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 6-7) 작년에 [묵상을 위한 야베스의 기도] 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감동과 전율로 매일이 새로워 수요일 큐티 모임에서 기쁘게 증거할 때가 있었다. 그렇다 그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생하게 다가왔던 은혜도 생활의 반복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어느새 또 기도하지 않고 심신의 피곤함에 핑계를 돌리며 잠 속으로, 영적인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이 책은 반짝반짝 티끌하나 없는 투명한 거울이었다. 추하고 어리석은 내 모습이 거울 너머의 사울의 모습과 겹쳐져 몇 번이나 읽던 눈길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가슴이 얼마나 답답했던지.. 내 두려움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항상 지혜로운 사람으로 사람들 앞에 서고 싶은데 내가 가는 길은 늘 부딪치고 넘어가기 힘든 고갯길이다. 그 와중에 나의 부족한 본성들이 부셔져 나와 파편들로 걷고 있는 내 발바닥을 찌른다. 아프고 쓰리다. 오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짓궂은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평정을 잃고 말았다.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한 말에 상처받을 아이들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 순간에도 그리스도적인 모습으로 아이들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내 속에서 타오르는 감정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뿐이었다. 난 그 때 하나님을 잊고 있었고 내 스스로 해결하고 처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을 참 싫어한다. 약해 보이는 건 싫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흔들리기 쉽고 나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고집이 하나님 앞에서도 드러났다. 기도할 때도 경건하게 늘 정돈된 모습으로....... 지극히 인간다운 그래서 더 하나님의 사랑안에 온전히 기댈 수 있었던 다윗의 모습은 그 열정적이면서도 맑은, 눈부시게 깊은 믿음을 가진 다윗은 나를 둘러싼 '내가 아닌 것'들을 온전히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견딜 수 없이 부러웠고 그런 다윗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자신의 인간다움을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럼으로 온전하게 그 분께 기대는 것이다. 지하철 역에서 어린 꼬마가 엄마에게 몸 전체를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어린 소녀는 넘어질 수 있을 만큼 몸 전체를 엄마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아이는 알 것이다. 자신의 몸을 기대고 있는 그 사람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음을 ... 나에게도 이런 믿음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되길 소망한다. 고난이 축복이 된다는 말은 이럴 때 충분히 납득이 간다. 주님은 영원에서 영원토록 신실하시고 언약을 지키시고 늘 함께 하실 것이며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실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어려움이나 힘듬도 주님께 더 의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 기회 속에서 나는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코 누릴 수 없는 기쁨의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의 고백 "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 살아계시고 신실하신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저를 살피시며 주야로 저를 지키시는 주님 당신으로 인해 제가 얼마나 기쁜지요 다윗처럼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다윗처럼 찬양하길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끝없는 사랑에 매 순간 기쁨과 감사로 반응하는 생동하는 믿음가운데 살게 하시옵소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당신을 향한 노래를 부르게 하시고 샘솟는 충만함 가운데 살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