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습성이다. 사랑- 그것이 정말 사랑이라면 -은 끝없는 역동성과 첫 만남의 충실성이 어우러진 형태이다. (중략) 혁명도 이와 마찬가지다. 혁명이 인간적, 사회적 관계의 재발명뿐만 아니라 혁명 자체의 이론적 전제들의 재발명을 멈추는 순간이면 대개 반동과 퇴보로 이어지고 만다. (12)
흥미로운 책이다. 작년 9월에 구입한 책인데, 책 앞머리에 이렇게 썼다. '17-9-27. 제목도, 내용도 마음에 든다. 주장은 뻔하지만 그 과정이 무척 흥미로울 듯하다. 최근 재미없는 책만 읽다가 이런 책을 읽으려니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사랑과 혁명의 공통점을 조망하는 책이다. 이란의 혁명과 레닌의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10월 혁명, 그리고 체 게바라의 혁명적 사랑까지. 혁명이 요구하는 것과 사랑이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닮았다. <사랑의 급진성>은 혁명과 사랑이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 또 사랑이 실패하면 혁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한다.
이란의 사랑 : 권력은 왜 사랑을 두려워하나?
다시 말해서 체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들의 은밀한 세계(섹스, 사랑......)이다. (중략) 핵심 권력자들은 '몽정'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갖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파렴치한 예들은 많이 있다! 전체주의 체제의 '몽정'을 보여주는 지도나 백과사전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정도이다. (67)
레닌의 사랑 : 급진적 반동성
저는 공산주의자로서 물 한 잔 이론을 조금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충족'이라는 멋진 표제를 달고 있지만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든 사랑의 해방은 새로운 것도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닙니다. 지난 세기 중반에는 낭만주의 문학에서 '심성의 해방'을 설파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겠지요. 부르주아는 그것을 육체의 해방으로 실행했습니다. (103)
체 게바라의 사랑 : 실패한 혁명의 완성된 성 해방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것은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자질이 없는 진정한 혁명가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전위적 혁명가들은 민중에 대한 사랑을, 가장 신성한 대의에 대한 사랑을 이상화하고 불가분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116)
좀 어렵게 쓰이긴 했지만, 내용들은 매우 흥미롭다. 왜 권력은 사랑을 경계할까?(이란의 사례) 러시아 혁명은 어떻게 성공했으며, 또 어떤 과정(이유)을 거쳐 쇠퇴한 걸까?(레닌의 사례) 체 게바라의 혁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체 게바라의 사례) 저자는 혁명은 결국 사랑의 자유와 결부될 수밖에 없으며, 사랑의 자유(=성 해방)가 보장되지 않은 혁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급진적이며, 이러한 성격은 혁명과 동일한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론. 사랑과 혁명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혹은 사랑 없는 혁명 또는 혁명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떡해야 할까? 저자는 기독교적 관점을 빌려 사랑과 혁명의 3자 관계를 설명한다. 인용이 길지만 버릴 것 없는 내용이라 전부 인용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혁명 모두에 헌신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급진성이다. 연인들(두 사람)과 제3의 층위(혁명)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뜻밖에도 삼위일체에 이르게 된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하느님은 사랑이고 모든 사랑의 기초에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사랑인 하느님 안에서 삼위일체를 발견한다. (중략) 남자와 여자는 양립 가능하지 않지만 중요한 점은 두 사람이 서로를 하느님의 반영으로 인식하고 성부와 성자처럼 사랑하고 존중하는 데 있다. 누구도 상대가 갖고 있는(또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주지는 않지만 각각 상대를 위한 공간과 자유가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동일한 인격을 가진 자와 동일하지 않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하느님이 되겠지만 우리는 혁명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162~163)
역자의 후기 또한 훌륭하다. <사랑의 급진성>의 주제를 핵심적으로 요약해냈다.
사랑은, 그것이 에로스적 사랑이든 인류애든 간에, 타자와의 만남에서 서로의 차이를 극명하게 발견하게 되는 폭력적인 경험이지만 아울러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사랑에 빠져듦'은 "결과가 어떻든 간에 위험을 무릎쓰는 것, 이 숙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일상의 좌표가 변경되리라는 점을 알면서도, 오히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만남을 갈구하는 것"이다. 사랑과 정치가 연결되고 사랑의 진정한 급진성을 찾을 수 있는 여지는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166~167)
책을 읽으면서 사랑과 정치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정치란. 어쩌면 정치권력을 잡으려는 움직임도 사랑을 위해서가 아닐까. 반대로 사랑의 권력을 점하기 위해 정치력을 동원하는 일도ㅡ그것이 일상의 정치력이든 대국적 정치력이든ㅡ빈번하게 일어난다. 뗄래야 뗄 수 없는 이 두 관계에 대해, 기회가 되면 나 역시 긴 글을 쓰고 싶다.
<사랑의 급진성>, 좋은 책이다. 머릿말부터 역자후기까지 버릴 것 없는, 알찬 구성이다. 특히 이 책이 2017년 2월에 나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촛불혁명 이후 '혁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때, '사랑'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면 더욱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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