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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토끼인데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과감한 설정인데도 몰입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현대사를 엮어내는 솜씨에, 거대한 역사 속에서
캐릭터가 휩쓸리지 않고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굉장한 소설이다.
환경에 대한 고찰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무위, 라고 해야 할 정도의 강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그런 자각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과감한 전개와 풍부한 배경,
자연스럽게 버무려진 유머가 이 작품을 끌고 나가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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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어떻게 써야할 지 막막한 책들이 있다. 이 책은 그 중에 하나다. 책을 읽는 속도로 친다면 흡인력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막 재미나게 감정이입도 되면서 쏙~ 빠져들어서 읽었던 책도 아니었다. 작가의 문체가 특징적으로 여러 문장을 압축해서 한 문장으로 쓰는 걸 좋아하는 듯 하다. 한 문장 안에 여러 뜻이 내포되어있다. 시대적인 상황도 극변하는 시대였고, 천재토끼의 행적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통에 책 한권을 읽긴 읽었으나 100% 소화했다고는 장담 하기 어려운 책으로 "어렵네!" 하는 혼잣말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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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몇장 읽자마자 아주 친숙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분명 이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란...하고 잠깐 생각해보니, 바로 '어조'였다. 즉흥적인 글쓰기처럼 느껴질정도로 거침없는 그리고 두서없는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와 현재에 내가 직접 듣거나 본적이 없어 터무니없다고 생각되는 일조차 아주 자연스러운 말투로 풀어나가는 모습. 바로 천명관씨의 <고래>와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접해보았던 어조였다. 그 두 작품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터라 <천재토끼 차상문> 역시 읽는 초반부터 애정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천재토끼 차상문>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이 하는 일을 차마 인간이 이러쿵 저러쿵 판결을 내리기 힘드니,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토끼와 인간의 유전자가 합쳐진 차상문이라는 토끼 영장류를 등장시켜 인간들에게 이제는 그만 좀 쿵쿵거리고 조용히 지내라는 말을 밉살스럽지 않게 토해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에는 1960년대부터의 온갖 역사적 사건들이 다 등장한다. 좌파이든 우파이든 천재토끼 차상문의 어눌하지만 빈틈없는 토달기의 칼날을 피해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역사소설이나 정치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작가 자신만의 정치적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역시 인류의 미래라는 보편적 견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인류의 현 삶의 방식대로라면 토끼 영장류이든 아니면 다른 형태이든 인간으로부터 땅을 구하기 위해 더 진화된 종이 출현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인간이 진화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이 기어이 성취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지면 곤란하다.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는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의 천재토끼 차상문이 토굴에 갇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순간까지 인류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앞으로 토끼를 볼때마다 떠올리는 예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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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프로필을 보면 그리 만만치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나이도 듬직하다. 치기어린 공상이나 장난기로 글을 쓸 사람은 아닌것 같다. 그는 무척 진지한 작가이다. 그런데 왠 토끼란 말인가. 그것도 그냥 토끼가 아니라 토끼인간이라니... 무슨 SF 소설인 것도 아니고... 너무 아련할 정도로 감성어린 책의 시작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은 문체. 감성이 넘쳐나서 뚝뚝 흘러 떨어질 것 같은 글들. 그 한줄 한줄을 읽어가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천천히 무척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이틀만에 뚝딱 책을 읽어버린 것은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가 너무 독특하고, 이 책의 결말이 제시하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해서 중간에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는 속도가 무척 느리다. 좋은 책일수록 정독하고 단어를 외우다시피 문장을 더듬으며 읽는다. 퇴근후 저녁시간은 물론이고, 일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짬이 날때마다 책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책의 표지가 반양장으로 잘 코팅이 되어 있어 그리 수도 없이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해도 손떄가 뭍지 않아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과거의 이야기, 아픈 성장기의 추억들, 그 성장을 마친후 자신이 노력한 바에 따라서 사회적 대우를 받는 시기에 겪게 되는 또다른 아픔들. 어릴적의 트라우마도 크지만, 진짜 고통이란 것은 세상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 후에 나타나는 것일 것이다. 차상문이라는 우리의 중인공의 삶도 점점 더 큰 고통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는 많은 아픔을 겪으며 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성화를 거두었고 세상과 조금만 타협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편한 방법을 익히기만 하면 그럭저럭 세상과 큰 불화를 이루지 않고 살아갈수 있는 그리 많지 않은 축복받은 존재로 생을 살아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비굴함을 아파하면서도 편한길을 택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가장 외골수의 길을 택하여 생과 정면으로 마찰을 빗는 과정을 찾아 떠났다.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삶이 그렇게 끝을 맺게 될줄은. 누가 과연 알수 있을 것인가. 삶이란 것은 항상 미지의 것이며, 그의 순간순간의 선택에 따라서 달라질수 있는 유동적인 것인데... 그러나 결코 타협하지 않는 고집센, 혹은 적당이라는 것을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융퉁성이 없는 우리의 토끼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들이 눈감고 귀막고 살아가는 것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그 부딪는 아픔이 큼만큼 더 많은 희생을 겪어야 한다. 여러분도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토끼의 눈에 보이는 우리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작가가 토끼의 눈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한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보기에 따라서 우리 삶은 얼마나 이상한 모습으로도 보일수 있는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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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인본주의에 대한 장엄한 선전포고!
여기 한 토끼 영장류의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운명적인 것이겠지만 좌, 우의 폭력적 결합에 의해 태어난 인간도 아니고 토끼도 아닌 토끼 영장류 차상문!
유순하기만한 토끼의 본성으로 인간 속에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파행적 역사에 대한 비판과 이 시대와 인간의 부조리함과 폭력성, 이기심을 고발한다.
일반적인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능력의 소유자 차상문. 그렇기에 그는 눈앞의 현재에 급급한 인간들보다 한차원 높은 철학적 고뇌와 존재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다. 도대체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단 말인가? 좌우의 이데올로기 대립 또한 파벌간의 다툼 그이상의 무엇도 아닐지 모른다. 상황에 따른 옳고 그름이 아닌 본질적 진리에 가까워져야 함을 그는 설파한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에 의해 무시당하고 왜곡된다.
과연 인간은 진화의 종착지인가?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일컫는 우리 인간들에게 이 소설은 섬뜩한 분노와 치졸함의 실체를 보여준다. 더 나은 삶, 나아가 인본주의에 기반을 둔 모든 인간의 활동들이 실은 얼마나 전지구적 악행의 모태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인간들은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인류의 개발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기실 ‘재앙’이라 할 만한 것들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순진한 얼굴로 묵묵히 자기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당신들이 실은 그 재앙의 진원지일수 있음을 성찰해볼 계기를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차상문의 이야기에 숨기려고만 했던 내 어떤 더러운 부분을 들킨 것 같아 참으로 뜨끔했고, 그가 생애를 걸고 마지막까지 외쳤던 인간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인간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게 되었고, 그 모든 것에 오롯이 제 전부를 건 그의 투쟁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비판적 시각과 견고한 긴장감과 적절한 풍자, 해학과 씁쓸한 페이소스의 완벽한 응결체라고 할 만하다. 근래 읽은 소설 중 단연 으뜸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꼿꼿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을 차상문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며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위해 나는 앞으로 (쿵쿵거리지 않으려) 발뒷꿈치를 들게 되리라.
진정 모든 인간들이 인간이라면, 인간이기에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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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서점 돌아다니면서 재밌을 것같아 찍어두었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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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책이었다. 읽을 때 호흡이 길고 주의력을 기울여야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절대 지루하지 않다. 물론 다른 리뷰를 읽어보니 나의 주관적인 견해 임을 알게됐지만 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대사 책인듯 싶다. 53년에 태어난 토끼 영장류 차상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현대사에 안 걸쳐진 사건이 없을 정도로 두루두루 발자국을 남긴다. 심지어 차상문이 미국 버클리로 유학을 갔을 때 국제 정세와 미국의 히피문화까지도 리얼하게 나온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토끼 영장류라니 그것도 심하게 똑똑하나 심약하고 겁많은 토끼다. 그 시작은 이렇다. 어느 봄 날, 섬 마을 청순 가련 산뜻 발랄한 서울 여 선생님이 부임하셨다. 그렇게 선생님이 변소는 가는지? 당연히 안갈꺼라는 아이들의 내기에 그 꽃 같은 선생님도 변소에 간다는 사실에 오히려 상실감을 느낀 그 순수함의 절정에 꽃은 꺽이고 만다. 무참히!!! 어느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선생님은 무참히 오빠와 무지막지한 고문관에게 희생된다. 그리고 그녀의 시계는 멈췄다. 양잿물을 사발로 들이켜도 살아난 그녀는 토끼 영장류 차상문을 낳게 되고 어찌하여 삶을 연명하게 된다. 무지막지한 폭력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차상문의 동생 둘째도 낳게 된다. 그렇게 토끼 영장류는 남성의 권위적인 악 아래 태어났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항한다. 미미하나마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 애초에 요구는 간단했다. 걸을 때 쿵쿵거리지 말라는 것. 쿵쿵거리지 않으려면 근신, 즉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이웃과 주변, 그리고 장구한 세월 억조창생이 이끌어온 역사와 시간, 기억과 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시간적으로는 당신들의 현재가 과거의 소중한 유산이며 아직 오지 ㅇ낳은 미래의 종자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공간적으로는 당신들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말 그대로 억조창생이 더불어 사는 공간인 것이다. 게다가 당신들은 생각만큼 영리하지도 않다. "328
집약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환경문제, 동물실험, 인간이 먹기 위해 가축하게 하는 엄청난 만행, 부와 나라의 기강을 위해 소수자들이 어쩔수 없는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분위기 등등이 이제 하나 둘씩 우리를 공격하는 결과물로 다가오고 있다. 미세먼지의 공격, AI 닭, 오리, 계란, 등등은 셀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나 하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어쩌면 나도 조금은 허무하게 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영리하고 똑똑하고 깊이 생각한 작가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인간이 되보자고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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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토끼 차상문,그는 토끼일까 인간일까? 그 중간이라고 해야하나. 사람이면서 토끼의 모습으로 태어난,자신이 원하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 또한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다.그래서 토끼로 태어났을까? 초등하교 선생님이었던 맑은 여자가 오빠를 고문한 사람에게 당했다. 그렇게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평생을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했고 차상문,무 또한 원하는 않는 삶으로 태어나 인간사 부조리를 겪어야 했다.
그가 잉태되던 순간부터 태어나던 순간까지 모두가 '희귀한 역사' 의 한 장면이었듯이 그의 모습 또한 '기묘한 영장류'인 토끼의 모습이라 그 또한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타의에 선택되었어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며 살아야 했던 삶이 인간사에서 토끼의 모습으로 그것도 IQ200 이란 숫자가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주듯 그의 삶은 평범함을 벗어나 겉모습처럼 어디서나 눈에 띄는 그런 삶이 평탄했을까.
인간도 아닌 그렇다고 완벽한 토끼도 아닌 인간과 토끼의 중간쯤 되는 토끼 영장류인 차상문의 독특한 인생사는 역사와 맞물려 그의 인생다큐를 보듯 슬픈 역사가 펼쳐진다. 읽다보니 천명관 작가의 <고래>라는 작품을 연상하게 되었다. 끝이 없는 이야기가 줄줄,정말 작가의 무한한 상상속에서 풀어내고 풀어내도 끝없이 나올듯한 고치의 실처럼 '차상문'을 통해 들여다본 우리의 역사가 아니 과거와 현재 그리고 환경 남북문제와 성문제 외국인취업자문제등 다향한 사회의 이면들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나 혼자 이산화탄소를 내뱉지 않는다고 환경문제가 해결될까,잉태의 순간부터 부정적이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삐딱이' 인것처럼 그는 '인간사'에도 완전하게 끼지 못하면서 그렇다고 토끼의 모습으로 자연에 귀속되어 완벽하게 토끼로도 살 수 없음이 슬프다.
미국유학까지 다녀오고 그곳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장되는 전문자리까지 보장받았지만 그것을 자기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한국에 돌아와 최고로 치는 대학의 교수직까지 얻게 되지만 사회는 아니 역사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시국에 편승하여 아웃사이더가 되어 점점 자신의 세계에 빠져드는 차상문,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았듯이 자신의 삶 또한 받아들일 수 없음이었을까.IQ200의 천재토끼였지만 인간사에는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 아니 인간으로 반듯하게 자신의 입지를 굳힐 그런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왜? 인간이 아니여서.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레푸스 사피엔스인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라서일까?
토끼 영장류인 차상문이 정말 사회에 '토'를 달기 시작했다. 잘나가던 교수직을 뒤로 하고 사회의 뒷면에 숨어서 그가 사회에 '토'를 하게 된 것이 무엇일까.그가 혼자 그렇게 노력한다고 사회가 바뀔까. '허, 그놈 참..... 토끼가 범을 두려워하지 않으니,장차 천지를 들었다 놓을 관상일세. 이놈아,부디 자중자애하시게.만유에 다 제 뜻이 있는 것을......' '인간이...... 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요?' 어디까지 앞만 보고 달여가야 멈출까.아니 한번쯤 뒤돌아보게 될까? 그런 시간이 있기나 할까? 앞만 보고 무조건적으로 달려가는 인간사,동화속 토끼와 거북이처럼 주변은 의식하지 않고 그저 달려만 가다보면 어느 순간 자만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그렇게 자만하며 불편한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는 꼬집는다. 인간인듯 하면서 완벽한 인간도 아닌 토끼인듯 하면서 완전한 토끼도 아닌 그런 토끼 영장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사는 '불편함' 으로 거듭난다.그러다 '은둔자'가 되어버리는 토끼 차상문,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일면 유나바머에서 소설은 싹텄다고 하는데 독특하다.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지만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카진스키 이야기는 소로의 <월든>을 읽는 느낌을 갖게도 한다. 하지만 발달된 문명속에서 탄생하고 삶을 이어나간 이가 문명을 벗어나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소로 역시나 2년여 기간인가 호숫가에 집을 짓고 은둔자로 살았지만 다시 문명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완벽하게 문명과 분리되어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면.
차상문이란 토끼 영장류의 탄생도 독특하지만 그의 슬픈 인생사도 독특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니 뭔가 가슴 한 편이 아려온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것처럼 웃다가보니 눈물이 나오는 겪이 되고 말았다. 문명의 이기속에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벗어나지도 못하고 역사에 편승하여 앞으로 토끼처럼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 우리도 어쩌면 토끼도 아니고 완전한 인간도 아닌 토끼 영장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편하다고 느끼면서도 불편함을 고쳐보려 노력하지 않으며 쿵쿵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쿵쿵거리지 마세요..땅이 놀라잖아요.' '나만 아니면돼.' 라는 생각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그대들에게 토끼 영장류 차상문이 경고하고 있다. '쿵쿵거리지 마세요.땅이 놀라잖아요.'. 천명관 작가의 <고래> 이후 정말 그와 흡사한 독특한 서사를 보았다. 처음에 낯설음은 작가의 사설에 편승하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에 도달한것처럼 빠르게 앞만보고 달려간다.그러면서 무언가 놓친것을 뒤늦게 생각하게 한다. 읽고나도 무겁고 찜찜하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일까? 그리고 토끼 한마리가 가슴으로 들어온 듯 하다.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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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_ 사무라이는 만두를 먹지 않았는데도 만두를 훔쳐 먹었다고 우기는 만두가게 주인 앞에서 제일 먼저 제 아들의 배를 갈라 그것이 누명임을 밝혀낸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허위 사실로 가문의 명예를 심히 훼손시킨 만두가게 주인의 목을 베고,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속죄하고 제 이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배를 가른다
p 63 개집에 묶인 채 반경 1미터밖에 안 되는 원주 안만을, 그것도 후방 약 90도 정도는 아예 포기한 채, 세상의 전부인 양 빙빙 돌다가 생을 마치게 되는 워리나 쫑이나 독구 같은 개들,
아무리 풀어줘도 자유의지로 제 앞의 생을 개척하지 못하고 기껏 반나절 동네 언저리를 쏘다니다가 밥때가 되었다 싶으면 언제 집을 나갔냐 싶게 도로 얌전히 제 집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개들에 대해서 차상문으로서도 더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슬펐다
p 77 존재는 그것이 어떤 존재라도 다른 존재에게 해가 될 뿐이야 해가 아니라면 적어도 고통과 슬픔을 주지 .
p 134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게 마련이다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석 달, 그리하여 다시 원래의 계절이 돌아왔을 때, 문득 세월아 너 여태 그대로 있었느냐 묻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겉으로 볼 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날 풀리면 벚꽃은 다시 피고, 겨우내 얼어 죽은 줄 알았던 담쟁이도 슬금슬금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며, 무엇보다 어제 못 보고 오늘 눈에 들어온 잔디색이 푸릇푸릇해 지난해 이맘때의 봄을 고스란히 되보여주니, 깜빡하면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다는 착각에 빠질 만도 하다
그게 바로 속절없다는 것 .
그리고 그런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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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어떻게도 되지 않았다 , 라 . 그래도 그 정도면 선전한 거지 더 나쁘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잘한 거지.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어떻게도 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 그 결과를 받아들일 때 후회와 미련 따위의 소모적인 감정의 정도에 아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있을테니.
그리고 아직까지 온전히 스스로의 선택만으로 인생을 살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생각으로는- 적어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을 때, 가령 A를 기대하고 B를 했을 때 C나 D, 그것도 아니면 쌩뚱맞은 L이나 M 이 나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일은. 없다. 그리고 A보다 C,D,L,M이 더 나을 때도 꽤 있다. 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