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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늘 본능을 자극하고 충동을 부채질 한다. 추악함을 가진 본능들을 들춰내기에 그의 소설은 불편할 때가 많다. 일반적인 도덕관념에서 벗어난 마약, 섹스, SM, 폭력같은 장면 묘사의 적나라 함은 그 불편함을 부채질 하곤 한다. 문제는 그 불편함이 작품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사회적 문제들을 부각시키는데 이런 쾌락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뭔가 명확하지 않고 깊고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리마치 고조>의 이야기도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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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연예인 기획사를 운영하는 소리구치는 집 근처 편의점에 들렸다가 21살 아가씨 트럭을 모는 준코를 만나고 음악테이프를 전해주다가 만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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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깨달았을 뿐, 그것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 본문에서
*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난 후에는 그 목표를 향해 한걸음 두걸음 백걸음 천걸음을 걸어 그 목표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출발선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그건 출발이다. 출발선에 서고 나면 길고 긴 노력의 레이스가 기다린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하고 마는지.
서점에 갔더니 무라카미 류의 책이 신간 코너에서 보인다. <스트레인지 데이스> 음. 이건 전에 <낯선 나날들>로 나왔던 그 책이다. 락밴드의 이름들과 그들의 노래제목들로 이루어진 목차와 처음 두어 페이지를 보니 그 때 읽었던 내용이 대충 머릿속을 훑는다. 이 책은 거품경제 시절 우울함과 함께 찾아 온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겨우 찾은 중년 남자와 그 남자 앞에 나타난 트럭을 몰며 롤플레이를 하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준코에 관한 이야기다. 내용도 이야기도 그냥 그렇고 와 닿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두 개 가슴에 푹 와닿는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그 문장을 읽기 위해 그 책 하나를 다 읽은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이 책을 읽던 그 시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해나가야 할 많은 노력과 시간과 넘어야할 장애물들 앞에서 놀라 주춤대고 있었던 때였다. 아마 그래서 이 문장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어떤 것은 이루고 어떤 것은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난 지금에 보니 이 책이 나왔던 시대와 지금이 많이 변해버렸듯 또 나도 많이 변해 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 난 그 시절 책을 읽기 보단 나를 읽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류의 책을 훑기시작한 것은 대학때부터였다. 안정과 모험과 자유와 방황과 방종 속에서 안절부절 하던 이샙대 초반의 내게 류의 책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리고 못할 것 같은 낯선 것들 그러니까 SM이나 마약, 자기파괴와 폭력, 자립과 연애, 초호화 생활과 극빈곤의 생활, 청춘의 방황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했다. 이제야 새로 떠오르는 일본 작가들에 밀려 뒷방 신세?가 되어가는 듯한 류. 아마 내 청춘과 내 방황과 내 고민과 방탕의 한 페이지와 함께 기억될 작가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
요즘은 이렇게 내가 예전에 읽었던 일본 작가들의 책들이 잊을만하면 다시 출간되곤 한다. 그러니 제목만 보지 말고 목차까지 확인해야 할 때가 많다. 그들의 신간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20대였던 내게 더 와 닿고 열광했던 책들이 지금의 20대인 새로운 독자들?에겐 다시 어떻게 다가갈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 다락방서 허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