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생각하는 작은 학교 교사의 모습은 이렇다. 첫째, 승진을 위해 벽지 점수가 필요해 필요악인 선택을 한 사람들. 둘째, 나이가 들어 큰 학교에서는 미운 오리 신세가 돼버려 할 수 없이 작은 학교를 선택한 사람들. 셋째, 극소수이지만, 소신을 가지고 작은 학교에서 나름의 교육관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 넷째, 그저 시골이 좋아 사는 사람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서는 이 책을 읽기는 그리 쉽지 않다. 어짜피 이 책의 중심인물은 학교와 그 속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선입견을 벗어 던지고 이 글에 나타난 학교 하나 하나를 찾아 나서는 일은 학교 선생인 나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 그들의 집, 그들의 선생님 얘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학교의 독특한 생명력을 보며 우리는 이제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학교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저 대도시에서 졸업장이나 받고 졸업식날 사진 한 장 찍어 앨범에나 넣어 놓는 재미없는 죽은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의 하루 하루의 삶을 만들어 내고 그 삶들을 그 아이들의 뼈 속 깊이 새겨 학교라는 존재가 그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학교로 삶의 전체가 된 그 아이들 모습에서 더 이상 이 땅에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주민의 재산인 학교의 문을 닫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만 더욱 확실해 진다. 이러한 자질구레한 주절거림을 뒤로하고, 이제 이 책을 한마디로 얘기해보자면, 60-70년대 흑백 사진을 실컷 보았던 것 같은 느낌(실제로 아름다운 흑백사진을 여러 컷 볼 수 있었다)과 그 시절의 느낌이 가져다 주는 따뜻함과 그 나름의 애절함이 섞여 알 수 없는 연민과 그리움을 잔뜩 안겨 주었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따뜻한 봄에 찾았던 지금은 폐교가 된 세 학교 이야기 속에서 금산 건천분교 미림이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처럼 동물들이 학생이 되어 주길 아직도 바라고, 하늘 가까운 학교였던 태백 하사미 분교시절 선생님의 편지가 그 나름의 애절함을 더해주었고, 죽변 화성분교의 마을 주민들의 쓸쓸함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교육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에 찾았던 골짜기도 그런 골짜기가 없었던 경북 봉화마을 남회룡 초등학교는 그 골짜기의 깊고도 끈질긴 생명력처럼 아직도 주섭이 아버지와 같은 이들에 의해 든든한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고, 오로지 대학이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 버린 해숙이와 그 해숙이의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거라 가슴 깊이 울고 있는 해숙이네 어머니가 살고 있는 단양 보발 분교, 똥물에 빠진 아이들 직접 건져내어 씻기며 작은 학교에 적응하였던 양해남 선생님의 가슴 깊은 아이 사랑 얘기가 전해지는 여주 주암분교에서 이 작은 땅 작은 학교의 아픔과 고통,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포근한 가을에 찾았던 제주 선인분교는 그야말로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 마을이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의 학교였다. 보기 드물게 잔디로 꾸며진 운동장에서 가을 운동회를 만끽하는 마을 주민과 학생과 교직원의 어우러짐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중학교에도 분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무작정 찾아 나섰다는 글쓴이의 글 자국을 더 할 나위 없는 호기심으로 같이 따라가다 보면, 동생들과 함께 혼자 된 고모와 함께 사는 난이가 다니는 무주 부남분교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와 함께 늘 진로 걱정하는 난이는 아직은 그리고 불투명하기까지 한 완성되지 않은 희망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차가운 가을에 찾았던 강릉부연 분교에서는 학년에 관계없이 서로가 선생이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주며 그렇게 스스로 자라고 있는 그저 자연이 주는 그 자연스러움을 몸에 담고 살고 있었고, 이제는 폐교가 된 남해 미남분교의 이재만 아저씨의 편지는 서울 어른들의 그릇된 정책으로 어린 나이에 배를 타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이들의 힘든 삶의 얘기 속에서 교육은 작을수록 좋다는 너무나 큰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아직도 정부는 효율성의 미명 아래 폐교를 강제하고, 주민들의 동의를 여지없이 받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고, 아직도 적지 않은 교사들이 승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시골로 시골로 바다로 바다로 들어가고 또 내려가고 있고, 대도시의 환상에서 벗어 던지지 못하고 시골학교 나머지 한 한기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대도시로 대도시로 시험을 치러 달려가는 신규교사들이 아직도 이 땅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삶의 터전이 되어 줄 학교를 지키려는 사람들 사람들, 오는 교사 가는 교사의 면면과 눈치를 살펴 정을 넘겨주는 정도를 가름하고 있는 작은 학교의 아이들과 부모들. 언제나 우리는 이런 쓰잘데기 없는 가치들을 집어 치우고 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가져다 주는 이 작은 학교의 가치를 알고 알뜰 살뜰 가꾸게 될까. 나는 지금 밤하늘에 가득 찬 쏟아질 듯 쏟아지지 않는 작은 학교 밤 하늘의 별들을 떠 올리며 김은주, 박경화, 이혜영 이 세 글 메김꾼들이 들려준 '산골 학교 작은 학교'의 소중한 빛나는 별같은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되새겨 본다. 무척 가슴이 아려온다. - 뱀발 - 깨끗하고 깔끔한 편집에 비해 아쉽게도 '앉았다'의 '앉'자의 오타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네 개를 발견한 것 같은데, 수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84쪽은 '앉았다'의 '않'자와 '바다'로 쓰여야 할 글자가 '바라'로 쓰여 있어 동시에 오타를 발견하기도 했다. 예쁜 책에 비해 오자가 눈에 띄는 것이 옥에 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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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등장하는 건천분교는 원래 87년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시절까지도 국민학교로 존재했던 그런 아름다운 학교였다. 그리고 그곳을 졸업하고 같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얼굴을 처음 대면했던 친구들이 나온 학교였다.
이제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름의 학교이지만, 건물도 학교의 그 자리도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이란 것이 알 수 없는 애잔함을 갖게 만든다.
중학교 시절 아무런 생각없이 탔던 시내버스의 마지막 정거장 앞에 있던 건천국민학교(건천초등학교) 그 깊은 산골 학교는 아직 어린 내게는 작아보이지 않았다.
금산에서도 오지인 남이면 건천리라는 곳의 산골에 위치한 그 학교 직접 찾아서 가보았던 그 학교에 대해 다른 사람이 쓴 따뜻한 시선의 글은 나를 눈물 짓게 한다.
학교가 존재하기 어려울만큼 우리네 시골은 쇠락해 있다.
아마 10년 이내에 없어질 산골 마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고향의 기억들도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쯤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도 무엇인지 뒤늦게 깨닫겠지만 말이다.
대량생산의 공간에서 대량의 기성품으로 유통되는 아니 생산되는 대도시의 커다란 초등학교와는 다르게 2반이나 1반으로 이뤄진 시골의 초등학교는 그 기억과 감동이 너무도 소중하다.
쉽게 잊혀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잊혀질까, 그 작은 걸음으로 1시간 가까운 흙먼지길을 걸어다녀야 했던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을 누구나 오래된 영상으로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걸어간 곳에서 공부하고 친구들을 만났기에 우리네 정서가 넉넉할 수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
왜, 과거에 대한 퇴행현상이 벌어질까? 바로 정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신의 시대에 너무 빠르게 변해서 너무 크고 많은 물량을 요구해서 우리가 잊은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자.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다"는 사실을 믿자.
정이 있었기에 우리가 과거를 그리워 하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아이들 눈길을 끄느라 온통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온갖 것들 속에서 미림이가 가정 먼저 집어든 것은, 바로 할머니께 드릴 사탕이었다. "우리 할머니, 이 사탕 좋아하세요. 응, 유림이한테는 이거......." 이것 참....... 미림이가 있어서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천분교 생각이 자꾸만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