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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lexandria Quartet - Balthazar :: Lawrence Durrell
2부 <발타자르> 에서는 달리가 저스틴에 대해 몰랐던 일들을 친구인 발타자르가 이야기 해주며 본격적으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발타자르는 저스틴이 사실은 퍼스워든과 불륜 관계에 있는데 그것을 숨기기 위해 달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말하며 냉정하게 저스틴의 가식과 기만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 달리는 자신이 알고 믿었던 모든 일들에 내면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저스틴 이외의 주변 인물들을 돌아보며 어떤 것이 사람의 진실인지를 혼란스러워 한다. 2부는 달리와 발타자르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저스틴과 퍼스워든의 관계, 저스틴과 클레어와의 관계, 특히 네심과 저스틴과의 관계가 1부에서보다 세밀히 묘사된다.
그러나 2부에서 키워드가 되는 것은 화자인 달리나 발타자르가 아닌 퍼스워든과 네심의 동생 나로우즈다. 소설가인 퍼스워든은 1부에서부터 '진실' 이 과연 무엇인가를 물으며 글쓰기의 고통을 주변인들에게 호소하는데, 이는 작가 로렌스 더럴의 속내와 고충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애초에 더럴은 '나' 로 시작되는 1인칭 시점의 소설에선 이야기가 평면적이고 편협하여 그저 허구에 그치고 말 것이라 고민하여 같은 상황을 각 캐릭터간의 시선으로 서술해서 '진실' 을 입체화 해 소설에 보다 더 현실성을 부여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주인공이자 화자인 달리보다도 달리에게 있어선 제 3자인 퍼스워든을 통해 작가의 사견이 더 많이 배겨 나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어렸을 때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좋았다. 비록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그랬겠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저 재미나 꿈을 주기 때문아어서가 아니라 '현실' 이 아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었을까. 소위 키덜트나 오타쿠라고 불리는 이들이 나이를 먹고서도 그 세계에서 못 빠져나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만화에선 상처 입은 인간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선 까칠하고 괴팍하여 미움 받을만한 성격도 만화의 세계에선 이해받고 상처가 나아 '성장' 을 한다는 판타지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욕구다. 자신의 시선, 자신의 입장만을 그 세계에 대비해 위안과 당위성을 얻으려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만화나 애니메이션등의 본질이자 목적이며, 그 세계를 추구하는 이들을 결코 비난할 수 없다. 현실 도피가 되었든 자기 변명이 되었든 사람은 현실에서 받을 수 없는 위로를 어디서든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똑같이 자신을 좋아해줄 수 없고, 한 번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도 거의 오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아과잉보다 자기비하가 심해지고 그것을 위로해주고 고쳐나갈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 다른 대체물을 통해 환상을 봐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나약한 우리들에게 진정한 '진실' 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가치있고 효용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 소설은 아프다. 드러나는 진실로 마음이 다치고 상처입으며 회복하기 전까진 자기 변명과 환상에 대한 미련으로 몸부림쳐야 한다. 달리가 저스틴에게 배신을 당하는 고통을 독자도 현실에서의 기시감으로 뻐근한 통증을 느끼며 '진실' 의 효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환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캐릭터가 바로 네심의 동생 나로우즈와 그의 어머니 레일라다. 나로우즈는 언청이의 얼굴로 태어나 열등감을 갖고 있으면서 클레어에 대한 짝사랑을 멈추지 못해 결국 자기가 만든 착각의 세계로 빠져 버리는 인물이며, 그의 어머니 레일라 역시 연하의 영국인 마운트올리브를 사랑하면서 그를 직접 만나지 않고 자기 환상 속에서만 설레임을 키워 나가려고 한다.
이들의 현실 세계 부정과 자기만의 세계는 3부로 가는 교두보가 되기도 하는데, 3부에선 2부를 뒤집는 또 다른 진실이 그려진다. 독자는 여전히 달리와 발타자르의 시선만을 봤을 뿐이라고 더럴은 말하며 진실이 얼마나 다면적인지, 아니, 인간이 평생 진실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를 스스로도 자문하는 것이다. 1부에서 저스틴에게 연민을 가졌다가 2부에서 배신을 느끼고, 3부에서 밝혀지는 저스틴의 또 다른 모습을 맞닥뜨리는 독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원고의 주석은 이제 객관적인 '인생의 진실' 아니,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허구의 진실' 이라는 문제 이상으로 나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그렇듯, 만들어진 것이든 선택한 것이든 간에 좀 더 고난이도 형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 방대하고 구체적인 자료들을 잘 규합하여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사랑과 외설이 공존하는 이 믿을 수 없는 도시를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에 내가 그렸던 이 도시의 윤곽선은 내가 선망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건 사실이기도 하지만, 진실의 한계 내에서 부분적으로만 받아 들였을 뿐이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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