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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조명받아야 할 이들에 관한 경외로운 답사기
"가장 조명받아야 할 이들에 관한 경외로운 답사기" 내용보기
나는 몸으로 부딪히는 이들을 동경한다. 편하디 편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컴퓨터 앞에 가만 앉아 '노동'이라는 걸 하고 있는 나는 그들을 동경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의 생활에서 특별히 벗어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럴 자신은 없다. 내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건 오래 전에 깨달은 사실이다. 슬픈 사실. 어줍잖은 말로만 어려운 이들의 삶에 대해, 노동자에 대해 얘기하는 나는 사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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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으로 부딪히는 이들을 동경한다. 편하디 편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컴퓨터 앞에 가만 앉아 '노동'이라는 걸 하고 있는 나는 그들을 동경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의 생활에서 특별히 벗어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럴 자신은 없다. 내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건 오래 전에 깨달은 사실이다. 슬픈 사실. 어줍잖은 말로만 어려운 이들의 삶에 대해, 노동자에 대해 얘기하는 나는 사실 허세투성이다. 서울역의 노숙인들, 얼큰하게 취한 공사판 인부들을 지나칠 때면 나도 모르게 경계한다. 나는 겨우 이런 존재이고, 공장으로 들어가자는 제안들은 항상 무서웠다. 내가 노동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사실 내가 육체노동자보다 고임금을 받는다는 것 만큼이나 민망한 이야기다. 그나마 나는 '부끄러움'이라도 느끼지 않는가 하는 생각으로 내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고, 비록 허세일지라도 내 시선을 돌리지는 말자는 마지막 원칙을 지키려 할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와 같은 분들을 동경하며, 경의를 표한다.

 

그렇다. 이런게 진짜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하나 하나의 삶을 진심으로 대면한다는 것은 분명 이런 모습이리라 생각한다. 이미 어둑해진 시간에 산 속을 거닐고, 저 멀리 어렴풋한 불빛 하나를 향해 다가가는 마음. 폐가마냥 길가에 으스러진 집 대문을 굳이 두들겨 말을 건네는 마음. 세상의 가장자리가 이 책에선 세상의 중심이 된다. 가장 조명받지 못한 이들이 조명 받는다. 그리고 그 조명 아래서 깡소주 한 잔 나누며 사연을 듣는다. 가장 홀대받은 이들의 사연이 흘러나온다. 이들의 삶은 곧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시선을 주지 않았던, 사람이 살기엔 너무 끔찍하다 여겼던 그런 곳에도 삶은 있었고 사회는(우리는!) 그들을 홀대했다.

 

강가나 산 능선을 따라갈 때 대체로 오후 세 시를 넘길 무렵이면 여지없이 조급증이 일었다. 여름, 가을에는 정도가 덜 했으나 겨울철에는 누런 빛깔로 볕이 꺾이는 때가 그 시간대여서 초조함이 몰려오곤 했다. 더구나 잠자리를 마땅히 정하지 못한 채 길마저 아득할 때면, 시간이 갈수록 속절없이 두려움으로 바뀔 때가 많았다. 길을 잃을 때도 있었고,심지어 탈진 직전에 이르렀던 적도 여러 차례나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들어 준 건 외딴 곳의 불빛이었다. 검푸르던 저녁이 찰나의 순간으로 밤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그것은 구원에 다름 아니었고 나는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문을 두드렸던 때가 많았다. 집 안으로 들어서서, 처음 불 가장자리로 미쳤던 온기는 아직도 나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그렇게 문을 두드리다가 본 삶을 하나둘 엮다가, 그이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살림집을 따로 떼 내 정리한 것이다. --- p.13

 

사실 삶이란 쉽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지금도 거리엔 사람이 넘치고, 따라서 삶은 도처에 있다. 하지만 거리의 삶이란 '보여 주고 싶은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기 마련이고, 많이 가졌을 수록 더 그렇기 쉽다. 하지만 살림집이란 그런 포장을 걷어낸다. 명품 가방은 지를 수 있더라도 집은 지를 수 없고, 집은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포지션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또한 집의 '위생상태'나 '공간운영방식'엔 삶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집은 솔직하다. 그래서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사회가 가장 아래쪽에 배치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창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작가는 조선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사회는 情으로 맺어진 따뜻한 공동체였을 것'이란 우리의 상식을 부정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벼농사를 바탕으로 삼은 전통사회에서는 공동체 내의 협업이 중시되기 때문에 협동의 미덕이 강조되지만, 동시에 노동력의 유지를 위해 이동과 이주가 엄격히 제한되었다. 공동체의 안정을 뒤흔들 수 있는 뜨내기들은 배척받았고, 우리의 선조들은 그들에게 차가웠다. 공동체에 정착하지 못하고 산 속이나 길가에 자리잡은 뜨내기들. 하지만 그들 역시 최초의 기원은 공동체였을 것이었다. 공동체는 잉여인구를 모두 먹여 살릴 수는 없었고, 경작할 땅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계속 공동체에 거둬들일 수는 없었다. 머슴이나 소작농으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도 정해진 법이어서 누군가는 공동체를 떠나야했다. 공동체 내의 머슴들이나, 공동체 밖의 뜨내기들은 조선 후기 그 이전부터 그렇게 전통사회에서 생산되어 왔고, 그 이들의 후손들은 더욱 공동체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 이들은 신작로와 철도의 발달, 산업화로 인한 노동력 수요의 증가로 인해 도시로 몰려들었을 것이고, 도시의 하층민으로 정착했을 확률이 높다.(이농현상 속에서도 이들은 그야말로 가장 먼저 도시로 빨아들여질 존재들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기원을 '전통사회'에서 풀어나가는 이 책의 접근은 설득력을 지닌다.

 

이 책에는 그렇게 농촌마을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의 얘기가 흔하다. '분연' - 솥뚜껑하나만 들고 나와 산 속에서 새 살림을 일구는 것 - 한 이들의 얘기가 이 책의 초반부에 많이 나온다. 바로 이들이 산 속에 자리잡아 지은 집이 '외딴집'이며, 길 가에 지은 집이 '외주물집'이다. 화전을 일구는 산 속의 외딴집들이 무장 공비들의 거점이 되곤하자 정부가 이들을 모아서 집단촌락을 만든 것이 '독가촌'이며, 이들을 통제하고 반공화하기 위해 산 속 구석까지 분교를 세웠다. 또한 분교는 통제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교육의 수단이기도 해서 이들에게 '신분상승'의 희망이 되기도 했다. 도로와 철도의 발달 역시 도시로의 이주를 가능케 함으로써 이들에게 '희망'을 품게 했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궤를 같이했던 산업화는 당연히 도시의 공장으로, 탄광촌으로 이들을 불러모았고, 이들은 희망을 품고 동원되었다. 이런 이들이 탄광촌과 도시에서 머무른 공간이 바로 '여인숙', '막살이집' 따위였다. 이 책의 목차는 그 자체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래쪽 단면을, 그것의 공간적 배경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도시로 모인 이들은 아파트, 주택 등의 주거양식이 등장함에 따라 시민아파트, 문화주택 등으로도 정착을 하게 된다. 그것도 그나마 도시에서 살림이 좀 핀 이들이었을 것이고, 그 중 더 열악한 이들은 오늘날엔 낡고 비좁은 고시원에 기거하고 있거나, 이젠 누구도 살지 않으려는 곳으로 들어갔거나, 뉴타운 공세 속에 이미 서울의 외곽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통제하고, 동원했고, 때로는 희망을 주었으나 결정적으로 이들을 가장 열악한 곳에 배치한 셈이다. 가난한 이들은 전통사회에서나, 도시에서나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공간'에 정착한 것이다. 개중 신분상승을 한 이들도 분명 많겠지만, 전통 사회 이전부터 가난했던 이들은 계속 가난했고 아직도 가난할 확률이 높다. 물론 산업화로 인해 '농촌사회의 안정'을 잃고, 새롭게 가난해 진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들 모두는 '신분상승의 희망'과 '사회의 동원' 속에 도시로 향했으나 푸대접 받았다. 오늘날의 사회 한 축을 세워냈으나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 어떤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지를 본다면 이것이 푸대접인지 아닌지는 명확히 판명될 것이다. 민주주의란 말은 이들 앞에서 결정적으로 허구가 된다.

 

뉴타운 공약이 시장과 국회의원의 당락을 좌우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오늘. 나는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왜 새롭게 공급되는 아파트는 이미 자기 집을 가지고 있을 법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새롭게 세워진 브랜드 아파트들, 그 곳에 입주하지 못한 원주민들은 과연 어디로 떠났을까. 그들의 삶을 지키자는 얘기는 언제쯤 힘을 지닐 수 있을까. 이들은 언제쯤 진지하게 조명받을 수 있을까. 가난한 이들의 살림집은 부숴지되, 세워지진 않는 것일까. 그들은 모두 새로운 집을 구했을까. 

 

나는 '답사'라는 말을 좋아한다. 기껏 며칠 휘돌다 일상으로 복귀하기 마련인 '여행'이라는 말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다. '답사'의 '밟을 답(踏)'자는 꾹꾹 눌러밟는 느낌이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지가 담은 기억과 삶이 꾹꾹 스며드는 느낌. 나는 항상 삶을 만나지 못하고, 풍경과 만나거나 이방인과 스칠 뿐인 '여행'에 머물곤 한다. 그런 내가 두 다리 꼼짝하지 않고, 진중한 답사를 한 느낌이다.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이들을, 사회가 가장 조명해야 할 이들을. 누구도 조명하지 않은, 단지 대지만이 기억하고 있었던 그들의 삶이 비로소 세상으로 나왔다. 아, 경외롭다.

c*****9 2010.04.19.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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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세이가 주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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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가난한 이의 살림집 저 자 : 노익상   사진기를 사고 처음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본 책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었고, 그 다음에는 멋있게 찍은 사진을 모아놓은 사진집이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진과 글이 같이 있는 사진에세이집을 보고 있다.   그 것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남긴다는 것보다는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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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가난한 이의 살림집

저 자 : 노익상

 

사진기를 사고 처음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본 책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었고, 그 다음에는 멋있게 찍은 사진을 모아놓은 사진집이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진과 글이 같이 있는 사진에세이집을 보고 있다.

 

그 것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남긴다는 것보다는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일지도 모른다. 이 책도 그런 사진과 에세이가 같이 들어있다. 그런데 사진보다는 글이 길다. 그리고 글에 담겨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시대적 흐름을 가지고 서술되어 있는 데, 단순히 그들의 삶을 지나가다 우연히 찾아낸 대상을 찍은 게 아니라 본인이 주제의식을 가지고 찾아다니며 30년동안이나 모아둔 자료들이다.

 

첫 주제는 ‘외주물집’이다. 단어도 생소하다. 그 집은 집인데 다른 집들과 어울려 있는 것이 아니라, 큰 길가에 홀로 떨어져 있는 초라한 집이다. 이 책의 첫 부부은 외주물집, 외딴집, 독가촌이다. 모두들 전통적인 쌀을 농사짓는 전통적 정착촌에 끼어들지 못하고, 덩그러니 떨어져서 그 마을로부터 하대를 받아가며 살아갔던 사람들이 살았던 집이다. ‘아, 집도 다같은 집이 아니라,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조선조에는)...... 국가와 전통 촌란의 유기적 카르텔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자유로운 이동과 이주가 얼마나 엄격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는 가를 책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당시를 들여다보는 답답함이 몰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리고 흔들리기 시작한 전통사회를 말하고 신작로가 가지는 영향이 상당했음을 썼다. ...... 비로소 이동의 문제가 절박한 삶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밖에 없는 선택 아닌 선택을 말할 때도 나도 모르게 몸이 뜨거워졌다. 물론 유랑으로 걸식하는 환경에서 대부분 생을 달리 햇지만, 그 가운데에는 광산이나 도회 그리고 갯가나 섬으로 이주하여 극한의 처지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도 있었다.”

 

그가 쓴 이 과정은 각 꼭지마다 딱딱 끊어지는 게 아니라, 시대적 흐름을 가지고, 그리고 그가 보아왔던 가난한 이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 가를 집을 통하여 보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줄거리가 있다. 시대는 변하였고, 그 시대에 집은 어떻게 변하였음을 설명하지만, 거기에는 지금보면 터무니없기는 하였지만,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썻다.

 

여기에 나오는 집들은 나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집들이기도 하고, 내가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우리 주변에 적게나마 남아있는 집들이다. 그렇지만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살아었고, 지나쳤던 집들이 ‘아, 그래서 저 집들이 저렇게 지어졋구나!’하는 깨달음을 받았다.

 

만일 노익상이 자신이 산골짜기를 며칠을 헤매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그 들의 삶을 깊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을 줄까?

분명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d*****u 2010.10.1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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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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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예전 여드름 브레이크란 소제목속에 남산 시민 아파트를 배경으로 쫒고 쫒기는 스토리를 펼친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웃으면서 봤지만 나중 인터넷 기사로 보니 그곳에 사연이 있었다. 재개발되느라 주민들은 거의 쫒겨나듯 이사해야하고 보상비는 겨우 300만원이라고. 가난한 시민들과 매정한 시장논리로 좌지우지되는 정책에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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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예전 여드름 브레이크란 소제목속에 남산 시민 아파트를 배경으로 쫒고 쫒기는 스토리를 펼친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웃으면서 봤지만 나중 인터넷 기사로 보니 그곳에 사연이 있었다. 재개발되느라 주민들은 거의 쫒겨나듯 이사해야하고 보상비는 겨우 300만원이라고. 가난한 시민들과 매정한 시장논리로 좌지우지되는 정책에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책을 보고 또 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시민 아파트가 왜 생겼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갔는지를 알게 되면서

다시 보게된 그곳의 풍경.웃으며 뛰어다니는 출연진들의 배경으로 스쳐지나가는 낡은 문들과 옹색한 구조, 길고 어두운 복도...단지 허물어질 재개발 아파트로만 보이던 그곳에서 살던이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땀내를 느끼게 된 신기함.

 

이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으로 얻게 된 소중한 깊이다.

 

 작가 노익상님에게 경의를 표한다. 가난한 이들. 이땅의 소외받은 이들의 살림살이, 그들의 삶의 정착과 부유를 알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깊은 산, 높은 언덕, 추운 눈 사이를 말그대로 맨몸으로 부딪히며 취재했다. 따뜻한 인간애와 함께 언어적 감수성까지 풍부한 그의 글과 사진이 참으로 귀하다.

외주물집.차부집. 막살이집, 외딴집 등 스쳐지나가거나 TV로만 봤던 옛날 집들..그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사람들의 눈물과 온기가 어렸었는지 기원과 흐름을 차근차근 짚어 얘기해준다.

그렇게밖에 살수 없었던 그들과 그들을 차갑게 내치고 외면한 주류세력.

집을 얘기하는데 오히려 역사와 시대가 가슴절절하게 읽힌다.

나도 어릴적 살았던 문화주택, 그 골목들이 왜 그렇게 좁고 막다른곳이 많았는지, 단지 연탄을 쌓아두기 위한 줄 알았던 지하광이 사실은 방공호라는것...빨간 벽돌의 상징등...

모르고 지났고 당연히 그런 줄 알았던 것들이 숨겨진 의미를 밝히며 마음을 아프게 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던 이쁜 시골 주택들..일명 미관주택들..이젠 예전처럼 무심히 즐기진 못하겠다.

열심히 살아도 가난이 세습되는 시스템...사회문제를 무게있는 목소리로 짚어내는 책이다.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게 되는 재미속에 묵적지근한 울림도  느낄수 있는 .

장인정신으로 만든 보기드문 귀한 책이다.

재테크가 아닌 따뜻한 보금자리로 집을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l*****n 2010.02.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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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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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의 취재와 5년간의 집필 기간을 거쳐 탄생한 책이 [가난한 이의 살림집] 이다. 독자들에겐 2010년쯤 선 보였는데, 나는 이제서야 이렇게 소중한 책을 알게 되어 뒤늦은 감은 많지만  이제라도 '노익상' 이라는 세 글자를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태어나 지금까지 지방에서 쭉~~ 살아오고 있는 나로선 언제쯤인지 정확히 가늠하긴 힘들지만, 아마 국민학교 수학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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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의 취재와 5년간의 집필 기간을 거쳐 탄생한 책이 [가난한 이의 살림집] 이다.

독자들에겐 2010년쯤 선 보였는데, 나는 이제서야 이렇게 소중한 책을 알게 되어 뒤늦은 감은 많지만  이제라도 '노익상' 이라는 세 글자를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태어나 지금까지 지방에서 쭉~~ 살아오고 있는 나로선 언제쯤인지 정확히 가늠하긴 힘들지만, 아마 국민학교 수학여행길쯤으로 기억된다. 그 때 처음으로 대한 민국의 수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가게 된 나와 친구들은 기쁨과 설렘을 넘어 두려움까지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속 이어지는 고속버스의 멀미를 참으면서 생경한 도시 서울로의 여행길은 그야말로 궁금증을 유발하다못해 두려운 존재로까지 자리 잡아가던 찰나, 버스 아저씨의 안내방송으로 서울에 닿아간다는 것을 알고 창밖의 풍광을 본 순간.... 내가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상한 주택, 마치 책에서 봐 온 서양식 이층 양옥에 빨간 지붕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동네는 그야말로 소도시에서 올라온 내 눈엔 이상낙원(!!)쯤으로 다가왔다.

'미관주택'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수학여행 길에서 내가 봤던 고급스러워보이던 주택이 다름아닌 미관주택 임을..... 별천지로 보이고 부자들만 사는 곳으로 보였던 그 주택이 다름아닌 1970년대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졌던 농촌을 풍경으로 하고 있는 계획 주택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씁쓸하고 맘이 무거웠다.

흔히, 주택을 고를 때 알고 있는 방향을 무시하고, 고위급 관리들의 행차시 미관상 보기 좋게 하려고 방향과 터는 무시해서 급속히 만들어지게 된 주택이라고 한다. 그래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집. 또한, 우리나라 지리와 환경에는 다소 맞지 않는 서양식 주택을 본떠서 유리창도 크게 만들고 지붕도 내가 부러워마지않던 뽀족 지붕이 농촌 현실엔 전혀 맞지 않고, 실내도 기능적인 면에선 많이 불편했음을 알고는 졸속 행정의 결과를 또다시 알아버리게 되었다.

 

이렇듯 이 에세이 에는 근대화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중요시 생각하는 집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만들어 준다.

'부'를 쌓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집.

조금이라도 도시와 근접한 거리에서 생활하고자 오늘도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생업에 종사하게 만드는 게 집이다.

안락함에 나를 쉬게 하고, 가족과의 친밀함을 한 층 더 가깝게 만드는 역할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게 집인 것은 아닐까??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집들은 사실 몇몇 사례만 빼면 집이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동네 진입로나 도로변에 바로 붙어 있어 사람이 살 수나 있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남루해 보이는 집, 외주물집.

집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뭣 할 정도로 얼기설기 나돌아 다니는 재료들을 엮어서 만든 집이라 보기에도 부실하고 안전면에서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안을 들여다 보다라도 거주자의 키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만 출입이 가능하고, 방 칸 수도 그저 그 의미나 무늬만으로 나뉘어졌다고 보여진다. 밖에서 보는 이들의 생각을 차치하고서라도 주인은 그 외주물집이라도 변변히 이어가지 못함이 가슴 아프고 쓸쓸할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가난한 환경에서라면 아이들의 교육이나 양육 또한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은 자명해 보이고, 급기야 가족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는 우리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사실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제대로 알려준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삶이 왜 거기까기 오게 되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분히 들여주는 부분에선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힘이 남다름을 배우게 되었다. 

배우지 못해서 혹은 게을러서 그러한 터에 삶을 이어가는 것이 결코 아닌, 시대의 잘못된 개발이 주는 어쩔 수 없음이 많아 보여 답답했다.

 

나또한 아직도 멋진 집을 보거나 넓은 평수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보이지 않은 위화감이 자리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저 애써 난 지향하는 바가 그들과 다르다고 무시해버리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사실은 만만한 감정 추스름이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위안이나 위로가 더 깊고 크게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외주물집 외에도 이 책에선 문학에 대한 낭만을 떠올리게 되는, 간이역, 차부집, 분교 그리고 문화주택 등등 다양한 삶의 터전과 가난하지만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있는 이웃들의 터를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이 이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만 간간이 접할 수 있는 주거 형태지만, 우리 부모들이 살았고 형제 자매들이 살았던 아프고 고달픔이 묻어 있는 추억의 장소가 아닌지 가슴 한 켠이 싸~ 해져 온다.

또한, 서구화의 열망에 쫓기며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도시 개발이 가난한 추억이 있는 그 곳을 밀어버리고 자꾸만 더 멀리, 우리 모습이 아니라고 밀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개된 집들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가진자에 대한 부러움이나 세상을 향한 원망이 아닌 오늘 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겸손하게 받아 들이는 자세의 남다름이  내 가슴을 깨워 주었다.

 

 

m******9 2013.08.05.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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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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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보게 되었을 때는 그저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속에서 떠오르는 집들이나 거리의 사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손을 잡고 뛰어다니던 거리의 집들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금도 화려한 도시의 뒷편에 있는 빌딩숲에 가려진 한 구석으로 들어가면 어디선가에서 나타난 것같은 허름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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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보게 되었을 때는 그저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속에서 떠오르는 집들이나 거리의 사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손을 잡고 뛰어다니던 거리의 집들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금도 화려한 도시의 뒷편에 있는 빌딩숲에 가려진 한 구석으로 들어가면 어디선가에서 나타난 것같은 허름한 주거지에 관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부유한 주거지의 모습 또한 호기심을 갖게 되지만, 지붕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있는데다 볕이 좋은 날에도 회색빛의 색이 가득한 집들도 보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현실이 아닌 책속의 사진이라면 좀더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었다면 그도 거짓이겠다.

 

.. 다큐멘터리 사진가와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을 보고 짐작을 했어야 하는 것일까. 책 속에 실린 사진에서 만나게 되는 이웃들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각각의 모습에 대해 풀어놓은 저자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 않게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만 되는 이야기들이다. 어린 시절 MT를 떠나 낯선 지방의 캄캄한 도로를 걷다가 만나게 되었던 도로변의 집들이 얼마나 반가웠던가. 그런 가벼운 추억만으로 사진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추억속의 장면으로만 기억되는 그러한 집들이 실은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상 그곳에 지어졌어야만 했다는 것 또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처럼 실감나는 때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많은 일들에 대해 눈을 감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 도로변의 외주물집이며, 산골 간이역에 얽힌 이야기들이며, 지금은 각종 예술가들이 대여하여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하는 분교에 관한 당시의 이야기들 또한 읽으면서 과연 그러했구나 하는 끄떡거림이 동반되는 글들이다. 시민아파트와 문화주택에 관한 글 또한 그러한 곳이 있다는 인식의 정도에서 그칠 일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이면을 보는 듯한 깨달음을 주는 글들이었다. 그저 보이는대로 산다면 본인은 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일들에는 뒷면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면서 보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이다. 단순히 사진집이라거나 어려운 이들에 관한 이야기책 정도가 아니고, 사회전반에 걸쳐 우리들이 알면서, 또한 모르면서 행해온 행위에 대한 관계도를 보여주는 듯한 책이라 한번 읽고말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m***7 2010.0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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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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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글 사진 노익상/청어람 미디어 刊   책 제목이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고 지레 접근 방법까지 가난해질 필요는 없다. 호화로운부자들의 살림집보다는 가난한 집이 아무래도 사회성이 더 잠재해 있다는 맥락으로 사진과 글들이 처연한 작품성이 돋보이는 건  사실이다. 부자들의 집과 그들의 생활 주변은 화려한 월간지 화보로나 쓰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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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글 사진 노익상/청어람 미디어 刊

 

책 제목이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고 지레 접근 방법까지 가난해질 필요는 없다. 호화로운
부자들의 살림집보다는 가난한 집이 아무래도 사회성이 더 잠재해 있다는 맥락으로 사진과
글들이 처연한 작품성이 돋보이는 건  사실이다. 부자들의 집과 그들의 생활 주변은 화려한
월간지 화보로나 쓰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일 게다.

노익상은 다큐멘타리 사진작가에 컬럼니스트이다. 사실 가난한 곳의 읽을거리와 쓸거리와
이야기거리가 좀 더 체감적이고 와닿음이 절절하며 사진으로 이야기 하는 게 더 처연하다.
색상도 천연색보다는 흑백이 주는 이미지의 명암 대비가 더 강렬하고 졸박해 보여서 좋다.

작가의 프로필이 없어서 먹물의 농담(濃淡)을 알 순 없지만 사진 하나만 기예적으로 잘 찍
어대먄서 문장이랄 것도 없는 찍사들하고는 확 차이나는 글도 와닿음이 절절하다. 차고 거
친 바닥 먹먹한 하늘 이제 잊혀가는 삶의 공간'을 마음에 인화하고 다닌 기록들이 또 좋다.

시골 차부는 누대에 걸친 가난에서 벗어나는 출발지였다. 간이역은 봉건질서와 논 농사 중
심의 악랄한 지주들의 수탈과 멸시를 떨쳐버릴 비상구였고 하나같이 가난에서의 탈출을 시
도할 돌파구였다면서 작가는 앵글로 에세이한다.  의도적인 건 아니겠지만, 왜 가난은 전라
도 사투리와 잘 어우러지는 이유는 거기가 곡창지대라 가난한 소작인들이 많아서 였을까.

하여간 잘은 몰라도 사진에는 사회적 고발기능은 가능해도 메타포는 없다. 지난한 이의 살
림집이라고 해서 블러 모자이크blur Mosaic 처럼 희부윰하게 처리되지 않아 좋다.  책갈피
가 없을 때 페이지를 접는 습관도 용서안되는 분위기다. 사진도 글도 꺽여서는 안되지 싶다.

옛날에는 사진관 사진사라 했다. 시방은 배병우 조세현 김만중 등, 이름을 셀 정도로 유명한
사진 작가들이 활동하는 터에 한 사람 더 추가한다면야 노익상이 아닐까. 아니 글도 문장도
사진사를 초월하는 사진 철학적 아티스트라면 단연코 노익상을 먼저 꼽아야 될성 싶다.

d****o 2010.02.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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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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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가난의 되물림은 후손들에게 육체적,정신적인 시련과 고통이 뒤따를 것이기에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것이 고된 부역과도 같을 것이다.'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선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이 삶의 우선 순위이었던 시절에는 조상들의 애환은 말도 못했을 것이다.'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듯이 의지 가지 없었던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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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가난의 되물림은 후손들에게 육체적,정신적인 시련과 고통이 뒤따를 것이기에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것이 고된 부역과도 같을 것이다.'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선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이 삶의 우선 순위이었던 시절에는 조상들의 애환은 말도 못했을 것이다.'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듯이 의지 가지 없었던 사람들은 정처없는 유민(流民)과 같이 부유(浮遊)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인간에게 삶은 생명력을 바탕으로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식이 있기에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의 삶은 신산하지만 생명력은 강인하면서도 꿋꿋하게 지탱해 나갔던 것으로 생각한다.

 

 1980년대,1990년대 중후반의 한반도의 산하를 10년 간 다니면서 5년 간의 긴 원고작업 끝에 탄생한 이 글은 작가의 섬세하고 꼼꼼한 필치에 아련한 기억과 추억을 끄집어 내게 한다.이렇게 가난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상대대로의 가난이라는 되물림이 주요 원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오붓하게 산과 내를 두르고 있는 전통적인 한국의 시골 동네의 모습과는 다르게 외따로 살아 가던 '외딴집'을 비롯하여 외주물집,독가촌,막살이집이 나오고,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기관격인 분교,간이역,차부집,여인숙 등이 소개되고 있다.나아가 1960년대 후반 도시개발에 따른 미관주택,시민아파트,문화주택 등이 순서대로 소개가 되고 있다.이는 개인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투영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여 한국현대사의 가난하게 살아 가던 이들의 가옥구조부터 소규모의 기관들 속에 그들의 애환이 강퍅하기도 하고 인정이 살아 있기도 하다.

 

 조선 후기 철종 이후 유민의 증가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산골 깊은 곳에는 주인 없는 땅을 불사르고 그곳에 화전을 일구어 살아가는 화전민들이 늘어나는데 이들은 외딴집의 형태를 띠면서 살아 갔다.그리고 조림사업을 한다는 차원에서 외딴집들을 듬성 듬성 모아 놓은 독가촌 그리고 탄광촌에 주로 자리잡은 외주물집(길가에 놓인 연립형식 집들)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산골마을의 분교(간이학교)와 간이역은 그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묻어 난다.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면소재지의 중심이었기에 분교 형태는 아니었지만 면의 면적이 크다 보니 학교에서 10여키로 떨어진 산골 마을의 어린이들에겐 면소재지 학교로 통학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1970년대 두 개의 분교가 생겨나게 되었다.모교에서 가르치던 교사가 분교로 발령받아 아침이면 자전거로 출근하던 교사의 수수한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선연하다.

 

 1968년 북한 공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한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발언과 울진 삼척 공비 침투 사건 그리고 김신조에 의한 박정희 암살 미수사건을 통해 '도서벽지(島嶼僻地)'주민을 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하기 위해 화전정리사업이 대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그것은 외딴집의 집단화 및 분교 교육의 전면적 개편이었다.1970년대 초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면서 초가에서 슬레트집으로 바뀌고 돌담에서 벽돌담으로 바뀌게 되는데,도회지 대로변은 양옥집 형태의 미관주택이 늘어나게 된다.도회지의 주택의 경우 1968년 창전동에 시민아파트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되는 사태가 빚어지게 된다.박정희 군사정권은 무허가 건물 세대를 서울 인근으로 집단 소개(疏開)시키게 되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나면서 과밀한 서울도시를 분산하기 위해 베드타운(일산,분당 등)을 건설하면서 대형아파트 건설붐이 내집마련의 꿈과 맞물려 번창해 가고 있다.지금은 이미 지어 놓은 아파트가 남아 돌아 건설업체는 온갖 사탕발림으로 주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장소에는 단연 간이역과 차부집의 향수가 있을 것이다.벽지에는 자주 오지는 않지만 시내로 나가는 시내버스 그리고 각역마다 정차하는 비둘기호 등이 있었다.간이역에는 산과 들이 있고 청정한 공기의 내음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차부집은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또는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해 잠깐 차부집 안으로 들어가 주인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군것질거리도 사기도 한다.간이역과 차부집은 세상살이와 더불어 사람들간의 정담과 소통 그리고 소소한 정보를 교환하는 중개지점이기도 하다.그리고 내가 대학시절과 신혼초에 살았던 문화주택은 (일본식)붉은 기와장과 붉은 벽돌담 그리고 대문 옆에 자리잡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정해진 날에는 똥물을 수거하는 차가 '딸랑딸랑'신호를 보내면서 약간의 법석이 일어나곤 한다.인간의 몸에서 배설된 똥물이 잠시 인상을 찌푸리게 하며 그 내음은 몇 시간 가기도 했다.

 

 이제는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게 된 외딴집,외주물집,독가촌,차부집,막살이집,문화주택(지금도 일부는 남아 있다) 등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향수와 추억이 새롭기만 하다.사람과 사람간의 교류와 소통이 줄어든 아파트 주거는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높여주고는 있지만 어린시절의 공동체적인 의식은 사라지고 이기적인 편의위주의 삶이 가속화되고 있다.지금보다도 더 개인주의로 흘러 갈 후세대들은 물질은 풍요로워지고 문명은 더욱 발달해 가겠지만 후세들의 삶의 질과 사회구성원간의 화합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하나의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가난한 이들의 삶은 누구를 해코지 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 들이면서 힘들었지만 인간의 정을 나누면서 살았던 이들의 삶이 현대인의 삶과는 크게 대비가 된다. 

 

 



j******6 2013.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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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담겨 있고, 공간이 담겨 있고, 삶의 진실이 담겨 있는 살림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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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뭐죠?”라고 묻는 한 건설회사의 광고는 집의 근본적인 목적을 묻는 듯하지만, 결국 그들 또한 세속의 욕망을 담고 있는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뿐이다. 부동산 투기 바람과 맞물려 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하면서 집은 주거의 의미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많이 지니게 되었다. 도시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지방 어디를 가나 아파트를 빼놓고 우리의 주거형태를 논의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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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뭐죠?”라고 묻는 한 건설회사의 광고는 집의 근본적인 목적을 묻는 듯하지만, 결국 그들 또한 세속의 욕망을 담고 있는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뿐이다. 부동산 투기 바람과 맞물려 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하면서 집은 주거의 의미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많이 지니게 되었다. 도시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지방 어디를 가나 아파트를 빼놓고 우리의 주거형태를 논의할 수는 없게 되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의 각 지방에는 자연환경과 기후 등을 고려한 주거형태가 있다고 배웠다. 어린 시절 자주 찾아갔던 외가는 지역의 특징과 역사를 담고 있었고, 몇 년 전 새로 집을 지은 처가도 그 이전에는 아내를 포함하여 가족들의 삶의 내력이 담긴 오래된 집이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러한 집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불편을 감수하고 오래된 집의 형태를 고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서는 집들은 이전에 비해 특징도 없고, 천편일률적이다.

 

인간이 동굴을 벗어나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분명 인간에게 집은 단순히 거처하는 곳만의 의미를 지니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한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함께 하는 삶의 공간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기대를 하기는 쉽지 않다. 재산의 일부가 되어 소유의 개념만이 아주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일평생 적어도 10여 회 이상은 이사를 다녀야 하는 가족들이 부지기수인 것이 이를 아주 잘 말해준다.

 

노익상 작가의 <가난한 이의 살림집>(청어람미디어, 2010년)은 ‘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집이 더 이상 인간의 삶과 온전히 함께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에 ‘살림집’의 의미는 반갑기도 하면서 애처롭게 다가온다. 비록 외양상 허름해 보이지만 작가의 발품으로 소개되는 집들은 세상의 모진풍파를 겪은 노파와도 같다. 그 안에 가족의 내력이 담겨 있고, 마을의 풍경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살림집’이라는 어감이 주는 의미가 풋풋하고 정겹다.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멋스럽게 치장하지 않는다. 비가 새면 비를 막고, 망가진 곳이 있으면 고치며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견뎌낸다. 집 주인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어 집안 곳곳이 하나의 역사이다.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집안의 내력과 추억이 깃들어 있다. 주인 내외의 넉넉한 인심과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살가운 풍경을 자아낸다. 아마도 그 최후 또한 집주인과 함께 하리라.

 

작가 노익상은 발품으로 이 집들을 찾아다녔다. 빠르게 자동차로만 움직여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풍경들이기에 발로 걷고, 시간을 기다려 사람을 만났다. 많은 여행작가들이 1~2시간 머물며 사진만 찍고 돌아오기가 일쑤다. 글은 간략히 정보 위주로 구성한다.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맛집 등의 주변정보를 간략히 추가하고 글을 내보낸다. 그래서 어느 누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노익상 작가의 글에는 시간이 담겨 있고, 공간이 담겨 있고,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오래도록 머물며 담는 사진 1컷에는 시간이 느껴지고 먼 곳과 가까운 곳의 거리 사이에서 발품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야기와 사진의 풍경 속에서 가식 없는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10년 이상의 시간과 공간을 담은 발품이니 이 책에서 느껴지는 감동 또한 남다르다. 오지 산골을 몇 차례 방문하며 안부를 묻는 넉넉한 여유가 마음을 한없이 포근하게 한다. 잊혀져가는 한국의 풍경으로 읽히지 말았으면 한다. 아파트 공화국의 현주소를 반성하고 ‘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by 꽃다지, 2010.06.28

l*******g 2010.06.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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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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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내가 어느 사진작가의 작품 사진들과 짤막한 글이 있을 책으로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였다. 가난까지도 그저 멋스럽게 꾸민 사진들로 채워진 책이 아니라 아주 오랜시간 전부터 한 장 한 장 깊은 단상과 함께 만들어진 책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글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글이 실려있다는 부언이 그럴만 하게 느껴졌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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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내가 어느 사진작가의 작품 사진들과 짤막한 글이 있을 책으로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였다. 가난까지도 그저 멋스럽게 꾸민 사진들로 채워진 책이 아니라 아주 오랜시간 전부터 한 장 한 장 깊은 단상과 함께 만들어진 책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글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글이 실려있다는 부언이 그럴만 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첫 여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그렇게 문을 두드리다가 본 삶을 하나둘 엮다가, 그이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살림집을 따로 떼 내 정리한 것이다."

 

물론 작가의 행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나도 산길을 걸은 적이 있다. 오후 세시 이후의 조급증을 느껴본 적이 있고, 초조함과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작가처럼 외딴 곳의 불빛을 보고 문을 두드리지는 못했다.^^;;

 

외주물집이란 낯선 용어를 배우고, 외딴집의 고독과 독가촌의 격리. 이 세 낱말이 또 그 나름대로 미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낯설지만 그 설명을 이해하게 된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모습과 그의 단상들이 모아져 이러한 가난한 용어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테마가 있는 기행문인 듯도 하고 가옥의 구조를 설명하는 사회책 같기도 하다.

차부집, 막살이집이라는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미관주택, 문화주택, 시민아파트까지 당시 서민들의 주거형태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책을 보는 중 낯익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 태백에서 찍은 사진이 그것이다.

태백으로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늘 보았던 그 집들이다. 폐가 같은 광산 마을의 허름하게 늘어서있던 그 건물들 말이다. 도시에서 사는 내가 지방의 산촌 마을을 바라보는 눈은 작가의 그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을테다.

 

"그러므로 살길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을 반복했던 그이들 살림집은 이제 세월 저 구석진 곳에 숨죽여 있다. 그런 가운데 '옥탑방', '반지하방', '다세대방', '장기방' 이라는 가난한 집의 새로운 모습들이 다시 또 나타났다. " -392p

 

작가의 맺음말에서 지금 우리 주변의 익숙한 용어들이 들어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오랫동안 사진으로 담아왔던 작가에게 이 모습들도 애잔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응어리 있는 아픔을 풀어가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과 훌륭한 글솜씨에 감동하고 있을때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이웃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런 진지함과 깊이를 가지고 싶었다.   

z***n 2010.03.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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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의 살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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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살림을 이루며 살아간다. 살림집이란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상관없이 실제 자신이 직접 몸담고 집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를 담은 포토에세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런 책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진실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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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살림을 이루며 살아간다. 살림집이란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상관없이 실제 자신이 직접 몸담고 집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를 담은 포토에세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런 책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진실한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정이 넘치던 우리 부모들, 그 윗 세대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 생각때문이었는지 책을 받고 읽는 내내 아주 오래된 낡은 사진첩을 꺼내 보는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느낌을 받을수도 있었다.

 

 

 

책을 보며 느끼고 생각하기를 좋아하지만 접할 수 있는 모든 책으로부터 감동을 전해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10년에 걸쳐 잊혀져 가는 삶의 공간을 엮어낸 다큐멘터리 역작이란 생각에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를 숨김없이 그대로 느껴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누구도 쉽게 만나볼 수 없고 잊혀져가는 삶의 공간들, 평화롭지만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풍경속에 바로 우리가 살아왔던 오래전 그 모습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외주물집은 마당이 없고 길 밖에서 집 안이 들여다보이는 보잘 것 없는 집을 말한다. 전통마을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성황당, 특히나 여러 풍수해에 취약한 길가에 자리잡은 외주물집은 공업화 이전의 전통 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오랫동안 정착을 중요하게 여겨왔던 우리는 자연과 가까이 자리잡고 인간의 기본터전이 되어주는 살림집을 꾸리며 살아왔다. 만일 집이 집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면 사람의 근본 또한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던 저자의 말이 무척이나 가슴깊이 다가온다. 때로는 집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의 모습들이 아직도 이런 집들이 남아있었나 싶은 생각을 갖게도 했지만 그렇게 취약한 동네나 위치에 있던 집이라도 집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독가촌 사람들의 미소 뒤로 보이던 고단한 생활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했지만 너무나 작고 조악한 가난한 살림집의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익숙한 생활이 있었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다.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란 책은 과거 우리가 가난했던 시대를 재조명하며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에세이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우리 삶의 터전을 보며 읽어오는 동안 가장 크게 다가왔던 진실은 오래되고, 낡고, 가난했던 추억들은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비록 세련되거나 화려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너무나 보잘것 없고 누추한 이야기였을지라도 우리 윗 세대들이 삶을 일구며 살아온 발자취를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에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가난한 살림집들을 통해서 잊고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y******5 2010.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