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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나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사책 혹은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어왔었다. 그렇게 역사에 대해 조금씩 지식을 확장시켜 나갈 때마다 나의 모종의 뿌듯함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역사의 단면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도 느꼈다. 한 분야의 지식을 늘렸는데, 모르는 부분도 늘어나는 모슨이었다. 그리하여 좀 더 독서에 욕심을 냈지만 마찬가지였다. 역사의 범위는 비사학과 일반인이 독서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방대한 것 같았다. 이런 늪에 빠진 듯한 기분이 나에게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준 것이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저자인 E.H.카는 여기서 역사 그 자체보다는 역사철학이란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한다. 즉 역사기록방식의 조류에 대해 판단을 하고 견해를 꺼낸다. 이것 자체부터 나에게는 새로운 발상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국사시간 때부터 습득하고 지식으로 담아두는 것을 유일한 역사공부로 알던 나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역사에 대한 의구심 없이, 내가 읽는 역사에 대한 맹신을 가지고 지식학습에 너무 치중해 있었던 것이다. 카는 역사는 역사가가 선별하여 기록으로 남긴 사실들의 집합일 뿐, 결코 옛날 그 시대의 전체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역사가는 당시 사회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저술하므로 객관성 있는 기록이란 개념자체부터 성립하지 않고 우리는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역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한 것이다. 나는 저자가 생각하는 객관적 역사의 부정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있는 사실만을 나열한다면 그것은 비록 재미없고 밋밋할지라도 객관적인 기록일 것이라고 그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열할 사실들을 선택하는 데에서부터 역사가의 사고가 개입된다고 저자는 꼬집었다. 그러므로 카는 엄청난 양의 역사에 대한 충실한 기록보다는 올바른 자질을 역사가의 주요한 면모로 삼고 있다. 역사가는 기록을 할 때 감정이나 편견에 휘둘려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시대를 벗어나서 이상적인 역사를 쓰려고 할 필요는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여기서의 이상적인 역사란 절대적 사실로서의 역사이다. 그러면서 훌륭한 역사란, 시대의 의미를 잘 반영하면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염두에 두고 그에 걸맞은 역사적 사실을 판별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역사가에 대해 조금은 깔본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역사가를 단지 기록자로 보았기 때문에 대단한 지성을 요구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역사가가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과거와 지향점에 대한 인식이 변한다는 것 다양한 예시로 느낄 수 있었다. 후대를 위한 좋은 역사를 위해 고민을 거듭했을 역사가들에게 미안함과 존경심이 들었다. 법의 처벌은 면해도 역사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는 말 처럼 카는 특히나 인류의 진보를 위한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카는 역사가의 올바른 가치관과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신념 등을 주문하면서, 인류의 과거를 깨닫고 미래를 비추는 등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는 나날이 방위적으로 발산하는 과학의 위력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카의 태도는 꼭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과학 그자체로는 순수하지만 그것의 이용은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현재의 핵무장국가들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힘을 힘으로 막으려다 나타나는 결과를 우리는 수많은 전쟁을 통해 알고 있다. 더 이상의 물리적 충돌은 없애기 위해선 우리 모두 역사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설계해야 하고 이러한 점에서 역사가의 역할은 막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많은 내용에 나는 동의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카는 사회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절대적 도덕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예로, 많은 미국의 초기의 위인들도 노예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그 당대에는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근거로 미국의 위인들을 옹호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역사가의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더군다나 카같이 인류의 진보를 주장한 역사가라면 이들을 비판하길 서슴지 않았어야 한다. 비록 노예제가 전통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악습 중의 악습이었기에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한 카는 책 말미에서 근대시기에서는 서구의 역사가 가장 빛나는 것이라고 잠시 언급하였다. 나는 그 빛나는 여사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우선 세계 모든 곳에서 항상 삶은 생동하는 것인데 역사의 비중을 따지는 것은 역사가답지 못한 것이고, 둘째로 서구의 근대역사는 제국주의와 침탈의 역사인데 이를 빛난다고 칭하는 것은 지극히 서구 우월주의적인 생각이다. 지성은 빛나지만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역사가가 되지 못한 카에게 아쉬울 뿐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역사란 무엇인가'는 내가 좋아하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치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이제 단순한 지식에 대한 갈증을 벗어나,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비추어 볼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역사인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