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어려 좋은 책을 잘 선택할 수 없던 시절. 그 당시 내 손에 ‘오랜 시간의 향기’가 곱게 묻어난 책 한 권을 쥐어 주셨던 분은 다름 아닌 우리 부모님이다. '삼중당 문고'부터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그리고 세계 곳곳의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들이 나의 책 친구가 되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중반이 되어 좀 더 성숙한 독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시험 혹은 보편적인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보다 성숙한 시선’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와 함께 밤을 지새우던 고전 소설이 생각났다. 2009년 말, 2010년 초 - 뜻밖에 여러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이 앞 다투어 출간되어 고전을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디자인도 훌륭하고, 번역도 자신 있어 하는 그 책들을 보며 ‘요즈음 책들 참 잘 만든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백 권이 넘게 쏟아지는 고전들을 보며 ‘세상에 고전이 이리도 많은가, 그렇다면 고전이라 명명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고전은 많았지만 호기심의 원천을 채워주는 책은 아쉽게도 없었다.
보통 똘스또이라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안나 까레리나>를 뽑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똘스또이가 <안나 까레리나> 이전 혹은 그 이후에 쓴 단편이 궁금해졌고, 똘스또이와 같은 나라의 또 다른 작가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펼쳤는지도 알고 싶었다. 작가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 시기 마다의 변화를 살피기에는 장편보다 단편이 용이하다는 개인적인 생각도 한 몫했다. 그리고 그들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감성에 대한 호기심은 독서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커졌다. 더불어 국내소설 보다 더 많이 소개되는 일본 현대소설을 보면서 ‘저들에게도 고전이 있을 텐데, 그것들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지?’라는 독서의 갈증은 지속되었다. 비단 러시아, 일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의 언어와 역사를 가진 민족들의 삶을 알고 싶었다. 독서를 통해 타인에 대한, 다른 민족에 대한 이해의 자세를 스스로 찾고 싶었다.
그 때 발견한 책이 ‘창비 세계문학’이다.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일본, 폴란드, 러시아 총 9권으로 구성된 책을 받은 순간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흔히 ‘양장으로 된 고전소설’은 묵직하고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양장으로 된 창비 세계문학’은 양장의 믿음직스러움과 함께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어서 빨리 읽고 싶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더불어 그 믿음에 힘을 더 실어 주는 것은 ‘단순 번역’이 아닌 번역자가 직접 ‘엮고 옮김’ 이라는 것이다. 보다 정확한 작품 소개를 위해 출간된 원서를 단순 번역한 것이 아닌 해당 작품의 발표 시기 원문까지 비교하며 ‘보다 정확한 번역’에 힘을 기울였다. 전 책의 앞장에 ‘책을 엮으며’라는 글을 통해 작품선정의 기준과 더불어 그 나라에 대한 간략한 지리적, 역사적 정보까지 제공한다.
특히 폴란드편은 ‘한국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폴란드 문학선집이니만큼 지금껏 몇몇 특정 국가의 문학작품만을 편식해온 우리 독자들에게는 한층 새롭고 다양한 문학의 성찬을 음미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되리라‘는 기대감까지 더해있다. 나는 역자의 글을 통해 ’폴란드‘라는 나라의 지리적인 위치를 다시 한 번 인지했으며, 쇼팽과 코페르니쿠스, 뀌리 부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폴란드인이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 뿐인가 폴란드는 시엔키에비츠, 레이몬트, 미워시, 심보르스카 등 4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문학의 나라‘ 이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동시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특히 ‘아우슈비츠의 역사적 기억’을 생생하게 담은 독일편의 표제작인 클루게의 <어느 사랑의 실험>과 폴란드편의 표제작인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는 그 사건이 얼마나 인류 역사상 치욕적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고, 넓게는 ‘인간의 욕망과 잔인성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2009년 베스트셀러였던 <더 리더>를 읽으며 아우슈비츠를 소재로 한 문학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었는데 창비세계문학 폴란드 편 ‘더 읽을거리’에 ‘수용소 문학’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책까지 소개되어 그 세심함에 감동받았다.
아직은 지식의 이해가 깊지 못해 ‘이야기’를 중심으로 창비세계문학을 한번 읽었다. 각 책 마다 소개된 ‘더 읽을거리’까지 세심하게 살펴본 후 좀 더 깊고 진한 독서의 시간을 다시 한 번 갖고 싶다. 중학교 시절 사회시간, ‘산업혁명’을 이해하기 위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교과서로 배웠던 텍스트적인 내용보다 화면에 보여지는 채플린의 반복적인 노동의 모습이 나에게 ‘산업혁명’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창비 세계문학’ 역시 단순히 ‘국어’ 교과목의 폭 넓은 독서를 도울 수 있는 것만이 아닌, 넓게는 ‘세계사’,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내 ‘청춘의 독서’ 시간을 빛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후에 내 자식에게도 물려 줄 수 있는 ‘참 좋은 책’이 생겨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 기쁘다.
|
|
저는 미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읽었습니다. 다른 것도 좋겠지만 이 두 책이 특별히 좋네요, 소설 선정에서 번역과 해설까지 모두 우수합니다. 기존의 책들보다 번역이 훨씬더 매끄럽고 오역이 줄은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린 점이 우수합니다.
|
|
지금까지 출간되었던 세게문학전집들은 대개가 장편 위주였고, 거기에 가끔 구색용으로 단편이 끼어 있었다. 이 전집의 목록을 자세히 뜯어보니, 작가에 대해 중복을 피하는 한편, 수록작품들도 새로운 것들이 많다.
기간의 창비 간 한국문학전집도 잊혀질 뻔한 작품들을 과감히 수록하는 등, 편집이 돋보이는 발간이었다. 독자 이메일 서평 등의 수록도 좋았다.
창비세계 문학 Set ! 기대된다. |
|
<고통에서 소통으로>
세계문학 작품을 읽어 내려가며 마음 한켠이 가볍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세계’와 ‘문학’에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고통’ 때문이리라.
일본, 중국의 가까운 나라에서부터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문학을 돌아보니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여과된 자리에는 잔뜩 응고되고 굳어진 고통이 있었다. 가난의 고통, 이별의 고통, 전쟁의 고통, 기만(欺瞞)의 고통, 차별의 고통 등 찌르고 찌든 고통이 문학 작품에 정제될 수밖에 없었던 현상은 우리 인간의 삶이 고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남겨진 일기장을 통해 감쪽같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듯(영국편 「유품」) 스스로를 속이며 악마적 존재에게 책임을 전가하듯(미국편 「검은 고양이」) 거짓의 삶으로 현실을 은폐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때로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더욱 짙은 고통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각국은 각기 다른 고통의 역사를 지닌다. 원주민을 학살한 자리에 근대를 꽃피웠던 미국의 고통과 원초적 폭력의 피해자인 라틴아메리카의 고통, 홀로코스트를 겪어낸 폴란드의 고통과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인 독일의 고통 등 세계가 지나온 고통의 역사는 문학으로 되살아나 현재의 독자들에게 아비규환의 실상을 보여준다.
그의 채찍이 우리의 등을 때린다. 나는 재빨리 아무 시체나 잡았다. 그러자 시체의 손이 경련을 일으키며, 내 팔목을 움켜잡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와락 시체를 놓고는 후다닥 도망쳤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났다. 열차 아래서 등을 구부리고 토했다. (폴란드편 「신사숙녀여러분, 가스실로」 p.443)
이 뿐 아니라 순진한 어린이 화자를 통한 생생한 현실의 표현(폴란드편 「우리들의 조랑말」)도 비극의 극대화를 이루는데, 편협한 시각과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나는 여러 작품을 통해 세계 곳곳에 있는 고통을 목격하게 되었다. 상징과 비유가 가미된 교육인 독서를 통해 눈으로, 가슴으로 세계의 고통을 만나고 체험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인 고통이 너무 거대한 이야기라면 사랑의 고통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수차례 겪는 일상의 고통이다. 사랑이 왜 고통일까? 왜냐하면 사랑은 행복과 비견될 수 있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아픔, 절망, 분노, 증오, 외로움 등이 혼합된 복합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선된 작품인 세계문학세트 속에서는 괄목할만할 낭만적인 사랑이 없다. 지극이 현실적이고 고통스러운 사랑만 존재한다. 사랑해야 할 대상과 만나지 못하고(독일편 「뜻밖의 재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에게 분노하는(러시아편 「동굴」) 등 고통의 현실 속에서 사랑 또한 고통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할 만큼 역사는 매우 처절했고, 인간의 삶은 비참했기 때문에, 이를 담는 문학 또한 처참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계 속의 사랑과 삶을 보며 인간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갈지 앞선 날들을 점검한다. 고통의 사랑을 부활시키지 않기 위하여.
세계 많은 직업군 중에 고통을 더욱 풍성히 느끼고, 폭넓게 수용하는 것은 단연 작가가 으뜸일 것이다. 이처럼 작가들은 고통의 와중에서도 이를 기록하고 전달해야만 하는 기구한 숙명이다. 물론 참담한 현실을 기록하는 행위도 고통이겠거니와 기록하지 않고 묵인하는 것도 고통이리라 생각되지만.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 포르투갈의 도시 리사본이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7년전쟁이 지나갔고, 폴란드가 분할점령 되었으며, …(중략)… 영국군이 코펜하겐을 포격했으며, 그러는 중에도 농부들을 씨를 뿌리고 양식을 거두었다. (독일편 「뜻밖의 재회」 p.84)
바틀비(미국편 「필경사 바틀비」)가 우매하리만큼 강직함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환경에 휩싸이면 안 되는 존재이다. 아홉 권의 책, 백 십 편의 단편소설 속에 농축된 창작을 위한 작가들의 몸부림을 재료로 해서 독자들이 앎의 즐거움과 정서적 만족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니 숙연함이 절로 든다. 아울러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고통스럽게 한 톨 한 톨 문장을 만들어낸 작가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끈기와 오기를 부여잡고 아홉 권의 책읽기를 끝내니 세계일주를 마친 듯 성취감과 뿌듯함이 든다. 이것은 단지 책 아홉 권을 읽었다는 협소한 감정이 아니라 인류가 걸어온 세계와 역사의 고통을 끌어안은 듯한 호연지기의 배포, 바로 그것이었다.
세계가 걸어온 역사, 그 고통을 끌어안으니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그들의 삶이 절로 이해되고 깊이 공감된다. 비판적인 이성(理性)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던 나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당시의 상황들이 내 감성(感性) 속으로 흡입되었다. 고통이 소통이 되는 순간이다. 더욱이 과거와의 소통뿐만 아니라 책을 덮고 난 지금의 현실에서 고통을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을지 방법을 모색하게 하고, 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세계의 고통을 돌아보니 고통의 수식어는 이제 ‘아름다운’이 적절할 것 같다.
문학으로 전달되는 세계의 고통, 그 '아름다운 고통'을 끌어 안아본다. |
|
제가 세계문학 선집에 기대하는 바는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개별작가 뿐 아니라 해당 문화의 지형 파악에도 도움이 될 구성일 것,
수록 작품에 이어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이어서 볼 수 있을 조언이 있으면 좋을 것,
믿을만하고 완성도에 최대한의 노력을 다한 번역일 것,
반드시 양장본일 필요는 없겠지만 내구성있는 패키지일 것.
여러 출판사에서 최근 발간중인 세계문학 선집 중 이러한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구성이 창비 세계문학 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편 소설을 선정대상으로 국가 단위로 묶어낸 것이 가장 특징적입니다. 어릴 적부터 봐왔던 세계문학 전집은 작가별이거나 대륙권 단위가 흔했던 것 같네요. 가령 동유럽, 서유럽, 동남아시아 등의 구분 말입니다. 국가 경계선이 지금과 흡사한 시기에 쓰여진 단편소설이라는 장르는, 대륙권의 구분 말고도 국가별로 묶어 보았을 때 새로운 그림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각 나라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 중 단순히 읽어볼만한 작품이 아닌, 시사성이 있거나 지형 파악에 도움이 되는 작품인 것도 믿음직합니다. 만약 '인기가 좋은 작품' 위주로만 선정되었다면 분명 아쉬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선집이 중요한 이유는 한 작가의 작품군에서 빛을 보지 못할 작품을 새 맥락 안에 놓아, 진정한 '다시-읽기'를 도와준다는 점일 테니까요.
작가의 간략한 소개 역시, 아주 유명한 작가가 아닐 경우 잘 모를 수도 있는 정보를 유용하게 제공합니다. 그리고 작품에 들어가기 전, 줄거리와 작품의 의의 혹은 배경 등을 알려주는 면도 큰 도움이 되더군요. 수험생들이 주로 사는 "고교생이 읽어야 할..." 등등의 시리즈가 가진 작품 썸머리 측면의 기능도 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
작품마다 뒷편에 더 볼 작품에 대한 조언도 '조언' 다운 기획입니다. 사실, 이러한 코너에서는 출판사에서 자사 출간 도서를 홍보하는 구성으로 이어지기도 쉽지만, 이 전집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믿음도 갑니다.)
번역의 완성도도 만족할만한 수준입니다. 과도한 번역투의 문장이나, 해당 국가나 문화권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옮긴이의 주석이 도움을 줍니다. 물론 이 도움이 과도할 경우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주석이 본문보다 더 크게 자리하여 작품의 자리를 좁혀버리는 경우도 왕왕 보게 되는데요, 이 역시 '적정선'을 잘 지킨 것이 마음에 듭니다.
가지고 다니기엔 양장본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나, 확실히 페이퍼백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지요. 게다가 세계문학 전집은 소장가치도 충분해야하니까요. 양장본의 질도, 표지 그림등 디자인도 훌륭합니다.
기존 선집과 달리 새로운 기획과 구성이니만큼 더욱 관심이 갑니다. 계속 작품집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또한 이 선집에서 '다시-읽기'를 가능하게 해줄, 또다른 작품은 무엇이 될지도 사뭇 기대가 됩니다.
|
|
창비세계문학 9권 중에서 지금까지 읽은 책은 영국편 『가든파티』, 미국편 『필경사 바틀비』, 독일편 『어느 사랑의 실험』, 러시아편 『무도회가 끝난 뒤』 이렇게 네 권입니다. 9권 전체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세트 전체에 대한 리뷰(?)를 한다는 건 무리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직 읽지 책들을 포함한 보다 세부적인 리뷰는 다음을 약속하더라도, 지금껏 읽은 책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인상비평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 선집 세트에 대해 느낀 장점들과 다소 아쉬운 부분들을 간략하게 남겨볼까 합니다.
(상품) 소개를 하는 게 아니라면 리뷰라는 이름으로 이미 나온 얘기들을 굳이 길게 되풀이 할 필요는 없겠죠. 짧은 의견이더라도 누군가에게 뭔가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어요.
'선집'의 경우 아무래도 어떤 '기획'인가가 가장 눈에 들어옵니다. 그 기획이 선집을 꾸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해당 선집이 그 기획에 얼마나 충실한지 말이죠. 선집을 기획하는 비평적 감식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고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선집이 해당 기획자의 감식안의 '결정판'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한계가 있습니다. 네, 저작권 문제죠. 아무리 기획이 좋고 탁월한 감식안을 가졌다고 해도 마지막에 선집에 해당 작품을 저작권 문제 등으로 포함시키지 못한다면, 그 선집의 질(?)에 대해서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분명 곤란합니다.
창비의 이번 세계문학 선집은 그런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하면 충분히 훌륭한 선집이 되었다고 봅니다. 거기다가 (이미 다른 리뷰에서 여러 분들이 장점으로 지적해 주신 것처럼) 세부 구성이나 디자인에서도 그간의 한국 전집에서는 몇 걸음 나아간 부분이 분명 인정되고요.
특히, 창비에서 이전에 작업을 했던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1, 2>에서 축적된 성과를 좋은 방향으로 반영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도 주목할만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단편 선집이라면 앞으로 새로운 기획에 따라서 첫 번째 세트에 이어 가지치기를 할 수 있을텐데, 이번 세트 구성에서는 그걸 염두에 둔 열린 구성이 안 보이더군요. 너무 맘에 든단 말은 차마 못 하겠는 못된 독자의 의도적인 투덜거림이라고 여겨 주시고...
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부탁 드릴게요.
|
|
...때때로 짧디 짧은 한 줄의 명언이 그보다 수십만배쯤은 더 기나긴 내 인생의 행로를 결정짓는 좌표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단편이라는 존재 또한 때로는 수십권의 대서사시보다 마음에 더 커다란 일렁임으로 와닿을 수 있다는 걸, 난 꽤 늦게서야 깨달은 것 같다.
창비 세계문학을 처음 집어들었을때, '과연 이것도 고전문학일까?'라고 의아해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고전'이란 단어가 주는 낡고 고리타분한 선입관을, 이 산뜻한 표지와 가벼운 무게의 전집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 아무리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주옥같은 단편이라 하더라도, 작가의 폭넓은 시각과 문학적 견해를 온전히 이해하는데는 부족함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이 전집의 기특한 점은 바로 그 2%의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더 읽을거리'에서 또다른 번역본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각 나라권을 대표하는 문호들인 만큼 단편이라 느껴지지 않을만큼 그 완성도가 높았다. 다양한 주제와 그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각의 작품속에서 그 빛을 발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114편의 작품들이 한데 엉켜 만들어내는 흡입력이다. 각기 다른 책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언어와 시대를 막론하고 융합되어 다가오는 주제가 쿵 하고 가슴을 치는 일이 생겨났다.
특히나, 나라를 막론하고 많은 주제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의 모습과 '전쟁'의 이면을 그린 작품들은 그 의미를 함께하는 데 의의가 큰 듯 했다. 남성에게 짓눌린 여성의 생활, 그리고 그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등장하는 반전적인 시퀀스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같은 여성으로서의 내 자신을 투영하게 되었고,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더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폴란드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나 독일의 '어느 사랑의 실험'등과 같은 작품에선 같은 아픔을 지닌 나라라는 유대감과 함께 공통된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권,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며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친구가 될 수 있고,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손도 대려 하지 않는' 상실의 시대 속 나가사와 선배-그가 좋아한다고 말한 작가 대부분의 이름이 이 전집에도 발견된다-가 문득 떠올랐다. "<창비 세계문학전집>을 세 번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
|
창비 세계문학만의 특별함으로 엄선한 세계 문호들의 작품들을 야심차게 다양한 세계 문학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또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높히 평가를 드리고 싶어지네요~~~ 세계의 멋진 항로를 여행할 수 있고
세계지도를 따라 책으로 만나는 많이 사람들과 그네들의 정서와 문화를 작가의 눈을 통해서 작가의 정성어린 문체를 통해서 작가의 독특한 경로를 통해서 작품의 진가를 맛보고 싶어져요!!!!
|
|
내가 가지고 있는 제일 오래된 전집은 ‘학원 세계문학전집’이다. 이 전집은 말이 안 되는 장정이다. 읽으라고 만든 것인지 서가를 장식하라는 것인지. 장식 기능도 못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돈벼락 맞은 졸부의 어설픈 몸치장 같은 장정을 하고 있다. 그런 주제에 가격도 비싸다. 그럼 난 이걸 왜 샀냐. 아주 어릴 때 구입한 전집-내 돈 주고 산 첫 전집-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데 간덩이만 커서 속아서 산 것이다. 이 전집은 한 페이지를 세로로 둘로 나눠 그야말로 깨알 같은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는 B5만하고 너무 무거워서 누워서는 못 들고 읽는다. 다른 출판사의 전집류와 비교 하면 민음사의 <안나 카레니나>가 권당 5, 600페이지로 세 권 구성인데 학원 출판사의 책은 한 권 안에 다 들어가 있다. 번역은... ‘혁오 밴드’와 ‘산울림’의 차이랄까. 재밌는 건 <안나 카레니나>의 번역자는 학원 출판사와 문학동네가 같은 사람이다. 문장이 좀 다듬어졌을 뿐 고풍스런(?) 문체는 그대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모양이 나름나름이다. (학원/박형규 역)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민음사/박형규 역)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문학동네/연진희 역)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펭귄클래식코리아/윤새라 역) 독서에 부적합하고 무거운데다 자리만 차지하는 이 전집 30권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추억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내가 이 전집으로 세계문학의 바다에 처음 뛰어들었는데. <신곡>도 이 전집으로 읽고 <카라마조프 형제들>도 이걸로 읽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마지막 3권만 민음사로 읽었다. 뒷얘기가 미치도록 궁금한데 직장을 다니면서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음사와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코리아 세계문학 전집에 대해선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좀 색다른 세계문학 전집을 소개하고 싶다. 창비에서 나온 아홉 권짜리 세계문학 단편선이다. 양장에 종이 손실을 줄이기 위한 신국판 규격인데 세로 225 가로 153 단행본 사이즈다. 글자 크기, 줄 간격, 여백 모두 읽기에 최적화되어있다. 가장 얇은 책이 257쪽, 가장 두꺼운 책이 491쪽이다. 휴대용으로는 좀 버거울 수 있지만 누워서 읽기엔 아무 문제없는 장정이다.
이 전집의 가장 큰 특징은 책의 구성이다. 창비 세계문학 단편선은 참신하고 획기적인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특이하게 국가별 모음으로 국가별 주요 작가들의 단편으로 엄선되었다. 모두 아홉 개의 나라로 영국(11편), 미국(10편), 독일(17편), 스페인·라틴아메리카(19편), 프랑스(14편), 중국(9편), 일본(10편), 폴란드(11편), 러시아(13편)이다. 이 전집의 신선함은 뭐니 뭐니해도 쉽게 접하지 못한 작품들이 모인 데 있다. 총 114편중에서 영국의 <가든파티>, 미국의 <필경사 바틀비>, <검은 고양이>, 중국의 <아Q정전>, 러시아의 <외투> 외에는 전부 새로 만나는 작품들이니 얼마나 흥분했었는지. 팔딱팔딱 뛰며 좋아 했었던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흐뭇하다. 2010년 1월에 출간되었는데 나는 초판 2쇄 발행 5월 인쇄본을 구입했다. 프랑스의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만 7월 인쇄본이다. 아쉽다. 초판 1쇄본이이 아니라서. 처음엔 이 전집이 왜 애매한 숫자인 아홉 권 구성인지 의아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겠지만 보통 ‘9’라는 숫자는 잘 선호하지 않지 않나. 5, 10, 12, 15, 20... 이런 식의 구성을 선호하지 않나. 나중엔 오히려 아홉 권의 구성마저 신선한 장점으로 여겼으니 내가 얼마나 이 전집을 애장하는지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작품 수준이야 말할 것도 없다. 대문호의 작품 중에 좋은 단편만을 엄선해서 알차게 채워 놓았으니 내가 가타부타 얘기하는 것 자체가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짓이다. 나는 이 전집을 겨울에 읽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는 퇴근하고 돌아오는 평일이나 주말이면 이불 속에 파묻혀 이 책들과 함께 꿈처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 매우 심란한 일도 있었는데 만일 이 전집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몹시도 고통스러운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제1권 영국의 ‘애러비’, ‘가든파티’의 오래된 낭만으로 시작하여 2권 미국의 ‘필경사 바틀비’, ‘진품’, ‘누런 벽지’의 핍진한 묘사에 놀랐다. 3권 독일의 실험성 높은 작품들에서 어리둥절했고, 4권 스페인·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는 낯선 세계에의 생소한 기쁨을 얻었다. 5권 프랑스에서는 문학의 정통성을 6권 중국에서는 알토란같은 재미를, 6권 일본에서는 편견 타파와 이해를, 7권 폴란드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절절이 느꼈다. 마지막 러시아 문학에서는 대작가들이 마련해준 성찬을 맛보며 아쉬운 마음으로 물러나는 기분으로 읽었다. 언제고 시간이 나면 114편의 리뷰를 한 줄씩이라도 해 볼 생각이다. (난 이런 거 좋아한다^^) 창비 스스로 근현대 백 년의 걸작을 지금까지 접할 수 없는 참신한 작품들로 구성하여 문학 지형도를 새롭게 썼다고 했는데 과장이 아니다. 특히 이 전집은 일반 독자 외에 문학에 뜻을 둔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세계문학의 우수한 교재가 되어 줄 것 같다. 참신한 구성과 짧지만 적확한 작품 해설, 잘 읽히는 번역은 주제별로 엄선한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에서의 아쉬움을 채워 줄 듯 하다. 이번 주부터 여름휴가의 절정이다. 다행히 태풍은 제주를 비껴가는 듯 하니 제주를 찾는 관광객도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번잡한 휴가지가 싫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엔 섭섭하니 한여름에도 선선한 한라산 아래서 여름휴가를 보내려 한다. 세계여행을 가지 못하는 나로선 올여름에 이 전집을 휴양림으로 싸들고 올라가 다시 책의 세계여행을 할 생각이다. 여력이 된다면 또다른 너무나 사랑하는 책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 챙겨서-너무 무거워서 못 가지고 갈 것 같다- 가고 싶은 나라를 그려볼 계획도 있다. 2년 전에 시도하다 만 ‘몽 생 미셀’부터 다시 그려볼까 한다...(어이 없는 웃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번 여름휴가에 어떤 책을 읽을지 궁금하다. 여름엔 스릴러물도 진짜 좋은데... 세상에 읽을 책이 아주 많다는 이유만으로도 인생은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