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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로 간 그들의 휴대품으로,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가스실로 간 그들의 휴대품으로,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내용보기
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의 주제의식을 압축하는 키워드는 눈물과 감동이라고 한다.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외침을 겪으면서도 민족의 주체성을 지켜왔다는 점이 대륙과 해양의 틈바구니에서 유사한 사례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근 현대사에서 격변의 현장이었던 폴란드의 사회, 역사적 상황을 폴란드
"가스실로 간 그들의 휴대품으로,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내용보기

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의 주제의식을 압축하는 키워드는 눈물과 감동이라고 한다.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외침을 겪으면서도 민족의 주체성을 지켜왔다는 점이 대륙과 해양의 틈바구니에서 유사한 사례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근 현대사에서 격변의 현장이었던 폴란드의 사회, 역사적 상황을 폴란드적인 감성과 시공을 초월해 감동을 줄 수 있는 독창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역자들은 밝히고 있다.

 

책은 폴란드 작가 6명의 10개의 작품을 담고 있는데, 솔직히 아는 작가가 한 명도 없다. 편식과 국수주의(?)로 무장된 나의 책 읽기를 보는 것 같아 조금은 민망하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이라도 이런 작품들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10편의 작품 중 감동을 주지 않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보게 하고, 나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헨릭 시엔 키에비치 [등대지기]는 조국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던 노인의 이야기 이다.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 하나로 그의 삶을 지탱해 오던 노인은, 나이가 들어 기력도 쇠하고 인내심도 운명에 길들여져,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방랑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도 없는 바위섬의 등대지기로 정착을 하지만, 불현듯 찾아온 폴란드 어로된 시집 한 권이 그로 하여금 고향을 생각하게 하고, 조국을 생각하게 한다. 그 책으로 인해 다시 방랑의 생활로 내몰리지만, 노인의 품속에 소중하게 안겨있는 책 한 권은 아마 그에게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상황은 다소 틀리지만, 돌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또 다른 작품으로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예비츠 [빌코의 아가씨들]을 들 수가 있다. 고향에서 생활하다 장교로 양차대전에 참전하고 타향에서 농장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빅토르 루벤은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에 휩싸인다. 의사의 충고에 따라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 빅토르는 자신이 젊었을 때 가정교사를 했던 빌코농장으로 향한다. 때마침 농장의 여섯 자매는 휴가를 맞이하여 모두 농장에 와있다가 15년만에 그곳을 방문하는 빅토르를 보고 예전과 다름없이 대해준다. 빅토르는 옛 생각에 잠겨,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빌코의 그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전쟁전 빌코에서 그녀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기억 속에서 선명하지만, 이미 대부분 결혼했고, 아이들의 엄마가 된 그녀들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음을, 옛날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수많은 번민과 그곳에 정착하기를 바라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현재의 삶이 소중함을 깨달은 빅토르의 돌아오는 발길이 활기에 넘친다. 과거의 영화와 추억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볼레스와프 프루스 [파문은 되돌아 온다]는 우리의 옛날을 되돌아 보게 한다. 19세기 후반 자본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일밖에 몰랐던 직물공장 사장 아들러는 자신의 삶을 아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은 일밖에 몰랐지만, 아들은 향락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그의 아들에 대한 맹목적적인 사랑은 아들의 방탕에 일조를 한다. 아들이 유흥비로 돈을 탕진하면 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그돈을 메우곤 한다. 어릴적 고향친구 뵈메목사는 아들러에게 계속 충고를 하지만 아들러는 듣지 않는다. 아들의 방탕과 아들러의 착취는 결국 종업원을 죽음으로 내몰고,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아들은 호기로 결투끝에 죽는다. 아들이 죽는것을 본 아들러는 미쳐서 공장에 불을 지르고, 그렇게 공장은 단 몇시간 만에 잿더미로 변한다. 연못에 돌을던져 일으킨 파문은 가장자리에 이르면 처음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오듯, 아들러와 그의 아들이 세상을 향해 내보냈던 파문은 어김없이 그들 자신에게 되돌아 왔다. 산업화시대 이웃나라의 제조공장 역할을 하던 폴란드의 비극이 우리의 과거와 겹쳐져 떠오르는건 왜일까? 우리도 그때 분명히 밖을향해 파문을 내보내었고, 그 파문은 그대로 되돌아오지 않았을까? 아니 지금도 파문을 내보내고 있지는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그런가 하면 가난을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가슴을 시리게 하는 작품도 있다. 어린이 심리묘사의 백미로 일컫는 마리아 코노프니츠카 [우리들의 조랑말]이 그것이다. 어머니는 아파서 누워있고, 아버지는 조랑말로 강변의 자갈이나 모래를 나르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어린 삼형제는 하루하루 놀이에 빠져 슬픔 따위는 모른다. 추운 겨울, 아버지가 일을 할수 없게 되어,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팔아서 생활하지만, 삼형제는 그것이 신난다. 이제는 무엇을 팔아야 할지 서로 찾아내기에 바쁘고, 고물상을 서로 먼저 데려오려고 싸운다. 마침내 조랑말을 팔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슬퍼하지만, 어머니가 죽고 사람들이 문상을 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어머니의 관을 운반하기 위해 조랑말이 오자 아이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장례가 끝날 때까지 조랑말과 놀기에 바쁘다. 가난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이, 학교 교육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예절마져도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아이들이, 옛날의 우리를 생각나게 해서 서글프고, 급식비가 없어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요즘에도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가슴을 아프게 한다.

 

타데우쉬 보조프스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는 인간이 얼마나 구차하고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만행을 묘사한 소설로 수송열차로 실려오는 사람들, 트럭에 실려 소각장으로, 가스실로 가는 사람들, 먹을 것을 차지하고 가스실로 가는 것이 늦춰지는 것에 안도하며 하역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수송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식을 팽개치고 수용소로 가려 하는 엄마, 수송되어 오면서 열차 안에서 죽은 어린아이들과 장애인들, 그들을 트럭에 실으며 무감각하게 숫자를 기입해나가는 장교들, 하역이 끝난 후후 그들이 가지고 온 휴대품속의 음식물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으로 수용소에서 목숨을 연명해 나가는 사람들 결코 잊어서도 안되고, 용서할 수도 없는 죄악을 소설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731부대나 정신대의 만행이 떠오르고, 몸서리 쳐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감정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얼마나 악독해지고, 또 얼마나 구차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씁쓰레한 생각이 든다.

 

그 밖에도 동생이 죽고 나서야 형제간의 사랑을 깨닫는 [자작나무 숲]이나, 가난한 부부의 진한 사랑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모직조끼]도 감동을 주고 있다.

 

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을 읽으면서 그들이 우리와 유사한 근대사적 경험을 갖고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쉽게 공감이 간다. 폴란드편의 제목은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이지만, 공업화의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고용주의 삶을 대비시킨 [파문은 되돌아 온다]와 빈민층의 비참한 생활상을 어린 삼형제의 눈을 통하여 보여주는 [우리들의 조랑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k*****1 2010.03.01. 신고 공감 13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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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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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단편을 읽을 때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상상은 <빌코의 아가씨들>을 읽으면서 상상이 아니였음을 알았다. <빌코의 아가씨들>은 이미 폴란드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빌코의 아가씨들만이 아니라,등대지기 부터 노동자들까지 모두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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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단편을 읽을 때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상상은 <빌코의 아가씨들>을 읽으면서 상상이 아니였음을 알았다.

<빌코의 아가씨들>은 이미 폴란드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빌코의 아가씨들만이 아니라,등대지기 부터 노동자들까지 모두 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 인 듯도 한데,이상하게 책을 읽으면서 장면마다 영상이 그려지고,인물들의 목소리에서 배우들의 대사가 들리는 환청을 경험했다.

 

요즘,나의 책 읽는 경향이 책 속에서 그림을 찾아내는 것이어서 그런것일까?

<우리들의 조랑말>을 읽으면서 나의 느낌을 분명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그림이 있었다.바로 바실리페로프의'마지막 여행'이란 그림이 그것이다.누가봐도 묘지로향하는 그림인 것인데, 철없이 뛰어놀고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으나,어머니를 조랑말에 싣고 묘지로 향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그림과 닮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소설 속에서는 끝까지 아이들을 순수하게 묘사했지만 말이다.

 

<신사 숙녀여러분,가스실로>의 시작은 등대지기라는 작품이었다.

'등대지기'를 읽기 시작 할 때부터 직감적으로 느꼈다.폴란드편을 재미있게 읽으리라는 것을.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바다>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등대지기>

아주 짧고 간결한 문장들이었지만,노인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그의 굴곡졌던 삶을 군더더기 없이 묘사하는 부분이라든가,노인 스르로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안식처 섬에 대해..당신이 진정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당신의 나라였음을 그가 잊고 지냈던 모국어의 시를 통해 알려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파문은 되돌아 올까?

<파문은 되돌아 온다>를 읽으면서 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그려보았다. 역사라는 것이 돌고 돈다고 했으니,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역사를 반추해 보는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안치환 가수가 불렀던 '부메랑'이란 노래처럼 말이다.

사실,나 역시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었다.그런데 다 받은 만큼 돌려 받는 다는 그 말에 그만 마음을 접었던..

연못의 파장을 비유한 목사의 설명은 여전히 나에게 물음표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여론이란게 너무 물러터진 것 같아요 정직한 사람들이 권력을 거머쥔 자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니.."

 

여론이 바로선다면,권력을 가진 자들이 정직한 이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이전의 과오들이 파문으로 돌아와 심판을 받게 된다면...

그 이후 모든 이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을까?

파문은 되돌아 온다를 읽는 동안 나는 폴란드의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대한민국의 현재에 있었다.소설에서처럼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숱한 잘못의 결과들이 파문으로 그들에게 되돌아 가길..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읽고 말았다.

복잡한 마음에 위로라도 받으라는 듯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모직조끼>였다.아주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은 아니었다.그러나 사람들에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탐욕스러운 권력의 욕심의 군상을 만나는 것 보다는 한결 마음이 맑아 지는 기분이 들게 했다. 이 또한 아주 짦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그려지는 매력이 있었다.

 

<빌코의 아가씨들>과<자작나무숲>이 두편은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길이도 가장 길고,가장 대중적(?)인 글이었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빌코의 아가씨들이 영화로 만들어 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최근에 구운몽을 읽은 탓에 빌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빅토르가 양소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저마다의 자매들과 로멘스를 뿌리는 것이..줄거리를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으나 빅토르의 의유부단함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자기 스스로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불편한 그림 일 수도 있겠다.그러나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을 외면 할 수는 없는 것이다.'수용소 문학'이란 것이 대량학살을 예술화 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물음도 있다고 했다.그러나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점에서 나는 독일의 만행에 대한 다양한 영화 책들이 부러울 정도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로> 제목만 들어도 우리는 이미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직접 읽고 보지 않았더라도 귀동냥으로 들은 말로도 그 이야기는 차고 넘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로>는 잔인한 고문장면이 나오지도 독일의 만행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고발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 왜 자살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우리는 느끼게 될 것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로>를 읽고 나면 다시 짧은 단편들이 기다리고 있다.

<구름 속의 첫걸음> 제목에서 느껴지는 상큼함(?)은 급 반전을 담아 내고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흔히 목격하게 되는 묻지마..식 사건들~

<노동자들>이란 작품은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들의 버거운 현실들을 말이다.

 

고전에 취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늘 나의 컴플랙스였다.창비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세계단편들은 그래서 고마웠다. 일단 장편보다는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스페인을 거처 러시아로 그리고 중국에 이어 이제 폴란드에 도착했다.

이전의 읽은 책들도 재미있었지만,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었던 것은 폴란드편이였다.읽는 단편 마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영상을 떠 올리며 읽었으니 말이다.

 


 

w*******i 2010.02.12. 신고 공감 1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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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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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문학은 거의 접해보지 못해서 이번 책이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권의 책으로 폴란드 문학에 대한 생각을 단정 짓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조금은 단조롭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한 글들이었지만 그 속에 인생과 사랑 그리고 좌절과 고통, 절망 또한 희망 등을 느낄 수 있어서, 이 책을 통해서 폴란드 문학을 다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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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문학은 거의 접해보지 못해서 이번 책이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권의 책으로 폴란드 문학에 대한 생각을 단정 짓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조금은 단조롭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한 글들이었지만 그 속에 인생과 사랑 그리고 좌절과 고통, 절망 또한 희망 등을 느낄 수 있어서, 이 책을 통해서 폴란드 문학을 다양하게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듯 하다.


“대지 위에서 올려다보니 하늘을 구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무덤 속의 재마저 혹한에 몸서리칠 만큼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저 구름 뒤에 태양이 없으리라고 감히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책 166쪽 ‘모직조끼’에서 발췌)


폴란드의 역사와 그로 인해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인생의 경험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적인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느낄 수는 있었지만 좀 더 알고 있었더라면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대전으로 인해, 러시아와의 관계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이들의 삶의 무게가 격정적이거나 강한 어조가 아니어서 그런지 오히려 더 깊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또한 생의 여러 순간에 만나게 되는 인간의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 글들이 있어서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다양한 느낌의 폴란드 문학을 접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 상당히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모든 고난을 홀로 견디며 지내왔던 노인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등대지기로서의 삶, 드디어 안정을 찾은 듯 보여 지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한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또,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음에 서로를 속이게 되는 부부의 모직조끼, 경제적인 체제의 전환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과 이를 보다 직접적이고 힘겹게 경험해야만 하는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의 삶, 사랑이라는 감정 앞의 인간의 모습과 관계들 그리고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변화들을 보여주는 글까지 여러 단편들이 어우러져 있는 한권의 책이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가 아닐까 한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각 단편의 문장들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편안하고 솔직하게 느껴져서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 더 직접적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최근에 읽었던 소설들에 비해서는 문장이 조금은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한권의 책을 통해서 폴란드 문학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문학을 접하게 됨으로 인해 삶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모습과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d*******p 2010.02.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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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폴란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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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세계문학' 전 9권이 나왔다. 19~20C 초에 이르는 세계 근현대 문학 100년을 대표하는 작품들은 9개 어권으로 나누어서 편집을 하였다. 그 중에 폴란드 문학의 걸작들을 묶은 것이  폴란드편인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이다. 내가 2000년 여름에 동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하던 중에 들렀던 나라가 폴란드였다. 그때만해도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된지 얼마 안되어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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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세계문학' 전 9권이 나왔다. 19~20C 초에 이르는 세계 근현대 문학 100년을 대표하는 작품들은 9개 어권으로 나누어서 편집을 하였다. 그 중에 폴란드 문학의 걸작들을 묶은 것이  폴란드편인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이다.

내가 2000년 여름에 동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하던 중에 들렀던 나라가 폴란드였다. 그때만해도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된지 얼마 안되어서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강하게 아직까지도 머리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소금광산' 관광중에 아이를 업고 온 한국 여인과 동행을 하게 되었었는데, 그당시 폴란드의 그단스크에는 '대우조선'이 있었는데, 남편이 거기에 근무하고 초등학생의 자녀도 있었다. 동유럽 국가중에 낙후한 편인데도 그녀의 아이들은 한국의 학교보다 폴란드의 교육시스템에 더 잘 적응하고 자녀들은 한국에 가기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폴란드가 교육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많이 앞서가고 있음은 노벨상으로도 입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인물로 쇼팽, 코페르니쿠스, 퀴리부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4명이나 배출했다.

 
      (소금광산안의 소금으로 만들어진 성당과 성모 마리아상)

또한, 폴란드는 유럽에서는 낙후된 지역이기는 했지만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인 러시아,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18세기 후반부터 1차 대전끝날 때까지 120여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이번 민족의 수난기에 '폴란드 문학'이 발달하기도 했고, 2차 대전의에 있어서 독일이 가해자라면, 유태인들은 피해자였고,학살의 장소가 되었던 곳의 대표적인 곳이 폴란드였기에 폴란드인은 학살의 증인이자 말없는 목격자들이었다. 그것이 전후에 '수용소 문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폴란드 문학은 풍부한 상상력과 세계사적 경험을 자양분으로 독창적 문학 세계를 창조했으며, 세계 문학에서의 자리를 분명히 했다. (P4)

이 책은 폴란드 작가 6명의 작품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의 키워드는 '눈물과 감동'이다. 또한 작품의 수록이 연대순에 따라 실려 있기때문에 폴란드 문학의 변해가는 흐름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책의 구성은 한 작가의 작품마다 '작가 소개'- '간단한 작품 소개'- '작품 수록'- '더 읽을 거리'의 순으로 배열하여 작품 이해를 더욱 쉽게 도와주고 있다.

 
 * 헨릭 시엔키에비츠 (1846~1916)

문학을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켜서 폴란드 문학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작가로 폴란드가 러시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3국에 분할 점령 통치되던 시기에 조국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되새기는 역사소설을 집필해서 애국심과 독립의지를 일깨웠던 작가이다. 이처럼 작가의 탁월한 필치는 총, 칼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05년 노벨 문학상 수상, 그의 작품중에 독자들에게 낯익은 것은 네로황제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서 40여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한 세기적인 베스트 셀러인 '쿠오바디스'가 있다. 또한 헤밍웨이가 존경한 작가이기도 하다.

(1) 등대지기: 폴란드인인 스카빈스키는 일흔살이 넘은 노인인데, 세계 4대륙의 갖가지 전쟁에 참전했을 정도로 인생의 굴곡이 심한 사람이다. 남은 인생의 안식처로 생각하고 꿈결과도 같은 행복과 편안한 삶에 만족을 한다. '그 동안 노인의 인생은 비바람에 돛대가 부러지고 밧줄이 끊어진 배와 같았다. '(P16) 구구절절 표현할 수 업슨 수많은 모험들을 겪은 그의 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인생의 흐름을 따라 흘러 흘러 파나마에서 멀지 않은 애스핀월이라는 항구의 등대지기가 된다. 밤에 등대에 불을 밝히는 것이 임무이다. 하루라도 불이 안 켜지면 해고이다. 노인은 이곳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낼 생각으로 꿈결과도 같은 행복과 편안한 삶에 안주한다. 어느날 배달된 소포인 한 권의 책, 폴란드책, 노인이 자신의 고향인 '폴란드 이민자 협회'에 월급의 절반을 기부했는데, 그곳에서 보낸 책이다. 등대에 살고 있는 자신의 깊은 고독속에 던져진 한 권의 폴란드 책, 노인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특별한 책이다. 폴란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시인의 시집이다.그동안 세계 각국을 떠돌면서 살았기에 모국어를 듣지 못한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른다. 옛 폴라드의 모습을 그리며 그 감동에 젖어 결국 그날 저녁에 등대의 불을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노인은 새로운 방랑의 길을 떠나야만한다. 그러나 그의 눈은 햇살처럼 빛나고 품 안에는 새로운 인생길의 동반자가 될 책 한 권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다.

역시, 단편이 주는 짧은 글 속의 감동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운 글 솜씨가 돋보인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뜨거운 조국애와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폴란드 국정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한 작품이며 폴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단편소설이라고 한다. 헤밍웨이가 시엔키에 비치를 존경하였다고 했는데, 헤임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도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문체가 아주 평범하면서도 서정적인데 작품이 주는 감동은 그 이상이다.

* 볼레스와프 프루스 (1847~1912)

'폴란드의 발자끄'라고 불린다.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가진 작가이며 톨스토이에 비교되는 서사적 스타일과 체호프에 견 줄 수 있는 소박한 유머를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소설을 통해서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을 파헤치고 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한다. 그의 소설을 '19세기의 파노라마'라고 부른다.

(2) 파문은 돌아온다.

산업혁명이후의 맨체스터에 견줄만한 공업도시로 발달한 곳이 '우츠'이다. 이곳에는 방적공장이 들어서면서 폴란드인, 러시아인, 유태인, 독일인 등 다양한 인종이 모이게 된다. 이곳은 '약속의 땅'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들러 고틀리프는 처음에는 공장 노동자면서 그저 그렇게 향락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일하던 공장에 불이 나고 5층에 갇힌 노동자를 구해주면 3백 탈러를 주겠다는 사장의 말에 자신의 기지를 발휘하여 불길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돈을 거머쥐면서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다. 돈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는 고리대금업자, 구두쇠, 간교한 술책등을 동원하여 돈을 모아 직물공장을 세운다.그의 영혼은 '돈'과 '일'... 그에게는 어릴때 엄마를 잃은 아들 페르디난트가 있다. 그가 유럽을 돌아다니며 향락에 젖어 날린 돈은 고스란히 600여명의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으로 이어지고 긴축 재정으로 복구된다. 아들이 날린 돈이면 공장에 학교와 시설들을 지을 수 있지만, 학교도 없어서 노동자들의 아이들은 외딴 공장지대에서 격리되어 허송세월을 보낸다.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아들레르 고틀리프와 그 아들의 노동자에 대한 만행, 그리고 근대화의 발달 뒤에 숨겨진 어두운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대로 비쳐진다. 이런 상황속에서 몇 개월째 시간외 작업이 이어지고 과다한 업무에 기술자 고스와프스키가 과로로 기계톱니바퀴에 팔꿈치가 으스러져서 피를 흘리지만 이미 의사와 간호사가 해고되어서 치료를 할 수가 없다. 밤길에 술에 취해 마차를 몰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의사를 부르기 위해 말을 빌리려고 하지만 말이 피곤하다고 거절한다. 결국에 기술자는 싸늘한 시체가 되고,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에 마음이 상한 아들은 검사 자포라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결과는...

고틀리프의 꿈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던 아들이 없는 공장이란, 과연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면화값이 폭등할 것을 대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던 공장이 활활 타오른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공장의 주인의 부당함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노동자들. 어떤 조건을 내세우다가 해고당하면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안락일지도 모른다. 목사가 친구인 고틀리프에게 이야기했듯이 '파문은 파문을 몰고 온다. 일으키면 일으킬 수록 더욱 커지는 파문을....

"저 파문이 얼마나 크게 번져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멀리까지 흘러가는지도 보이나?" (...) " 언제나 어디서나 늘 당연히 일어나는 파장일세, 연못에서도,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도,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세상을 향해 던져지고 나면, 그 주변에는 점점 더 커다란 파문이 생겨나고, 점점 더 멀리 퍼져 나가게 마련이네..." (p110)

'유능한 사업가이자, 생존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싸웠던 인물, 수십 년 동안 돈을 모아 백만장자의 꿈을 이룬 아들러는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파문은 되돌아 왔다.' (p150)

이 곳에 모인 다양한 인종들의 관계, 감정적 대립, 차별, 그리고 때론, 이해와 공감, 이런 것들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격변했던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3) 모직조끼

폴란드의 주택구조상 자신의 집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앞 집의 젊은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폐병에 걸려 하루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남편에게 모직 조끼가 너무 커 보이자,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병세가 악화되어서 마르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모직조끼를 줄여 나간다. 남편의 죽음후에 아내가 고물상에 판 모직조끼를 화자가 사서 수집품으로 가지게 되는데, 그 모직조끼의 버클과 허리끈에는 두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남아 있다. 남편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매일같이 버클을 잡아 당겨서 끈을 조였고, 아내는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매일 밤, 남편이 잠든 사이에 몰래 끈의 길이를 줄였던 것이다. 문헤가 사실주의적이고 젊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이 작품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특히, 화자가 창문을 통해서 부부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설정이나, 나중에 아내가 그 집을 떠나면서 고물상에게 판 낡고 해진 모직조끼를 화자는 자신의 수집품들과 함께 오래도록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마리아 코노프니초카 ( 1842~1910)

폴란드 대표적인 여성시인이자 동화작가, 단편소설가이다. 어린이 학대반대 시위등을 주도했으며, 사회의 모순과 고통받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하면서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작품들을 남겼다. 여덟명의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여 어린이의 사회적 위상 정립에도 나섰다. '우리들의 조랑말'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였다 한다.

(4) 우리들의 조랑말

너무도 척박하고 가난한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는 가난이나 불행의 심각성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슬프고 마음이 에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가 화자이다. 그렇기때문에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가난의 모습, 병든 어머니와 가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순진한 3형제의 눈으로 바라본 19세기말의 폴란드 빈민층의 생활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가난이 익숙해져서 그 고통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어머니가 오랜 병으로 누워 있는 집안, 아버지는 조랑말을 가지고 강가에서 흙을 퍼내서 생계를 유지한다. 추운 겨울이라 일감도 없다. 엄마의 약값과 끼니를 위해서 집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 둘씩 고물상에게 팔려간다. 침대, 이불, 베게를 판다. 그래도 아이들의 건초더미의 잠자리가 신나기만 하다, 의자가 팔려 나가는 날에는 고물상에 의자를 운반하면서 신나서 앞에 의자를 메고 음악대처럼 행진도 한다, 엄마가 아끼던 법랑 남비, 다리미, 의복이 그 집의 사정을 알기에 헐값에 고물상은 거래를 하고, 이어서 또 팔려 나간다. 그래서 얻어지는 것은 끼니로 감자 몇 알.... 어느날 아버지는 아코디언 연주를 하면서 추억을 상기하고 눈물을 흘린다. '머릿속에서 슬프기도 하고 경쾌하기도 한 아코디언의 멜로디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 (p198) 그날밤에 아버지의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져 있다. 이젠 모두 팔아서 집안이 텅비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놀이로 조랑말을 데리고 놀곤한다. 늙은 조랑말, 한 눈이 장님인, 관절염을 앓고 있는 비쩍 마른 조랑말, 조랑말의 먹이가 되는 귀리값이 비싸서 조랑말도 헐값에 팔린다. 어느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관을 싣기 위해서 조랑말이 당도한다. 아이들의 친구였던, 놀이였던 조랑말, 아이들의 어머니의 죽음의 의미도 모르는채 묘지까지 조랑말을 앞세우고 신나게 걷는다. 위풍당당하게... 묘지에서도, 돌아오는 길에서도 조랑말을 만나게 된 것이 기쁘기만해서 조랑말의 양옆에서 함께 행진을 한다. 너무나 천진스러워서 더 슬픈 이야기, 이것이 19세기의 폴란드의 실상일 정도로 가난에 익숙해져 살아온 민족들이다.

*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 (1894~1980)

우크라이나 출생, 1918년 바르샤바 이주, 양차 전쟁중에 외교관, '폴란드 현대문학의 산 증인'으로 격변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묵묵히 견디며 폴란드 문학 발전에 기여, 문학 뿐아니라 음악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음악가들과도 우정을 나눔.

(5) 빌코의 아가씨들

1,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친구 유렉의 죽음으로 인한 심적 갈등으로 3주간의 휴가를 젊은 시절 한때를 지냈던 '빌코'를 찾게 된다. 빌코를 떠난 후의 자신의 인생이 꼬이고 달라지게 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빌코는 저택이 따린 농장이었는데, 그곳의 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쳐 주었었다. 15년 전, 젊은 날 빌코에서 겪었던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추억들, 그것은 그곳에 예쁜고 아름다운 여섯 명의 자신의 학생이기도 했던 아가씨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젊은 날의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p250)그런데, 빌코의 아가씨들은 이미 결혼하기도 했고, 이혼을 하기도 했고,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막내만은 아직도 20대 초반이지만, 그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그는 잊고 지냈던 15년이란 세월이었지만 빌코의 아가씨들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그동안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자기가 그녀들에게 중요한 역할, 큰 의미를 가진 존재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자신의 의미가 그녀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갈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힐 듯하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부서졌고, 깊은 안개 속에 묻혀 버린 것이다. '(p304)

추억속의 여인들에게서 세월이 남겨놓은 세속적 일상의 편린을 발견한 그는 다시는 빌코를 찾지 않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빌코을 찾기 전에는 스토크로치 농장의 일이 단조롭고 힘들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현재의 삶이 무엇보다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빌코에서의 과거와 연결된 새로운 인연을 맺지 않은 채로 일터로 돌아간다. 1979년에 폴란드 인기 영화감독에 의해서 영화로 제작되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작중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와 그에 따른 묘사가 잘 이루어 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한 문체가 돋보인다. 

(6) 자작나무 숲 

형(볼레스와프)와 동생(스타시)의 심리적 갈등과 애증의 묘사 뿐만아니라 장면, 배경 묘사까지 섬세하고 예술성이 짙은 작품이다.

형은 아내의 죽음이후에 딸과 같이 산림청 관사에 산다. 자작나무 숲에는 아내의 무덤이 있다. 그곳을 찾으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형에게 어느날 폐병으로 요양소에 2년간이나 있던 동생이 찾아 온다. 동생 스타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실'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깊은 사랑을 해 본 적도 없다. 형 볼레스와프는 '동생의 방문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맛보지 못한 현실감을 되찾게 된다. '동생이 결별하고 온 세계는 소름끼치는 곳이었고, 동생의 방문은 화성인의 방문이었다.'(p328) 형은 세상과 단절되어서 자작나무 숲에 묻혀 그동안 살아 온 것이다. 기쁜 일도 없고 모든 일이 시큰둥한... 동생의 방문조차 싫고 언짢은... 형과 동생 사이는 언제나 냉냉하다.  동생은 폐병말기로 잠시 호전중이다. 호전이 끝나면... 자작나무숲에 묻히기를 희망한다. 형에게 동생은 죽음을 앞둔 폐결핵 환자가 홍조를 띠고 나타났다. 절망적 상태에서 이곳에 온 것이다. 동생은 '진짜 세상'이라고 느꼈던 그 모든 것이 이미 완전히 작별한 상태이고 그래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형은 이해하지를 못한다. 스타시를 삶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피아노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자신의 생을 되짚어 보고 마감하려는 것이다. 형은 언제나 침울하고 우울하다. 동생은 그곳에 있는 말리나와의 사랑으로 아름다운 종말을 맞고자 한다. 잃어버린 생의 마지막 여정을 통해서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머무는 것임을 느끼게 해 준다. 작가는 탐미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자작나무숲이 우거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서정적이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기에 언어 자체가 가지는 멜로디와 음악성을 가지고 소리와 빛깔, 색채를 접목시켜서 공감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인생의 마지막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혼의 울림처럼 들릴 수 있게 그려내고 있다. 문장을 읽어보지 않고는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글의 묘사가 아름다운 예술성이 짙은 작품이다.

* 타데우쉬 보르프스키 (1922~1951)

우크라이나 태생, 유태계 폴란드인, 정치적 격변기에 극한 체험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독특한 작품들로 주목을 받았다. 공산화과정에서 부모님과의 이산과 재회의 경험, 나치시절에 문학활동의 작품이 문제가 되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감, 전쟁후 자유를 찾으나 1951년 7월 1일 갑작스레 가스 자살, 그의 자살은 아우슈비츠의 잔혹한 현실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 갖게 된 잔혹함의 실상을 극복하지 못하여 선택한 현실 부적응에서 온 죽음이라고 생각된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예세닌과 미국의 여류 시인 실비아 플래스의 자살과 더불어 현대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7)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갔던 것은 7월의 마지막 주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정문의 철문위에는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의 B자가 거꾸로 쓰여져 있다. 일부러 그렇게 써 놓았단다. 그리고 여러개의 붉은 색 건물이 있다. 수용소 건물이다. 건물의 일부는 박물관이다. 수용소에 온 사람들이 어디로 부터 끌려 왔는지  분포도에서 부터 전쟁후에 찍은 수용소의 비참한 실상과 사람들 모습까지... 말라 비틀어진 사람들, 죄수복에 빡빡 깎은 머리, 그리고 수용소에 올 때 가지고 온 물건이 가방, 트렁크, 안경, 목발(장애인들이 많았다), 사람머리카락,인모로 짠 카펫, 가발 그리고 가스탄 껍데기까지....

정말 그 참혹한 심정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어떻게 20세기에 문명이 발달하고 철학과 사상이 발달했던 그 시대에 이런 발상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쭉 이어지면서 수용소 시설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스실도... 정말 1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악몽 그 자체이다. 가스실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러지 음산하고 매케한 기운이 그대로 다가왔다. 밖으로 나와 교수대, 총살을 시키던 곳,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책 등..... 그리고, 한 구석에 추모의 벽(통곡의 벽)이 있었다. 아주 초라하다. 자그마한 벽면이 있고, 그 아래에 몇 송이 꽃들이(유럽 사람들은 꽃다발이 아닌 한 두송이 꽃을 놓는다), 그리고 불이 켜진 촛불이 여러개....  그날, 나는 두통에 시달렸고, 폴란드를 떠날 때까지 식욕을 잃었다. 그곳은 다시 가 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바로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가 아우슈비츠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자신이 체험하기도 했던 아우슈비츠의 잔혹한 현실을 극도의 리얼리즘적 기법으로 묘사한다. 사실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죽음의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메시지를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라고 표현하므로써 예의를 갖춘 정중한 문장으로 표현을 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같은 '수용소 문학'은 피로 물들었던 잔인한 현장에서 이루어진 성과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누어져서 평가된다. 폴란드인은 이 장소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인간의 만행을 묵묵히 목격한 산 증인들이기에 그들에게 '수용소 문학'의 의미가 어떤 의미일지도 석연치 않을 수가 있다.

 수용소에 열차가 들어온다. 빽빽하게 짐짝처럼 챙겨져 타고 온 사람들이 도착 즉시, 물과 공기를 그리워한다. 그것도 잠깐 독일 장교의 지시에 따라 일렬도 내려서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한곳에 모아 둔다. 수송 열차의 온갖 것들. 짐, 가방, 트렁크, 보따리, 상자, 궤짝 온갖 종류의 꾸러미는 그들의 과거였고, 이제 곧 그들의 미래가 될 모든 것들 (P428) 이다. 그리고 트럭에 탈 사람과 걸어갈 사람이 정해진다. 트럭에 탄 사람들은 가스실로 직행한다. '죽게 될 사람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속이는 것, 그것이 수용소의 미덕이자 이곳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자비인 것이다.' (P428)

그들이 가져온 물건들은 의류는 군수공장등의 수용소 노동자들에게 배급되고, 음식은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것이다. 보석이나 금, 돈 등은 독일의 국립은행으로 직행된다. 가스실에서 죽은 후에도 그들의 몸속의 보석을 찾기 위해서 혀밑, 자궁, 결장까지 세밀히 조사한다. 이들이 떠난 후에 기차속에는 죽은 아기시체부터,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사람까지.... 비록 살았어도 그대로 소각장으로 간다. 아우슈비츠에는 앞으로 열여섯개의 소각장이 만들어 질 예정이고 각각 매일 오만명이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어림잡아 450만명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런데, 인간의 내면의 잔인한 본성은 수용소안의 사람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수용소 열차가 와야 먹을 음식이 생긴다. 이곳에 실려 오는 사람들이 바닥이 날까봐 불만을 터트린다. '잡혀 오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여기서 굶어 죽는다. 바닥날거라고? 안돼, 그럴리 없어.(...) 죽게 될 텐테... 여기 있는 우리는 다들 그들이 가져 오는 것을 먹고 살잖아.'(P419)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잼이며, 빵을 맛있게 먹는다.

같은 희생자들끼리도 살아 남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 선과 악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곳, 생존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던 그곳,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리얼하게 너무도 담담하게 그려져서 더욱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뒷편의 추모공간-2000년 8월 어느날)

* 마렉 흐와스코 (1934~1969)

1950,196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작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폴란드 자유화 바람과 함께 첫 소설집을 발표, '구름속의 첫 걸음'을 비롯한 12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35세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죽었으나 사망인지 자살인지는 모른다. 이책에 실린 3편의 단편은 에세이 한 꼭지 분량의 아주 짧은 글들이다.

(8) 구름속의 첫걸음

전후 폴란드 문학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직된 틀을 탈피하여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욕구를 대변하는 작품. 세 주인공은 모두 기존의 가치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소외계층이며, 현실 부적응자이다. 목적없이 도시 주변을 거닐다가 젊은 아이들을 향해서 이유없는 야유를 보낸다. 뒤틀린 인생의 모습이 그대로 표출된다. 그것은 타인에게 향한 욕설과 저주가 아닌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퍼붓는 말들일 것이다. 1956년 폴란드의 쓸쓸하고 암울한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9) 창

폴란드 주택이 5층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구조이기에 자신의 창을 통해서 타인의 생활을 엿보는 경우의 작품내용들이 많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인데, 자신의 창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집안을 엿보듯이 어린 소년이 화자인 나의 생활을 엿본다. 그런데, 어느정도 엿보다가 그만둔다. 무료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결국에는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일상이기에 그럴 것이다.단절된 인간관계안에서 소외된 자신의 모습을 '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어디나 다 똑같아." (...) "정말로 좀 다른 곳은 없나요?" 아이가 물었다. "없어" 내가 대답했다. "여기 말고 아주 먼데는 어때요? 거기도 마찬가진가요?" "그럼... 어딜가나 다 비슷비슷한 방들뿐이란다. 온 세상이 다 똑같지, 세상이란, 이런 방이 아주 많이 있는 곳을 뜻하는 거야." "나중에 내 눈으로 봐야지" (...) 그 뒤로 아이는 다시 내 눈에 띄지 않았다. (P464~465)

(10) 노동자

이십대의 젊은 기술자인 세 사람이 바르샤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외딴 곳에서 철교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한다. 무료하고 외로운 생활이 일 년 이상 지속되자 그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철교가 완성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렇게 외롭고 고독했던 그 생활과 그렇게 혐오스럽던 철교에 대한 마음에 애착이 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도 일탈의 욕구를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를 노동자들의 눈과 입을 빌려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다리 놓는 일을 계속했다. 우리는 노동이 인민의 의무요, 인생에서 얼마나 훌륭한 보람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에는 콧노래 소리는 고사하고, 아무런 의욕도, 보람도 없었다. 그저 증오와 절망뿐이었고, 거머리처럼 우리들의 심장과 영혼을 빨아 들이는 이 평원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바람뿐이었다.(P471)

우리는 울었다. 모두가 울었다. (..) 뚜렷한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렀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에는 그 때 우리는 너무 어렸고, 아직 경험이 부족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알게 되었다. 때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흐름으로 부터 우리를 떨어져 나오게 만드는 사람들이나 사건들, 사물들에게 알 수 없는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말이다. (P474)

문학을 비롯한 예술 분야는 평화로울 때보다 고통스럽고 힘든 역사속에서 더 빛나기도 한다. 폴란드는 강대한 국가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분할과 점령 등을 거치면서 그리고 세계대전의 처참한 현장에 놓임으로써 많은 시련을 맛보게 되는데, 이때에 '폴란드 문학'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폴란드 문학을 민족의 수난기에 발달했다고도 한다. 이 책에 수록된 10작품들은 모두 '눈물과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다. 구태여 몇 작품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등대지기'와 '우리들의 조랑말' 그리고 '자작나무숲'을 들고 싶다. '등대지기'의 노인의 가슴속 깊이 간직한 폴란드 시집이 내내 마음속에 잔잔하게 감동을 준다.

시대순으로 편집을 하였기에 읽으면서 폴란드 문학의 시대적 변천도 눈여겨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명작에서 흐르는 그윽한 향기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문체들이 탐미적이고 감각적이고 섬세한 작품들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론 너무 담담해서 더 슬프고 아름답기도 한 작품들도 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한 번쯤 폴란드 문학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n******5 2010.03.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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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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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세계 이곳저곳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볼 기회가 있었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실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참혹했다.  특히 가스실로 보내진 이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낡은 신발들의 무덤은 도무지 몇 명의 사람이 그 장소를 거쳐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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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세계 이곳저곳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볼 기회가 있었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실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참혹했다.  특히 가스실로 보내진 이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낡은 신발들의 무덤은 도무지 몇 명의 사람이 그 장소를 거쳐 갔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 정도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말밖에 다른 단어로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었다. 


창비세계문학 중 폴란드 편인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2010.1.8. 창비)》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만행을 사실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시각으로 묘사한 표제작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타데우쉬 보로프스키〉를 포함해서 10편의 단편을 수록하였다.  이 소설집의 주제의식을 압축하는 키워드는 ‘눈물과 감동’(p5)이라고 말하는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아우슈비츠가 떠올라 작품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힘들어지는 -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 표제작에서부터 전쟁과 가난 등으로 조국 폴란드를 떠나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조국애를 보여주는 〈등대지기 - 헨릭 시엔키에비치〉까지 격변의 시기를 살다간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가 여섯 명의 아프고 슬프지만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다.


폴란드의 작가와 작품 중에서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이 소설집을 읽기 전에는 딱히 말할 수 있는 대답을 찾을 수 없었으리라.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커가 등장했던 영화 「쿼 바디스」는 기억하면서도, 영화의 원작이 폴란드 작가 헨릭 시엔키에비치의 대표적 장편소설이란 사실은 까맣게 몰랐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몰랐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의아했는지, 엄마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세 배나 커지더라.  『창비세계문학 아홉 권』의 출간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폴란드 편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폴란드 문학에는 문외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집을 읽는 시간이 폴란드 문학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었는데, 예상 외로 더 큰 수확을 한 느낌이다.  폴란드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어두운 시기가 있었고, 그 힘겨운 시기는 폴란드 문학이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는 거름이 되었다는 사실까지 폴란드 문학이 태어난 흐름까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창비세계문학』중에서 어떤 소설집을 읽을까, 고민이다.

 

 

 

 

b******s 2010.02.07.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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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창비 세계문학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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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세계문학전집이 나왔다. 총 아홉 권으로, 영국( 『 가든 파티 』 ), 미국( 『 필경사 바틀비 』 ), 독일( 『 어느 사랑의 실험 』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 프랑스( 『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 ), 중국( 『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 일본( 『 이상한 소리 』 ), 폴란드( 『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 러시아(『 무도회가 끝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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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세계문학전집이 나왔다. 총 아홉 권으로, 영국( 가든 파티 ), 미국( 필경사 바틀비 ), 독일( 어느 사랑의 실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프랑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 중국(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일본( 이상한 소리 ), 폴란드(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러시아(무도회가 끝난 뒤 ) 편이 나왔다. 그 중 내가 읽은 책은 폴란드의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인데, 꽤 재미있었다. 사실 폴란드의 민족성이나 정치·역사 상황을 잘 몰라서 폴란드문학을 읽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오히려 요즘 나왔던 독일 문학보다는 난해함도 없고 나름 흡입력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35년 동안 일본에게 지배당했던 것처럼 폴란드도 120년 동안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게 분할 통치 당했던 것도 그렇고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면서 문학이 많이 발달했던 것도 흡사해서 과거부터 강대국이었던 나라들의 작품보다는 오히려 더 잘 맞아들어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왠지 글에서 배어나오는 오만함도 없고 말이다.

 

솔직히 이 단편집을 다 읽고 나니까 폴란드 편에 붙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세계문학의 제목을 보아하니, 자극적이란 면에서 타데우쉬 보로프스키의「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가 대표작으로 뽑힌 것이 어쩐지 이해는 간다만, 폴란드 작품의 대표성을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있지 않았을까. 하긴 폴란드 국민들이 그 끔찍하고도 잔인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목격자 역할을 충실히 했던 것을 반성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의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인 카지미에쉬 비카의 말처럼 아우슈비츠 같은 야만적인 학살행위를 예술화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는 있는 법. 그러나 문학은 우리의 현실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아우슈비츠 같은 야만적인 학살행위를 예술화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타데우쉬 브로프스키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너무나 냉정한 시선을 바라보기에 문학작품을 읽기에는 너무 끔찍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외 여러 작품 중에서 이 폴란드 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등대지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특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등대지기 노인이 위대한 폴란드의 시집을 선물 받고, 잊고 있었던 조국 폴란드의 모습과 위엄을 깨달아가는 장면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조금 허무하게 끝나는데, 아니 마지막이 조금 허무했기에 더욱 강렬한 메씨지를 남겨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잊었던 폴란드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그 노인은, 이전처럼 어디를 가더라도 그 길이 방랑과 고난의 연속으로 느껴지지 않고 적극적인 창조의 인생을 꾸려갈 것이라는 안도가 든다. 그렇기에 사람은 단지 먹고 사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인간의 영혼에 계속 위대함의 불을 밝힐 수 있는가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겠지. 그 불이 꺼지지만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생명력이 꺼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또 좋았던 것은 각 단편이 끝나면 더 읽을 거리를 알려주는데, 헨릭 시엔키에비치가 그 유명한 쿠오바디스 를 썼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쿠오바디스 란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꼭 봐야겠단 마음을 먹었었는데, 오~ 그 작가가 바로 이 작가이라니!! 귀한 보물을 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다. 폴란드 작품이 이렇게나 기쁨을 줄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횡재했다.

j*****3 2010.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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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로/창비세계문학(폴란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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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세계문학 폴란드편인 <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로>는 처음 접해보는 작품들과 작가들로 신선한 충격이었다.우리의 근대사와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폴란드 사회상이 깃든 작품들은 '눈물과 감동'을 안겨주면서 어느 한 작품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네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시엔키에비치,레이몬트,미워시,심보르스카)를 배출한 '문학의 나라' 이지만 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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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세계문학 폴란드편인 <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로>는 처음 접해보는 작품들과 작가들로 신선한 충격이었다.우리의 근대사와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폴란드 사회상이 깃든 작품들은 '눈물과 감동'을 안겨주면서 어느 한 작품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네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시엔키에비치,레이몬트,미워시,심보르스카)를 배출한 '문학의 나라' 이지만 정작 많은 작품을 접하지 못하고 읽지를 못했는데 정말 좋은 기회가 주어진듯 하다.

폴란드 문학의 거장 헨릭 시엔키에비치의 <등대지기>는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도 영향을 준 작품이라니 첫 만남이 무척 기대되었다.스카빈스키 노인은 온갖 시련을 다 겪은 후 미국령 빠나마에 정착해 등대지기로 일하게 된다.그는 자신의 마지막 정착지처럼 등대에 불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등대섬에 대한 애착으로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폴란드 시집 한권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 책 한권으로 인해 그동안 잊고 있던 모국어와 조국에 깊게 빠져든 그는 그날밤 등대불을 밝히지 못해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로 생각하게 된 '등대지기' 일에서 짤리게 되었다. '등대섬은 모든 죄악과 위험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해주는 안식처였다.' 하지만 노인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 그의 방랑에 스스로 등대불을 밝히게 된 것이다. 

블레스와프 프루스의 <파문은 되돌아온다>는 어렵게 자신의 방직공장을 마련한 공장주 아들레르 고틀리프,그는 엄마를 잃고 혼자서 성장하는 아들 페르디난트에게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베인 돈으로 낭비와 방탕의 세월을 보내게 한다. 친구이며 뵈메 목사의 조언도 무시하면서 자신의 부를 위해 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던 그는 마침내 아들의 방탕한 생활의 종지부처럼 그를 잃으며 모든 것들을 잃게 되는데 산업사회로의 전화기의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작품으로 인간의 욕심이 지나치면 종지부는 어떤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뵈메목사가 아들레르에게 보여준 '연못의 파문' 처럼 파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자신에게로 돌아옴을 극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마리아 코노프니츠카의 <우리들의 조랑말>은 읽으면서 가슴이 정말 아려왔다. 집은 너무 가난하고 엄마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죽음에 이르고 아버지는 직업조차 없어 일거리가 없으니 집안의 살림을 하나하나 팔아서 그날 하루를 연명하는 가족에게 개구장이 아들들은 모든것이 그저 장난스럽고 재밌고 신기하기만 하다. 자신들이 처한 가난과 어려움보다는 가구를 파는 일에 더 재미를 느끼는 그들에게 마지막 재산처럼 여겨지던 '애꾸눈 조랑말' 까지 팔게 되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시신을 운반하기 위해 집에 온 조랑말을 멋지게 장식해주며 친구처럼 대해주는 그들의 천진함이 가난과는 대조적으로 잘 그려진 작품이다. 어머니의 죽음도 바닥까지 치달은 가난도 그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처럼 대수롭지 않았던 개구장이들, 이 작품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쓴 작품이라 하는데 읽으면서 아이들이 있어서일까 제일 가슴이 아렸던 작품이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빌코의 아가씨들>, 삼십대 후반인 빅토르는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지면서 젊은시절에 추억이 있는 빌코 농장으로 여행를 가게 된다. 그시절 십대와 이십대였던 아가씨들은 십오년이 지난 지금은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거느린 부인들이 되기도 하고 막내는 젊은 아가씨가 되었지만 그에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젊은날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며 잠시 자신의 현재의 삶을 망각하기도 하던 그는 어느날 지금 현재의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는 다시는 빌코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길을 떠나게 된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그 추억이 영원하지는 않다. 모든것을 소유할 수 없듯이 추억 또한 자신의 일부이지 전부이지 않듯이 현재의 삶 또한 지나고 나면 그에게 추억이 될 것이다. 빌코의 추억이 성장기의 한 추억이었다는 것을 알고 현재가 중요함을 느낀 빅토르를 통해 잠시 전원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나간 일들,다시 돌이킬 수도,수정할 수도 없는 일들은 더이상 되살리지 않았다. 그는 오늘 이순간만을 생각하면서,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직 젊다. 그 혈기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고,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다. 허송세월로 흘려보낸 청춘은 구슬픈 유행가와 무수한 속담 들이 뭐라고 하든 다른 모습으로 구체적인 형상으로 얼마든지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타데우쉬 보로프스티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만행을 정말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자신들의 마지막 죽음의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마지막 재산으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알량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로를 밀고하고 선과 악이 사라지고 약육강식만 존재하는 곳 아우슈비츠, '이봐,앙리,우리는 좋은 사람들일까?' 하는 질문에 '이봐, 친구, 난 그냥 저 사람들한테 자꾸만 화가 나.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저들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나서 견딜수가 없어. 저들이 가스실로 끌려가는데도 동정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저 사람들이 땅속으로 꺼져버렸으면 싶기도 하고.주먹으로 실컷 패주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이건 정말 병적인 현상인데 말이야.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하는 대답처럼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목격자로 수용소 문학을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내서 소름이 끼칠 정도인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는 영화 '피아니스트'를 생각나게 했다. 폐허에서 울리던 피아노 선율,살기위해 몸부림치던 주인공의 처철함이 오버랩되며 '인간의 존엄성' 을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낯선 작품들이 한데 어우러져 너무도 값진 작품으로 탄생을 한것 같다. 한권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소장을 하고 읽고 싶게 만드는 '창비 세계문학전집' -폴란드편은 번역도 좋았고 내용도 좋았고 작품에 대한 해설과 작가의 소개가 함께 담겨져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 빠르게 해준 작품집이다. 폴란드 문학의 걸작을 이렇게 한권으로 만나게 되어 기쁘고 한 편 한 편 모두 다른 감동이 오래도록 간직될 듯 하다. 
y******2 2010.01.27.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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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정병권․최성은 엮음,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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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정병권․최성은 엮음,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창비에서 새로 엮은 세계문학 단편선 중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를 읽었다. 마치 기형도의 시처럼 안개로 된 숲의 성벽을 더듬는 것 마냥 몽롱하고, 땀으로 절은 옷을 입은 것 마냥 찝찝했다. 폴란드의 역사는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주변의 강대국의 틈새에서, 오직 생존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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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정병권․최성은 엮음,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창비에서 새로 엮은 세계문학 단편선 중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를 읽었다. 마치 기형도의 시처럼 안개로 된 숲의 성벽을 더듬는 것 마냥 몽롱하고, 땀으로 절은 옷을 입은 것 마냥 찝찝했다. 폴란드의 역사는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주변의 강대국의 틈새에서, 오직 생존을 위한 삶의 투쟁은 물질이 아닌 정신적 예술의 승화를 가져왔다. 나치 독일의 가스실과 일본군의 생체 실험실을 두고 패망국이 당한 수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근 100년이라는 시간의 역사가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만, 마치 어제 걸었던 산책길에서 봤던 강아지풀처럼 소설은 가까운 세속을 이야기한다. 단편소설의 힘은 작가 지니는 문제의식의 예리함과 미적 승화를 거친 예술성이 얼마나 잘 발현되었는가에 있다. 그것이 굳이 정치적 발로에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아리스토텔레스 말을 두고 본다면, 정치적이지 않는 것도 가장 정치적일 수도 있다. 여하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삶을 느끼고, 내밀한 욕망을 대지 위로 드러내 꽃을 피우는 것. 바로 그것이다!

 

소설은 여섯명의 폴란드 문학 거장을 짚어줬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필자는 게 중 단 한명도 알지 못한다. 다만 이들과 우리네 문학가들과 대입함으로써, 조금은 친근함을 느끼려고 했다는 것? 억지스럽지만

 

헨리 시엔키에비츠의 「등대지기」를 볼 때, 필자는 시인 백석을 생각했다. 일제의 억압으로 숨 쉴 수 없는 모국의 정치상황에서도 꿋꿋이 전통과 모국어에 헌신했던 인물이 바로 백석 아니던가. 「파문은 돌아온다」와「모직 조끼」를 통해 만나 본 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천재의 날개를 박제한 이상이 떠올랐다.「우리들의 조랑말」같은 경우 번역이 과거와 현재 시제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아 읽는데 조금 까다로웠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같았다. 살림이 궁벽하여 집안 물품을 고물상에 넘겨야 함에도, 아이들은 그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마냥 신나한다는 것. 그러다 집에서 기르던 조랑말이 팔려 갔을 때, 비로소 가난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그 안에 가난에 대한 상실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이들에게는 죽음 역시 깨달아야할 하나의 사유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어른이지 않으므로. 죽음은 자신에게 더 먼 미래이기 때문일까?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두 편의 소설 중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작나무 숲」이었다. 한편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시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밖에 타에우쉬 보르프스키와 마렉 흐와스코의 소설도 흥미로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2 2010.07.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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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비슷한 운명을 지닌 폴란드를 통해 삶의 의지와 진리에 생각해 본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운명을 지닌 폴란드를 통해 삶의 의지와 진리에 생각해 본다" 내용보기
폴란드 하면 1, 2차 세계 대전의 중심지중 하나로 구 소련과 연계되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꽤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라는 점에서, 또한 흔히 접하지 못한 동유럽국가라는 점에서 창비 문학 전집중 폴란드편이 왠지 눈길이 갔고,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라는 제목에 이 책이 끌렸다.처음 접한 폴란드의 문학은 꽤 인상적이고, 독특했다.헨릭 시엔키에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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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하면 1, 2차 세계 대전의 중심지중 하나로 구 소련과 연계되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꽤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라는 점에서, 또한 흔히 접하지 못한 동유럽국가라는 점에서 창비 문학 전집중 폴란드편이 왠지 눈길이 갔고,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라는 제목에 이 책이 끌렸다.
처음 접한 폴란드의 문학은 꽤 인상적이고, 독특했다.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등대지기]는 마치 폴란드가 겪은 역사의 상처와 아픔을 애스핀월 등대지기인 스카빈스키 노인을 통해 그렸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빈스키 노인의 초연함을 가장한 감성적 무능함과 자포자기를 한 시인의 시를 통해 비판하고, 폴란드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승화시키는 분위기였다.
꽤나 낭만적으로 그려진 작품이지만, 강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기도 하였다.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파문은 되돌아온다]는 독일인이며 공장 주인인 아들러 고틀리프와 그의 아들 페르디난트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로 폴란드 땅에서 벌어지는 이기주의적인 착취와 인간성 상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뷔메 목사를 통해 아들러에게 계속적인 경고를 보내나, 이러한 양심의 소리는 돈에 의해 이기심에 의해 묻힌다.
또한, 아들러 공장의 직원들과 카지미에시 고스와프스키를 통해서는 무능함과 함께 희망과 인강선 파괴를 경고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독일인에 대한 반감도 작품 곳곳에 있었다.
꽤나 직설적으로 그리고, 아들러 공장을 통해 경고성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마리아 코노프니츠카의 [우리들의 조랑말]은 개읹거으록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처절한 가난과 유대인 고물상의 착취, 이웃들의 냉대함이 아이들의 눈으로 그려져 있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피오트렉, 펠렉, 비첵 세형제의 눈에 담긴 가난과 엄마 안나의 죽음은 너무나 순수하고 순잔하고 맑게 그려져 있어서 눈이 시리게 슬프게 다가왔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빌코의 아가씨들]은 주인공 빅토르 루벤을 통해 지나간 삶에 대한 추억을 그리는 듯 하지만, 빅토르가 다시 스트크로치 농장으로 떠나듯 과거의 삶보다는 현재의 삶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였다.
빅토르는 과거 외숙부의 집 로스키 농장에서 지냈고, 근처의 이웃 빌코 저택의 아가씨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 징집되고, 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겪고 나서는 모든 것을 잊고 스트크로치 농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 유렉의 죽음으로 얻은 3주의 휴가에 과거인 로스키 농장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죽음과 변화로 과거는 다시 새로운 낯선 현실이 되었다.
빅토르를 통해 작가는 마치 전쟁의 아픔을 겪고,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폴란드인들에게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을 받아들여 살아라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였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또다른 작품 [자작나무 숲]은 바시아의 죽음과 스타시의 죽음을 교차시키면서 죽음을 아름다운 숲속의 안개처럼 그저 사라짐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볼레스와트, 올라, 말리나의 추억 속에 사랑과 함께 있음으로 미화시키고 있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그린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의 마지막까지 삶이고, 그 역시 기쁨일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좌절하고 외로워할 것이 아니라, 추억으로 남기고 삶에 충실하라는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었다.

타데우쉬 보로프스키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는 정말 처참했고, 처절했다. 또한 슬픔이상의 아픔이었다.
카나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나"의 눈을 통해 수송열차의 도착과 그 속의 유대인의 처절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 나와 친구 앙리에게는 수송열차는 그저 필요한 구두와 옷, 음식 그리고, 친지의 소식을 전하는 기다려지는 기다림이었으나, 막상 수송 열차가 도착한 후에는 지옥으로 변한다.
이 작품은 격정적인 대화와 감성적 선은 매우 적은 그저 단순한 서술과 객관적인 묘사 뿐인이었지만, 전에 아우슈비치 수용소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강한 좌절감과 비참함이 다시 느껴지는 독특함을 가진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마렉 흐와스코의 작품들은 앞선 작품들과는 꽤나 달랐다.
다른 작품들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죽음"과 "전쟁"이 있었으나, 마렉 흐와스코의 작품은 그와는 다른 색채였다.
[구름속의 첫걸음]은 기에넥, 말리셰프스키, 헤이넥의 망나니 같은 어느 오후의 짓거리를 통해 젊은이들에 대한 각성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창]은 벗어나고픈 탈축구이자, 세상과의 소통인 작은 창을 통해 세상과의 단절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차안의 방을 들여다 보는 소년을 통해 방안의 평범함과 세상밖으로의 다른 삶을 기대하는 욕구가 겹쳐지고 있었다.
내맘대로의 결론으로는 희망을 갖은 창밖의 소년은 방안의 "나"보다 다른 세상을 만날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렉 흐와스코의 작품중에서 최고라 생각되는 [노동자들]은 철교건설 현장속 어려움과 고생이 다시 노동자들에게 또다른 하나의 추억이 되고, 애정이 된다는 점에서 꽤나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었다.
인생의 진리가 담겨져 있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비세계문학은 프랑스 편에 이어 이번 폴란드 편이 두번째 만남이었다.
프랑스 편이 고전과 인용이 많아 꽤 현학적이면서 사랑을 중심으로 하였다면, 폴란드 편은 역사적 아픔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폴란드 편이 더 맘에 들었고, 인생에 대한 고민과 진리를 서로 나는 기분이 들어 매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야넥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폴란드에서 많은 이름인 듯 싶었다.폴란드 하면 1, 2차 세계 대전의 중심지중 하나로 구 소련과 연계되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꽤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라는 점에서, 또한 흔히 접하지 못한 동유럽국가라는 점에서 창비 문학 전집중 폴란드편이 왠지 눈길이 갔고,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라는 제목에 이 책이 끌렸다.
처음 접한 폴란드의 문학은 꽤 인상적이고, 독특했다.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등대지기]는 마치 폴란드가 겪은 역사의 상처와 아픔을 애스핀월 등대지기인 스카빈스키 노인을 통해 그렸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빈스키 노인의 초연함을 가장한 감성적 무능함과 자포자기를 한 시인의 시를 통해 비판하고, 폴란드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승화시키는 분위기였다.
꽤나 낭만적으로 그려진 작품이지만, 강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기도 하였다.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파문은 되돌아온다]는 독일인이며 공장 주인인 아들러 고틀리프와 그의 아들 페르디난트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로 폴란드 땅에서 벌어지는 이기주의적인 착취와 인간성 상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뷔메 목사를 통해 아들러에게 계속적인 경고를 보내나, 이러한 양심의 소리는 돈에 의해 이기심에 의해 묻힌다.
또한, 아들러 공장의 직원들과 카지미에시 고스와프스키를 통해서는 무능함과 함께 희망과 인강선 파괴를 경고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독일인에 대한 반감도 작품 곳곳에 있었다.
꽤나 직설적으로 그리고, 아들러 공장을 통해 경고성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마리아 코노프니츠카의 [우리들의 조랑말]은 개읹거으록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처절한 가난과 유대인 고물상의 착취, 이웃들의 냉대함이 아이들의 눈으로 그려져 있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피오트렉, 펠렉, 비첵 세형제의 눈에 담긴 가난과 엄마 안나의 죽음은 너무나 순수하고 순잔하고 맑게 그려져 있어서 눈이 시리게 슬프게 다가왔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빌코의 아가씨들]은 주인공 빅토르 루벤을 통해 지나간 삶에 대한 추억을 그리는 듯 하지만, 빅토르가 다시 스트크로치 농장으로 떠나듯 과거의 삶보다는 현재의 삶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였다.
빅토르는 과거 외숙부의 집 로스키 농장에서 지냈고, 근처의 이웃 빌코 저택의 아가씨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 징집되고, 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겪고 나서는 모든 것을 잊고 스트크로치 농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 유렉의 죽음으로 얻은 3주의 휴가에 과거인 로스키 농장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죽음과 변화로 과거는 다시 새로운 낯선 현실이 되었다.
빅토르를 통해 작가는 마치 전쟁의 아픔을 겪고,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폴란드인들에게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을 받아들여 살아라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였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또다른 작품 [자작나무 숲]은 바시아의 죽음과 스타시의 죽음을 교차시키면서 죽음을 아름다운 숲속의 안개처럼 그저 사라짐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볼레스와트, 올라, 말리나의 추억 속에 사랑과 함께 있음으로 미화시키고 있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그린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의 마지막까지 삶이고, 그 역시 기쁨일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좌절하고 외로워할 것이 아니라, 추억으로 남기고 삶에 충실하라는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었다.

타데우쉬 보로프스키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는 정말 처참했고, 처절했다. 또한 슬픔이상의 아픔이었다.
카나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나"의 눈을 통해 수송열차의 도착과 그 속의 유대인의 처절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 나와 친구 앙리에게는 수송열차는 그저 필요한 구두와 옷, 음식 그리고, 친지의 소식을 전하는 기다려지는 기다림이었으나, 막상 수송 열차가 도착한 후에는 지옥으로 변한다.
이 작품은 격정적인 대화와 감성적 선은 매우 적은 그저 단순한 서술과 객관적인 묘사 뿐인이었지만, 전에 아우슈비치 수용소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강한 좌절감과 비참함이 다시 느껴지는 독특함을 가진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마렉 흐와스코의 작품들은 앞선 작품들과는 꽤나 달랐다.
다른 작품들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죽음"과 "전쟁"이 있었으나, 마렉 흐와스코의 작품은 그와는 다른 색채였다.
[구름속의 첫걸음]은 기에넥, 말리셰프스키, 헤이넥의 망나니 같은 어느 오후의 짓거리를 통해 젊은이들에 대한 각성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창]은 벗어나고픈 탈축구이자, 세상과의 소통인 작은 창을 통해 세상과의 단절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차안의 방을 들여다 보는 소년을 통해 방안의 평범함과 세상밖으로의 다른 삶을 기대하는 욕구가 겹쳐지고 있었다.
내맘대로의 결론으로는 희망을 갖은 창밖의 소년은 방안의 "나"보다 다른 세상을 만날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렉 흐와스코의 작품중에서 최고라 생각되는 [노동자들]은 철교건설 현장속 어려움과 고생이 다시 노동자들에게 또다른 하나의 추억이 되고, 애정이 된다는 점에서 꽤나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었다.
인생의 진리가 담겨져 있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비세계문학은 프랑스 편에 이어 이번 폴란드 편이 두번째 만남이었다.
프랑스 편이 고전과 인용이 많아 꽤 현학적이면서 사랑을 중심으로 하였다면, 폴란드 편은 역사적 아픔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폴란드 편이 더 맘에 들었고, 인생에 대한 고민과 진리를 서로 나는 기분이 들어 매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야넥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폴란드에서 많은 이름인 듯 싶었다.
m*******i 2010.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내용보기
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이다 그 나라가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그 나라의 역사를 어느 정도 결정짓고 그 역사의 수레바퀴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안에 녹아있는 눈물과 감동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그야말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것만 보려하는 성향때문에 폴란드 문학 작품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 듯 하다 (그것이 어디 폴란드문학뿐이랴만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내용보기

창비세계문학 <폴란드>편이다

그 나라가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그 나라의 역사를 어느 정도 결정짓고

그 역사의 수레바퀴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역사적인 배경안에 녹아있는 눈물과 감동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그야말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것만 보려하는 성향때문에 폴란드 문학 작품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 듯 하다 (그것이 어디 폴란드문학뿐이랴만은...)

생소한 작가들과 생소한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라고 말하는 <눈물과 감동>은 나도 느낄 수 있었다

 

헨릭 시엔키에비치 <등대지기>

파란만장한 인생. 굴곡있는 인생을 돌고 돌아 드디어 정착하게 된 곳

빠나마에서 멀지 않은 애스민춸이란 항구도시의 등대지기

조용하고 변화없는 평범한 삶에 만족하고 그곳이 자신의 생의 마지막 장소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하는 주인공

그러나 어느날 그에게 배달된 고국 폴란드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의 시집

그것을 통해 나름대로 잠재되어있던 조국에 대한 갈망이 살아나고 그로 인해 등대불 켜는 것을 잊게된 그는 결국 그곳을 그만두게 된다

조국애와 고향에 대한 귀향 그리움을 깔끔하고 명료하게 표현한 짧은 이야기였다

 

볼레스와프 프루스 <파문은 되돌아 온다> <모직조끼>

어느 곳에서나 죄 짓고는 살 수 없는 이야기는 꼭 있는 듯 하다

일명 권선징악

한창 산업화의 조류에 밀려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고용주는 노동자를 더욱 착취하여 부를 쌓으려고 하고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 환경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그런 와중에 사고가 발생하고 결국 자신의 욕심과 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모든 것을 잃고 그 되돌아온 파문속에 휩쓸려 가라앉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시계줄을 준비하고

자신의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준비한 모파상의 소설을 보는 듯한

한 가난한 부부의 애뜻함과 안타까움을 보여준 모직조끼

 

마이라 코노프니츠카 <우리들의 조랑말>

가난한 시절, 그 시절을 이겨내고 견뎌야했던 어린 시절

그들의 성장은 그야말고 극적이기에 이런 소설도 나올 수 있는 듯 하다

무능한 가장, 병든 엄마, 그리고 아이들

집안의 물건이 하나하나 팔려나가도 그것을 흥정하는 것을 그저 재미로 느끼는 아이들..

그러나 마치 친 형제와 같았던 조랑말이 그들의 곁을 떠날때는 그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결국 어머니의 시신을 옮기기 위해 다시 만나게 된 조랑말

어머니의 장례식이라는 설정보다 조랑말을 다시 만나게 된 것에 더 기뻐하는 어린 영혼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 <빌코의 아가씨들> <자작나무숲>

전쟁후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그 일상에 매여 아무런 생각없는 삶을 살아온 주인공

어느날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장기간의 휴가를 얻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시골마을을 가게 된다

그곳은 그가 가정교사로 일을 했던 농장 '빌코'였다

그곳에 있던 6명의 아가씨들

그들은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또는 이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들과의 과거를 회상하고 지금의 그녀들과 대면하면서

운명은 불가피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현재의 삶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고 다시 자신의 삶을 되찾는 이야기

 

자작나무숲을 관리하는 형과 시한부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 숲을 찾은 동생

동생의 쾌할함과 피아노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그 옆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은

아내를 잃고 딸고 함께 살고 있던 형

그러나 아우가 죽고 나서 그것이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겉으로 들어나지 않지만 형제애가 녹아있는 애뜻한 이야기이다

 

타데우휘 보로프스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폴란드가 결코 비켜갈 수 없는 , 그리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수용소의 이야기일 것이다

유대인들 싣고 오는 수송열차

그 수송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처리하고 그 물건들을 처리하는 사람들

그안에는 생명의 존엄보다는 생존의 열망이 있을 뿐이다

 

마렉 흐와스코 <구름 속의 첫걸음> <창> <노동자들>

사회적으로 빈곤하고 약자였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외된 사람들의 사람들의 체제에 대한 일탈,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일탈을 꿈꾸며 현실에 적응해나가는 씁쓸하지만 따뜻한 이야기

 

전체적으로 한 나라의 문학작품을 한권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그렇지만 그런 방대한 분량의 문학을 한 키워드로 잘 정리하여

그 키워드에 맞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욕심을 내다보면 중구난방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나라별 문학전집

다른 어떤 나라편 보다 그 구성이 좋았던 듯 하다

물론 그 나라 문학이 다 이럴것이다라는 편결을 같지 말아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말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0.10.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