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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스쳐지나가듯 본 TV 프로그램에서 군함도에 대해 말하는 걸 보았다. 우리의 아픈 역사,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에 대해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 있었던 것에 대해 울분만 토했지 제대로 된 진실을 알고 있었던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좀더 알아봐야겠다 생각하던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울분만 토했을 뿐, 수박겉핥기식으로 아는 역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군함과 비슷하게 생겨 군함도라 불린 하시마섬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때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실려있는 곳. 일본은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일본의 근대화를 자랑하는 산업혁명유산으로 일본 정부는 강제노동의 어두운 역사를 가리기 위해 세계유산의 범위를 1910년으로 한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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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본은 조선인들을 징용했는데 사실상 강제징용이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강제징용당한 사람들에게 탄광에서 일하게 했고 그들은 제대로 된 음식도 주지 않았고 저금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월급도 주지 않았다. 해방이 된 후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미쓰비시가 했던 행동은 어떻던가. 화장이 끝난 조선인 유골을 폐갱에 버렸다고 했다. 그들의 만행을 알고 희생자 유족과 일본 시민 단체가 진상규명을 촉구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군함도의 피해자들 뿐 아니라 위안부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자 했다. 뉴스에선가 '내가 위안부였다'라고 말한 할머니들의 장면이 생각난다. 위안부의 이야기를 했던 영화나 소설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아파했던가.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일본은 위안부는 없었다고 말했다. 책임을 회피하고 역사를 왜곡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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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은 산 자들의 일이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산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은 결국 산 자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의 의례를 넘어 생활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된 추모와 기억이 아닐까. (30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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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도 제대로 된 역사를 알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아래 사진은 연합군의 포로 감시원으로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전범이 되어 사형을 당한 조문상 씨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였으나 일본의 포로 감시원으로서 사형을 당해야 했다. 그는 왜 전범으로서 사형을 받았는가. 왜 그가 전쟁의 책임을 저야 했는가. 가슴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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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지역에 조선인들의 유골이 지금도 많이 나온다고 한다. 파푸아뉴기니 뿐만 아니라 대만의 하이난섬에 이르기까지 강제노동을 당했다. 또한 일본이 패전하면서 수많은 조선의 노동자들을 전부 살해해 지하갱도에 묻었다. 대만의 하이난섬은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묻혔으면 조선촌이라고까지 불렸을까. 역사의 진실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일본의 우경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역사왜곡으로 일본인들도 설마 그런 일까지 저질렀을까 의문스러워한다고 한다. 왜 일본은 독일처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가. 내 가족이 겪지 않았다고 우리의 과거를 너무 잊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강제동원의 진상규명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점점 그들이 스러져가고 있는데 해결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중요한 역사 기록이며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 아니던가. 일본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인정하지 않으려하는 책임회피가 불러온 아픔이 오래도록 자리할 것 같았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저 일본이라는 이유로 일본을 싫어하지만 말고 제대로 된 역사의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 대학생들이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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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에 의해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들. 군함도라 불리우는 일본의 한 작은 섬에서 지옥같은 노동을 견뎌야 했던 이들. 책은 군함도 뿐 아니라, 강제동원의 배경과 원인, 과정, 인물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다. 일본에 의해 주권을 침해당하고, 그들의 속임수에 걸려 자신의 목숨줄을 빼앗긴 사람들. 강제징용되어 고생하다가 전범이 되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도 있고, 탈출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정부는 일본과 합의한 과거 전례가 있기 때문인지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기업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중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국가간에 배상이 끝났다는 이유로.
일본 나가사키 반도 옆의 작은 섬, 군함도. 군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미쓰비시 조선소와 하시마 탄광이 속해 있는 다카시마 탄광이 미쓰비시 기업을 발전시킨 핵심적인 시설이다. 이 섬이 사람들로 북적이게 된 이유는 석탄 때문이다. 미쓰비시는 이곳에 7층 아파트를 세웠다. 근처에는 학교, 병원, 목욕탕 등도 지었다. 당시 미쓰비시는 해저탄광을 개발하기 위해 최신 기술을 이 섬에 집약시켰다고 한다. 조선인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들은 이곳으로 끌려와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일하였다. 아파트는 일본인 장교들의 숙소이다. 배고픔을 견뎌야 했으며 지옥같은 곳에서의 노동을 이겨내야 했다. 탄광 바닥에 찬 물 때문에 습하고 후끈후끈한 공기르 마시며 낮은 막장에서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씩 석탄을 캐냈다고 한다.
중일전쟁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눈을 돌렸다. 일본 기업의 노무계 직원들은 직접 조선에 와서 대대적인 노동자 모집에 나섰고, 1939년 부터는 일본정부의 허가를 받고 공식적인 집단 모집을 시작했다. 그들은 복지시설을 찍은 기업홍보 책자와 화려한 포스터를 보여주면서 일본에 가서 일하면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조선인들을 유혹했다. 일제에 협력한 면서기들은 나이어린 청년들을 마구 잡아갔다. 순사들은 도망치지 못하게 그들의 손을 묶은 후에 관부연락선에 태웠다.
여자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할머니들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6건의 소송이 진행중 이라고 한다.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소송이 3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3건이다. 법원의 판결이 지체되면서 이제 아흔이 되어가는 할머니들은 소송이 마무리 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90년대 초반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임을 알리고 나서면서 국제적으로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기존의 입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다는 혐의로 전범이 되어 교수형을 받은 조선인. 피해자인데 가해자의 멍에를 져야했던 조선인 B.C급 전범들. 포로감시원을 모집하는데 대우가 좋다는 면장의 말을 듣고, 어짜피 가야할 것이라면 포로감시원이 낫겠다 싶어 따라간 게 발단이었다. 임시군교육대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욕설과 구타, 마주보고 뺨 때리기 등의 가혹행위였다. 포로감시원들은 포로들에게 잔인해져야 한다고 배웠다. 구타와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전쟁 종식 후, 재일전범들은 일본인으로 취급 받았다. 그들은 동진회를 결성하여 일본정부에 국가책임을 물었다. 50년이 넘게 책임을 묻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에서는 답변이 없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있는데 책임지려는 정부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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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 그리고 한·일 양국의 양심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모두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군함도는 나가사키에서 서쪽으로 18㎞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로 일본말로 ‘하시마’(端島)다. 침략 전쟁 탓에 급성장한 미쓰비시가 좁은 땅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7층, 10층 짜리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당시 일본 최초)를 지어 멀리서 보면 마치 군함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마 탄광 내에서 누운 자세로 탄을 캐는 징용자
2부에서는 훗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강제징용되어 일본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어린 나이에 끌려가 강도 높은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여자근로정신대는 조국에 살아 돌아와서도 오해와 편견에 시달렸다.
▲전라북도 여성근로정신대 귀환 사진. 하카타 항에서 미군 촬영(1945.10.19)
3부에서는 중국에서 시베리아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BC급 전범, 군인·군속, 포로, 군 '위안부'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얼굴의 조선인이 승산 없는 전쟁터에 보내졌고, 죽임당했고, 살아남아서도 어떠한 사과나 배상을 받지 못했다.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어느 누구도 일본정부나 전범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침략 행위 및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관해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 고노 담화 등 일본정부의 몇 차례 사과를 들어 일본이 얼마나 더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일본정부가 ‘강제성’이나 ‘불법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 아니다. 강제성이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사과를 두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진정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는 또 다른 폭력이다.
한편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군함도〉는 한수산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을 모티브로 했다. 출연진과 배역을 보면 원작이 대폭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캐스팅 면에서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등 쟁쟁한 배우가 출연한다. 우선 황정민은 경성 호텔 악단장 이강옥 역을, 소지섭은 경성 최고의 주먹 최칠성 역을, 그리고 송중기는 군함도에 잠입하는 독립군 박무영 역을 맡았다. 세 캐릭터 모두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은 지상, 우석 그리고 길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술집 여자 금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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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는 과거의 역사 문제로 오랜 세월 옥신각신하고 있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한국은 피해자인 관계에 놓여 있는 채 오랜 숙원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제가 일제 강점기하에 강제 동원되어 희생되고 치유하지 못할 상처를 품고 있는 분들에게 진상규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조선의 젊은 청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아직도 속시원히 해결해 주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당시 태평양 전쟁 즈음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젊은 청년들은 꽃피는 시절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희생되기도 하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 일본에 눌러 살아야만 하는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징용 및 징병 그리고 여자정신근로대들에 대한 책임 있는 인정(사과) 및 피해보상이 아직은 요원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식 명칭은 하시마(端島)이고 섬의 모양이 군함과 비슷하다해서 붙여진 군함도(궁깐또)는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인공섬이다. 일제가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위해 세운 미쓰비시사(社)가 조선소와 하시마 탄광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는데, 침략전쟁 기간 군함과 어뢰가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조선에서 징용되어 온 젊은이들은 수없이 희생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진상 규명을 할 의지조차 없다. 나는 이 도서를 구입할 무렵 '군함도'라는 영화를 관람하면서 일제 제국주의가 저지른 온갖 만행을 한층 더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잔인하고 악랄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재현했다고 생각을 했다.이제 피해를 입고 희생을 입었던 분들은 거의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대신 유족들이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 철저한 조사 및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 시기에 강제동원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다음(DAUM) 스토리펀딩 및 TV 《무한도전》에서 군함도의 사연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동일한 과거의 아픔과 상처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전향적인 역사의 인식을 갖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합의로 인해 일본 정부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그것은 박근혜 정부가 일본이 제공한 10억 엔의 대가로 소녀상의 철거를 약속한 것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의 이면은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역사가 과거로 회귀하거나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도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일제 강점기하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은 어찌 군함도의 탄광에 강제 징용된 젊은 청년들의 희생뿐이겠는가. 태평양 전쟁의 앞잡이로 나서게 된 조선의 젊은 청년들, 일본군의 위안부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던 정신근로대들은 싸구려 희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강제 징용되었던 청년들이 전범(戰犯)으로 몰리고 형해(形骸)화된 유골들이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된다는 말인가. 일본 정부가 가해자로서 1차적 책임이 있다면 한국 정부 역시 피해자들에게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일본 정부에게 들이밀어야 할 판국이다. 지옥섬 군함도의 징용 조선 청년들의 희생부터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에 걸쳐 군수품 조달에 동원되고, 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총알받이로 동원되었다.
이제 광복 70주년을 지나고 현재 한반도는 어느때보다 정치.경제.군사 문제에 있어 예측하기 어려운 난관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제 강점기하 일본 제국이 저지른 강제연행.강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유족 및 유지(有志)들의 피말리는 여정에 들어서 있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시키면서 군함도가 세상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미해결된 갖가지 한.일협정의 재정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게 되었다. 일본 정부 및 미쓰비시사(社)를 상대로 기나긴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유족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열리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재판 및 (한국의 정부기관이) 피해자 심사 시 '기록'이 판단 근거가 되는 바, 일본정부는 아직도 극히 일부만 알려주었을 뿐이다. 은폐된 진실, 쪽뿐인 전시성 추모에서 실질적이고 (한.일 양국)동반 상생하는 양국 관계를 향해 일본 정부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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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수산 작가의 [군함도]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지상이란 남성이 갓 결혼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두고 징용으로 끌려간다. 지상이 징용으로 끌려 간 곳은 군함도라고 불리는 해저 탄광이 있는 하시마 섬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학대를 당하다가 겨우 탈출을 한다. 그 후 그는 나카사키의 조선소에서 일을 하다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될 때 현장에 있다가 피폭을 당하게 된다. 이 소설은 지상이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일제시대 징용으로 끌려 간 조선인이 겪었을 아픔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은 지상이 나카사키에서 원폭 피해자들을 돕는 장면에서 끝난다. 소설은 지상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가족을 만났는지, 원폭 피해로 어떤 후유증을 겪었는지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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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민족문제연구소] 는 현재도 진행중인 우리 역사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군함도는 예능방송인 무한도전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으로 더욱 더 자세하게 진실을 알아갈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왜곡된 역사관과 여전히 사과할 줄 모르는 뻔뻔함에 대해 더욱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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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영화 군함도.. 참 한쪽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군함도 영화가 역사왜곡이라는 둥 말은 많긴한데,, 이 영화가 안만들어졌다면 군함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기나 했을까 싶기도 해요. 영화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군함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저처럼 군함도 관련한 서적을 찾아볼 수 도 있으니 말이에요. 사실 이 책을 구매하기 전에는 도서관에가서 군함도 관련 서적들을 찾아봤어요. 그런데 다 대여 상태더라고요. 아니면 예약...ㅎㅎㅎ 그만큼 군함도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겠죠. 역사는 바로 알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 책을 구매하면서 받은 군함도 포스트잇... 815팔지 도 유용하게 써야겠어요. 실제 군함도 사진..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실화.. 군함도 이외에 강제동원의 실화 등등... 저도 몰랐던 내용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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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왜곡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 무지해서 죄송하고, 그간 관심없어 죄송하고, 그럼에 아직도 아무것도 하고있지 않아 죄송했던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땐 그냥 소설같은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좀 자세히 살펴보고는 그게 아니고 진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알려주는 책임을 알고 무겁게 읽어가던 책. 하지만 제목처럼 군함도 섬에 대한 내용만 나오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 일본이 저지를 만행(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을 저지른 모든 곳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아니 그들의 만행을 모두다 담으려 노력한 책이다. 물론... 조건부 승인(?) 같이 지금은 되어있지만 2018년엔 최종 승인이 난다고 하니... 최소 그때까지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었으면 하는 바램이 이 책을 만든게 아닐까 한다. 내가 아이를 기르지만... 아니 나 조차도 내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는게 가장 어렵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야단맞을까 두근거리기도 하고, 더 큰 다른것까지 묶어서 내 잘못이 될꺼 같아서 이기도 하고... 이런 이유들로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크지만... 그런걸 누르고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용기야말로 지금이 아닌 우리 아이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일이 아닐까 싶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담당자는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정부는 그 사람이 단어선정에 문제가 있고, 그런 의도가 아녔다고 부정했다고... (욕을 안할 수가 없다. ㅡㅡa) 아직도 이런 일본의 행동들을 보면서도 그냥 모르쇠러 일관하고 있는 내가 어쩌면 더 큰 죄인은 아닐런지... 반성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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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뀌었다. 한 사람의 변화가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기대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만큼 전직 대통령을 향한 실망이 컸던 것일 수도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도처에 널렸다.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질 않는다. 그 중에서 가장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아 보이는 문제를 꼽자면 역사 같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민이 고생한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의 말이므로 부정하지 못한다. 정당성 없는 정권 하에 놓인 국민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다 싶은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는 홍길동과도 같은 지도자들 탓에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을 개개인이 풀어 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군함도. 부끄럽게도 이 섬의 존재를 처음 접한 건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PD가 특출난 역사의식의 소유자였던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조명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처럼 유희를 즐기려다 뜻하지 않은 내용을 알게 됐을 듯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그런데 하물며 국가 차원에서의 사죄는 더더욱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치욕의 역사에 영광의 색채를 입히려는 시도를 부단히 해 왔다. 군함도가 동아시아 근대화의 상징인 것 마냥 부각되기 시작한 데엔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하는 왜곡된 역사관이 큰 힘을 발휘했다. 막대한 돈이 투여됐고, 로비에 혹한 이들은 진실 앞에서 눈을 감았다. 증거가 없다고 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엄연한 증인이었다. 제국주의의 시대는 한 세기 전에 저물었다고 하지만, 왜곡된 역사가 유통되는 한 우리는 제국주의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책은 역사의 증인들을 찾아 나섰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고, 힘겨운 싸움은 이제 대를 이어 전개되는 중이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기가 막힌 이야기 앞에서 나는 풍요로움의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됐다. 시대가 요구하는 바 앞에서 나라 하여 무기력하지 않으리란 보장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에게 끌려가면 그 길로 바다를 건넜다.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헐벗고 굶주린 가운데 노동만 했다. 2-3년만 일하면 거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긴 감언이설에 불과했다. 임금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탈출을 도모하면 더 큰 고문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직접적인 폭력에 의해 사망한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에 못지않은 이들이 무기력에 치여 죽었을 거란 짐작이 가능했다. 희망을 잃으면 사람은 죽는다. 광복도 비극의 끝을 선언해주진 못했다. 수용소에서 온갖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간수 역할을 했던 이들은 B, C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적극적 친일 부역을 발판 삼아 향후 승승장구 했던 이들과는 대조되는 결말이었다.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오매불망 제 부모 세대의 귀환을 기다리던 후손들은 악명 높은 야스쿠니 신사에 제 부모가 합사됐다는 이야기를 접하곤 화병을 앓는다. 살아서도 고생만 하다 떠난 이가 일본 제국주의의 핵심이 되었다니, 자려 누웠다가도 화를 주체 못하고 벌떡벌떡 일어나 가슴을 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파푸아 뉴기니 등 머나먼 이국땅에서 수습되지 못한 채 묻혀 있다.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역사는 보존되어야 마땅하다지만 유골을 수습하기보다는 터를 닦고 그 위에 아파트 등의 건물을 짓는 일에 세상은 매달리고 있다. 역사가 그리 쉬이 은닉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잘 알면서도 모두가 눈 가리고 아웅하기 바쁘다. 부끄러운 것이리라. 혹자는 지난 역사를 언급하며 부국강병을 부르짖는다. 한 번도 타국을 점령해보지 못한 약소국 국민으로 더는 살고 싶지 않다며, 우리도 힘을 길러 보자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일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간을 기만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여전히 끝이 보이질 않는 고통이 다시금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진심어린 반성이 없다면, 100년의 시간이 또 다시 흘러도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포성이 들리지 않는 전쟁을 계속해서 치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전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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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14회에서 그랬다. "좋네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런 걱정없이 조국의 독립이니 해방이니 어깨에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깃털처럼 가벼운 이 시간이."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알고 살아왔었다. 가끔씩 나오는 위안부 할머니 소식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정작 피부에는 아프게 와닿지는 않는.. 일단은 나는 강점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 우리는 정말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행복하게,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군함도> 개봉 소식을 접하며 알게 된 이 책,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p.156 식민지 조선에서 끌려가 유골조차 찾지 못한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족들은 피붙이의 유골 한 조각이라도 찾겠다며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무덤도 없이 버려져 떠돌고 있는 넋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넋들이 당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해방되었습니까?"
나는 해방된 줄 알았는데, 그 시절 치열하게 고달프게 살았던 우리의 청년들, 우리의 조상들은 아직도 해방되지 못했다는 걸.. 여전히 일본에게 차별 대우를 당하며 지내고 있다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가슴 한구석이 바늘로 누군가가 쿡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넋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은 100여 년이 지나가고 있는 긴 시간에도 여전히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p.370 그런데 제가 가장 충격을 받고 화가 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기록에 찍혀 있던 동그란 표시였습니다. 그 속에는 1959년 10월 17일에 아버지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알아봤더니 야스쿠니에는 유해는커녕 아무것도 없고 아버지 이름이 적힌 명단만 있는데도, 아버지가 야스쿠니의 신으로 합사되어 있다고 하니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을 아버지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아버지께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혹시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하며 일본 전국을 찾아다니고 러시아까지 갔는데 가족들에게는 연락도 해주지 않고 합사를 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군다나 유해는 바닷속에 가라앉았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야스쿠니신사에서 아버지를 신으로 이용하고 있다니 저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재판장님! 오늘 이 법정에서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저는 왜 아버지를 야스쿠니에 합사했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따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장 야스쿠니에서 제 아버지 이름을 빼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뿐입니다. 제 아버지는 한국사람이지 일본사람이 아닙니다. '천황'을 위해 죽어간 사람이 아닙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어간 것도 억울한데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이 원하는 것은 해명도 사과도 보상도 아니였다. 단지 이름만 들어가 있는 야스쿠니신사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빼달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 넋을 고향으로 모셔가고자 했다.그럼에도 그들은, p.373 동 신사(야스쿠니신사)의 이케다 권궁사는 "합사 취하에는 응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사한 시점에서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후에 다시 일본인이 아니게 될 수는 없다. 또 일본의 군인으로, 죽으면 야스쿠니의 혼령이 모셔질 거라는 마음으로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유족의 요구만으로 철회할 수는 없다. 내지인(일본인)과 똑같이 전쟁에 협력하게 해달라고 해서 일본인으로 싸움에 참가한 이상, 야스쿠니에서 제사 지내는 것은 당연하다." 라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과연 정말로 일본인들과 똑같이 전쟁에 협력하게 해달라고 했을까? 또 죽으면 영영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야스쿠니의 혼령이 될 거라는 그 믿음을 가지고 돌아가셨을까? 고인의 유족의 말처럼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젊은 나이에 타국에서 죽어나간 것도 억울한데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고인의 넋마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일본정부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가진 인간집단이 맞을까? 하지만 씁쓸하게도 우리 정부와 우리 국민들 역시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면서, 일본의 죄를 알면서도.. 같이 나서지 않고 이렇게 방관하고 있으니 이 죄를 어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본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를 봤다. 영어를 배우려는 할머니의 두 가지 사연에 가슴이 먹먹했었다. 어린 시절 헤어진 동생을 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는 것과 엉터리 통역 없이 자기의 뜻을 전하고자 했던 도깨비 할머니.. 그 할머니를 보는데 이 책속의 김학순 할머니가 겹쳐 보였었다. p.323 1994년 6월 김학순 할머니는 도쿄 지방재판소에 출석하여 일본정부 측과의 대질신문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생생히 고발했다. 이 자리에서 김학순 할머니는 "부끄러운 것은 '위안부'였던 내가 아니라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도 사죄하지도 않는 일본정부"라고 비판했다. 할머니는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정부의 사실 인정과 공식적인 사죄"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p.94 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를 긍정하는 일본 우익의 역사 인식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가져본 적이 없다. 더 나아가 제국주의 야심으로 아시아 침략을 본격화했던 메이지시대의 역사를 일본의 찬란한 성공의 시대로 미화하려는 시도를 더욱 가열차게 해나가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일본 전범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는 교육을 통해 국가주의적 역사 인식을 강화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자, 역사 미화 프로젝트의 정점이다.
이렇게 여전히 사과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 등을 강제노동 시켰었던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 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면서도 유네스코에서 권고한 내용은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일본 자체로서는 근대 발전의 긍정적인 문화였겠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강제 징역이라는 어두운 역사문사이기에 이 두 내용을 같이 전시해야 함을 권고받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들 나라의 좋은 점만 부각하고 있다. 이런 면을 보면서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 유진오가 했던 말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주고 싶다. "변한게 하나도 없구나, 넌 똑같아. 죄를 덮기 위해 다른 죄를 짓고, 사과 대신 변명을 하고 후회 대신 망각을 하고, 여전히 속죄라는걸 모르는거냐, 넌?"
하지만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 함이 보이고 있다. p.388 대법원은 "일본 법정의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하급 법원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근거로 든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란 무엇을 말하는가. 대법원은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의 전문을 들어 설명했다. 대한민국 제헌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였고, 부칙 제100보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는 규정과, 제101조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라는 규정도 언급했다. 또한 현행헌법 전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헌법규정을 통하여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답없는 벽과 같았던 우리정부가 조금씩 그 벽을 허물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일본정부에게 잘못의 시인과 사과를 민간인인 유족들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기왕이면 그 시기가 너무 늦지 않기를.. 사과받을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일본이 사과할 수 있기를 아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살아있는 우리 뿐만이 아니라 넋들까지도 해방된 조국을 맞을 수 있기를..
p.77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를 끊임없이 교육하고, 기억하려 노력해야 한다. 유네스코는 1972년 '세계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에 기초하여 인류가 범한 '부정적인 역사'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해왔다. 그 대표적인 세계유산이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이다. 이번 39차 총회 포스터에 소개된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탄광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은 이 탄광을 '라인 강의 기적'을 가져온 산업유산으로 등재했지만 193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나치에 의해 유대인 포로들이 강제노동을 했던 사실과 6,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학살된 어두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p.193 '오키나와 한의 비 모임'의 이사 다이라 오사무 목사는 말한다. "한이란 단순히 원망과 고통, 복수만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자신이 받은 고통이나 상처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상이다. 우리는 깊은 한을 안고 있음에도 친구가 되려고 하는 피해자들의 피나는 노력에 부응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새로운 평화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한국과 일본에 '한의 비'를 세우고 그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자 하는 이유이다.
p.303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은 산 자들의 일이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산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은 결국 산 자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던지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이 의례를 넘어 생활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된 의미의 추모와 기억이 아닐까. 물론 모든 기념 시설이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그 기념 시설이 파푸아뉴기니 주민들에게 가치 있는 시설이라면, 그것이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를 연결해주는 좋은 상징이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전국 곳곳에 이런저런 이름으로 세워졌던, 그리고 세우려 하는 기념 시설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p.306 일본 국회의원 및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함께 일본 후생노동성과 한국인 유족의 유골 조사 사업 참여와 DNA 조사, 봉환 등을 협의했다. 그러나 후생노동성은 유골 조사 과정에서 한국인으로 판명 나면 조사를 중단하고 봉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제로 끌고 갔다면 그를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려보낼 의무 또한 일본정부에 있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유해라도 고향의 가족 품에 돌려보내야 한다. 살아서도, 죽은 뒤에는 유골까지도 차별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과연 문명국 정부라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본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한국정부 또한 책임이 크다. 피해자 그리고 유족의 가슴에 맺힌 한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차별정책을 거두고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여 뒤늦게나마 죽은 이들에게 적절한 위로와 예의를 갖추어주기를 일본 및 한국정부에 요청하는 바다.
p.333 김학순 할머니는 망향의 동산 장미 가열 24-24 묘지에 묻혔다. 1994년 11월 황금주 할머니와 미리 마련해놓은 자리였다. 김학순 할머니와 황금주 할머니가 이곳에 마지막 자리를 마련한 것은 그해 6월 내가 아버지의 묘지로 장미 가열 23-19를 예약하면서였다. 두 분은 내가 아버지의 묘지를 마련했다는 말을 듣곤 자기들도 그곳에 묘지를 예약해달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묘지와 같은 줄에 두 분의 묘지를 예약했다. 예약을 하고 나자 두 분은 "우리가 죽으면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아버지를 찾을 때 우리 묘지도 잊지 말고 찾아달라"고 부탁하셨다.
p.400 아베 정권과 전범기업들은 식민 지배 및 강제동원의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진정한 사과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정권과 가해 기업의 반인륜적인 모습이 일본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에는 일본이 더 정의롭고 좋은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활동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다. 그들은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씻기 위해서, 혹은 너무나 억울한 피해자의 사연을 듣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혹은 침략과 전쟁의 참화를 잊고 날고 우경화 하는 일본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행동하고 있다. 이런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과 변호사들의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낼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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