깨치면 부처가 되는 것이라 알고 있었다. 부처님의 생애는 참 어렵게 읽었다. 용어 자체가 외계어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현존하는 나라가 아닌 옛부족의 이름과 그 시대의 용어들을 원어 그대로를 사용했다. 많은 자료들 사진 벽화 불상등이 다 실려 있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부록으로 있는 연대표와 인명사전 부처님 가계도등 불교 사전이라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내가 부처님의 생애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처음 접하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탄생부터 마야부인의 태몽 그리고 출가나 수행 그리고 설법등 특히 탄생전의 전생까지 윤회의 전생을 보여준건 나에겐 색다른 충격이었다. 손목을 다쳐 손목힘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현재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있는데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분들이 많아 지면, 법정스님 같으신 분이 많으시면 욕심때문에 생기는 사건 사고는 줄어 들 것이고 헐벗고 굶주리는 자 또한 줄어 들 것인데, 저마다 욕심들이 너무 많은것 같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 속에서 위 부처님의 게송 나는 외삼촌이 조계종의 스님이시다. 작은 절의 주지 스님이시다. 스님 말씀이 지금 니게 니거냐? 왜 그리 아둥 바둥 사냐? 내가 제일 무서워 하는 분이 그 스님이시다. 나는 서울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그 절에 자주 갔었다. 스님은 나에게 꾸지람을 한다던가 싫은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워낙 세속적으로 사는 나로선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아마도 올바로 살지 않는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지 싶다. 나는 절에 자주 갔었지만 한번도 절에 가서 절을 한적이 없다. 그래서 누가 물으면 종교를 말을 할수가 없었다. 이젠 어느정도 가르침을 알것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이지도 알것 같다. 사실 절에 가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도심에 살면서 서로 으르릉 거리는 삶이 아닌 비우는 삶을 살기가 싶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버려가면서 살도록 노력하려 한다. 이책은 나의 책장에 빛을 주는 책,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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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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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부처의 전기는 만나보지 못했다. 사실 부처의 전기로 유명하고 내용도 우수한 책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위원회까지 구성해 부처의 전기를 펴낸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금강경'에 이어 2번째 종단본이다. 조계종이 수행과 전법,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경전 - 금강경을 출간하고, 종단 차원에서 편찬위원회까지 구서해서 펴낸 책이 부처님의 생애이다. '부처님의 생애'는 국내 불교의 전문가들이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 공동으로 펴낸 책인 만큼, 이전과는 다른, 한마디로 개인적인 저서가 아닌 면에서 관심이 가게 되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부처님이 탄생해 성장하고 출가해 깨달음을 얻고 법을 전하다가 열반하는 과정을 총 10장으로 나눠 연대기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려운 종교책에 비해서 쉽게 설명되어 있고, 특히 부처님과 제자 등 대화가 많이 등장했다.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읽기 쉬워 딱딱한 내용을 기대했던 것과는 정 반대여서 많이 놀랐다. 불교의 가르침이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가르침을 일반사람들이 알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있다. 그저 불교 입문자들을 위한 기초가 아니라,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담겨있었다. 지식과 정보도 많이 쌓을 수 있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굉장히 높아보였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인명, 지명 대조표, 여러 가지 미술작품, 사진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붓다의 가계도, 붓다 당시 인도 16국과 설법 장소 등에 관한 지도와 정보를 부록으로 실어 이해를 돕고 있다. 부처의 생애. 부처의 가계도. 부처의 일생. 부처의 설법 장소까지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 내용들이 나에게는 전부 다 머릿속에 들어가진 못했다. 하지만 부처의 생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부처님의 생애의 책에서는 무려 10장이라는 방대한 양이 담겨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배려도 담겨있었다. 일반적인 문체, 대화 같은 이야기 형식이 그것이 아닐까. 10장의 구성으로는 붓다의 탄생, 성장부터 출가, 깨달음, 전법, 열반에 이르는 과정을 연대기식으로 나열해 놓아 보기 쉽게 해놓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이 진행되니 이해가 조금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보통 부처님의 생애라고 하면, 사람들은 부처의 삶의 신비함, 초월적인 신앙의 내용을 기대한다. 나도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것보다는 역사적인 사실로써 부처의 삶을 이야기 한다. 읽으면서 역시 다수의 사람들이 편찬해서 인지, 객관적인 관점으로 서술되어진 내용이 상당히 많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부처의 생애에 관해 이렇게 객관적이고 정확한 책은 아마 드물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어려워서, 잘 알지 못해서, 책을 받아봤자 읽어보지도 않을 것 같았던, 스스로도 의심이 들었던 자신이 어느 덧 자연스럽게 책을 덮을 때 느꼈던 감정. 왠지 신비스러웠다. 부처라는 신비한 인물의 역사를 보아서 그런지, 그 기분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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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항상 어떤 사소한 만남이라도 인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처음 불교와 만난 건 동국대에 합격한 후 자아와 명상이라는 수업으로 졸업필수과목이었다. 처음엔 교수님이 스님이라 신기했었고 걷기 명상, 누워서 명상 등 여러 명상자세를 배워가면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후 기회가 되어 불교관련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번에 출간한 부처님의 생애라는 책이다. 개인저술에서 벗어나 불교관련 전공 학자들과 공동집필한 이 책은 부처님의 생애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소설처럼 이야기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보통 종교서적과는 달리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교관련 용어들 때문에 잘 읽혀지지 않았지만 소설의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금방 익숙해지게 되었다. 또한, 맨 뒤편에 부처님의 가계도와 발자취가 보기 편하게 정리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뒤에 있는 가계도와 발자취를 부록형식으로 나누어서 만들었으면 보다 편히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같다.
이 책은 부처님의 생애를 구체적 사건을 통해 설명하면서 부처님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본문 중 태자가 마차의 길을 막고 있는 노인을 보고 “사람으로 태어난 이는 누구도 늙음을 피할 수 없다. 나도 저렇게 늙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조롱과 혐오를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런 내가 저 노인을 비웃고 업신여길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모습들에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어렸을 땐 막연히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고 나선 반대로 사회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 졸업을 두려워하는 요즘 대학생들이 사회인이 되면 부모가 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할까? 나도 어렸을 땐 못 느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분씩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 태자처럼 고민했던 기억이 있는데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만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민들을 이 책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사건과 함께 적절히 들어간 사진들은 불자가 아닌 내가 읽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소설처럼 느껴지던 이 책의 사실성을 높여주었다. 또한, 본문에 수록된 사진들의 해설을 부록으로 단 불전도 해설은 불자가 아닌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광범위한 독자층을 배려한 이러한 노력들로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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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 조계종출판사 刊,
대한불교 조계종단 교육원에서 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를 설치해 2년여의 작업 끝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불거진 화장실 청소문제로 다툼이 벌어지자 " . . .코뿔 "혼자만의 평안은 바라지 않습니다 눈길과 발길이 닿는곳마다 고통과 공포가 사라져 모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싼스끄리또어로 사꺄무니다. 생경하고 익숙치 못한 빨리pali 어와 태양족인 사꺄왕족으로 거룩한 탄생과, 출생의 번뇌에서 출가하여 구도와 득도, 전법과 "비구들이여, 털이 긴 양이 가시넝클 속으로 들어가면 넝클에 뒤엉켜 오빡달싹 못하고 불교 윤회설에 의하면 지금 부처님은 어디에서 무슨 모습으로 중생을 헤아리고 계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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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조계종 종단본 부처님의 생애는 7명의 전문학자로 구성된 편찬위원회에서 2년여동안 공동작업을 한끝에 완성되었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부처님의 탄생과 성장부터 마지막 유행과 입적에 이르는 전과정을 전기형식으로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어려운 학술서적의 형식이 아닌 읽기 쉬운 평이한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처님 또는 불타(佛陀)라 말해지는 붓다란 '깨달은 자(覺者)'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부처님은 사찰이나 신도들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 탄생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상황을 인지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대적 배경을 앎으로써 누군가의 가르침이 이해가 되고 또한 그의 행동 및 가치관 그리고 신념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숫도다나왕과 그의부인마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석가모니이다.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아 증득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우리나라말로는 부처님이다. 룸비니동산에서 4월8일에태어난 태자는 여느출생과는 달리 생명의 존엄성과 삶의 참된 환희와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고 실증해보인 부처님의 시발점이었다고 할것이다. 처음태자는 온갖보배와 화려한 장식 갖가지 진기한 환구속에 휩싸여 호화로운 나날을보냈다. 7세에 농경제에 참여한태자는 소를 부리는 농부나 농부의 수고에의해 편안히 앉아 배불리 먹는 부나나 귀족들을 강한놈이 약한놈을 잡아먹는동물과비교하면서 깊은사색에 잠겨있었다. 태자에게는 많은 변화가생겼다. 부처님이 출생하기 전, 인도는 다신교에서 범신론까지 각종 자연신과 의인화된 신들을 숭배했다. 또한 신에 충실히 하는 한편, 자신을 찾기 위해 출가를 서슴치 않고 갖은 고행을 감수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행의 속뜻은 가장 존경받는 계급인 ‘브라만’이 되는 데 있었다. 책을읽으면서 다시한번 불교의 교조가 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통해 부처님 탄생의 거룩함을 느낄수있었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생애가 고통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것을 벗어나는 것을 가르쳐주신 부처님에 대해서는 초등학교때부터 절에다녔던 나는 스님들께 부처님의 탄생에 대해서 많이 듣곤했다. 이 책은 불교가 생소한 일반독자에게는 부처님을 소개하는 교양서이면서 전공자에게는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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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불교가 전래된 때가 4세기 말이므로 우리 민족이 불교와 함께 한 지도 1,600년 이상이 되었다. 구, 신교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가 약 200년 정도인 것에 비하자면 참으로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만큼 우리 민족과 불교는 친숙하며, 불교도 여부를 막론하고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불교를 개창한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술한 전기로서, 이 책을 통하여 석가모니의 탄생과 성장, 깨달음과 불교의 창시, 죽음을 시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는 부처가 세상에 오기 전의 전생에 대해 쓰여 있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윤회이기 때문에 개창자의 전생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다 그렇듯 부처의 탄생도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다르다.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를 열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다. 이 책에서는 이 말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三界) 내 마땅히 안온하게 하리라.
역시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다 그렇듯 어린 시절의 부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비범함 그 자체였다. 휘황찬란한 외모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 또한 뛰어나서 당시 가장 유식한 스승들의 능력을 단 시일에 뛰어넘은 것이다. 또 체력 또한 출중하여 무예를 겨루는 자리에서 남들은 당길 수도 없이 팽팽하고 무거운 활을 몇 개나 부러뜨렸던 것이다.
왕자로 태어난 혈통, 준수한 외모, 자비심에 넘치는 심성, 출중한 지적, 육체적 능력을 가지고 남부러울 것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전의 싯닷타는 어린 시절에 충격적으로 본 남루한 차림으로 비비적거리며 걷던 노인의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고민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태어나 자라고 병들로 죽는 것에 대해 살아가면서 가끔씩 한두 번쯤은 아프게 생각하겠지만, 싯닷타처럼 온 정신을 다 바쳐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보통 사람과 대선각자인 부처의 가장 큰 차이다.
생로병사와 우주의 비밀을 깨우칠 기회를 갖기 위해 항상 궁궐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부모와 아내의 만류로 실행하지 못하다가 아들 라훌라가 태어난 스물아홉 살 되던 해에 드디어 출가를 감행하여 호화로운 옷과 금붙이를 벗어버리고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처음에는 당시 수도자처럼 육체에 고통을 주어서 깨달음에 이르려는 방식으로 고행을 하지만, 얼마 후에 이러한 방법으로는 궁극적인 목적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방식을 바꿔 보리수 아래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선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중생들이 무수한 과거 생애를 아는 능력인 숙명통(宿命通)과 중생계의 죽고 태어나는 모습을 낱낱이 알게 되는 천안통(天眼通), 모든 번민과 고통이 사라지고 청정한 삶이 완성되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어서 위대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다. 이 후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세수 80세에 영원한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만들어 출판한 것인 만큼 내용이 구성이 상당히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내용도 불교도뿐만 아니라 비불교도나 불교 교리를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어려운 용어나 깊이 있는 교리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다. 더불어 부처의 생애에 따라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조각 그림들을 간간히 곁들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기에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고, 뒤에 부록으로 붙인 지도는 당시 부처가 활동하던 북부 인도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책을 읽다가 지명이 나오면 찾아볼 수 있게 하였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부처는 2,6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분의 전기가 모두 논픽션이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어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 곧 말하고 걸었다는 것이나 홍수로 넘치는 강물 위를 걸었다는 것이나 가뭄으로 불타는 지역에 발을 들여놓자마다 억수처럼 비가 내렸다는 것 등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마치 아비 없이 태어났다던가 숨이 끊어진지 3일 만에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사실로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 속에는 메타포(;隱喩)가 숨겨져 있다. 이것을 읽어내는 것이 사실 바른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교리는 윤회(輪回)와 연기(緣起)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윤회는 태어나 죽는 것이 반복된다는 것이고, 연기는 시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연기는 인과응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부처는 사람의 삶이 모두 고통이라고 보았다. 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다고 했다. 현재의 행복조차도 미래의 고통의 씨앗일 뿐이다. 그래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역설이다. 영원히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연기의 원인이 되는 업(業)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그 업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모든 것이 무상하고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있다고 했다. 더 이상은 정말로 깨닫기 이전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정말로 끝없는 윤회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먹고 있는 동물의 고기가 윤회를 통해보면 한 때 자신의 부모일 수 있다는 것에서 육식을 금하는 것이라든가, 모든 행위에는 합당한 결과가 있고, 지금의 고통이란 과거에 내가 벌인 업의 결과라는 뜻에서 행동을 바르게 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가르침은 지구의 자원과 환경이 한계에 가까워지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해결의 열쇠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부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 경건한 마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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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종교에 한발 더 가까이 가도록 이음돌 역할을 해 준 책이다. 책의 소개대로 발음하기도 어려운 여러 언어들로 소개하고 비교적 그들이 읽는 그대로의 읽기 표기에 따라 지명과 이름 등이 적혀있다. 책의 내용과 더불어 그에 맞는 사진 자료와 풀이를 친절하게 덧붙여 놓아서 어렵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수학의 정석처럼 불교종교서적의 정석이라고 소개하면 비슷한 예가 될까 생각해 본다. 이 책과 더불어 불교 가르침에서 인상깊은 것은 '윤회'라는 것이다. 이미 책 속에서도 그러하지만 부처님 또한 몇몇의 윤회를 거치고 태자 싯닷타로 또 다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말 그대로 윤회를 거듭하는 우리네에게 참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고행과 선정 깨달음을 통해 얻으시고 그 깨달음을 이렇듯 전해주신다. 불교계 종교 입문서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아직 종교관련 서적은 읽은 적이 없는 초보자로서 생소하고 조금 낯설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읽을수록 내 마음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무수히 쌓여간다는 무거운 느낌이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왜 이다지도 양 손 가득 무엇하나 버리지 못하고 가득 안고 살아가는지, 그 분 말씀대로 무언가를 좀 내려놓아야겠는데 정작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다. 쉽게 쓰여진 종교입문서라는 소개대로 책은 쉽게 읽었지만, 읽는 내내 뭔가 무거운 마음이 들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인생을 속박하게 만드는 것들을 훌훌 털어버려야겠다는 생각 또한 하게 만든다. 첫걸음은 무거웠지만 두걸음은 좀 더 가볍게 걸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곁에 두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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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드는 의문점들
1. 부처님이 출가를 결심하게된 동기.
부처님은 생로병사에서 벗어 나고 싶어 출가를 결심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출가를 만류 할때 영원히 죽지 않고 늙고 병들지 않게 해줄수 있냐고 묻는다.
출가한 이후에 여러 스승을 만나 보았지만 해답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수련과 고행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근데 깨달음이 무엇인지는 없고 팔정도를 행하면 깨닫게 된다고 한다. 깨달음의 실체가 없다 생로병사에서 벗어 날려고 출가를 했는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무언가 맞지가 않다. “나는 타락하지도 않았고, 선정을 잃지도 않았다. 나는 가장 높고
부처님은 80세 병들어 죽는다. 더이상 윤회를 하지 않는게 생로병사를 벗어 나는거라면 부처님 이전에도 부처님이었고 그전에도 부처님 이었다. 어느정도 깨달아야 윤회를 하지 않는단 말인가?
생로병사를 어떻게 벗어 났다는건지 모르겠다.
2. 부처님은 사람인가? 신인가?
강을 건넌 부처님께서 왓지연맹의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 졌다. 웨살리에 이르는 사흘 동안 빗줄기는 가늘어지지 않았고, 먼지가 날리던 왓지의 대지에 파란 싹들이 동아나기 시작했다.
부처님은 비를 내리는 능력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물위를 걷기도 하신다.
부처님 제자중에는 깨달은 사람이 많지만 누구도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깨달음과 무관하게 부처님만 가진 능력이라고 할수 있는데 사람은 물위를 걸을수가 없다
그럼 부처님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3. 윤회는 누가 하는가?
" 세존이시여, 노부부가 부처님을 보자마자 아들이라 부른 것은 무슨 인연입니까? " 아난다, 저 부부는 과거 오백 생 동안 나의 부모님이었단다." (276 page) 부처님은 오백생을 윤회 했다는 말인데 부처님이 윤회 한다는게 이상하다. 왜냐면 깨닫지 못한 중생이 계속 윤회를 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되면 벗어 나기 때문이다. 그럼 부처님은 예전에는 중생이란 말인가?
4.자비의 한계 부처님을 죽이려다 실패한 데와닷따가 세존께 찾아가서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려고 하지만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진다. 부처님은 어떤기준으로 자비를 베푸는지 모르겠다. 잘못을 빌러온 사람을 바로 아비지옥으로 떨어뜨리는것은 분명 자비로운 부처님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5..부처님이 말한 생로병사 부처님은 말년에 심한 병을 앓으셨다. 고퉁스러워하시는 부처님을 곁에서 눈물로 지키던 아난다가 말한다. 세존의 병환을 지켜보며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늙고 병든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깨달아도 생로병사는 벗어 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불사를 말하신 부처님은 죽었다.
생로병사를 어떻게 벗어 났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6.집착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나서 다비식에서 불이 붙지 않는다. 가섭이 와서 관 밖으로 나온 부처님발에 경의를 표하자 발도 들어 가고 불도 붙었다. 집착을 버리라고 하신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모습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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