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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위로 억새가 길게 자라 있다. 벌초한 지 한 달이 지났고 그새 큰 비가 몇 번 있었던 탓인듯. 조카는 긴 풀을 맨손으로 뜯는다. '손 베일텐데...' 속으로 말하고 풀뜯는 걸 지켜본다. 다행이 풀이 억세지는 않나보다. 멧돼지가 지나간 흔적, 고라니가 왔다 간 흔적도 보인다. 산소앞에 밭이 경사지게 펼쳐 있다. 제초제를 뿌린 탓일까. 아니면 원래 지력이 약해서 풀이 자리지 못한 탓일까. 풀은 보이지 않고 콩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고 비에 쓸려 밭 가운데 골이 길게 패여 있다. 저 쪽 편에 메밀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콩보다는 잘 자란 모습이다.
지금이 메밀꽃이 피는 시기인가보다. 남쪽지방의 메밀꽃은 지금 그때인가보네. 남쪽의 각 지역 메밀꽃 축제가 한창인가보다. 요즘은 뭐든지 다 축제로 승화한다. 사실 묵은 잔치음식이다. 잔치에서 주음식이나 가광을 받는 음식은 아니고 보조적인 위치. 혹은 찬조출연음식이다. 이웃이나 친척이 잔치를 할 때 쑤어서 제공을 하고 그것을 손님들에게 내어 놓는다. 요즘은 메밀자체가 잔치의 주인공, 축제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다니. 평창의 메밀꽃 축제는 9월초에 있었나보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아마도 7월 백중을 갓 지난 시기였나 보다. 여름이기는 해도 밤에는 선선해지는 시기이다. 그 시기에 과연 메밀꽃이 피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소쩍새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에서 소쩍새는 봄에 우는가? 하는 논쟁이었다. 선생님까지 참가 한 그 논쟁에서 아이들은 각자 소쩍새가 우는 시기를 기억 해 내고, 결론은 소쩍새는 여름에 우는 거였다. 소쩍새 우는 소리를 여름에 들었다는 거였다.그래서 서정주가 소쩍새 우는 시기를 착각한 걸로 보았다. 그 수업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나면서 소쩍새는 봄부터 운다는 걸, 울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무안함과 미안함이 몰려왔고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그렇다. 아무래도 메밀꽃도 그런 상황이다.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없이 하얀 꽃이야......" 7월 보름, 백중이 갓 지난 시기에 메밀꽃이 과연 피었을까? 백중은 명절이었다. 한여름, 한더위를 갓 넘긴 시기이기도 하고 마을잔치가 열리고 몽달귀신의 넋을 위로하고 아이들도 음식 싸들고 놀러 다녔다. 마음은 풍성하고 약간 들떠 있는 시기였다. 허생원도 이 시기에 사랑을 했고 그 무지개같은 사랑의 흔적을 찾아 평생을 장터로 전전했던 것. 아마도 그래서 허생원의 삶은 결코 불행한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 무지개의 뿌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최고의 삶이었다.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꺼꾸러질 때까지 이 길을 걷고 저 달 볼테야."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히 쉬어. 나귀에 더운 물을 끓여 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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