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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인터넷(IOT)에 인공지능(AI)가 결합되면, 뭐 오늘의 날씨에 맞춰 어떤 옷을 입을까 따위를 알려준다고, 이런 것이 '4차 산업혁명'이란 사뭇 거창한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 게1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조악한 상황의 거론에 '혁명'이란 과격/신성한 단어를 붙인 이유가 그 편리함 증대의 '급격함'에 있다라면 그래도 이해가/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겠거늘, 만약 그 주안점(focus)이 뜻밖에도(?) 단지/오로지/그저 '(존나 상승된) 편리함'에만 주어져 있는 것이라면, "빅데이터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 '내가 원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내가 원한다고 판단한 것'을 보는 현실. 내가 욕망하기도 전에 그들이 내놓은 선택지를 보고,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믿는 현실"2에 대한 "선택과 통제의 권한은 과연 누가 행사하는 것일까"3와 같은 의문은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버리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중파 FM 라디오가 매일 아침마다 되풀이하는 것처럼 정말로 만약, 일상의 편리함 증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목적/의의라면 --- 인간이 지혜로웠기 때문이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가 아닌, 도구를 사용했기에 지혜로워졌다는 마빈 해리스의 사회·문화적 진화의 논리4는 더 이상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정말, 모두들 '4차 산업혁명'이란 것에, 보여지는 바 그대로 , 열광하는 그대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걸까요? …………………………………………………………………………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이란, 흡사 '슈퍼울트라 초절정 MCU 스타일 서부 액션 활극'같은, B급스런 character를 부여받고 있는 이 여덟 편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신의 섭리에 따른, 유인원들이 (비교해 보아, 보다 더 무능력해진) 인간의 뒤를 계승하였다라는 「혹성탈출」의 결론이, 해당 세대5의 허황된 상상의 산물만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다만, 2017년의 우리들은, 유인원의 자리에, 과학의 발전에 발맞추어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을 한 번 넣어 보았죠!'란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의 송신이, 수신자인 독자들이 사는 세상이란 데가, '4차 산업혁명'이란 표현엔 (이게 대체, 2017년의 대한민국 꼬라지에서, 5년 단임의 대통령 선거의 주요 주제가 되어야 하는 건지, 참 많이 짜증이 났었었고, 그래서 맨날 '4차 산업혁명의 적임자'는 자신 뿐이라며 양 손 들고 포효했던 후보가 참 어처구니 없었었는데) 온통 긍정적인 면만 쏟아부어놓았으면서도, (왕년의 King) 이세돌에 이어 (현재의 King) 커제까지 완벽하게 꺾은 알파고의 기력(棋力)에 새삼스런 당혹함과 또 다시 새삼스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라는 게, 곳곳에 설치된 CCTV들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라 반발하면서도, 막상 CCTV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미해결 범죄/사건에 대해선 'CCTV만 있었어도~'와 같은 안타까움/아쉬움/힐난을 쏟아내는, 그러니까 이건, 누군가를 볼 수 있는 CCTV가 나 역시 볼 수 있다라는 것만은 인정하지 못하겠는, 다시 말해 우리 삶의 구석구석들이 보여지는 것이 안전하다란 이상한 믿음 하에, '나만은 죽어도 보여지면 안 된다'란 억지를 끝내 포기하지는 못하겠다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의 결과일 뿐이란 것조차 알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그려낸 미래란 게, (권력욕을 버려내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기인된 우울함(distopia)의 전형이었다라면, 이 책의 소설들에 깔려 있는, 미래를 바라보는 우울함(distopia)은 ---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외모에 인간보다 뛰어난 감정대응"(p67) 능력을 지닌 로봇이 우리의 시중을 드는 미래의 삶을 바라(願)면서도, 동시에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는 걸 두려워"(57)하고 있는, 이기적 욕망의 모순으로부터 기인된다라고, 조금만 더 잔인(!)한 실례(example)를 들어보자면, 내 편리함의 증진에 도움되는 기능들을 죄다 갖추고 있지만, 그 기능들은 오로지 "제한된 공간에서의 존재"(p76)로서만 작동되어야 한다는, 흡사 귀여운 강아지의 애교와 위로는 즐기면서도 그의 성대와 자궁은 잘라내고 들어내어버린 후에도 서로에게 '애견인'이란 호칭을 스스럼없이 붙이는 뻔뻔함(이자 무식함)을, --- 이 책의 작가들은 힐난하고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 · · 인간의 기술은 드디어/기어이 "인간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담아낸 인류 최대의 걸작"(p79)으로 평가받는 로봇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로봇은 무려! "성감이 이 '인간' 못지 않더란 말이지"(p158)6란 찬탄까지 불러일으킬만큼 최대한 '인간스럽게' 만들어졌지요. 단!
로봇들에겐, 위와 같은 사랑의 감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로봇들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지닌 기술의 한계 때문은 결코 아니에요. 인간들의 기술은, --- 귀여운 깨갱~소리는 내도 되는, 하지만 시끄러운 왈왈~ 소리는 허용할 수 없기에 강아지의 성대를 잘라버리는 것처럼, 로봇에게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센서를 장착해놓기는 했으나, 그 센서의 기능은 오로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작동되어야 한다는 한계7 또한 너무도 명확하게 설정해 놓았었거늘, 그러니까 이건, 인간과 로봇의 유일한 차이점은 감정이라는 정신적 행위를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느냐, 혹은 수동적으로 밖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방향성의 한계를 또한 말해주고 있기도 한 겁니다만,
(이것을 자연선택의 예와 섞어도 될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 로봇이 "답답함이라는 감정을 이해"(p46)하게 되었고, 서서히, 그리하여 겨얼국 --- "언젠가 모든 것을 다 보면서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는 사고행동체계"(p69)로까지 진화하게 되었거늘, 오히려 인간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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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 그 의문은, 이 책 속 한 편의 소설에 스스로 담아놓고 있는, 10'다수 동조 편견'과 11'정상화 편견'이 동원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선 이미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한 문학상의 예선을 통과했었다고도 하거늘12, 인간계의 최고수가 질 리 없다 했던 바둑에서 보여졌던 인공지능의 막강한 능력13은 언젠가/기어이, 앨런 튜링이란 필명/가명으로 진짜 노벨문학상을 받아낼 지 모르는 겁니다.14 이에 대해, 과해도 너무 과한 염려라 말하는 분이 혹여라도 있다면,
우리, 현생 인류 스스로에 대한 '이런 의구심'15마저 생겨나는 시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따위(?) 의구심까지 믿어내기엔 현실감이 너무도 떨어진다시면,
이것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닌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확실하며, --- '왜 물을 돈 주고 사마셔?'라든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구? 이런 개같은...'와 같은, 저의 20대 시절, 우리에게 당혹한 질문과 당연한 판단으로 귀결되어졌던 것들이, 고작(?) 20여년 밖에 흐르지 않았거늘 어느새, 그 때완 완전히 정반대의 의미로서 당혹한 질문과 당연한 판단이 되어 있듯,
되돌아보니, "원래 애초부터 이곳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p183)가 맞는 말이었었다라는, "경고의 내용을 담은 예언이 가장 주목받는 건 참사를 미연에 방지했을 때가 아니라 예언된 참사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16란 소설 속 한 구절을, 더 이상 소설 속 한 구절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에 대해서까지도 당신은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다시 말해, --- 1949년 발표되었던 조지 오웰의 「1984년」의 많은 부분이 현실로 보여졌었고 여전히 보여지고 있듯, 1963년에 프랑스 작가에 의해 발표되었던 「혹성 탈출」, 그리고 2017년 한국 작가들이 말해주고 있는 이 책 속 여덟 작품의 이야기들이 언젠가, 그러니까 뭐, 종원군의 아들? 혹은 손자 세대쯤?에선, 더 이상 예측이나 상상이란 단어로 국한되어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을, '당연'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상태'17란 의미의 '개연'으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나라의 소설가들이 … 쓰는 이유는 인간의 상상력은 완벽하지 않음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그 속에서 탄생한 이야기야말로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p7) 알파고의 바둑이 완벽했었다 하더라도, '인간과 두는 바둑이 훨씬 더 즐거웠다'란 커제의 말처럼, 인공지능이 써낸 소설의 플롯이 제 아무리 완벽할지라도18 여전히 우린, --- 약간의 헛점이 보이기도 하는, 인간에 의해 쓰여진 인간의 이야기에 더 빠지게 될 꺼라 믿어 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전, 이 믿음이 반박되어질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기만 합니다.
이런 생각과 표현이, 지능으로만 쓰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믿기에, 소설 속 로봇이 털어놓는 바 그대로 - "간접경험들과 직접 겪는 것과의 차이 …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건이며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p49) - 사랑을 했었.었.었.었.고, 그로 인해 담배를 끊었.었.었.고, 그 사랑을 잃었.었.기에 다시금 담배를 피웠.어야 했던, 그 이후 겪어 온 여러 변주(variation)들이란 게, (제 나이 또래의 남자들에게 대략,적으로) 딱히 희귀한 건 아닌, 암튼! (로봇은 못하고) 인간만이 직접 겪어볼 수 있는 경험이기에, 여전히/역시나 --- 우리에겐 훌륭한 소설에 열광할 이유와 기회와, 자신만의 개성과 독특함을 지닌 여러 작가들이 사라지지 않을 꺼라 믿습니다, with "어쩌면 당신이 있기에 소설의 종말이 조금 늦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p7)란 작가의 인사말에, 이제까지/지금보다 조금 더 읽고,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더 늦춰질 수 있다면,이란 소망을 간직하고 실행하는 독자가 되겠습니다,란 다짐과 함께이기에... · · · 이 책에 실려 있는 <할망구 17호>의 작가 전건우C가 <여는 글 :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는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것>에 써놓으신, "이 책을 손에 들고 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바로 당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부디 재미있게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p7)란 겸손의 글에, 인공지능도 소설을 쓰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을 써내주셔서, 단지 써내줌에 그친 것이 아니라, 쾌감의 읽는 재미,와 인간으로서의 작가만이 독점할 수 있을 표현인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들19에 대한 경탄 또한 만끽할 수 있게 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드리노라는 (비록 상대방이 인식하지 못할지라 해도) 인사를 드립니다.
※ 미래에 대한 소설들 : 「어떤 소송」, 「1984년」, 「혹성탈출」
... 금연 89일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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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
[미래에 대한 추억]
[2018. 4. 23 ~ 2018. 4. 30 완독]
스포일러 일부 포함. (알고 봐도 재밌다)
표지에서 보다시피 여러 이야기로 구성된 '단편선'이기 때문에 조금씩 리뷰를 해보려고 한다.
1. <풀잎 위의 개미>
숙주인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가 뇌를 장악하고 풀잎 끝에 앉게 하여 양에게 잡아먹히는 흡충(吸蟲)은 나에게는 전혀 신기한 영역이 아니다. 양에게 잡아먹히는 이유는 양의 몸속이 흡충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여서였고 성체가 된 흡충이 다시 양의 몸 밖으로 나와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무한 루프가 있다는 것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서 이미 만나 보았기 때문에 개미가 풀잎 위에 어떤 생각으로 앉아 있을까 하는 상상조차 10년 전에 끝나 버렸다.
그래서 좀 식상하다 싶었는데, 흡충의 얘기는 단순히 이야기의 조미료일 뿐, 흡충과 같은 '기생충이 인간과 융합하여 새로운 진화를 이룬다.'라는 다소 황당하지만 있을 과학적으로는 있을 법하여 (하긴 미지의 바이러스로 매번 인간을 좀비로도 만드는데 융합이 뭐 대수냐) 흥미가 동하여(動--) 읽어내려갔지만, 소재 이외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2. <Owner's Mate>
이제는
성큼 '실제 할 수 있다'가 아닌 '실제하고 있다'로 바뀌어 가고 있는 A. I. 와 안드로이드. 아직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시기 상조라고 하지만 진보는 급격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이작 아시모의 '로봇 3원칙'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안드로이드의 근간(根幹)이 자 인간이 안드로이드와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이 세 가지 원칙은 독자의 재미를 위해 로봇에게 항상 충돌을 일으키고 오류를 불러오며 결국에는 인간만이 지닌다고 생각했던 '자의식'을 선사하기도 한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 아마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많은 로봇이 무언가를 깨닫고 자의식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소재와 처음에는 주인을 위했다가 결국에는 주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했던 안드로이드가 다시금 주인의 자취를 그리워한다는 점이 엄청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야기.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사랑 예방 백신>
사랑은 단순히 뇌가 불러일으키는 착각. 그리고 사람의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하기 때문에 인류는 감정을 저버리고 감정을 없애는 약까지 개발해 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영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될 찰나에 백신의 개발자가 사랑에 걸려버리고... 결국 사랑의 힘이 승리하고 마는 상투적인 구조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질병으로 명명된 것도 재미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이 낙후된 오지가 된 점도 재미있다.
상투적이 이야기지만 점차적으로 파편화되는 인간관계,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극심한 개인주의에 대한 한탄이 섞인 이야기라 씁쓸하기도 하다.
4. <미래의 이브>
아이러니하면서 재미있는 작품. 어떤 적당한 이유도 둘러대지 않고 바로 '인류 멸망'을 얘기하는 작품은 직설적이라서 마음에 든다. 하긴... 인류의 멸망이 과거의 역사로 고정이 되어 있다면 굳이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내가 <더블>의 박민규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랄까나? 이야기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후의 한 사람. 살아남은 '아가씨'를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안드로이들이 '아가씨의 짝'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진다. 마침내 찾아낸 인간 남자는 짐승의 모습과 행동을 하고 있지만, 아가씨의 교육과 안드로이드의 보살핌을 통해 점차 인간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집사 안드로이드는 임무 완성에 기뻐하는데...
혹시나 리뷰를 보고 책을 볼 사람을 위해서 반전은 적지 않겠다. 반전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흥미를 떨어뜨리려나? 그래도 인류의 멸망을 얘기하는 대부분은 소설은 끝부분에는 항상 한줄기 빛을 선사하는데, <미래의 이브>는 그러지 않아서 좋다. 아니 오히려 절망을 얘기하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고 할까나? 내가 좀 꼬여서 말이다.
5. <일곱 번째 남편>
요것도 인류의 멸망. 하지만 인류의 멸망에 대처하는 자세가 <미래의 이브>와 확연하게 다르다. 지구 온난화에 지상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되기 때문에 지하로 피난한 인류.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존에 지켰던 모든 관습을 버리고 오직 '생존'을 위한 새로운 관습을 만들어 낸다.
햇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마련된 선탠장, 줄어가는 인구에 대한 경각심을 위한 전광판에는 임신한 여성의 수, 소중한 모체(母體)에 비해 별 볼 일 없는 남성은 각종 작업과 수발을 들어야 하고 임무를 다한 남성은 어딘가로 가게 된다.
<일곱 번째 남편>은 멸망 후에 있을 법한 세세한 설정이 매력적이다. 극도로 아껴야 하는 전기와 인류라는 종을 위한 모체(母體)로 전락해버린 여성, 어쩌면 여성보다 더 비참해진 남성의 삶. 두 개의 성별 모두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도 누릴 수가 없었다. 오직 '인류라는 종'을 종속시키기 위한 군집체가 되어버렸는 시점에서 이미 인류는 멸망했다고 생각된다.
'인류'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생존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류'라는 종이지, 단순하게 '종의 종속'만을 위한 전락해버린 인류는 '단순한 생명체의 종 중 하나'말고는 더 이상의 가치(ex:문화)는 없을 것이다.
6. <당신이 죽어야 하는 7가지 이유>
책의 제목과 같은 소제목의 단편. 책을 대표하는 단편치고는 내용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느낌은 김명민 주연의 영화 <하루>와 같다. 자신의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타인의 죽음은 당신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지 궁금하다.
한 개의 목숨의 가치는 또 다른 한 개의 목숨의 가치과 같다고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이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타인 중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자신만을 위해 전자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도 소중하기에 후자를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는 많은 논의가 되어왔지만 시원한 정답은 없었고, 이러한 가치를 다루는 작품 대부분은 선택을 강요하기보다는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정말로 이러한 선택을 강요받을 때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버린다.
그렇다면 나는? 냉혹하지만 나는 전자를 선택한다. 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평범하기에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죄책감과 슬픔의 크기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니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는 현실에서도 일어나기에 한 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7. <할망구 17호>
퇴색되어 버린 가족이라는 단어의 가치.
8. <오늘의 사건 사고>
좀 섬뜩한 얘기. 어떤 사건 이후에 신문에서 '사건 사고'를 모으며 심신을 안정시키는 어딘가 이상해진 아내와 그것을 지켜보는 나. 매일 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사건 사고는 자신의 일이 아닌 양 흘려버린다. 단순하게 안타까움에서 사건에 공감하여 슬픔에 이르는 사람까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결국은 자신과는 상관없기에 모두 자신만의 현실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소수의 사람만이 '사건 사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소수의 사람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자신과 동일시하여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건 같은 경우는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을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도 현실이라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는 나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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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처음엔 선입견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사랑예방백신백신은 소재가 참 독특하답니다. 사랑이 금지된 시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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