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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젊은이들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단순한 취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또한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꿀 수 없는 꿈, 가지지 못하는 환상, 그리고 더 심각한 그들 스스로 그들을 방기한다는 점을 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상처입는다. 그리고 상처입힌다. 부대끼며 사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당연한 것도 참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하여 사람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잃었다. 끊임없이 왜 사는지 고민하는 것 같지만 실상 살아가는 것 자체를 버겁게 느끼게 되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결코 주인공들과 동화될 수 없었고 책을 덮은 뒤에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 모든 것들이 슬프기만 할 뿐이다.
오키나와의 숲 속에서 한 남자가 헤매고 있다. 그는 자신이 왜 거기를 헤매는지, 누구인지 모르는 기억상실 상태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또 다른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기숙사에서 도망나온 남자다. 그 남자 아키미쓰가 기억을 잃은 남자에게 긴지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그들은 함께 숲을ㄹ 빠져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 여자의 집에서 지낸다. 그곳에서 긴지는 일자리를 얻고 쫓겨나다시피하게 나오면서 아키미쓰와 헤어진다. 그의 휴대전화 번호를 받기는 했지만 잃어버려 그와 연락이 끊어진다. 아키미쓰는 돈이 떨어지자 호스트가 되어 예전에 사랑하던 여자애를 만난다.
긴지와 아키미쓰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나오는 이들이 모두 긴지가 마지막에 생활하던 안락 하우스 주인이 은연중에 내뱉은 말처럼 모두 떠돌이 인생들이다. 뿌리없이 돌아다니는 여행자이거나 여행자인척 가장한 아동성추행범,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는 프리터들, 히키코모리, 아예 일할 생각을 안하는 니트족, 여기에 부모는 자식을 방기하고 자식은 부모를 업신여기며 돈만 주는 존재로 여긴다. 이런 인물들과 더 적은 돈에도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와 오키나와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과 오키나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동원되면서 사회 문제를 기리노 나쓰오식의 어둡고 매정한 방식으로 적고 있다. 긴지의 기억이 점점 돌아오면서 그가 누군지 왜 오키나와에 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아키미쓰에 대해서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다. 서로 극과 극인 상황에서의 두 사람이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만든다.
빌 게이츠는 말했다. 인생은 불공평한 거라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된다고. 인생은, 특히 젊음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젊음의 특권이라는 이기적인 자신감때문에 불만과 분노로 폭발하게 된다. 그것이 때론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나쁠 때도 있다. 그래서 독을 중화시켜야 하는 법을 알아가야 하고 성배를 끝까지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게 불공평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자신의 젊음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번뿐인 젊음,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마는 최소한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속에 젊음을 가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 이전에 나는 근원적인 인간의 젊음이 갖는 태생적 취약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청춘의 고뇌도 누구에게나 오는 법이니까. 젊음, 그 독이 든 성배에 평범한 한마디를 바친다. |
| 기리노 나쓰오다. 드라이하고, 냉정하다. 낭만이 없고, 봐주지를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들은 인간이 얼마나 다양하게 끔직한가를 끊임 없이 보여준다. 미스테리라고도 스릴러라고도 할 수 없는, 하드 보일드라고 하기도 애매한, 기리노 나쓰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장르랄까. 미야베 미유키가 그리는 사회 소설 속의 모습과는 또 다른 사회. 케이블 TV를 이리 저리 돌리다 잠깐, 호스트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데 메타볼라에 자비없이 그려진 리얼한 호스트 바와 비교해보니 공상 만화 같이 비현실적이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전작 '다마모에'를 읽고 이제 그녀도 늙었나, 다소 실망했었는데, 확실히 전작들에 비해 끔찍함은 덜해진듯하나 그녀만의 개성이 제대로 살아있어 두꺼운 줄 모르고 후딱 읽었다. 그리고, 요새 같은 세상에, 이리도 두꺼운 책을 두 권으로 나눠 내지 않고 한 권으로 내준 출판사의 선한 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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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이제 미스테리계에서 어떤 일탈을 꿈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이 작품 <메타볼라>는 미스테리 소설의 궤도를 이탈해 일종의 사회고발적인 인문 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문학성을 따지자면 상당한 깊이가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젊은 일본 청년들의 심리구조와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일본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그리고 가정해체의 단면, 오키나와와 일본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등이 작가의 예리한 필력과 어우러져 무척이나 읽는 재미와 수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 즉 사회고발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메타볼라>는 작품 속에서 아무런 설명이 나오지 않아 무척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건축용어인 메타볼리즘(Metabolism) 즉 사회를 생명체로 바라보는 건축학적 관점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해 작가가 만든 조어라고 합니다. 그 만큼 이 작품의 핵심은 개인과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작가는 그 다지 작품에 개입하지 않지만 연옥을 연상시킬 만큼 잔인한 현실을 묘사하는데 많은 부분을 치중하고 있습니다. 일본 청년들의 일탈과 심각한 실업문제 등 사회문제는 비단 이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그 심각성이 가슴 깊이 전해졌고, 삶을 거부하면서도 집착을 갖고 살아가는 이소무라 긴지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고민없이 살아가는 아킨스의 삶과 아름답지 못한 결말도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소무라 긴지의 캐릭터는 아무리 봐도 비호감이라 그의 행동에 결코 손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이소무라 긴지의 되살아난 기억으로 서술되는 가정의 일탈부분은 왠지 가장인 나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 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정을 책임진다는 사람은 더욱 각오를 굳게 다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어떤 무언의 교훈도 주는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가마다를 통해 보여준 오키나와와 일본 본도 이주민의 갈등에 관한 부분입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왕국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독립국이었습니다. 역사도 400년 이상되고 고려 삼별초나 조선시대 홍길동의 율도국 등과도 연관된 신비의 섬나라 였는데 1879년에 일본에 강제병합되고 맙니다. 그런데 일본의 전쟁 패망 후에도 일방적으로 독립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대로 일본 영토가 되고 말았죠. 이제는 세월이 흘러 일본의 한 현으로 인정하고 사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아직 독립운동 세력도 남아있고 본토 이주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갈등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것 까지 담아내고 있을 정도니 작가의 사회를 바라보는 관찰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당초 기대했던 흥미진진한 미스테리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무척 실망했지만 작품 자체는 무척이나 시사점이 많고 읽는 재미도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읽고 사회의 아픔, 이것이야말로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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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 참의 나이에, 어디가 어딘지, 나이도 이름도 모르겠는 , 왜 떠도는지 모르는 스스로가 있다. 어디서 왔는지..알고 싶지만 .두렵기도 해서 사실 알 고 싶지 않기도 하다. 숲에서 헤매다 보니 비슷한 또래를 한 명 만났다. 둘은 아무도 없고 원시림 같은 숲 속에서 처음 보는 사이인데 아무것도 가진것도 아는것도 없다는 (?) 사실이 의지가되서는 친구를 하기로 한다. 겨우 겨우 걸어 찾아낸 민가에서 한 여자의 도움으로 신세를 지고 뉴스를 시청하면서 혹 자신들이 사회에서 나쁜짓을 하다 온 건 아닌걸까 잔뜩 긴장해보지만 아닌 것 같다.안도도 잠시 ..이제부터 뭘하고 살아야하나..막막하다..빨리 그들이 알게되었다면, 뭐 달랐을까? 아니겠지..처음에도 무서워 도망첬으니..또 도 망을 할 겁니다....^^ 아 , 이승철이 부릅니다..오직 너 뿐인 나를.....그러나 저 러나 새로 다시 살아도 젊어서 부딪히는 현실이란 크게 다를수가없는모양이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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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긴지. 집단자살을 시도하다 혼자 빠져 나왓지만 기억을 잊어 버린다. 자기의 이름도 과거도. 우연히 18살 가출한 아키미쓰와 알게 되고 오키나와에서 각자의 삶을 산다. 긴지는 석재상을 거쳐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이 된다. 아키미쓰는 호스트바 에서 호스트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긴지의 기억이 돌아오고 본명 가즈키 유타 . 그의 삶은 평화로운 가정으로 출발했으나, 부모와 누이동생하나 대학교 2학년 재학중.,아버지의 폭행으로 인해 어머니는 이모한테로 가출하고 학비를 안 대주던 아버지는 자살을 하고 가정은 붕괴된다. 대학에서 제적된 유타는 하청 조립공장에서 일하나 비참한 현실에 집단자살에 끼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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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은 기억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지난 자취를 깡그리 잊었다면 그 사람은 존재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지 모릅니다. 고등한 정신의 가치가 그 주요한 비중을 "연속성"에 두고 있다 가정하면, 어제(혹은 가까운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잊은 자는 그만큼의 존엄을 상실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동양 역사에서 식언하는 자, 훼절하는 자, 지조를
바꾸는 자를 두고 상대적으로 큰 비난을 쏟아내는 이유도, 이 의식과 지향의 연속성이 빈약한 자에게 사회적, 도덕적 신뢰를 줄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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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펄린이 '청춘 착취자들'에서 하는 이야기는 화이트 칼라가 되기 위한 무보수 인턴십들의 몸부림이었다. 반면 기리노 나쓰오가 '메타볼라'에서 하는 이야기는 화이트 칼라 외에 노동직을 다루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뜨거운 정글을 헤메고 있는 이 불쌍한 청춘들... 하드보일드를 장기로 한 그녀가 이 냉혹한 현실을 다루고 싶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로스 펄린이 디즈니의 인턴십 사태를 고발하고 있다면 기리노 나쓰오는 두 청춘을 통해 어김 없이 장르 소설을 보여준다. 책에는 노동직의 냉정한 현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기억을 잃은 채 오키나와의 밀림을 헤메던 한 남자와 아키미쓰라는 청소년을 통해 일본 사회에 독버섯처럼 뻗어 있는 노동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로스 펄린이나 기리노 나쓰오가 하는 이야기가 생소하지 않은 건 우리 생활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나 기리노 나쓰오가 들려 주는 두 청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현실과 지극히 닮아 있다. 기억을 잃은 남자 속칭 긴지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만난 게으른 남자 하라구치에 대한 표현은 리얼하다 못 해 소름까지 끼친다. 긴지가 기숙사와 노동일까지 열심히 하는 반면 하라구치는 매일 방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는 목적 없이 살아가던 게으른 남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둘은 똑같은 임금(회사가 하는 홍보와 다른 현저히 낮은)을 받는다. 긴지가 이 청춘 착취자들과 싸울 때 하라구치같은 인간은 옆에서 공정성과 할당량을 먹어 치우고 있는 것이다. 이건 그 어떤 상황보다도 독한 지옥도다.
그 외에 현재 우리 사회를 상징하고 있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기리노 나쓰오가 만들어낸 이 두 캐릭터는 우리 사회에도 생존하고 있다. 바로 멘토형 인간들... '파라다이스 마니아'라는 곳을 운영하는 이즈무와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 가마다가 그들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청년들의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 니트(neet),프리터,워킹 푸어,운둔형 외톨이들에게 용기를 심어 준다는 멘토와 같은 인간들이다. 긴지와 아키미쓰도 그들을 동경하지만 이 두 인간의 본색은 마지막쯤 드러난다. 그리고 더 웃긴 건 이 이야기가 우리 현실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멘토가 중요한건가. 중요한 건 최저임금을 늘려주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럼 멘토같은 것도 필요없다. 멘토 역시 청춘을 착취하는 공범자들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양극화 사회에 이은 가족 붕괴의 피해자들은 하라구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삶의 의무'를 짊어지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들을 좀 먹는 건 단순히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하라구치같이 공정한 게 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나 멘토인양 '청춘'을 갈취하는 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 독버섯들을 여류작가답게 세밀하고 가끔은 시원하게 까발린다. '멘토'나 '대기업','최저임금 인상'등으로 입바른 소리만 하게 된다면 긴지나 아키미쓰같은 청춘들은 앞으로도 앞이 보이지 않은 정글을 헤멜 것이며 고작 해가 저물어가는 넓은 바다를 마주하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 자신을 위로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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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이름만으로도 앞뒤 안가리고 읽는 작가중에 한명이 되었지만, 사실 '기리노 나쓰오'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없이 지루하고, 몰입도 안되고, 그렇다고 이거다 할만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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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처럼 넓은데 내 한 몸 기댈 곳이 없다"는 신세 한탄과 "오라고 하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많다"는 자기변명이 요즘 젊은 세대들의 모습이 아닐까. 기리노 나쓰오는 [메타볼라]에서 니트, 프리터, 워킹 푸어, 히키코모리, 호스트,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하류 인생들의 삶을 통해서 일본 사회의 어둠과 세태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책제목 '메타볼라'는 '신진대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청년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아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현대 사회의 불공정한 시스템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긴지와 아키미쓰다. 오키나와 숲 속에서 기억상실에 걸린 한 남자가 기숙학교를 도망쳐 나온 아키미스를 만나게 되고, 아키미스는 기억상실남에게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준다. 바로 자기 누이를 농락하고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가로챈 남자, '긴지'다. 둘은 숲을 벗어나 편의점 알바의 여자 집에서 잠시 머물게 된다.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인 아키미스는 성관계를 댓가로 여자 집에 계속 머무른다. 긴지는 나름 알바자리를 찾아다니며 자립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만은 않다. 이소무라 긴지는 값싼 일자리를 전전하며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 석재상에서의 전무나 안락하우스의 가마 등은 긴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긴지는 결국 자신이 '가즈키 유타'이고 인터넷 자살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기억을 찾게 된다. 그러나 긴지는 유타가 아닌 긴지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한편, 아키미쓰는 한 히피공동체에서 생활하다가 트러블이 생겨 쫓겨나고 수주에 가지고 있던 돈이 다 떨어지자 호스트로 살아간다. 문제는 부유한 도련님인 아키미쓰의 타락과 의미없는 추락을 단지 가족공동체의 와해 하나로 이끌어가려는 억지에 다소 반감이 든다. 이야기의 마무리도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잘 이런 결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 긴지와 아키미쓰의 결말은 미완성과 애매함의 여지를 둔채 다소 허무하게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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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메타볼라』는 도시 사회를 생명체로 바라보는 건축학적 관점인 '메타볼리즘(metabolism)'을 변형해 만든 작가의 조어라더군요. 신진대사라는 뜻도 지니고 있지만, 작품에서는 '청년층을 잡아먹고 사는 현대 사회'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