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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의 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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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전반기 현대 문학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8명의 작가가 등장하고 10편의 작품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작가의 작품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작가의 작품도 있다. 이 책을 접하면서 일본 현대 문학의 일면을 같이 할 수 있었다는데 가치 부여를 하고 싶다. 그동안 일본 문학은 작가 위주, 작품 위주로 읽었지 문학사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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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전반기 현대 문학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8명의 작가가 등장하고 10편의 작품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작가의 작품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작가의 작품도 있다. 이 책을 접하면서 일본 현대 문학의 일면을 같이 할 수 있었다는데 가치 부여를 하고 싶다. 그동안 일본 문학은 작가 위주, 작품 위주로 읽었지 문학사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어서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일본 문학의 메이지유신부터 일본이 전쟁에 지던 그때까지의 작품들을 일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일본 문학에 조금은 가깝게 다가간 듯한 느낌을 가진다.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일본의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문학 작품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수난기에 그들의 삶과 생각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들의 문학 시계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과정을 겪어 왔음을 보여 준다. 개화기에 위정자들에 의해 계몽적인 글들이 쓰여진 것이라든지, 서구에서 들어온 사조의 영향을 받아 낭만, 사실주의 자연주의 문학이 흥했다든지, 또 이념 문학이 등장했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념 문학에 반발하여 신감각파가 등장하게 되었고, 1차대전 후에는 전위파, 미래파, 다다이즘 등의 사조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습이다. 서로 많은 영향을 주는 관계로 문학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특히 소설 문학에 있어서는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책에서는 각 부분에서 좀 특이한 작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그들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금물이나, 조금은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은 낭만에서 자연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작가인 구니끼다 돗뽀의 ‘대나무 쪽문’을 실었고, 당시 일본 문단에 풍미하던 자연주의에서 구별되어 세속을 잊고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던 나쯔메 소오세끼의 작품 ‘이상한 소리’를 실었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보이는 작품인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란 작품도 보이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야모또 유리꼬의 작품도 담았다. 신감각파에 속하는 설국을 쓴 카와바따 야스나리의 단편도 3편이나 실렸다. 이들 작품을 통해서 시대의 단면을 살펴볼 수가 있다. 군국주의와 전쟁의 패배에 따른 문학가들의 쓸쓸한 현실 관조라든지, 관동 대지진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지배 계층에 대한 소외된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 등 시대를 관통하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문학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특히 문학의 역사는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작품들이 충격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가난으로 인해 사소한 것의 도둑질과 그것이 들통이 남으로 자존심으로 인한 자살을 다룬 <대나무 쪽문>, 부모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대항하는, 부모의 권위도 인정을 하지 않는 도덕률을 보이는 <오오쯔 준끼찌>,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의 자살이 소재가 되어 있는 내용들이 있다. 또 매춘, 유괴 등 비윤리적인 내용이 작품 속에 너무 많이 그려지고 있다. 작가들의 개인적인 성향도 있겠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그와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들의 치열한 삶이 그런 이야기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잘 조각되어 소재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면서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소한 것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는, 특별한 이야기만이 교감이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되었을 듯함을 강하게 느낀다.

 

번역된 글이란 그 표현을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상당히 치밀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글들에서 느낄 수 있다. 그들만의 특유한 문체도 잘 살아 있으리라. 묘사가 뛰어나다. 특히 카와바따 야스나리의 글들, 미야모또 유리꼬의 글, 시가 나오야의 글, 오오오까 쇼오헤이의 글 등은 상황 묘사가 뛰어나다. 글 솜씨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것은 구성의 치밀함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오이 가는 소리’와 ‘숫돌 소리’로 인한 오해를 적절하게 표현 구성하여 긴장감 있게 이끌어 나가는 <이상한 소리>, 17살의 글이라고 보기엔 힘든 선의가 현실에서 좌절 되는 모습을 그린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법정 진술의 형식을 빈 <모닥불> 등 섬세하게 짜여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우연성이 남발하고, 작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적다. 소설의 매력인 치밀한 구조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당대 일본 소설문학의 위상을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책은 위의 모든 제시된 것보다 우선 재미가 있다. 그러면서 감동을 준다. 쉽게 읽혀 나가고, 읽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일본 문학의 역사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한다. 우리의 삶의 영역이 넓어질 듯하다. 주인공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고민을 같이 느끼고, 그들의 삶에 동참하면서 우리의 삶이 풍요롭게 될 듯하다. 소설은 허구적이지만 어느 인생보다 진실하다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린 많은 진실한 이야기에 직면하게 되고, 그 해결책을 각자의 마음속에 되새기게 된다.

 

j****3 2018.05.02. 신고 공감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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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적 삶이 잘 묻어난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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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일본작가의 작품은 그리 낯설지 않다. 현재 한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일본작품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오래되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번역본도 없는 작품들이 수두룩해서 일본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개인적으로 일본사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일본 근현대사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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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일본작가의 작품은 그리 낯설지 않다. 현재 한국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일본작품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오래되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번역본도 없는 작품들이 수두룩해서 일본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개인적으로 일본사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일본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을 접한다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작품을 읽고 싶어도 마음껏 읽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일본 근현대사 작품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파악한 눈치 빠른 사람들이 책을 냈는데 그것이 바로 이‘이상한 소리’다. 이 책에는 현대를 사는 일본인들에게도 낯설 수 있는 단어들, 이를 테면 활동사진, 식모, 소작농, 하녀, 전쟁, 공습 등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재력이 곧 신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동시에 담겨 있어 당시에 상대계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는 8개, 작게는 10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8명의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묶어놓다 보니 이런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8명의 작가의 10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어 당시 일본인들의 실상이 어떠했고 어떤 고민들을 하며 살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난 이 10개의 단편들 중 타니자끼 준이찌로오의 작품인 ‘이단자의 슬픔’에 제일 주목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쇼오자부로오는 니홈바시 핫쪼오보리 라는 몹시도 가난한 동네에 사는 대학생이다. 동네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이 배운 그는 가난한 현실이 싫어 늘 환상의 세계를 꿈꾸며 현실을 도피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학생신분이란 핑계로 놀기만 할 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일을 해봤자 이 가난한 형편에서 벗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겐 특이한 언어 강박증이 있어 아마 일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누가 반복적으로 이상한 말을 해대는 이를 쓰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겁도 많고 신경질적인데다가 어느 하나에 집착하는 버릇도 있으니 이상세계를 꿈꾸는 일 이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그에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쇼오자부로오는 계속해서 집을 나가려고 한다. 가난한 현실이 싫은 것은 물론이고 성실하지만 완고하며 소심한 그의 아버지와 자주 부딪혔기 때문이다. 쇼오자부로오는 못 배우고 무능한 그의 아버지가 못 마땅했다. 아버지 역시 만날 늦게까지 퍼질러 자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이들 부자지간이 아버지를 교양 없는 무식한 인간으로 여기는 아들과 아들을 쓸데없이 밥이나 축내는 게으름뱅이로 여기는 아버지 사이이다 보니 둘은 수시로 충돌했다. 그리하여 쇼오자부로오는 자주 집밖으로 나돌았고 외박을 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의지박약이었던 그는 끝내 부모의 손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이 ‘이단자의 슬픔’에서 가장 주목한 내용은 쇼오자부로오가 친구들에게‘돈 꾸고 안 갚는 짓을 반복’한 장면이다. 쇼오자부로오는 자신이 돈을 못 갚을 줄 뻔히 알면서도 돈을 꾼다. 수입이 따로 없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보니 갚을 돈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수시로 남의 돈을 빌렸고 갚아야 할 시기가 되면 빌려준 이들을 외면하거나 잠수를 탔다. 대부분이 있는 집 자식의 돈을 빌렸는지라 돈 갚을 것을 심하게 추궁 당하진 않았지만 욕을 먹고 원한을 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쇼오자부로오의 친구들의 태도였다. 쇼오자부로오가 숨어 지내다 다시 등장하면 다시 받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고기와 술도 사줘가며 같이 노는 것이 아닌가! 나 같았으면 아무리 그 녀석의 사정이 딱해도 인연을 끊고 다시는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가정형편이 어려웠을 때도 돈은 꾸지 않았다. 외상도 절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모님의 교육 덕분이었다. 애초에 돈 꾸고 안 갚는 나쁜 버릇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정신교육을 시키셨다. 그래서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의 돈을 떼어먹은 적이 없다. 오히려 초등학교 6학년 때 쇼오자부로오 같은 녀석을 만나 돈을 빌려주고도 받지 못한 적은 있다. 만화책 같은 것도 수시로 빌려줬는데 한 권도 돌려받지 못했다. 당시 내가 물건이나 돈에 애착이 없어 잘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는데 그 녀석은 그런 나의 특성을 눈치 채고는 수시로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에게도 원한을 많이 샀던 그 녀석은 지금도 동창회나 특정 모임에 코빼기도 모습을 비추고 있지 않다.

 

시간이 흘러 사는 환경이 달라졌기는 하지만 21세기나 근대나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인 듯 싶다. 외형적인 모습은 조금 달라졌을지 몰라도 인간의 근본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죽음은 Nothing이다. 삶은 어쨌든 something이다.”



d****3 2010.03.17.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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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쪽문이 사라지고, 다시 산울타리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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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일본편은 8명의 작가의 10개 작품이 실려있다. 일본작가 하면 [설국]의 저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밖에 몰랐으나, 얼마 전 추리소설의 대가라고 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문학컬렉션을 읽으면서 반했고, “아사다 지로”의 자전적 연작소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진한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일본편에 소개된 작가 중 그래도 “가와바타 야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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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일본편은 8명의 작가의 10개 작품이 실려있다. 일본작가 하면 [설국]의 저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밖에 몰랐으나, 얼마 전 추리소설의 대가라고 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문학컬렉션을 읽으면서 반했고, 아사다 지로의 자전적 연작소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진한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일본편에 소개된 작가 중 그래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알고 있고, 그밖에 마쓰모토 세이초아사다 지로의 소설도 읽어서인지, 아니면 같은 문화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폴란드편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소함은 그나마 덜한 편이었다.

 

일본편 소설에 흐르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반항과 내면의 갈등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 메이지 유신 초기부터 현대까지의 작품들로 꾸며져 있는 소설들은 가난에 찌든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고,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쿠니끼다 돗뽀 [대나무 쪽문]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나무 쪽문으로 연결된 이웃집의 탄을 훔칠 수 밖에 없는, 그러면서 그 사실을 이웃집 남자주인이 알고 있는지에 신경이 쓰이는, 가난한 아내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처마 밑에 쌓아둔 이웃집 탄 더미가 자신이 한두 개 훔친 후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을 알고 조마조마하던 아내는, 어느 날 남편이 가져온 탄 자루가 훔쳐온 것을 알고 목메어 자살을 한다. 그 후 대나무 쪽문은 없어지고 원래대로 산울타리가 쳐졌다. 가난 때문에 한 여인이 죽었지만 그것은 곧 일상 속에 파묻히고, 이웃집은 커다란 산울타리를 다시 세움으로써 그들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대나무 쪽문]에서 보여준 정원사 부부의 가난한 삶은 연민을 자아내게 하지만 미야모토 유리꼬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에 이르면 가난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하층민들의 행태가 어떻게 굴절되어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지주의 딸인 주인공의 낙천적인 선의가 가난한 소작농들의 현실과 부딪힐 때 양쪽다 고통을 받을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자신은 동정심으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지만 돌아오는 것은 증오에 찬 눈빛을보고 그들에게 도움이되지 못하는 것을 자책하는 주인공은 소작농의 아이들에게 작은 정성을 쏟기 시작한다. 저녁에 농작물을 훔치다 들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낸 주인공은 이제는 더이상 농작물을 훔치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인간의 양심을 믿지만, 그들은 이제 마음 놓고 농작물을 훔치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쏟은 조그만 정성이 알려지자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오기 시작한다. 온갖 핑계를 대며, 가능한 최대한 구차스런 모습을 보이며 주인공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혈안이 된다. 인간이 얼마나,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만, 그것도 배고픈 현실에 부딪히면 가진자의 감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자기가 한일이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베푼다는 것에 굶주렸던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입을것, 먹을것, 돈을 주고 동정했지만 그런것들이 그들의 일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시대와 대상에 따라 분명히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어떤것 이어야 하는지, 그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기존의 가치관과 권위에 반항하는 청년의 내면의 모습을 그린 두 편의 단편이 있다. 시가 나오야 [오오쯔 준찌끼]는 부잣집 도련님의 방황이 그려져 있다. 20살 전후 얼치기 기독교도로서 간음에 대한 고민을 하고, 마음과 육체의 힘 사이의 부조화가 고통스럽기 짝이 없던 시기,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자기집의 가정부에게 청혼을 하고 집안에 알리지만, 그것은 그가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해본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가정부의 해고, 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타니자끼 준이찌로우 [이단자의 슬픔]은 가난한 대학생이 겪는 도덕심에 대해 그려져 있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게으른 어머니, 그리고 폐병으로 죽어가는 여동생 사이에서, 자신만이 인정하는 자신의 천재성만을 믿으며 사는 주인공은 가족들, 특히 아버지 앞에만 서면 무작정 반항심이 솟아나고 불만이나 짜증이 치민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강한 태도를 취하면 반항하면서도 그나마 마음이 편하지만, 혹 눈가에 물기라도 비칠라치면 그러게 왜 처음부터 따스한 말을 걸어주지 않았을까? 자기는 왜 고분고분하지 못할까? 하는 가슴을 에는 서글픔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지만 갚을 능력도, 생각도 없는 그는 갚기로 한날이 다가오면 집안에 처박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자기편한대로 그들이 이제 잊었을 거라 생각하고 또다시 그들에게 다가간다. 사람 사이의 교제를 그저 한두번 만나는 것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에게 동생의 죽음은 그가 그토록 원하던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된다. 우리에게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소설은 작가의 부모자식이 불행에 빠져있던 과거의 한시기를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책에는 병원에 입원한 한 남자를 통하여 죽음과 삶을 초월한듯한 시선을 보여주는 나쯔메 소오세끼 [이상한 소리], 그리고 홀아비로 딸을 키우면서 딸의 초경에 자신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고 당황하는 아버지와,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 사이에서 떨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시마자끼 토오손 [클 준비], 그리고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掌篇,꽁트)소설 3편이 실려있다.

 

20세기초반 우리는 우리대로 일본에 의해 고통을 당했지만, 그 시기 그네들의 하층민과 도시 근로자 역시 가난과 궁핍에 찌들린 생활을 한 것을 보면서, 역사는 승자니, 패자니 하는 것이 지배층을 제외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k*****1 2010.03.05. 신고 공감 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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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출발한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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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어 첫 방학을 맞이하고 독서감상문 숙제를 하기 위해 여름내 낑낑대며 <한국명작단편집>을 읽은 기억이 먼저 스친다. 두툼했지만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족히 한 달이 걸렸다. 쉽게쉽게 넘기지 못하는 막막함이 ‘고전’에 있다고 여기게 되면서부터 고전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혹 일본 아이들은 <이상한 소리>에 실린 소설을 읽으며 오래전 나처럼 낑낑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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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이 되어 첫 방학을 맞이하고 독서감상문 숙제를 하기 위해 여름내 낑낑대며 <한국명작단편집>을 읽은 기억이 먼저 스친다. 두툼했지만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족히 한 달이 걸렸다. 쉽게쉽게 넘기지 못하는 막막함이 ‘고전’에 있다고 여기게 되면서부터 고전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혹 일본 아이들은 <이상한 소리>에 실린 소설을 읽으며 오래전 나처럼 낑낑대지 않을까 싶은 우스운 상상을 하며 책을 펼쳤다.


  창비세계문학 일본편에 실린 작품 중 눈여겨 본 작품은 타니자끼 준이찌로오의 ‘이단자의 슬픔’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영혼에 바친다’는 부제가 달린 이 소설은 쇼오자부로오를 등장시켜 작가의 젊은날의 자기와 마주한다. 진솔한 자기와 마주하려면 자기와 관계된 사람들도 진솔되게 묘사되어야 하기에 다른 소설에 비해 진지하게 다가왔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 <악의>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악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마련했다면 이 소설에선 인간의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은 부분에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끔 한다. 그러면서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흙에서 난 식물이 어디까지나 흙에 뿌리를 박고 생을 향유하듯이 그 역시 현실세계에 집착하여 어떻게든 즐거움을 찾고 싶었다.


죽음은 Nothing이다. 삶은 어쨌든 Something이다. 설령 아무리 힘이 들지라도 Nothing보다 Something 쪽이 나은 것은 분명하다.


  작품의 메시지와 상관없이 ‘죽음은 Nothing이다. 삶은 어쨌든 Something이다.’이라는 짧은 두 문장을 좋아하게 되었다.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고수한 미야모또 유리꼬가 열일곱에 썼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도 오래 기억날 듯하다. 교회 자선회 회장이 된 야마다 부인 묘사하는 부분에선 웃음이 스물 기어 나오다, 읍장 부인이 사망하여 다행스럽게도 자기가 회장에 될 수 있었음에 남 몰래 묘소를 찾아가 감사의 표시를 했다는 장면에선 폭소로 바뀌었다.

  인물의 심층적인 심리나 그에 따른 행동이 돋보이기도 했으나 사회복지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문장이 강렬히 남아 작가가 이에 대한 고민이 깊었음을 짐작케 한다.


나는 찾아오는 이들마다 이번에 얼마라도 받았으니 조금은 편해졌느냐고 물었지만 그들 가운데 그렇다는 이는 한사람도 없었다.


  궁핍한 생활과 인간으로서의 모멸감으로 목을 맨 아내와 이에 개의치 않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새아내를 들이는 남편이 등장하는 쿠니끼다 돗뽀의‘대나무 쪽문’에선 앞에 언급한 두 소설과 겹치기도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서툰 몸부림도 없이 인간이 추악해지는 과정을 아내의 눈으론 아프게, 남편의 눈으론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있다.


  모노드라마 형식의 연극을 보는 듯한 감응을 주는 오오오까 쇼오헤이의 ‘모닥불’은 피고인이 진술하는 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폭격으로 엄마를 죽어가는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아이, 혼자 살아남은 미안함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림자처럼 여생에 드리운다. 마침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기에 이르는데, 자기의 엄마처럼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길 원한다. 이왕이면 어렸을 때 죽었어야 할 자기의 역할이 있으면 좋겠다. 오래전에 종식된 전쟁이 여전히 인간 내면을 파괴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역자의 짤막한 해설을 먼저 읽게 되어 작품의 전체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어 한층 수월하게 다가왔다. 카와바따 야스나리, 나쯔메 소오세끼 이외의 작가는 모두 생소하여 당혹스러웠지만, 반대로 미처 알지 못하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작품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경우도 있으나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대개이다. 초역되는 작품을 읽는다는 즐거움이 짐작보다 컸음을 먼저 밝히고 싶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중단편이 가이드가 되어 훗날 일본 문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맨 뒤에 실린 ‘일본 근대문학의 역동: 메이지에서 오늘까지’는 일본 근대문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더 읽을거리’와 함께 독자에게 풍성한 자료를 제공한다.


  창비세계문학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편을 미리 구입해 두었다. 한 권씩 천천히 읽으며 일본에서 출발한 세계여행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그 다음은 프랑스가 좋겠지?

 



YES마니아 : 골드 a*****4 2010.02.01. 신고 공감 5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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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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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가 최근 세계문학 작품을 시리즈로 냈다.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ㆍ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폴란드 러시아, 일본 등 국가별로 묶었다. 일본 문학작품을 엮은 책이 '이상한 소리'이다. 이 책에는 일본의 근대가 시작된 메이지유신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를 대표하는 작품이 실려 있다. 널리 알려진 작품은 이미 소개된 바 있으므로 중복을 피했다. 상대적으로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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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가 최근 세계문학 작품을 시리즈로 냈다.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ㆍ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폴란드 러시아, 일본 등 국가별로 묶었다. 일본 문학작품을 엮은 책이 '이상한 소리'이다. 이 책에는 일본의 근대가 시작된 메이지유신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를 대표하는 작품이 실려 있다. 널리 알려진 작품은 이미 소개된 바 있으므로 중복을 피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의 작품으로 짜여 있다. 이 책은 일본 근현대 문학을 파악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이 책에는 제목과 동명인 '이상한 소리'를 비롯한 '대나무 쪽문'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이단자의 슬픔' '클 준비' '망원경과 전화' '모닥불' 등 모두 여덟 작품이 담겨 있다. 길이가 길지 않아 짧은 호흡으로 각 작품을 섭렵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된다. 작가가 달라 각 작품의 개성도 다르다. 다양한 일본 근현대 작품을 대할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또 각 작품에는 작품이 쓰인 시대상이 투영되어 있다. 예컨대 이 책의 첫 작품인 '대나무 쪽문'에서 주요 땔감이었던 석탄은 귀중한 생존 수단으로 그려졌다. 대나무 쪽문을 통해 이웃집 여자가 주인공 집안을 드나든다. 우물물을 얻어 쓰기 위해 임시로 마련한 쪽문이다. 집을 드나들면서 여자는 주인공 집안 한편에 쌓아둔 석탄을 조금씩 훔친다. 그 여자의 남편은 상점에서 탄자루를 통째로 훔친다. 가난과 도둑질에 대한 죄책감에 그 여자는 자살한다. 그 남편은 새 여자를 얻어 살지만 예전처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삶을 이어간다. 그 여자의 자살 이후 대나무 쪽문은 치워지고 울타리가 쳐진다.
 
다음 작품 '이상한 소리'는 나란히 붙은 두 병실에서 일어난 일을 그렸다. 옆방 병실에서 무를 강판에 가는 소리가 들린다. 짜증스럽게도 매일 같은 시각에 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소리는 오이를 강판에 가는 소리였다. 직장암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다리에 열을 식히기 위해 오이즙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는 순간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환자는 퇴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사실 그 환자도 옆방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주인공인 '내'가 아침마다 수염을 깎기 위해 면도날을 숫돌에 가는 소리였다. 옆방 환자는 이소리를 부러워했다. 내 건강이 좋아져 아침마다 운동하는 소리로 들었던 것이다. 결국, 오이 가는 소리로 남을 짜증스럽게 하며 죽은 사람과 숫돌 소리로 남을 부럽게 만들며 병이 나은 사람의 차이를 그린 작품이다.
 
이처럼 각 작품은 작은 소재를 통해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던진다. 일본 단편 문학작품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 이 책은 길이는 짧지만 각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여운은 길다. 최근 국내에 일본 책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만큼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은 흔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기고 싶다.
 
 
 

b*****m 2010.07.0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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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세계문학/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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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이런 것일까?   소설을 쓰려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클준비>,<망원경과 전화> <삽화>,<산다화>   소설의 맛은 이런 것이다.라고 알게 해 준 <이상한 소리>와 <모닥불>   소설은 시대의 거울이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 <대나무 쪽문>과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소설은 자신에 대한 질문이며,타인에 대한 물음 일 수도 있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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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이런 것일까?

 

소설을 쓰려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클준비>,<망원경과 전화>

<삽화>,<산다화>

 

소설의 맛은 이런 것이다.라고 알게 해 준 <이상한 소리>와 <모닥불>

 

소설은 시대의 거울이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 <대나무 쪽문>과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소설은 자신에 대한 질문이며,타인에 대한 물음 일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하게 해 준<오오쯔 준끼찌> 와 <이단자의 슬픔>

 

고전을 즐겨 읽지 않았으니,나는 진정한 고전의 향기를 안다고 할 수 없겠다.

그런데,일본편을 읽으면서 '고전'이란 것이 이런 것은 아닐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경험을 맛보았다.

'이상한 소리','대나무 쪽문','가난한 사람들의 무리','이단자의 슬픔'이 특히 각별하게 읽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일 먼저 <이상한 소리>를 읽었다. 진정한 고전이라 함은 세대를 아우르고,시대를 초월 할 수 있어야 함인데,이상한 소리는 아주 옛날에 씌어진 글이란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왜냐면 나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이상한 소리에...나만의 상상을 불어 넣었던 적이 있었기때문이다.차이라면 나는 소설에서 처럼 나의 상상의 소리를 확인 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이겠지.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소리가,누군가에게는 절대절명의 소리일수도 있다는 것!

나 만의 식으로 확대 해석 해 보자면,무심코 던진 돌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 있는 것이고,당신에겐 하챦은 소리고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역지사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 준 글이었다.

<대나무 쪽문> 두말이 필요없다,이것이 사무라이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에 대한 고정된 관념이 있어 그럴지라도,딱 일본스럽다! 라고 생각하게 한 책이다.그래서일까? '대나무 쪽문'을 통해 일본인의 정신과 성격을 살짝 드려다 본 기분이 우선 들었다.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으로 시대적 상황과 일본인의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준 소설이였다.

 

일본편 목차를 보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였다.

처음에는 번역에 거부감이 있었다.(전라도 사투리 버전),그리고 평범한 문장과 상투적인 묘사들,계속 읽어야 하나? 살짝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후반으로 넘어 갈 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다. 마치,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느껴야 하는 비참함이라고나 할까? 80이 20에 지배당하는 이유를 확인 하는 기분이라고 하면,누군가는 지나친 감상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가난에 길들여져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진정한 힘은 얄팍한 동정심이 아니라는 것을,당장의 곡기를 해결할 음식이 아님을...대지주의 그녀는 알게 되지 않던가? 우리 모두가 대지주의 딸처럼 진정한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한다면,가난한 무리,라는 단어는 아마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읽으면서 번역에 제일 불만(?)이 많았던 부분이였지만,가진자들에 대한 풍자와 누군가를 돕는 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기에 그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게 만든 소설이였다.

 

"그는 애당초 교우라는 것에 그다지 큰 가치를 두지 않은 인간이었다. 자기 성격이 제멋대로이고 부도덕하며 몹시 비사교적으로 생겨 먹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평생 자신과 의기투합하는 친구를 만들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그는 우선 어떤 타인에 대해서도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것으로 모두 설명이 될 것 같다.<이단자의 슬픔>은.

이 풍경은 과거형이 아닌,현재진형인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기성세대와의 갈등 혹은 소통부족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은 너무도 닮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예전 같았으면 진부하다 생각 했을 텐데..이단자의 슬픔을 그렇지 않았다. 끝임없이 무능한 아버지 게으른 어머니를 보면서 한숨도 나고,세상을 향해 자신을 가둬버린 그남자도 이해할 수 없음에 답답한 가슴으로 읽어 내렸지만,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도 이렇지 않던가? 이유없이 부모를 죽이기도 하는 세상,이유없이 묻지마 살인이 벌어지는 나라..

이단자의 슬픔을 보듬어주지 않아서라면...

스스로 그들이 이단자로 남길 원했다고 말한다면,굳차한 변명이 되는 것일까?

 

버스에서 일본편을 읽기 시작했다.내려야 할 때,거짓말처럼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설국의 나라로 이미 들어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런 만화같은 느낌과 더불어 하나의 선물을 더 받았다면,보이지 않는 손의 끌림이라 할 수 있겠다.

나쓰메와 카와바따 야스나리를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고,나쓰메와 야스나리 역시도 이름만 들었을 뿐 그들의 책을 단 한편도 읽지 못했는데.

여기에 실린 저자들의 다른 작품이 몹시도 궁금해 지고 말았다.

폴란드편은 재미있게 읽었으면서 궁금한 작가가 특별히 있지 않았는데

일본편의 경우 소개 된 글들은 왠지 빙산의 일각일 것 만 같은...

그들의 재미난 작품은 더 깊게 숨어 있을 것 같은,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고전의 힘인가? 묻고 싶어진다.

w*******i 2010.02.19. 신고 공감 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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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표기가 아쉬운, 훌륭한 작품들의 모임.
"번역과 표기가 아쉬운, 훌륭한 작품들의 모임." 내용보기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맞으면서 근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막부 체제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권력의 판도가 바뀜과 더불어 서양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들이게 된 것이죠. 이와 함께 당연히 문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문학이 갑자기 '나는 근대문학이야!' 라고 선언할 수도 없고, 그 시점까지 읽혀지던 문학의 형식이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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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맞으면서 근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막부 체제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권력의 판도가 바뀜과 더불어 서양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들이게 된 것이죠. 이와 함께 당연히 문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문학이 갑자기 '나는 근대문학이야!' 라고 선언할 수도 없고, 그 시점까지 읽혀지던 문학의 형식이 갑자기 변화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생활면에서는 아마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천천히, '근대문학'이라고 불려질만한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겠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어려워지고 또 그렇게 깊이 알 필요도 없지만 확실히 이 책에 실린 단편집들은 '근대'라고 불리던 때에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의 작품이니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표제작은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한 소리>이며 그 외에 구니키다 돗포의 <대나무 쪽문>,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 미야모토 유리코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단자의 슬픔>, 시마자키 도손의 <클 준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망원경과 전화>, <삽화>, <산다화>,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이 실려있습니다. 대부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없는 작품들 중심으로 엮어져 있어 새로운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의 문학 세계가 이렇게도 깊고 깊은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할까요. 일본어를 전공한 저로서는 일본문학에 있어서도 조금은 알고 있다는 거만한 마음이 폭삭 사그라들고 말았답니다. 대신 앞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문학작품과 작가들을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솟아났지요.  

 

이 중 한 작품만 살짝 소개드려 볼까요? 저는 구니키다 돗포의 <대나무 쪽문>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옆집에는 무척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는데요,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바로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까말까한 가정인 것입니다. 더운물에 만 밥에 반찬은 단무지. 때에 전 홑이불을 함께 덮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또 한 번의 밤을 보내는 부부에게는 집을 따뜻하게 할 목탄도 이제는 없습니다. 결국 아내는 부유한 옆집의 목탄을 하나 둘씩 훔치게 되고 가난한 처지를 한탄하며 남편과 싸움까지 벌입니다. 울컥한 남편은 또 목탄 가게에서 한 자루를 훔쳐오고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결국 목을 매고 자살하고 맙니다.

 

부유함과 가난함, 안타까운 생활의 차이가 짧은 이야기 안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두 가정을 연결하면서도 단절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대나무 쪽문'입니다.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 문을 넘어서는 일이 젊은 부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인 겁니다. 가난에 대한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가 결국 목을 맨 장면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을 매어서는 안된다' 같은 생각이 제 안에는 자리잡고 있거든요. 어쩌면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아보지 못한 자의 호사스러운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가치가 있다는 작품이라고 해놓고 왜 별점이 다섯 개가 아닌지, 궁금하신가요? 이 별점은 작품에 대한 별점이라기보다 번역과 표기에 대한 별점입니다. 출판사에서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표방하고 있는 영어 중심의 일방적인 표기법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각 언어의 독자성에 대한 존중을 취지로 수년 전부터 모든 외래어에 대해 원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한글표기방식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또 '현행 문광부의 외래어표기법은 규정의 통일성을 위해 영어식 발음을 따르고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만, 언어에 따라서는 우리말 된소리가 현지음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라고도 했고요.

 

저는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책읽기가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 출판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예전에 제가 잠깐 일했던 출판사에서는 국립국어원의 표기 규칙을 따르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일본어 'つ' 는 창비출판사에서는 '쯔'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쓰'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도 몇몇 발음은 우리말의 된소리와 발음이 비슷하기는 합니다. 한국어로 표기하기에 불편한 점도 있고요. 하지만 출판사에서도 국립국어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만큼, 표기규칙은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는대로 표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학교에서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있는 표기규칙대로 일본어 표기방식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교육과 실제 쓰이는 표기가 달라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위에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할 때 작품은 책에 있는 그대로, 작가는 국립국어원의 표기규칙과 학교에서의 수업내용에 따라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또, 번역 면에서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빠, 타까 짱이 이질에 걸렸대요......" 하고 그런 표정을 지어가며 말했다. -p64,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 중에서.

위에서 언급한 '그런' 표정이란 대체 어떤 표정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질에 걸린 듯한 표정이란 뜻일까요, 아니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던 걸까요? 문장을 보니 원문이 어떻게 쓰여있었을 지 짐작은 갑니다만, 그 동안 읽었던 근대단편문학 중 이런 식의 읽기 힘든 번역은 처음이었습니다. 문장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요. 적확한 우리 표현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도 잘 압니다. 일본어는 생략과 축약의 미(?)를 갖는 언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할 때조차 그 미를 고스란히 가져와서는 안 되겠죠. 우리 정서에 맞게 고치는 것, 그것이 바로 '번역' 아니겠습니까. 이 작품집은 시장에 내놓은 일종의 '상품'입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의미가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상품은 독자들로부터 원망만 사게 될 거에요.

 

이러니저러지 불평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이렇게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큼은 행복한 일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폴란드, 러시아 편도 출간된 것으로 아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모두 읽어보고 싶습니다

y********j 2010.01.29.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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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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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일본의 대중문화가 우리 대중들에게 개방된 것이 10년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어떻게 보면 짧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생각보다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90년 대에 처음 일본 영화가 상영되었던 때가 생각난다.영화관에서 일본 영화가 상영된 것을 보았을 때, 생소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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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우리 대중들에게 개방된 것이 10년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짧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생각보다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90년 대에 처음 일본 영화가 상영되었던 때가 생각난다.
영화관에서 일본 영화가 상영된 것을 보았을 때, 생소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그때 호기심에 처음 보게 되었던 일본 영화도 난해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일본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오히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할 지 고민이 되는 때이기도 하다.

창비에서 세계문학시리즈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선택하여 읽게 된 책이 ’일본편’ 이었다.
요즘들어 더욱 관심을 갖고 읽게 된 일본 소설들은 현재의 글이고, 그 글들이 지금 일본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면,
이 책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의 보다 다양한 시대상이 담겨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 이전의 일본 글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 창비 세계문학의 일본 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작품 중,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일부러 번역된 적이 없던 작품들을 선별해서 뽑으려고 했다는 점이 이 책에 손이 갔던 첫 번째 이유였다.

이 책의 매력은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일본 문학을 잘 선별해서 담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작품은 이해하기 힘들었고, 어떤 작품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런 느낌들 모두가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 이 책만의 매력이었다.

이 책에 담긴 글 중에서 가장 나의 시선을 끌었던 작품은 우리에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잘 알려진 작가 나쯔메 소오세끼의 <이상한 소리>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을 때,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인간의 모습이 참신하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작가가 쓴 글인 <이상한 소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선입견없이 글을 읽고 싶었는데, 워낙 유명한 작가여서 그런지 먼저 알고 읽게 된 점은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상한 소리>를 읽으면서 첫 장부터 유발되는 호기심에 소설을 읽는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더 읽을거리’가 실려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었다.
다양한 작가의 글이 실려있고, 선별된 그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또 어떤 작품이 있을 지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나처럼 호기심 많은 독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일본과 일본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편을 시작으로 다른 나라 문학과 문화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s*****a 2010.03.14. 신고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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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 / 나쓰메 소세끼 외...
"이상한 소리 / 나쓰메 소세끼 외..." 내용보기
일본 소설을 읽게 된 것은 무라까미 하루끼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읽게 되었던 하루끼의 이야기들이나,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고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쿠니 가오리의 담담한 이야기나 , 두꺼운 분량의 책을 휘리릭 읽게 해준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이나 유머와 위트의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 그러다가 좀 더 예전의 작가들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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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읽게 된 것은 무라까미 하루끼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읽게 되었던 하루끼의 이야기들이나,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고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쿠니 가오리의 담담한 이야기나 , 두꺼운 분량의 책을 휘리릭 읽게 해준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이나 유머와 위트의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

그러다가 좀 더 예전의 작가들을 읽게 된 것이 마쓰코토 세이초나 나쓰메 소세끼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이 책을 통해 메이지유신에서 2차세계대전 이후까지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끼, 카와바따 야스나리정도를 제외하고는 낯선 작가들이었지만

새로운 작가들을 알 수 있다는  이 책의 장점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다


쿠니끼다 돗뽀 < 대나무 쪽문>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거, 그나마 군불에서 석탄불을 때우며 살아가던 그 시절

중산층의 한 가정과 그들와 이웃하여 살고 있는 가난한 한 부부

가난으로 인해 인간의 도덕성을 상실되고 결국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대나무 쪽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아이러니를 낳게 된다. 결국 죄책감과 모멸감에 가난한 부부의 아내는 죽음을 택하지만 그도 그뿐 그의 남편은 그러한 생활을 계속한다. 결국 가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 된다.

그리고 훈훈한 의미의 대나무 쪽문은 경계의 의미의 튼튼한 울타리로 변하게 된다


나쯔메 소오세끼 < 이상한 소리>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남자의 옆방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

강판에 무엇인가를 갈고 있는 듯한 그 소리가 영 거슬리고  어떤 환자이길래 하는 생각에 궁금증만 더해간다

병원을 나오게 되고 결국 그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지만 얼마후 다시 병세가 악과되어 병원을 찾게 되고

마침 당시 그 환자를 간호하던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증을 해소한다

의외로 당시 그쪽 방에서도 이 남자의 방에서 나던 이상한 소리에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면도날을 숯돌에 갈던 그 소리가 죽어가는 병을 앓던 그 사람에게는 희망의 소리, 부러운 소리였다는 말을 듣고는 소리를 가지고도 서로 맘속의 차이를 가질 수 있다는 데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시가 나오야 <오오쯔 준끼찌>

어느 시대를 살아가건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은 그 나름대로의 문제를 가지고 일어나게 된다

부유한 집 도련님인 주인공, 기성세대의 권위,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인 진리등에 반감을 가지고 어찌보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한량같은 남자다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와 결혼을 관철시키고자 반항하지만 결국 결론은 하녀만 집에서 쫒기는 신세가 된다.

아무것도 변화할 수 없는 덜 성숙한 한 젊은이의 가치관과 욕망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굿굿히 관철하고자 하는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듯 하다.


미야모또 유리코 <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그리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는 한 마을

그 마을의 유지인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낙천적인 성격의 한 소녀

그녀의 눈에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그들을 본다 하더라도 그들과의 마찰은 불가피하고 그러한 현실에서 자신의 그러한 마음에 대한 의심과 좌절을 겪게 된다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 , 어찌보면 그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베푸는 사람의 입장에서 베푸는 사람의 맘이 편하고자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기에 그러한 갈등속에서 괴로워하는 소녀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타니자끼 준이찌로오 <이단자의 슬픔>

성공한 작가가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가족간에 있었던 가족사를 어찌보면 반성의 태도로 적어나가고 있는 듯한 이야기이다.

빈민촌에서 살아가지만 이곳은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벗어날 노력은 하지 않고 원망만 하는 주인공 , 무능력한 아버지와 폐병으로 죽어가는 동생 그리고 그 동생을 수발하는 어머니

모든 것이 짜증과 서로에 대한 원망의 연속이다

그러한 와중에 친구들과의 우정에서도 사기(?)행각을 벌이며 지내는 비도덕적인 주인공의 이야기

스스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않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를, 사람들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간의 이기적인 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러한 스스로를 이단자로 그리고 그러한 삶의 과정을 슬픔으로 표현하고 반성의 의미로 어머니의 영전에 솔직한 심정을 그려 바친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카와바따 야스나리 <망원경과 전화 / 삽화 / 산다화>

두 다리를 잃고 행동의 자유를 잃어버린 한 사내에게 망원경이 주어지고 그 망원경을 통한 관찰로 신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망원경속의 사건가지고 각본을 짜고 전화를 통해 사건을 좌지우지하려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젊은 시절 40전짜리 문진을 하나 사면서도 며칠을 고민하던 한 여인

훗날 그 문진을 들여다보며 지금의 젊은세대와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비교하는 잔잔한 삽화가 보여진다

전쟁후 한창 일어난 베이비붐

그 와중에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하도 죽어간 어린 생명들의 이야기를 산다화를 통해 따뜻하게 보여준다


오오오까 쇼오헤이 <모닥불>

전쟁중 공습으로 건물들이 파괴되고 그 와중에 엄마가 불에 타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한 소녀

그 소녀의 삶을 그 이후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직장 상사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지만 또 배신을 당하고 결국 그의 딸을 데리고 나와 같이 죽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쳐 법정에 서게 된다

전쟁이라는 비극과 그것이 한 소녀에게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는 세월들을

법정에서 스스로 고백하듯이 써내려간 아픈 이야기이다


일본 소설을 웬지 꼼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떠하다라고 딱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바람이 숭숭 새나가는 엉성함도 아니고 촘촘해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아닌 적당한 꼼꼼함이라는 느낌이 든다

요즘 이야기들이 아니라 용어들이나 어감들 그리고 상황이 낯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리 낯설거라 황당하지 않고 친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0.05.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좋은 기획과 낯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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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국내에 많은 일본 소설이 출간되고 있지만 출간되는 작품의 대부분이 몇몇 작가의 작품에만 국한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주류를 이루는 연애소설과 추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미스테리물 같은 것)은 일본 사소설 특유의 가벼움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동시에 "일본소설은 지나치게 자폐적이고 경박하다"라는 선입견을 몇몇 독자들에게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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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국내에 많은 일본 소설이 출간되고 있지만 출간되는 작품의 대부분이 몇몇 작가의 작품에만 국한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주류를 이루는 연애소설과 추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미스테리물 같은 것)은 일본 사소설 특유의 가벼움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동시에 "일본소설은 지나치게 자폐적이고 경박하다"라는 선입견을 몇몇 독자들에게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의 근현대문학에 크게 영향을 미친 쇼와시대의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국내에 알려지지 않아 독자가 일본문학 전공자, 혹은 큰 관심을 가진 팬이 아닌 이상 그 선입견을 더 크게 만든다. 내 친구는 오죽하면 "난 일본소설 '같은건' 안 본다"는 다소 독선적인 독서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 에휴.

 

그렇기 때문에 창비세계문학전집의 이번 기획은 훌륭하다. 우선 작가진을 보자. 위에서 언급해던, 일본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쇼와시대의 작가들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나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귀에 익은 작가들도 있지만 미야모토 유리코나 쿠니끼다 돗뽀 같은 작가는 생소했다. 시가 나오야는 그 이름만을 익히 들어왔을 뿐이라 꽤 반가웠다.

 

먼저 이 시리즈의 좋은 점은 표지부터 드러난다. 일러스트 위주인 다소 촌스러운 소설표지가 요즘 유행이지만 세계문학시리즈물들은 그나마 그 유행에서 벗어나 나은 편인데 창비세계문학의 표지는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세련됐다. 유광과 무광이 적절히 쓰인 하드커버의 표지만으로도 일단 소장욕을 강하게 일으킨다. 제목도 썩 잘 선택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문학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고 할까.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는 아주 친절하다. 해당 국가 문학의 유수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 이 단편이 작가의 작품세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작품의 끝에는 작가의 국내에 출간된 다른 책들의 소개가 출판사와 출간 년도와 함께 소개되며 간단한 추천이 씌여있다. 작가의 책이 안타깝게도 한 권도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면 외서이긴 하지만 해당 언어가 되는 독자라면 한번쯤 작가의 대표작인 무엇 무엇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정말로 친절한 설명을 해준다.

 

이러한 설명을 위해선 편집자의 성의 넘치는 서비스 정신과 끈기가 필요하다. 이런 시도는 이제까지 본 세계문학 시리즈 중에선 처음 보는 것이라 매우 감탄했다.

 

 

다만, 창비 특유의 '최대한 소리나는대로 쓴다'는 외국어 표기법은 매우 낯설다. 마치 80년대 해적판 일본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다. 좀 심한 말일까? 하지만 이미 일본소설은 국내 베스트셀러 순위에 상위권들을 차지하게 될 정도로 대중화된지 오래이고 일본만화나 드라마같은 서브 컬쳐의 파급력은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의 표준외국어표기법에 맞춰진 일본어 표기에 익숙하리라 생각한다. 본문에 나온 "키모노"나 "타다미", "도오꾜오"같은 표기는 매우 어색하게 느껴져 몰입을 방해할 정도였다. 등장 인물의 이름을 표기한 방식에는 말할 것도 없다. "상"이나 "쨩"같은 존칭(?)에 대한 표기는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독자가 보기엔 무슨 뜻인지 몰라 혼란스러울 것 같다. 일러두기 를 표기해 편집 방향을 알려줬으면 더욱 좋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번역에도 다소 어색하다싶은 부분이 없지 않은데 이건 원문을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넘어간다.

 

내용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선정이라고 느껴진다.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단자의 슬픔>은 일본소설 특유의 자전적 성향이 강한 소설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미야모토 유리코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는 작가가 사춘기 소설에 쓴 소설인 만큼 다소 나이브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한국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된 일본의 공산주의의 초기 전파를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어색한 외국어 표기가 다소 아쉬웠지만 이건 일본어 표준어 표기에 익숙해서 그럴 것이고 다른 국가의 작품집은 그런 장애가 훨씬 덜하리라 생각한다. 

 

 

g******a 2010.02.0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