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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외국의 문화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소설을 넘어선 중국의 문화가 들어있는 이 책은 아주 색달랐다. 여느 책과는 달리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고 특히나 "황후화"라는 영화까지 보고는 중국 그곳은 더이상 멀리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여자의 지위가 낮았는데도 지금 중국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훨씬 여성의 지위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슈퍼우먼(회사일이면 회사일 집안일이면 집안일)을 바라는 반면 남자와 여자 구분없이 집안일을 하며 명절에는 꼭 시댁에 가야된다는 구분도 없는 그 곳은 바로 중국이다.
전족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마음이 아프기도하고 징그럽기도 하여 몇장을 건너뛰기도 했다. 누슈라는 여자들만의 글자를 배우는 그들은 여자였다. (내가 생각해도 한자는 너무 어렵다.)
이 책을 읽고 황후화라는 영화까지 보고 나니 내 머릿속엔 온통 중국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 책으로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중국의 많은 부분들을 느낄 수 있었으며 한발 더 다가간 것 같다.
결코 진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읽고 난뒤 아무 생각이 없는 허무함도 아닌 그 무언가 짠한 것이 내 심장을 뛰게 한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진도가 착착 나가는 책임에도 다 읽고 나서 허무함이 들지 않는 책이였다.
그리고 여자들의 우정을 보며 나 또한 어렸을때 친했지만 지금은 소식을 모르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중국에 더욱 빠지게 해준 이 책.
역시 딱딱한 책 보다는 이런 책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
| 이 소설은 정말 소설같지않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리가 되어 있었다. 시집가면 그만일 도무지 쓸데가 없는 여자로 태어나 전족을 하고 그 크기와 모양에 따라 시집을 가던 시절에 어디에도 속내를 드러낼 곳이 없어 마음은 망가져가고 나와 똑같은 운명을 지고 태어난 딸아이를 가슴깊이 사랑하지만 또 그렇기때문에 사랑을 줄 수 없던 그 때. 비밀문자인 누슈를 통해서만 내 의자매들과 소통할 수 있고 운이 좋아 라오통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그녀와 평생을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던 그 때. 첫 임신을 했을 때 아들이길 간절히 바라고 곧 아들이 태어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시절에 나리를.. 서로에게 하나밖에 없어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고 사랑했던 라오통과의 비틀렸던 사랑을 감히 공감하고 가슴저려하며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었다. 너무도 소중했던 사랑했기 때문에 아주 작은일에 상처받고 분개하고 미워하는 그 마음을 나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은 사회적동물이라고 말은 하지만 가시만한 상처에 우주보다 더 아파하는 건 나 자신이고 내 아픔이 먼저라서 다른이의 아픔을 쉽게 보듬어주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것도 그래서 평생 후회를 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나 때문에 아파했던 다른이를 쉽게 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나의 슬픔을 위로하는 이에게 "너는 내가 아니니까 날 이해할 수 없어."라고 내뱉어버리는 다른이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넌 왜 그렇게만 생각하는거야? 나처럼 생각해봐!"라고 말하며 스스로 다른이를 생각하는 배려심에 뿌듯해하는 그 유치한 마음들을 마치 내 마음인 것 같아 부끄러움에 화끈거려하고 슬퍼하면서 읽었던 이 책의 여운은 아직도 내 마음속을 흔들고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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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우정이 남자들의 우정보다 가치가 없다라는 말을 내 앞에서 감히 입에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나는 그의 앞에 기사 시의 [소녀와 비밀의 부채]를 던져줄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하고 남편과의 사랑만큼이나 소중히 여겨야 할 여자들의 우정에 대해, 그리고 "마니또"만큼이나 정겨운 단어인 "라오퉁"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이다.
[소녀와 비밀의 부채]를 읽으며 제일 먼저 갖게 된 감정은 분노였다.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을 읽었을때처럼 희생과 모욕을 강요당하는 여자의 일생이 이 소설 속에서도 펼쳐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단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나 역시 여자지만 나를 나은 이도 여자이며, 앞으로 태어날 나의 자손 중에도 여자 아이가 있을 것이기에 분노심부터 일었다.
중국은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전족"을 행함으로써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그들에 대한 사랑이나 집착이기 보다는 재산으로 여겼기 때문으로 판단되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르자 화가나기 시작했는데 소설의 본질이 그것이 있지 아니하였음으로 읽어나가는 내내 두 소녀의 우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의 몰락으로 백정의 아내가 되어 아껴주지 않는 남편과 사사건건 말려죽이려고 애쓰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오로지 "라오퉁"인 나리와의 우정에 기대어 살아가던 설화.
설화보다 못한 가정형편이었지만 완벽한 발모양과 왕부인의 주선으로 인해 옆마을 최고의 집안으로 시집가 평생을 부유하게 살다가 루마님으로 생을 마감한 나리.
그들의 만남은 설화의 친척인 왕부인으로 인해 이루어졌는데, 전족을 행하기 전 아주 어린 계집아이였을때부터 함께 하면서 평생을 약속했다. 여자들끼리의 이 우정은 의자매 관계와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마치 남편과의 혼약처럼 모두에게 인정받는 평생의 언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의 처지가 다르고 시집살이에 적응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그들 사이에는 점점 이해하는 시선보다는 오해하는 시선이 오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누슈"라는 특별한 언어를 부채에 새겨 소식을 전하던 중 나리는 설화가 의자매를 맺게 되었다는 뜻의 소식을 전달받게 되고 분노한 그녀는 설화와 절연을 하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사생활을 낱낱이 까발리는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세월이 흘러 이제 설화가 병들고 죽게 되었음을 통고 받고서야 설화를 만나 오해를 풀게 된 나리는 죽은 그녀를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이모가 되어 최선을 다한다. 고작 마흔이면 대부분이 죽던 그 시절 중국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손자의 결혼까지 참관한 그녀는 장수하며 부유하고 편안함을 누리며 살았는데, 남은 시간 내내 설화와의 옛날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처음 소설을 택하게 된 이유는 좋아하는 작가인 아서 고든과 에이미 탄의 극찬을 받은 작품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는데 읽다보니 그들의 극찬이 과연 실찬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집안의 한 사람이 관리가 되면 그 집안의 개와 고양이까지 천국으로 간다"는 말을 믿고 산 사람들의 시대였으니 아들을 낳음으로 자리를 보장받는 일에 목숨을 건 그 여인들의 서글픈 운명에 대해서는 잠시 잊으려고 노력했다. 두 여인의 우정과 사랑과 배려에 대해서만 가슴깊이 새기면서 감동을 전하려 한다.
다만 "딸이었을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부인이 되었을 때는 남편을 따르고, 과부가 되었을 때는 아들을 따라아 한다."는 구절이 따르고 대신 사랑하고 라는 단어로 바꿔 전해질 수 있었다면 여인들의 마음가짐도 저절로 행해지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가 현대 여성이라고 해서 편리한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해서 여성의 삶 자체가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가 주어졌어도 많은 것들이 변해왔어도 여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에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적이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남아 있는 것들이 좋은 것들이기를 바라면서 [소녀와 비밀의 부채]에 대한 감동을 접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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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했던 문화와의 만남. 첫페이지를 넘기면서 부터,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색다른 풍습과 맞다들이게 되었다. 전족. 처음에는 아주 낯선 단어이면서 얼핏 들어본 폐습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전족이 무엇이길래, 어린 나리와 여인들은 그것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것일까? 그리고 그 고통이란... 인터넷상으로 찾아본 전족의 실체는 정말 끔찍할 만큼 잔혹했다. 사진 한장으로도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수 있을 만큼 내겐 아주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알지 못했던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 속에 전족과 이상한 결혼문화 같은 것들이 책에 빠져들 만큼 매혹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 시대라는 것이 참 허구같아서 가끔 정말 이런 시대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만큼 정말 혼란스럽기도 했던 글들이었다. 하지만 전족이라는 그 고통이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주인공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가난한 농부의 딸에서 최고의 명문가의 마님까지 오르는 성장통을 한 번 더 겪는 주인공의 삶은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만큼 흥미진진했다.
자식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은 우리 여자들이었다. 아프면 돌보고, 아들일 경우 남자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을 수 있게 준비시키는 것도 우리 여자였다. 딸일 경우 발에 전족을 해주고, 우리의 은밀한 문자를 가르치고, 좋은 아내, 며느리, 엄마가 되도록 훈련시켜 시댁에 가서도 이층 방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우리 여자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여자라도 자식보다 오래 살아서는 안 됐다.
- 2권 126p -
그리고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설화와의 만남은 그 시대에 살았던 여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설화라는 여인과, 주인공은 랴오통으로써 낯선 누슈라는 글로 여자들의 우정을 키워나갔다. 서로에 대한 우정과 오해들. 평생을 벗으로 살아가는 이 두 여인은 정말 우습게도 그 끝이 너무나 다르다. 주인공 나리는 루 마님이 되어 그녀의 장남은 큰 벼슬까지 오르게 되는 신분상승 혹은 본분에 대한 성공으로 보아지겠지만, 설화는 비련의 여인이 되어 버린다. 푸줏간 집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서 최악의 집안으로 몰락해가는 생을 살게 되고, 그런 설화의 마지막 죽음은 정말 주인공 나리처럼 애통하고 왜 설화는 그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우리의 계약서에는 우리 사이에 거친 말은 결코 없을 것이라 썼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27년동안 이어져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진실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 영원히 함께 얽혀 있는 덩굴줄기같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나의 슬픔에 대해 말했을때 그녀는 인내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영혼이 얼마나 빈한한지를 말했을때, 그녀는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베를 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부지런함이 굶주림을 물리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복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세상이 어디에 있을까요?
-2권 중 194p -
책을 덮어도, 마지막 글귀가 내 머릿속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다. 과대포장한 책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손에 쥐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마치 그 시대가 지금 눈 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삶을 보고, 그 모든 글을 같이 읽었다. 두 여인의 누슈도 말이다.
제발 내 말을 들어주오. 부디 나를 용서해주오...
- 마지막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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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기를 훨씬 지났음에도 이런 아련한 제목을 만나면 방황하고 우울했지만 그 시절의 가능성으로 인해 가슴설레이는 나를 보면서 혼자 웃기도 하는데 '비밀의 부채'라는 신비함까지 더해지니 그 궁금증이 증폭되었다고나 할까..
리사 시라는 작가가 참으로 낯설었지만 중국의 근.현대 문학이 우리에게 들어온 시기를 생각한다면 그런 것 쯤이야 문제도 아니라고 넘길 아량이 생긴지 오래다.
처음 5살난 나리라는 계집아이가 자신의 일상에 대한 넋두리를 적은 첫 부분을 보면서 5살난 아이가 뭘 안다고 이렇게 적었지?라며 황당해 자칫 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을 뻔 했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시대 그 나이의 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기 위해
전족(纏足)을 준비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몸서리 쳤는지..
소녀도 아닌 아이들의 발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아니 엄지발가락만을 남겨두고 모든 발가락이 부러져 7cm정도의 연꽃모양(金蓮)을 닮은 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하다가 죽은 여자가 10분의 1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겪은 그 고통을 그 어미가 딸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손수한다니 현재를 사는 우리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시대엔 자신의 발가락이 부러지는 고통을 참아낸 여인의 발은 시댁에서 보면 출산의 고통뿐 아니라 어떤 불행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자제심과 능력을 지녔다고 인정했다니.. 그리고 친정어머니에게 순종한 표시며 발이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읽고야 그 끔찍한 고통을 감수하는 여자들을 조금이나 이해했지만 그래도 미쳤군 미쳤어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나이에 누구나 전족을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더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나리와 설화가 의자매를 넘어선 평생의 결속 '라오통'의 관계를 7살에 맺게 되므로써 이 책은 한 개인이 아닌 두 여자의 일생과 평생의 우정을 이야기하게 된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평범하게 자란 나리와 부유한 집에서 자유와 여행을 즐기며 자란 설화가 전족과 결혼을 전제로 맺어진 친구가 되면서 서로가 겪지 못했던 일상의 일들을 나누고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 시대 여성들의 글자라는 누슈를 이용해 부채 혹은 수건에 편지의 글등을 주고 받으며 그녀들은 자라고 결혼을 하게된다.
누군가 말했다. 여자의 인생은 뒤웅박이라고..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일대에서 알아주는 부유한 집으로 시집을 가 그야말로 모범적인 며느리, 아내가 되면서 자신 또한 높은 지위의 루마님이 된 나리와 아버지의 아편과 가정의 몰락으로 백정에게 거의 팔려가듯이 시집을 가게 되어 아이 세명을 죽음으로 잃게 되어도 그 삶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던 설화의 삶, 그녀들이 어린 나이에 맺어진 친구 사이임에도 서로간의 다른 환경으로 벌어진 틈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시집간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주 만날 수 없었기에 그들만의 누슈글자로 주고 받았던 부채 속 은밀한 대화들은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우정의 확인과 표현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잘못 해석된 내용들로 인해 생긴 오해로 설화에게 사는 의미의 전부였던 나리의 돌이킬 수 없던 외면. 설화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그녀의 힘겨웠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된 나리의 죄스러워하는 고통을 누가알까?
어렸을때부터 삼종사덕을 교육받은 여인들의 어쩔 수 없이 살아내어야 하는 삶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던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알아야겠다.
똑같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나와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생기는 오해와 후회가 없기
위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것이며 내가 좀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친구와 사람들에 대한 나의 노력아닐까.
제목 따지기를 좋아하는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여든살이 된 루마님의 인생 회고록이니 중국판 '여자의 일생'이군 하다 일순
내게 가장 큰 충격으로 왔던 전족을 하는 부분을 따와 '금련'이라고 붙일까 혼자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작가는 닫힌 중국 속 여인들인 설화와 나리의 우정을 더욱 부각시켰고 이 책을 읽으므로써 옛 여인들에게도 이런 깊은 우정이 있었구나 하며 내 멀리 있는 친구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서로가 별말은 안하지만 그리워하는 사이, 나 또한 부채는 아니지만 그 감정을 편지로 전하고 싶은 충동을 어찌나 느꼈는지..
더불어 책 읽는 내내 발가락에 온 힘을 주어보며 어떻게 생발가락 뼈를 부러뜨릴 수 있지 또 그 고통은 얼마나 아플런지 하며 오늘날 태어난 것에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작가가 19세기 중엽 닫힌 중국 여성들의 모습과 삶을 어쩌면 감정적으로 치우칠수도 있는 내용들을 여든 루마님의 입을 통해 참으로 담담하게 적은 것이 내가 비평을 하고 단순히 책 읽는 행위를 하는 독자가 아닌 나리가 되고 설화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어지는 책.
처음으로 접한 '리사 시'라는 작가에게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내 마음을 항상 잘 알았던 너는 이제 했빛 따스한 구름 위를 날고 있네.
나는 언젠가 우리가 함께 날아오르기를 기원하네.'(2-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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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나를 여자로 낳아서 평생 힘들게 살도록 만드어? 엄마만 힘들게 살지 왜 나까지 힘들게 해!!"
내가 다섯살 때인가 엄마한테 대들면서 따지더란다. 왜 나를 여자로 낳았냐고 ... ㅠ.ㅠ;; 내 어머니는 60대 중반, 아버지는 70을 바라보는 연세시니 그 시대에 아들을 낳지 못하고 세딸만 두셨던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세째며느리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조상을 섬기며,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 하였건만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쓸모없는 여자 아이'들만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내 눈에도 어머니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커 보였던 것이다.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엄마처럼 살기 싫어!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중학교때 였는지 그 전이었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 장래에 대해서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지 않았을 당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고 또한번 좌절했다. 내가 사는 나라, 이 곳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는 '여자'라는 이유가 더이상은 삶의 굴레가 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는데... 먼 타국 한 여인의 일생을 들여다보니 내 어머니의 삶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결국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책임지는 수 밖에 없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까. 강해지고 싶었다.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세째딸이 되고 싶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토지>의 서희처럼 내 운명을,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인이 되리라 다짐했다.
<소녀와 비밀의 부채>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존경받는 삶을 살았던 '루마님'의 일대기를 그린 책으로 주요 소재가 되는 세가지가 등장한다.
첫번째는 '뉴슈' 여인들의 글이다. 뉴슈는 2층 방에서 한평생을 보내야 했던 여인들을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눈과 귀였다. 멀리 떨어진 친정 어머니와 자매들,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소통의 수단이 되어 주었다. 한자가 남자들의 글, 뜻글자 인것에 비해 뉴슈는 여자들만 썼던 글로 한자를 변경하거나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며 소리글자였다.
두번째는 '라오퉁' 평생 함께하는 영혼의 친구를 맺는 것이다. 두사람은 일생을 같이 하면서 서로 위로와 격려가 되어주고 떨어지지 않는다. 부채에 뉴슈로 편지를 써서 서로의 마음을 전하며, 두 사람 외에 다른 의자매를 맺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세번째는 '전족' 이다. 내가 알고 있던 중국 여인과 발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자면 여자가 귀한 중국에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아마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위해 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겠다 ) 어릴 때부터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작은 신발을 신긴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6세,7세의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붕대로 감아 8개의 발가락과 발등을 차례로 골절시키고, 발가락이 발뒤꿈치에 닿을 만큼 만든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는 잠시 쇼크에 빠졌었다. 더구나 그 모든 과정을 엄마들이 행했다는 것과 10%의 높은 사망율을 감수해야만 했다는 것이 더큰 충격이었다.
주인공 나리는 전족에 실패하여 불구가 된 엄마의 기대를 받으며, 전족에 성공한다. 완벽한 발 모양을 '금련'이라 칭하는데 여인의 일생동안 부와 성공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상상해 보라. 7cm 연꽃 모양의 발을... 도저히 머릿속에 발모양이 떠오르질 않는다. ㅠ.ㅠ 나리는 또래인 설화와 일찍부터 라오퉁을 맺고 가족처럼 지낸다. 그러나 나리는 당시 부유하고 지체높은 루집안으로 시집가고 설화는 백정에게로 시집을 가면서 두사람의 운명이 엇갈린다.
나리는 어린시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족을 하고, 결혼전까지 당시 여인들이 익혀야 했던 예의범절과 음식 만드는 법, 길쌈, 바느질등 완벽한 아내,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배워나갔다. 뉴슈도 마찬가지다. 결혼후에도 그녀의 전족이 말해주듯 남편과 시집에 최선을 다하는 여인으로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리는 전근대적인 여인의 전형이었을까? 그녀는 당대를 살았던 어떤 여인들보다 강했으며, 루마님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순종하라 순종하라 순종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고 했던 시어머니의 말씀처럼 역병이 닥치고, 폭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라오퉁과의 관계를 지켜나가는 모습에서 그녀의 강한면이 더욱 부각되었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당대를 살았던 여인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삶도 무겁기는 마찬가지 였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난한 농민으로서 부모를 공양하고, 처와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종일 들에 나가 일을 해야만 했다. 전쟁이나 폭도들의 난이 일어났을 때 징병을 피할 수 없었고, 일을 하다가 조금만 다쳐도 상처가 덧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책에는 나리의 사촌이 벌에 쏘여 5분만에 즉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자들의 경우는 들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런 경우가 더 많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불현듯 내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아버지'에 대한 책을 한번도 읽지 않은 내 자신을 탓했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부터 작가인 '리사 시'에 대해서 많은 것이 궁금했었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중국의 전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책까지 쓰게 되었는지 책속에 '전족'이라는 인습을 소재로 삼은것은 무슨 의도인지 동양의 풍습이 서구세계에 알려졌을 때 그 파장을 생각해 본적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작가는 책의 후반부에 그녀 자신이 명백하게 반은 중국인임을 밝힌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뉴슈'였고,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 했는지 보여 주었다. '전족'에 대해서도 의외로 담담하게 의견을 말했다. 그리고 현대의 과도한 성형열풍, 다이어트 열풍과 무엇이 다른지를 되묻는다. 이 모든 설명이 영화가 끝났다고 느낄 때쯤 NG장면을 보너스로 보는 것 만큼이나 흥미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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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단절, 소통의 단절이었다. 내게 있어 누슈(女書)란 것은 세상과 여자라 불리우는 인종의 단절을 의미했다. 이 소설에서 보여준 이 시대 중국의 유교사상은 우리의 역사속에도 흘러들었고, 여자로 태어남에 대한 처절한 보상은 중국과 우리 할머니들의 삶에 매우 유사하게 이루어졌다. 미국인이 보는 동양의 시선으로 쓰여졌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이 작품은 지독히도 동양적인 관점에서 그 흐름을 잇고 있었다.
내인생을 나 스스로 설계할 수 없는 시대에, 여섯 살이면 정해지는 남편의 존재. 그리고 그를 위해 준비하는 전족. 좀 더 나은 집안에 시집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전족의 과정은 참으로 잔인하다. 한 지역의 풍습과 문화라는 것의 근원은 어디일까. 더욱이 이렇게 잔인한 풍습을 만들어낸 자는 누구일까. 단순히 작은 발을 위해 행해진다는 '전족'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뼈를 부수는 아픔을 작은 아이가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작은 발이 주는 성적인 매력을 위해 학대와도 같은 아픔을 내 딸에게 내려야만 했을까.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너무나 많은 의문들이 생겨난다.
세상에 나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를 정하는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닌 시대에 여자된 처지로 삶에서 감내해야 하는 육체적인 고통과 시련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터이다. 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나누기 위한 상대를 정하는 것조차도 내 의지가 아니지만, 그 상대와의 대화도 어렵다면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글을 전해야 했으리라. 그래서 생겨난 것이 누슈, 여자들의 글이다. '나라'와 '설화', 수십년동안 마음을 이어가던 두 여인의 이야기가 영상처럼 그려진다. 나는 아이에서 소녀로, 그리고 여인으로 이어지는 그녀들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인고의 시간들을 뒤따라 가며 나의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들 사이의 지독한 사랑이 불러온 잘못된 배신감으로 인해 설화의 생의 마지막을 회한과 눈물로 함께하는 나라의 모습에서 깊은 아픔이 전해져온다.
이 소설에 첨부된 감사의 말, 작가의 말, 그리고 작가 인터뷰에서 리사 시의 취재과정을 함께 겪으며 작가의 겸손과 그 가족에 대한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고, 어색한 해석의 느낌이 전혀 없는 이 작품에서 나 자신 '다빈치코드'와 '천사와 악마'에 이어 다시 한 번 번역자 양선아님의 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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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이 책을 알게되어 읽게 되었다. 책이 왔을땐 나는 다른 책을 읽느라고 관심조차 주지 못했었다.항상 책 읽기가 느렸던 나는, 에휴 이 책도 빨리 읽어야 하는데...라는 마음을 가지고 손에 책을 들었다.놀랍게도 이 책은 순식간에 책속으로 나를 끌여들어 단숨에 읽게 만든 책이었다.중국사람들의 옛날 이야기와 그들의 문화가 가득 풍기는 책 이었다. 가장 쇼킹했던건 전족이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까지 이렇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그땐 그저 그러려니 싶었지만 책속의 주인공들이 직접 겪자 결코 흘려 넘길 수가 없었다.살아있는 발의 뼈를 부러뜨리고 최대한 작게 만드는것이 옛날의 중국에선 미인의 상징이라고 했다고 한다.나로써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문화를 비판 하고자 하는 것은아니다. 우리나라엔 우리나라의 문화가 있듯이 외국에도 그들만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비판할 자격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외국인 이었고 우리나라도 좋은 문화만 있는것은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 소녀 나리의 발이 아주 멋진 금련의 모양을 갖추자 나리는 가난한 집의 딸이지만 부자들이 사는 마을 통코우로 시집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단지 말이 작게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부자 마을에서도 제일 잘사는 집으로 시집을 가게된 나리를 보고 그 당시엔 발에 전족을 할때 작게만 만들어지면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구나 하고 바보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문화같은건 대체로 옛날 우리나라의 문화와 비슷했다. 여자는 쓸모 없다는 것, 남자가 우월하다는것,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복종해야 한다는것, 남자는 첩을 들일 수 있는 것 등 여러가지 면에서 일치했다. 그 시대 중국 여인들도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아마 나는 중국의 문화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도 살짝 엿본 느낌이 들었다. 여러가지로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였을까...이 책을 통해 중국이라는 낮선 나라를 조금이나마 잘 알게 된 느낌이다. 이래서 책은 좋다 따로 공부 하지 않아도 책을 읽으면 내 머릿속에 지식이 쏙쏙 들어온다. 지은이가 여행하고 느낀것을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간접접으로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도 좋게 생각한다. 그래서 책은 지식의 창고라고 불리는 걸까. 제목에서 짐작한 것 처럼 책에는 소녀 두명이 중심인물이다 나리와 설화라는 두 소녀. 라오통을 맺으면 서로가 단 하나의 친구이기 때문에 더욱 끈끈한 우정을 맺을 수 있어 좋겠지만(내가 그런경우이다) 한번 싸우고 돌아서면 단 한명의 친구를 잊은것과 다름 없기에 조금 외롭지 않을까 싶었다. 설화는 내가봐도 여러면으로 나리보다 지식이 우수했다. 두 소녀가 친구를 맺을때 나도 한 친구를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부터 서로를 소중히 여긴 두명은 서로가 시집을 갈 때까지 끈끈한 우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곳으로 시집을 갔다. 나리는 부자 마을에서 제일 잘사는 집에 맏며느리로, 설화는 그 옆 천박스러운 마을의 푸줏간집 아들에게로....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지만 나리는 시어머니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설화와의 우정을 지켰다. 나리가 설화를 의심하고 수치를 주었을때 나는 나리와 같은 눈으로 설화를 쳐다 보았다는 것이 민망했었고 나 역시 설화의 우정을 의심했었다. 생각이 짧아 설화를 의심한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만약 실제 나의 단짝에게 그랬다면 난 큰 후회를 가지고 살 것같다. 두 소녀의 우정에 금이 가는걸 보고 나는 깨달았다. 섣부른 판단은 큰 일을 초래한다는 것을....나리는 설화가 죽기전에서야 용서를 빌고 더욱 친절하게 해준다.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뒤 늦게서야 잘못을 깨달았는데 그 친구가 죽음의 문턱에 있는 것보다 더 잔인한게 어디있을까....불현듯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을 했을때 남은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무척이나 미안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아마 나리의 마음이 이런걸까. 비밀의 문자 누슈라는건 참 신기했다. 옛날의 여인들은 이런식으로라도 소식을 전했구나 싶었다. 부채에 비밀스러운 글을 누슈를 적어 서로에게 주고받는 모습이 어찌 신기하지 않을까. 두 여인의 엄청난 세월을 나의 두서없는 글로 나타내려니 송그스럽다. 글 솜씨가 없는 내 글로인해 부디 이 책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여기까지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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