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독후감이라도 남길라치면, 그 한계를 더욱 느끼곤 한다. 두 시간 밖에 안 되는 영상에 담겨진 깊은 삶의 의미에 때론 목마르다. 삶을 담기에는 사실 두 시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정여울의 《시네필 다이어리》는 영화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삶의 의미를 반추해주는 철학서이다. 굳이 철학서라 하는 이유는 거창함이 들어있는 어려운 철학서가 아닌, 이제 철학은 우리의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의미로서 성큼 다가왔다는 느낌에서이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들의 일상에 철학의 메시지가 직접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포착한 철학의 포토앨범 같은 책이다(p6)
‘시네필(cinephile)’이란 곧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cinephile)’, ‘영화(cinema)와 철학(philosophy)의 만남’을 가리킨다.
나는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 모습을 가장 싫어한다. 한때 텔레비전을 없앴을 정도로 텔레비전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싫다. 지금은 어느 정도 텔레비전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만, 다시 없앨 예정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즐기는 문화생활은 영화와 독서 정도인데 그 중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가장 애지중지 하며 보는 영화이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가 주는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는 수준은 극히 미미하다. 난 단지, 감동할 뿐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아이들의 아름다운 성장을 그려보기도 하고 <이웃집 토토로>를 보며 나의 아이들도 저렇게 순수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원령공주>를 보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상을 그리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해주는 울림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안 담겨있는 철학은 어떤 의미일까? 정말 무심코 호기심에 펼쳐 본 책인데 첫 장부터 매료되어 한 호흡에 다 읽은 책이다. 가끔 우리가 무심코 보게 되는 내면의 것들을 누군가가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호기심처럼, 친절하게 영화에 담겨져 있는 철학을 알려주는 인문학 멘토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영화가 지니고 있는 삶의 의미들, 진실의 편린들을 짜 맞추며 영화라는 퍼즐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멈추어 있는 내 수준의 ‘보는’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내게 구원자인 셈이다. 영화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의 철학이 늘 궁금하였던 내게 조곤조곤하게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친절한 선생님과도 같다.
<색,계>와 롤랑 바르트의 풍크툼 벌써 여러 번 본 영화이지만, 저자의 '시네필'로 이 영화는또 다른 색을 지닌다. 바로 사랑이라는 색.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굳게 믿었던 여자의 첫사랑으로 들려주는 색계는 '사랑이야기'로 철학의 풍크툼이란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망상의 벽돌로 지어진 견고한 영혼의 성벽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강력한 믿음의 다이너마이트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절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해버린 여자가 자신의 죽음과 맞바꾸게 된 사랑이야기인 <색,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저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웠던 세상이,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었을 때야 비로소 그 투명한 속살을 보여준다.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은 상처, 그렇게 지독한 상처의 틈새로만 간신히 보이는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 그것을 롤랑 바르트는 ‘풍크툼’이라고 불렀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지프 캠벨의 신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화적 상상력은 현실을 거부하는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중요성을 박탈하여 현실에서 멀어지는 대체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능동적인 판타지이다.(p103) 이렇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조지프 캠벨의 신화로 인해 지극히 명랑하고 낙천적인 신화적 상상력이라는 자아성장기로서 ‘씨네필’에서 다시 재생된다.
처음 강신주의 철학을 접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철학자 강신주는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영화는 이제 일상과도 같이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감동하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하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롤랑바르트의 ‘풍크툼’,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들뢰즈의 ‘시간’, 바슐라르의 ‘몽상’이라는 철학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책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쉽게 영화를 보는 것처럼, 철학을 쉽게 끄집어내어 일상과 접목하는 부분은 매우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더군다나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영화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 영화에 담긴 철학적 의미들을 간파해내는 것도 인문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인문학자는 인문학이라는 비밀스러운 방에 들어가게 해 주는 열쇠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씨네필 다이어리》는 정여울이라는 열쇠로 들어가는 방이다. 정여울을 통해 철학과 영화를 이해하는 과정은 우리의 날 것 그대로의 삶에 성큼 다가가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도 미디어일 뿐이다. 영화는 두 시간 만에 끝나버린다. 그런데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 안팎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상영되기 시작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끊임없이 새로운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평생 '1인분의 삶'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아주 제한적이지만 여전히 소중한 메시지의 통로가 아닐까. |
|
"쓸모없음"이 매력적으로 보여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녀의 인문학 사랑. 그녀는 인문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길,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내 곁에 머물게 하는 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유용했던 인문학은 이렇게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학문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인문학은 인성교육의 거름 같이 들렸다. 좋아하는 것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점. 나는 책을 읽으며 저자의 장점을 하나 발견해 낸다. 그녀는 영화와 철학자를 연계했는데, 어려운 이름의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나는 그녀의 영화 해석에 더 눈길이 갔다. 나 역시 좋아하는 것의 좋은 점을 찾는 눈을 가진 것일까.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색,계]는 롤랑 바르트와 이어져 자신도 모르게 쏘아버린 남녀의 진심을 참으로 안타깝게 해석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경계심 많은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여자가 만나 단 한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휘청거려지다니..... [굿 윌 헌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시간을 달리는 소녀], [순수의 시대], [원령공주], [뷰티풀마인드] 등등 평소 좋아하던 영화/애니메이션들에 대한 해석을 읽는 시간도 즐거운 시간이 되어 주었지만 [색,계]와 마찬가지로 [쇼생크 탈출] 또한 영화를 다시 되돌려 보게 만들만큼 인상적인 글남김이었다. 누군가의 글로 인해 예전에 봤던 영화가 그리워지는 것. 저자의 글의 힘은 이토록 강했다. 쇼생크 탈출은 영화를 볼때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는데 감옥에서조차 자신이 주인이 되는 길을 찾은 한 남자의 탈출담은 오늘날 24시간에 갇혀 사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들어준 영화였다. 영화엔 삶이 담겨 있고, 누군가의 글엔 그리움이 담겨있고, 세상엔 감동받을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
|
정여울 선생님의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를 즐겁게 봤는데, 이번에 새로운 책이 나왔더군요. 이 책도 기대가 되어 얼른 집어서 봤습니다. 우선 예쁜 표지와 깔끔한 모습에 반하고, 영화를 읽는 선생님에 글에 또 반했습니다. 이 책을 뜨끈한 방에서 배 깔고 누워서 읽다보니 영화도 8편을 다 본 것보다 더 깊은 감동을 느끼고 8명의 철학자와도 친구가 되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
|
철학자가 영화를 본다는 상상? 처음 책을 봤을 때, 영화관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철학자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책장을 슥 넘겨보다가 깔끔한 구성에 나도 모르게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영화를 이용해 철학을 풀어내는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이 책은 철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철학자를 친구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풍크툼, 몽상, 아비투스와 같은 어려운 철학용어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읽어내려 가는 가운데 친숙해졌다. 또한 <색계>, <굿 윌 헌팅> 등의 영화를 새로운 감동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
모 인터넷 서점에서 그녀의 글을 발견 한 날, 거칠었던 마음이 해갈되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남몰래 들어간 저자의 방에서, 난 나른한 오후를 즐기기도 했고, 상사의 구박을 견뎌내기도 했고, 오랜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와 철학자들의 음성을 되새기며 옛 학창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이제 그 연재의 일부가 책으로 나온 것 같다. 그녀는 영화와 철학 속에서 일상의 균열을, 그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일상의 틈새를 잘도 찾아내어, 나에게 때론 향기롭고, 때론 달콤쌉싸름하고, 때론 폐부를 파열시키는 '향기로운 폭탄'을 던졌다. 인터넷 화면이 아닌, 종이에 인쇄된 그녀의 글을 이제 만나러 가야 하겠다. 또 어떤 느낌으로 내게 말을 걸지 벌써 궁금하다. |
![]()
그래, 영화도 미디어일 뿐이다. 영화는 두 시간 만에 끝나버린다. 그런데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 안팎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상영되기 시작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끊임없이 새로운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평생 '1인분의 삶'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아주 제한적이지만 여전히 소중한 메시지의 통로가 아닐까. - 111p.
나는 책을 읽고 난 여운을 이 공간에 소소히 남기고 있다. 나보다 뒤에 책을 읽을 이를 위해 남기기 보다는 내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다. 가끔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렇게 느꼈고, 저 책은 저렇게 생각했구나 하면서 다시보기를 종종 하기 때문이다. 문자로 된 책은 저자 덕에 머리 속에서 정리하기가 쉽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으면 꺼내 들춰보면 그만이다. 내가 글쓰기 어렵다고 느끼는 분야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다. '캡쳐'라는 방법이 있지만 화면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저장하며 기록한다는 건 책을 읽는 것보다 수 십 배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다. 또 영상은 문자보다 간접적이다. 따라서 그 안에 녹아있는 의미를 찾는 게 어렵기만 하다.
'철학자와 영화의 만남'이라는 부제의 <시네필 다이어리>라는 책을 만났다. 철학이라는 모두가 어려워하고 재미없어하는 학문을 영화와 접목시켰다. 사실 철학과 영화를 접목시켰다기보다 저자가 철학자의 글을 인용해 영화와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거창한 철학자나 개념이 종종 등장하지만, 독자에게 거창하게 설명하려고 하진 않는다. '나는 이렇게 멋있고 대단하고 거창한 철학적인 개념을 설명할테니 당신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주기 바랍니다'가 아닌 '이 영화의 이 장면은 제 생각에 OOO의 이런 개념과 비슷해보입니다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책이다. '나는 철학적 개념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의 삶과 철학이 아슬아슬하게 입 맞추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9p) 라는 저자의 말이 책 곳곳에 스며있다.
총 8편의 영화와 철학자가 만났다. 영화는 한 번이라도 들어봤지만, 철학자는 꿈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런 철학자의 이름과 그들이 주장했던 이론과 개념을 읽으면서도 거부감이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 번은 느꼈음직한 감성을 굳이 글로 표현하자면 이 철학자의 이런 개념일 수도 있다는 친절한 글 덕분이다. 이렇게 영화를 분석하고 철학자가 쓴 책을 읽으려면 얼마나의 시간이 필요한걸까? 3일 동안 책을 읽고 2시간 가량을 들여 리뷰를 쓰고 있지만, 저자가 글을 쓰기 위해 소요한 시간에 비하자니 지나가던 번데기가 웃을 지 모를 일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쇼생크 탈출>과 니체를 이어 쓴 대목이었다. 철학의 가차없음과 인정사정없음을 잘 보여주는 니체와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한 인간의 감옥 탈출기는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는 인간의 나약함과 자신 안의 자유와 희망을 결코 놓치 않고 벽에 길들여지지 않았던 앤디 듀프레인. 극한까지 몰렸지만 자기 안의 자유를 잃지 않았던 앤디는 추락하지 않고 지상에서 영원으로, 자신이 그렸던 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8편의 영화 중 3편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그 중 2편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너무나 괜찮지만, 국내 영화가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이 씁쓸한 대목이다. 책을 다 읽고 서점에 가니 <시네필 다이어리 2>가 매대에 놓여있었다. 목차를 보니 (여전히) 8편의 영화 중 하나가 한국 영화였다. 지갑이 열리는 순간이다.
영화가 이토록 긴 생명력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모두가 자신만의 '영화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말 저런 상황에 처하지 싶지 않아' 싶다가도 '내게도 저런 순간이 있었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도 영화가 가진 매력이다. 이토록 영화같은 삶을 사는 우리에게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하는 순간이 있으며,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할 정도로 힘든 기억이 있다. 그럴 때 철학자가 말을 건다. 비록 가차없고 인정사정없다는 그들이지만 내 말을 들어주고 내 안의 눈으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눈으로 나를 돌아보도록 도와준다. '누구에게나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
|
*몇해 전 부산서 회복과 치유의 여행을 하고 있을 즈음, 도서관 순례중에 우연히 집어들어 마주한 책이 이 책<시네필 다이어리>였는데 영화와 철학의 묘한 결합이 호기심이 일어 펼친 책에서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을 쓴 저자의 문체였다,
그녀의 글에서는 한마디로 오랜 세월 다독을 통한, 묵어서 곰삭은 묵은지의 맛을 상상할 수 있는 문자향이 시큼하니 코를 자극 했으며 이내 그 속깊은 통섭과 퓨전의 진득한 맛에 입맛을 새롭게 다시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관점을 철학적으로 풀어 나아가기까지 동원한 그녀의 문체에서는 숱한 다독과 다상량을 짐작하게 했으며 그런 경향들이 작가의 독특한 관점과 어우러져 새로운 통섭과 퓨전의 영화 감상기가 탄생했던 것으로 짐작했었다,
자신만의 개성적 시각으로 영화를 읽어내는 몇몇 평론가들의 글을 좋아했던 터라 저자의 글은 유독 흥미를 끌었었다, 문학평론가가 영화를 보게 되면 이런 글들이 나오는 구나 싶었는데 풍크툼을 비롯한 새로이 알게 된 어떤 철학적 개념으로 이어지는 영화 감상기는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데 촉매제가 되었으며 자연스레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유도되었었다,
독문학을 전공하여 국문과 박사과정까지, 나아가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라는 갠적으로 엄청 난해한 타이틀을 가진 어떤 소설가 論으로 평론 등단한 것으로 소개된 저자에게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해서 엉뚱하게도 책날개에 있던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모델삼아 그녀의 초상을 그리고 앉아있던 자신을 발견하고선 깜놀, 도서관서 독서하다가 뭔짓거리였당가,,,
여튼 그녀는 이 책을 쓰면서 오랜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서 매번 새로운 빛깔로 상영되는 영화의 힘을 감지했다고 하면서 아련하게 멀어져만 가는 영화의 기억을 생생한 감동으로 되살려 준 멘토, 그것은 바로 철학의 메시지였다고도 했었다, 그리하여 삶과 인생의 현상들을 철학의 메시지를 상기하여 영화에서 포착, 영화를 철학자와 함께 보고 그의 감상을 듣는다는 상상에서 출발했다는 이 책에는 롤랑 바르트의 철학과 암살을 해야 하는 적을 사랑하게 되어 그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 레지스땅스를 다룬 영화<색,계>를 시작으로 총 8편의 영화와 철학 이론들이 통섭과 퓨전의 장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영화보기의 또다른 창의의 시각을 즐길 수 있는 독서 시간들이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좋은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상영될 때보다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상영될때 더욱 빛을 발한다, 갠적으로 때론 그런 느낌을 저자의 반짝이는 칼럼들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로 느꼈었다,
|
|
이 책은 요새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을 쓴 정여울씨가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쓴 내용을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책을 찾게된 이유는 애니메이션으로 떠나는 철학여행을 읽고서 남는 아쉬움을 찾기 위해 다른 책을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엿보고 싶었던 '에반게리온'과 '원령공주' 혹은 공각기동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석해주기를 원했는데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안썼다는 저자의 말에 찾아낸 책이다. 이 책과 나를 이어주는 것은 '원령공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철학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떠나는 철학여행'은 동양철학과 각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정답게 이어주었지만, 정여울은 서양철학과 애니메이션을 이어주었다. 유명한 철학자도 있지만, 사진 이론에 나오는 롤랑 바르트도 있다. 나처럼 철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은 철학 입문서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수없이 나오는 해괴한 용어와 수사학적 표현, 그리고 번역체가 주는 낯설음과 두려움은 철학에 대한 발을 내딛다가도 도로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여울은 서문에서부터 솔직한 이야기로 시선을 잡는다. 이 책에서 '철학의 멘토, 영화의 테라피'를 주장하는 그는 인문학이 쓸모없다는 세상의 편견에 대해 필요의 범위가 잘못 규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주식이나 금융지식과는 관련없지만 친구를 구하고 혼란스런 인생에서 인생이 나침반이 필요할 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 할 때, 나랑 전혀 다른 타인을 이해할 때(이 부분에서 왠지 '어린왕자'가 생각났다), 진정한 존재의 독립을 꿈꿀 때, 예술과 역사와 문학이 바꾼 세계의 지형도에 눈뜰 때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철학자의 주장은 때로는 가슴에 큰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몰입하기에는 다소 어렵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을 본 우리의 감정과 마음을 통해 다시 살펴본 또다른 삶을 보여주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매력적인 해설을 읽는 것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견디고 볼 수 없는 나의 부족한 집중력에도 대부분 이해할 만하고 유명한 화젯거리의 영화들이 나오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8편의 또다른 삶을 보여주는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조지프 캠벨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굿 윌 헌팅과 수잔 손택>, <니체와 쇼생크 탈출>이었다.)
조지프 캠벨이 이야기하는 신화이야기를 통해 본 센은 서로 일상의 영웅이 어떻게 자기 안에 숨겨진 신화를 일깨우고 변화하게 되었는지 다시 이해하게 한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소녀에 대한 환타지에 대해서 정여울은 신화적 모티프의 대상이라 이야기한다. 소녀가 가진 불안정한 경계성, 그리고 그들이 가지는 또다른 힘에 대한 신비함이 아마 소녀를 구원자로 그리는 것 같다.(이에 대비해 <일본열광>을 쓴 김정운은 일본 애니에 나오는 소녀들은 왜 하얀 팬티에 무기를 들고 있을까는 질문에 대해 주체적 행위가 부정되는 통제와 세뇌의 맥락에서 경험되는 욕구 좌절의 폭력적 트라우마가 제복 속에 숨겨진 하얀 빤스의 소비라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계에 갇힌 센이 여러 난관을 넘어서 자신이 간직했던 가치를 뒤엎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을 만나는 과정에서 여신 포스를 가지게 된 것에서 우리가 일반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잠재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지나친 휴머니즘적 분위기를 어릴 때부터 싫어했던 나는 그런 영화는 잘 안보게 되었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 누명을 써서 억울했을 부정적 감정보다는 매일 내가 속한 공간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려는 치열하고 하지만 침착한 앤디의 모습에 감동하게 되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생각난다) 니체가 이야기하는 현실과 먼 곳에만 존재할 것 같은 초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앤디가 행하는 삶 그 자체는 니체를 알든 모르든간에 이미 주변을 변화시키는 초인이다. 니체의 훌륭한 이론의 개념은 단지 현상을 설명할 뿐이다. 무감각한 나에게도 삶의 아름다움과 어려움을 이기는 여러 방법에 대해 꿈꾸게 하고 이성 중심의 철학이 보지 못한 틈새와 그 균열을 설명하는 여러 철학자와의 만남 또한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정여울의 글솜씨에도 감탄한다. 내가 원래 듣고 싶었던 <원령공주>에 대해서도, 몽상(daydream)의 힘과 원령공주 산과 자연에 대한 시선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감동을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지 않더라도 고스란히 느꼈다. 그래서 원령공주에 대해 생각할 이야기를 던진 바슐라르를 인용한 책의 마지막 부분은 오래 생각할 만한 것이었다. 모든 대상들은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상징적 의미를 끄집어 낼때, 강렬한 드라마의 기호들이 된다. 그것들은 감수성의 확장되는 거울들이 되는 것이다 이 우주 속에서 우리가 그것들의 깊이를 모든 것에게 부여할 때, 우리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슐라르 저, 김현 역, <몽상의 시학>,홍성사, 168쪽 철학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감수성 깊은 글들은 철학을 읽으면서 이성의 힘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만났던 있을 법한 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멘토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철학의 힘보다도 오히려 인물들의 메시지가 더 강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누가 읽어도 좋을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과 사유를 주는 책이다. |
|
[색, 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굿 윌 헌팅], [시간을 달리는 소녀], [쇼생크 탈출], [순수의 시대], [뷰티풀 마인드], [원령공주] 등 8편의 영화를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맛깔난 해설에 귀기울이며 열심히 읽어갔다. 영화를 어떻게 읽느냐고? [시네필 다이어리]를 만나면 그 의문은 풀릴거야! 라고 대답해주고 싶었다. [굿 윌 헌팅]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영황인데 가능하다면 비디오를 빌려서라도 만나보고 싶다. |
|
|