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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는, 세계는, 나아가 이 행성은 어떻게 변할까?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침체는 그 동안 충분히 벌려놓았다고 생각되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고, 기후변화는 이제 일상이 되어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이곳은 뜨거움에, 그리고 예전엔 일년 동안 내릴 비를 하루 이틀 사이에 퍼붓고 있지만, 다른 한곳에선 추위와 폭설로 난리다. 행성 전체로 보면 평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두렵고,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진단한다는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숲의 파괴, 기후변화, 기아, 그리고 다양한 종들의 멸종.. 지금 세상에 나타나는 위기들은 전면적이다. 어느 것 하나 우리 인류에게 심각하지 않은 것은 없다. 서유럽 문명은 이러한 현상들 앞에 마비된 채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다고 한다. 미디어들은 때를 만난 듯 이 나라, 저 나라로 이를 옮기면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개개의 위기들을 개별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위기로 치부하고 있고, 따라서 위기에 대한 처방 역시 개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껏 따로따로 생각해 온 이러한 위기들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온, 그래서 이제는 수년 혹은 수십년이내 어떻게 조정할 방법이 없는 어마어마한 위기로 번질 수 있음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이 현대문명의 전개에 대응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남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 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석학 21명과의 대담을 실마리 삼아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선형적이고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세계상과는 철저하게 구별되는, 세계와, 현실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위기는 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도전적이고 철저한 변환과정의 중심의 장이 될 수 있으며, 근본적인 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머리와 몸, 그리고 영혼을 통째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총 5부로 나누어 그들과의 대담을 싣고 있다. 대변혁의 다이나믹스 우리는 오랫동안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두가지 문제, 양극화와 생태파괴와 씨름하여 왔다고 한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위기들의 징후 앞에서, 우리는 성장을 위해 지금까지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변곡점에 와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극복할 수 있는 위기의 끝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없는 위기의 초입에 서있는 것 이라고 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화의 과정을 허용하여 자율적인 유기체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유기체라는 시스템 안에 있는 우리가 변할 때 시스템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커다란 전체의 일부분이며, 인간의 사회체계와 생태계는 연결되어 있고, 카오스적 시스템에서는 최소한의 변화가 확장되어 전체 체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시스템이론가 ‘어빈 라줄로’는 “(카오스 현상에서와 같이) 한 마리의 나비가 폭풍우를 일으킬 정도라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패러다임 시프트 진화는 재앙을 통해서 작동되고 가속화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은 단지 경쟁을 위한 장이 아니라 더 큰 전체를 이루기 위한 협력의 장이고, 우주의 전 역사는 이러한 협력 시스템을 통하여 발전해 왔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나 인간을 위협하는 위기는 세계를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 즉 싸움이나 경쟁이라는 패러다임이 붕괴 직전에 왔다는 신호라고 한다. 기본가치가 무너져 내릴 때 인간은 혼돈에 빠져들고 우왕좌왕하지만, 새로운 유형을 발견할 수 있고, 생명과 연대라는 흐름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항상 오랜 시간이 걸리며, 이것은 또한 눈에 띄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이 안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변화의 파고가 일기 시작하면 숨어있던 변화의 과정이 순식간에 눈앞에 들어나며, 지금이 그런 시점이라고 한다. 어떤 생명체든지 우리가 지배할 수 있게끔 결정된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모든 시스템은 그 자체가 전체이면서 동시에 더 큰 전체의 부분이라는 의미를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미래는 협력적인 지속가능성으로만 가능할 뿐이며, 이것이 발전의 다음 단계라고 대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미래의 씨앗 지금까지의 세상은 성장산업사회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산업사회를 존재하게 한 근간은 화석연료이었으며, 화석연료자원을 낭비한 대가로 세상은 지금 다양한 징후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현대를 지배하는 시스템은 단일문화에 기초하고 있으며, 현재 식량난의 주범이 바로 단일경작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결코 자연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미래는 자원에 덜 의존적인 태양경제로 가야 한다고 대담자들은 이야기 한다. 우리들 개개인은 큰 변화를 구체화 할 수는 없지만 작은 변화는 만들 수가 있다. 이 작은 변화들이 배가되면 공명을 일으켜 효과를 낼 것이라고 한다.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의 자기 모습에 안주하려는 욕망의 다른 표현이며, 그렇다면 미래는 영원히 과거의 반복일 뿐이라고 한다. 사회 변혁의 과정은 미래의 씨앗을 품은 개인들이 나타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첫걸음은 우리의 의식의 변화라고 한다. 성장산업사회는 우리를 고립된 개개의 소비자로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놀라운 우주의 본질적인 일부분이라는 깨달음이 현재와 미래에 직면할 인류의 도전들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 줄 것 이라고 한다. 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토 샤머’는 이러한 미래형 인간의 행동강령으로 U프로세스를 제안하고 있다. U프로세스의 기본원칙에 따르면 그 어떤 지속적인 변화이든지 반드시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먼저 우리는 습관적 태도를 버리고, 낡은 해결책으로 새로운 도전에 반응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며, 두 번째는 바깥세상에 대한 관심을 자기 안의 세상으로 돌려서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있는 지혜와 소통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외부로의 개방과 내면으로의 개방을 통해 행동동기를 인식하고, 바로 행동에 나서는 일이라고 한다. 미래의 메가트랜드 지금의 위기는 전세계적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금융위기는 더욱 그러하다. 현재의 화폐시스템은 돈의 실제가치가 한계치에서 성장을 멈추는 반면, 돈은 계속해서 지수적으로 많아진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고한다. 특히 신용파생상품 등에의한 돈의 창출은 신용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시장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이것은 통화와 금융거품에 기초한 금융시스템이 종말을 고하는 것이고, 그 피해는 모조리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은 돈과더불어 살지만, 돈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를 모르고, 돈의 본질이나 기능도 정확히 알지못한다고 한다. 금융기관은 항상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탐욕과 돈의결핍에서 올지도 모르는 존재의 불안이라고 한다. 이것이 금융기관의 행동양식과 현재의 통화제도를 결정하는 심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화제도는 신뢰를 파는것이고, 따라서 신뢰를 유지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볼때, 지금 겪고있는 금융위기는 관리부실이라든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아니라, 전반적인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것 이라고 한다. 이것의 해결을 위해 대담자들은 대안통화 혹은 지역화폐의 사용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일부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하여 그 효과를 입증한것으로 녹색경제의 일환으로 볼수 있다고 한다. 미래사회의 통화는 실물경제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통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며, 지금의 위기가 통제되지 않는 금융권력의 개혁을 추진할 시기라고 말한다. 지구온난화나 금융위기와 더불어 확산되는 녹색경제는 인간의 의식이 한단계 성숙했음을 보여주고, 이런 의식의 변화는 화석연료시대에서 태양열시대를 향한 패러다임 전환의 원동력이 될수 있다고한다. 미래의 온실 위기에 직면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힘이 없다는것을 믿게하려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문제는 어쩌면 위기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무기력하다는 의식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믿는이유는 모두가 함께 잘살기에는 모든것이 부족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이렇게 강요하고있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인간본성에도 맞지않고, 자연환경의 기본법칙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면위기의 근본원인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조만간 우리는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갈지, 아니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릴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위기를 기회를 만들기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인식의 전환을통한 행동이라고 대담자들이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갈 때, 사람들은 미래를 더욱 궁금해 한다. 이 책 [두려움 없는 미래]에서 이 시대의 선지자, 그리고 행동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지금은 붕괴가 시작되고 있는 어두운 현실 이지만, 세계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긍정적이고, 자발적인 변화가, 이 행성을 구하고 우리의 미래세대의 삶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해야 하며, 그런 변화와 희망의 주역은 바로 나이고, 머뭇거리지 않고 그러한 삶을 실천하고, 참여하는 것 이라고.. 책은 640여 페이지에 이를 만큼 두껍지만, 그리고 21명의 대담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온갖 위기로 점철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때 세상은 반드시 변해야 하고, 그 변화의 중심에 우리 개개인들의 의식의 전환과 행동이 밑받침 되어야 한다는 주장엔 수긍이 간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일곱 번째 세대의 원리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 전에, 그 행동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일곱 번째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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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말 지구촌 곳곳에서 우울한 소식들만 들리는 것 같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일본의 대재앙, 처음에는 이웃나라의 안타까운 사연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원전고장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문제로 비화되면서 이젠 우리 안전을 위협하는 나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도 세계경제 전체를 몇년간 후퇴시키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징후도 지구촌 곳곳에서 관측되는 우리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중동과 리비아 사태로 우리를 100불대의 유가시대에 살고 있다. 끝없는 지구촌 위기, 이젠 나의 문제이기도 이 위기의 끝은 어디이고, 우린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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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미래기획 : 두려움을 실천으로
이 책은 게세코 폰 뤼프케의 좋은 미래를 위한 담론이며 여러 석학들과의 대담형식을 빌린 게세코의 저서이다. 여기에 여러 석학들은 여러 미래의 모습을 제시한다.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희망에 동요될 준비를 하고 이 책을 펼쳤다. 나의 극단적인 비관론이 이 책을 읽는데 방해하는 방어기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리마인드를 해야했다. 틀린 말이 무에 있을까만 가능하지만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무기력증이 자꾸 비집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은 오픈마인드에 대한 노력이 이 책을 덮으며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아무래도 미래에 대해서는 매우(X100이라도 하고 싶다)비관적인가 보다. 게세코 폰 뤼프케가 그렇게도 우려하는 불안과 포기만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세계의 모습은 내게 ‘몰락으로 치닫는 성장’으로만 보이니 말이다.(저자 게세코도 비관론자들이 이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안은 현실에 대해 불만하거나 도피하거나 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도피자)는 알고 있다.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말처럼 이러한 위기를 인지하는 순간 그 위기를 어떤 행동을 위한 자극으로 보는 법을 익혀야 할텐데 이만큼의 인식의 변화는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며, 반대로 뿌리깊은 비관론은 쉽게 변화하고 빠르게 전염되는 성향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매번 비관론이 머리를 드민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의 과정에서의 마인드 컨트롤에 조안나 메이시의 “낡은 것에 대해서는 호스피스,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산파”라는 비유는 매우 희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아래로부터도 아닌, 위로부터도 아닌 어느 정도 정재계의 경제활동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시민사회 계층이 이러한 사회패러다임 쉬프트의 기능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나의 (실제일지 모를) 상상으로는 시민사회는 운동의 원동력이 되기에는 반동성이 부족하고 경제를 제외한 분야의 배려와 협력만으로는 지금의 세계 패러다임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고 그 위력적인 경제를 순환시키는 자본의 원동력은 사실 지구 인구의 1%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을 다시 같은 모양으로 재건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향의 어떤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왠지 이러한 이론은 시민사회의 허위의식에서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어떻게 해서든 자본을 볼모로 한 헤게모니로 암묵적 계약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홍수에 소 잃은 피해자(시민)은 정재계의 달콤하고 (그들 기준으로는 매우 싸게) 돈발림에(이 돈은 사실 시민이 세금을 내기 위해 뼈빠지게 일한 댓가이다) 조삼모사의 만족감을 얻고 헤게모니는 더욱 견고해지고 결국에는 진정 소와 주인을 위한 튼튼한 집이 아니라 모양새만 좀 더 세련된 외양간을 지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말이다.
게세코 폰 뤼프케가 이러한 예측을 못한 것은 아니다. 그는 너무도 정확하게 정재계가 이루어낸 이러한 사례들을 알고 있고 알려주고 있다.(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까지도.) 다만 그러한 전략을 모방하지 말고(이 전략을 모방하면 우리는 위기시마다 정재계에서 작은 콩고물을 기대할 수는 있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시민사회의 패러다임 쉬프트를 통한 정재계의 변화를 가져오는)다른 대처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희망에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가 떠올랐다. ‘질서와 무질서’ 편을 보면 질서는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는 질서를 낳는다고 한다. 질서란 무질서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의 적은 인위적인 질서이다. 자연은 다양하고 무질서한데 인간의 질서정연함은 어떤 고유한 운동을 반복하지만 그 운동을 굳은 것, 곧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희망적인 관점만큼 이 세계가 자연의 일부라고 하기에는 인간의 세계는 비자연적인 요소, 반자연적인 요소가 너무도 많아서 자연과 이질성으로 인한 대립관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과연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안드레아스 베버가 언급하는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한 경제라는 개념이 과연 신자유주의에 모두 한발씩은 들여놓은 시민들에게 얼만큼의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종단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할 개인들에게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신념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미 적잖은 미디어교육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생활 전체를 자연친화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종단에 개인의 이익이 우선이 될 것이라는 비관론은 안드레아스가 제시하는 자연의 경제가치를 보다 더 높게 해석하는 생태적 경제학을 들어본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자연파괴의 경제만을 중요시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시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05 대담 참조)
저자는 금융, 기후 등의 모든 세계의 위기는 ‘기존질서의 보존’을 목적으로 대처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대처방식은 ‘창조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를 들어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위기 전의 안정적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이는 이들의 홍보목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선거시의 공약들, 혹은 정치인들의 대처방식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를 일종의 경쟁구도로서만 여기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의 경우 특히 서로 현재의 문제발생과 그 위기의 심각성보다는 안정적인 사회에서 삐죽 튀어나온 걸림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비난하고 그것을 시민사회에서의 공감대형성을 위하여 이용한다.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그들은 시민사회의 불안감을 이용했다. 불안정성에 대한 불안감, 변화에 대한 불안감 말이다. 하지만 그 불안정성이 바로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는 기회이며 붕괴가 있어야 진정 변화가 올 것이라는 진취적인 생각도 막아버렸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번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그는 또 위기에 대처하는 좀 더 중요한 다음 발걸음이 바로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대로 우리가 쉽게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금융’ 위기가 사실은 더 깊은 위기의 징후로부터 출발했고 그러한 화폐과 경제의 위기에 대한 해법보다는 늘 안정적 상태로 복원(반복되는 금융위기는 순환이라기 보다는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분명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18 대담, 그렇다면 그 구조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려는 정재계의 도피(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집에 냄새가 날까봐 우리나라에 버렸습니다’라는 광고의 문구처럼 말이다)에서부터 심화된 것이라면 (어찌 보면 환원적으로 보이겠지만) 가장 근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지 않겠나.(금융위기에 대한 대안에 대해서는 17, 18, 19 대담 추천)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 종식되고 화폐의 유통성이 보장되고 대안화폐가 등장하는 경제활동과 문화재단, 거기에 인권을 위한 재단이 21세기의 발전모델로 제시되고 이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을 교육으로 보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이상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것은 이상주의가 아닌 대안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이상주의로만 치부하고 현재와 위기를 반복하는 무기력한 시민사회의 결말은 결국에는 시대의 종식과 전멸의 비관론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나의 비관론이 이러한 한계점을 가진 것을 알았을 때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가 바로 그렇게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유연하고 창조적 대처가 가능하지 않을까. 인식의 변화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현재의 위기의 진정한 핵심을 보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철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데 이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의 교육에서 가장 크게 형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진정 실천적 교육의 내용과 형식적 측면에서 전환적인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교육을 시민사회내에서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미래개척자들’이라는 교육기관의 인터넷 주소를 슬쩍 따라가보고 싶어진다. 그는 교육으로서 어떤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담론들이 시민사회내에서 발전되기를 바라는 학자의 태도를 잊지 않는다. 나는 게세코의 글로 탄생한(그들의 저작에서 이미 발견된) 여러 학자들의 (쉬워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혹은 어렵지만 사실은 어렵지 않은) 대안들이 이들처럼 소수의 움직임으로 나타날 때 생기는 균열을 오히려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책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라’는 명백한 명제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러한 틈은 하나의 시도로 그치지 않게끔 끊임없이 긍정적인 지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지원은 정재계의 인식전환도 물론 필요하지만 시민사회의 꼭 필요하다는 인식전환과 주인의식이 가장 큰 지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틈을 좋은 균열로 이용한다면 진정 안정적인(혹은 불안정한 자연계와 어우러지는 포인트) 전환(혹은 작은 혁명)은 세계상의 평화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를 유지하려는 힘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위기상황을 이끌어낸 가치관 내에 갇혀서 점점 더 큰 위기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중심주의적이고 비자연적인 정책과 소비생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변화와 좋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할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래들에 대해서 비관에 빠져 무기력하기 보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는 위기에 대한 사유를 필요로 하고 그 이후에는 이 책의 여러 석학들의 의견과 같은 실천방향을 잡고,(실천방향에 대해서는 05, 09, 13 대담 추천) 그리고 ‘긍정적 해체’를 바탕으로 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실천에 관한 부분은 07, 10,11 대담 추천) 비관론의 전환은 실제로 이러한 과정을 거친 시민운동가들에게서 나온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이러한 실천의 결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보다. 저자와 대담자들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여러 사례들은 진정 미래전환의 희망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저자가 가장 매력적인 위기대응으로 꼽은 시민사회적 ‘전환마을:석유에 의존하지 않는도시’의 경우와 그 운동의 확산사례는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이러한 소수의 혁신운동이 시민사회, 시민운동에서 시작되었음이 바로 희망이다. 우리가 만약 평화운동의 결과로 전쟁과 학살행위의 수가 90%가 줄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면 모르는 만큼 비관주의는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매스컴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듣는 시민사회가 과연 어떤 것에 귀를 열고 듣는지가 중요하다. 수요자가 귀를 기울이는 것에 매스컴의 뉴스거리도 움직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작은 관심또한 바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될 수 있다. 메리 와인 애시포드의 말대로 우리가 다윗들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거인과 거래해서 거인이 우리와 공동으로 일하게끔 하고 거인을 강력한 파트너로 삼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나는 또 한번 골리앗을 파트너로 삼는 것은 타협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과연 사람들은 이러한 실천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문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확산된 시민운동의 경우를 보면 그리 우려할 만한 것이 못되는 듯 하다. 실천하는 이가 있으면 그에 대한 간접경험을 통해 희망을 갖게 될 것이고 스스로 가진 잠재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바램이긴 하지만 이러한 시민사회로부터의 실천이 또한 우리가 원하는 정치적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먼저 실천하는 이들의 희망 리더쉽(이는 클라우스 오토 샤머가 말하는 리더쉽이며 지금까지의 리더쉽과는 다른 개념이다)이 (프란시스 무어 라페처럼) 겸손으로 1% 가능성만으로도 실천을 이끌어내는 시민사회가 해낼 수 있는 정점이 될 미래도 상상해볼 수 있다.
좀 더 공동체의식을 갖고 공공복지에 접근하며 자연과 더불어 생명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물질보다는 내면의 중요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인식의 전환과 함께라면 우리는 정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시민사회가 성장해온 사실과 풀뿌리운동의 몇 몇 성공과 운동확대의 사례들이 여기에서 더 크게 성장하고 그 성장이 초심이 변형되어 있지 않은 채 확대되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마르코 비숍은 우리의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의 말대로라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우리에게 공동체 의식은 이미 잠재되어 있고 함께 뭔가를 바꾸어 나갈 의지와 실천이 도발된다면 그 성공에 대한 기대로 적지않다. 또 그는 성장중심의 산업을 거부했을 때 세계가 이분화되고 우리는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자들의 세계에서 당분간 더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다만 우리가 그가 말하는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자들이 과연 아닌지, 우리는 그들과 반대편에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과연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세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진정 공존하는 세계로 변화시키고픈 사람들인가. 그들의 이러한 지지부진하지만 분명 평화적이고 진취적인(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진취의 의미가 아니다. 산업적 발전과는 거꾸로, 생태적인 거꾸로 진취의 의미이다) 혁명을 (비관적이어서 이상주의적이라고) 비웃고 조롱하고 함구하고 방관하는 진정 무기력하거나 탐욕적인 이기주의자는 아닌가. 여하튼 이상주의는 현실에서 사람들의 실천으로 분명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고 그 확대의 가능성은 분명 있어서 이상주의는 이제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일부와 새로운 미래세계상으로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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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로 들어선지 10년이 지나면서 소위 근대성이 함축하고 있는 오늘의 인류사회가 신봉하던 가치체계와 인식에 대한 믿음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고, 이는 인류의 존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와 우려의 논의를 낳고 있다. 그러나 지배 권력층에서는 인간의 지성이 지금까지 그러했듯 자연과 생태계의 모든 상황을 합리적 이성이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하고 있다. 이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기만이고 날조일까? 자연자원의 무차별적인 소비, 온난화등 기후의 이상적 현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와 같은 시장자유주의의 명백한 오류, 남북문제 등 양극화의 심화, 기계론적 합리주의와 물질지상의 소비주의로 인한 탐욕적 이기주의, 다원화로 인한 종교와 문화의 갈등과 같은 가치의 혼란이 카오스를 방불케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인간 세상 모습이다. 그래서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두려움 그득한 자문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이 저작은 이러한 21세기 인류사회가 지금 어떤 시간에 놓여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의 세계관을 고수하는 것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 이미 새로운 전환의 국면에 들어선 미증유의 시간이라면 그저 무기력하게 지금의 가치체계로 대처하며 기다리는 것뿐인지? 인류가 200여년의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이 위기의 시간을 대처 할 방안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도래 할 미래의 새로운 가치와 인식이란 것이 있다면 어떠한 것인지? 에 대한 철학, 물리학, 시스템공학, 생물학, 사회학, 경제학 분야에 걸친 21명의 석학들과 전문가들의 진단과 변혁하여야만 하는 가치의 제안을 담고 있다. 21세기 초인 오늘은 분명‘대변화의 시대’이다. 지구행성이란 제한된 시공(時空)속에서 산업사회의 성장지상주의로 무한한 성장과 소비천국을 구가하며, 반면 자연을 구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지만, 이 둘이 커다란 모순임을 누구든 알고 있다.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는 낙관 속에 모든 문제에 대한 처방전을 마치 지니고 있는 것처럼 오만을 부리지만, 화석연료의 고갈, 물 부족, 기후변화 등 생태계는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기계론적 사고에 의한 죽은 물질의 이데올로기로 생명현상을 분석해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미국발 금융시장의 붕괴는 지구경제를 일시에 혼란에 밀어넣었지만 처방은 불안감을 산발적으로 대체하는 미봉책으로 그칠 수 있을 뿐,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근원적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과는 별개의 독립적 존재로 자부하는 인간의 개인주의는 생태계와 유리되어 생물권의 공생적 하위시스템임을 인정할 줄 모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미 진화론적 위기에 돌입해 있다는 자각으로 파편화된 개인주의의 인간중심의 가치관으로서가 아니라“개체 자체가 전체이면서 동시에 더 큰 전체의 부분”이라는‘홀론(Holon)’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시스템의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를 이해하기에 이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위기로서의 현상은 근본적인 시선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낡은 확신과 해법들로 산발적인 불안감 조절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기도 하다. 체계와 결속된 권력은 변화하려 하지 않으며, 생명에 적대적인 작금의 지배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려한다. 또한 위협하는 모든 위험을 외면하고 당면한 문제를 대중의 관심사에서 배제시키려고만 한다. 결국 주류권력은 근본적 변화에 대한 각성과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 의식의 변화를 이루려고 하는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체계의 취약한 단면을 은폐하려고만 한다. 위기를 회피하고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가치와 인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모든 생태학적, 사회학적 지표는 물론 양자역학, 생물학 등 학제적 이해역시 생명 시스템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토해내고 있다. 지각하는 현실을 위해 모든 것을 사물의 세계로 제한한 근대문화의 단선적이고 폐쇄적인 시각은 위기를 끊임없이 부인하고 이로서 피드백되어야 하는 신호를 차단하고 자멸의 길로 내 닫기만 하고 있다. “위기는 바로 등잔 밑에서 일어나 아주 파괴적으로 작동 할 수 있으며, 너무 일찍 찾아 올수도”있다. 이처럼 위기의 근본은‘인식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인간 종이 직면한 이 위기를 우린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인간을 포함하는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아주 멋진 예가 등장한다. 생명은 상이한 요구들이 협력적으로 조정되고 답을 찾아 나갈 때만 유지되며, 다양한 시스템 단계들 사이에서 지적 협상이 오고간 결과가 바로‘질서’임을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심장-허파 기관’이 선진국 산업기관이라 가정했을 때, 심장분배센터는 혈액가격을 설정할 것이고,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기관에만 혈액을 공급할 것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경쟁체제와 같은 승자-패자 시스템이 여기서 기능할 수 있겠는가? 생명시스템의 유지를 위해서 이러한 시스템은‘그냥 안 되는 것이다!’고도로 발달된 유기적 시스템의 완벽한 사례인 인간의 신체는 바로 전체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체계라는 것이다. 신체를 구성하는 각 세포인 하위의 개체들이 경쟁하면 신체의 기관들은 존속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신체의 각 기관들 역시 개체 자신의 개인성을 전문화하되 협력하여야만 생명이 유지된다. 이렇듯 부분은 온전한 전체이면서 전체의 부분이며, 협력과 공존의 체계이다. 또한,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세계의 토대는 물질이 아님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원자는 더 이상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물질은 사라지고 형식만이 남는 다는 즉, 존재의 구조만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바로 이‘존재’는 자연이라는 결속성, 즉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연결된 기초적 결속성임을 의미하고 있음이다. 생명성이란 불안정성에 기대고 그 주요한 힘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보상적 영향을 미치는 세계인 것이다. 낡은 고전 물리학의 기계론적, 물질적 사고는 진화의 대 변곡점에선 오늘의 위기에 대해서 아무런 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낯 선 영역인 이 변화라는 위기에서 집단적 고정관념은 불필요한 저항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만 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지금의 방식들은 붕괴 직전에 와있다고 신음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작금의 효율성과 합리주의 이성이 가리키는 것처럼 위기는 회피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위기라는 현상은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 미래로 내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며, 이로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주변에 대한 시선을 확보하게 된다. 새로운 것은 지적으로나 사회적 주변부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우린 알고 있다. 결국 위기는 새로운 생명의 비전이 출현하는 것이며, 따라서 개방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위기는 큰 여파를 몰고 오는 진화가 일으키는 것이며, 진화는 재앙을 통해서 작동되고 가속화되기에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강요한다. “앞으로 오는 시대가 힘들어질수록 진화의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은 더욱 빨라질 것”임을 우린 각오하고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사회의 위계구조 상층부인 권력은 결코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하루하루 생존과 싸워야 하는 빈곤에 허덕이는 계층역시 변화에 눈 돌릴 여유가 없다. 따라서 근본적 변화의 기회는 우리 시민사회, 바로 우리대중들이 각성하고 가치를 세우고 의식의 변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태양문화, 탈중심문화,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유연하고 역동적인 협력의 공동체인 시민사회운동은 그래서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회현실을 변화시키는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의 지수적 성장이 야기하는 재분배의 왜곡을 비롯한 경제의 가치혼란과 비정의에 대한 이자, 복리시스템의 대체 방안으로서의 수수료체제나, 스위스의 비르(WIR)와 같은 자체지역통화의 기축통화에 대한 보완적 통화의 통용과 같은 구체적 공진화방안과 같이 미래를 보는 새로운 가치를 담은 사유와 구체방안들이 풍부하게 제안되고 있으며, 나아가 위기국면에 대처하는 평정심 유지의 중요성이 위기의 시대면 인기를 누리는 파시즘, 근본주의 이데올로기, 권위주의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에서부터 미래 역량을 배양하기 위한 사회적 집단지능의 활성화 능력을 육성하기 위한 대안의 제시까지 위기국면에 있는 인류사회를 위해‘파괴의 고통’을 동반하는‘긍정적 해체’로서의 미래가치에 대한 분야를 망라한 담론이 우리의 지성을 향해 진중하게 펼쳐지고 있는 위대한 저술이다. 작금의 요동치는 세계는 더 깊은 차원의 진리와 감추어져 있는 가능성을 일깨우는 불가피한 시간임을 높은 안목의 제시로부터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며, 이 저술들에 소개되는 탁월한 생명의 질서와 체계에 대한 이해와 준비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더 없이 커다란 삶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류의 공존을 위한 미래가치와 인식혁명을 위한 존귀한 지침서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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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부분에서나 환경부분에서나 위기는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는 것처럼 인류는 이런 것을 반복해왔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막연하게 생각하는 미래의 계획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잘 대비하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드물다. 현실의 상황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위기는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런 불안감을 잘 극복하고 자신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희망적인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위기는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위기를 두려워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란 어려울 것이다. 위기라는 주제로 여러 분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미래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두려움 없는 미래」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이 책은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진단하는 세계적인 21명의 석학사들이 모여 인터뷰 형식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각자가 생각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넓은 범위와 여러 분야로 언급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연과학, 정치, 경제, 문화 등에 대한 대안이나 방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위기 속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이야기, 금융위기와 실업위기로 극복한 이야기 등 미래라는 공통적인 초점으로 각자의 세계관이나 의식, 고정관념, 위기를 대처하는 모습, 시대적 흐름, 문화차이 등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위기는 항상 찾아오고 존재한다. 그런 위기를 어떻게 잘 극복해야 하는지,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기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삼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이야기는 위기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이었고 위기가 있기에 좀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온다는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게세코 폰 뤼프케》는 세계를 일주하면서 각 나라의 문화나 생활방식, 종교의식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미래정치학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미래를 넓고 멀리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계의 리더들이 제시하고 있는 미래를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고 많은 부분을 접할 수 있었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고 경제서적이었기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현실적이며 그들이 바라보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이야기는 무시와 포기로 외면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키워야 하고 그 해결책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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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위기의 반복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인류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전망하며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미래에 미리 대비해 왔던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한 전세계의 고통과 불행은 또 다시 인류에게 위기감을 고조시켰고 이어 느닷없는 기후 재앙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까지 앗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어느때보다 지구에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이란 부정적인 시각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그동안 그 어떤 재앙과 고통도 반드시 극복했고 그 때마다 위기를 기회의 발판삼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중요한 것은 위기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더욱이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나 강도는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예측이 불허하다. 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범죄다. 또한 미래는 위기로부터 오는 것이다. 위기는 끝이 아니다. 두려움 없는 미래는 노벨상 수상자들과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에 대해 객관적인 견해를 밝히며 더불어 이같은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과 발상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북경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에서 허리케인이 분다는 나비효과는 미세한 변화가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카오스 현상에 대한 비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야말로 나비효과가 극명하게 나타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하다. 미래를 정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 정통한 이 시대의 진정한 석학들이 말하는 위기에 미리 대응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지, 점차적으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늘어나는 위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일지 이 책을 읽는다면 명확한 해답을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할 책이란 생각을 가지게 한 것 같다.
기후 변화와 기아위기, 금융위기와 식량위기 등 현재 인류에게는 앞다투어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들이 많지만 책에서는 무엇보다 뜨거워진 행성위에서 잘 살아가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위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속에는 반드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요소들이 감추어져 있고 이제 우리는 위기를 겪으며 교훈을 얻는 데서 그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들이 바로 미래를 향해 새로운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가장 시기적절한 순간이란 사실을 책을 통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기존에 성립된 틀에 박힌 세계관과 가치관은 지금의 위기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급격한 변화로 시작된 위기는 계속해서 위중한 상황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계층간의 불균형과 경기침체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져 위기는 이제 막 시작한 것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생태계 파괴를 포함한 지구라는 행성의 위기,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민주적인 사고와 관계의 문제점 등 스물 한 명의 전문가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부터 현재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한 가지 공통된 주제는 세계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개인이나 공동체, 사회 할 것없이 이제는 모두가 미래란 개념에 대해 새로운 정의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고 더불어 어두운 현실은 어두운 낙관주의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위기안에는 변화란 가능성과 커다란 잠재력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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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근까지 산업화된 성장시스템의 시대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천연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있으며 인간의 이기주의때문에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으며 쌓여만 가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를 지탱해주는 지구시스템은 점점 파괴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즉, 생태계가 지구는 물론이고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할 정도로 파괴되고 있다는 위기감 등 모두들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 확실하게 보이는 면이 적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없는 미래'란 제목에 우선 끌렸었다.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모든것에서 불확실성이 느껴지기 때문일것이다.
이 책은 내노라하는 세계의 석학들과의 가상적인 대담을 통해 우리고 모르고 있는 미지의 미래에 대해 여러분야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생물학자이며 철학자인 안드레아스 베버는 창조적 진화의 메커니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창조적 생태학에서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삶의 욕구로 가득차 있는 감정에 대해서 설파한다. 과거 인간 이외의 생물은 의식 없는 존재, 주어진 환경이나 유전자에게 굴복당하는 삶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교감까지도 가능하게 보고 있는 그의 생각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한 부분이라 더욱 참신하게 다가 온다.
의식연구가이자 신비학자인 짐 마리온의 '통합을 위한 의식 대혁명'에서는 인간인 우리가 물질적인 성장만으로 살수 없으며 내면적인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역시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사회에 참여하는 행위로 승화시켜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문화연구가이자 과학저술가인 마르코 비숍은 앞으로 다가오게될 감성적인 논리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모두가 독립된 존재로서 치열한 생존경쟁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 낡은 삶의 방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결단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양자물리학자이자 시민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에코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들고 나왔다. 우리의 현시스템인 정치, 문화, 경제라는 세가지 줄기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에코 페미니즘'운동은 만물의 생명성에 대한 자각에 근거한 전체론적이고 유기체적인 세계관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1970년대 말 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을 아우르는 함께사는방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참으로 먼 여행을 다녀온듯하다. 책의 내용이 방대했고 또 책에 쓰여진 어떤 주장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으며 또 모든 학자들의 의견에 모두 동조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미래에 대한 그림들이 그려지는 부분도 있었던 독서의 시간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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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독일의 방송프로 기획자 게세코 폰 뤼프케가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방대한 저작인 이 책 '두려움 없는 미래'는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진단하는 21명의 세계의 석학이 참여한 패러다임시프라할 수 있는 책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포함된 자연과학자, 인문학자, 철학자, 시민운동가인 이들 석학은 “우리가 이제껏 따로따로 생각해 온 위기들이 역사적으로 누적돼 수년 또는 수십 년 이내에는 어떻게 조정할 방법이 없는 어마어마한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전자변형식품(GMO) 문제, 에코 패미니즘, 뉴 미디어, 새로운 화폐제도와 같은 뉴 패러다임의 금융제도 등 여러분야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중요한것으로 인식과 실천 문제를 결론적으로 들고 있다. 즉 세계에 대해 알고 느끼는 일을 새로이 정비하고 전달하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새로운 사유모델을 넓은 지역에서 시험해 보는 일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며 경제적 전환이나 정치적 전환도 시급한 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경제, 기후, 생태위기와 문화적 위기는 앞으로 수 년내에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시화될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근본적인 문화적 변동과정에서 기존의 구조들은 위태로운 상황이 될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학(futurology)이란 과거 또는 현 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꼭 이름처럼 거창한 학문은 아닌것 같다. 갑자기 변하는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그 결과가 미래로 자연스럽게 반영된다고 생각된다. 비록 새로운것들이 생겨나고 그 새로운 것들이 지식과 결합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학이 다른 학문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미래사회를 연구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누구도 실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학이라는 학문은 존재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미래학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은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현대인 사이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미래학은 현실도피의 무책임한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며, 일부에서는 그 같은 비판이 무리가 아닐 정도로 허망한 희망적 몽상, 또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이 책에서 제시된 사유방식들은 인간의 행복한 번영을 유지하는데 꼭 생각해보아야 할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런 변화만이 여전히 살아볼 만 하고 우리 이후의 세대들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로 지구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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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두려움 없는 미래>를 사달라는 문자가 왔다. ‘우리가 벌써 미래가 두려울 나이인 건가’ 살짝 멜랑꼴리해진 마음으로 주문한 책을 받아 보니, 이거 쫌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우리가 이젠 지구까지 걱정할 나이인 건가’ 책을 들추어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위기가 기회”라는 다소 진부한 레토릭을 통해 엉망진창 이 세계의 희망을 열심히 설파하는 씩씩한 서문을 읽다보니, 오히려 그 ‘기회’를 놓치면 ‘위기’는 정말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절박함이 느껴져서 쉽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경제적 양극화와 금융위기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성, 지구 온난화, 전쟁과 기아…… 무엇보다도 ‘돈이 최고’라는 Dream 때문에 외려 피폐해진 우리 삶의 공허함 등을 지적하는 이 책의 문제의식은 사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렇게 나처럼 생각하는 복지부동형 인간들을 위해 여기 세계적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듯 이 책은 말한다. 바로 그러한 산적한 문제들 앞에서 ‘죽은 척’하고 외면하는 당신이 바로 그 위기의 정점에 있다고.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의 생각과 행동이 바뀔 때라야 그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변화는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우를 일으키듯이 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왜 이 책이냐’는 내 질문에 ‘책에 나오는 지혜롭고 용감한 사람들한테 기운 좀 받아보려고’라던 친구의 답이 그 이유랄까. 서문에서 어빈 라즐로는 말한다. 힘을 지닌 권력자들은 현 체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변화를 갈망하지만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싸워야만 하는 개개인은 힘이 없기에, ‘시민사회’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스코틀랜드 핀드혼,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등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 시민 공동체의 날갯짓 이야기를 읽다보니 정말 좀 기운이 나는 듯하다. 이런 게 바로 후폭풍(^^)인가. 생태농업, 독립미디어, 대체에너지, 대안화폐 등 살펴볼 거리들이 많다.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은 물론, 특히 많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아이디어와 활력을 얻었으면 싶은 마음에 서평을 올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