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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면에 나온 그림을 보고 호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기에 나오는 연도는 1992년이다. 그때를 살아왔지만 이 소설에 나온 것과는 정말 다르다.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기는 하다. 어쨌든 여기에는 초능력자가 나오고 그 힘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능력자(관성자)가 나온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 나오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딘가에 침입하면 이것을 해결해주는 회사가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인 것 같다. 사장은 글렌 런사이터다.(사장인지 대표인지 이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운영자라는 말이 있구나) 솔직히 말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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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빅은 무슨 뜻일까. 책 챕터마다 유빅에 관한 짧은 홍보글이 씌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빅이 뭔지 몰랐다. 저 표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나서야, 표지가 그냥 그려놓은 해골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에겐 과거이지만 씌여진 시점에서는 미래사회인 시대. 죽은 자는 냉동시켜 뇌를 활성화하여 대화를 할 수 있는 죽은것도 산것도 아닌 반생인의 삶을 산다. (물론 뇌를 다치지 않고 사망했을 경우이다) 그것은 어떤 느낌인걸까. 본디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필립이지만 그는 이번만큼은 어떤 느낌인지 잘 알려준다.
일찍 죽은 부인과 회사일을 상의하는 런사이터는 부인의 뇌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지어 갑자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방해를 하기까지 한다. 열 다섯의 이른 나이에 죽은 조리라는 아이가 심심하다고 남의 얘기에 끼어드는 것. 런사이터는 초능력자들에 맞서는 반능력자(초능력자의 능력을 무효화하는 능력)을 고용하여 사업을 하는 사업가인데, 어느날 의뢰를 받고 모든 반능력자를 모아 달에 가게 된다. 거기서 폭발 사고를 당하고 런사이터는 죽음을 맞이한다. 같이갔던 반능력자들은 런사이터의 시신을 싣고 지구에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은 각각 이상한 일을 맞이하게 된다. 무언가 자꾸 과거로 회귀되기 시작한것이다. 그들의 주변은 자꾸 자꾸 과거로 돌아감과 동시에 하나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딱 내 입맛에 맞았기 때문에 한호흡에 다 읽어 내렸다. 인간의 상상력이야말로 얼마나 대단한것인지.... 이러한 창의적인 상상력을 만나게되면 엄청난 희열을 느끼게 된다. 뇌를 살려두는 것은 만화인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에도 나온다. 유빅에서는 대화를 한다고 하면,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에서는 뇌가 본것을 무성의 상태로 스캔하여 영화처럼 재생할 수 있다. 비밀에서는 뇌가 기억하는 시각적인 것을 보면서 살해당한 사람의 범인을 찾는 것이고, 이 유빅은 뇌와 대화를 하는 형식이되 좀더 평소에 대화하듯 자연스럽다. 런사이터처럼 회사일을 의논하거나 그리워하여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자산가에겐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줄 것인지 되물을 기회가 될것이고, 어쨌거나 죽은 자도 그닥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은 기분은 아닐듯하다. 혹은, 본인이 죽었다고 깨닫는 순간 내가 왜 죽었어!!라며 원망만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죽은줄도 모르고 헛된 욕망만 나열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쩄거나 결론까지 다 쓸수 없어서 중간에 애매하게 줄거리 설명은 했지만 이 작품은 생각할 것이 많다. 우리는 누구나 사후 세계에 관심이있고, 그것은 주로 선과 악으로 나뉘며 혹은 환생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나는 죽으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소멸하고 싶다. 환생이나 선과 악은 슬프게도 상상력이 정말로 풍부한 인간들의 바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그래도 그러한 바램이 우리의 삶을 정돈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삶과 죽음은 한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유빅은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이상한 현상을 막아주는 제품이다. 조 칩은 유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게 되는데, 런사이터의 도움을 받으며 구하러 다닌다. 필립이 보는 미래는 암울하고, 그는 권선징악이나 훈훈한 마무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팍팍한 삶을 대변하듯,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불친절한 설명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점철되어있다. 그중 이 유빅은 한번에 잘 읽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닥터 블러드머니가 하도 읽히지 않아서 이 책을 중간에 바꿔서 먼저 읽었다. 화성의 타임슬립은 읽고 난 후 살짝 우울해져서 잠시 필립의 책을 피해 살았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 유빅이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라도, 우울하지는 않았으므로 다행이다. 죽음의 미로와 유빅이 정말 매끈하게 읽힌 책이었는데, 이 두작품은 영화화 되지는 않았더라도 상당히 이와 유사한 플롯의 영화들을 봤으므로 시나리오 작가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필립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죽은 자에게는 죽은 자들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은 상태에서도 치열한 싸움을 한다. 런사이터의 부인이 조리에게 점령을 당했듯이, 뇌를 보관하는 어떠한 곳에서도 이러한 죽은자들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평온하게 죽을 수 없는 반생인의 삶. 주변에 폐끼치지 않고 한번에 탁 죽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바램이 역시 옳구나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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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부터 영화든 책이든 SF장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유빅은 표지가 너무나도 독특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필립 K. 딕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였다. 그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리콜>, <블레이드 러너>는 모두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원작자는 모르고 영화만 보고 좋아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다란 생각이 든다. 사실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배우 중심으로 봤기 때문에 -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톰 크루즈, 토탈리콜은 아놀드 슈워제네거, 블레이드 러너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이었다 - 원작이 책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찾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여간, 지금에 와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SF영화의 원작자란 걸 알게 되니 이것도 인연인듯 싶다. 유빅은 1960년대 중반에 씌어진 SF 소설로 배경은 1990년대 초반이다. 지금이 벌써 2010년이니 책속의 배경이 되는 년도와는 거의 20년차이가 난다. 물론 책이 씌어진 1960년대에서는 30년 후의 미래이지만 현재는 20년전의 과거에 대한 상상이라 생각하니 그 갭에서 웃음이 먼저 난다. 1960년대에 상상하던 미래는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실상 1990년대를 지나 2010년인 현재에도 그런 기술은 안타깝게도 없다. 현대 사회의 과학기술에서는 유빅에 나오듯 사람을 냉동 보관할 수 있는 기술도 없을뿐 더러, 죽은 것도 아니요 산 것도 아닌 사람 즉 반생인(半生人)이란 개념도 없다. 외과적 수술이나 생명 연장 장치, 혹은 장기 이식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죽음은 현대 사회에 있어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빅에서도 생명 연장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죽음 후의 세계는 산 사람들에게는 수수께끼와 마찬가지인 듯 하다. 프리콕(텔레파시 능력자)과 일반인들이 공존하는 사회이며, 프리콕들의 능력을 상쇄시켜주는 관성자들도 함께 공존하는 소설 속의 세상. 어느 날 기관의 감시를 받던 능력자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런사어터는 그들을 찾기 위해 반(反)텔레파시 요원을 프리콕들이 숨어 있다고 판단되는 달에 급파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생한 의문의 폭발 사건 이후 살아 남은 자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폭발로 런사이터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살아 남은 자들인 반텔레파시 요원들은 지구로 돌아옴과 동시에 세상이 쇠퇴해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간다. 아니 거꾸로 돌아가는 건 그들 자체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자꾸만 빨리 돌아가 어느덧 1930년대까지 돌아가버리는데.... 겨우 살아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닥쳐온 시련은 너무도 컸다. 요원들은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왜 시간이 거꾸로 흐르게 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유일하게 폭파 사고로 죽음을 당했던 런사이터의 메세지가 조 칩에게 흘러 들어 온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죽은 자의 메세지? 그런 설정이라면 기껏해야 호러 소설쯤이겠지. 역시 아니었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자가 런사이터였고, 나머지 요원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그들은 반생인이 되어 냉동된 상태로 죽은 자들의 시간을 살아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반생인들 가운데도 특출한 능력과 재력이 있는 조리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남은 생명력을 갉아 먹고 있었던 것. 런사이터는 유빅이란 물질을 반생인들의 세상에 투입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하려고 하지만 조리는 점점더 과거로 과거로 회귀시켜 버린다. 유빅을 발견함과 동시에 혹은 발견 직전에 또다시 시간을 돌려 유빅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뒤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들의 사회도 어쩌면 산 자들의 사회와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천국과 지옥, 연옥등으로 나뉜 세상이 아니라 현재 세상과 맞닿아 있지만 결코 겹쳐지지 않는 세상. 유빅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세상에,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의 세상에 직접 관여는 못하지만, 독립된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그들은 서로 간섭하고 관여할 수 있다. 죽음 후 평온을 바랐지만, 죽음조차도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더욱더 두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생인들의 남은 생명의 찌꺼기를 먹어 치우는 조리. 그는 죽은 자들의 세상에 군림하면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닥쳐오는 것. 하지만 예로부터 인간은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다. 먼 옛날 진시황은 불로불사를 꿈꿨고, 일본의 이야기에서는 인어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고 한다. 인간이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의 집착과 욕망은 끝을 모르는 것 같다. 이미 죽은 육체인데도 나머지 반생인을 희생시켜 영원한 삶을 꿈꾸는 조리를 보면서 인간은 삶에 대한 집착을 영원히 놓을 수 없는 존재인가 하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그리고 죽음 후의 세상에 대한 수수께끼와 궁금증, 그리고 삶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는 필립 K. 딕의 유빅은 벌써 40여년전에 씌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비록 연대가 현재보다 20년전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혀 과거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세 작품은 하나같이 어둡고 암울한 미래를 다루고 있다. 유빅은 그에 비해서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밝은 느낌을 보이지만, 산 자보다 죽은 자들의 세상, 죽음 뒤에 기다리는 세상은 여전히 암울하다. 죽음 뒤 평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남은 생명의 찌끄러기마저도 강탈당하는 기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생각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죽은 뒤에도 권력과 재화에 따라 남은 생명마저도 빼앗길 수 밖에 없다면,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빼앗기게만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제발 이런 미래는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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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리학시간에 배운 인류가 원하는 두 가지 궁극적 약물은 만병통치약과 부작용 없는 마약이다. 인간은 통제를 원하는 존재이며 그 통제의 소망의 끝에는 자신의 생명과 감각에 대한 통제가 있다. 생명을 연장하며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지 않고 자기 손으로 쾌락을 유도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고작 이 정도의 수준이다. 1966년 출판된 이 책은 필 딕의 개인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히피와 마약의 시대에 씌여진 것이다. 마약이 통제하는 감각의 세계에서 누구나 행복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인간 조건 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한 시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