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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작가 J.D 샐린저는 베일에 쌓인 인물입니다. 비틀즈의 멤버 존레논의 저격범이 그 책의 주인공에게 영향을 받았다 해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책의 주인공 홀든은 고교생으로 아이들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되는 것이 장래의 희망 입니다. 시종일관 좌충우돌 엉뚱하지만 동심을 잃지 않는 순수한 인물 홀든처럼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 ]란 책을 읽고 작가 J.D 샐린저에 대한 신비가 거두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 ]를 쓴 조이스 메이나드는 예일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18살의 자서전]이란 글을 사진과 함께 싣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은 독자로 부터 수많은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J.D 샐린저 였습니다. 샐린저는 그녀의 재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찬탄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18세 소녀와 35살 연상인 작가와의 사랑은 그렇게 싹 텄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중퇴하고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대 작가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들의사랑은 너무나 견고하였기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일년만에 철저히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한 사람을 보호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가장 큰 원천은 그 사람의 인생에 실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드러내어 말할 수 있는 능력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녀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휘둘렀을뿐 결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주지 못한 위대한 작가와의 과거를 청산하려는 시도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낭떠러지에 지켜서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줄것 같은 [호밀밭 파수꾼]을 하지만 그도 누군가가 지켜주어야하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 누구도 세상에서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음을 알게 된다면 위험한 낭떠러지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되고 호밀밭 파수꾼을 떠날수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어느 누구도 한결 같이 위대하지는 못하고 어느 누구도 언제까지나 피해자로 살아 갈 수는 없다는 것과 사람의 보호와 사랑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기에 변함없이 기다려 주고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음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준 책이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글을 글로 감상할뿐, 그 글의 내용대로 생활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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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개가 달린 빨간색 사냥모자를 쓰고 싶었다. 사춘기 소년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탁월하게 그려낸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말이다. 싫은 것 투성이에 수시로 짜증을 내고 금세 변덕을 부리면서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홀든이 하룻밤 새 벌이는 어리석은 행동들, 혼란과 낭패감을 느끼며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면이 있지만, 잘못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탈에 빠져들기도 하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니까. 홀든은 유일하게 동생 피비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 그녀에게 의지한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그녀의 질문에 스쳐지나간 아이가 부른 노래 속에 나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호밀밭을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 말이다. 또래와 어른세계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홀든은 천진한 아이들이 가진 무구한 세계를 동경하는 듯 보인다. 책이 출간되고 오랫동안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열광과 폭발적인 지지는 작가인 샐린저에게로 이어졌지만, 샐린저는 은둔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사생활과 기괴하기까지 보이는 샐린저의 삶의 일면이 고스란히 노출된 책이 있어 관심을 갖게 됐다. 출판사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나며]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샐린저의 전연인이 펴낸 책을 알리고 싶어 한 것 같지만, 이 책의 원제는 [At Home in the World]로 영민하고 재능 있는 한 여성의 회고록이다. 하긴 지은이는 이 책을 쓰면서 비로소 샐린저와 함께 했던 자신의 선택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진정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니, 타당한 제목 같기도 하다. 1998년에 이 책을 출간할 당시 샐린저의 사생활을 노출한다는 이유로 팬들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 샐린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녀의 자서전에 샐린저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샐린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녀의 자유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조이스는 샐린저에게 편지를 받았지만 편지속의 글은 샐린저의 것이므로 그대로 노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데 샐린저의 편지를 인용한 전기를 쓴 작가와 출판사가 소송을 당해 저작권 침해라는 판결이 난 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편지를 그대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관찰자이자 기록자로 훈련된 그녀는 샐린저와의 만남과 동거 뿐 아니라 그녀의 생 전체를 지독하리만치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대단히 뛰어난 학생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35살이나 연상인 남자를 만나 대학을 그만두고 그와의 은둔생활에 동참하는 과정을 읽는 내내, 신비주의였던 어느 가수의 비밀결혼과 이혼이야기가 자꾸 떠오르기도 했다. 조이스 메이나드에게 유명인사인 샐린저가 먼저 ‘편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는 점,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이 큰 나이차이만 빼면 보통의 연애와 비슷하다는 점, 기이하게 보이는 샐린저가 두 아이의 아버지로 아이들을 끔찍이 위했고 친환경적인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 놀랐다. 12살부터 일기를 쓰던 조이스는 어느 날 ‘엄마처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쓴다. 엄마보다 20살이 연상이 아버지는 이루지 못한 화가의 꿈과 결혼의 속박 때문에 무기력한 알콜중독자가 된다. 가족들은 이 문제를 외면한 채 근근이 살아가는데 박사학위를 갖고도 일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백과사전 세일즈를 하고 잡지에 원고를 팔고, 가정교사, 작문교사 등을 전전한다. 때로 집에서 작문수업을 할 때 조이스는 늘 학생들과 함께 있었고 학생의 답안보다 더 길게 달아놓은 엄마의 논평을 빠짐없이 읽으면서 자연스레 글쓰기를 배우게 된다. 16살의 언니가 엄마를 따라 잡지에 투고해서 상과 상금을 받는 것을 보면서 경쟁의식을 갖는 동시에 자신은 그러한 성취를 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잡지에 응모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조이스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조이스가 목적에 맞게 글을 쓴 후 거실에서 큰 소리로 읽으면 아빠와 엄마는 지적사항을 메모해서 준다. 글을 고치고 다시 크게 읽고 타자기로 쳐서 보냈다고 하니 어찌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있고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극성맞은 엄마가 그러하듯 조이스의 엄마도 자신의 욕망을 아이들에게 투영한다. 특히 엄마의 말에 순응을 했던 조이스는 날씬하기를 바라는 엄마 때문에 생긴 다이어트 강박으로 평생 섭식장애를 겪는다. 조이스는 여학생을 받아 들인지 2,3년 밖에 되지 않은 시기에 예일대에 입학한다. 학교 공부를 힘들게 하면서도 집요하게 잡지사일을 구하고 연극반 활동에도 참여한다. 잡지사의 요청으로 현직 대통령의 딸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이 잡지사에 제안해서 일을 따내기도 한다. 전미국 미스 틴에이지 콘테스트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더니 편집자는 콘테스트 참가자가 쓴 글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에 자신이 뉴햄프셔의 대표가 될 만한 미모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던 지은이는 주최사인 CBS TV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집행위원장의 이름을 알아낸 후 자신을 심사위원의 한사람으로 참가시켜달라는 허락을 얻어 결국은 글을 쓰게 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18살의 소녀가 기획을 하고 설득을 하고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다니 말이다. 이후에도 신문 담당자를 찾아가 자신을 특임기자로 채용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이런저런 일을 제안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당차고 적극적인지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서투르고 어리숙하고 맹물 같은 나는 그녀의 이런 모습에 감탄과 좌절을 반복하며 책을 읽어야했다. 지은이는 짧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될 일을 추진한다. 미스틴에이지 콘테스트에 대한 20매 가량의 원고에서 비판적인 부분은 모두 잘려나가고 6-7매의 밋밋한 내용이 잡지에 실리게 되었는데, 당돌한 조이스는 이 전체원고와 함께 신문사의 일을 맡을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자기소개서를 뉴욕타임즈 편집장에게 보내고, 일주일후 주말판인 뉴욕타임즈 매거진으로부터 원고요청을 받기에 이른다. [18살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글이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실린 이후로 조이스는 일약 스타가 된다. 지면상의 미스 틴에이지가 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질시와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전국에서 수 백 통의 편지가 날아들고 그 속에 한 편지가 조이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샐린저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예일대를 끝까지 마치고 또래의 청춘을 만났더라면 비평가나 기자 등의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떨쳤을 게 분명한 그녀의 뛰어난 재능이 아까웠고 35년의 차이라는 경험치가 다른 사랑이 어쩐지 불공평해보였기 때문이다. 편지를 통해 샐린저는 유머러스하고 현명하고 다정하게 조이스를 단단히 사로잡는다.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던 지은이에게 매번 ‘작가’임을 상기시켜주고 믿어주고 응원해주기도 한다. 조이스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멋진 인생을 창조할 여자이고 세상을 움직일 여자라고 추켜세워 주던 그가 함께 동거하게 됐을 때 도리어 그녀에게 세속적인 단절을 요구하며 그녀의 인생을 가두는 모순을 보인다. 조이스는 자신은 충고를 믿지 않으며 충고할 입장이 못 된다던 샐린저가 끊임없이 충고하는 식의 모순을 지속적으로 느낀다. 결국 낯선 사람들이 보내오는 편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샐린저의 편지야말로 가장 위험했다는 것을 이 책을 쓰고 나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썰렁하다는 조이스의 한마디에 담요를 둘러주고 운동화끈을 묶어주고 머리를 빗겨주던 샐린저는 점점 말수가 줄고 냉정해지고 그토록 찬사를 보내던 그녀의 글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생활은 급속하게 붕괴되어 가지만 조이스는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다. 아이를 갖는 것으로 구원을 받으려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졌을 때 그녀는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게 된다. 동경하고 갈망하던 상대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실에서 사랑은 참으로 부질없고 하찮은 감정으로 전락힌다. 조이스는 버림받았을 때의 슬픔을 간직한 채 무리하게 오두막을 구하고 샐린저가 사는 방식으로 생활하며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면서 매달린다. 그런 그녀에게 샐린저는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진저리를 쳤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뉴욕타임즈 기자로 정신없이 살던 조이스는 예일대 동창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화가인 남편은 아버지처럼 무능력했고 형편이 어려워 중절을 할 정도로 돈에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된다. 그녀는 대필을 하고 여성지에 글을 쓰고 문장을 손질해서 생계를 꾸렸던 어머니의 삶을 그대로 따라간다. 돈을 벌기위해 조이스는 소설 한편을 썼는데, 이때까지도 샐린저에 대한 마음의 끈을 놓지 않았는지 소설을 샐린저에게 보냈다가 ‘구역질이 나는 쓰레기’라는 악평을 듣는다. 어느 출판모임에서 한 여성작가로부터 자신이 고용한 보모아가씨가 샐린저의 편지를 갖고 있더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실연을 당하고 느꼈던 슬픔, 첫 소설에 대한 경멸어린 평을 들었을 때의 두 번째 슬픔에 이어 자신이 샐린저의 인생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큰 상실감과 깊은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30년 이상의 침묵과 프라이버시 유지로 자신을 보호했던 샐린저와 반대로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파는 것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기로 선택하면서 조이스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 샐린저가 보냈던 편지를 다시 읽고 언니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던 당시의 편지를 읽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고 주변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쳐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샐린저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영원히 홀든으로 살기로 작정한 샐린저는 수많은 소녀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남을 발전시키는 행위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샐린저의 집에서 지은이는 결혼생활을 하다가 행방불명되었다는 보모아가씨를 보게 된다. 집 앞에 나타난 조이스에게 78살의 샐린저는 엄청난 분노를 표현한다. 두 사람은 누가 누구에게 이용당했는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기면서 ‘진짜’ 이별을 하게 된다. 명상과 요가를 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았던 샐린저는 어째서 평온해지지 못했을까. 홀든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세상에 환멸을 느끼며 산 그의 재능과 인생이 안타깝다. 이 책을 쓰면서 비로소 뒤틀리고 균형이 맞지 않았던 관계를 똑바로 쳐다보게 되고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포장된 남자를 진정으로 떠날 수 있게 된 지은이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진정한 관계맺기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종류의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조종당하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도. |
| 샐린저는 누구나가 아는 작가이다. 너무나 유명한 덕분으로 나는 오히려 이 사람 책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메이나드책의 광고를 보고 더 흥미를 가지고, 또한 샐린저에 대한 경외심 따위가 없이 읽을 수 있었던 듯 하다. 물론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예습처럼 '호밀밭의 파수꾼'을 한번 읽었다. '단 한번' 읽은 것으로 무엇을 '평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그것은 콜필드나 샐린저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겠으므로 나는 아무 불만 없이, 또한 감동 없이, 메이나드의 책을 읽게 되었다. 샐린저는 대중을 혐오하는 만큼 대중에게 인기가 더 있었고, 메이나드 또한 샐린저의 얘기를 씀으로써 인세를 받았을 것이며, 이러한 일련의 요소가 아니었던들 이 책이 한국어판으로 나왔을 것인가, 또 샐린저의 얘기가 아니었던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냈다고 해서 내가 굳이 관심을 갖고 봤을까, 샐린저가 그렇게 세상에서 숨어들지 않았던들, 우리가 샐린저의 얘기라고 해서 이렇게 관심을 뒀을것인가...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 모든 상황이 영악한 샐린저의 계략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생각보다, 샐린저도, 메이나드도, 그 시대의 미국이란 나라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고백이라고 대뜸 내놓은 모든 요소들은 모두 우리가 이미 겪어오던 문제들이었다. 작가와 작가의 만남이라고 해서 그들의 사랑에 특별한 요소는 없었으며, 숨어든 사람이라고 해서 특이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요, 서른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연인사이라고 해서 영원한 사랑을 가꿔갈 만큼 성숙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은 우리와 비슷할 뿐이었다. 그들이 다른점이 있다면, 아니 정확히 말해 샐린저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와 비슷할 따름인 그가, 스스로를 다르다고 여겼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착각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다. 샐린저에 대한 메이나드의 증언을 보며 한가지 배운 사실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정말이지 '혼자만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샐린저의 삶의 흔적에는 분명히 '어리석은 점'이 보인다. 이 책은 메이나드의 인생에 관한 얘기다. 샐린저의 사생활을 논하기 전에 메이나드는 작가이고, 자신의 얘기로 책을 쓸 권리가 있다. 그것에 대해 만일 샐린저가 아직 화를 내고 있다면, 충고해주고 싶다. '그것조차 계산하지 않았다면, 콜필드의 바램처럼 벙어리와 만나는 편이 나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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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At home in the World) 조이스 메이나드/이희영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파수꾼, 그리고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로 이어지는 호기심과 끌림 그 유명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으로 읽었던 때는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뛰어 놀다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 홀든. 세상과 어른들의 속물 근성과 위선에 맞서는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 존 레논을 저격한 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던 그 책, 왜 그랬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날 우리 나라 영화 ‘파수꾼’을 보고, 불현듯 다시 ‘호밀밭의 파수꾼’이 읽고 싶어졌다. ‘파수꾼’이라는 영화도 잘 만든 독립영화였다. 미국에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면, 한국에는 영화 파수꾼이 있다고 말해도 될까 누구나 지나야 하는 통과의례인 사춘기를 지나며 겪는 청소년들의 우정과 갈등, 사랑 등에 대한 영화였다. 이어 내친 김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나며’도 읽기로 했다. 괜챦은 책이라는 지인의 추천도 있었고, 작가 샐린저와 잠시 동거를 했다는 조이스 메이나드에 대한 호기심도 한 몫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나며’는 사실상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영화 ‘파수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책이다. 독자를 의식하며 쓴 자서전류에 알러지 반응이 있는 나는 글의 초반부에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특히, 딸을 자기의 분신인 양 조종하려 드는 어머니의 모습, 미디어 노출증이 있는 어머니의 허영과 속물 근성이 현재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생각과 함께 거부감이 밀려왔다. 작가는 완벽주의자 어머니와 알콜 중독자가 되어가는 아버지, 작가는 이런 아버지의 존재를 일기에조차 쓰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양육 방식은 집착을 넘어 학대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예일 대학을 진학할 정도의 총명한 소녀가 35세의 나이 차이가 나는 샐린저를 찾아가 함께 살기까지 하는 것, 그리고 이를 허용하는 부모의 지적 허영심에서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만약 샐린저가 그토록 유명한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 부모가 35세의 나이가 차이나는 자기 딸과 비슷한 또래의 남매를 둔 이혼남과 같이 사는 것을 허락했을까? 그것도 아이비리그 대학을 중퇴하고 말이다. 한편 작가의 파수꾼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세상의 평판을 우습게 생각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아예 끊어버리는 은둔생활을 원하는 샐린저. 그는 작가 조이스에게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지 말고 자기 방식의 은둔형 삶과 글쓰기를 원한다. 내가 샐린저라면 이토록 어린 나이의 아가씨와 함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1년만에 헤어질 수 있을까? 이들은 과연 사랑일까? 샐린저와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하고 작가는 새로운 사랑인 스티브를 찾아 결혼하고 오드리, 찰스, 윌리라는 세 남매를 낳아 기르고 그 과정에서 다시 이혼한다. 그러나 그녀는 밥벌이를 위해 글을 열심히 쓰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샐린저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쟁취해 간다. 이 책은 목차에 앞서 자신의 언니와 큰 딸 오드리에게 헌정하고 있다. 왠지 이 부분이 가장 맘에 든다. 특히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이 부모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딸애로 인하여 오늘의 내가 있음을 고백하며”라는 문구… 사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커간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책을 통해 솔직하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샐린저나 자신의 부모님, 아이들에 대한 판단은 거의 없다. 자신이 이러한 사건들로부터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왔는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담백하게 쓰고 있다. 샐린저를 만나기 전에는 엄마의 생각에 지배당하고, 샐린저를 만난 이후로는 쭈욱 그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찾아갔던 샐린저에게 냉대를 당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단지, 샐린저라는 거물 작가의 이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지는 않으나, 상업적 의도가 완전히 배제된 책이라고도 볼 수 없겠다. 이 책은 꼭 읽어볼만한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샐린저라는 작가를 조금 사생활의 각도에서 들여다 보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한 정도의 책이라 할까?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의도가 어떻든 나는 작가 샐린저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의 은둔 취향은 호밀밭의 파수꾼이에서 홀든 콜필드의 모습이나, 작가 스스로 속물적인 세상과 격리되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나는 그가 정말 인간적으로 어린이들의 맑은 영혼을 사랑하는 고귀한 어른이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샐린저는 조이스 외에도 많은 18세 소녀들에게 편지를 쓰고, 친해지고 끊임없이 그 어린 아가씨들과 동거했다는 내용을 보면 뭔가 영혼에 커다란 결핍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 자신에게도 파수꾼이 필요했으며, 아직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 아가씨들로 자신의 파수꾼을 삼았던 것일까? 샐린저는 어느덧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는 2010년 1월에 세상을 떠난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조이스는 캘리포니아에서 아직 열심히 집필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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