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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인간이 들어가있는 역사와 인간이 역사서술에서 빠져버린 역사가 그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역사는 역사의 발전이니, 구조니, 제도니하는 학술적이고 이론적인것 즉, 인간이 빠져버린 역사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통사로서의 역사만을 배운것 이라고한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가아닌 이야기로서의역사, 우리선조들의 생활사로서의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었다고한다. 그래서 한국사전체를 생활사로 조망하는 작업을하였고, 그결과 ①인간과 자연,②가족과 혼인,③사회와 신분,④국가와 제도, 그리고⑤외교와 이민족의 다섯가지로 분류하여 자료를 모았고, 우선 사회와 신분까지를 세권의 책으로 내었다고 한다. 세권의 책중 이책은 그 마지막 세번째로 ‘사회와 신분’에 대하여 쓴 책이다. ‘신분세계와 유토피아’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우리네 역사에 나타난 신분제도와, 전통시대 조상들이 꿈꾸었던 세상, 그리고 당시의 풍속과 종교를 다루고 있다. 전통시대의 신분제도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양반전]이 떠오른다. 돈 많은 상민이 양반이 되어보겠다고 양반을 사지만, 양반이 지켜야 하는 예절을 듣고서 도둑놈과 다름없는 생활이라고 하면서 다시는 양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하는, 그 예절이 생각나는 것이다. 예절이 귀족사회의 하나의 징표로 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유럽에서 돈을 많이 번 부르주아지들이 귀족을 흉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라고 한다. 그러자 신분에 위협을 느낀 귀족들은 이들을 떼어놓기 위해 더욱더 엄격한 예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즉, 매너란 배타적으로 신분을 지키기 위한 방편의 일종인 셈이다. 이렇게 전통사회에서 명분은 신분질서를 의미했고, 신분은 사회적 불평등을 전제로 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전통사회에 나타나는 신분은 항상 사농공상의 기본 위에서 이루어진다. 양반은 지배층으로 노동을 하지 않으며, 아니 경멸하였으며, 피지배층 가운데서는 먹을 것을 제공하는 농이 기본이었고 공과 상은 그 아래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지배층인 사의 신분일지라도 서얼은 엄격하게 차별된다. 서얼은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로서, 정처에게서 낳은 자식을 적자라 하는 것과 구별하기 위해, 양인 첩에게서 낳은 자식을 서자, 천인 첩에게서 낳은 자식을 얼자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서얼차별은 자신은 물론 자자손손 대대로 벼슬길을 막았다고 한다. 이것은 고려시대나 중국에서도 서자를 차별하는 관행은 있었지만 자손들까지 차별하지는 않은 것에 비해 조선시대만의 특징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들과 달리 전통시대에 또 하나의 계층이 있으니 바로 천민이다. 기생은 천한신분에 속하는 여자로 노래와 춤을익혀 잔치나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던일을 담당했으며, 창기나 기녀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전통시대 기생은 기본적으로 모두 관청소속인 관기로 나라의 재산이었다. 그러던것이 조선후기로 오면서 기생의 역할에따라 본래의 기생과 몰래 몸을파는 기생, 그리고 공공연한 매춘부인 유녀로 갈라졌다고 한다. 유녀에대한 기록이 태종실록에도 언급되는것을 보면 매춘이 그시절에도 있었음을 알수가 있다고 한다. 또한 백정은 가장 천하면서도 저주받아야할 대상이었다고 한다. 백정은 노비와 함께 천민을 대표하며, 고려시대에는 일반농민을 뜻하였으나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천민을 가리키게 되었다고한다. 백정의 기원은 몽골족이 국내에 들어와서도 정착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활방식대로 떠돌아다니면서 생활한데서 비롯되었고, 우리사회의 이방인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노비는 조선시대 양반의 수족이자 신분의 상징이었다고한다. 노는 남자종을, 비는 여자종을 가리키며 노비는 주인의 재물로서 가축과 동일하게 취급되어 소유, 매매, 상속의 대상물이었다고한다. 신분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나타날수 밖에 없으며, 그 방식은 현재나 별반 다를바 없다. 전통시대에는 유언비어를 와언, 요언, 부언이라고 불렀다. 유언비어는 공포에 대한 것, 그리고 전쟁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현대와 마찬가지로 유언비어의 발본색원은 불가능하였고, 소문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은 위에서 억누룰수록 오히려 확산을 부추기지만, 그냥 놔두면 제풀에 사라지는 질병이기도 했다. 이러한 와언은 공식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인 탈춤으로 표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탈춤은 현실폭로와 풍자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익명성을 이용하여 사회비판 내지는 양반모욕까지 가능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국적으로 퍼졌으나,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탈놀이 대신 판소리가 그 기능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투서와 같은 익명서는 익명을 이용하여 남을 모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따라서 무시되는 것이 관례이었으나, 언로가 막혔던 시절에는 사회비판서로서 지금의 대자보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우리역사를 보면 좀도둑에서 큰 도적까지 많은 도둑들이 명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어지럽거나 천재지변으로 먹고 살기 어려울 때 이들은 더욱 횡행하였으며, 도둑의 한자어는 도적으로, 도는 물건을 몰래 훔치는 절도이고, 적은 협박하고 공갈해서 빼앗는 강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들 도둑들은 때에 따라서는 의적으로 불렸으며, 실학자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서북지방의 큰도적, 즉 의적으로 전통시대 우리의 풍속중 눈길을 끄는 것은 사치풍조이다. 사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문제가 되어왔다. 신라때는 사치금지령이 내려진적도 있으며, 이는 백제,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전통시대 사치는 혼인과 장례, 무덤사치가 특히 그 도가 심했으며, 혼인은 남남이던 두집안이 자녀들을 매개로 연결되어 상대방의 가세에 눌리지 않으려고 과시하는 경향에서, 장례는 자기집의 위세를 보여주는 계기로 삼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유래되어 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동양사회는 전통적으로 다종교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개인도 다종교적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장례를 치르고 난후 유교식인 삼우제를 지내고 불교식인 49재를 지내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고 한다. 전통시대에도 우리들은, 사회생활은 유가에, 사고를 할 때에는 불가에, 그리고 곤란한 지경에 처하면 도가나 무속에서 해결책을 찾았다고 한다. 샤머니즘의 본고장은 북방인 시베리아 일대이지만, 지금은 무당과 박수가 존재하는 남한에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들은 굿을 하며 신과 교통하는 종교인이었으나 불교, 유교등 고등종교인 외래종교가 들어오면서 천시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이들은 비정상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흔히 혹세무민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를 배워오면서 통사중심으로 배워왔다. 그러기에 외워야 할 것은 많았지만 막상 우리네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잘알지 못한다. 왕조가 어떻게 변했고, 지배층들이 어떤생활을 하였는지는 알고 있지만, 이 땅에 태어난 대부분의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것은 배운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책은 이야기 책이다. 어렸을때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듣던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를 담은책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그렇다고 허구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역사책들과 실록에서 찾아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네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생활사로써 바라보는 역사, 이땅에 태어나서, 이땅의 방식대로 살아갈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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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세계 양반의 예법이 조선후기에 더욱 까다로워진 건 배타적으로 신분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한다. 신분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릇사용도 엄격한 구분도 하고, 사치하면 화를 입는다고 검소하게 사는 양반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양반 전유물을 사용하는 상인이나 하인, 천민도 있다고 한다. 서얼차별 (양인 첩에서 낳은 자식은 서자, 천인 첩에서 낳은 자식은 얼자, ‘서얼금고법’으로 한정된 잡과의 말단 관직에 임용되고 19세기말 갑오경장으로 노비혁파와 서얼차별이 사라진다) 민심은 천심이라 두려워하면서도 수탈의 대상이면서 부역의 대상인 백성, 해어화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으로 기생을 상징하는 말) 백정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던 이민족인 몽골 족과 오랑캐의 후손)과 광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쇄미록: 서울에서 전라도 여행 중 임진왜란을 만나 피란하면서 쓴 일기 (1591-1601) 미천왕 을불의 이야기, 관리와 도적으로부터 돈을 보호하기 위해 땅 속에 묻고 물을 부어 얼려버렸다는 일화를 소개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의 글, 동래 관청노비인건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중국계 귀화인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가면을 쓴 익명성을 통해 쉽게 사회비판을 할 수 있었던 탈춤이 전국적으로 퍼져있지만 충청도와 전라도엔 탈놀이가 없고 대신 판소리가 있었다. 금지가요와 민중가요의 원조인 서동요와 선조 때의 당쟁 비판 노래, 대학가 대자보의 전신인 화살을 쏘거나 방을 붙이는 익명의 투서,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이상향, 신천지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바램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산속으로 혹은 바다너머 섬으로 탈출을 한다. 물론 찾는데 헛수고를 하지만 현실에 대한 탈출구 역할을 하기에 그 믿음은 버리지 않았다. 절기행사가 제일 관심이 많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부럼 깨물기, 동지의 팥죽, 한식 성묘, 추석 차례 외에도 여러 제사와 놀이, 불교, 도교, 고대로부터 내려온 풍속 등 다양하다. 대보름의 다리 밟기 행사날, 정조 때는 통금도 해제했다. 중국풍속인 입춘에 붙이는 입춘대길, 신라시대의 탑돌이, 3월3일은 화전을 먹고 들판에서 노는 답청을 하며 9월9일에는 산봉우리에 오르는 등고를 했다. 4월 초파일의 연등행사, 5월 단오인 수릿날 행사와 단오부채, 6월15일 유두엔 머리를 풀어 물에 씻음으로 불길한 것을 털어버린다 생각했고, 7월 보름인 중원, 백중은 불교에서 재를 드리는 큰 명절이고, 농사일이 마무리되어 호미씻이를 했다. 8월 보름 추석에는 명절 제사를 지내고 9월9일은 양기가 가장 겹친다는 중양절로 가족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시 지으며 즐겁게 보냈다. 동짓달엔 새해 달력을 선물로 준다. 경신일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풍습은 도교에서 유래했고, 연말연시에는 대포를 쏘거나 불화살을 쏘고 징이나 북을 울려 귀신을 쫓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엔 먹을 것도 없고 수탈이 워낙 심해서 살기가 힘들었을 테니 그들이 이상형을 찾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절기 소개가 제일 좋았고 불교탄압으로 사라진 불교문화가 안타까웠다. 정리하면서 내 생각보다는 내용 소개를 더 많이 했다. 그만큼 알리고픈 내용들이 많다. 고려 풍속에 첫눈을 봉하여 서로 보내는데, 받은 사람은 반드시 술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만약 미리 알고 심부름 온 사람을 잡으면, 보낸 사람이 도리어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렇게 서로 장난을 쳤다. 세종실록 즉위년 (1418) 10월27일 채수가 지은 ‘설공찬전’이 1997년에 처음 세상에 알려져 ‘홍길동전’보다 100여 년이 앞선 한글소설로 확인된 적이 있다. 중종6년 1511 9월에 불온한 서적으로 낙인 찍혀 소각된 뒤로부터 5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였다. 그 내용이 불교의 화복 윤회를 다루고 있어 요망스럽고, 부정한 도로 올바른 도를 어지렵혀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비판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